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13화 (113/232)

제 4장 돈 찾으러 왔다.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대전에서 울려 퍼졌다.

호흡과 정확하게 일치하여 움직이는 발자국으로 보건대 왜소한 사내는 상당한 내공을 지닌  무인처럼 보인다.

천천히 울려 퍼지던 발자국 소리가 한 곳에서 우뚝 멈췄다. 석문 앞에 선 사내는 밀천의 총관인 죽혼검 성군이었다. 성군은 잠시 석문을 쳐다보다가 오른편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쇠막대를 아래로 내렸다.

그르릉!

둔탁한 소성과 함께 석문이 천천히 회전했다.

쿠웅!

반 바퀴 회전한 석문이 멈춰 서자 이번엔 이십여 장 길이의 회랑이 나타났다. 좌우 측에는 사찰로 들어설 때 천왕문 안에 세워진 사천왕상처럼 각각의 무기를 든 수많은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회랑 안쪽은 깊은 호수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처럼 완전한 침묵에 빠져 있다. 조각상 주변 어둠 속에 포진해 있는, 천주 호위대인 밀천금의대 무인들 때문이다.

“ 총관 성군이오.”

성군은 어둠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 들어가시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회랑을 가득 채우고 있던 침묵이 걷혔다.

성군은 성큼성큼 회랑을 지나갔다.

회랑 끝에는 또 다른 문이 나 있었다. 이번 문은 나무로 된 문이었다.

성군은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 접니다. 천주님.”

“ 들어오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성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천후는 화초에 물을 뿌려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닌가?”

“ 오늘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주님.”

“ 급한 일인가?”

“ 밀림에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 침입자?”

나천후는 의아한 얼굴로 성군을 보았다.

밀림은 총단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죽림의 다른 말이다. 간혹 유람 나왔던 자들이 들어오곤 하지만 그들은 진식의 작용으로 인해 자신들도 모르게 죽림을 빠져나간다. 그런 자들이 들어왔다면 보고를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이른 아침.

유람 나온 자들이 있을 상황도 아니다.

성군이 보고하러 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터였다.

“ 두 명입니다.”

“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 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 줄이라.....”

나천후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밀림에 설치된 현기환사죽영진은 눈과 머릿속을 속이는 진이다. 환영을 만들어 내는 대부분의 진식은 눈을 속이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직접 만져보는 것으로 진식의 설치 유무를 알아차리곤 한다.

그러한 단점을 보완한 진이 바로 현기환사죽영진이었다. 현기환사죽영진은 촉감 자체를 만들어내는 진식이기 때문에 설사 만져본다고 해도 환영이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대나무를 잘라 흔적을 남기려고 해도, 잘려나간 대나무가 진식에 의해 금세 생겨나기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진식의 생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통과하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들 또한 그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년 전인가 진식을 뚫고 들어온 자가 있었다. 그자는 오감은 완전하게 닫은 채 무소처럼 돌진하여 밀림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들 또한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줄을 사용하는 자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 그것도 방법이네.”

나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오십 장 이상 되는 줄을 화살 끝에 묶어 쏜다면 화살은 직선으로 날아갈 테고, 줄을 따라 움직이면 진식에 현혹되지 않고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겠구먼.”

나천후는 성군을 보았다.

“ 그렇습니다. 천주님. 어떻게 할까요?”

“ 밀림을 지키는 자들이 무영환사대든가?”

“ 그렇습니다. 천주님.”

성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환사대는 전마 사유성이 가주로 있는 환밀가의 정예였다.

“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진식을 믿고 지켜보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천주님.”

성균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 재미있지 않아?”

연우강은 놀란 눈으로 염자생을 보며 물었다.

목표지점을 정하고, 마라천력을 끌어올려 던지게 되면 뇌섬은 직선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죽림 안쪽에서 확인한 뇌섬은 오른편으로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다.

진식에 의한 착시 현상으로 나타난 광경일 테지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전 오감을 닫고 돌진했습니다.”

“ 그러니까 팔을 잃지.”

혀를 찬 연우강은 사망혈삭을 조금씩 감아 들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삼십 장 정도를 들어갔을 때 두 사람 앞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그런데 뇌섬은 바위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거대한 바위가 환영이라는 의미였다.

바위 앞에 멈춰 선 연우강은 손을 뻗어보았다.

