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15화 (115/232)

제 6장 대화거리의 최고는?

한 벽면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지도. 지도 위쪽 우측엔 동정호가 그려져 있고, 그 동정호로부터 마치 손가락처럼 네 개의 강이 아래로 뻗어 있다. 강의 이름은 왼편에서부터 오른편을 향해 농수, 원강, 자수, 상강으로 불린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네 개의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동정호로 들어가 장강으로 빠져나간다.

호남 전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네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고 장강으로 빠져나가는 출구인 동정호는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사실 지금은 관광명소로 변해 있는 악양루도 원래는 수군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열병루였다.

연우강이 동정호가 바로 옆에 있는 악양을 지휘본부로 택한 이유가 그러한 전략적 측면을 고려해서였다.

호남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커다른 지도 옆에는 이철상이 지휘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사십여 명이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오밀문의 수뇌들과 잠룡 십 종 일행들이었다. 그들 속에는 장강수로채의 채주였던 장강수룡 육대도 들어 있었다. 지하인 듯 지도가 걸린 벽 주변엔 유등 네 개가 걸려 있었다.

“ 우선 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율령궁은 감찰조직인 천법원 무인이 오천 명. 감시 조직인 천안원 무인이 팔천 명, 집행 조직인 천살원 무인이 이천 명으로 총 만오천 명입니다. 그들의 현 지휘 본부는 장사에 있습니다.”

“ 지금 총책임자는 누구지?”

듣고 있던 연우강이 물었다.

“ 얼마 전에 군자무림행 우담보가 내려왔습니다.”

“ 우담보가 직접 왔다고?”

연우강의 눈동자에 차가운 광채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 그렇습니다. 광랑.”

“ 알았어, 계속해.”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도로 시선을 주었다.

“ 모든 거점은 강을 중심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곳 상강에는 송백, 담백, 금전, 삼문, 대택, 상음까지 여섯 곳의 거점이 있습니다.”

이철상은 맨 오른편에 있는 상강에서 아래쪽으로부터 위로 각 지점을 짚어가며 말했다. 그가 지휘봉으로 짚은 곳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 그리고 이곳 자수에는 소양, 평상, 난전, 맹공, 유계, 안화, 동평, 무택 악양까지 아홉 곳의 거점을 만들었고, 여기 원강에는 진계, 효평, 무계, 원릉, 북용, 도화원, 상덕, 유항의 여덟 곳의 거점을 농수에서는 삼직, 농원, 대강, 자리, 석문, 율시, 안향의 일곱 곳의 거점을 만들었습니다.”

“ 거점과 거점과의 거리는?”

“ 발이 빠른 자를 기준으로 하면 이틀 거립니다.”

“ 동정호 주변으로 거점을 구축하지 않은 건 적의 수 때문이야?”

전에 내렸던 지시와 달라진 작전 때문이었다.

“ 그렇습니다.”

이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율령궁의 상황은 어때?”

“ 천법원과 천안원 무인들은 호남 전역에 퍼져 있고, 천살원의 집행사자 이천 명은 장사에 대기 중입니다.”

“ 알았어, 계속해.”

“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집행사자들을 없애는 일입니다.”

“ 그건 틀렸어, 교랑.”

“ 네?”

이철상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들어와!”

자리에서 일어난 연우강은 앞으로 나갔다.

이철상은 연우강에게 지휘봉을 건네주고 조금 전 연우강이 앉아 있던 자리로 가 앉았다.

“ 전쟁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불타는 분노가 아니라 차가운 이성이다. 가족이나 동료 또는 친구의 죽음에 흥분하게 되면 그 전쟁은 무조건 패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머릿속에 깊이 새겨두길 바란다.”

연우강은 허일구를 비롯한 하오밀문 무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 우린 이미 분노할 가슴도 없네.”

허일구는 억양 없이 말했다.

“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도록 해. 먼저 이번 전쟁의 성격을 알아야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죽어가겠지만 이번 전쟁은 무기와 무공의 싸움이 아니라 첩지전 즉 정보전이다. 누가 얼마나 빨리 상대방 정보원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돼 있다. 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명칭 그대로 천안원은 율령궁의 눈이다. 팔천 쌍이라는 엄청난 수의 눈이 호남 곳곳을 훑고 있다. 천법원은 그들의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천안원의 눈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를 상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천살원은 그들의 팔이고 무기다. 천법원에 의해 만들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집행을 하는 기관이다. 더불어 그들은 천안원이나 천법원 무인들과는 달리 겉모습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그 세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눈과 다리다.”

