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21화 (121/232)

제 3장 얼음수조

악양 중심부에 위치한 동정루는 규모로는 최고를 자랑한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동정루의 좌석을 가득 채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던 동정루가 손님으로 가득 들어찼다. 이백 석이 넘는 좌석을 전부 채웠으면 시끄러워야 하건만 일층 식당은 마치 절간에 들어온 것처럼 조용했다.

그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자 간혹 동정루를 찾았던 손님도 슬금슬금 꼬리를 말아버리고, 동정루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자들만 남았다. 그들은 천마 제석강을 쫓아 악양으로 들어온 잠룡대였다.

잠룡대 대원들이 이렇듯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오면서 들은, 대야벌 율령궁에서 잠룡 십 조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잠룡 십 조 조원들의 가문을 공격한다는 소문이다. 이미 철응방이 멸망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어 단순히 소문으로 치부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대야벌의 정식 문도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가문을 위해서다.

대야벌 소속 무인을 배출한 가문이라는 명패는 군소 문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즉 대야벌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버팀목이 잠룡의 가문을 무너뜨렸다고 하니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잠룡 대부분은 곤혹스런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는 반면 이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서 식사 중인 독고철응과 이지약이었다.

[ 방법이 없어요?]

이지약은 독고철응을 보며 물었다.

[ 전 나이가 칠십이 넘었습니다. 공주님.]

[ 경험은 지혜라고 했잖아요.]

[ 하지만 이번 건은 제가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독고철응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잠룡 십 조가 가만있었는데 율령궁이 공격할 리가 만무하다. 호남은 하오밀문도 문제지만 밀천이란 단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잠룡 십 조를 공격하여 일부러 적을 만든다는 것은 머리가 있는 자라면 절대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잠룡 십 조에는 지옥에서 탈출한 죄수는 물론이고 구림세가의 태상가주인 이자승까지 있다.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뒤끝이 개운치 않는 아주 지저분한 일인 것이다.

녀석이 먼저 시비를 걸었음이 분명할 터였다.

[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그 녀석은 돌아버린 게 분명합니다.]

[ 그가 먼저 시작했을 거라는 거예요?]

문득 연우강이 십뢰를 가지고 담대무궁 일행과 내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머릿속이 사막으로 변한다는 말.

어쩌면 그 말이 그를 무상의 동료가 아니라 남자로 품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 당연히 그렇죠. 우담보 그놈이 할 일이 없어서 연 공자를 공격할 리는 없잖습니까. 그런데 들어온 소식 없습니까?]

[ 무슨 소식을 말하는 거죠?]

이지약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 자칫 잘못하면 머리가 떨어질 거라는 걸 우담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연 공자를 공격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 천안원의 서방사자영이 몰살당했대요.]

[ 서방사자영이 총 몇 명이나 됩니까?]

[ 이천 명이에요.]

[ 이, 이천 명이란 말입니까?]

독고철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 대야벌에서 나온 자들만 그렇다는 말이에요.]

[ 그럼 호남에서 활동하던 자들까지 합치면 그보다 많다는 말이군요.]

[ 그럴 거예요.]

[ 우담보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 왜요?]

[ 제 부하들이 그렇게 당했다면 전 미쳐버렸을 겁니다.]

[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우담보도 반쯤 미쳤을 거예요.]

[ 아무튼 무슨 똥배짱인지.]

독고철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는 똥지게를 졌잖아요.]

[ 똥지겔르 졌으니까 똥배짱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겁니까?]

[ 그리고 정천호였고요. 그런데 대답 안 해 줄 거예요?]

[ 우담보 그놈은 대야벌 백대 고수 서열 육위고 율령궁의 궁줍니다. 공주님. 그리고 담대만승을 벌주에 앉힌 일등 공신이고요.]

[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이세요?]

[ 강한 정도가 아니라 그런 놈은 주식이 자존심입니다. 밥은 굶어도 살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절대 살지 못합니다.]

[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군요.]

[ 몸으로 때우는 게 연 공자 주특기라고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 그렇다고 해도 이번 건은 좀 달라요.]

[ 제겐 방법 없습니다.]

[ 아무튼 도움이 안 돼요.]

이지약은 독고철응을 보며 눈을 흘겼다.

[ 누구 때문에 연 공자와 입맞춤을 하게 됐는데 그러십니까?]

[ 무슨 소리에요?]

[ 제가 아니었으면 입맞춤은 고사하고 아직 손도 못 잡아봤을 거라는 말입니다.]

[ 그, 그건 숨이 가빠서 어쩔 수 없었어요. 환노.]

이지약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 그런데 그것뿐이었습니까?]

[ 무슨 소리죠?]

[ 입맞춤은 그 후 단계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 환노!]

이지약은 빽 소리를 질렀다.

