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20화 (120/232)

제 2장 창룡 재림.

여름은 어느새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는 밤까지 이어지며 도무지 그칠 줄 몰랐다. 식지 않은 대지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 올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꽉 막힌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수여설은 한껏 들이마셨던 숨을 뱉어냈다.

지금 그녀를 비롯한 잠룡 십 조가 있는 곳은 노구포 북쪽이다. 좌우 측 수십 리는 갈대로 뒤덮여 있고, 갈대 숲 주변으로는 삼엄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 우린, 준비돼 있다.”

그녀는 왼 팔뚝에 끼고 있는 방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동안 어느 누구보다 많은 실전을 거쳤고, 싸움이라면 이미 이골이 난 상태다. 무공이 약해 어쩔 수 없이 죽는 경우는 생겨도, 두려움에 도망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스윽!

바로 그때 좌우 측과 뒤편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여설은 몸을 돌렸다.

세 방향에서 두 명씩 달려오고 있었다. 남쪽에서 달려오는 자는, 빠진 조원을 대신하여 들어온 인사대 무인 백인과 그의 부하였고, 서쪽에서 다가오는 자는 이자승과 욱일승, 그리고 동쪽에서 달려오는 자는 사마윤과 연우강의 군 동기인 마장승이었다.

휙! 휙휙!

여섯 명은 수여설 주변으로 날아 내렸다.

“ 어때요?”

수여설은 먼저 동영 무인인 백인을 보며 물었다.

“ 십 리 밖에 이백 명 가량 매복해 있습니다.”

백인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 동쪽은 어때요?”

수여설의 시선이 사마윤과 마장승에게로 향했다.

“ 역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이백 명 가량이 매복해 있습니다.”

“ 서쪽은요?”

“ 마찬가지다. 십 리 가량 떨어진 곳에 이백 명이 은신해 있더구나. 그런데 아직 운화는 오지 않은 거냐?”

“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에요.” 수여설은 강으로 시선을 주었다.

남궁운화와 장사덕 일행이 강 건너편으로 갔던 것이다.

“ 오셨습니다.”

앞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세 사람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양쪽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남궁운화였고, 왼편엔 장사덕 그리고 오른편에는 창궁사수의 대형인 우창준이었다.

“ 어때?”

그녀는 남궁운화를 보며 물었다.

“ 강 건너편에 이백 명 정도가 있고, 강 동쪽과 서쪽에 배가 한척씩 있어요, 언니.”

“ 배 한척이면 얼마나 탈 수 있지?”

“ 굳이 무인으로만 채운다면 백 명 가량은 충분히 탈 수 있습니다.”

이번엔 장사덕이 대답했다.

“ 그럼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전부 천 명 가량이네요?”

“ 그런 셈이구나.”

이자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여설은 고개를 돌려 사마윤을 보았다.

“ 저희들 생각이 중요합니까?”

“ 그와 오 년을 함께 생활했잖아요. 지금과 같은 경우엔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 그래요.”

“ 얼레?”

사마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 그’라는 호칭 때문이었다. 조장과 부하의 관계라면 조장이라든가, 아니면 연 공자란 칭호를 써야 마땅했다. 그런데 수여설은 연우강을 ‘그’라고 칭한 것이다.

‘ 이 인간이 도대체.’

사마윤은 곁눈질로 남궁운화를 보았다 그동안 관찰한 바로는 남궁운화 또한 연우강을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 복 터진 인간.’

“ 사마공자.”

“ 아, 네!”

다시금 수여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마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 지금과 같은 경우엔 어떻게 했냐고 물었어요, 공자.”

“ 정면돌파죠.”

“ 정면돌파라고요?”

“ 흑랑기는 작전상 후퇴라는 말이 아예 없었습니다.”

“ 무조건 밀고 들어간단 말인가요?”

“ 무조건 밀고 들어갈 수는 없죠. 빈틈이 전혀 없는 완벽한 작전을 세운 다음 그 작전에 맞춰서 적을 섬멸했습니다.”

“ 주로 어떤 작전을 세웠죠?”

“ 그건 저보다 무옥 이놈이 잘 압니다. 작전을 세울 때마다 광랑이 가장 많이 의지했던 놈입니다. 그리고 적랑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사마윤은 군무옥의 어깨를 툭 쳤다.

“ 전랑에게 가장 많이 의존했다고요?”