“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듣고 있던 허일구가 물었다.

“ 새로운 얼굴들을 중점적으로 주시해야지.”

“ 새로운 얼굴들?”

“ 천안원이나 천법원 무인들은 대부분 호남이 초행일 거야. 물론 전에 와본 자들도 있을 테지만 그때는 지나가는 길이었을 거라고. 하지만 이번엔 달라. 그들은 하오밀문 문도를 찾아내기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해. 그들의 머물 수 있는 곳은 기존에 있던 율령궁 안가이거나 객잔이야.”

“ 처음 보는 얼굴을 주시하란 말이구먼.”

허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밀문 문도들은 그야말로 최하위 계층에 종사한다. 객잔이나 주루에서 일하는 자들은 그 지역에 사는 자들의 얼굴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롭게 나타난 자들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 처음 보는 얼굴이면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간혹 그곳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는 자들을 중점적으로 주시하면 되겠지.”

“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하오밀문 문도라는 사실을 처음 보는 놈에게 슬쩍 알려야지.”

“ 그런 다음엔?”

“ 이곳으로 첩지를 보낸 다음 가장 가까운 거점으로 놈들을 유인해야 해.”

“ 하오밀문 문도들이 무사할 거라고 보는가?”

“ 물론이야, 영감.”

연우강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 우담보가 이곳에 내려왔기 때문이야.”

“ 우담보로 인해 하오밀문 정보원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 맞아. 가까운 곳에 최고 책임자가 잇게 디면,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려고 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잖아. 하지만 최고 책임자의 눈에 드는 건 쉽지 않아. 하오밀문 지부장이 숨어 있는 장소를 찾아냈다는 정보 정도는 돼야 우담보 귀에 들어갈 거라고, 하지만 객잔의 점소이들이 그런 정보를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나마 쓸 만한 정보를 얻으려면 미행할 수밖에 없지. 우린 거점에서 기다리다가 오는 족족 죽여 나가면 되는거야. 일단 이곳 상강에서 먼저 시작하면 될 것 같아.”

“ 만약 하오밀문 문도를 쫓는 자들이 장사의 지휘본부로 연락을 하고 출발한다면 같은 조건이지 않느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이자승이 입을 열었다.

“ 율령궁 밀정들이 사용하는 정보 전달 수단은 대부분 전서굽니다.”

“ 내 말이 그 말이다. 우강. 하오밀문 문도들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새를 당할 수 없다. 정보가 늦으면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

“ 용랑!”

연우강은 뒤편에 앉아 있는 마응신조 전관수를 불렀다.

“ 앞으로 십 일 후면 호남에서 비둘기는 씨가 마를 겁니다. 광랑.”

“ 정확해?”

“ 철응방에서 보유하고 있던 설산신조와 비응마조를 전부 풀었습니다.”

“ 전서구는 없습니다. 영감님.”

“ 그럼 첩지를 얼마나 빨리 전달하느냐에 전쟁의 승패가 달렸다고 할 수 있겠구나.”

“ 육대!”

연우강은 이번엔 장강수로채 채주였던 육대를 불렀다.

“ 각 강에 쾌속선 열 척씩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가장 긴 강인 지수를 오르내리는 데도 나흘이면 충분합니다.”

“ 우리는 첩지를 두 가지 방법으로 전달할 겁니다. 하나는 발이 빠른 자들을 이용해서 전달하고 다른 하나는 선박입니다. 그렇게 하면 설사 어느 한쪽이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하나는 받아볼 수 있을 겁니다.”

연우강은 이자승을 보며 말했다.

“ 언제부터 시작할 거냐?”

“ 전서구가 사라지는 십일 후부터 시작할 겁니다. 가장 먼제 적의 목표가 될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연우강은 상강 맨 아래쪽에 위치한 송백을 지휘봉으로 찍었다. 그러고는 다시 일행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방금 들은 것처럼 가장 먼저 적을 유이할 곳은 송백이다. 송백 다음엔 담백이 될 테고, 담백 다음엔 금전이다. 즉 위로 올라가면서 적을 없애게 될 것이다. 전서구가 없어지는 기간은 십 일.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해 송백으로 적을 유인하는 기간은 오 일이다. 정확하게 보름 후 송백에서 적을 없앤 다음 이틀 간격으로 움직일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알겠습니다. 조장님.”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살아서 다시 보자고.”

