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정보전
유재풍은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연우강을 꼽는다. 일 년 전 검지곡에서 우연히 연우강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가 상부의 눈에 띄어 그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몇 건의 보고서를 올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생쥐 박멸 작전’에서 드디어, 오십 명의 부하를 거느린 조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조장으로 승진한 유재풍을 비롯한 임조 오십 명에게 할당된 장소는 돈황 중심부에 위치한 환락가였다. 이틀 전에 이곳에 도착한 유재풍 일행은 하오밀문 지부의 위치를 파악한 후 감숙성 안가로 소식을 전한 다음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부하들에게 다음 날 아침까지 자유시간을 준 유재풍은 처마 밑을 색색의 등으로 치장한 팔색조란 현판이 걸린 화려한 유곽으로 들어갔다.
“ 멋진 곳이네.”
안쪽의 화려함은 외부에 걸린 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역에서만 난다는 양탄자부터 시작하여 화려한 광채를 뿌리는 유리 등잔까지,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공연히 위축되는 것 같아 유재풍은 가슴을 활짝 펴며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
“ 어서 오세요, 대협.”
오른편에서 색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재풍은 고개를 돌렸다.
‘ 으음!’
그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색목인 여자가 불빛 아래 서 있었는데,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옷을 걸친 그녀의 몸매는 숨이 막힐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 하,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
유재풍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 호호호! 물론 그렇게 하셔야지요. 모시겠습니다. 손님. 전 요나입니다.”
자신을 요나라고 소개한 여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상의 앞섶이 벌어지며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유재풍의 시선은 꼼짝없이 요나의 가슴에 붙잡혔다.
“ 가, 가모인가?”
가모는 기녀들의 우두머리로 기관 주인인 경우도 있고 주인에게 고용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요나는 나이로 보건대 고용된 가모 같았다.
“ 그렇습니다. 대협. 그런데 상인?”
요나는 요염한 웃음을 흘렸다.
“ 대야벌에서 왔다.”
건물의 화려함과 더불어 폭발적인 요나의 몸매에 잔뜩 위축된 상태라 그랬는지도 몰랐다. 유재풍은 대야벌에서 나왔다는 말을 저도 모르게 뱉어내고 말았다.
“ 무인이셨군요. 전 무인을 너무 좋아하는데.”
요나는 배시시 웃으며 유재풍을 보았다.
“ 가모가 직접 손님을 받겠단 말인가?”
“ 호호호! 가모가 손님을 받으면 큰일 난답니다. 대협, 저보다 더 멋진 아이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요나는 자연스럽게 거절하며 유재풍을 삼층 객실로 안내했다.
“ 그런데.....”
방안을 둘러보던 유재풍은 말끝을 흐렸다.
화려한 실내와 요나에게 정신이 빠져 비용에 대한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 대야벌에서 나온 분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면 비용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 그걸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
유재풍은 내심 안도하며 물었다.
“ 대야벌의 위세가 워낙 세다 보니까 이곳까지 와서 거짓말을 하는 무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 하하하! 그런 놈들이 있는지 몰랐구나. 그건 걱정 말거라. 난 대야벌 율령궁 소속 무인이니라.”
비용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는 안도 때문인 듯 유재풍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그럼 술상과 함께 요하를 올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해주게.”
“ 그럼.”
요나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 쩝!”
요나의 엉덩이에 시선을 꽂고 있던 유재풍은 입맛을 다시다가 창가로 향했다.
“ 역시 출세란 좋은 거야.”
유재풍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조장 직위에 오르지 못했다면 팔색조같은 이런 최고급 기관으로 들어올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 이제 시작일 뿐이야. 이 유재풍 인생은 이제 시작......”
거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던 유재풍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눈에 익은 복장을 한 자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가만.”
그는 내공을 끌어올려 눈에 집중했다.
검은 삿갓. 검은 옷. 검은 궤짝으로 대변되는 자, 그는 놀랍게도 연우강이었던 것이다.
유재풍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조장보다 한 단계 위를 꿈꾸고 있는 순간에, 녀석이 또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급하게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 대협!”
젊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올라오던 요나는 깜짝 놀라 유재풍을 불렀다.
“ 잠깐 다녀올 테니까 술상 봐놓고 있게.”
“ 어딜 가시는지.....?”
“ 그건 다녀와서 말해주겠네.”
유재풍은 싱긋 웃으며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연우강을 따랐다.