수여설은 미심쩍은 눈으로 전랑 군무옥을 보았다.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곳까지 오면서 사마윤 일행의 성격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사마윤은 신중한 편이고, 마장승은 뛰어난 머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다. 백을상은 평소엔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연우강이 작전을 세울 때 가장 많이 의지했따는 군무옥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생각이 없다.

네 명 중 단순 무식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군무옥이다.

그런데 그와 작전을 상의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복잡한 일일수록 단순화해야 한다는 게 광랑의 신조였습니다.”

군무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 그 분야에 있어 전문가는 저였습니다.”

“ 전문가라고요?”

“ 그런데 제수씨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 네?”

수여설은 뜨악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사방이 아니라 여섯 방위가 적에게 포위된 상태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수씨라니.

“ 이런 게 단순화라고 하는 겁니다. 대충 굴러가는 상황을 보니까 백랑은 광랑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고, 어쩌면 우리들 모르게, 예를 들면 배를 맞춘 것 같은, 어떤 상황이 진행 중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를 보통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애매한 경우라고 하지요. 그런 애매한 경우가 발생하면 본인들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척 하자니 무례한 것 같고, 모른 척 하자니 관심이 없는 걸로 보일 수 있거든요.”

“ 그러니까 제수씨라고 불러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건가요?”

수여설은 여전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 어떻게 대답을 하더라도 광랑과 백랑의 관계는 깔끔하게 정리되지요.”

“ 호호호! 그렇네요.”

수여설은 크게 웃었다.

“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군무옥은 수여설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제수씨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네요. 전랑.”

“ 이상하네. 분명 제수씬데....”

군무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듣고 있던 수천월은 얼굴을 찌푸렸다.

‘ 저런 바보 같은 녀석.’

수천월은 곁눈질로 이자승을 보았다.

이자승이 연우강을 손녀사위로 삼으려고 안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우강과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거리낌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더라면 공식적으로 관계를 인정받게 된다. 그런데 녀석은 아니라고 대답을 해 버린 것이다.

‘ 나이도 생각할 것이지. 누가 데려갈거라고.’

남궁운화 또한 수천월과 다르지 않았다.

[ 언니!]

[ 왜?]

[ 바보처럼 왜 그래요?]

남궁운화는 눈을 흘기며 전음을 보냈다.

[ 제수씨로 불리는 게 싫다고 했을 뿐이에요, 가주.]

수여설은 빙그레 웃었다.

[ 네?]

남궁운화는 깜짝 놀란 얼굴로 수여설을 보았다.

“ 제수씨보다는 형수님이 더 품위도 있고 좋은 말 같아요. 전랑.”

“ 어?”

“ 허!”

“ 클!”

주변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수여설을 보았다. 설마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평소 그녀의 성격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말이었던 것이다.

‘ 클클클! 바로 그거다. 녀석아, 정말 잘했다.’

수천월은 활짝 웃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 저희들 중 광랑이 나이가 가장 어립니다.”

군무옥은 볼멘소리처럼 말했다.

“ 한번 정천호는 영원한 정천호라고 하던데, 아닌가요?”

“ 끄응! 알았습니다. 형수님. 그럼 앞으로 형수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 좋아요. 전랑. 그럼 지금 상황을 단순화 할 방안을 말해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수여설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 그거야 뭐.”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 군무옥은 오른발을 힘차게 차올렸다.

휙!

그의 발을 떠난 신발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 저쪽입니다.”

군무옥이 서쪽을 가리켰다.

“ ......!”

수여설은 멍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황망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오 년 동안 연우강과 함께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라 아주 기발한 방법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기발한 방법이 다름 아닌 신발을 던져 앞코가 향하는 방향으로 가는 신발점이었다.

“ 신발점으로 부족하면 또 있습니다. 형수님.”

“ 이번엔 침으로 치는 점이겠군요.”

“ 제가 신발점을 스무 번 정도 쳤는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십 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점이니까 믿어도 됩니다.”

“ 끄응!”

수여설은 얼굴을 찌푸렸다.

흑랑기 마지막 전투에서 전멸당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고 하였다. 당연 십 할의 정확도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형님, 그래도 신발점으로 적을 치러 간다는 건 너무했습니다.”

장사덕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인마, 우리 주변에 있는 놈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잖아. 이럴 땐 아무 놈이나 선택해서 없애면 되는 거야. 작전은 무슨 작전을 세우냐?”

