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생일 선물.
윤허는 지금 꽤나 혼란스러웠다.
거철산이 돌아와서 해준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지금껏 운이 좋아, 곁에 있는 호위들 때문에 승승장구하는 걸로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든 계획은 연우강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사월림, 만마림, 무면천군단, 그리고 천상천 무인들까지. 잠룡 십 조를 공격했던 자들은 대야벌 최정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자들을 번번히 물리친 그 모든 작전을 세운 사람이 연우강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사실이었다. 아니 그들이 패했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연우강의 뛰어난 머리가 아니라 거철산의 태도였다. 거철산은 연우강 곁에 있는 노인들이 지옥 죄수들이라는 사실부터 시작하여 대야벌 전설이라고 알려진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흔을 익혔다는 것까지 많은 정보를 가져왔다.
하지만 단 한가지, 가장 궁금해 하고 있는 연우강에 대한 건은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연우강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조차 모른다고 하였다.
거철산은 연우강의 무공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라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 그 몇 개월 동안 거철산은 연우강에게 매료돼 버린 것이었다.
감시하라고 보냈더니 부하가 돼버린 꼴이었다.
그랬던 자가 지금은 앵속쟁이가 돼 나타난 것이다. 연우강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런 자였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연우강은 윤허를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 아니네. 궁금한 게 많았는데......”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묻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그럼 내가 질문하지. 혹시 천마삼강이라고 아나?”
“ 천마가 만들어낸 생체병기로 풍천마인과 회혼마인 천년마인을 일컫는다고 들었네.”
“ 그 중 회혼마인의 특징을 말해보게.”
“ 반인반시며 금강불괴에 가까운 신체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네.”
“ 우리가 묻어준 시체들 중 금강불괴에 가까운 자들이 서른 명이 포함돼 있었네. 그들을 지휘했던 자는 만경소 누담생이었고.”
“ 무궐에서 회혼마인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윤허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회혼마인을 제강하는 자세한 방법은 모르지만, 죽은 무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제강해야 한다는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다. 산 사람을 반 강시로 만드는 건 사악한 집단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칭 정파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강시를 제강하지도 않을뿐더러, 특정세력에서 강시를 제강하면 그들을 강호 공적으로 지목하여 공동으로 처단해왔다.
그런데 정파의 보루라고 큰소리치는 무궐에서 회혼마인을 제강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누담생이 시체가 아니었더라면 대답을 해줬을 텐데 안타깝구먼.”
“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는 말인가?”
“ 혹시라도 알게 되면 내게도 알려주게. 그럼 다음에 보세.”
연우강은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오층 황상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이었다. 특실인 황상실은 식당을 통해 올라가는 계단과 외벽에 만들어진 계단의 두 개의 출구가 있다.
외부 계단엔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연우강은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갈지자 형태를 띠고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널따란 공간이 그를 맞았다. 오층에 따로 지어진 황상실은 마당과 정원이 있는 별관과 같은 형태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황상실 안으로 들어갔다.
“ 어서 오십시오, 손님.”
황상실에 배정돼 있던 시녀가 고개를 숙이며 연우강을 맞았다.
“ 대충 끝났으면 퇴근해.”
“ 욕조에 집어넣을 돌은 화로에 넣어두었습니다. 욕조에 넣기만 하면 금세 데워질 겁니다. 그리고......”
시녀는 방안 상황을 꼼꼼하게 설명을 해준 다음 다른 시녀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 일욱, 자네도 퇴근해.”
연우강은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요리사를 향해 말했다.
“ 식사 준비는......?”
일욱은 말끝을 흐렸다.
“ 먹고 싶으면 그때 말하지.”
“ 알겠습니다. 손님.”
일욱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제기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일꾼들이 나가자 연우강은 다시 밖으로 나와 눈을 내려다보았다. 한동은 그렇게 눈을 응시하다가 쪼그리고 앉았다.
“ 이건 밀가루 반죽이고, 이건 야채와 돼지고기를 한데 넣고 볶은 만두 속. 이놈을 여기에 넣고 예쁘게 싸면....”
눈덩어리 두 개를 하나로 뭉쳐 만두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었다.
“ 맛있네.”
마치 만두를 먹는 것처럼 눈을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해죽 웃었다. 그러고는 눈을 꿀꺽 삼기코 다시 한 입 베어 무는데 입가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렸다.
