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91화 (91/232)

제 9장 사망혈삭

“ 건방진 놈, 감히 잠룡 주제에.”

척응계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척응계는 연우강이 허증광을 없애는 광경을 보았기에 일초부터 전력을 다했다. 단월도라고 불리는 그의 도가 크게 반원을 그리자 도의 날 부분에서 반월 형태의 강기가 쏘아져 나갔다. 단월참마도법의 삼 초인 단월탄이었다.

“ 넌 무영이겠지?”

연우강은 묵사를 휘둘러 반월 형태의 탄강을 막아내며 물었다.

“ 맞다, 놈. 난 무영 서열 삼위에 올라 있다. 차앗!”

척응계는 번쩍 들어 올린 단월도를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쓰쓰쓰! 쓰쓰쓰!

마치 거미줄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단월도는 반월 형태의 탄강을 쉬지 않고 뿜어냈다. 십여 개로 늘어난 탄강은 연우강의 전면을 가득 채우며 쏘아져 갔다. 단월참마도법 사 초인 단월탄파였다.

연우강 또한 날아오는 탄강들을 보며 묵사를 번쩍 들어올린 상태였다.

“ 나도 휘두르는 건 자신이 있어. 우-! 하!”

잠룡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이한 고함을 내지른 연우강은 들어 올렸던 묵사를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스악!

묵사에서 튀어나온 검은 광채에 전면 대기가 쩍 갈라졌다.

콰콰쾅!

검은 기운과 새하얀 달빛을 뿜어내는 탄강이 부딪치면서 광포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쿵쿵쿵!

“ 읏!”

뒤로 세 걸음 물러난 척응계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차앗!”

척응계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듯하자, 이자승 일행은 공격하려고 몸을 날렸던 무영 한 명이 방향을 바꿔 연우강의 등을 향해 찔러갔다.

“ 타앗!”

바로 그 순간, 척응계는 지면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새하얀 광채가 달무리처럼 단월도를 감싸고, 그 달무리는 곧 잘게 부서지는 듯하더니 연우강을 향해 쏘아져 갔다.

콰앙!

연우강은 오른발을 강하게 굴러 바닥을 찼다

휙!

그러자 깜짝 놀랄 광경이 일어났다.

재주를 넘는 것 같더니 허공에 물구나무를 선 자세가 됐다.

뒤에서 공격하던 무영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연우강의 왼손에서 검은 광채가 번쩍 빛을 발했다.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사망지환으로 펼치는 일지소였다.

“ 컥!”

검은 광채가 정수리를 파고들어 가자 연우강을 공격했던 무영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무영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가는 바로 그 순간 거꾸로 서 있던 연우강의 신형이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그는 자세를 바로하며 이미 절명한 무영의 등을 사정없이 찼다. 머리에 중심을 두고 물구나무를 서고, 일지소를 펼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서 무영의 등을 차고, 무려 세 동작이 이어졌지만 그의 움직임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영을 차댐과 동시에 시체를 쫓아 몸을 날리고 있었다.

퍽퍽퍽! 퍽퍽!

새하얀 달빛 광채를 뿜어내는 탄강은 이미 죽은 자의 몸을 유린했다.

“ 차앗!”

자신의 탄강이 동료의 몸을 유린했다고 해서 멈칫거릴 새가 없었다. 척응계는 바닥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시체와 함께 빠르게 다가오는 연우강의 공격을 피하고 재차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 이번이 마지막이야, 척응계.”

연우강은 곧바로 척응계를 따라 몸을 날렸다. 손에 들린 묵사의 끝에서 일 장 길이의 검강이 쭉 튀어나왔다.

막 단월도를 휘두르려던 척응계의 눈이 번쩍 광채를 발했다.

‘ 단월탄난이면 놈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놈 또한 검강을 펼친 채 솟구쳐 오르는 중이고 놈의 몸에 탄강을 박아 넣는다고 해도 자신 또한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부상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친 듯이 살수를 펼치고 있는 이자승이 있고, 그에 버금가는 욱일승 일행이 있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

‘ 맞다, 내공이다.’