“ 그럼 밀고 무작정 들어가자는 말입니까?”

“ 적이 몇 명이라고 했지?”

“ 이백 명이요.”

“ 우린?”

“ 사십 팔 명입니다.”

“ 그럼 일 인당 없애야 할 수는?”

“ 네 명씩 맡으면 여덟 명이 남습니다.”

“ 저기 영감들과 우리가 다섯 명씩 맡으면 딱 이백 명이네?”

“ 산술적인 계산일 뿐입니다. 형님.”

“ 무조건 일 인당 네 명씩 없애. 그럼 산술적인 계산이 아니라 진작 작전으로 변하는 걸 경험하게 될 테니까.”

“ 정말 그렇게 할 겁니까?”

이번엔 사마윤을 보며 물었다.

“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여긴 약간의 장치를 만들 수 있으니까, 상황은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 어떤 장치를 만든단 말입니까?”

“ 우선 갈대를 잘라서 다섯 척의 뗏목을 만드는 거야. 뗏목 위에는 역시 갈대로 사람 모형을 만들고, 그런 다음 강 가운데 세워 놓으면 돼.”

“ 그사이에 적을 친단 말입니까?”

“ 잡랑 넌 네 명. 난 다섯 명.”

“ 어이그!”

장사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수여설을 보았다.

“ 지금부터 뗏목을 만들도록 하세요.”

“ 정말 그렇게 할 겁니까?”

장사덕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 적은 우리가 도망치는 줄 알고 사냥을 준비하고 있어요. 역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 알겠습니다. 백랑.”

장사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갈대 숲으로 들어갔다.

잠룡들의 무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갈대는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갈대를 자른 잠룡들은 허리춤에 감고 있던 줄을 풀어 허벅지 두께로 묶었다.

‘ 역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자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룡들이 허리에 감고 있는 줄은 악양에서 사마윤이 준비하라고 하여 구입한 것들이었다. 그때는 웬일인가 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게 될 줄 알고 준비를 시켰던 것이다. 연우강이 잠룡들을 보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녀석들 때문이었다.

작업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반 시진이 지나자 사마윤이 말한 다섯 척의 뗏목이 만들어지고 사람 형태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뗏목 위에 고정시키자, 마치 사람이 갈대 뗏목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됐다.

“ 잡랑!”

작업을 끝내자 사마윤은 장사덕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형님.”

“ 놈들이 있는 곳과 배는 얼마나 떨어져 있지?”

“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은 삼백 장 가량 아래쪽이오.”

“ 동정호 쪽이 상류다. 잡랑.”

“ 그럼 삼백 장 위쪽이오.”

“ 삼백 장 위쪽이란 말이지, 백 대협.”

이번엔 인사대 대원을 이끌고 있는 백인을 불렀다.

“ 수공에 능한 대원 다섯 명만 뽑아 주십시오.”

“ 뗏목을 끌고 갈 사람을 말하는 거요?”

“ 그렇습니다.”

사마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인은 뒤편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다섯 명이 사마윤 곁으로 다가갔다.

“ 우리가 떠나고 일 다경 후에 강 중간으로 뗏목을 끌고 가주시오. 그리고 가다가 검을 꺼내서 별빛에 반사시켜 주고요.”

“ 반사시키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 놈들이 알아차리기 쉽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사마 공자.”

“ 그리고 백 대협은 인사들을 데리고 갈대 숲으로 가주시오.”

“ 강물이 아니라 갈대 숲을 통해 가란 말이오?”

“ 그렇습니다. 백 대협. 우리 중에서 소리 없이 갈대 숲을 통과해 갈 수 있는 무인은 인사대밖에 없으니까요.”

“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오?”

“ 놈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르다 보면 기회가 생길 겁니다.”

“ 그냥 죽이면 되는 겁니까?”

“ 어차피 들켜도 상관없으니까 전부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 알았습니다. 사마 대협.”

“ 좋습니다. 그럼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사마윤은 장사덕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룡들은 일제히 뗏목을 들고 강으로 향했다.

“ 각자 한 자 길이의 대롱을 하나씩 준비하도록.”

사마윤의 말이 떨어지자 잠룡들은 갈대를 꺾어 한 자 길이로 잘라내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사마윤을 보았다.

