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넌 내 거야
‘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놈은 무공을 숨긴 상태고, 지옥의 죄수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황실의 끄나풀이오. 척 대협.’
‘ 황실 끄나풀이라는 건 확실한 정봅니까?’
‘ 심증만 있을 뿐이오. 하지만 모든 정황이 놈이 황실 끄나풀이란 사실을 증명하고 있소.’
‘ 진짜 무공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 최소한 막장보다는 강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소.’
‘ 철장마도 막장은 얼마 전 패천림 림주가 됐습니다. 만 군사.’
‘ 다섯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오, 척 대협.’
‘ 다섯 관문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 패천림은 세 관문 이상 통과하면 나머지 관문을 건너뛰고, 현 림주가 있는 십관 도전 자격을 얻게 되오.’
‘ 십관을 전부 통과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까?’
‘ 패천림 림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외다. 나 또한 철전패왕 백독수 전 림주와 친분이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이오.’
‘ 오관을 통과했다면 어느 정도라고 보십시니까?’
‘ 백독수는 삼 관을 통과했다고 하였소, 척 대협.’
‘ 그럼 최소한 백독수보다는 강하다고 봐야겠군요.’
‘ 그렇소.’
‘ 궐주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 그건 내가 따로 만나 말하겠소. 단철도문 문도 이백 명을 데리고 가도록 하시오.’
‘ 알았소이다. 만 군사.’
‘ 절대 놈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오.’
‘ 물론입니다. 만 군사. 나는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외다. 더구나 놈은.....’
“ 풍천마인과 야효를 해친 놈일 뿐 아니라 우리 무영을 농락한 놈이란 말이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을 쳐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리는 사내가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진 이자는 야궐 산하 최강 단체로 불리는 단절도문의 문주 단월도 척응계였다. 척응계 좌우 측에는 복면인 삼십여 명이 일렬로 늘어선 채 서쪽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복면인 서른 명은 연우강을 없애고 묵사를 회수하기 위해 나선 무영들이었다.
척응계는 시선을 돌려 무영들을 보았다.
사실 굳이 저들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이 데려온 단철도문 무인 이백 명과, 이곳에서 합류한 야궐 지부 무쌍검문 문도 이백 명을 합치면, 총 사백 명이나 된다. 굳이 무영들이 없다고 해도 작전을 완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출정 나간다는 말을 전해들은 담대천호가 서른 명의 무영을 보내주었다.
이미 대야벌을 나온 자들인데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복면을 착용한 상태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로 했다.
“ 아직도 불편하오?”
시선이 마주친 오른편 사내가 입을 열었다.
“ 불편할 리가 있겠소. 마음이 든든하오. 허대협.”
척응계는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안면을 익혔다.
올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큰 그는 무궐 수뇌 중의 한 명인 홍암 허중광으로 무영 서열 사 위에 올라 있는 초강자다.
“ 하지만 난 조금 불편하오, 척 대협.”
“ 내가 불편하게 한 거요?”
“ 척 대협 때문에 불편한게 아니라 연우강이라는 놈 때문에 불편하외다.”
“ 놈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 놈을 과대평가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성주의 간이 작아져서 불편하외다.”
“ 하남성에서는 사월림의 살수 일백 명과 만마림의 철마당 군마련 하부 조직인 군웅보가 당했고, 금릉 연씨 세가에서는 무면천군단 삼백 명, 사월림 살수 이백 명 만마림의 현의당 오백 명이 당했소이다.”
“ 나는 잠룡들이 강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지 않소이다. 척 대협.”
“ 지옥의 죄수들 때문이라고 보시오?”
“ 신주제일검 욱일승은 사십여 년 전에 백대고수 서열 일위에 올랐던 자고, 묘강독존 갈인효는 서열 삼 위, 북해어옹 수천월은 사 위에 올랐던 자요. 더불어 나중에 합류한 태황야 이자승은 그 당시 서열 이 위였소. 그리고 삼십 년 전에 투옥된 화선 적리세우나 신풍괴노 두작군, 제왕무량검 허일삼, 광양검객 우칠영 등 또한 오십 위 권 안에 드는 강자들이었소이다. 잠룡 십 조가 그렇듯 강해진 건 연우강을 비롯한 잠룡들이 힘이 아니라 죄수들의 힘일 수밖에 없소이다.”