그는 급하게 도를 내려 묵사를 막았다.

차앙!

도와 검이 얽히며 무형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척응계는 무기가 얽히자마자 전 내공을 도에 밀어넣어 도강을 만들어냈다. 그의 도 끝에서 솟구친 도강 또한 묵사에서 솟구친 도강처럼 일 장 길이에 달했다.

“ 조금 전에 보니까 한 번에 나아가는 거리가 오 장에 불과하더구나.”

척응계는 단월도에 내공을 쏟아부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가 내공 대결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 광경 때문이었다. 무인이면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는 경공은 때로는 많은 정보를 준다. 한 번에 삼 장 정도를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삼류, 오 장 정도를 날아갈 수 있는 자들은 이류, 일류는 십 장 이상을 날아가는 자를 말한다. 그런데 연우강은 오 장 가량을 날아 허증광을 공격했던 것이다. 만일 허증광이 부지불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지 않았다면 그렇듯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척응계는 확신했다.

“ 무영 서열 이위는 누구지?”

연우강은 힘든 것처럼 볼을 잔뜩 부풀려 피가 쏠리도록 했다.

“ 담대천호 성주다.”

그런 연우강의 모습에 승리를 확신한 척응계는 흡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럼 일위는?”

“ 일 위는 공석이다.”

“ 그랬군.”

“ 묵사패를 용환의 품속에 넣어두었던 자가 너더냐?”

척응계는 연우강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녀석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시뻘게져 있다. 지금 상태로 가면 일 각이 채 지가지 않아 내공 대결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맞아, 내가 집어넣었어.”

“ 욱일승에게 묵사패가 있었더냐?”

“ 욱일승?”

연우강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럼 다른 사람이더냐?”

연우강이 의외라는 얼굴을 하자 척응계는 다시 물었다. 묵사패를 발견한 날 그 자리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영들은 연우강이 묵사패의 주인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척응계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 그건 내 거야.”

“ 네 거라고?”

“ 내가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이거든.”

“ 유산?”

척응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유산이면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말한다.

“ 정말 유산이란 말이냐?”

척응계는 확인하듯 물었다.

“ 맞아. 남들은 보통 재산을 물려주는데 우리 아버지는 딸랑 그거 하나 물려줬어. 아! 그것 말고 또 하나 있었지. 그 묵사패와 함께 서찰도 한 장 남겼는데 거기엔 아비 노릇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

“ 서, 설마 네 아비가 주선엽이란 말이냐?”

척응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진정해, 척응계, 흥분하면 내공이 흩트려지잖아.”

“ 헛!”

척응계는 깜짝 놀랐다.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힘을 풀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급하게 내공을 다시 주입했다. 희미해졌던 단월도에 다시 새하얀 광채가 어리며 도강이 쭉 튀어나왔다.

“ 이제 주변을 좀 구경해보자고.”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잠룡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잠룡들의 진형은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죽어 가는 자들은 전부 단철도문 문도들이었다.

“ 산!”

단철도문 문도들의 공격이 느슨해진 듯, 흩어져 공격하라는 이철상의 외침이 들려왔다.

“ 우-!” “ 하!”  창! 창창창! 창창!

“ 크악!”

“ 아악!”

“ 으아악!”

“ 저럴 수가!”

척응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잠룡들은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단철도문 문도들을 도륙하고 있다. 구축하고 있는 진형만 무너뜨리면 쉽게 깨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잠룡 개개인의 무공 또한 단철도문 문도들보다 훨씬 강했다.

“ 저쪽은 끝났으니까 이번엔 노인네들을 보자고.”

연우강은 턱으로 왼편을 가리켰다.

척응계는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영들마저 패하면 내공대결에서 이긴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쪽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무영들 대부분은 목이 잘린 채 죽어 있고, 남은 자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 내가 이긴 거 맞지?”

