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99화 (99/232)

제 8장 연우강에게서 가장 끔찍한 무기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조원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조원들은 없었다. 동굴 안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 연우강은 궤짝 안에서 앵속을 꺼내 장사덕에게 약간 덜어주었다.

“ 먹어도 되는 겁니까?”

앵속을 받아든 장사덕은 망설이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 많이 먹지만 않으면.”

“ 그렇군요.”

난주에 들어서면서부터 연우강이 앵속쟁이란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다른 조 조장들은 물론이고 잠룡들도 그를 앵속쟁이라고 비웃는다. 사실 연우강이 앵속쟁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적과 전쟁을 치르는 것도 부하를 다루는 것도, 심지어는 여자를 다루는 것조차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런 그가 앵속쟁이라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믿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의 궤짝에서 나온 하얀 가루, 그것은 말로만 듣던 앵속이었다.

‘ 그가 신은 아니니까.’

장사덕은 앵속 가루를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 이 악물어라!”

장사덕이 앵속을 털어넣자 연우강의 그의 어깨에 꽂힌 화살을 잡으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장사덕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 화살을 뽑을 때는 들어간 형태 그대로 뽑아야 한다. 이리 저리 움직이면 상처가 더 심해진다는 걸 명심해라.”

연우강은 잡은 화살을 사정없이 뽑았다.

“ 으윽!”

장사덕의 입에서 아픈 신음이 흘러나왔다.

연우강이 화살을 뽑아내자 욱일승이 다가와 금창약을 발라 주었다.

“ 두 영감은?”

“ 여기 있다.”

동굴 입구에서 두작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두작군에게로 향했다. 막 동굴로 들어서고 있는 두작군은 생사림 무인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달려가는 낭인들 틈바구니에 섞여 대삼합평으로 정찰을 나갔던 것이다.

“ 어때?”

연우강은 두작군이 다가오자 물었다.

“ 놈들은 세 방향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 숨어 있는 낭떠러지 길을 그들도 알고 있다는 거네?”

“ 함정에 빠진 건 잠룡들이다.”

두작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외는?”

“ 잠룡 구 조가 가운데 길이 아닌 샛길로 빠졌다.”

“ 샛길이 있었어?”

“ 가운데 길과 남쪽 길 사이에 다른 길이 있더라. 십 장 정도 낮게 위치해 있고, 안개가 흐르고 있어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 그래서 단지곡이란 이름이 붙은 건가?”

“ 집게 손가락에 해당하는 길이 없다는 말이냐?”

“ 그렇지.”

“ 일리가 있네.”

“ 윤허는 어떻게 됐지?”

“ 보지 못했다.”

“ 가운데 길로 가지 않았다는 거야?”

“ 그놈은 남쪽이라고 하지 않았냐?”

“ 밀천이 네 가문으로 구성됐다는 건 알아?”

“ 처음 듣는 말이다.”

“ 은밀가, 풍밀가, 수밀가, 환밀가로 구성돼 있어. 은밀가의 가주는 전에 만났던 몽요고, 풍밀가는 몽요와 싸우고 있는 동영 무인들, 수밀가는 지금 밀천을 장악하고 있는 나씨, 환밀가는 사씨가 가주야.”

“ 사씨?”

“ 사유성이 환밀가의 가주라는 뜻이야.”

“ 정말이냐?”

두보관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이들 또한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나도 얼마전에 알았어. 아무튼 그 사실을 윤허에게 알려주고 가급적이면 비열의 길로 가라고 했거든.”

“ 비열의 길은 또 뭐냐?”

“ 전투 도중에 세운 작전은 반드시 지켜야 하잖아. 제 한 목숨 살자고 계획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몸을 피하는 놈을 일컬어 비열한 놈 또는 치사한 놈이라고 부르잖아.”

“ 쉽게 말하면 무인 생명은 끝난다는 말이네?”

“ 윤허 그놈이 가운데 길을 택했다면, 남은 건 파멸밖에 없지.”

“ 그걸 알면서 가급적이면 가운데 길로 가라고 했다는 거냐?”

“ 응!”

“ 나쁜 놈!”

“ 내가 잘못한 거야?”

“ 그럼 그게 잘한 짓이냐?”

“ 내가 뭘 잘못한 거지?”

“ 넌 윤허를 파멸의 길로 인도했잖아, 인마.”