딱딱한 바위 느낌이 그대로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 미치겠군.”

연우강은 어이없는 얼굴로 바위를 노려보았다.

낚싯바늘에 고기가 물렸을 때 낚싯대를 쥔 손에 느낌이 오는 것처럼 뇌섬도 날아가면서 부딪치는 것들에 대한 느낌이 머릿속에서 감지된다. 더불어 이런 정도의 바위를 뚫고 지나가려면 상당한 힘이 요구된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대나무를 자르고 지나가는 느낌 외에는 어떤 느낌도 오지 않았다. 결국 질감마저 느껴지는 바위가 환영이라는 의미였다.

“ 이 바위가 환영이란 말입니까?”

염자생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 그래, 귀노. 이놈은 가짜야.”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없애야 해요, 우강.”

귓전으로 몽요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기환사죽영진에 대해 기술된 구절이 떠올랐다. 진을 구성하는 매개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장애물도 그 중 하나라고 하였다. 만일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고, 눈앞에 바위가 있다면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바위가 돌아가게 되면 그곳은 지금껏 왔던 길과 달리 밖으로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 귀노!”

연우강은 염자생을 불렀다.

“ 얼마나 익혔다고 했지?”

“ 구 성까지 익혔습니다.”

“ 펼쳐 봐.”

“ 오른쪽부터 부수겠습니다.”

염자생은 등에 매고 있던 광인을 뽑아들었다.

파앗!

지면을 차고 오른 염자생의 신형이 바위와 같은 높이의 이장 높이에서 멈췄다.

“ 이야합!”

잠시 호흡을 고른 염자생은 광인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까까깡!

광인으로부터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검붉은 고리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바위 오른편을 강타했다. 그것은 구유잔백일천도의 일식인 구유만환이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검붉은 고리가 광인에서 쏟아져 나와 바위 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쾅쾅쾅!

땅속 저 깊은 곳에서 뭔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흙더미와 대나무 뿌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더불어 바위의 오른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바위를 없애버린 염자생은 허공을 차고 왼편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역시 구유만환이 펼쳐지고 절반 가량 남은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역시 천마의 무공답네요.”

몽요는 놀란 얼굴로 연우강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전력을 다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일 장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나고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주변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남은 것은 연우강의 허리춤과 연결돼 있는 사망혈삭이 파고들어간 부분뿐이었다.

“ 진식을 구성하는 매채체라면 뭔가 변화가.....”

스스스! 스스스!

연우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그러더니 안개가 걷혀 가는 것처럼 주변이 투명하게 바뀌었다. 마치 얇은 막을 벗겨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조금 남아 있던 바위도 사라졌어요, 우강.”

몽요의 속삭임에 연우강은 사망혈삭으로 시선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망혈삭은 바위를 관통한 채였는데, 지금은 사망혈삭만 남아 있다.

“ 이곳을 구성하던 진식의 매개체가 사라졌다는 말인가요?”

“ 그럴 거예요, 우강.”

“ 그럼 일단 이곳에 있는 바위를 전부 없애면 되겠네요.”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망혈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또다시 오 장 가량을 갔을까. 이번엔 이 장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나타났다. 사망혈삭은 그 사이를통과하고 있었다.

“ 차앗!”

바위를 발견하자마자 염자생은 몸을 날려 구유만환을 펼쳤다. 먼저 오른편 바위를 없애고, 이어 왼편 바위를 없애자 조금 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 장 거리를 전진하자 또다시 바위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맨 처음 없앴던 바위와 비슷했다.

그들은 바위를 없애고 계속 전진했다.

“ 위로 올라가 보세요.”

뇌섬이 있는 부분에 당도한 연우강은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몽요를 향해 말했다.

“ 알았어요, 우강.”

몽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옆에 있는 대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대나무 끝까지 올라간 그녀는 오 장 가량을 더 날아올라 죽림을 살폈다.

“ 역시.”

몽요는 빙그레 웃었다.

아래쪽에 해조가 나풀거리는 바다는 다른 곳보다 진한 색을 띠는 것처럼 죽림도 색이 달랐다. 바다와는 반대로 죽림은 색이 연해져 있는데, 색이 연해진 부분의 넓이는 직경 이십 오 장 가량 돼 보였다.

“ 이제야 알겠네.”

몽요는 밝은 얼굴로 아래로 내려갔다.