“ 아니다. 놈. 승자는 저들이지 넌 아니다! 넌 내 손에 죽는다, 연우강!”

척응계는 전 내공을 단월도에 쏟아 부었다.

이제는 놈들을 없애는 것보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더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놈을 없애고 몸을 피해야 할 터였다.

우우웅!

내공을 힘껏 머금은 단월도가 비명을 토해냈다.

“ 장송곡이네.”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척응계를 빤히 쳐다보았다.

“ .......?”

척응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만 해도 시뻘게진 얼굴로 힘겨워 하던 놈이 지금은 내공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태연하다.

“ 눈에 보인다고 다 진실은 아냐, 척응계.”

“ 설마 그동안 우릴 속이고 있었단 말이냐?”

척응계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 난 누굴 속이거나 한 적은 없어. 나와 싸웠던 놈들은 전부 내가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문제는......”

촤르륵!

연우강의 오른손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사망묵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살기를 뿌리며 사망묵환은 천천히 척응계의 얼굴을 향해 나아갔다.

“ 이, 이건?”

척응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손목에 또 다른 무기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아니 내공 대결을 펼치고 있는 도중에 다른 무기를 사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대방보다 몇 배 이상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맙소사.”

연우강을 보는 척응계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문득 지금껏 자신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칠보귀둔필사, 흑철마신 그리고 천무비고나 승천비고에서 얻었을 잡다한 무공.

놈에게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 나를 제대로 아는 놈들은 다 죽었다는 거야, 척응계. 바로 너처럼!”

촤르륵!

갑자기 사망묵환이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지며 척응계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 커억!”

척응계의 입에서 피 화살이 뿜어져 나와 연우강 얼굴로 쏘아져갔다. 하지만 투명한 막에 막혀 피 화살은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단월도가 힘을 잃고 떨어지고, 척응계의 눈에서 광채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동체가 지면으로 뚝 떨어졌다.

“ 난 더러운 건 질색이야, 척응계.”

촤르르!

연우강은 사망묵환을 거둬들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 이제 남은 놈들만 정리하면......”

“ 커억!”

“ 크윽!”

막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비명이 들려온 곳은 두작군 일행이 간 곳이었다.

“ 캬아아!”

이번엔 짐승의 포효 같은 광포한 외침이 들려왔다.

“ 이건?”

연우강의 얼굴이 더욱 의아하게 변했다.

단도철문, 무쌍검문, 그리고 무영들까지.

보낸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패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잠룡 십 조 조원들이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흔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승자는 잠룡 십 조가 아니라 단도철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모래벌판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포효는 또 다른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캬아아!”

“ 크아악!”

“ 아악!”

“ 젠장!”

연우강은 비명이 들러오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얼굴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짐승의 그것같은 포효 속에는 인간의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인간이면서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한 부류밖에 없을 테다. 전에 지옥에서 싸웠던 풍천마인들과 비슷한 부류의 실혼인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잠룡들도 그런 기색을 감지한 듯 더욱 동작이 빨라졌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단도철문 무인들을 몰아치며 연우강을 따랐다.

“ 같이 가자!”

이자승 일행 또한 다르지 않았다.

무영들을 전부 없앤 그들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일행은 백여 장 떨어진 자갈 사막에 당도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었다.

서른 명 정도 돼 보이는 그들은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빠름에 비해 움직임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두작군을 비롯한 세 명은 빠르게 움직이며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 타앗!”

적풍파랑 세빈의 검이 검은 옷을 걸친 자의 목을 향해 날았다. 검 면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오는 걸 보면 전력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까앙!

눈을 의심해야 할 광경이었다.

강기가 어린 검으로 목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검은 옷을 걸친 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세빈의 가슴을 향해 오른손을 찔러 넣었다.

“ 제기랄!”

세빈은 급하게 왼손을 들어 올려 검은 옷 사내의 손을 막았다.