“ 이 소저, 나 좀 봅시다.”

그때 창가 쪽에서 담대무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자식의 주둥일 꿰메버릴까요?]

소명공주라는 별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이 소저라고 부르는 담대무궁을 턱으로 가리키며 독고철응이 물었다.

[ 저도 담대 공자라고 부르는데 뭘 그래요. ]

이지약은 피식 웃으며 담대무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담대무궁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부대주인 윤허와 일조 조장 사유성, 이조 조장 이라파, 삼조 조장 나웅까지 다섯 명이 있었다.

“ 무슨 일이죠?”

이지약은 빈자리로 가며 물었다.

[ 방법이 있습니까?]

독고철응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전음을 보냈다.

[ 방금 떠올랐어요.]

이지약은 담대무궁 일행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무공인 혜광심어를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 담대무궁 그놈은 율령궁이 잠룡 십조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공주님.]

[ 걱정 마세요.]

“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려고 불렀소, 이 소저.”

담대무궁은 이지약이 앉자 입을 열었다.

“ 지금껏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모양이죠?”

이지약은 주방 앞에 서 있는 점소이를 손으로 불렀다.

“ 부르셨습니까?”

점소이는 쏜살같이 뛰어와 이지약 앞에 섰다.

“ 군산은침은 있겠지?”

“ 물론 있습니다. 소저.”

“ 난 가짜는 사절이야.”

“ 여긴 동정호 바로 옆입니다. 가짜를 팔면 큰일납니다. 소저.”

“ 좋아, 가서 가져와.”

“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왔던 것과 비슷한 속도로 주방으로 내달렸다.

이지약은 다시 담대무궁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의견은 둘로 나뉘었소이다.”

“ 어떻게 나뉘었다는 거죠?”

“ 나는 공격을 감행해서 자칭 천마라는 자를 사로잡자는 쪽이오.”

“ 그러면 부대주를 비롯한 조장들은 너무 위험한 작전이라고 하는 건가요?”

“ 그렇소. 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잠룡대의 첫 번째 임무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오.”

“ 그런데.... 사로잡을 자신은 있어요?”

“ 상대는 두 명이고 우린 이백 명이오.”

“ 하지만 그 둘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하죠. 설사 사로잡는다고 해도 절반 이상의 희생은 각오해야 하고요.”

“ 우린 지상 최강의 단체인 대야벌의 무인이외다.”

“ 그렇군요.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요.”

“ 뭐가 궁금한단 말입니까?”

“ 자칭 천마라고 하였던 그가 뭘 잘못했죠?”

“ 무슨 말입니까?”

담대무궁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 그 백발 중년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우리가 왜 그를 사로잡아야 하는지 그걸 묻는 겁니다. 담대 공자.”

“ 그는 스스로 이세 천마라고 칭했다는 걸 모른단 말입니까?”

“ 그게 잘못이라는 거요?”

이번엔 이지약이 되물었다.

“ 우리 대야벌은 무림의 모든 것이오. 이 소저. 더불어 대야벌에서는 천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무공을 만져서는 안 되는 불촉 무공으로 정했을 뿐 아니라 천마의 무공을 익히는 자는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강호 공적이 된다고 했소이다. 그런데 그자는 스스로 천마라고 하였소. 그건 우리 대야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외다.”

“ 하지만 그는 대야벌에 해를 끼친 적이 없지요.”

“ 해를 끼치건 끼치지 않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소이다. 그자는 대야벌의 율법을 어겼고, 우린 율법을 어긴 자를 처벌하러 나온 거요.”

“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요. 그럼 잠룡 십 조는 무슨 죄를 지었죠?”

“ 무슨 소리요?”

“ 소문 듣지 못했나요?”

“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거요?”

율령궁이 잠룡 십 조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왜 모를까. 아니 소문이 아니라 실제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대무궁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 율령궁에서 잠룡 십 조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문까지 공격했다는 사실 말이에요. 이미 철응방은 불탔다고 하더군요.”

“ 아! 그 소문을 말하는 거였군요.”

철응방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자 담대무궁은 그제야 알은 체를 했다.

“ 이제 생각이 났나 보군요.”

“ 원래 강호라는 곳이 별것 아닌 소문들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아마 그 소문도 그런 부류일 겁니다.”

“ 철응방의 멸망은 소문이 아닙니다. 담대 공자. 철응방이 멸망했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 지금이 암살대전 기간이란 사실을 잊은 모양이군요. 이 소저. 그리고 우리 담대세가도 멸망했소이다.”

“ 율령궁 짓이 아니란 말인가요?”

“ 아니라는 건 확실하오.”

담대무궁은 단호하게 말했다.

담대무궁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율령궁이 잠룡 십 조 대원들의 가문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우담보는 물론이고 대야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아니 우담보나 대야벌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문제는 자신이다.