“ 그러니까 그게 나쁜 거냐고.”

“ 몰라서 묻는 거냐?”

“ 난 지금 진지해, 영감.”

“ 진지하다고?”

“ 그렇잖아. 영감. 윤허 그놈은 이번까지 합치면 세 번 봤고, 내 친구도 아냐, 오히려 경쟁자에 더 가까워. 내가 왜 그놈을 걱정해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야.”

“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먼저 건져주는 게 사람의 도리다.”

“ 그래서 그렇게 한 거야.”

“ 무슨 소리야?”

“ 물에 빠진 놈은 그놈이 아니라 그놈 부하들이잖아. 윤허 그놈은 무공이 강하니까 기습 공격을 당한다고 해도 살아남을 거야, 그치?”

“ 그렇지.”

“ 하지만 조원들은 다르잖아. 윤허를 따라간 녀석들 중 절반 이상은 죽게 될 거라고. 난 윤허 그놈에게 명분과 실리 중 어느 것을 택할 건지 질문을 던졌을 뿐이야.”

“ 윤허 그 녀석은 명분을 택했단 말이구나.”

“ 맞아, 영감. 그놈이 명분을 택했다는 건 아주 중요한 거야.”

“ 중요하다는 건 무슨 말이냐?”

“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 적?”

“ 우린 백용퇴에서 무궐 인물인 만경소 누담생을 없앴잖아.”

“ 그래서?”

“ 윤허를 지원해 주는 곳이 무궐이잖아.”

“ 무궐에서 어떤 명령이 내려온다면 설사 잘못된 명령이라고 해도 윤허는 거부하지 못할 거란 말이냐?”

“ 바로 그거야. 무궐의 궐주인 검천제 공손정우가 날 죽이려 할 게 분명하거든.”

“ 왜?”

두작군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 그건 나중 이야기하자고, 그보다 어떻게 할 거야?”

연우강은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 그걸 우리에게 물으면 어쩌라고?”

두작군은 자리에 앉으며 되물었다.

“ 우리에게도 실리와 명분 두 가지 길이 있어. 이곳에 죽치고 앉았다가 전쟁이 끝나면 조용히 섬서성으로 가는 건 실리라고 할 수 있고, 이곳을 나가서 적의 뒤통수를 치는 건 명분을 따르게 되는 거야.”

“ 명분을 따른다고 해도 뒤에서 기습하는 입장이니까 희생이 거의 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철상이 웃으며 말했다.

“ 그건 너희들이 운이 좋아서 그런 거야.”

“ 광랑을 만나서 그런 게 아니고요?”

“ 운을 타ㅗ 났으니까 날 만난 거잖아.”

“ 또 자화자찬 병이 도졌네.”

한편에 앉아 있던 남궁운화가 쫑알댔다.

“ 인정할 건 인정해야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남궁 소저. 그리고 지금과 같은 경우를 두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다고 하는 겁니다.”

“ 최고의 패를 쥐었다는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아마 이번 잠룡강호행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조는 잠룡 십 조가 될 겁니다.”

“ 연 공자는 점수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 저녀석들은 아니잖습니까.”

연우강은 잠룡들을 가리켰다.

“ 그럼 가야지 뭐 하고 있어요.”

남궁운화는 빽 소리치며 수여설과 함께 통로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두 여자가 먼저 움직이자 흩어져 쉬고 있던 잠룡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을 나섰다.

모두가 떠나간 대삼합평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잠룡 십 조 조원들은 그 정적을 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조는 어떻게 나눌 겁니까?”

앞서가던 이철상이 연우강을 향해 물었다.

“ 직진해야지.”

“ 직진이라면?”

“ 가운데 길로 간다는 뜻이야.”

“ 확실한 영웅으로 자리 매김 하려면 전부 도와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닌데, 교랑 너 집안 좋아?”

“ 집안이라면 뭘 말하는 겁니까?”

“ 모모 집안 아들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역시 누구네 집 자식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냐고.”

“ 그런 건 없습니다.”

“ 그럼 배경은?”

“ 배경이 좋았다면 잠룡 십 조로 들어올 이유가 없었겠지요.”

“ 대야벌에서 널 밀어주는 사람은?”

“ 없습니다.”

“ 그럼 영웅이 되겠다는 건 욕심이야.”

“ 그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단 말입니까?”