나이 육십을 넘겼지만, 사람인 이상 질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비단 허중광뿐만이 아닐 테다.
척응계를 비롯하여 이곳에 있는 무영들은 누구도 연우강이 풍천마인이나 야효, 그리고 그동안 죽어간 무영들을 해쳤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십대 초반인 자가 야효를 없애고 칠십여 구의 풍천마인을 없앴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평생 동안 무공을 익힌 자신들이 초라해진다.
그 초라함에서 비롯한 자격지심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깍아 내리는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자들 중 연우강의 진짜 실력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무영들이 연우강을 인정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 그럼 풍천마인을 비롯한 야효를 죽인 자들도 그들이라 생각하시오?”
“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오, 척 대협.”
“ 야효를 죽인 무기는 암기로 알고 있소이다.”
“ 욱일승이 과거의 무공을 회복했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보오.”
“ 그럼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척응계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 우리가 죄수들을 맡을 동안에 척 대협은 잠룡들을 정리하시오.”
“ 하! 하! 하! 하!”
쿵! 쿵! 쿵! 쿵!
느닷없이 모래벌판 너머에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땅을 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기합 소리에는 상당한 내공이 가미돼 있었다. 더불어 모래바닥을 다짐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소리가 난다는 건, 그 또한 내공을 이용하여 바닥을 다진다고 볼 수 있다. 늘어서 있던 무영들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 우하! 우하! 우하! 우하!”
쿵쿵! 쿵쿵! 쿵쿵! 쿵쿵!
이번엔 조금 전보다 소리가 더 컸다.
“ 오느냐?”
척응계의 얼굴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
휙! 휙휙! 휙휙!
곧이어 뒤편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척응계는 몸을 돌렸다. 단철도문 무인과 무쌍검문 무인들이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 우리가 먼저 시험해보겠소, 척 문주.”
무쌍검문의 문주 태극허무검 효천월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 그렇게 해주시오, 문주.”
척응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 무쌍검문 문도들은 앞으로 나서라!”
효천월은 전면으로 나서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왼편으로 도열해 있던 무쌍검문 무인들이 일제히 선두로 나섰다.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백용퇴다. 힘을 내라!”
선두에 선 이철상이 뒤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그 소리만 벌써 백 번이다. 교랑!”
잠룡 중 누군가가 악에 바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이번엔 정말이다!”
“ 그 말도 백 번이 넘었다, 교랑.”
“ 하기 싫은 놈들은 진영을 빠져나가 쉬어도 좋다. 아무도 안 말리니까 각자 알아서 해라!”
“ 에라, 개자식아!”
잠룡들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계속 무기를 휘두르고 방패를 휘두르며 바닥을 다졌다.
잠룡들의 뒤를 따르던 탈라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녹아천에서부터 저들을 따르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처음엔 정말로 연우강의 말처럼, 일천 보를 가는 데 한 시진이 걸렸다. 아니 육천 보를 가는데 하루를 잡아먹었다. 그랬던 그들이 조금씩,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일천 보를 가는 데 반 각 정도 걸린다. 단순히 전진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전후좌우, 그리고 중으로 구분된 각 군은 수시로 방향을 바꾸면서 나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발을 강하게 구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래먼지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다.
발을 구를 때 지면에서 받은 반발력을 완전하게 흡수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한 단계 더 강해진 것이었다.
“ 최대한 거리를 좁혀라!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최속 간격을 확보하라.”
이철상의 명령이 떨어지자 잠룡 십조 대원들은 일제히 거리를 좁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발을 구르고 무기를 휘두르고 방패를 휘둘렀다.
“ 허허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자승은 흡족하게 웃었다.
잠룡들이 펼치는 무공은 그동안 매일 아침 꾸준히 시도했던 느리게 펼치는 무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연우강은 물론이고 배우는 잠룡들 또한 대단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었다.
“ 우!”
“ 하!”
“ 우!”
“ 하!”
“ 우! 하! 우! 하! 우! 하!”
쿵! 쿵! 쿵! 쿵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
잠룡 십 조 조원들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전방으로 걸어나갔다.
