소설리스트

황금백수-86화 (86/232)

제 3장 반드시 한 명은 죽는다.

야율사은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사망묵의를 갈아입은 연우강은 궤짝을 걸머지고 탈라하를 따라나섰다. 그가 처소를 나서자 이자승과 욱일승, 수천월, 갈인효, 네 명이 따라나섰다.

팔황북천각에는 이미 각 문파의 수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뇌들은 원탁을 사이에 두고 둥글게 앉아 있고, 그들 뒤쪽 일 장 떨어진 곳에는 수행해온 이인자들이 서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오간 듯 수뇌들의 얼굴은 물론이고 이인자들의 얼굴도 잔뜩 굳은 채였다.

“ 연 공자를 불러온 이유가 뭐요?”

연우강이 안으로 들어서자 막북혈마성의 성주 대혈마 북청강이 야율사은을 보며 물었다.

“ 그는 공증인......”

“ 아냐, 사은. 난 공증인 자격으로 여기에 온 게 아니라 참여하기 위해 왔어.”

연우강은 야율사은의 말을 자르며 빈바리로 앉았다. 자리에 앉은 연우강은 각 문파 수뇌들이 앉은 자리를 살폈다. 바로 옆에는 십자무적흔 백마흔이 있고, 그 옆으로는 조금 전 말을 걸었던 대혈마 북청강, 해룡왕 탁불군, 흑사귀랑 단극효가 순서대로 앉아 있었다.

야율사은의 자리는 정면이었다.

그리고 야율사은의 옆으로는 포달랍궁의 가람존자, 만독존자 당갈, 혈사귀랑 단리효, 북빙후 수나인이 앉아 있었다. 앉은 자리만로는 팔황새 각 세력 간에 얽힌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 이 자리는 팔황새 수뇌들만을 위한 자리네, 연 공자.”

왼편에 앉아 있던 북빙후 수나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들이 변방에 처박혀 살겠다면 난 팔황새가 통일이 되든 멸망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 네가 중원의 대표라도 된단 말이냐?”

이번엔 혈사귀랑 단리효가 으르렁댔다.

“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냐?”

“ 무슨 소리냐, 놈!”

“ 네가 보냈던 사풍무영대 일천이 우리 잠룡 십조에게 몰살을 당했다. 네가 이끄는 새외귀막은 우리 오십 명이면 충분하다, 단리효.”

“ 건방진 놈!”

단리효는 검 손잡이를 잡으며 벌떡 일어났다.

“ 자중하시게. 단 대협. 천주 앞에서 무례를 범하기 전에, 나 태황야 이자승을 먼저 넘어야 한다네.”

연우강 뒤편에 있던 이자승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태, 태황야?”

팔황새 수뇌들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이자승이 연우강 일행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헤어졌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손녀딸인 이지약이 조장으로 있는 조가 청해천종림을 정벌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녀를 제쳐두고 연우강을 따라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더구나 연우강은 북천지옥부로 들어오면서 이자승을 소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따라오지 않은 걸로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이자승이란 자가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그는 연우강을 천주라고 불렀다.

황궐 전대 궐주이자, 구림세가의 태상가주인 이자승의 호위를 받는 사람이면 자신들에 비해 결코 낮은 신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각 문파 수뇌들이 경악한 얼굴을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단리효, 주둥아리 닫고 자리에 앉아.”

“ 그렇다고 해도 넌 자격이 없다, 연우강.”

“ 나도 저 영감님의 지위에 호가호위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연우강은 씨익 웃고는 가져온 자루를 탁자위로 올렸다.

“ 내가 당신들과 함께 놀이를 하겠다는 건 이것 때문이야.”

연우강은 자루 안에서 검 두 자루와 비급 한 권을 꺼냈다.

“ 뭐냐 그건?”

건너편에 있떤 야율사은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여기 붉은색 검은 혈루라는 이름을 지녔고, 이 비급은 팔황혈루파천황이다.”

“ 혀, 혈루라고?”

“ 팔황혈루파천황이라고?”