“ 그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약간의 고적이 있어야겠지. 그게 아니면 너 혼자 밀천을 부숴 버린다거나 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든지.”

“ 영웅이 되는 건 쉽지 않다는 말인군요.”

“ 내가 이끌던 흑랑기는 북로정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교랑. 하지만 그들 중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보국천위장군이 된 주무상밖에 없다.”

“ 그는 군왕세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 바로 그 군왕세자라는 직함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거다. 그 녀석이 군왕세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보국천위장군 같은 직책을 받지 못했을 거다. 녀석과 함께 죽은 흑랑기 천이백 명처럼 말이야.”

“ 쿡! 생긴 대로 살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 허황한 욕심을 가리켜 탐욕이라고 하고, 탐욕에 물든 자가 성공하는 꼴은 아직 못 봤거든.”

“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좀 심했습니다.”

“ 작은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거야. 너무 높은 곳만 쳐다보지 말고 가끔은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그런 여유를 갖고 살면 삶이 훨씬 편해지거든.”

“ 그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 맞아.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고 산다는 건 쉽지가 않지. 그건 나도 인정해.”

어느새 일행은 대삼합평 끝자락에 발을 딛고 있었다. 낭떠러지 길은 장막처럼 둘러쳐진 낮은 절벽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그 사이로 들어가자 바람이 강하게 불어댔다.

“ 폭이 좁군요.”

이철상은 낭떠러지 길로 시선을 주었다. 폭이 이 장(6m) 가량 되고,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르고 있다.

그냥 건너가는 거라면 크게 위험하지 않은 길이지만 싸움을 한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곳이었다.

“ 깊이부터 확인해보자.”

연우강은 바닥에서 돌을 주워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는 천리지청술을 펼쳐서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 허공답보 경공을 펼치지 못한 이상 떨어지면 죽겠군요.”

“  저런 곳에서 적을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우강은 낭떠러지 길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 우선은 가장 강자를 전면에 배치해야겠죠.”

“ 영감들은 앞으로 나와!”

이철상의 말이 떨어지자 연우강은 뒤편에 대고 소리쳤다.

“ 그 다음엔?”

뒤에서 따르던 욱일승 일행이 앞으로 나오자 연우강은 다시 물었다.

“ 그 외는 특별히 할 게 없습니다.”

“ 낭떠러지에서는 공격이 불가능할까?”

“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면 가능하겠지만......”

“ 혹시 잔교라고 알아?”

“ 장안에서 사천까지 절벽 중간에 설치한 다리를 잔교라고 부릅니다.”

“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그 잔교가 상당한 역할을 했어.”

“ 생사림 무인들이 잔교를 만들었을 거라고 보십니까?”

“ 무인이니까 굳이 잔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걸 만드는 건 어렵지 않겠지.”

“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 물론 그래야지.”

연우강의 신형이 낭떠러지 길을 향해 폭사돼 나갔다.

그를 비롯한 잠룡 십 조가 낭떠러지 길을 따라 내달리는 그 순간, 먼저 출발했던 담대무궁과 율한천은 북쪽 낭떠러지 길의 중간 부분에 도착해 있었다.

“ 지금까지는 타원 형태의 길을 북쪽으로 내달렸다면 이제부터는 남쪽으로 향할 차례였다 일행의 선두에 있는 자는 담대무궁과 율한천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달려가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담대무궁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 바람이 너무 세!”

바로 바람 때문이었다.

아래쪽과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매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달려갈 수만도 없었다.

“ 왜 그러는가?”

율한천 또한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한 바람을 걱정하는 담대무궁과는 달리 율한천의 근심은 단전의 내공이었다. 율한천은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껏 초상비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지면을 차서 그 반발력을 이용하여 몸을 날리는 일반 경공과는 달리, 풀잎을 밟고 내달린다는 초상비 경공은 내공 소모가 상당히 심하다. 무인들이 장시간 동안 초상비 경공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율한천은 일반 경공을 펼칠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담대무궁이 초상비를 펼치며 나아가고 있었던 탓이다. 경쟁자인 그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지금껏 초상비를 펼치며 왔었고, 조금씩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ㄷ. 그 첫 징후가 바로 호흡이었다.

움직임에 맞춰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그 조화가 깨지며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다. 그런 사실을 담대무궁이 모를 리가 없었다.

“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네.”

담대무궁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 자네도 느꼈는가?”

“ 그렇네.”