“ 어?”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이철상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백여 장 건너편에 푸른색 옷을 걸친 검수들이 도열한 채 이편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 지난 두 달 동안 연습한 걸 시험해볼 기회가 온 것 같은데, 괴랑 네 생각은 어떠냐?”
“ 적이란 말입니까?”
“ 우린 누군가가 마중을 나올 정도로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괴랑.”
“ 엄청나게 많습니다. 광랑, 앞쪽에 이백 명 정도가 있고, 뒤쪽에도 그 정도의 무인이 있습니다. 복면을 쓴 자들도 있고요.”
이번엔 잡랑 장사덕이 소리쳤다.
“ 가서 알아보고 와.”
“ 알아보고 오라고요?”
“ 이름을 알아야 비석을 세워줄 거 아냐.”
“ 헤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광랑. 다녀오겠습니다.”
피식 미소 지은 장사덕은 무쌍검문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빠르게 몸을 날려간 장사덕은 무쌍검문 무인들 십 장 앞에 멈췄다.
“ 난 잠룡 십 조의 잡랑 장사덕입니다.”
장사덕은 무인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막아선 자들을 살폈다. 보통 지금과 같은 경우엔, 호의를 가진 자들이거나 상관없는 자들은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포권을 취하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란 말이군요.”
장사덕은 차가운 눈으로 무쌍검문 무인들을 보았다.
스르릉!
대답은 검이 대신했다.
무쌍검문 문주 태극허무검 효천월은 검을 뽑아 가슴 앞에 세웠다. 그러자 다른 무인들 또한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 아주 멋집니다. 여러분.”
장사덕은 흰 이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으음!’
효천월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행동거지만으로 내심을 파악할 수 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짐승은 꼬리를 내리고 사람은 허세를 부리거나 말이 많아진다. 그런데 십 장 건너편에 서 있는 자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저 모습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허세가 아니라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문득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린 그동안 열심히 발톱을 갈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에 죽음의 상처를 만들어 드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군요. 미리 사과드립니다. 여러분. 죽더라도 원망은 마시길.”
장사덕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잠룡 십 조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 누구지?”
앞에 선 장사덕을 향해 연우강이 물었다.
“ 무쌍검문 무인들입니다. 맨 앞에 있는 자는 문주인 태극허무검 효천월이고요.”
“ 무쌍검문이면 야궐인가 보네?”
“ 무쌍검문 뒤편에 있는 자는 단월도 척응계였습니다. 광랑.”
“ 그럼 단철도문이란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 첫 그림 치고 나쁘지 않아, 교랑!”
“ 하명하십시오, 광랑.”
“ 네가 중앙으로 들어가서 진을 지휘해.”
“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이철상은 중앙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장사덕은 전방으로 나갔다.
“ 가급적이면 고통을 주지 말도록 해라.”
허리를 세운 채 전면을 쳐다보며 연우강은 나직이 말했다.
“ 알겠습니다. 광랑!”
잠룡들은 무기를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 전진하라!”
곧이어 중앙에 있는 이철상의 입에서 전진 명령이 떨어졌다.
“ 우!”
“ 하!”
“ 우!”
“ 하!”
“ 우!”
“ 우~! 하! 우-! 하! 우-! 하!”
쿵쿵! 쿵쿵! 쿵쿵! 쿵쿵!
지금껏 내질렀던 외침과는 또 달랐다.
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단지 악에 받쳐 내지른 외침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적을 없애고 말겠다는 강력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잠룡들이 함성을 토해낼 때마다 주변이 부르르 떨고 살기가 충천했다. 그들이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잔뜩 독이 오른 이리를 연상케 하였다.
“ 우-! 하! 우-! 하! 우-! 하!” 가 돼야 간신히 잘라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외침에 점점 빨라지면서 잠룡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더불어 진득한 살기가 사방에서 요동쳤다.
“ 맙소사!”
효천월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잠룡 십 조를 없애라는 명령을 받고, 나름 조사를 했다. 잠룡강호행에 나선 조들 중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고, 대야벌 무인 이천여 명 이상이 저들에게 당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싸움에는 안개, 독, 화약 등 실력보다는 외부 환경이 더 많이 작용하여 십 조의 정확한 실력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잠룡 십조의 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저들은 비급으로만 무공을 익힌 실내에서 기르는 화초 같은 무인이 아니라 싸움을 아는 자들이었다.