작전회의가 끝나자 하오밀문 무인들을 비롯한 일행은 은밀하게 밖으로 나가 어둠을 뚫고 흩어졌다. 안에 있던 자들이 전부 나가자 연우강은 밖으로 나왔다.

그를 비롯한 하오밀문 무인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했던 곳은 악양 서쪽에 위치한 객잔의 지하로 최근에 마련한 하오밀문 거점 중 한 곳이었다. 지하는 여러 곳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었는데 연우강이 나온 곳은 술과 밥을 파는 일층이었다.

“ 여깁니다.”

구석에서 이철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철상은 막장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연우강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다른 녀석들은?”

“ 황룡호로 돌아갔습니다.”

이철상은 빈 잔에 술을 채워 연우강 앞으로 내밀었다.

“ 얼마나 견딜 것 같아?”

연우강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 무슨 말입니까?”

이철상은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우리가 세운 작전이 끝까지 갈 거라고 보는 거야?”

“ 광랑이 세운 작전인데 끝까지 가야지요.”

“ 미친놈!”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 오 일은 버틸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철상은 제 잔에 술을 채웠다.

“ 그럼 이십 일이 지나면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진흙탕으로 변한다는 말이구나.”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때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겁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한 쪽이 승리하는 싸움 말입니다.”

“ 우리가 승리할 확률은?”

“ 승리를 입에 올리기엔 상대가 너무 거대합니다.”

이철상은 고개를 저었다.

“ 거대한 것일수록 단순화 시키라고 했잖아.”

“ 단순화 시켜도 거대한 건 변하지 않습니다.”

“ 그럼 밀천이 개입했을 땐?”

“ 그들이 개입할 거라고 보십니까?”

“ 너 같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냐?”

“ 그렇진 않겠죠. 밀천이 개입하면 확률이 조금은 나을 것 같습니다.”

“ 가장 먼저 할 일은 수상한 놈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거야.”

“ 그래서요?”

“ 일단 신분을 확인한 다음 율령궁 무인이라고 밝혀지면 죽여야지.”

“ 어떻게 확인한단 말입니까?”

“ 신분을 확인할 때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이 있잖아.”

“ 고문을 한다는 말입니까?”

“ 응.”

“ 고문도 쉬운 게 아닙니다. 광랑. 우리 잠룡들은 고문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전부 합친다고 해오 백 명도 되지 않고요. 더구나 율령궁 첩자를 없애려면 호남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는 건데,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 그건 내가 할 거예요, 교랑!”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차가운 물체가 이철상 옆 목에 나타났다.

“ 환랑이십니까?”

제 목에 송곳처럼 뾰족한 무기가 닿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철상은 반색한 얼굴을 했다.

“ 그래요, 교랑. 우강이 항상 말하지만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정리해야 해요. 먼저 이천 장을 만들어 주세요.”

“ 각 지역으로 새롭게 들어온 자들의 신상명세를 이천 장이나 달라는 겁니까?”

“ 내가 데려온 인사대는 백오십 명이에요. 일인당 열다섯 명만 맡으면 이천이백오십 명이나 되네요.”

“ 계산은 그렇지만.....”

“ 그렇게 해, 교랑. 인사대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를 만들어 줘. 어딜 가더라도 하오밀문 문도들이 알아볼 수 있게.”

“ 알겠습니다. 광랑.”

“ 지금 당장.”

“ 네!”

이철상이 힘차게 일어났다.

인자라고 불린다는 동영 무인들.

몽요가 새로운 변수가 돼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밀천에 인사대까지 가세한다면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서둘로 자리를 떠났다.

“ 넌 어떻게 할래?”

연우강은 막장을 보았다.

“ 뭘?”

“ 이제 내가 다시 왔잖아.”

“ 패천림으로 돌아가라고?”

“ 싫어?”

“ 네 녀석이 박살낸 뒤처리를 나보고 하라는 거냐?”

“ 처음으로 얻은 자리잖아.”

“ 껍데기만 있는 그런 자리가 뭐가 좋다고 가냐, 자식아.”