퍼억!

우두둑!

“ 크아악!”

둔탁한 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이어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세빈의 신형이 뒤편으로 훨훨 날았다.

휙!

근처에 있떤 갈인효가 몸을 날려 가랑잎처럼 날아가는 세빈을 받아 안았다.

“ 팔이 부러지고 갈비뼈도 나갔네.”

세빈을 살피던 갈인효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연우강은 검은 옷을 걸친 사내들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 글쎄다, 움직임을 보면 강시처럼 보이진 않는데.....”

이자승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기가 어린 검에도 잘리지 않는다면 금강불괴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금강불괴지신에 달한 무인들치고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그런 종류는 대법과 약물로 제조하는 강시들밖에 없는데, 부자연스럽다고 해도 모든 관절ㅇ리 부드럽게 움직이는 걸 보면 강시라고 할 수도 없다.

어떤 존재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 네 생각은 어떠냐?”

이자승은 욱일승을 보며 물었다.

“ 회혼마인이 아닐까?”

지옥에 있을 때 풍천마인을 접한 경험 때문인 듯 욱일승은 비교적 쉽게 정체를 파악해냈다. 하지만 말을 해놓고도 확신하지는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 저것들이 천마가 만들어낸 최강의 병기인 천마삼강의 하나란 말이냐?”

이자승은 놀란 얼굴로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을 보며 물었다.

“ 풍천마인이 나타났는데 회혼마인이라고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 천마삼강은 또 뭡니까?”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천마가 만든 최악의 병기를 말한다. 전에 네가 지옥에서 겪었다는 바람 인간인 풍천마인과 인간과 강시의 중간이라는 회혼마인,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존재인지 알려져 있지 않는 천년마인을 합쳐 천마삼강이라고 부른다.”

“ 그러니까 저것들이 회혼마인이란 말입니까?”

연우강은 검은 옷을 검친 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더는 견디기 힘들 듯, 두작군도 이편을 향해 도망쳐 오고 있었다.

“ 말도 마라, 저것들은 불사신이다.”

연우강 옆으로 날아 내린 두작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안 죽는거야?”

“ 검을 잡아먹는 놈들이다.”

“ 검을 잡아먹는다는 건 무슨 소리야?”

“ 살 속으로 검이 파고들어 가면, 놈들의 근육이 검을 물고 놓질 않아. 간신히 빼낸다 해도 상처는 가공할 속도로 아물어 버리고.”

“ 본인이 약하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은 모양이지?”

“ 하긴 네 녀석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직접 경험해 봐라.”

두작군은 연우강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차고는 뒤편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 그랬단 말이지.”

연우강은 오른편에 있는 잠룡들을 보았다.

“ 저희들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광랑.”

“ 좋아, 가자.”

연우강의 신형이 빠르게 나아갔다.

바로 그 순간, 전면 어디에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 캬아아!”

“ 크아아!”

피리 소리가 들려오자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느닷없이 광포한 기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여, 연. 우. 가. 앙!”

이어 더듬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연우강을 부르며 몸을 날렸다.

“ 연 공자는 좋은 친구들이 많네요?”

수여설은 연우강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오늘 처음 보는 녀석들입니다.”

“ 저들을 연 공자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 원래 유명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친구가 많은 법입니다. 두 영감.”

싱긋 미솔르 머금은 연우강은 두작군을 불렀다.

“ 왜?”

“ 방금 피리 분 놈을 잡아와야지.”

“ 또 나보고 가라고?”

“ 오늘 밥값을 못한 사람은 두 영감밖에 없어.”

“ 밥값?”

“ 잠룡들은 사백 명이나 되는 무인들과 싸워 이겼고, 노인네들은 서른 명의 무영들과 싸웠거든.”

“ 날 이곳으로 보낸 놈은 너야, 자식아.”

“ 그러니까 밥값을 하라는 거잖아. 가서 잡아 와.”

“ 생포해야 하는 거냐?”