조금 전 이자승의 이름을 듣고 놀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혈루와 팔황혈루파천황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홉 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시선은 연우강이 내놓은 붉은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천오백 년 전에 사라졌던 팔황새, 아니 황천의 지존신물이 혈루가 아닌가. 그런데 혈루뿐만 아니라 황천 최고 무공이라 알려진 황천혈루파천황까지 있다. 만일 연우강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사, 사실이오?”

남십자성의 성주 십자무적혼 백마흔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 직접 확인하십시오.”

연우강은 허공섭물로 혈루를 띄워 백마흔 앞으로 놓았다.

“ 내가 먼저 확인해도 되겠소?”

백마흔은 상기된 얼굴로 일행을 둘러보았다.

“ 어서 뽑아보시오.”

북청강이 채근했다. 혈루를 누가 뽑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붉은색으로 된 저 검이 정말로 황천의 지존신물인 혈루가 맞는지 그게 더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인 듯 북청강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소, 내가 뽑도록 하겠소.”

백마흔은 천천히 혈루를 뽑았다.

스르릉!

맑고 투명한 소리와 함께 붉은색 검신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꿀꺽!

팔황새 문파 수뇌들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혈루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혈루가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겉모습으로만 보면 혈루는 전설에 내려오는 형태 그대로였다. 한동안 검을 내려다보던 백마흔은 혈루를 들고 야율사은 앞으로 걸어갔다.

“ 최종확인은 부주가 해야 할 것 같소이다.”

그는 혈루를 야율사은 앞에 놓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각 수뇌들의 시선이 야율사은에게로 향했다. 야율사은은 혈루의 검병을 잡고는 일행이 전부 볼 수 있도록 수평으로 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공을 주입했다.

지이잉!

혈루로부터 나직한 검명이 흘러나왔다.

“ 오!”

일행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윽고 혈루로부터 붉은 광채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각 문파의 수뇌들은 혈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혀, 혈룡의 재림이다!”

“ 혈룡의 재림이다!”

수뇌들은 흥분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연우강 또한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혈루의 검면 바로 위쪽에 용이 나타나 있었던 거였다. 검면에서 흘러나온 광채가 기이한 굴곡을 이루면서 용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우강은 백마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어떻게 된 겁니까?”

“ 혈루란 이름은 붉은 눈물이란 뜻이 아니고 혈룡의 눈물이란 뜻이외다. 연 공자가 꺼내놓은 팔황혈루파천황이나 북천지옥부의 최강 무공인 북천지옥파천황을 운용한 내기를 혈루에 주입하게 되면 저렇게 혈룡이 나타나게 되오. 저걸로 진짜 혈루와 가까 혈루를 구분할 수 있소이다.”

“ 북천지옥부를 황천의 적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요.”

“그렇소. 연 공자. 북천지옥부의 무공인 북천지옥파천황은 팔황혈루파천황의 내공심법을 바탕으로 창안된 무공이오.”

“ 진품이오.”

야율사은은 혈루에 주입했던 내기를 거둬들이며 말했다. 하지만 굳이 진짜라고 확인해줄 필요는 없었다.

천오백 년 만에 나타난 혈루를 보는 그들의 눈에는 감격과 탐욕이 혼재돼 있었다.

물론 혈루의 주인이 된다고 해서 당장 황천의 천주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전 그들은 무슨 수를 쓰더랃 이번엔 천주를 뽑자는 야율사은의 말에 동의한 상태다. 만일 야율사은의 말처럼 한 명의 천주가 뽑히고, 그의 손에 혈루가 쥐어진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천주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혈루의 주인이 팔황새 일파 중 한 곳이 아닌 연우강 소유라는 데에 있다.

“ 어디서 얻었냐?”

야율사은은 혈루를 연우강 앞으로 슬쩍 던졌다.

연우강은 백마흔 앞에 있던 검집을 들어 올려 앞으로 내밀었다.

스르릉! 철컥!

허공을 날아온 혈루가 검집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일행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았다.

연우강은 혈루와 비급을 탁자 중앙으로 밀었다.

“ 그리고 이건 흑천의 지존신물 묵사요.”