“ 아이고, 아까운 육즙이....”
얼른 손을 들어 입 주위로 흘러내린 물을 쓸어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 죽이네.”
눈 뭉치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하나를 더 뭉쳐 다시 베어 물었다.
“ 이건 좀 맛이 없네.”
하지만 말과는 달리 눈 뭉치를 말끔하게 먹었다.
그렇게 십여 개의 눈 뭉치를 먹고 있는 동안에 주변은 어느새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그는 다시 십여 개의 눈을 뭉쳐, 황하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의자 위에 열을 맞춰 놓았다.
“ 이건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아이고 추워라.”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창가 화로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육면체로 만들어진 무쇠 화로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두 자나 돼 상당히 육중해 보인다. 주전자를 올릴 수 있도록 뚜껑이 있고, 창문을 향한 면에는 무쇠로 만든 통을 달아 석탄이 타면서 나오는 독연을 창밖으로 배출하게 돼 있다.
들쇠 같은 도구로 뚜껑을 열자 뜨거운 불길을 토해내는 석탄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석탄 위쪽에는 어린 아니 머리 크기 정도 되는 돌 십여 개가 얹어져 있는데 돌은 뜨거운 열을 받아 벌겋게 달아오른 채였다.
그는 욕실 앞에 놓여 있는 무쇠 통을 가져와 화로 옆에 놓았다. 무쇠 통에는 기다란 손잡이가 달려 있고, 집게가 한편에 꽂혀 있었다.
그는 집게로 벌겋게 익은 돌을 꺼내 통 안으로 넣었다.
휙!
그렇게 몇 개를 집어넣고 있는데 밖에서 나직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 갔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돌을 계속 꺼내 통 안에 넣었다. 이윽고 빼곡하게 채운 것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서는 욕조 안으로 집어넣었다.
돌이 식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통 안에 넣었던 돌을 물속으로 던져 넣고 다시 화로로 가서는 남은 돌을 꺼내 욕조로 옮겼다. 그렇게 네 번을 오가자 욕조 물은 금세 뜨거워졌다. 서둘러 옷을 벗어 던지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다. 뜨거운 기운이 확 끼치며 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그가 지금껏 목욕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담대무궁 일행에게 추레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연우강은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 이미 다섯 명이나 다녀갔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욕실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들어찼다. 욕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천마환환신공을 극성으로 펼치고 있는 이지약이었다.
“ 환노 영감보다 더 완벽하군요.”
연우강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이지약이 있는 게 분명한데, 대기가 약간 왜곡됐다는 느낌만 올 뿐 어떤 흔적도 드러나지 않는다. 천마 무공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천수장해를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군요.]
이번엔 이지약의 숨결이 느껴졌다.
“ 그 분이 천마환환신공을 익혔단 말입니까?”
[ 혁미월 그분은 원래 밀천의 무공인 만화은신사영을 익히고 있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그 무공만으로는 지천을 탈출할 수 없었나 봐요. 그래서 천마환환신공을 은밀하게 익히기 시작했대요.] “ 그 두가지를 합친 겁니까?”
[ 만화은신환환신공이라고 이름을 지었더군요. 아마 그보다 더 뛰어난 은신술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 엄청난 기연을 얻은 셈이군요.”
[하지만 함부로 펼치긴 힘들어요.]
“ 이유는?”
[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물이 쑥 꺼지는 듯하더니 차가운 맨살이 연우강의 몸을 압박했다. 연우강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이지약의 몸을 껴안았다. 바로 그 순간 촉촉한 입술이 연우강의 입술을 덮었다. 만화은신환환신공의 최대 약점은 옷을 벗어야만 극한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자꾸 담을 넘으면 습관이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우강은 이지약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만화은신환환신공이 풀린 듯 이지약의 알몸이 드러났다.
[ 오늘은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가만히 보았다.
그가 앵속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처음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그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연우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막폭풍작전을 조사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파헤쳤던 사람이 연우강이었고, 동정호 지하에서는 그와 관계까지 가지지 않았던가.
그가 앵속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면서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확인한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가 보고 싶어서, 그의 체취를 느끼고 싶어 허둥지둥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
[ 제가 앵속쟁이인지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까?]
연우강은 이지약의 몸을 부드럽게 쓸며 물었다.