“ 그래도 가 있어. 누군가는 제천강 그놈을 지켜봐야 해. 그러려면 옆에 있는 게 가장 나아.”

“ 그런데 그 소문 진짜냐?”

제천강이란 말이 나오자 문득 이세 천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떠올라 물었다.

“ 그럴 거야.”

“ 정말 천마가 살아났다고?”

막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은 천년마인에 대한 말을 들으면서 반신반의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 그런데 연우강이 대야벌로 들어간 후 이세 천마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 아직 얼굴을 본 적은 없어 확실하진 않지만 진짜 그일 가능성이 높아.”

“ 맙소사.”

막장은 입을 쩍 벌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천옵개 년 전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 나는 그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보다 누가 그 소문을 냈는지가 더 궁금해.”

“ 본인들이 그 소문을 내진 않았을 테고... 누구라고 생각하냐?”

“ 제천강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긴 하는데.....”

“ 그 영감이 왜?”

“ 그래서 패천림으로 돌아가라는 거야. 그 영감이 천마에 대한 소문을 낸 이유를 알고 싶어서.”

“ 짐작도 안 돼?”

“ 짐작이야 되지.”

“ 말해 봐.”

“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자꾸만 건들면 넌 어떻게 하겠냐?”

“ 지그시 밟아줘야지.”

“ 밟아줘도 계속 덤비면?”

“ 조금 세게 밟아야지.”

“ 그래도 주제를 모르고 날뛰면?”

“ 다시는 달려들지 못하도록 미친 듯이 밟아버릴 거야.”

“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 그놈들이 속한 곳을 뒤집어엎어서..  제천강이 냈다는 말이네.”

“ 내 생각은 그래. 제천강 그놈은 천마를 등에 업고 담대만승이 되려는 것 같아.”

“ 대야벌 벌주를 노리고 있다는 거야?”

“ 어쩌면.”

“ 백 살이 넘으면 묏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막장은 황당한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그 나이가 돼서도 권력에 욕심을 부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 인간이란 짐승은 말이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도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는 사실을 망강하고 산다고 하더라.”

“ 야망과 나이는 상관없다는 말이냐?”

“ 나이를 먹을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는 거야. 그래서 일에 더 집착하게 되는 거고. 아무튼 대야벌로 가서 그놈 감시 좀 해. 내 부모님들도 그곳으로 모셨으니까 가끔 한번씩 둘러보고.”

“ 네 부모님을 그곳으로 모셨다고?”

“ 슬프게도 숨길 만한 곳이 거기밖에 없더라.”

“ 끄응! 또 사고 쳤구나.”

막장은 연우강을 노려보았다. 절강성 어딘가에 은신해 있던 부모님을 대야벌로 모셨다면, 대야벌과 상관없는 자로부터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서란 말이 된다.

그런 자라고 해봐야 황실에서 권력을 쥔 자들밖에 없을 터였다.

“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아무튼 이 잔 받고 돌아가.”

연우강은 잔에 술을 따라 막장에게 건넸다.

“ 지금 밤이다, 자식아.”

“ 밤에 가야 들키지 않지. 인마. 낮에 가면 들킬 염려가 많잖아. 그리고 그냥 가라는 게 아니잖아.”

“ 그럼 선물이라도 주려고?”

“ 몽요!”

“ 여기 있어요.”

허공에서 보자기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 책인 것 같은데?”

막장은 보자기를 더듬으며 연우강을 보았다.

“ 심심하면 그거나 익히라고 주는 거야. 그리고 다른 문파에서 선물이 들어오면 멍청하게 거절하지 말고 영약 종류는 무조건 챙겨.”

“ 흐흐흐! 그렇지 않아도 쓸 만한 것들은 슬쩍 해두고 있다. 그나저나 이건......”

막장은 궁금한 얼굴로 보자기를 풀었다. 예상대로 안에서는 책이 나왔다. 하지만 책 표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얼른 책장을 넘겼다.

“ 백무탈혼유마검이라....... 무공 명칭으로만 따지만 신공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은데?”

“ 내 손에서 나가는 것 중에 신공 아닌 게 있기나 했냐? 백령과 함께 나온 무공이니까 신공 맞을 거야. 내공심법은 익힐 생각하지 말고 검법만 참고해.”