연우강은 유곽과 기관이 늘어선 지역을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갔다. 이윽고 약재를 파는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멈춰 섰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던 연우강은 곤륜천약포란 현판이 걸린 상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상가를 나선 것은 반시진 후였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연우강을 지켜보던 유재풍은 곤륜천약포란 상점으로 들어갔다.
“ 어서 오십시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유재풍을 맞았다.
“ 방금 그자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싶다.”
유재풍은 슬쩍 내공을 흘려 노인을 위협했다.
“ 그, 그분은, 야, 약을 사셨습니다.”
“ 무슨 약이더냐?”
“ 그, 그게......”
“ 죽고 싶은 거냐?”
유재풍은 한 걸음 다가가며 살기를 흘렸다.
“ 애, 앵속 가루를 사 가지고 가셨습니다.”
노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문득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찾아와서 물으면 숨시지 말고 대답해 주라고 하였다. 사실 앵속을 사러 온 청년은 팔 년 만에 나타난 오랜 단골손님이었다. 그 당시 앵속을 가장 많이 팔아준 청년이었는데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앵속 중독으로 폐인이 돼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건강한 얼굴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 앵속?”
유재풍은 의아한 얼굴로 노인을 보았다.
“ 사실 저희 집 단골이었습니다.”
“ 자세히 말해 보거라.”
유재풍은 흥미로운 얼굴로 다그쳤다. 문득 큰 건을 잡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 그러니까.....”
노인은 팔 년 전에 있었던 일부터 솔직하게 말했다. “ 그러니까 그자가 팔 년 전부터 네게 앵속을 사 갔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대협. 아마 이 동네 앵속은 대부분 그 청년이 사갔을 겁니다.”
“ 그리고 조금 전에도 앵속을 사 갔고?”
“ 저희 집에 있던 앵속을 전부 사 갔습니다.”
“ 그랬단 말이지.”
유재풍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술이 취해 노래를 부르며 대야벌로 들어왔던 광경, 벽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던 광경, 똥이 가득 든 분관을 지고 헤죽대는 광경, 건강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광경이 비로소 정리가 되는 듯했다. 특히 특별히 이상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놈이 매일 아침 약을 먹는 이유도 비로소 이해가 됐다.
놈은 앵속쟁이였던 것이다.
“ 수고해라.”
유재풍은 만족스런 얼굴로 곤륜천약포를 떠났다.
약재상 골목을 빠져나와 빠르게 몸을 날려 팔색조에 다시 몸을 들였다. 이미 방안에는 술상과 함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대단한 색목인 미녀가 대기하고 있었다.
“ 하하하! 오래 기다렸겠구나.”
유재풍은 흡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 소녀는 요하입니다. 어르신. 한잔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공손하게 잔을 채웠다.
“ 내 신분은 확인하지 않는거냐?”
유재풍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 겨울밤은 무척 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 응? 프! 하하하! 맞다. 겨울밤은 하염없이 길지. 난 유재풍이다. 별호는....”
“ 별호는 제가 맞춰보겠습니다. 어르신.”
요하는 눈웃음을 치며 유재풍의 말을 끊었다.
“ 말해 보거라.”
“ 옥안불이 아니신지요?” “ 옥안불?”
“ 얼굴은 송옥, 반안처럼 잘생기셨고, 귀는 부처님처럼 기니까 옥안불이지요.”
“ 응? 하하하! 맞다. 요하야, 난 옥안불이다.”
유재풍은 흡족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귀가 크다고 해서 얻은 장이라는 별호를 바꿀 생각이었는데 요하 덕분에 마음에 쏙 드는 별호를 얻은 것이다.
“ 그럼 이번엔 옥안불 대협께서 이곳에 오신 목적을 소녀가 알아맞혀 보겠습니다.”
요하는 다시 술을 따르며 말했다.
“ 말해 보거라.”
유재풍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요하의 가슴으로 시선을 주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앞섶이 살짝살짝 열리며 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색목인인 요하의 가슴은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가슴보다 풍만했다.
요하는 상체를 살짝 숙여 가슴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 옥안불 어르신 같은 대단한 분이 이곳까지 몸소 오신 걸 보면 중원의 안위와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함일 겁니다.”
“ 암, 그렇고말고. 나처럼 대단한 사람이 하찮은 일로 이곳까지 올 리가 없지.”
유재풍은 기고만장했다.