“ 알아냈어요. 우강!”

그녀는 곧바로 연우강을 향해 날아가서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설명해 봐요.”

“ 알았어요.”

아래로 내려온 몽요는 수북이 쌓인 대나무 잎을 걷어내고 그림을 그렸다. 동체는 없고 막대기만 움직이는 광경은 괴기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바닥에 그린 그림은 후천팔괘도였다.

“ 그거 팔괘도잖아요.”

몽요가 그린 그림을 살피던 연우강이 말했다.

“ 그래요, 우강. 우리가 없앤 네 개의 바위는 바로 여기에 해당해요.”

몽요는 정남쪽 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 그럼 우리가 없앴던 그 바위들이 팔괘 문양을 따라 배치돼 있다는 말인가요?”

“ 그래요, 이 팔괘도를 따라 가면서 바위를 없애면 현기환사죽영진은 파훼돼요.”

“ 진식이라면 기본적으로 사문과 생문이 있어야 하는 걸로 아는데, 여긴 그런 게 없어요?”

전에 동정호 지하로 들어갈 때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 현기환사죽영진이 소극적 방어진이라서 그래요.”

몽요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극적 방어진이란 말의 의미를 그동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진식을 직접 대하고 나자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소극적 방어진은 뭔닙까?”

“ 적극적 방어진을 생각해 보세요, 우강.”

“ 적극적 방어진은 들어온 자를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하고, 소극적 방어진은 들어오는 자를 밖으로 유도하기 위해 설친한다는 거군요.”

몽요가 말한 적극적 방어진이란 생문과 사문을 만들고,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없애는 진을 말한다.

무덤처럼 절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하는 진, 즉 살인멸구를 위한 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밀천 총단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장소에 총단이 위치해 있다면 적극적인 방어진을 설치하겠지만 이곳 군산은 유람객도 꽤 들르는 곳이다.

길을 잃어 죽림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전부 없애게 되면 이곳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될 테고 관이 됐든 무림 세력이 됐든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밀천 총단은 금세 들통나고 만다.

“ 총단을 발견할 위치까지 들어오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 그렇군요. 그럼 다시 오십 장을 전진해 볼까요?”

연우강은 눈을 감았다.

“ 눈은 왜 감는 거죠?”

“ 뇌섬은 제 시선을 좇아 날아갑니다. 제가 보는 직진 방향은 저곳입니다.”

연우강은 손을 들어 전면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전면은 몽요가 보고 있는 방향과 같았다.

“ 하지만 오감을 완전하게 닫아버리면 그때부터는 제 감각이 아니라 뇌섬이 날아가는 곳이 직진 방향이 됩니다. 아마 눈에 보이는 건 직선이라고 해도 실제는 곡선으로 틀어져 있을 겁니다.”

번쩍!

연우강은 마라천력을 끌어올리며 뇌섬을 쏘았다.

“ 맙소사!”

뇌섬을 좇던 염자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연우강의 허리춤에서 쏘아진 뇌섬은 급격하게 오른편으로 꺾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직진 방향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눈에 보이는 대로 직진하게 되면 진식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 역시....”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망혈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십 장 가량 걸어갔을 때 염자생이 우뚝 멈췄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지름이 삼 장 가량 되는 공터 앞이었다.

“왜 그래?”

연우강은 염자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 여깁니다.”

염자생은 공터로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 왼팔을 잃은 곳?”

“ 네.”

염자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곧 나타나겠네.”

연우강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 남쪽이 파훼됐습니다. 천주님.”

성군은 심각한 얼굴로 보고했다.

“ 전체 진식에 미치는 영향은?”

“ 아직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자들이 진의 매개체가 바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천주님. 그렇지 않다면 바위를 없앨 리가 없습니다.”

“ 정체는 알아냈는가?”

“ 아직.....”

성군은 고개를 저었다.

“ 무슨 일이냐?”

그때 문이 열리며 나천후의 조부인 천붕대야 나적리가 들어왔다.

“ 밀림에 침입자가 들어왔답니다.”

나천후는 지금까지 들어온 보고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설명했다.

“ 그러니까 화살에 줄을 묶어 쏘는 방식을 이용해서 들어오고 있다는 말이냐?”

“ 그런 모양입니다. 조부님.”

“ 이곳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온 자라는 말이구나.”

“ 그런 것 같습니다.”