“ 그, 그러니까 파천육기의 하나인 백령으로 펼치는 무공이라고?”

막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놀란 눈으로 손에 쥔 무공비급을 보았다.

“ 이, 이러다 나 천하제일인 되는 거 아냐?”

“ 제발 좀 돼줘라. 그래서 대야벌에 있는 잡것들 좀 사그리 없애 주라. 나도 이 짓 하는 거 지겨워 죽겠다.”

“ 타고난 팔자가 거지 같은 걸 탓해야지. 누굴 탓하는 거야. 인마.”

“ 아무튼 그만 가봐. 부모님께 안부 전하고.”

연우강은 손을 휘 저었다.

“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

막장은 헤벌쭉 웃으며 비급을 품속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 안 가요?”

막장이 나가자 모습을 드러낸 몽요가 건너편으로 앉으며 물었다.

“ 을상 그 녀석들으 기다리는 중입니다.”

“ 북경으로 보냈던 군 동기?”

“ 네.”

“ 그럼 창가로 가요.”

“ 그럴까요?”

두 사람은 술잔과 술병을 챙겨들고 창문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한동안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병을 비우고 새 술을 가져오라는 말을 하려는데 이편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객잔을 향해 걸어오는 자는 다섯 명이다. 그 중 한 명은 네 사람을 안내해 온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 술잔이 더 필요할 것 같네요.”

몽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술잔보다는 술병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전 운화나 만나러 가봐야겠어요.”

주방으로 가서 점소이에게 술을 가져다 놓으라고 이른 몽요는 싱긋 웃으며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잠시 후 점소이가 술 병 네 개를 가져와 탁자 위에 하나씩 놓았다.

“ 안주는....?”

술병을 놓은 점소이는 조심스레 연우강의 눈치를 살폈다.

“ 안주는 술로 할 거니까 술을 더 가져다 놔라.”

대답은 문쪽에서 들려왔다.

연우강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조금 전 하오밀문 문도를 따라왔던 네 명이 서 있었다. 연우강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서 맞았던 건조한 모래바람처럼, 네 명의 몸에서는 삭막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키에 각진 얼굴을 가진 녀석은 적랑이라고 불렸던 사마윤이고, 큰 덩치에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녀석은 사랑이라 불렀던 마장승, 유달리 키가 작은 녀석은 싸울 때 가장 격렬하게 싸운다고 하여 전랑이란 별호를 얻었지만 그것보다는 작은 체구로 인해 생쥐 같다고 하여 서랑이라고 더 많이 불렸던 군무옥이다.

그리고 군무옥 옆에는 백을상이 서 있다.

“ 앉아라!”

연우강은 앞 자리를 가리켰다.

백을상 일행은 천천히 걸어와 연우강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을상을 제외한 네 사람은 마치 달라진 점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 잘 먹고 잘사는 모양입니다. 광랑.”

적랑 사마윤이 비아냥대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데 어련하겠냐.”

“ 말투는 변하지 않았구려. 왜 그랬소?”

사마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난 애매한 질문은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한다. 적랑.”

“ 천이백

“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인 돈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아마 돈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항주에서 기녀 엉덩이나 두드리며 살고 있었을 거다.”

“ 업둥이란 말은 왜 안 한 거요?”

이번엔 전랑 군무옥이 물었다.

“ 업둥이보다는 금릉 연씨 세가 장남이라는 명패가 훨씬 있어 보이니까. 이제 질문 다 했으면 술이나 한잔 하자.”

연우강은 술병을 들어 올렸다.

“ 젠장, 오 년 만에 만났는데도 할 말이 없네.”

마장승이 공연히 툴툴대며 술병을 들었다.

다섯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술병이 빌 때까지 입에 물고 있었다.

탁!

가장 먼저 술병을 내려놓은 사람은 마장승이었다.

마장승은 술병을 내려놓자마자 다른 술병을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술병을 내려놓을 때는 당연히 병도 비어 있었다.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술을 마시고 술로 안주를 대신하는 마장승의 습관을 다시 보자 갑자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 어쩌다 엮이게 된 거요?”

마장승은 아직 술병을 입에 물고 있는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대야벌.”

“ 네?”

“ 돈 때문이라고 했잖아.”

“ 대야벌에서 금릉 연씨 세가를 날로 먹으려 했다는 말이오?”