[ 그래요, 할아버지 말이......]
[ 어때요?]
[ 아마 당신이 다섯 명이 돌아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도 믿을 뻔했어요.]
[ 믿을 뻔?]
[ 삶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은 절대 앵속을 못하잖아요.]
[ 전 그런 류와는 거리가 멉니다.]
[ 지금은 대야벌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죠.]
이지약은 배시시 웃었다.
[ 그런가요? 그런데 무공은 어떻게 된 거죠?]
연우강은 이지약의 몸을 노골적으로 더듬어다.
[철저하게 도망치기 위한 무공이라서그래요.]
몸을 타고 열기가 올라오자 그녀는 다시 연우강의 입술을 찾았다.
[ 도망치기 위한 무공이라고요?]
[ 옷을 입고 있으면 은신술을 아무리 은밀하게 펼친다고 해도 옷 때문에 공기의 파동이 생견게 되잖아요.]
[ 그럼 그 파동까지 없앤단 말입니까?]
[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공격 자체도 할 수 없어요. 만환은신환환신공을 펼친 상태에서는 다른 무공을 펼칠 수도 없어요. 다른 무공의 내기를 끌어올리면 바로 모습이 드러나게 돼 있어요.]
[ 오직 도망치는 데만 써먹을 수 있는 무공이란 말이 일리가 있네요.]
[ 이렇게 담을 넘을 때하고요.]
이지약은 달뜬 신음을 흘리며 연우강의 입술을 탐했다.
[ 들키면 어쩌려고.]
[ 목욕을 하는 중에 나왔으니까 들킬 염려는 없을 거예요. 전 목욕 시간이 좀 길거든요.]
[ 얼마나시간이 있죠?]
[ 한 시진 정도요.]
[ 아주 건전한 목욕 습관입니다.]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이지약을 끌어당겨 허벅지 위에 앉혔다. 곧이어 욕실에서는 뜨거운 여풍이 몰아쳤다. 돌로 데웠던 욕실 물이 차가워졌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랑에 너무 목이 말랐던 탓일까. 한 시진은 금세 지나갔다.
[ 언제까지 앵속쟁이 노릇을 할 거죠?]
[ 저도 밥 생각이 간절합니다.]
연우강은 혈잔수를 펼쳐 식은 물을 데우며 말했다.
[ 그럼 담대무궁 일행과 헤어지면 그때부터 밥을 먹게 되겠네요?]
[ 연극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 화장할 때 눈썹을 그리는 게 있는데 그걸 한번 이용해 볼래요?]
[ 어떻게요?]
[ 먹을 가루로 만든 다음 기름에 재서 여기에 엷게 바라주면 훨씬 추레하게 보일 거예요.] 이지약은 연우강 눈 아래 움푹 들어간 부분을 원을 그리듯 가볍게 어루지만지며 말했다.
[ 좋은 방법이네요.]
[ 그런데, 남궁 소저와 수 소저가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요?]
[ 사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 뭐가 걱정이라는 거죠?]
[ 잘 생겼으면 오만하거나 콧대가 높거나 싹수머리가 없어야 하는데... 모든면에서 완벽한 남자라는 게 문제죠.]
[ 남궁 소저 말이 자화자찬병 환자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네요. 어떻게 할래요?]
이지약은 연우강의 코를 쥐어뜻듯 흔들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의 농담이 딱히 틀리다고 할 수도 없다. 아주 잘 생겼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거의 완벽한 남자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는 최고의 사내라는 말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 당분간 비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그럼 걱정을 많이 할 텐데?]
[ 남궁 소저와 수 소저가 걱정을 해야 더 완벽하게 앵속쟁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
[ 말씀하세요.]
[ 혹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세요. 제 생각엔 이제 반시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 제 생각도 그래요. 한 시진이 되려면 아직 멀었을 거예요.]
이지약은 연우강의 귓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 만일 지났으면, 목욕 시간이 길어졌다고 핑계를 대세요.]
연우강은 뜨거운 손길로 이지약의 몸을 쓰다듬었다.
[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또다시 욕실에 열풍이 불었다. 이번 열풍은 조금 전보다 더 뜨겁고 격렬했다.
그러나 슬펐다.