“ 난 저녀석들이 날 친구로 여기는 이유를 알고 싶어, 영감.”

“ 알았다, 자식아. 갑시다 형님.”

두작군은 욱일승을 보았다.

“ 난 저놈들이 더 궁금하네, 동생.”

“ 피리 분 놈을 잡으면 저절로 알게 될 건데 뭐가 궁금합니까, 얼른 따라오시오.”

“ 나도 밥값 좀 해야겠습니다.”

뒤에 있던 탈라하가 두작군을 따라 나섰다.

“ 끄응!”

욱일승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두작군이 가고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몸을 날리는 사이 연우강을 비롯한 잠룡들은 회혼마인이라는 괴물들 앞에 당도해 있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사람은 장사덕과 이철상이었다.

“ 캬캬캬캬!”

“ 크크크!”

두 사람이 다가서자 회혼마인들은 괴소를 토해내며 몸을 날렸다.

“ 차앗!”

“ 타앗!”

장사덕의 오른손에서 염왕수가 쏘아져 나오고 이철상의 검에서는 황혼처럼 붉은 기운이 솟아 나와 회혼마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퍼억!

스악!

장사덕 앞에 있던 회혼마인의 가슴에 커다란 장인이 생겨났고, 이철상 앞에 있던 회혼마인은 가슴이 쩍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회혼마인들은 공격받은 사실을 모르는 듯 장사덕과 이철상을 향해 그대로 손을 뻗어냈다. 장력을 뻗어낸 손과 휘두른 검을 거둬들이는, 절묘한 순간에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 엄마?”

“ 억!”

두 사람은 질겁한 얼굴로 왼팔에 차고 있던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퍼억!

파악!

“ 크윽!”

“ 윽!”

방패를 타고 엄청난 암경이 밀려들어오자 두 사람은 낮게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휙! 휙!

하지만 회혼마인의 움직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들은 비호처럼 두 사람에게 달려들며 재차 양손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회혼마인이 뻗어내는 암경은 단순한 장력이 아니라 권강이었다. 두 사람은 감히 받아치지 못하고 철판교 수법으로 몸을 뉘었다.

두 사람이 몸을 뉘는 순가 회혼마인들은 검은 발을 들어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 굴러!”

장사덕과 이철상은 멍석을 마는 것처럼 왼편으로 몸을 굴렸다.

“ 차앗!”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함성과 함께 새하얀 광채가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은 수여설이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쏘아진 새하얀 광채가 회혼마인의 가슴에 격중했다.

쩌엉! 쩌엉!

회혼마인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 별것도 아닌 놈들이!”

몸을 구르던 장사덕은 손을 탈탈 털며 일어났다.

“ 크아아!”

바로 그 순간, 진득한 살기가 어린 포효와 함께 회혼마인의 주먹이 장사덕의 가슴으로 쏘아졌다.

“ 헉!”

장사덕은 질겁한 얼굴로 왼손을 들어 올렸다.

콰앙!

“ 크윽!”

둔탁한 소성에 이어 장사덕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사자신권 사후린이 몸을 나려 장사덕을 안아들었다.

“ 팔이 부러졌습니다. 광랑.”

사후린의 목소리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잠룡들 중에 가장 강한 자를 꼽으라면 연우강이고 그 다음이 수여설이다. 그런데 그녀의 빙하빙백강을 맨 몸으로 받아낸 존재가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우가의 놀람은 그들보다 더했다.

지금 수여설의 무공은 빙하빙백강만 있는 게 아니다. 백옥수를 익혀 과거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가 아닌가.

그런 그녀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존재가 있을 거라곤느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얼마나 힘을 쓴 겁니까?”

“ 육 성의 내력을 사용했어요.”

“ 이번엔 내가 시험해 보겠다.”

옆에 있던 이자승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 저놈들 정말 회혼마인이 맞는 모양이에요.”

연우강은 이자승을 지켜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죠?”