효천월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하들 또한 잔뜩 경직돼 있었다.
‘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당하고 만다.’
“ 공격하라!”
효천월은 전방으로 몸을 날려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 우와!”
“ 와아!”
무쌍검문 무인들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효천월을 따라 몸을 날렸다. 번쩍 들어 올린 그들의 검은 노을을 받아 차갑게 번뜩였다.
“ 우-! 하! 우-! 하! 우-! 하!”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하지만 잠룡 십 조의 진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치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방패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 차아앗!”
“ 타아앗!”
“ 이야압!”
잠룡 십 조 오 장여 앞으로 다가선 무쌍검문 무인들은 광포한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그들의 검면에 뿌연 광채가 어렸다.
바로 앞에 선 그들은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곰처럼 웅크리고 있는 잠룡 십 조를 흩트려 놓기 위한 공격이었다.
“ 우우-!”
진득한 살기가 어린 외침이 잠룡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왼손이 일제히 머리 위쪽으로 향했다.
창창창! 캉캉캉!
검과 방패가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 하!”
잠룡들은 살기 어린 외침을 토해내며 상대의 검을 막고 있던 왼손을 사정없이 밀어쳤다.
잠룡들을 향해 내리찍었던 무쌍검문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가고, 무쌍검문 무인들의 가슴이 벌판철검 드러났다.
바로 그 순간 이철상의 입에서 잔혹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살!”
“ 사-알!”
잠룡들은 우렁차게 복창하며 왼손을 쭉 내밀었다.
방패 끝에 솟아 나와 있던 창날이 일제히 무쌍검문 무인들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푹! 푹푹! 푹푹! 푹!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 퇴!”
무쌍검문 무인들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철상의 입에서 두 번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잠룡들은 찔러 넣었던 방패를 빼냄과 동시에 오른발을 내질렀다.
퍼억! 퍽! 퍽퍽! 퍼억!
이미 시체로 변한 무쌍검문 무인들의 신형이 잠룡들의 발길질에 의해 뒤편으로 훨훨 날아갔다. 동료를 따라 몸을 날리던 무쌍검문 무인들은 갑자기 시체가 덮쳐들자 화들짝 놀랐다.
바로 그 순간 이철상의 외침이 이어졌다.
“ 추!”
“ 우우-!”
추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잠룡들이 걸음이 빨라졌다. 그들은 날아가는 시체를 쫓아 몸을 날리더니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푸욱! 푹!
시체의 몸을 뚫고 들어간 검은 뒤편에 있던 자들의 몸까지 함께 뚫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 측면을 돌파하라!”
정면 공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효천월은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측면이라고 해서 달라질 게 없었다. 중앙을 중심으로 네 개 조로 진형을 구축한 잠룡 십조는 조그마한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 우-! 하!”
“ 우-! 하!”
쿵쿵! 쿵쿵!
“ 크악!”
“ 아악!”
잠룡들은 왼편으로 또는 오른편으로 이동하면서 몸을 날려오는 무쌍검문 무인들을 도륙했다.
“ 빌어먹을!”
효천월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상식을 벗어난 적의 전투방식 때문이었다. 무인들의 전투는 개개인의 무공을 겨루는 각개 전투가 일반적이다. 경공을 사용하고 보법을 사용하는 무인들에게 방진을 구축한 것 같은 저러한 진형은 효율성이 떨어져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검진이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검진의 묘용은, 격체전공이나 진식의 운용을 통해 몇 사람에게 힘을 집중하여 초극의 강자로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저들이 구축한 진형은 진식이 아니다.
단순히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진식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우-! 하! 우-! 하! 우-! 하!”
“ 크악!”
“ 아악!”
“ 으아악!”
짐승의 포효처럼 살기 어린 외침이 끝나면 잘려나간 머리가 떠오르고 팔다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았다.
“ 물러나라! 물러나라!”
결국 효천월은 후퇴명령을 내렸다.
벌써 절반 이상이 당했고, 지금 상태로 그냥 두면 전멸을 당할 판이었다. 우선 물러난 다음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했다.