연우강은 혈루와 함께 꺼냈던 묵사를 들어 보이며 혈루 옆으로 놓았다. 하지만 팔황새 수뇌들은 조금 전 혈루를 보았을 때처럼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연우강이 대야벌을 나설 때 담대만승으로부터 묵사를 얻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난 흑천의 천주야.”

“ 흥!”

이번에도 역시 새외귀막의 막주 혈사귀랑 단리효가 낮게 코웃음을 쳤다.

“ 그 웃음의 의미는 뭐지?”

연우강은 수나인 옆에 안아 있는 단리효를 빤히 쳐다보았다.

“ 네가 묵사를 담대만승으로 얻었다는 사실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연우강. 차라리 혈루를 내놓고 부탁해라.”

“ 혈루와 팔황혈루파천황은 내가 팔황새에 주는 선물이야. 단리효. 나는 묵사와 흑천을 걸겠다. 대신 당신들도 모든 걸 걸어야 해. 이것까지.”

연우강은 제 머리를 툭 쳤다.

“ 정말 선물이란 말이오?”

북청강이놀란 얼굴로 물었다.

“ 나는 남의 집을 방문할 땐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소. 성주. 당신네들이 이 일에 날 끼워주든 끼워주지 않든 난 혈루를 가져가지 않을 거요. 단.....”

“단?”

북청강은 연우강을 빤히 보았다.

“ 혈루의 주인이 된 자는 여기 태황야 이자승 영감의 도전을 받아준다고 약속하면 드렇다는 거요.”

“ 황천의 천주와 비무를 하고 싶단 말이오?”

“ 내가 아니고 여기 있는 이자승 영감이라고 했소. 북 성주.”

“ 만일 그 조건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 내 아버지가 또 말하길, 차 한 잔도 대접해주지 않는 집이라면 선물을 주지 말고 그냥 나오라고 하였소.”

“ 혈루를 가지고 가겠단 말이오?

“ 선물을 받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안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북 성주.”

“ 흥! 네가 혈루를 가지고 사막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또다시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상체를 앞으로 숙여 단리효를 보았다.

“ 시험해볼 거야.”

“ 넌 녹아천을 나서기도 전에 네 부하들과 함께 사막에 묻히게 될 거다. 연우강.”

“ 자신해?”

연우강은 다시 물었다.

“ 내 목을 걸어도 좋다. 연우강. 넌 혈루를 꺼내놓는 게 아니었다.”

“ 좋아, 그건 내 말대로 된다고 치고, 그럼 너희들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해?”

“ 지금까지는 여덟 세력으로 나뉘어 있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하나로 통일되면 달라진다. 누구든 우릴 무시하지 못할 황천이 된단 말이다.”

“ 너희들은 하나로 통일되기 전에 전부 멸망하는데도?”

“ 흐흐흐! 웃기지 마라, 대야벌은 내부 문제는 물론이고 밀천의 등장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다. 우리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단리효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나서는 단리효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 댁들도 같은 생각이오?”

연우강은 북청강 일행을 보며 물었다.

“ 혈루는 저들도 보았소. 설사 우리가 포기한다고 해도 변방 무인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연 공자.”

“ 좋아, 그럼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누가 황천의 천주가 될 거요?”

“ 그건.......”

북청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 자, 그럼 단리효 네가 대답해 봐. 네 형인 단극효 막주가 혈루의 주인이 된다면 그를 천주로 인정하고 무릎을 꿇을 거야?”

“ ........”

단리효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 형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혈루의 주인이 된다고 해도 황천의 천주라고 인정할 수가 없을 터였다.

“ 대야벌이나 밀천을 들먹일 필요도 없어. 당신네들은 혈루와 황천혈루파천황을 차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다가 공멸하고 말아.”

“ 으음!”

“ 음!”

일행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연우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만약 혈루가 사막에 버려진다면 그때부터는 혈루를 차지하기위해 자신들끼리 싸우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이곳에 있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자멸.

그것밖에 없었다.

“ 선물이 아니라, 마물이구먼.”

“ 선물 맞소. 탁 림주. 내가 만일 혈루를 마물로 만들 생각이었으면 이곳까지 가지고 올 필요도 없었소.”

“ 변황에 풀어버리면 된단 말이오?”