율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작전이 완벽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저항조차 없이 이곳까지 오게 되자 문득 잘못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계곡으로 갔던 연우강 일행이 충분히 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조심해라, 길이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불안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느닷없이 낭떠러지 길이 반원을 그리는 것처럼 급하게 휘어지는 부분이 나오자 율한천은 뒤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소심한 녀석.’

담대무궁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어렸다.

그가 하메 갈 사람으로 사유성이 아닌 율한천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장으로 뽑힌 열 명의 잠룡 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자들을 조사한 결과 윤허와 율한천, 사유성 세 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세 명을 없애기 위해 야궐에서 나섰지만 범천조화신기와 마총 장보도가 나타는 바람에 암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그 일을 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셋 중 가장 강한 윤허를 없애는 게 순서지만, 윤허는 눈치가 빠르고 무공 또한 녹록치 않다. 그 다음은 사유성인데, 그는 특이하게도 무궐과 군마련에 줄을 대고 있는 자였다. 숙부가 련주로 있는 군마련과 줄을 대고 있는 자라면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될 자였다.

그러다 보니 남는 자는 율한천밖에 없었다.

‘ 율한천.... 너는 대야벌로 돌아가지 못한다.’

전면을 노려보는 담대무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산을 오를 때부터 초상비를 펼친 이유가 바로 율한천 때문이었던 것이다.

슉! 슉슉! 슉슉! 슉!

바로 그 순간 전면에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 헉!”

“ 화살이다!”

율한천의 입에서는 신음이, 담대무궁의 입에서는 화살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외침보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화살의 속도가 더 빨랐다.

담대무궁이 강기막을 펼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비명과 함께 수십 명의 잠룡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 매, 매복이다!”

그제야 율한천은 고함을 내질렀다.

“ 서두르지오. 율형, 멈추면 전부 당하오.”

담대무궁은 율한천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사실 이곳의 매복은 그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숨어 있는 이 길은 오십 면 전 지도에만 표시가 돼 있고, 그 사실을 몇 번에 걸쳐 확인했다. 그런데 적이 매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 유명계도 알고 있었단 .... 그랬군.’

담대무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용미곡 산을 통해 올 때 너무 쉬웠던 이유가 바로 이곳의 매복 때문이었다. 숨어 있는 길은 자신뿐만 아니라 적장인 유명계도 알고 있었던 거였다.

‘ 최악의 경우엔 첩자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겠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아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많은 희생이 날 건 뻔했다. 희생이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첩자에게 돌리면 작전을 세운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연우강, 네놈이 첩자다, 응?’

내심 연우강을 첩자로 몰 생각을 하고 있던 담대무궁의 눈에 이채가 서렸따. 율한천이 생성한 강기막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율한천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이럴 땐?’

“ 활을 쏘는 놈들을 없애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고 마네.”

담대무궁은 율한천을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물론이네, 담대 형.”

율한천은 전 내공을 끌어올려 강기막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적은 화살을 쏘는 자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휙! 휙휙! 휙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낭떠러지 쪽에서 수십 명의 검은 인영이 솟구쳐 올라왔다. 순식간에 삼 장 높이로 올라간 검은 그림자들은 야조처럼 잠룡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 적이다!”

“ 적이다!”

잠룡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어올려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에 모든 내공을 실을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비슷한 실력이라면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가 당하는 건 무림의 불문율이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잠룡들과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던 무인들이 적과 한 몸이 돼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하지만 떨어진 자들은 담대무궁 일행뿐이었다.

잠룡들을 공격한 생사림 무인들은 하나같이 허리에 팔뚝 두께의 줄을 매고 있었던 것이다.

“ 줄이다. 놈들은 줄을 매고 있다!”

담대무궁은 뒤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이번 공격으로 인해 담대무궁을 따르던 자들은 절반 이상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후였다.

“ 전력으로 질주하라! 전력으로 질주하라!”  없습니다.”

담대무궁은 전 내공을 끌어올려 전방으로 내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 같이 갑시다. 담대 형.”

율한천은 담대무궁을 따르며 소리쳤다.

“ 전력을 다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이곳에 뼈를 묻게 되오. 율형! 우리가 길을 터야 하오!”

담대무궁은 율한천을 향해 버럭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어느새 두 사람의 눈앞에 활을 들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담대무궁은 그들을 향해 돌진하며 무적뇌화결을 펼쳤다. 그의 검에서 새파란 뇌전이 폭사되고, 앞을 막고 있던 자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떨어졌다.