하지만 싸우는 도중에 내리는 후퇴명령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그는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 산!”
“ 사-안!”
파앗! 팍! 파앗!
이철상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룡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고는 물러나는 무쌍검문 무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지금껏 진형에 가려져 있던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흔이 펼쳐지면서 사방에서 머리가 떠오르고 피가 뿌려졌다.
“ 이럴 수가.....”
효천월은 넋을 잃었다.
순식간이다.
잠룡들은 바람처럼 나아가 물러나는 문도들을 도륙해 버린 것이다.
“ 확살!”
또다시 이철상의 입에서 잔혹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확인!”
잠룡들은 광포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자들을 향해 방패를 내리찍었다. 살아 있는 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죽어 시체가 된 자들에게도 잠룡들은 무기를 찔러넣어 죽음을 확인했다.
수십 군데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광경은 보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하였다.
“ 크아악!”
“ 아악!”
“ 으악!”
다친 몸을 이끌고 도망치던 자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 합!”
“ 하압!”
마지막 명령이 떨어지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잠룡들은 빠르게 본인의 자리로 돌아왔다.
“ 우-! 하! 우-! 하! 우-! 하!”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잠룡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십여 장 건너편에 서 있는 단철도문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 엄청나군.”
척응계는 혀를 내둘렀다.
이백 명에 달했던 무쌍검문 무인들이 당하는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아니 그보다는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더 놀라고 말았다. 확인 사살 명령이 떨어지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상자를 향해 무기를 찔러 넣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다.
“ 기후철!”
척응계는 뒤편에 서 있는 탕마신검 기후철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 중앙을 공격해 놈들을 분산시켜라. 그 방법이 아니면 깨트릴 수 없다.”
“ 알겠습니다. 문주님.”
고개를 꾸벅 숙인 기후철은 단철도문 문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 너희들은 대야벌 최강 세력인 야궐의 최정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알고 있습니다.”
단철도문 문도들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왜 단철도문인지, 왜 단철도문을 최강으로 여기는지 실력으로 증명하라!”
“ 우와!”
“ 와아!”
“ 와!”
무쌍검문 무인들이 순식간에 도륙당하는 광경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철도문 문도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대야벌 최강 세력인 야궐의 최정예라는 자부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더 강했다.
“ 일 조는 적 중앙을 쳐라!”
기후철은 달려가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 존명!”
순간 우렁찬 외침과 함께 오십 명이 선두로 나섰다. 그들은 빠르게 지면을 차며 잠료 십 조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우리도 갑시다, 허 대협.”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단철도문 문도들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척응계는 단월도를 뽑아들고는 옆에 있는 허증광에게 말했다.
“ 그럽시다.”
스윽!
그를 비롯한 서른 명 무영들의 신형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모래밭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발자국이 남지 않는 신법은 바로 답설무흔이었다.
“ 영감님, 밥값 할 시간입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연우강은 낙타에서 내리며 이자승을 불렀다.
“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자승은 전장을 피해 왼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켰다.
“ 척응계와 아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건 단철도문 문도들도 얼굴을 아는 자들이란 뜻이 되겠지요.”
“ 무영이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영감님. 두 영감.”
연우강은 그쪽을 향해 걸어가며 두작군을 불렀다.
“ 말해라!”
“ 다섯 명을 데리고 가서 뒤쪽을 맡아.”
“ 뒤쪽이면 어딜 말하는 거냐?”
두작군은 뜨악한 얼굴을 했다.
“ 도망치는 놈을 잡으라는 말이야.”
“ 나보고 도망치는 자들을 감시하는 감시자 역할을 하라고?”
“ 그것뿐만이 아냐, 혹시 주변에 숨어 있는 놈들도 있으면 찾아내서 없애.”
“ 정말?”
“ 저놈들을 없애는 것보다 그 일이 더 중요해, 영감.”
연우강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사망낭조를 꺼내 손가락에 하나씩 끼웠다. 사망낭조를 끼우고 이번엔 허리춤에 달고 다니던 사망철립을 머리에 썼다.
“ 너 일부러 내게 시키는 거지?”
“ 한 놈이라도 살려보내면 큰일 나, 무슨 말인지 알지?”