“ 그랬더라면 난 잠룡강호행에 나선 열 개 조 중 최고 평점을 받았을 테고, 내 조원들은 전부 출세가도를 달려가게 될 거요.”

“ 그래서 선물이라고 한 거로군.”

탁불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결정하시오. 날 이번 내기에 끼워줘도 좋고, 천주로 선출된 자가 내 도전을 받아줘도 좋소.”

“ 우린 아직 어떤 방법으로 천주를 선출할 건지 모르고 있소. 연 공자. 다만 천주가 될 수 있는 조건엔 무공의 고하는 제외하기로 합의를 했소.”

북청강이 곤혹스런 얼굴로 말했다.

“ 천주를 선출하기 위한 비무는 하지 않겠다는 거요?”

“ 우린 실력이 엇비슷하오. 비무를 하게 되면 양패구상 밖에 없소.”

“ 그랬구려. 난 사은 저 녀석 때문인줄 알았소이다, 그려.”

“ 험!”

정곡을 찔린 듯 북청강은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숨겼다.

연우강의 말처럼 다른 이들의 무공은 대충 짐작하고 있지만 북천지옥부의 부주인 야율사은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정보가 없다.

다만 형인 야율대극보다 더 강할 거라는 게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야율대극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더 강하다는 데에 있었다.

북청강을 비롯한 각 문파의 수뇌들이 비무를 포기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좋소,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떻소?”

“ 어떤 방법을 말하는 거요?”

북청강을 비롯한 일행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천운과 담력. 그 두 자리로 결판을 내는 거요.”

“ 천운과 담력이라면......”

“ 한 문파의 수장이 된다는 건 노력만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 거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피땀 어린 노력이 선행돼야 하고, 그 노력과 더불어 천운이 따라야 하오. 하지만 천운을 쉽게 알아치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소. 오히려 그걸 잡으면 지금까지 이뤘던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결단력과 담력이오. 한 문파의 수장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보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소?”

“ 나쁘지 않군.”

먼저 북청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공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운과 담력을 시험할 방법이 있단 말이오?”

만독존자 당갈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 있소. 당 궁주. 무공의 고하도 상관없고, 댁들이 거느린 무인의 수도 의미가 없소. 오직 천운과 담력으로 결정하는 거요.”

“ 그런 방법은.....”

당갈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천운과 담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내기가 없었다. 더구나 이곳은 사방이 확 트여있는 호수 위가 아닌가.

“ 속임수는 절대 아니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소.”

“ 궁금해서라도 반드시 참여해야겠군. 나는 하겠소.”

먼저 참여하겠다고 한 사람은 대혈마 북청강이었다.

“ 나도 하겠소.”

북청강에 이어 십자무적흔 백마흔도 동의했다.

“ 나도 하겠소.”

“ 나도.”

“ 나도.”

“ 그런 방법이 있다면 나도 찬성이오.”

탁불군과 단극효, 야율사은, 가람존자까지 하겠다고 나서자 다른 이들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부터가 중요하오.”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뭐가 중요하단 말이오?”

“ 내기가 시작되면 중간에 빠질 수 없다는 거요. 다만 내기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천주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는 경우는 제외하오. 그것도 동의하오.”

“ 좋소.”

“ 좋소.”

“ 동의하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 중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충성맹세를 거부하는 자는 어떻게 처리할 건지 그것도 논의를 해야 하오.”

“그런 자는 팔황새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떻소?”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율사은이 입을 열었다.

“ 없애자는 말이오?”

북청강은 야율사은을 보았다.

“ 바로 이 자리에서, 혈루로.”

“ 만일 반항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요?”

북청강은 이번엔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내기를 하는데 무공은 필요없소. 북 궁주.”

“ 무공이 필요없다는 말은?”

“ 점혈을 한 상태에서 내기를 하게 된다는 뜻이오. 점혈 또한 다름 사람이 해주게 될 거요.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람의 점혈은 뒤편에 있는 자들 중 아무나 지적하는 사람에게 시키기로 합시다.”

북청강을 비롯한 문파 수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한 내기처럼 보였던 것이 점차 무거운 기세로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 조, 좋소. 나는 찬성이오.”

이번에도 역시 북청강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듯 그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려 나왔다.