“ 업둥이만 빼고 나머지는 다 이렇게 해버리면 금릉 연씨 세가의 재산은 전부 업둥이 게 되잖아.”

연우강은 제 목을 스윽 그었다.

“ 쯧! 건드릴 놈이 따로 있지. 미친 개새끼보다 더 더러운 성격을 가진 놈을 건들다니, 야!”

마장승은 주방 쪽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 말씀하십시오, 대인.”

“ 술하고 안주.”

“ 안주는 어떤 걸로......?”

“ 들어올 때 말했잖아. 인마.”

“ 수, 술로 가져오란 말입니까?”

“ 또 말해?”

“ 아, 알겠습니다.”

“ 지필묵도 준비해 와라.”

연우강은 황급히 주방으로 가는 점소이의 등에 대고 말했다.

“ 아,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술을 가져오는 사이에 계산대에 있던 주인이 붓과 종이 그리고 먹을 가지고 왔다.

“ 귀랑! 받아적어라.”

연우강은 지필묵을 사마윤 앞으로 밀었다.

“ 아직도 글을 못 쓰쇼?”

사마윤은 탁자 위에 놓인 지필묵을 쳐다보며 물었다.

“ 글을 못 써도 사는 덴 아무런 지장 없다. 적어.”

연우강의 입에서 막히없이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르는 대로 받아 적던 사마윤의 얼굴이 흠칫 변했다. 연우강이 구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무공 구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윤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구술이 계속될수록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자, 잠깐만요, 광랑.”

급기야 견딜 수 없었던 사마윤은 붓을 내려놓았다.

“ 왜?”

“ 뭡니까, 이건?”

“무공 구결이잖아.”

“ 무공 구결이라는 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정확하게 뭘 알고 싶은데?”

“ 이런 엄청난 무공이 왜 광랑의 대가리 속에서 나오냐 하는 겁니다.”

“ 엄청나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이번엔 연우강의 얼굴이 어리둥절해졌다.

군을 떠날 때만 해도 녀석들의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딱히 수준을 논한다면 삼십 년에서 사십 년 정도의 내공을 가진 무인 정도여다. 구결만으로 무공 정도를 파악해 낼 정도는 아닌 것이다.

‘ 가만.’

연우강은 내기를 끌어올려 녀석들의 몸을 살폈다.

조금 전에는 단순히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만 보았을 뿐 무공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터였다.

조금 전 사마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연우강의 눈이 점점 커졌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녀석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백을상이야 무가의 자손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나머지 세 녀석은 무가와는 상관이 없다. 사마윤은 황사 집안이고 마장승은 유림 가문 출신 그리고 군무옥은 군부 가문 출신이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무공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녀석들의 몸에서는 잠룡들보다 더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그건 뭐냐?”

이번엔 연우강이 물었다.

“ 한 달이 지나고 손목을 그어버렸소.”

“ 난 목을 맸소.”

“ 난 산채 하나를 골라 돌진했소.”

“ 난 물로 뛰어들었소.”

사마윤, 마장승, 군무옥, 백을상이 차례로 대답했다.

“ 뒈지려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났다고?”

“ 개조차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그런 상황을 당해보시오.”

마장승은 사마윤이 적은 구결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 하긴 죽을 정도로 심삼하면 죽어야지.”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공 구결을 구술했다. 함께 생활을 했는데 녀석들의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심심함이 아니라 극한의 무력감일 테다. 자신 또한 계집에 빠져 있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살에 실패한 녀석들은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미친 듯이 무공에 매달린 모양이었다.

“ 뭐요?”

고개를 쭉 내밀고 사마윤이 적는 걸 쳐다보던 군무옥이 물었다.

“ 우주일만검결.”

“ 씨팔! 이름만 들어도 바로 죽겠네.”

그렇지 않아도 작은 군무옥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 저건 적랑 거야.”

“ 또 있단 말이오?”

“ 받아 적어.”

그렇게 말하고 연우강은 또다시 무공 구결을 구술했다. 그가 두 번째로 구술한 무공은 구유잔백일천도였다.

“ 이건 내 거네.”

구유잔백일천도의 구결을 다 적자 마장승은 구결이 적힌 종이를 날름 채갔다. 세 번째로 구술한 무공은 광풍파랑십삼절로 군무옥에게 돌아갔고, 네 번째로 구술한 백무탈혼유마검은 귀랑 백을상에게로 돌아갔다.