“ 어떻게 처리할 거냐?”

“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자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제거해야지요.”

나천후는 성군을 보았다.

“ 환수존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환수존 사군양은 사유성의 작은 할아버지로, 대야벌로 들어가 있는 사유성을 대신하여 환밀가를 다스리고 있는 자였다.

“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성군이 나가자 나적리가 입을 열었다.

“ 전혀....”

나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범천조화신기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동정호 어딘가에 밀천 총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잖아 개파대전을 할 거라는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인데, 밀천 총단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다. 물론 대야벌 같은 거대 세력에서는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기에 밀천을 찾아 나설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을 보내야 옳다.

그런데 밀림 안으로 들어온 자는 달랑 두 명.

잡아서 문초를 하기 전에는 밀림으로 들어온 복적을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 그건 잡아오면 알게 될 테고, 그보다 지금 호남에 율령궁이 몽땅 들어와 있다고 하던데, 그들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느냐?”

나적리는 화제를 돌렸다.

“ 수시로 장소를 바꾸고 있어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칠할 이상은 파악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에게서 온 정보는 없습니까?”

“ 우담보가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연락이 왔다.”

“ 우담보까지 왔단 말입니까?”

나천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대야벌에서 펼치고 있는 ‘생쥐 박멸 작전’의 표면적인 이유는 하오밀문이지만 그들이 실제 얻고자 하는 효과는 무림에 대한 경고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만오천여 명을 출병시킨 것도 부족하여 궁주인 우담보까지 오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대야벌 율령궁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 혹시 말입니다.”

나적리를 보는 나천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 말하거라.”

“ 그들이 노리는 목표가 중원 무인들이 아니라 우리이고 율령궁이 선발대에 불과하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조부님.”

“ 그런 의도가 숨어 있다면 그가 연락을 해왔을 것이다.”

“ 하지만 지금껏 율령궁 무인들은 한 성에 일 개월 이상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한 달 보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하오밀문 무인들이 호남에서 본격적으로 저항을 시작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 그렇다고 해도 율령궁의 행보는 너무 느슨합니다.”

“ 설마 그를 의심하는 거냐?”

“ 요즘 들어 과거에 비해 정보의 양이 줄어들었습니다. 조부님.”

“ 범천담대세가가 멸망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 그렇다고 해도.....”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두 사람은 대화를 중단했다.

“ 들어오게.”

나천후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에 나갔던 성군과 수염을 탐스럽게 기른 노인이었다. 사유성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자가 바로 환수존 사군양이었다.

“ 어서 오시오.”

나천후는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 첩지가 와서 가져왔습니다.”

성군은 자리에 앉기 전에 전서 통을 나적리에게 건넸다. 붉은색 수실로 묶은 그것은 나적리나 나천후 아니면 열어볼 수 없는 비밀 전서였다.

“ 두 명이 밀림으로 침입해 들어왔다고 하네.”

나적리는 대롱을 내려놓고 사군양을 보았다.

“ 저도 보고 받았습니다. 태상천주님.”

“ 가급적이면 생포했으면 좋겠네.”

“ 생포라면 어느 선까지....”

“ 머리만 살아 있으면 되네.”

“ 알겠습니다. 태상천주님. 그럼.”

사군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저도 나가보겠습니다.”

뒤따라 성군도 일어났다.

“ 특별한 상황이 있으면 보고해 주게, 총관.”

“ 알겠습니다.”

성군은 두 사람에게 포권을 취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나적리는 대롱 뚜껑을 열고 첩지를 꺼냈다.

< 동창에서 옥처인과 양도욱에 대한 체포 명령서를 발부함. 기한은 두 달임. 조만간 대규모 벌내쟁투가 예상됨.  뇌>

첩지를 다 읽은 나적리는 나천후에게 건넸다.

“ 대야벌 입장에서는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를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 그렇다.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 기회라면.... 이번에 합류한 은밀가 무인들을 보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그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알겠습니다. 조부님. 원장을 만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그나저나 어떤 녀석들이 들어왔는지 궁금하구나.”

나적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창밖에는 집채만 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겉모습은 바위 같지만 실상은 밀천 총단 각 건물의 지붕이다.

저런 곳에서 천여 년 넘게 살아왔다.

‘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이제 우린 밖으로 나갈 것이다.’

나적리는 주먹을 지그시 말아 쥐었다.