꿈틀거리는 몸은 운명을 거부하지 못한 이들의 몸부림이고, 쾌락에 내지르는 신음은 슬픈 사랑가였다.
마지막일지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조급해진답니다.
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가슴에 채우려 합니다.
그러다 결국엔
그리움만 가득 채우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답니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알 필요도 없을 겁니다.
다만 함께 죽는 게 두렵냐고 물었던
그 말만 기억하렵니다.
함께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였던
당신의 그 말만 기억하렵니다.
그리고
남은 생을 그리움으로 살아도
후회하지 않으렵니다.
그리움이 아니라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지약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만환은신환환신공을 펼쳤다. 그녀의 신형이 조금씩 엷어지는 듯하더니 이내 완전하게 녹아 들어갔다. 이지약의 기척이 멀어지자 연우강은 욕실을 나와 옷을 갈아입고 침상에 누웠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인해 잠이 쉽게 들지 못했다. 결국 새벽녘까지 뒤척이다가 욱일승 일행이 돌아오자 일어나고 말았다.
“ 누군 눈 속에서 미친놈처럼 뛰어다녔는데.......”
방을 둘러본 욱일승의 첫마디였다.
방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했다. 이런 방에서 어떻게 잠을 자는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연우강이 더욱 신기했다.
“ 그러게 다 출세하려고 발악을 하는 거잖아. 차 한 잔 줘?”
“ 뜨거운 물이라도 좋으니까 한 잔 주게.”
욱일승을 비롯ㄱ한 네 명은 화로 옆으로 떨썩 주저앉았다.
“ 어때?”
연우강은 찻잔에 차를 따라 건네며 물었다.
“ 잠룡들을 노리는 다른 세력이 숨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감숙성은 죽은 자들의 도시가 돼가고 있네.”
“ 율령궁?”
“ 곳곳에서 살겁이 자행되고 있었는데, 살해된 자들 중에는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도 꽤 있었네.”
“ 고문을 받고 나서 살인멸구를 당한 건가?”
“ 그런 것 같네. 그런데 두고 볼 텐가?”
“ 문주가 싫다고 하잖아.”
“ 일구가 싫다고 그랬단 말인가?”
이번엔 허일삼이 물었다.
“ 일단은 숨어볼 생각인가 봐.”
“ 이런 바보 같은 놈.”
허일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대야벌과 전쟁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 그렇다고 해도.....”
“ 그럼 전관수를 집으로 돌려보낸 건 무슨 의미인가?”
전에 돈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수천월이 물었다.
돈황을 떠나기 전에 연우강은 이철상 일행을 시켜 율령궁과 전쟁 각본을 짰다. 그 결과 전관수가 설산신조와 비응마조를 가지러 철응방으로 갔다. 율령궁과 전쟁을 할 게 아니면 굳이 설산신조와 비응마조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 섬서 지부까지 깨지고 나면 일구 영감도 마음을 바꾸겠지. 그때를 대비해서 가져오라고 한 거야.”
“ 율령궁의 다음 목표가 섬서성이란 말인가?”
“ 섬서성에서 호복 호남을 거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 거야.”
율령궁의 이동 경로는 유재풍이 앵속에 취해 내뱉은 말이었다.
“ 그럼 일구가 율령궁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면, 장소는 호북이 되는건가?”
“ 아냐.”
“ 그럼?”
“ 호남이 될 거야.”
“ 호남?”
“ 사천, 감숙, 섬서, 호북을 깨트리고 나면 율령궁 놈들은 해이해질 수밖에 없어. 더구나 호남은 밀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잖아. 그들은 하오밀문보다는 밀천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하오밀문에 대한 경계가 허술할 수밖에 없어. 놈들을 쳐야 할 시기는 그 때야.”
“ 율령궁이 호남으로 들어갈 거라고 보는가?”
“ 안 들어가면?”
“ 내가 율령궁의 궁주라면 호남은 맨 마지막에 처리하겠네.”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거긴 밀천의 영역........”
욱일승은 말끝을 흐렸다.
문득 율령궁이 대야벌 주 세력이란 사실이 떠올랐다.