“ 나, 나도 찬성이오.”

“ 나도......”

“ 나도.”

각 문파의 수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기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가 됐고, 누가 됐든 먼저 내리는 자가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할 게 뻔했다.

이제는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내가 지적하는 사람은 좌우 측에 있는 자들을 점혈하시오. 먼저 만독존자 당갈 대협이오.”

“ 알았소.”

고개를 끄덕인 당갈은 왼편의 가람존자와 오른편의 혈사귀랑 단리효를 점혈했다. 점혈이 끝나자 가람존자와 혈사귀랑의 눈에서 신광이 사라졌다.

“ 됐소, 연 공자.”

“ 다음은 북빙후 수나인 궁주는 당 궁주와 나를 점혈하시오.”

“ 알았소, 연 공자.”

수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갈을 점혈한 다음 연우강의 혈도를 눌렀다.

“ 다음은 백 대협이오.”

“ 알았소.”

백마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나인과 북청강의 혈도를 눌렀다.

더는 호명할 필요가 없었다. 백마흔이 자리에 앉자 북청강 오른편에 앉아 있던 해룡왕 탁불군이 일어나 백마흔과 흑사귀랑 단리효를 점혈하였고, 맨 마지막으로 야율사은이 해룡왕 탁불군을 점혈하였다.

그리고 야율사은의 혈도는 북청강의 친동생이자 막북백마성의 부성주인 백사혈마 북청후가 눌렀다.

“점혈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시오.”

연우강은 주머니를 탁자 위로 올리며 말했다. 일행은 일제히 서로를 쳐다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 영감님!”

연우강은 이자승을 불렀다.

“ 말해라!”

“ 중간에 포기한 자들 중 충성맹세를 하지 않는 자는 혈루로 목을 쳐주십시오.”

“ 알았다. 그렇게 하마.”

이자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섭물로 혈루를 끌어당겨 뽑았다.

“ 청후야!”

북청강은 동생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형님.”

“ 너도 마찬가지다. 내가 반칙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목을 쳐라.”

“ 알겠습니다. 형님.”

북청후는 탁자 위에 남아 있던 묵사를 끌어당겨 뽑아들었다.

“ 탈라하!”

연우강은 탈라하를 불렀다.

“ 말씀하시오, 공자.”

“ 주정과 술잔 열 개를 가져와.”

“ 알겠습니다.”

휙!

고개를 숙인 탈라하는 이층으로 몸을 날렸다. 야율사은의 지시로 주정과 술잔을 미리준비해두었던 것이다.

연우강이 참여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고 아홉 개만 준비했는데 하나를 더 준비해야 할 듯했다.

“ 이제 천운과 담력을 동시에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소. 연 공자.”

북청강은 연우강이 올려놓은 자루로 시선을 주었다.

“ 바로 이거요, 여러분.”

연우강은 자루 안에서 십뢰를 꺼내 놓았다.

“ .......!”

일행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이 꺼내놓은 물건을 보았다. 잔뜩 뭔가를 기대하며 긴장하고 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면 긴장이 풀리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 마련이다.

지금 북청강 일행의 얼굴이 그랬다.

뭔가 엄청난 물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우강이 꺼내놓은 것은 뜻밖에도 둔탁하게 생긴 쇠뭉치에 불과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하하하!”

“ 큭큭큭!”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얼굴엔 공연히 긴장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독존궁의 궁주 당걸의 표정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당걸은 고개를 갸웃하며 십뢰를 쳐다보았다.

“ 설마...”

갸우뚱거리던 당걸의 고개가 우뚝 멈췄다.

내내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곳이 지금의 독존궁인지, 젊은 시절 떠나온 사천당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더 이상 진전이 없던 참이었다. 그런데 문득 물건의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모아 다시 십뢰를 보았다.

이번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십뢰를 끼워 넣는 뭉치였다.

“ 허억!”

뭉치를 살피던 당갈은 비명처럼 신음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 맙소사, 시, 십뢰!”

당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바로 그것이었다.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천당문을 위험하게 하는 물건이라고 폐기해야 했던 놈.

그 십뢰였던 것이다.