수여설은 연우강을 돌아보았다.

“ 천마가 익힌 내공이 뭐라고 했죠?”

“ 천마불사신공이요.”

“ 특징은 뭐죠?”

“ 목이 잘리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다고 했고, 엄청난 재생력으로 웬만한 부상은 순식간에 아문다고......”

수여설은 말을 멈추고 회혼마인을 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 불사의 신체, 회혼마인은 천마불사신공의 특징을 고수란히 지니고 있었다.

“ 차앗!”

바로 그 순간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이자승의 손에서 금룡이 쏘아져 나갔다. 금룡은 한순간에 공간을 건너뛰며 회혼마인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금룡을 무기 삼아 펼치는 이기어강이었다.

앞에 있던 회혼마인의 가슴에 구멍을 낸 금룡은 계속 날아가며 다른 회혼마인의 가슴에도 팔뚝 두께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연거푸 다섯 구의 가슴에 구멍을 뚫은 금룡은 힘을 다한 듯 픽 꺼졌다.

“ 크아아!”

다섯 구의 회혼마인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꼬았다.

“ 맙소사.”

회혼마인을 지켜보던 이자승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뻥 뚫렸던 구멍 가장자리에서 지렁이처럼 생긴 것들이 꾸물꿈ㄹ 기어 나오더니 이내 구멍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놀랍게도 뻥 뚫린 구멍이 재생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 천마불사신공.”

이자승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천마가 왜 전설이 됐는지 비로소 알 듯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무인이었다.

창! 창창! 창창창!

“ 크아아!”

“ 키키키!”

“ 크크크”

이자승의 공격을 받자 잔뜩 독이 오른 듯 연우강을 향해 다가오던 회혼마인들이 잠룡과 노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천마삼강 중의 하나가 천년마인이라고 하였습니까?”

연우강은 이자승을 보며 물었다.

“ 그랬다.”

“ 만일 말입니다. 저 회혼마인들이 천년마인을 만들어 내기 전의 시험적으로 만든 것들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무슨 소리냐?”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천마불사신공을 익혀 영세오천과 싸워도 밀리지 않았던 자가, 굳이 저런 마물을 만들어낼 이유가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인가은 수명이 전부 다른데, 일백마를 위해 한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도 그렇고.....”

“ 설마 천년마인이 천마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 그럴 리는 없겠죠?”

“ 천마 제강석은 천오백 년 전에 살았던 사라이다 녀석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무인들 틈바구니에 섞여 살다보니 제가 미쳐버린 모양입니다. 하지만,....”

“ 하지만 뭐?”

“ 갑자기 제 무기들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 네 무기들이 왜?”

“ 제게 총 백육십 한 개의 암기가 있는데, 그것들 중 두 개는 암기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입니다.”

“ 어떤 걸 말하는 거냐?”

“ 여기 손목에 차고 있는 사망묵환하고 허리춤에 있는 사망혈삭입니다. 하지만 사망묵환은 검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망혈삭에는 왜 죽을 달아놨는지 이해를 못 했거든요.”

“ 사망혈삭은 뭘 말하는 거냐?”

“ 뇌섬을 아십니까?”

“ 무림에 존재하는 암기 중에 최강의 암기를 일컫는다는 말을 들었다.”   “ 바로 이겁니다. 영감님.”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뇌섬을 꺼내 보여주었다.

“ 단순하구나.”

“ 원래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게 더 좋은 겁니다. 영감님.”

“ 광랑!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앞쪽에서 회혼마인을 막고 있던 이철상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 좀더 견뎌 봐. 인마. 불사의 신체를 지닌 놈들하고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잖아.”

“ 이러다 정말 죽겠단 말입니다.”

“ 자식 엄살은......”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사망혈삭을 길게 뽑아냈다.

“ 마라천력을 사용하는데 굳이 줄이 있을 필요가 있냐는 말이지요?”

듣고 있던 수여설이 물었다.