일반 문파 같으면 밀천이 똬리를 틀고 있는 호남을 극구 피하겠지만 대야벌은 지난 천오백 년 동안 황실마저도 어쩌지 못한 중원 최강의 무림 문파였다. 그런 문파가 아직 개파대전도 치르지 않은 문파를 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율령궁이 호남을 피해간다는 것은 밀천이 대단한 문파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다. 율령궁이 벌이고 있는 ‘생쥐박멸 작전’은 하오밀문은 명분이고, 내부에 숨겨진 목적은 중원 무림이 아니던가.
설사 밀천이 공격을 해온다고 해도 피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
“ 율령궁이 펼치는 ‘생쥐박멸작전’의 최대 격전지는 호남이 될거야.”
“ 율령궁 소속 모든 밀정들과 무인들이 전부 호남으로 모여들겠군.”
“ 그렇게 되겠지.”
“ 그런데 밀천에서 나설 거라고 보는가?”
아직 개파대전을 치르지 않은 밀천은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손해날 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율령궁이 정보를 다루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없애버리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건 분명했다.
하지만 율령궁과 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대야벌 소속 문파 하나도 없애지 못한 나약한 문파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게 된다. 밀천의 입장에서 보면 율령궁과의 전쟁은 양날의 칼과 다름없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고 해도 전쟁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나서게 해야지.”
“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연우강은 찻잔을 챙겨들과 밖으로 나갔다.
“ 여기서 쉬면 되는 건가?”
“ 그럼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갈 거야. 눈 녹으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푹 쉬어 둬.”
“ 자네들 먼저 씻게.”
욱일승은 수천월 일행에게 말하고는 연우강을 쫓아 나갔다.
“ 할말 있어?”
“ 오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네.”
“ 앵속?”
“ 그렇네.”
욱일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뭐가 궁금한데?”
“ 지금 배가 고픈가?”
욱일승은 연우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응!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야. 지금은 저 눈도 다 음식으로 보여.”
“ 그랬군. 아무튼 고생하게.”
욱일승은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배고파 죽겠다며 엄살을 부린다는 건 일부러 굶고 있다는 뜻이다. 공연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 난 들어가겠네.”
“ 푹 쉬어.”
연우강은 간밤에 만들어 두었던 눈뭉치 옆으로 찻잔을 놔두고는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 내년엔 풍년이 들려나.......”
느닷없이 군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이지 겨울이 가장 싫었다. 쓸고 또 쓸고, 쉬지 않고 눈을 치웠다. 어쩔 땐 눈만 치우다가 하루를 보낸 적도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
그때는 정말 눈을 그렇게 불렀다.
“ 군기가 많이 빠진 모양이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을 펴 눈을 받았다.
“ 그럴 때도 됐지.”
물방울이 맺힌 손바닥응ㄹ 입으로 가져가 슬쩍 핥았다.
휙!
퍼억!
바로 그때 뒤통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며 하얀 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연우강은 홱 몸을 돌렸다.
“ 호호호!”
휙!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또다시 눈 뭉치가 날아왔다.
이편을 향해 눈 뭉치를 던져대는 사람은 남궁운화였다. 연우강은 상체를 숙여 날아오는 눈 뭉치를 피함과 동시에 눈을 뭉쳤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남궁운화를 향해 눈 뭉치를 던졌다.
휙! 휙!
그사이에 두 개의 눈 뭉치가 날아왔다.
연우강은 재빨리 뒤편으로 몸을 날려 피하며 다시 눈을 뭉쳤다. 그 눈 뭉치를 이편을 향해 쫓아오고 있는 남궁운화를 향해 던졌다.
퍼억!
“ 앗!”
정통으로 맞은 듯 남궁운화는 낮게 비명을 내질렀다.
“ 그랬다 이거죠.”
남궁운화는 눈을 치뜨고 연우강을 노려보더니 주변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눈덩어리가 둥실 떠오르자 내기를 이용하여 눈을 단단하게 뭉쳤다.
그녀는 허공섭물을 이기어검술을 펼치는 바탕 무공이란 연우강의 말을 듣고 난 후 쉬지 않고 허공섭물을 펼치는 연습을 했다. 그 결과 끌어당기는 것 외에 밀어내는 것과, 모으는 것 그리고 공처럼 둥글게 뭉치는 것도 가능해졌다. 마라천력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뭉쳐진 눈으로 시선을 주자 그것들은 일제히 늘어섰다.
“ 각오하세요!”
남궁운화는 상큼 눈을 치켜뜨며 일렬로 늘어선 눈뭉치를 향해 쓸어내듯 손을 휘둘렀다.