중원에 있을 때에도 월급만 받으면 유곽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몸이 허공으로 붕붕 떠오르는 듯하며 기분이 한껏 고양됐다.
“ 소녀는 궁금하옵니다. 어르신.”
요하는 어깨를 살짝 흔들며 술을 따랐다. 그러자 옷이 흘러내리며 한쪽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재풍은 급하게 술을 들이켰다.
잔이 비자마자 요하는 다시 술을 따르고, 잔이 채워지면 유재풍은 목이 마른사람처럼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유재풍의 입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주절주절 흘러나왔다.
“ 모시겠습니다. 어르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이미 상의를 벗고 있던 요하는 유재풍을 침상으로 이끌었다.
“ 이번 작전이 끝나면 난 부영이 될 거다. 요하야. 그렇게 되면 넌 내 첩이 되는 거다. 이 유재풍의 첩 말이다. 그런데 몸이 왜 이렇게 붕붕 날아다니는 거냐. 내가 신선이 돼 버린 모양이구나.”
손을 휘휘 내젓던 유재풍의 몸이 곧 잠잠해졌다.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 소첩이 앵속을 약간 탔습니다. 어르신. 많이 복용하면 중독이 되지만 약간만 복용하면 멋진 밤을 선사하기도 한답니다.”
요하는 빙그레 웃으며 유재풍의 옷을 벗겼다. 그러고는 이불을 덮어준 뒤 벗어두었던 상의를 걸치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 그녀는 이층 끝에 위치한 요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검은 옷을 걸친 사내와 요나가 술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 오랜만이야.”
“ 그렇군요. 개독새.”
요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나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 그래도 여기에 오니까 개독새란 별명을 듣기도 하네.”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요하에게 술잔을 건넸다.
“ 여기에도 앵속을 탄 건 아니겠죠?”
“ 나 혼자 먹는 것도 부족해. 걱정말고 마셔.”
“ 아직 앵속을 끊지 못한 거예요?”
요하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 떠난 줄 알았는데......”
요하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연우강은 화제를 돌렸다.
“ 남편을 이곳에 묻었는데 어딜 가겠어요.”
요하는 술잔을 채워 연우강에게 건네며 피식 웃었다.
“ 수절해주는 부인도 있고, 그 녀석들이 나보다 낫네.”
요나, 요하.
두 여자와 알게 된 건 흑랑기 참모를 맡았떤 미랑과 흑랑으로 불렸던 두 녀석 때문이다. 얼굴이 잘 생겼던 미랑 녀석은 요나와 친하게 지냈고, 검은 피부의 흑랑은 요하를 부인처럼 생각했다. 두 녀석과 함께 여러 차례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소개를 받았다.
“ 아직 혼자?”
“ 앵속쟁이잖아. 그런데 계속 이곳에 있을 거야?”
“ 돈 좀 모아서 여길 사 버릴 작정이에요.”
“ 그럴 바엔 차라리 중원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아?”
“ 중원으로 들어가면 우린 당장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되잖아요. 여기가 편해요.”
“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연우강은 두 시진 전 상황을 떠올렸다.
유곽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과거 검지곡에서 죽일 뻔했던 유재풍을 보았다. 직감적으로 율령궁의 목표가 이곳 감숙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심 고민하여 유재풍을 지켜보다가 그가 유곽 거리 안쪽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움직였는데, 가는 도중에 요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 전에 돈황에 들어왔을 때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돌아갈 때는 혹시 이쪽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나가더군요.”
이번엔 요나가 대답했다.
“ 내가 왜 이쪽으로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 개독새가 영역표시를 많이 해둔 곳이잖아요.”
“ 영역표시?”
“ 원래 짐승과에 속하는 자들은 자신이 영역표시를 했던 곳은 반드시 돌아보는 습관이 있잖아요.”
“ 내가 졸지에 짐승으로 변했네. 아무튼 얼굴이 밝아서 보기 좋아.”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두 사람 앞으로 놓았다.
“ 뭐죠?”
“ 미랑이나 흑랑을 살려낼 재주는 없지만, 돈버는 재주는 타고 난 것 같아.”
“ 돈이라고요?”
“ 이 건물 사고 싶다며.”
“ 그래도 이건.....”
요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사실 자신과 요하가 원래 있던 곳은 팔색조처럼 고급 기관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가장 하급인 유곽의 노예 창녀로 있었고, 미랑과 흑랑을 만난 곳도 그곳이었다.