“ 뭐 하고 있는 거요, 율 형!”

“ 알았소.”

담대무궁에 이어 율한천의 공격이 검은 옷을 걸친 자들에게 작렬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빌어먹을!’

비명을 지르며 대여섯 명이 떨어져 내렸지만 율한천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단전이 급속하게 비어가고 있었다.

“ 일단 소삼합평까지만 가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거네. 율형, 힘을 내세.”

“ 난 걱정 말게. 담대 형.”

율한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권강의 세기는 심지가 다한 촛불처럼 힘을 잃었다.

“ 더 이상은......”

“ 율형! 강기막을 펼치게.”

더는 무리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담대무궁은 소리를 지르며 율한천 앞으로 나갔다. 마치 율한천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처럼 보였고 율한천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 고맙네......”

휙!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율한천은 시선을 돌렸다. 왼편 낭떠러지에서 솟구친 검은 인영이 검과 하나가 된 채 폭사돼 오고 있었다.

그는 전 내력을 끌어올려 양손을 쳐냈다.

퍼억!

율한천의 장력은 정확하게 사내의 가슴에 작렬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사내는 가슴이 으스러진 채 뒤편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율한천의 손에서 뻗어나간 그것은 강기가 아니라 장력, 사내를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 크윽!”

사내는 낮게 비명을 지르며 율한천의 가슴에 검을 쑤셔 넣었다.

“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율한천은 자신을 공격한 사내와 한 몸이 돼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 율 형!”

담대무궁은 율한천의 이름을 부르며 검을 내던졌다. 그의 검은 율한천과 한 몸이 돼 떨어지고 있는 사내의 등으로 파고들었다.

“ 크아악!”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허리에 감고 있던 줄이 끊어지면서 두 사람의 신형은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율한천이 당했다! 서둘러라!”

“ 서둘러라!”

“ 죽여라!”

율한천마저 죽었다는 말에 자극을 받은 듯, 살아남은 잠룡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무섭게 질주했다.

북쪽으로 향했던 담대무궁 일행이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가운데 길로 접어들었던 이지약 일행은 비교적 편한 상태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이 아직 충돌이 없는 이유는 이지약의 지시로 이동 속도를 늦췄기 때문이었다. 이지약을 비롯한 잠룡 칠 조 일행은 행렬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 할아버지는 후미로 가고, 환노는 전방으로 가주세요.”

“ 알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룡 몇몇과 구림세가 출신 무인들을 이끌고 자리를 이동했다.

“ 자세를 낮춰라! 낭떠러지 아래쪽에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다. 주의해라!”

이어 이지약은 고함을 내질렀다.

“ 존명!”

잠룡들을 비롯한 낭인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앉았다.

[ 할아버지!]

이지약은 뒤편으로 간 이자승을 불렀다.

[ 말하거라!]

[ 그쪽 상황은 어때요?]

[ 구 조가 보이지 않는다.]

[ 그럼 우리밖에 없는 건가요?]

[ 그런 모양이다.]

[ 뒤쪽엔 적이 없을까요?]

[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이자승은 전음을 보내고는 그 자리에 엎드려 바닥에 귀를 댔다. 그리고는 천리지청술을 끌어올렸다. 바닥을 타고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 적이다, 묘아야.]

고개를 들고 전음을 보냈다.

[ 적이라고요?]

[ 앞뒤로 포위할 모양이구나.]

[ 얼마나 떨어져 있죠?]

[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대한 자세를 낮춰서 천천히 나아가도록 해라.]

[ 알았어요. 할아버지.]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원들을 보았다.

앉은 자세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일제히 이지약을 보았다.

그들을 잠시 쳐다보던 이지약은 그 자리에 엎드렸다.

팔 하박을 바닥에 대고 두 다리는 쭉 편 다음 무기를 두 팔 사이에 걸쳤다. 그러고는 고개만 약간 든 채 천천히 기어갔다.