스스스! 스스스! 스스슥!

어찌 들으면 바람 소리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뱀이 기어가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다. 반 각 전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섬뜩한 소리는 주변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연우강과 염자생의 얼굴은 태연했다.

[ 몽요, 들어갈 수 있겠어?]

연우강은 주변을 살피며 전음을 보냈다.

[ 나오는 자들을 따라 들어가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봐요.]

몽요는 전음을 보내고 연우강에게서 멀어졌다.

몽요가 떠나자 연우강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 귀노! 주변을 정리해!”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염자생의 광인에서 검붉은 색의 고리가 튀어나와 주변을 휩쓸었다.

“ 빌어먹을!”

염자생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수십 그루의 대나무가 쓰러지고 십 장 가량이 초토화 됐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진의 매개체였던 바위를 부술 때와는 또 달랐다. 빌어먹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잘려나갔던 대나무들이 다시 하나둘 나타나며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악!

공기를 가르며 차가운 기운이 염자생과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극고한 환술로 몸을 숨긴 무영환사대 대원의 검이었다.

“ 전엔 당했지만 이번엔......”

염자생의 신형이 반 걸음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번쩍 들어 올렸던 광인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마치 허공이 갈라진 것처럼 전면에 쫙 갈렸다. 그리고 그 갈라진 부분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휙!

“ 차앗!”

염자생의 신형이 불쑥 이 장 가량 뛰어올랐다.

허공으로 솟구친 그는 일 전면을 향해 사정없이 광인을 휘둘렀다. 광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얼마나 강한지 푸른색 대나무들이 검게 물들어갔다.

퍽! 퍽퍽퍽! 퍽!

광인에서 쏟아져 나온 검붉은 고리가 전면을 휩쓸면서 둔탁한 소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 큭!”

“ 컥!”

“ 윽!”

드디어 비명이 들려오자 염자생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물렸다. 적을 없앴는데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으면 그것처럼 허전한 것은 없다. 그런데 처음과는 달리 이번엔 비명이 들려온 것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그는 질겁했다.

느닷없이 시뻘건 줄이 눈앞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연우강의 무기인 사망혈삭이었다.

사망혈삭은 연우강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염자생은 급하게 아래쪽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여력을 빌어 방향을 바꿨다.

스악!

간발의 차이로 붉은 줄이 발 밑을 스쳐 지나갔다.

“ 절 죽일 참입니까?”

염자생은 볼멘소리를 지르며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 사방 천지에 적이야. 귀노. 아군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파앗!

연우강의 신형이 천천히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가 올라가는 와중에도 사망혈삭은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지름이 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회오리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붉은 줄에 닿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잘려나갔다. 대나무가 잘려나가고 대나무 사이에 은신해 있던 무인들의 몸통이 잘려나갔다.

철컥!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연우강은 사망낭조를 손가락에 끼웠다. 아홉 개의 사망낭조를 저눕 끼운 그는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대나무 숲 곳곳에서 수십 명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어느새 몸과 함께 돌고 있던 뇌섬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 흔적만 쫓아가면 총단에 도착하겠네.’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멀기를 노리는 매처럼 흔적이 감지된 곳을 향해 폭사돼 갔다.

“ 같이 갑시다.”

연우강이 폭사돼 가자 염자생은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려 그를 따랐다. 몸을 날려 가는 그는 광인을 번적 치켜든 채였다. 연우강의 양손이 전면에 아홉 줄기의 검을 선을 남기는 순간 염자생은 들어 올렸던 광인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카캉! 크크킁!

악마가 울부짖는 듯한 소성이 광인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초승달 형태의 검은색 강기가 쏟아져 나와 방금 연우강이 양손을 휘둘렀던 곳을 향해 쏘아져갔다.

도탄 강기 형태로 쏘아져 가는 그것은 구유잔백일천도의 이 식인 신월잔백이었다. 초승달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도탄 강기는 척 보기에도 수백 개가 넘었다. 어쩌면 도법의 이름처럼 일천 개에 달할지도 몰랐다.

그것들은 부챗살 형태로 퍼져 나갔다.

“ 피하십시오, 장주님.”

“ 날 죽일셈이야?”

연우강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 적이 너무 많습니다. 장주님. 아군에 신경 쓰다간 제가 죽고 말 겁니다.”

조금 전 연우강에게 받은 그대로 돌려주며 염자생은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 엄청나네.”