“ 아, 알았다. 자식아. 노려보긴.”
연우강은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두작군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서리쳤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녀석이 복장을 완전히 갖춰 입으면 그때부터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온다.
아무튼 녀석이 걸친 옷도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 다녀오마.”
연우강을 가만히 쳐다보던 두작군은 다섯 명을 데리고 백용퇴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두작군 일행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시선을 돌려 잠룡 십 조를 보았다.
오십여 명의 단철도문 무인들이 잠룡 십 조가 구축한 진형 중앙을 향해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연우강은 오른발을 번쩍 들어올려 강하게 굴렀다.
쿠웅!
땅속 저 깊은 속에서 무엇인가 터져 나가는 듯한 울림이 들려왔다.
“ 산! 합!”
바로 그 순간 이철상 또한 우렁찬 외침을 토해냈다.
이철상의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룡들은 거리를 벌리며 중앙을 비웠다.
척! 척척! 척척!
단철도문 무인 오십여 명은 일제히 빈 공간으로 내려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푸악! 파악! 푸아악!
바닥으로부터 가공할 기운이 솟아 나와 단철도문 무인들을 덮쳤다.
“ 크악!”
“ 아악!”
“ 아, 암습이다!”
“ 우-! 하! 우-! 하!”
암습이란 말이 떨어지가가 무섭게 짐승의 포효 같은 함성과 함께 물러났던 잠룡들이 들이닥쳤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기세 좋게 내려서 잠룡 십 조를 공격하려는 순간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기운은 단철도문 무인들을 혼란케 하였고, 초를 다투는 무인들의 싸움에서 잠시 멈칫거림은 곧 죽음이었다.
잠룡들의 무기와 방패는 무자비하게 단철도문 무인들을 휩쓸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잠룡들의 무기를 막아낼 겨를도 없었다. 중앙으로 뛰어들었던 단철도문 무인 오십 명은 도조차 휘둘러보지 못하고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 확살하라!”
이철상은 고함을 내지르며 앞에 쓰러져 있는 자의 머리를 향해 검을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창창창!
콰콰쾅!
“ 크악!”
“ 아악!”
“ 으아악!”
안쪽에 있던 중군이 확인사살을 하는 순간 외부에서도 강한 충돌과 함께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 감사합니다. 광랑.]
이철상은 척응계 일행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연우강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 그렇게 하면 된다, 교랑.]
연우강은 전음을 보내며 걸음을 옮겼다.
“ 뭐냐 그건?”
이자승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뭐가 말입니까?”
“ 조금 전 그거 말이다.”
“ 지뢰라는 놈입니다.”
“ 지뢰?”
“ 지금은 싸움에 더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영감님.”
어느새 일행은 척응계 일행과 십여 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 저것들을 가지고 싸움은 무슨 싸움이야.”
이자승은 척응계를 쳐다보며 비아냥댔다.
척응계의 눈초리가 꿈틀 치켜올랐다.
“ 지금은 태황야가 활동하던 때가 아니외다.”
“ 클클클! 그래서 저 통나무들을 자신 있게 내놓은 거더냐?”
이자승은 피식거리며 척응계 좌우로 늘어서 있는 무영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도 보자마자 반말을 해대면 기분이 나쁘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자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각 세력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 늙어 힘도 없는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이자승.”
홍암 허증광이 이자승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 지금 나보고 하는 소리더냐?”
이자승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미 용황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듯 그의 옷 사이로 금광이 살짝살짝 스며 나왔다.
“ 그럼 이곳에서 이자승이란 이름을 가진 늙은이가 네놈 말고 또 있다더냐?”
“ 허허허! 오늘 자승이 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나. 어이! 젊은 녀석아, 이자승에게 반말을 찍찍 갈겨대는 네 얼굴 좀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느냐?”
욱일승은 허증광을 보며 껄껄 웃었다.
“ 너도 마찬가지다 욱일승. 넌 지옥에서 계속 처박혀 있어야 했다.”
“ 킬킬킬! 그러게 애들하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잖아, 자식들아. 공연히 나서가지고 본전도 못 찾았잖아.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하는 게 상책이라고.”
이자승과 욱일승을 보며 낄낄대던 수천월이 연우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나보고 해결하라고?”