의아한 얼굴로 이지약을 쳐다보던 잠룡들도 곧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녀 주변에서부터 시작한 엎드린 자세는 앞뒤로 이어졌고, 곧 낭떠러지 길 위쪽에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휘이익!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낭떠러지를 후려치고, 기어가는 무인들을 덮쳤다. 하지만 누구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공답보를 펼치는 이지약의 무공을 계곡에서 목격했고, 그런 그녀가 극도로 조심한다는 것은 이곳 낭떠러지 어딘가에 적이 매복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허공답보를 펼치는 고수가 몸을 사리는데 그녀보다 낮은 무공을 지닌 그들이 경고망동을 할 수는 없었다.

잠룡 칠 조와 삼백 여 장 떨어진 뒤쪽.

강사인이 이끄는 생사림 무인 삼백여 명이 은밀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선두에서 무인들을 이끌고 있던 강사인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림주로부터 듣기로는 지금 가고 있는 낭떠러지 길은 십 리 가량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 리 지점에 매복이 있으니 지금쯤 비명이나 칼부림 소리가 들려와야 옳다. 그런데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 빌어먹을. 좀더 자세히 말해주지.’

강사인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문득 림주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대야벌에 있을 때만 해도 림주는 총관인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대주들에게도 반 공대를 하며 의견을 구하곤 했다. 그랬던 그가 손가락 발가락을 잃은 상태로 대야벌을 탈출한 이후 조금씩 말을 아끼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의견을 물어오지 않았다.

손자와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그동안 이뤘던 많은 것들을 잃은 그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섭섭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적이 쳐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변경된 작전을 알려준 것은 물론이고 아군의 매복 위치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림주가 손가락으로 대충 짚은 곳이 중간 지점이라 오 리 정도가 아닐까 하고 짐작을 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 소삼합평 입구에 매복하고 있는건가?’

파앗!

문득 귓전으로 뭔가가 파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길 가장자리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 잘못 들었나?’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낭떠러지 길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조금 전 소리가 흘러나왔던 곳에서 둥근 물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들은 연우강을 비롯한 지옥의 노인들이었다.

위쪽을 잠시 바라보던 연우강은 나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파앗! 파앗!

그의 수신호가 떨어지자 노인들은 손을 절벽에 박아 넣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삼백여 장을 이동한 연우강 일행은 다시 그 자리에 멈췄다. 천리지청술을 펼치고 이동하던 그들의 귓전에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 욱 영감, 가서 알아봐.]

연우강은 욱일승에게 혜광심어를 보내고 천천히 위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위쪽에서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미처럼 천천히 기어 올라간 그는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 헉!”

“ 쉿!”

눈이 마주친 사내가 입을 쩍 벌리자 연우강은 재빨리 마라천력을 일으켜 사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우강과 시선이 마주친 사내는 칠 조 잠룡으로 구림세가 무인이었던 것이다.

[ 이 소저는 어디 있소?]

연우강은 전음으로 물었다.

불쑥 솟아 오른 사내가 연우강임을 알아차린 잠룡은 뒤편을 쳐다보더니 전음을 보냈다. 곧 뒤쪽에 있던 이지약이 엉금엉금 기어서 연우강 앞으로 다가왔다.

“ 어떻게 된 거예요?”

이지약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 낭떠러지를 타고 이동 중입니다.”

“ 지주공?”

“ 지주공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바위벽에 손을 박아 넣고 이동 중입니다.”

“ 뒤따른 자들은 얼마나 떨어져 있죠?”

“ 삼백 장 뒤편에 있습니다.”

“ 매복은요?”

“ 오십 장 가량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어떻게 하죠?”

“ 세 사람씩 아주 은밀하게 통과하도록 하세요. 지금처럼 가면 될 것 같습니다.”

“ 매복은 그들밖에 없을까요?”

“ 우리가 좀더 나가볼 생각입니다.”

“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아래쪽에 있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지나가야 합니다.”

연우강은 아래로 스르르 내려갔다.

“ 걱정 마세요.”

이지약은 빙그레 웃으며 각 잠룡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지시는 앞뒤로 빠르게 전달됐다. 곧 잠룡과 낭인들은 최대한 몸을 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멈췄던 일행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 연우강과 노인들은 생사림 무인들이 매복해 있는 곳 아래쪽으로 우회하여 지나쳤다.

“ 허리에 줄을 매달고 있네.”

적을 둘러보고 왔던 욱일승은 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 좋은 방법이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노인들은 조심스럽게 위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낭떠러지 길을 삼 장 남겨둔 지점에서 연우강은 손을 들어 일행의 동작을 막았다.

“ 에이! 이것들은 언제 오는 거야?”