일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한순간에 가시더니 천천히 굳어졌다.

“ 설사 금강불괴지신에 올랐다고 해도 절대 만나지 마라. 그 마물은 단 하나가 제작됐을 뿐이고 사정거리는 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금강불괴지신을 파괴시킨다. 그 마물의 이름이 바로 십뢰다!”

당갈 옆에 있던 가람존자가 십뢰에 대한 전설을 읊었다.

“마, 맞소. 가람존자, 내 기, 기억이 정확하다면 저놈은 분명 십뢰요. 아니 저놈은 분명 십뢰요.”

당갈은 고개를 그덕였다.

“ 당 궁주의 말대로요. 이놈은 당 궁주의 집안인 사천당문이 만들어낸 최고의 무기인 십뢰요.”

연우강은 십뢰의 중앙을 살짝 옆으로 밀었다.

딸깍!

미약한 소성과 함께 뭉치가 떨어져 나왔다.

연우강은 뭉치를 세웠다. 그러자 안쪽에서 십뢰가 모습을 드러냈다.

“ 십뢰!”

당갈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뭉치 안에서 나온 그것이 바로 실제 십뢰였다.

“ 그렇소. 당 궁주. 십뢰는 이놈을 가리키는 거요.”

새끼손가락 두께의 작은 암기를 들어보인 연우강은 그곳을 한편으로 세워놓고는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뭉치를 꼼꼼하게 닦았다. “ 지금 뭐 하는 거요, 연 공자.”

십뢰를 쳐다보던 북청강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설마 연우강이 마물이라고 불리는 십뢰를 들고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먼지가 있으면 간혹 불발이 되곤 해서 사용하기 전에는 항상 깨끗이 닦아줘야 하오.”

일행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그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연우강이 닦고 있는 십뢰를 보았다.

“ 술 가져왔습니다. 연 공자.”

“ 수고했어. 술잔을 각자 앞에 하나씩 놔주고 주정을 따라 줘.”

“ 알겠습니다.”

탈라하는 술잔을 각 수뇌들 앞에 놓기 바쁘게 주정을 따랐다. 그가 열 잔을 채우고 있는 사이, 뭉치를 내려놓은 연우강은 본체를 닦기 시작했다.

그가 본체를 닦아 내려놓는 순간 탈라하도 본래의 위치로 가 섰다.

“ 원래 십뢰는 이걸 말하는 거요. 확인해 보시오. 당 궁주.”

연우강은 십뢰 하나를 옆에 있는 수나인에게 건넸다.

“ 거기에 십뢰라는 글이 적혀 있을 거요.”

당갈의 말에 수나인은 십뢰를 꼼꼼히 살폈다.

“ 이, 있네요.”

그녀는 더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디 봅시다.”

당갈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나인 곁으로 다가가 십뢰를 살폈다.

“ 으음!”

그는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 재미있는 게..... 이 뭉치엔 전부 열 개의 구멍이 있소.”

연우강은 일행이 확인할 수 있도록 뭉치를 그들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일행은 말없이 연우강을 쳐다보았다.

일행 뒤편에 있는 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연우강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 여기에 하나를 집어넣고.....”

십뢰를 밀어넣고 뭉치를 조립한 연우강은 뭉치에 손바닥을 대고는 아래로 휙 당겼다.

촤르르!

뭉치 돌아가는 소리는 경쾌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의 얼굴은 굳어지다 못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 그, 그걸로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해룡왕 탁불군이 물었다.

“ 먼저 따라 놓은 주정을 한 잔 하는 거요, 탁 궁주.”

연우강은 옆에 있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 그런 다음 이놈의 주둥이를 자신의 주둥이 안에 쑤셔 넣는 거요. 아주 깊숙이.”

연우강은 입을 쩍 벌리고는 십뢰를 사정없이 밀어넣었다. 그는 그 상태로 바로 옆에 있는 백마흔부터 시작하여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추어 나아갔다.

바로 왼편에 앉아 있는 수나인까지 시선을 맞춘 뒤 손가락으로 본체 위쪽에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 이걸, 누르면 되는 거요. 바로 이렇게.”

연우강은 튀어나온 단추를 가볍게 눌렀다.