“ 그렇습니다. 수 소저. 제가 익힌 흑풍마라천력은 백육십 한 개의 암기를 동시에 날리고 고정할 수 있는 내공심법입니다. 그런데 이놈은 이렇게 줄이 달려 있습니다. 사실 이 줄은 바위를 슥슥 잘라내는 무서운 무기거든요.”

“ 그 줄을 달아놓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인가요?”

“ 네, 그래서 전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보았지만 이 줄을 써먹을 데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어떻게 사용하는 지 그 방법은 알게 됐죠.”

“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는 거죠?”

철컥!

연우강은 사망낭조 날을 세워 수여설 눈앞으로 내밀었다.

“ 홈이 있네요?”

“ 바로 그겁니다. 수 소저. 이 줄을 홈에 몇 번 돌려 감게 되면 줄 형태의 무기가 생겨나는 겁니다.”

연우강은 양쪽 홈에 사망혈삭의 줄을 감았다. 그러고는 양쪽으로 가볍게 당겨보았다.

차앙!

사망혈삭이 파르르 떨며 악기의 현을 가볍게 튕겼을 때 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수여설과 이자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싸늘한 살기를 머금은 기운이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 것이었다.

“ 회혼마인을 상대하는 무기라는 거군요.”

“ 맞습니다. 수소저. 보통 무인들이 저놈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기어검술에 버금가는 강한 힘으로 머리를 가루로 만들거나, 아니면 강기를 이용해서 목을 잘라내야 합니다. 하지만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기어검술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무인이 있어야 하고, 강기로 자르는 것 또한 쉽지가 않습니다. 검처럼 면이 넓은 무기는 놈들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가면 곧 천마불사신공으로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근육에 막혀버리기 때문이죠.”

“ 천마불사신공을 익힌 자들을 쉽게 상대하는 무기는 사망혈삭밖에 없다는 말이 되네요.”

“ 천마불사신공의 천적은 단면이 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검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가립하 영감이 굳이 필요도 없는 이걸 만든 이유는 바로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파악!

연우강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날았다.

먼저 그의 신형이 날아간 곳은 이철상이 방어하고 있는 회혼마인 앞이었다. 연우강이 불쑥 들어오자 회혼마인은 오른손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회혼마인의 손이 앞으로 나오는 순간 연우강의 양손이 빠르게 엇갈렸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새 사망혈삭은 회혼마인의 팔목에 감겨 있었다.

“ 이제 시험을 해보자고.”

연우강은 차갑게 웃으며 양손을 쭉 당겼다.

서걱!

놀라운 일이었다. 검으로 내리쳐도 잘라지지 않던 회혼마인의 팔이 두부를 잘라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 크아아!”

팔이 잘린 회혼마인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은 회혼마인 오르편으로 접근하여 목에 사망혈삭을 감았다.

그리고 양쪽으로 사정없이 당겨버렸다.

서걱!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사망혈삭은 너무도 쉽게 회혼마인의 목을 가르고 나왔다. 사망혈삭이 목을 자르고 빠져나오는 순간 연우강은 발을 슬쩍 굴렀다.

툭!

회혼마인의 머리가 힘없이 굴러 떨어졌다.

“ 쉽지?”

연우강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이철상을 보며 슬쩍 웃어주고는 다른 회혼마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이건 거짓말이야.”

이철상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회혼마인 곁으로 다가간 연우강은 손을 뻗어내면 손을 자르고, 다리를 내뻗으면 다리를 잘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목을 잘라 회혼마인을 없애나갔다.

“ 천적이 맞네.”

연우강을 따라다니던 수여설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마불사신공의 천적이라고 하였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단순한 줄 하나에 회혼마인들은 전멸을 당하고 있었다.

“ 힘들게 공격하지 말고 방어만 해.”

연우강은 잠룡들에게 소리치며 회혼마인들을 없애 나갔다. 그렇게 일 각 정도가 흐르자 더는 서 있는 회혼마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 너무해요, 광랑.”