낭떠러지 길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오른편으로 빠르게 이동한 연우강은 위쪽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약 오십 여 명 정도가 화살을 시위에 건 채 도열해 있었다.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 어떤가?”

욱일승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오십 명 정도의 궁수가 오 열 종대로 모여 있어.”

“ 우리보다 숫자가 많고, 오 열 종대로 있으면 소리 없이 해치우는 게 불가능하네.”

욱일승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까지 온 이유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궁수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아니 없애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과 바꿔치기를 할 셈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리 없이 궁수들을 없애야먄 한다. 적의 수가 너무 많고 한꺼번에 몰려 있어 소리 없이 해추는 건 불가능했다.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연우강은 절벽에 대고 그림을 그렸다.

“ 무슨 그림인가?”

“ 길 폭은 이 장이고 길이는 오 장 정도잖아. 만일 영감들이 좌우로 나뉜 상태에서 이렇게 강기막을 쳐버린다면?”

방금 그려놓은 곳 위쪽으로 둥글게 반원을 그렸다.

“ 강기로 소리가 새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에 없애버린단 말이에요?”

“ 괜찮은 방법이네.”

수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 좋군.”

이어 갈인효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쪽에 있는 노인들에게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어느 정  “ 시작하자고.”

욱일승은 인원 절반을 이끌고 궁수들이 모여 있는 십여 장 뒤편까지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낭떠러지 길을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노인들 절반이 모습을 감추자 연우강과 두작군 일행은 낭떠러지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 도착했네. 연공자.]

잠시 후 건너편에서 욱일승의 혜광심어가 들려왔다.

[ 시작해.]

욱일승에게 혜광심어를 보내고 두작군에게는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절벽에 손을 박아 넣은 두작군 일행은 일제히 내기를 끌어올렸다. 지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삼십 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그들은 눈빛만 보아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다. 이 장 건너편에 있다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욱일승과 수천월이 먼저 내기를 끌어올려 막을 치고 천천히 내기를 끌어올리며 옆에 있던 막을 하나로 합쳐갔다.

연우강 또한 막 안쪽으로 들어간 형국이었다.

잠시 후 그들 위쪽으로 투명한 막이 형성되며 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물론이고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도 차단했다.

“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은데......”

문득 바람 소리가 사라지자 궁수 중 한 명이 의아한 얼굴로 옆에 있는 사내를 보았다.

“ 그럴 수밖에 없어. 여긴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니까.”

“ 헉!”

“ 억!”

궁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파앗!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의 가슴이 반동을 하고 그의 목 주위에 걸려 있던 백팔 개의 사망정주가 허공을 갈랐다.

“ 저, 저, 적... 크악!”

“ 아악!”

“ 으아악!”

벌떡 일어났던 자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고, 미처 대응할 생각도 못하고 앉아 있떤 자들 또한 사망정주를 피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오십여 명의 궁수들이 죽임을 당하고 강기막 안은 정적으로 들어찼다.

“ 끝났는가?”

“ 잠시만 더 기다리시오.”

연우강은 시체들이 가지고 있던 활과 화살을 한편으로 치운 다음 백옥수를 끌어올려 시체는 물론이고 바닥의 피까지 전부 얼려 버렸다.

“ 됐소.”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자 소리를 차단했던 강기막이 걷히고 노인들이 위로 올라왔다.

“ 아무리 봐도 그놈들은 너무 끔찍해.”

위로 올라온 욱일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무기보다 더 끔찍한 건 저놈의 머리지.”

시체를 꽁꽁 얼리는 것이 피 냄새가 퍼져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함일 테다. 녀석은 싸움을 할 때도 도무지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대단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 일단 시체를 치우자고.”

연우강은 백옥수로 얼린 시체를 낭떠러지 아래로 굴려버렸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일행은 연우강을 보았다.

“ 지금부터는 우리가 궁수가 돼야지.”

그는 싱긋 웃으며 한편에 치워두었던 활과 화살을 가리켰다.

“ 쿡! 완전 예술이네.”

욱일승은 감탄사를 흘렸다.

조금 전 두작군이 했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연우강에게서 가장 무서운 건 그의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암기가 아니라 그의 머리였다.

“ 욱 영감은 가서 이곳을 장악했다고 전해주고 와.”

“ 알았네.”

욱일승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지약 일행이 오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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