연우강은 전방으로 뇌섬을 쏘아대며 중얼거렸다.

광인이 엄청난 건지, 구유잔백일천도가 엄청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일천 개에 달하는 초승달 형태의 강기가 주변을 휩쓸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물론 갈가리 찢겨나갔던 대나무들은 금세 복원됐다.

하지만 복원된 대나무 아래쪽에 흩어진 시체들은 다시 복원되지 못했다.

“ 많이 늘었어.”

연우강의 신형이 공간을 건너뛰는 것처럼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잔혹한 살육이 벌어졌다.

“ 저럴 수가....”

환수존 사군양은 넋을 잃었다.

밀림에 숨어 있는 무영환사대는 환밀가의 최정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이곳 밀림에서만큼은 최강자라고 자부한다. 그런 그들이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몰살을 당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 장주님. 절 죽일 참입니까?”

“ 전쟁터에서는 알아서 피해야 하는 거야.”

“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합니다. 왼팔이 잘려나갔단 말입니다.”

“ 팔이 아니고 팔 소매잖아.”

“ 팔 소매가 제 왼팔이라는 걸 아직 모르셨단 말입니까?”

“ 무공을 펼치는 게 약한 것 같아서 상기시켜 주려고 왼팔을 자른 거야. 귀노. 놈들에게 팔을 잃었으면 좀더 분발해야 하는 거 아냐?”

“ 안 그래도 그럴 참입니다.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해볼 참입니다. 장주님도 조심해야 할 겁니다.”

“ 설마 지금껏 전력을 다하지 않았단 말이더냐?”

사군양은 경악했다.

놈의 도에서 쏟아져 나온 도탄 강기는 유성처럼 무영환사대를 휩쓸었다. 그 도탄 강기에 휩쓸린 대원 중 살아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니.

그리고.

“ 여기서 팔을 잃었다면 ..... 맙소사.”

이번엔 경악을 넘어 입이 쫙 벌어졌다. 이 년 전인가 이곳까지 들어왔던 자가 문득 떠올랐다. 밀림의 진에 갇혀 공격을 받다가 왼팔을 잃고 도망쳤었다.

“ 수성아!”

사군양은 급하게 아들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아버지.”

“ 들어가서 천주님께 이곳 상황을 보고해라.”

“ 아버지께서 막을 참입니까?”

“ 일단 내가 시간을 끌어보도록 하마.”

“ 알겠습니다. 아버지.”

사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 자식, 진작 좀 가지는.’

빠르게 달려가는 사수성을 좇는 눈동자가 있었다.

그 눈동자의 주인은 지금껏 사군양 주변을 맴돌고 있던 몽요였다. 밀천 총단으로 들어가기 위해 연우강을 떠나오긴 했지만 총단으로 가는 자가 없어 지금껏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거였다.

[ 우강, 이제 적당히 해도 돼요.]

그녀는 연우강에게 전음을 보내며 사수성을 따라 몸을 날렸다.

휙!

바로 그때 대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사군양이 몸을 날려 연우강과 염자생의 오 장 건너편으로 날아 내렸다.

“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수작이야?”

연우강은 모습을 드러낸 사군양을 보며 물었다.

“ 으음!”

사군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무공뿐만 아니라 머리 회전까지 빠른 놈이었다. 사군양은 애써 호흡을 고르며 연우강과 염자생을 주시했다.

“ 대답을 않는 건 긍정의 표현이라고 했으니까, 귀노!”

사군양을 빤히 쳐다보던 연우강은 염자생을 불렀다. 염자생은 광인을 어깨에 걸친 채 사군양을 향해 걸었다.

“ 이자는 충분히 받았으니까 빛만 갚아.”

“ 알겠습니다. 장주님.”

파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염자생의 신형이 사군양을 향해 폭사돼 갔다.

퍽! 와작! 우지끈!

앞을 가로막고 있던 대나무들이 부러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빠르게 내달리는 염자생의 어깨 위에는 광인이 여전히 걸쳐져 있었다.

“ 이번엔 목을 잘라주마.”

사군양은 염자생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는 검이 들려있었다.

“ 날 아는 모양이구나.”

염자생은 비로소 광인을 들어올렸다.

카카캉! 쓰쓰쓰!