“ 우린 적이 있는 곳에서 정확하게 백 장을 더 올라갈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빠르게 뭍으로 나간 다음 갈대 속에 몸을 숨기고 적을 기다린다.”

“ 갈대 숲에 있는 자와 선박 중간 지점에 몸을 숨기겠다는 게냐?”

이자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영감님.”

“ 이유를 듣고 싶구나.”

“ 뗏목이 강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이쪽에 있는 자들은 우리를 쫓아 강을 건너야 합니다. 보통 급한 경우엔 물로 직접 뛰어들겠지만 강 건너편에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 장강에 떠 있는 선박을 부를 거란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 하지만 네 작전이 성공하려면 갈대 숲에 숨어 있는 자들이 동정호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은 가만있고, 배가 올라올 경우엔 어떻게 할 참이냐?”

“ 그렇게 되면 우린 포위망에서 벗어나게 됨은 물론이고 뒤에서 놈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렇구나.”

“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 뗏목을 먼저 발견하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그놈들은 숨어 있어서 좀이 쑤실 겁니다. 아마 뗏목을 보자마자 곧바로 선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 겁니다.”

“ 선박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거란 말이냐?”

“ 물론입니다. 영감님. 은밀하게 이동해.”

사마윤이 손짓을 했다.

잠룡들은 일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 오줌 싸는 놈들은 죽여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 흐흐흐! 그럼 적랑 형님이 앞으로 가십시오.”

장사덕이 웃으며 말했다.

“ 잔 지금 오줌 싸고 싶은데, 그래도 괞찮아?”

“ 뒤에서 싸고 앞으로 가십시오.”

일행은 시시덕거리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동정호 쪽으로 헤엄쳐 나갔다.

“ 젠장! 이렇게 더운데.”

제 십일 조 조장 사검주 우양일은 짜증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이렇듯 짜증을 내는 이유는 잠시 공격을 보류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십 리 떨어진 곳에 잠룡 십 조가 있다는 사실은 전날부터 알고 있다. 더불어 일천 명의 집행사자들이 놈들을 포위한 상태다.

공격을 하려면 지금이 최적기인데 그놈의 명령 때문에 지켜보고만 있으려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좀이 쑤시는가?”

오십대 중반쯤 돼 보이는 왜소한 자가 웃으며 우양일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십 조 조장인 유령마 헌당이었다.

“ 그런 형님은 마음이 편하십니까?”

우양일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두 사람은 직위가 같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아닌 밀천이 놈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는데.” “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명령권도 주지 않을 거면서 왜 조장 자리를 맡겼냐는 겁니다. 형님.”

사실 우양일의 불만은 바로 그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조를 나누어 작전을 펼치게 되면 조장에게 명령권을 줘야 한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동방사자영의 지시를 받으라고 한 것이다. 같은 율령궁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천안원과 천살원은 엄연히 다른 부서고, 하는 일도 다르다. 아니 천살원 집행사자들은 분석능력을 빼곤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천안원 밀정들을 은연중에 무시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명령을 받으라고 하였으니, 아무리 동방사자영의 영반이 직책상 상관이라고 해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 전서구 기능이 마비돼서 그렇다는데 어떡하나.”

“ 형님은 속도 좋으쇼.”

우양일은 툭 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딜 가는가?”

“ 목욕이라도 해야지 도저히 못 참겠소.”

우양일은 갈대 숲을 가로질러 강으로 향했다.

“ 젠장!”

십여 장 걸어가던 우양일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강까지는 아직 이십 장이나 남았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진 것이었다. 목욕을 하러 가는 중이라고 하지만 질척한 느낌이 영 거슬렸다.

“ 억울하면 출세를 하게, 동새.”

“ 안 그래도 이번엔 큰 공을 세워 출세라는 걸 해볼 참이오.”

우양일은 툴툴거리며 걸었다. 잠시 후 강에 도착한 그는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강물에 몸을 담그자 비로소 기분이 풀렸다.

“ 놈들이 도망칠 데라고는......”

우양일은 강 건너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십사 조 조장인 독안마도 작나인과 십칠 조 조장인 혈옥 장군성이 있다. 그들 또한 강력한 경쟁다라고 할 수 있었다.

“ 당신들에겐 절대 공을 넘기지 않을 거요.”

그는 중얼거리며 눈에 내공을 집중했다.