미랑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노예 신분 때문에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 미랑이나 흑랑 또한 가진 돈이 없었다. 그곳을 벗어나게 된 건 미랑과 흑랑이 사막폭풍 작전에 나가 죽고 난 다음이었다. 어느날 유곽으로 찾아온 연우강은 유곽의 주인을 비롯하여 그곳에 기생하던 건다들의 목을 치고 노예 문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상당한 돈을 쥐어주고는 떠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돈을 내민 것이다.
“ 부담 가면 나중에 갚으면 되잖아.”
“ 이곳으로 다시 올 거예요?”
“ 세상일이라는 게 함부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쫄딱 망하면 밥 얻어먹으러 올게.”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얼굴 보려면 쫄딱 망하라고 빌어야겠네요?”
요하는 도발적인 얼굴로 말했다.
“ 흑랑 무덤에 흙도 아직 안 말랐어, 요하.”
“ 킥! 사막이라 빨리 말라요, 개독새.”
“ 아무튼, 잘 살아. 좋은 사람 만나면 망설이지 말고 시집도 가고. 그리고 오늘 고마웠어.”
“ 아니에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목숨 걸고 도와 드릴게요. 앵속 그만 하시고요.”
요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 밤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요하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 재워주려고?”
“ 요나와 한 침상을 쓰는데, 침상이 워낙 커서 자리가 많이 남거든요. 우리 둘 사이에 재워줄 수도 있어요.”
요하는 가슴을 불쑥 내밀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 그건 좀더 생각해 볼게. 아무튼 잘 살아.”
두 사람을 향해 싱긋 미소를 던진 연우강은 방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뒷문을 통해 팔색조를 나섰다.
“ 오길 잘한 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총총 박힌 수많은 별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 잘한 걸 거야.”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음미하듯 천천히 걸어 천불루에 도착한 것은 삼경 무렵이었다. 몸을 씻고 식사를 마친 잠룡 십 조 일행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어딜 다녀오는 거냐?”
차를 마시던 이자승이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과거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 과거는 잘 있더냐?”
“ 전보다는 나이진 것 같습니다.”
“ 다행이구나. 들어가서 씻어라.”
“ 알겠습니다. 교랑,”
연우강은 이층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철상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 하오밀문이 율령궁과 전쟁을 시작하면 승자는 누가 될 거라고 생각해?” “ 율령궁 전력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 율령궁 전부가 다 나왔다고 가정하면?”
“ 율령궁이 승리합니다.”
“ 하오밀문이 이길 확률은?”
“ 계란으로 바위치깁니다.”
“ 만일 하오밀문에 잠룡 십 조가 가세하면?”
“ 그럼 삼 할 정도로 올라갑니다.”
“ 내가 하오밀문을 지휘까지 하면 더 올라가겠지?”
“ 광랑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오 할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 하오밀문에는 남궁세가 무공을 익힌 무인이 삼백 명 정도가 있는데, 그들을 포함하면 조금 더 올라가겠네?”
“ 그렇습니다. 광랑.”
“ 육 할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고서로 작성해 놔.”
“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 내일 아침까지.”
“ 알겠습니다. 광랑.”
고개를 꾸벅 숙인 이철상은 잠룡들을 불러 모으더니 한 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연우강은 그들을 지켜보다가 계단으로 향했다.
“ 운화 넌 방을 가르쳐주고 오너라.”
“ 알았어요. 할아버지.”
이자승의 말에 남궁운화는 얼른 연우강을 쫓아 올라갔다. 연우강의 방은 삼층 맨 안쪽에 있었다.
“ 여기에 과거가 있어요?”
남궁운화는 방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 북로정군은 감숙성에 주둔했습니다.”
“ 그럼 돈황에도 자주 왔겠네요.”
“ 자주는 아니었고, 사막에서 벗어나면 항상 이곳에 들렀습니다.”
“ 그랬군요. 욕실은 일층에 있어요.”
“ 알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연우강은 궤짝 안에서 옷을 꺼내들고 다시 방을 나섰다.
“ 이번엔 율령궁과 전쟁인가요?”
조금 전 이철상에게 내린 명령을 떠 올리며 물었다.
“ 염소수염 영감의 결심에 달렸습니다.”
“ 일구 할아버지도 이곳에 왔어요?”
“ 네.”
“ 일구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으면 저도 데려가지.”
“ 보기 싫어도 금세 보게 될 겁니다.”