철컥!

“ 헉!”

“ 억!”

“ 흑!”

콰아앙!

“ 으아악!”

콰당!

처절한 비명과 함께 연우강이 앉아 있던 의작 벌러덩 넘어갔다.

“ 우강아!”

“ 여, 연 공자.”

“ 연 공자.”

연우강을 지켜보던 일행은 질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연우강 뒤편에 있던 이자승의 손에서는 혈루가 떨어져 내렸고, 욱일승 일행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재수 없으면 이렇게 죽는 거야.”

나직한 목소리오 함께 연우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휴우!”

이자승 일행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그들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반증이었다.

“ 탈라하, 술!”

“ 아, 알겠습니다. 연 공자.”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탈라하는 득달같이 달려와 연우강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 영감님. 혈루를 불끈 틀어쥐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 전처럼 검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 아, 알았다, 자식아.”

이자승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녀석이 십뢰로 자살놀이를 했다는 말을 독고철응으로부터 듣기는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별것도 아닌 걸로 만용을 부렸다고 피식 웃어넘겼다. 그런데 말로 듣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니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심장 약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졸도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자승은 침을 꿀꺽 삼키며 연우강을 지켜보았다.

“ 이 안에 하나가 들었소. 불행히 우린 열 명이라서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반드시 한 명이 죽게 되오. 첫 번째 걸린 사람이 죽을 확률은 십분의 일. 즉 일 할이오. 그가 죽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지만 죽을 확률은 조금씩 높아지게 되지.”

“ 수,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 거요?”

“ 순서는.....”

자리에서 일어난 연우강은 십뢰를 탁자 중앙으로 가져가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 이렇게 돌리면 되오.”

연우강은 십뢰 중앙을 잡고 힘차게 돌렸다.

“ 돌아가던 십뢰가 멈추면 그 사람부터 시작하고, 순서는 오른편으로 돌아가오. 즉 북 궁주가 일착이며 다음 순서는 탁 림주가 되는 거요.”

“ 연우강은 돌고 있는 십뢰를 집어 들었다.

“ 그럼 일착이 가장 유리하겠군.”

북청강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 그래서 천운이라고 한 거요. 북 궁주. 운이 따르는 놈은 살고, 우리 중에 운이 없는 한 명은 반드시 죽게 되오. 이제 시작하고 싶은데, 이견 있는 사람은 미리 말하시오.”

“ 중간에 포기하는 건 가능하오?”

옆에 있는 백마흔이 물었다.

“ 그렇소. 백 궁주. 미리 포기해도 되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 포기해도 되오.”

“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아무도 죽지 않았을 땐 어떻게 되오?”

이번엔 북청강이 물었다.

“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오. 북 성주.”

“ 십뢰는 연우강 네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다.”

듣고 있던 단리효가 버럭 소리쳤다.

“ 내가 이 십뢰에 야료를 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

“ 그렇다. 연우강. 난 넌 믿을 수가 없다.”

“ 그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내공을 금제한 거다. 단리효. 그리고 십뢰에 대해서는 당 궁주가 더 잘알고 있으니까 그에게 물어라.”

“ 연 공자 말이 맞소. 단 막주. 십뢰는 야료를 부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 그래도......”

“ 사내가 아닌 놈은 사막에 살 자격이 없다. 단리효. 가부만 결정해라.”

“ 조, 좋다, 시작해라.”

단리효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의 심장은 지금 폭발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둔다면, 누가 자신을 새외귀막 막주로 인정해 줄 것인가?

기다리는 건 따돌림밖에 없을 테다.

아니 저들의 따돌림은 견딜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뒤에 있는 부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자들은 전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자신이 먼저 포기하면 부하들은 겁쟁이 막주라고 놀려댈 테고, 어쩌면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새외귀막은 천외흑막과 나눠진 상태가 아닌가.

‘ 나뿐만이 아닐 거다. 다른 자들도 전부 같은 상태일 테다. 한다, 한다.’

단리효는 내심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열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

‘ 제기랄!’

단리효는 내심 욕설을 뱉어냈다.

“ 돌리겠소.”

바로 그때 연우강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귓전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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