은밀하게 숨어 있어 눈에 보이지도 않을 테지만 공연히 내공을 시험하고 싶어졌다. 내공을 끌어올리자 시계가 점점 멀어지며 강 건너편 사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우양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그동안 꾸준히 운기행공을 해온 덕을 보는 듯했다.

“ 지금처럼만 가면 머잖아...... 응?”

시선을 끌어당기던 우양일은 다시 내공을 눈에 모았다. 그러자 희미하게 뭔가가 잡혔다.

“ 형님!”

그는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 왜 그러는가?”

“ 이리 좀 와보시오.”

“ 난 목욕하기 싫네.”

“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형님.”

“ 무슨.....”

휙! 하고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곧 헌당이 다가왔다.

“ 저기를 보시오.”

우양일은 조금 전 보았던 희미한 물체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뭐로 보이는가?”

헌당은 시선을 모으며 물었따.

“ 뗏목 같은데 형님은 어떻소?”

“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반짝!

바로 그때 희끄무레한 물체에서 잠깐 빛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 봤습니까?”

나타나자마자 사라진 빛을 발견한 우양일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 무기에서 반사된 빛이네.”

헌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잠룡 십 조 놈들이 강을 건너고 있는 모양입니다.”

“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전 출세하고 싶습니다. 형님.”

“ 공을 작나인이나 장군성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말인가?”

“ 형님은 그들에게 넘겨도 좋습니까?”

“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은 없네.”

“ 그럼 가야지 뭐하고 있습니까?”

우양일은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우양일과 헌당을 비롯한 집행사자들은 서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배에 있는 십오 조는 강을 건너고 있는 잠룡 십조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순식간에 오십여 장을 내달린 집행사자들은 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강변 쪽으로 이동하며 나아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강변과 가까운 곳으로 갈수록 갈대는 더 무성하고, 물은 무릎까지 차오르는 질척한 습지였지만 마음이 급한 우양일과 헌당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온다!”

전방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사마윤은 급하게 자리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물이 얼굴 근처까지 차오르자 그는 대롱을 입에 물고 고개를 약간 틀었다.

다행히 물이 눈까지는 덮지 않았다.

사마윤은 천천히 좌우를 살폈다. 인사대 대원을 제외한 스물여섯 명은 절반은 앞으로 나와 일 장 간격으로 누워 있고, 나머지는 두 사람 사이에 한 명씩 들어가는 방법으로 뒤편에 누워 있다.

“ 일어남과 동시에 두 명씩 처치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사마윤은 나직이 말하고는 검을 불끈 틀어쥐었다.

츄악! 츄악!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물을 차는 소리와 갈대 꺾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잠룡 십 조 대원들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처리할 자를 지목했다. 한 명에게 두 번의 칼질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츄악!

“ 마지막 도약이다, 놈!”

사마윤은 자신이 처리하기로 하였던 자를 쏘아보았다.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리고 난 두 착지하는 순간이 사마윤이 노리는 시점이었다. 물이 차 있는 곳이라 그런지 사내가 한 번에 날아오는 거리는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츄악!

“ 파앗!”

목표처럼 집행사자가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사마윤은 벼락처럼 몸을 날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선에 있던 열세 명이 동시에 몸을 날렸고, 그들의 무기가 내려서는 자들의 목을 향해 빗살처럼 쏘아져갔다.

쩌엉!

가장 먼저 집행사자의 몸을 강타한 무공은 수여설의 빙하빙백강이었다. 수여설의 목표가 된 자는 이십 조 조장인 헌당이었다.

“ 허억!”

헌당은 급하게 몸을 뒤집었다. 아니 뒤집으려고 했다 하지만 신번에서만큼은 최고라고 하여 유령마라는 별호를 얻은 그도 수여설의 빙백빙하강을 피하지 못했다. 빙하빙백강을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방어하기엔 수여설의 무공이 너무 강했다.

이미 백옥수를 완전하게 흡수한 빙하빙백강은 엄청났다. 새하얀 광채가 스며들자마자 헌당의 몸은 얼음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두 번째로 죽임을 당한 자는 사마윤의 목표가 된 우양일이었다. 우양일 역시 조장답게 대응은 빨랐다. 하지만 사마윤의 기습은 빠르고 잔인했다.

우양일의 죽음이 헌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는 점이었다.