“ 일구 할아버지가 전쟁을 할 거라고 보세요?”
“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전쟁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 그 정도로 심각해요?”
“ 거창한 환영식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연우강은 한 곳에 모여 있는 이철상 일행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마침 이철상과 시선이 마주쳤다.
“ 하실 말씀 있습니까?”
“ 하오밀문 사천지부가 끝장났다. 수뇌 급에 해당하는 자들은 가족까지 전부 죽임을 당했다.”
“ 정말입니까?”
이철상을 비롯한 잠룡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사실 율령궁과 하오밀문의 전쟁 각본을 짜는 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 정도로 생각한 탓이다. 그런데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가족까지 전부 없앤다는 건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 작전명은 ‘생쥐박멸작전’이다.”
“ 자칫 잘못하면 저희들의 가족이 당할 수도 있겠군요.”
“ 작전을 대충 세우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로 향했다.
“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자.”
이철상은 굳은 얼굴로 일행을 보며 말했다.
“ 먼저 율령궁의 조직부터 점검한다.”
이철상은 조금 전 작성했던 율령궁 조직표를 들여다보았다.
“ 율령궁은 천안, 천법, 천살 세 조직으로 구성돼 있고, 천안원은 팔천, 천법원은 오천, 천살원은 이천이다. 감시 조직인 천법원의 임무는 무림 주요 인사의 동태 파악이고 천살원은 집행임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생쥐 박멸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들은 천안원 밀정이란 결론이 나온다.”
후군 군장인 유성비검 신도영이 조금 전 상황을 더듬으며 말했다.
“ 천안원 조직은?”
“ 북방사자영, 남방 사자영. 동방사자영, 서방사자영의 사영이 있고, 각 영 당 인원은 이천 명이다. 더불어 각 영 아래로는 북방부, 남방부, 동방부, 서방부의 네 개의 부가 있고, 각 부 아래로는 아홉 개의 조가 있다.”
“ 좋아, 그럼 하오밀문은?”
이철상의 시선이 장사덕에게로 향했다.
“ 하오밀문은 십사 십 십이다. 전국에 열네개의 지부가 있고, 각 지부 당 열 개의 소지부가 있다. 그리고 소지부는 열 개의 조를 거느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장사덕은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 신분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는 자들은 각 소지부에 속해 있는 조장까지라고 보면 되겠구나.”
“ 그렇다, 교랑.”
장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두 세력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율령궁이나 하오밀문을 쳐야 한다고 했을 때를 가정하면 돼.”
“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장사덕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일행은 일제히 장사덕을 보았다.
“ 하오밀문은 조장까지만 신분이 노출돼 있을 뿐 그 아래쪽은 직속상관만 알고 있다. 즉 수뇌들만 없애면 와해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반면에 율령궁은 설사 수뇌를 암살하거나 없앤다고 해도 조직이 와해될 일은 없다.”
“ 대야벌에서 또 다른 자를 파견하면 된다는 말이구나.”
“ 그렇다. 교랑. 하오밀문을 없애기 위해서는 머리를 자르면 되고, 율령궁을 없애기 위해서는 팔 다리를 먼저 자르고 머리는 맨 나중에 잘라야 한다. 더불어 밀정을 없애면서 천살원의 집행사자들 또한 처리해야 한다.”
“ 팔 다리를 자르는 방법은?”
“ 생쥐 박멸 작전이란 말처럼 놈들은 하오밀문의 씨를 말릴 생각으로 강호로 나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밑바닥부터 훑어야만 가능하다. 바닥부터 훑은 자들은 조금만 관찰하면 찾아낼 수 있고, 그들을 한 장소로 유인해야만 한다.”
“ 유인하는 법은?”
“ 열 개의 소지부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마지막엔 한 곳으로 모아야지.”
“ 결론은 이번 전쟁의 승패는 정보에 달렸다는 말이네.”
“ 그렇지. 전쟁의 마무리는 무기로 하겠지만 무기를 끌어내는 과정까지는 정보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율령궁과 하오밀문 중 더 정확하고, 더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쪽이 승자가 되는 전쟁이다.”
뒤편에서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일제히 시선을 들었다. 금방 목욕을 한 듯 연우강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오고 있었다.
“ 조직력에서는 하오밀문이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광랑.”
이철상이 우려 어린 얼굴로 말했다.
“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하오밀문은 터주대감이고, 율령궁은 손님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어렵다고 할 수도 없다. 문제는 하오밀문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거다.”