“ 그렇게 좋아할 거 없어. 그걸 익힌 녀석들은 너희들뿐만이 아니니까.”

“ 누가 익혔든 무슨 상관이오. 제일 강한 놈이 장땡이지. 그런데 이것들은 어떻게 얻은 거요?”

구유잔백일천도의 구결을 보던 마장승이 물었다.

“ 대야벌에서 주웠다.”

“ 대야벌에서 주었다면 상당한 것 같은데.....”

“ 내가 그랬잖아. 새꺄. 무공 이름만으로도 사람 몇 잡겠다고.”

군무옥이 이죽댔다.

“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연우강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 최소 육 개월은 걸리오.”

술을 한 모금 마신 마장웅은 안주 대신 구유잔백일천도를 입 안으로 쑤셔 넣고는 질근질근 씹으며 대답했다.

“ 벌써 다 암기한 거냐?”

“ 생긴 건 이래도, 암기 하나는 도가 튼 놈이오.”

“ 아무튼 최대한 빨리 익히도록 해.”

“ 써먹을 데라도 있는 거요?”

이번엔 군무옥이 종이를 입안으로 쑤셔 넣으며 물었다.

“ 큰 건이 있는데 힘없는 놈은 뒈지는 건수거든.”

“ 알았소. 최대한 익혀보도록 하겠소.”

“ 씨팔! 난 사마이 보고 싶어 죽겠다.”

마장웅이 술병을 들어 올리며 투덜댔다.

“ 북로정군을 나설 땐 그쪽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자식아.”

백을상이 툭 쏘아붙였다.

“ 물론 지금까지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쌌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자꾸만 사막이 나오는 걸 어쩌라고. 그나저나 그때 기억나냐?”

“ 천이백 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오줌을 쌌던 거?”

“ 그래, 인마. 그때 누구 오줌 줄기가 더 센지 월급 걸고 내기했잖아. 그때 누가 일등 했지?”

“ 이 새끼.”

백을상은 군무옥의 머리를 툭 쳤다.

“ 맞아. 그랬지. 키는 좇만 한 놈이 거시기는 천이백 명 중에서 제일 컸지. 그놈은 지금도 잘 있냐?”

“ 사기 친 거야. 새꺄.”

“ 사기?”

“ 내기를 하기 전에 기루에서 기녀를 끼고 그 짓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거든.”

“ 그러니까 그게 단단해진 거였다고?”

“ 완전한 상태는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육할 정도라고 보면 된다.”

“ 육 할?”

“ 그래.”

“ 육 할이 그 정도면..... 이 새끼 말 새끼잖아.”

“ 킬킬킬! ”

“ 쿡쿡쿡!”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오랜만에 만난 전우에게는 군대 이야기보다 더 나은 대화 소재는 없는 모양이다. 잔뜩 굳어 있던 분위기가 사막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점차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만화은신사영을 펼치고 있는 몽요였다. 황룡호로 가서 수여설과 남궁운화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우강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 궁금해서 다시 왔다.

‘ 앉아서 기다릴까?’

그녀는 아래쪽으로 내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 그거 기억나?”

‘ 호호호! 원래 추억이란 즐거운 거니까.’

몽요는 활짝 웃으며 사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야기가 금세 끝날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 하나 끝날 때가 되면 누군가 ‘그거 기억나?’ 란 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이야기가 끝나갈라치면 ‘내가 있을 때는 말이야.’란 말로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어느새 이야기는 한 시진을 넘어 두 시진째 접어들고 있었다.

“ 그땐 말이야.....”

몽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여자들이 수다스럽다고 한 거야. 저것들에 비하면 여자들은 거의 묵언 수행하는 승려 수준이구먼. 아무튼 사내자식들은 군대 이야기라면 그저......’

문득 동영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전쟁터에 다녀온 사내들은 전쟁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간을 잊곤 했다. 어쩔 때는 정말로 입에 칼을 꽂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우강은 다를 줄 알았다.

동영에 있던 자들과는 달리 그는 정천호였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그 역시 동영의 하급 무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 아무튼 사내자식들은 군대 두 번만 가면 지들이 세상을 통일했다고 뻥칠 거야.’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가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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