“ 자, 잠룡..... 크아악!”

우양일의 머리가 둥실 떠오르며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가 솟수쳐 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온천수가 터져 나오는 광경을 연상시켰다.

“ 아악!”

“ 으악!”

“ 크악!”

곧이어 집행사자들의 비명이 뒤를 이었다.

욱일승의 십육마환무정검이 집행사자들의 머리를 잘라내고 갈인효의 지옥청화독공에 집행사자들의 몸이 녹아내렸다. 수천월의 빙공이 주변을 꽁꽁 얼리고 이자승의 손에서 튀어나온 금색 용이 집행사자들의 몸을 삼켰다.

비명이 이어지고, 자욱한 혈향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집행사자들도 이대로 마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조장 두 명이 죽임을 당하고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뒤로 밀리면서도 발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었다.

바로 그때 이 선에 있던 잠룡들이 몸을 날렸다.

이 선에 있던 잠룡들은 전부 남궁세가 무인들이었다. 가장 먼저 몸을 날린 사람은 남궁운화였다.

그녀가 지나간 곳은 수여설과 장사덕 사이였다.

“ 차앗!”

날카로운 기합이 울려 퍼지고, 청룡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을 추던 청룡이 입을 쩍 벌리면 집행사자의 머리가 사라지고, 고개를 내밀고 날아가면서 집행사자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다.

그리고 청룡의 뒤를 왜소한 체구의 소녀가 따랐다. 아니 청룡을 부리는 사람이 바로 이 소녀였다. 온통 푸른 기운에 휩사인 채 집행사자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그녀는 남궁운화였다.

“ 드디어 창룡이!”

창궁사수의 대형인 우창준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남궁운화의 검에서 흘러나온 푸른 용. 그것은 다름 아닌 창궁대연검법의 육 초인 창궁천추를 펼칠 때 나타나는 광경이다. 전전대 가주인 창궁무제 남궁우문만이 익혔다는 경지. 이기어검술을 펼쳐야만 나타난다는 창룡이 남궁운화의 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녀의 무기는 창룡뿐만이 아니었다.

창룡이 잠깐 모습을 감출 때면 어김없이 왼손의 방패가 허공을 가르고, 방패 끝에 튀어나온 창두 형태의 날카로운 무기는 적의 가슴이나 이마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그 방패 날이 빠져나오는 순간 창룡이 모습을 드러내며 집행사자들을 집어삼킨다.

“ 창룡재림”

- 창룡이 재림하면,

우창준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 창궁천하!”

- 천하는 창궁이 지배한다.

뒤이어 남궁세가 잠룡들이 고함을 지르며 집행사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 창룡비상!”

- 창룡이 하늘을 날면.

“ 남궁천천세!”

- 남궁의 위명은 수천 년 동안 흐르리라.

남궁세가 잠룡들은 고함을 지르며 집행사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발로는 일천독행신을 펼치고 검과 방패로는 일천파류혼을 펼친다. 검이 새파란 광채를 발해도 집행사자의 머리가 떨어지고 방패가 진득한 살기를 발산하면 집행사자들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한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무궐 궐주를 배출했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잠룡쟁패 하나 받지 못했던 그들의 한이 일천파류혼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집행사자들을 향해 달려들며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머리가 떠오르고, 피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누구도 떨어지는 머리와 피를 피하지 않았다.

적의 피가 얼굴을 적시면 스윽 닦아내고, 머리가 앞으로 떨어지면 발로 차냈다. 그러고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 타앗!”

남궁운화의 입에서 뾰족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창궁검이 하늘로 향하고, 검 끝에서 푸른 용이 튀어나왔다. 강기는 용의 머리가 되고, 그녀의 검은 용의 몸통이 됐다. 다리가 생겨나고, 꼬리가 만들어진 순간, 푸른색 용은 그녀의 손을 떠났다.

“ 창룡재림!”

우창준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집행사자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 창궁천하!”

잠룡들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지고, 새파란 살기를 머금은 검이 허공을 갈랐다.

“ 창룡비상!”

“ 남궁천천세!”

콰콰쾅! 쾅쾅!

“ 으악!”

“아악!”

“ 으아악!”

“ 후퇴하라!”

“ 물러나라!”

결국 견디다 못한 집행사자들은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적은 서른 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투기는 삼백 명의 절세 고수가 뿜어내는 기운보다 더 강했다. 잠룡들은 무인이 아니라 맹수였다.