연우강은 장사덕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문주님이 전쟁을 피할 거라고 보십니까?”
“ 그건 알 수 없다. 아무튼 보고서는 확실하게 작정해 두도록 해라. 특히 율령궁 밀정을 유인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해.”
“ 알겠습니다. 광랑.”
장사덕 일행은 다시 논의에 몰두했다.
“ 식사하셔야죠.”
연우강이 자리에 앉자 남궁운화가 차를 준비해 갔다.
“ 당분간 굶을 생각입니다.”
“ 굶어요?”
남궁운화는 뜨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있을 때 잘 먹고 잘 입자는 생활신조를 가진 그다. 그런 그가 굶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몹시 생경했다.
“ 몸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 몸을 어떻게 만든다는 거죠?”
“ 잘 만들어야죠. 그보다는 차나 한잔 주십시오.”
“ 지금도 최고면서.”
남궁운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차를 따라주었다.
전에 언뜻 보았던 그의 뒷모습은 군살 하나 없이 탄탄했다. 그는 굳이 몸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 저쪽에 끼지 않을 건가요?”
연우강은 찻잔을 들며 이철상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 전 자리만 차지하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이잖아요. 그럴 땐 이게 최고죠.”
남궁운화는 찻주전자를 들어 올리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고는 잠룡들이 있는 곳으로 ㄱㄹ어가서는 빈 잔을 채워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 이제 어디로 갈 거죠?”
그녀는 연우강 건너편으로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 마장웅 저 녀석에게 받을 돈이 팔십오만 냥입니다.”
“ 빚 받으러 간다는 말이에요?”
“ 한가할 때 받아야지요.”
“ 한가하다고요?” 이름이다. 차기 벌주 후보의 한명이었고.”
그녀는 시선을 돌려 잠룡들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 율령궁과 전쟁 각본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는 섬서성으로 가서 밀린 외상값을 받을 생각이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적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굳이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긴장하면 적과 마주 섰을 땐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됩니다.”
“ 일상생활을 유지하란 말인가요?”
“ 그래야지요.”
“ 그래 어디 마음처럼 돼요?”
“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 승리하나고 생각하세요. 그럼 훨씬 편해집니다.”
“ 킥! 아무튼 연 공자 말을 듣고 있으면 율령궁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 실제 그렇습니다.”
“ 광랑!”
바로 그때 이철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 문제가 생겼습니다.”
“ 무슨 문제?”
“ 하오밀문의 전송 수단은 인편과 전서구의 비율이 팔 대 이인데 반해 율령궁은 삼 대 칠입니다.”
“ 속도에서 밀린단 말이야?”
“ 그렇습니다.”
“ 응랑.”
연우강은 장사덕 뒤편으로 시선을 주며 소리쳤다.
“ 부르셨습니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코가 매부리코처럼 생겼다고 하여 응랑으로 불리고 있는 마응신조 전관수였다.
“ 지금부터 응랑 네가 흑천전왕군 군장이야.”
“ 네?”
전관수는 뜨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다시 말해줘?”
“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흑천전와군 군장은 교랑으로 알고 있습니다.”
“ 교랑은 참모로 승진했어.”
“ 차, 참모라고요?”
이번엔 이철상이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싫어?”
연우강은 이철상과 전관수를 보았다.
“ 싫다는 것보다는 갑작스러워서.....”
“ 원래 승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거야. 열심히 일할 거지?”
“ 네.”
“ 네.”
두 사람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잡랑!”
“ 하명하십시오. 광랑.”
“ 응랑에게 축하주 한잔 따라 줘.”
“ 알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장사덕은 주방 쪽으로 가서는 술병과 술잔을 가져와 술잔을 전관수에게 내밀었다.
“ 축하한다. 그런데 너도 집이 좀 사냐?”
장사덕은 술을 따르며 물었다.
“ 광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삼 일에 한 번 정도 속옷을 갈아입을 정도는 된다.”
전관수는 씨익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 응랑은 술잔을 마랑에게 줘.”
“ 마랑은 누구와 바꿀 겁니까?”
마장웅에게 술잔을 건네라는 말에 장사덕이 물었다. “ 지금 이 시간부터 흑천우사군의 군장이야. 백랑은 교랑과 마찬가지로 참모로 승진이야.”
“ 축하한다. 마랑.”
장사덕은 마장웅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섬서마강의 장자인 그는 굳이 돈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는 녀석이었다.