“ 어투는 연 공자가 최강 아닌가?”
“ 어투?”
“ 말싸움 말이네.”
“ 인사는 대충 했으니까 그만 시작하지 뭐.”
연우강은 어깨를 으쓱했다.
“ 그럼 먼저 시작하게.”
“ 오륜에 보면 장유유서가 있다고 하던데.”
“ 늙은 우리를 부려먹을 참인가?”
“ 그것도 그렇네.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할 테니까 천천히 따라들 와!”
연우강은 시선을 돌려 허증광을 보았다.
“ 넌 큰 실수한 거야, 복면.”
연우강은 손가락을 허증광을 가리키고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쿵쿵쿵! 쿵쿵쿵!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울림이 들려왔다.
“ 오너라!”
허증광은 양손에 전 내력을 집중했다.
그가 경계하고 있는 자들은 연우강이 아니라 그 뒤를 따라올 이자승과 욱일승 일행이었다. 먼저 연우강에게 일장을 펼친 다음 곧바로 뒤따라올 이자승에게 한 방 먹일 참이었다.
그의 양손에 금광이 은은하게 어렸다. 그의 성명절기인 대금강파권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파악!
허증광과 오 장 거리를 남겨두고 연우강은 바닥을 바차고 날아올랐다.
“ 미친놈!”
허증광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상대방은 가만있는데 달려오던 자가 느닷없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은 뒷사람에게 공격을 맡기는 허허실실 전술의 하나다. 하지만 허허실실 전법은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처럼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그런 수법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으니 비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쿠쿠쿵!
‘ 헉!’
바로 그때 발 아래쪽에서 섬뜩한 기운이 감지됐다.
허증광은 반사적으로 양손을 아래쪽으로 쳐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푸악!
허증광이 허공으로 몸을 피하는 순간 아래쪽에서 모래 더미가 솟아올랐다.
“ 미친 놈은 내가 아니라 너야, 복면.”
앞쪽에서 비아냥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허증광은 고개를 들었다.
“ 허억!”
바로 앞에 서 있는 연우강을 발견한 허증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연우강의 손은 엉덩이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묵사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대금강파권을 발출하면서 곧바로 솟구쳐 오른 상태라 내력을 다시 끌어 모을 여력이 없었다.
허증광은 급하게 내력을 돌렸다.
스르릉!
양손이 채 금광으로 물들기도 전에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검은 광채가 허공을 갈랐다.
“ 크아악!”
일검에 허리가 잘려나간 허증광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 쳐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척응계는 질겁한 얼굴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푸악! 푸악! 푸악! 푸악!
수십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모래가 솟구쳐 오르고, 같은 수의 무영들이 아래쪽으로 무공을 쏟아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 클클클!”
“ 킬킬킬!”
“ 허허허!”
모래 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허공을 향해 욱일승 일행은 진득한 살기가 어린 웃음을 토해내며 목표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 이 태황야 이자승을 감히 늙어 힘이 없는 놈이라고 했으렷다.”
두 명의 무영을 없앤 이자승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양손을 연거푸 휘둘렀다. 일천파류흔이 녹아들어 간 황룡파천신권은 가공했다. 그의 몸 주변은 온통 금색의 용으로 가득했다. 그것들은 약간의 허점만 보이면 곧바로 무영들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 커억!”
“ 크윽!”
“ 아악!”
그가 움직이는 곳에서는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노인들 중 무영들을 가장 많이 없앤 사람은 이자승이었다. 욱일승이나 수천월보다 무공이 강해서가 아니라 급한 성격 탓이었다.
“ 이자승!”
이자승의 활약에 질겁한 척응계는 그를 멈추게 하려고 내공을 잔뜩 실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이자승에게 척응계의 외침이 들릴 리가 없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무영들을 향해 살수를 전개했다.
“ 나와 붙어보자, 이자승, 네 상대는 여기 있다.”
척응계는 이자승을 향해 몸을 날리며 재차 소리쳤다.
스악!
하지만 그는 금세 멈출 수밖에 없었다
느닷없이 검은 광채 하나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연우강이었다.
“ 넌 내 거야, 자식아.”
연우강은 척응계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