일 갑자 가량 내공이 주입되자 그때부터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도 끝으로 도강이 생성되고, 그것은 곧 구 형태를 이뤘다.

“ 차앗!”

“ 타앗!”

삼 장 거리를 두고 맞선 두 사람은 크게 기합을 지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사군양의 검에서는 투명한 검탄 강기가 쏘아져 나오고 염자생의 검에서는 구 형태의 도탄 강기가 쏘아져 나왔다.

두 강기는 서로를 향해 쏘아져 가더니 강하게 부딪쳤다.

쾅쾅!

강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검은색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그 중 일부는 사군양을 향해 쏘아져 갔다. 사군양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강기의 파편을 막기 위해 급하게 왼손을 휘둘렀다.

“ 기다렸다, 놈!”

염자생은 차갑게 말하며 다시 광인을 휘둘렀다.

이번에 펼친 무공은 전에 펼쳤던 초식과 달랐다.

도강이 일 장 가량 솟구친 광인을 위에서 아래로 그대로 그어버리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동작은 강호 공적으로 쫓기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싸움을 거치고 얻은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었다.

“ 헉!”

사군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도강이 일 장이나 튀어나온 도가 이마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검을 쥔 왼손은 강기 파편을 쳐내고 있는 상황.

거무튀튀한 도가 엄청난 물건이라는 건 조금 전 도에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올 때 이미 확인했다.

전 내공이 검에 주입된 상황이라면 검을 들어 올려 막아낼 테지만, 지금 검 내부에는 조금 전 검탄 강기를 펼치고 남은 내기밖에 없다. 그 내기로는 도강을 뿜어내는 신검을 막아낼 수 없다.

왼손에 내기를 주입한 것이 실수였다.

도탄 강기 파편이 날아올 때 왼손으로 막는게 아니라 몸을 피했어야 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주입할 내기를 검으로 밀어 넣었다면 놈의 도를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길고 행동은 짧았다.

사군양은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목숨을 포기하는 것보다 왼팔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스악!

“ 크윽!”

팔이 잘려나간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씀벅한 느낌만 왔을 뿐인데, 왼팔이 허전했다. 하지만 고통이 거의 없다는 건 한순간이었다. 펄떡펄떡 뛰는 왼팔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어깨에서 밀려왔다.

“ 크아악!”

자신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 팔 상박에서 어깨까지는 이자다.”

염자생은 팔꿈치 위에서 잘려나간 왼팔을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한편.

사군양의 아들 사수성을 따르고 있던 몽요는 지하 대전으로 들어와 있었다. 사수성의 거의 달리다시피 하면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사군양을 지켜보던 몽요는 입을 벌려 뭔가를 꺼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뭔가를 숨기기 위한 장소는 입밖에 없었다.

주머니를 꺼낸 그녀는 뒤편을 흘끔 돌아보았다.

조금 전 들어왔던 출입구가 환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를 열어 주둥이가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안에서 검은색 가루가 흘러나와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미로에 갇혔을 경우 한번 왔던 장소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천년무향이라고 불리는 가루였다. 그녀는 천년무향을 뿌리며 사수성을 따랐다.

대전을 가로지른 사수성은 석문을 열고, 회랑 좌우를 지키고 있는 자들에게 사정을 알린 후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 꽉 들어차 있네.’

사수성을 따라 회랑으로 들어온 몽요는 빙그레 웃었다. 회랑 좌우 측에는 서늘한 기운이 요동치고 있었다.

살기마저 몸 내부로 갈무리한 자들이 숨어 있다는 의미였다.

‘ 천주가 머무는 곳은 확인했으니까.’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천년무향은 삼분의 이 이상 남았고, 시간도 충분하다.

그녀가 나천후의 거처를 떠나는 그 순간, 안으로 들어간 사수성은 밀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 무영환사대가 상대가 되지 않는단 말인가?”

“ 그, 그렇습니다. 천주님. 불과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았는데 오십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수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 하면 지금은?”

“ 아버지가 시간을 끌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 지원을 해 달라는 말이군.”

“ 그렇습니다. 천주님.”

“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나천후는 고개를 돌려 나적리를 보았다.

바로 그때 밀림이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 난! 항주의 화야불이이다! 사유라, 그 계집이 훔쳐간 내 돈 찾으러 왔다아!”

엄청난 내공을 내포한 목소리에는 돈에 대한 욕심이 더덕더덕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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