“ 열심히 하겠습니다. 광랑.”
술잔을 받아든 마장웅은 술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군장 자리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자리가 아니라고. 언제까지 하게 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대원들을 이끌어 봐. 응랑.”
고개를 끄덕인 연우강은 전관수를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 집이 공동산이지?”
“ 그렇습니다. 광랑?”
“ 집에서 새를 키운다고 했던가?”
“ 네, 조금 키우고 있습니다.”
전관수는 불안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새가 주로 먹는 먹이는 뭐지?”
“ 비둘기 고깁니다.”
“ 내게 진 빚이 얼마였지?”
“ 삼십오만 냥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십 만 냥 어때?”
“ 십오만 냥을 깎아주시겠단 말입니까?”
“ 전부 깎아주면 차기 철응방 방주를 무시한다고 할까봐 십오만 냥만 깍은 건데, 더 깎아줘.”
“ 철응방?”
“ 네가 철응방 후계자였냐?”
잠룡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전관수를 보았다.
잠룡 십 조는 은연중에 상대방의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안흔ㄴ 이상 집안이나 과거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전관수가 철응방의 차기 방주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응방은 무공이 약해 이름이 나 있진 않지만 새를 다루는 기술만큼은 천하제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철응방의 설산신조와 비응마조는 영물로 불릴 정도였다.
“ 철응방이 뭐 대단하다고 그래, 자식들아.”
대원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전관수는 불퉁스럽게 말을 뱉었다.
“ 그걸로 부족하면 오만 냥 정도는 더 깎아줄게.”
“ 아, 아닙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연우강의 말에 전관수는 얼른 손사레를 쳤다.
“ 대원들 데리고 가서 가족들 만나고 와. 흑천의 중책에 기용됐다고 자랑도 하고.”
“ 어디로 가면 됩니까?”
“ 다음 목적지는 흑천우사군 군장 집이야.”
“ 그럼 섬서마가에서 뵙겠습니다. 광랑.”
“ 그래, 수고하고, 아버지가 선물 주면 절대 거절하지 말고 받아와.”
“ 알겠습니다. 가세.”
고개를 숙인 전관수는 대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큭큭큭!”
이철상은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느닷없이 군장을 교체하기에 웬일인가 했다.
그런데 그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전서구를 처리할 설산신조와 비응마조를 얻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바로 외상값을 편하게 받아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그 웃음의 의미는 뭐지?”
연우강은 눈을 가늘게 떴다.
“ 호북으로 갈 때쯤에는 권랑이 군장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권랑인 사자신권 사후린은 호북 만룡전가의 장자이기 때문이었다.
“ 그걸 어떻게 알았어?”
“ 같은 돈을 주는 경우라도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식이 지휘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잖습니까.”
“ 정말 그럴까?”
연우강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잖습니까. 다만 응랑 본인도 아버지처럼 기쁠지 그건 의문입니다.”
“ 교랑, 네가 군장이 됐을 때 기분은 어땠는데?”
“ 나쁘진 않았습니다.”
“ 그 후로는?”
“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구체적으로 말하면?”
“ 시야가 넓어지고, 신중해지고, 상황 대처 능력이 향상됐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 된 거 아냐?”
“ 그렇습니다.”
이철상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강은 특이한 사람이다.
그가 전관수와 사후린을 군장으로 임명한 건 외상값을 쉽고 편하게 받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장에 앉은 자를 훈련시켜 준다. 잠룡 십 조 대원들은 대야벌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집안에서까지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아니다. 어쩌면 다른 조의 조원들보다 자존심은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을 지휘한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입을 열 때마다, 이 말을 해도 상관없는지, 몇 번씩 고민해야 한다. 군장으로 잠룡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몇 개월 동안은 무공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그건 그렇고 율령궁에 밀린다고 하였던 속도 문제는 해결됐지?”
“ 그렇습니다. 광랑.”
“ 그럼 계속해.”
“ 알겠습니다.”
이철상은 다시 잠룡들을 보며 회의를 속개했다.
“ 언제 떠날 거죠?”
남궁운화가 연우강을 향해 물었다.
“ 여독이 풀리려면 삼 일 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럼 삼일 후?”
“ 더 쉬어도 상관없고요.”
“ 그냥 가는 게 낫겠어요.”
“ 돈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너무 추워요.”
“ 하긴 이곳이 좀 춥기는 하죠.”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