이를 잔뜩 세우고 있는 야수.

하지만 물러나는 순간 이미 저승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크윽!”

시작은 아주 미약한 비명에서 비롯됐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후퇴했던 한 명이 나직이 비명을 지르며 목을 틀어쥐었다. 틀어쥔 손가락 사이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툭!

그리고 머리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 아, 암습.... 컥!”

적이 숨어 있다고 고함을 지르던 자도 곧바로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처음 당했던 자처럼 힘없이 머리가 떨어져 내렸다.

두 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십 군데에서 동시에 같은 일이 일어났고, 집행사자들의 머리가 툭툭 굴러 떨어졌다. 후퇴하는 집행사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이들은 인사대 인사들이었다.

만일 집행사자들이 다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집행사자들은 이렇듯 힘없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행사자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고, 우선은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은 암습을 전문으로 하는 인사대 대원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검이 날아오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집행사자들은 풀썩풀썩 쓰러졌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적이, 뒤에는 가공할 무위를 가진 적이 쫓아오는 상황에 직면한 집행사자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그리고 잠룡들이 공격을 시작한 지 일간이 지나자 서 있는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 허!’

자신도 싸움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자승은 어이없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싸움을 시작한 지 이제 일 각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이백 명에 달했던 집행사자들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다. 가공할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 무서운 건 녀석들이 점점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머잖아 잠룡 십조를 상대할 조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확살하라!”

“ 맙소사!”

수여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자승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주변 어디에서도 신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수여설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적을 찾아내 완전하게 끝을 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강자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마무리를 대충한다는 것이고, 훗날 그 실수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들은 그럴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강하면서도 신중한 자들.

잠룡 십 조가 그랬다.

“ 백 대협!”

시체를 살피고 다니는 잠룡들을 지켜보던 수여설은 백인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 가지고 계신 칼 중에 버릴 만한 게 있나요?”

그녀가 이렇듯 조심스럽게 물은 이유는 백인을 비롯한 인사들이 가진 검들이 상당히 명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 필요하시면 좋은 걸로 한 자루 드리겠습니다. 제 것도 괜찮고요.”

백인은 제 허리춤에 찬 왜도를 가리켰다.

“ 제가 갖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곳에 버리고 가려고 그래요.”

“ 버리고 간다는 건......?”

“ 미나모토 가문의 인사들이 밀천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 아!”

백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도는 중원 검과 모양이 달라 금세 표시가 난다.

그런 무기를 이곳에 두고 간다는 건 이번 일을 밀천에 뒤집어씌워겠다는 말이었다.

“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조장님.”

백인은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그들이 믿을 거라고 보십니까?”

듣고 있던 사마윤이 물었다.

“ 굳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당장은 그 정도면 돼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새벽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 뗏목을 띄워 보내도록 하세요, 적랑.”

“ 건너편에 있는 놈들을 칠 작정입니까?”

“ 우선은 가짜 뗏목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 알겠습니다. 조장님.”

“ 여기 있습니다. 조장님.”

그때 부하들에게 갔던 백인이 소도 한 자루를 가지고 왔다. 약 한 자 길이의 그것은 날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왜도를 받아든 수여설은 엎어져 있는 집행사자 시체 옆으로 가더니 허공섭물로 살짝 들어올려 아래쪽에 왜도를 밀어넣고 다시 원래대로 했다.

‘ 역시’

사마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식으로 해놓으면 시체를 수습하던 자들은 누군가 일부러 놓고 간 것이 아니라 시체 밑에 숨겨져 있어서 발견하지 못한 걸로 오인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잠룡 십 조로 생각했다가 숨겨져 있는 왜도를 발견하면 밀천 무인에게 당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 자! 이제 처음 왔던 곳으로 가도록 해요.”

잠시 주변을 둘러본 수여설은 강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헤엄쳐 가는 겁니까?”

사마윤이 그녀를 따르며 물었다.

“ 남궁 가주를 비롯하여 남궁세가 무인들의 옷에 많은 피가 묻었어요, 적랑.”

수여설은 따스한 눈으로 남궁운화를 보았다.

“ 몸을 씻으면서 올라가자는 말입니까?”

“ 그리고 오늘 밤은 너무 더워요.”

수여설은 빙그레 웃으며 장강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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