남궁운화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볼멘소리를 했다.

“ 이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궁 소저. 다만 그 약점을 찾아내기 어려울 뿐이지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려 신도영을 보았다. 신도영은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땀이었다.

“ 아직도 방패가 필요없다고 생각해?”

“ 아닙니다. 광랑. 이놈 때문에 목숨을 여러번 건졌습니다.”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방패를 사용한다는 걸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었다. 방패는 최고의 무기이자 방어구였다.

오히려 검보다 방패로 죽인 적이 더 많을 정도였다.

“ 난 백육십 개가 넘는 암기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그걸 부끄럽다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적을 없애는 데 화려한 무기도 필요없고, 멋을 부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정확하게 적을 죽이는 놈이 바로 최고의 무기다.”

“ 명심하겠습니다. 광랑.”

“ 좋다. 지금부터 이놈들을 조금 전 없앴던 무상검문과 단철도문 놈들과 뒤섞어 묻어라. 그런 다음 낙타에 있는 물로 세안을 하고 피를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어라.”

“ 전혀 싸우지 않은 것처럼 꾸미란 말입니까?”

“ 믿거나 말거나 그렇게 하고 간다.”

“ 알겠습니다. 광랑!”

잠룡들은 일제히 소리치며 사방에 흩어져 있는 회혼마인의 시체를 주워 조금 전 싸웠던 곳으로 옮겨 묻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두작군 일행이 돌아왔다. 두작군의 손에는 축 늘어진 중년인이 들려 있었다.

“ 죽은 거야?”

“ 도망치는 바람에 죽일 수밖에 없었다.”

두작군은 사내를 내려놓았다.

“ 잡랑.”

연우강은 장사덕을 불렀다.

“ 만경소 누담생 같습니다.”

“ 만경소 누담생이면 무궐 무인 아냐?”

“ 맞습니다. 무궐 궐주 공손정우의 최 측근 중의 한 명입니다.”

“ 무궐이라.....”

연우강은 중얼거리며 누담생의 품을 뒤졌다.

“ 없는데?”

한참을 뒤지던 연우강은 허리를 펴며 두작군을 보았다.

“ 뭘 찾는지 모르지만 난 훔치지 않았다.”

두작군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양손을 활짝 펴 보였다.

“ 날 잡으러 온 놈이면 무성패가 있어야 하거든.”

“ 이놈도 무영이란 말이냐?”

“ 무영이 아니면 날 죽이러 올 이유가 없잖아.”

“ 그가 무영이라면 척응계와 함께 나와야 하지 않나요?”

듣고 있던 수여설이 의문을 제기했다.

“ 하지만 회혼마인들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말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은 저라는 뜻이잖습니까?”

“ 원래 나쁜 짓을 많이 한 놈은 자신도 모르는 원수가 많은 법이다.”

비아냥대는 듯한 어투지만 두작군의 얼굴에도 의아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바로 그거네.”

연우강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 이유를 알았다는 말이냐?”

“ 짐작가는 놈이, 아니 사건이 있어.”

“ 뭔데?”

두작군은 궁금한 얼굴로 숨을 죽였다.

“ 그 전에 한 가지 질문.”

“ 해 봐라.”

“ 만일 두 영감이 무명 때, 그러니까 이름이 없을 때 해서는 안 되는 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해보자고.”

“ 그래서?”

“ 그렇게 해서 승승장구 성공했다고 해. 그런데 수십 년 전에 저질렀던 그 사건을 다시 거론하는 자가 있다면 영감은 어떻게 할 거야?”

“ 그 사건이 드러나면 어떻게 되는데?”

“ 명예에 흠이 갈 테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 문제가 될 거야.”

“ 그렇다면...... 살인멸구를 해야겠지.”

“ 내가 두 영감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솔직함 때문이야.”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다시 손뼉을 쳤다.  < 제 9권 끝>

황금백수 10 권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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