휙! 휙휙! 휙휙!
그녀의 의지를 받은 눈 뭉치들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남궁운화는 눈을 따라 몸을 날리며 계속해서 눈덩어리를 끌어올려 커다랗게 뭉쳤다.
“ 많이 늘었네요.”
연우강은 뒤편으로 물러나며 마라천력으로 눈을 끌어올렸다.
퍽! 퍽퍽퍽!
장막처럼 친 눈을 뚫고 들어갔다.
“ 이건 반칙입니다. 소저.”
연우강은 뒤편으로 빠르게 몸을 뉘었다. 싸울 때 흔히 사용하는 철판교 수법이 아니라 그대로 몸을 뉘인 것이었다.
“ 헉!”
연우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을 누이자마자 위에서 거대한 눈덩어리가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던 거였다. 그는 급하게 몸을 비키려 양손을 들어오렬 사정없이 바닥을 쳤다. 바닥을 친 반발력을 이용하여 눈을 피할 참이었다.
“ 이런!”
손바닥이 눈을 뚫고 깊숙이 들어가자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양손을 활짝 폈다.
퍼억!
손을 벌리자 마자 커다란 눈동어리가 몸을 덮쳤다.
“ 아이고, 나 죽네....”
손을 허우적거리던 연우강의 말이 멈췄다. 눈이 아니라 두툼한 솜옷이 손에 잡힌 탓이었다.
“ 윽!”
얼굴을 덮고 있는 눈을 뭔가가 내리누르고 있었다. 남궁운화가 장난을 치려고 손으로 눈을 꼭꼭 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 절 동태로 만들 참입.......”
이번에도 연우강은 말을 맺지 못했다.
눈을 누르고 있던 건 남궁운화의 손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얼굴을 좌우로 저어 눈을 치운 그녀는 연우강의 입술에 입을 맞춰버린 것이었다.
입술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눈이 빠르게 녹아 내렸다. 그리고 차가운 두 입술이 닿았다.
연우강은 당황했다. 남궁운화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이대로 입맞춤을 당해야 하나 아니면 밀어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궁운화와 이지약, 둘과의 감정은 분명히 다르다. 이지약을 이성으로 생각했다면 남궁운화는 여동생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 방에서도 거리낌 없이 잘 수 있었다.
‘ 이건 아니야. 이래선......’
연우강은 남궁운화의 허리를 붙잡았다.
[ 이놈아!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야. 때로는 손해를 보며 살아야 하는 곳이 세상이야. 그 아이는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하고 네가 있는 방만 쳐다보고 있었다. 만일 네가 거절하면, 그 아이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될 거다. 낮ㅇ에 너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 네 곁을 떠나면 몰라도 지금은 받아줘라.]
귓전으로 이자승의 전음이 들려왔다.
연우강은 밀어내려던 손으로 남궁운화의 허리를 둘렀다. 그러고는 힘껏 껴안으며 입맞춤을 했다.
‘ 클클클! 요 녀석아. 그게 바로 앵속을 끊었을 때 후유증이라는 거다. 더 무서운 건 말이다. 앵속의 후유증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다.’
뽀드득!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이자승은 재빨리 내기를 끌어올려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강기막을 쳤다.
“ 뭐 하십니까?”
그는 독고철응이었다.
“ 앵속이 주는 금단현상을 구경하고 있네.”
“ 금단현상이라고요?”
독고철응은 이자승의 시선을 따라 좇았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눈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 조금 전에 남궁운화 그 아이가 나가는 것 같았는데.......”
“ 저 눈덩어리가 그 아이네.”
“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 그녀석을 덮쳤거든.”
“ 그 아이가 연 공자를 덮쳤다고요?”
“ 어젯밤에 묘아가 담 너머 갔을 때, 운화 그 아이가 날 찾아와서는 묻더라고.”
“ 뭘 물었는데요?”
“ 어떻게 하면 앵속을 끊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네.”
“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해주셨는데요?”
“ 다른 것에 집중하게 해주면 된다고 했네.”
“ 예를 들면요?”
“ 남녀 간의 사랑도 좋은 방법이라고 대답해 줬지.”
“ 공주님이 밤 고양이가 됐다는 걸 아시면서 그런 말을 하신 겁니까?”
“ 인연이 누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거든가.”
“ 오지랖도 넓습니다.”
“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게 아니라 묘아를 위해서 그런 거라네.”
“ 공주님을 위해 그런 거라고요?”
“ 우리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한 집 아닌가?”
“ 그렇지요.”
“ 묘아, 그 녀석은 최소한 자식을 넷은 낳아야 하네. 그것도 아들로만.”
“ 넷이라고요?”
“ 한 아이에게는 이씨 성을 물려줘야 하고, 두 아이에게는 주씨 성을 그리고 남은 한 녀석에게는 연씨 성을 물려줘야 한다네.”
“ 주씨 성이 두 명이 되는 건 이유가 있습니까?”
“ 묘아 저 아이를 응천부에서 빼오려면 자식 한 명은 양자로 들여보내야 할 것 아닌가.”
“ 그럼 남은 주씨 한 명은요?”
“ 그 아이는 우강이 저 녀석의 진짜 성을 따라야지.”
“ 연 공자 친부의 성이 주씨였습니까?”
“ 그렇다네.”
“ 그랬군요. 하지만 넷은 무리 아닐까요?”
“ 넷은 힘들지 몰라도 둘은 반드시 낳아야 하네.”
“ 그런데 계속 이렇게 구경하고 있을 겁니까?”
“ 자넨 눈밭에서도 뒹굴 수 있는 저런 젊음이 부럽지 않은가?”
“ 그래서 지켜보고 계신 겁니까?”
독고철응은 빙그레 웃었다.
“ 아니 저 녀석의 불행을 지켜보고 있는 거네.”
“ 혼인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말입니까?”
“ 자기보다 강자가 나타난다는 건 무인으로선 불행 아닌가.”
“ 강자라고요?”
“ 물론이네. 마누라는 심검을 성취한 고수보다 더 강하고, 그 마누라보다 더 강한 사람은 자식을 품에 안고 있는 마누라라네. 그걸 깨닫는 순간 남편의 고난은 시작된다네. 저 녀석도 얼마 남지 않았어.”
이자승은 몸을 돌렸다.
“ 연 공자의 꿈은 황금백수로 알고 있습니다.”
“ 꿈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자승은 낄낄 웃으며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자승과 독고철응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연우강가과 남궁운화는 입맞춤에 몰두하고 있었다.
남궁운화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가 앵속을 복용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피하는 사이에 눈덩어리를 던지면서 그 위로 몸을 날렸고,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얼굴에 쌓인 눈을 치우는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손으로 치우면 입맞춤할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얼굴로 눈을 치웠다.
아마 눈이 그의 눈을 가리지 않았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입맞춤. 몸이 붕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온갖 폭죽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딱히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경험은 결코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득 연우강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다.
마침 연우강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남궁운화는 부끄러움에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바로 그 순간 입 안으로 뭔가가 불쑥 밀고 들어왔다.
남궁운화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놀랐던 것도 잠시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 그것을 맞았다.
또다시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얼굴은 물론이고 옷에 묻은 눈이 전부 녹자 비로소 두 사람의 얼굴이 떨어졌다.
“ 미, 미리 드린 거예요.”
남궁운화는 연우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 뭘 미리 줬다는 거죠?”
“ 얼마 안 있으면 연 공자 생일이잖아요. 그래서.....”
“ 생일 선물?”
“ 네.”
“ 남궁소저 생일도 저랑 같잖아요.”
“ 저도 받은 게 됐잖아요.”
“ 그럼 다른 선물은 필요 없어요?”
“ 네.”
남궁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저는 이걸로는 안 되는데요.”
“ 이, 입맞춤응로 부족하다고요?”
남궁운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입맞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 입맞춤이 부족한단 말입니다. 앞으로도 한 시진 정도는 더 입맞춤을 해야 만족할 거 같습니다.”
“ 누, 눈 속인데 춥지 않을까요?”
“ 절대 춥지 않을 겁니다. 이건 내기해도 좋습니다. 남궁소저.”
“ 전 재산을 걸 거예요?”
“ 물론입니다. 전 내기할 때 언제나 전 재산을 겁니다. 어서요.”
“ 아, 알았어요.”
남궁운화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다시 입을 맞췄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하는 두 사람의 위로 눈꽃이 소록소록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