설사 철응방의 멸망이 우담보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잠룡들은 벌주의 명령으로 철응방을 멸망시켰다고 여길 것이다. 그 생각을 좀 더 확장하면 잠룡들 입장에서는 동료의 가문을 멸망시키라고 명령을 내린 자의 아들을 대주로 모시는 꼴이 된다.

그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잠룡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율령궁이 철응방을 멸망시켰다는 사실은, 사실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인정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군요.”

“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

“ 율령궁 천안원 서방사자영이 몰살을 당했는데, 율령궁 궁주는 그들을 몰살시킨 자들을 잠룡 십 조로 지목했다고 하더군요.”

‘ 응? ’

담대무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서방사자영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은 그도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 앙큼한 계집, 날 떠보려고.’

그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서방사자영은 이천 명의 밀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곳에 모여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런 그들을 일일이 찾아 없앤다는 것은 웬만한 문파를 없애는 것보다 더 힘들다. 잠룡 십 조가 그들을 없앨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구려. 이 소저.”

담대무궁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 어떻게 다르단 말이죠?”

“ 나도 이곳에 와서 알았는데, 천살원 집행사자 시체 밑에서 동영의 인자들이 사용하는 왜도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 왜도라고요?”

“ 그렇소. 이 소저. 밀천의 한 축이었던 환밀가가 바로 동영 출신이외다.” 하지 못하는, 제 “ 그럼 잠룡 십 조를 공격하고 있는 자들이 밀천 무인이란 말인가요?”

“ 거의 확실하오. 이 소저.”

“ 그럼 이야기하기가 훨씬 쉽겠군요.”

“ 이야기라니 무슨.....?”

담대무궁은 의아한 얼굴로 이지약을 보았다.

“ 우린 삼합평에서도 밀천과 전쟁을 치렀어요. 담대 공자. 그때 잠룡 십 조는 우리와 함께 싸웠고요.”

“ 그래서요?”

“ 나는 삼합평 전투에서 이십 명의 조원을 잃었고, 윤 공자는 대부분을, 사 공자는 서른 명을 잃었죠.”

“ 복수를 하고 싶단 말이오?”

담대무궁은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연히 잠룡 십 조를 도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럼 잠룡대에 속한 자들이 아닌데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룡 십조를 돕겠다는 말이 아니라 삼합평에서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싶단다. 할 말이 없었다.

“ 담대 공자는 어떻게 생각할이지 모르겠지만 난 죽은 조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 싶어요.”

‘ 빌어먹을!’

담대무궁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세 천마라는 자를 공격했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일부 희생이 났을 테고, 잠룡들은 다른 곳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이세 천마를 잡는데 몰두했을 것이다. 좀더 완벽한 일처릴르 하고 싶어 시간을 끌었는데, 오히려 화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율령궁을 공격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우리 임무는 이세 천마를 생포하는 거요. 이 소저. 사실 그 일만 해도 우리에겐 벅찬 임무요.”

“ 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담대 공자. 이세 천마는 우리 중 누구도 일 대 일로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잡니다. 과연 우리가 그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 그래서 기회를 얻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 아닙니까?”

“ 그러다 영 기회를 얻지 못하면?”

“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공이 아니라 부하들의 안전이오. 무리하게 작전을 펼치다가 그자를 잡지도 못하고 부하들만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소. 만일 그런 경우가 생기면 이 소저가 책임질 거요?”

이제야 주도권을 잡았다는 듯 담대무궁은 이지약을 몰아붙였다.

“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 상태가 굳어지겠지요.”

“ 지금 상태가 굳어진다는 건 무슨 소리요?”

“ 잠룡궁에서 우리 잠룡들에게 내린 평가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혹시 담대 공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겁니까?”

이지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잠룡들은 일제히 담대무궁을 보았다.

이지약의 말이 맞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남은 기간을 보내게 되면 대야벌을 나올 때 받았던 평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최고 평점을 받았다고 하였던 담대무궁이 일등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그건 나 담대무궁을 모욕하는 말이오, 이 소저.”

담대무궁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지약을 노려보았다.

“ 난 담대 공자를 제외한 나머지 잠룡들이 처한 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더불어 우린 잠룡대란 조직으로 묶여 있지만 아직은 경쟁잡니다. 그걸 잊지 말았으면 하네요.”

“ 난 이 조장의 말에 동의하오, 대주. 난 범천룡이 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소이다.”

듣고 있던 사유성이 이지약 편을 들었다.

환밀가의 가주이자, 잠룡 십 조를 공격하고 있는 자들이 율령궁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유성으로서는 당연한 입장 표현이었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 그런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지약이 완벽한 논거를 바탕으로 담대무궁을 몰아치고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 그럼 나도 밀천 무인과 싸우는 쪽으로 가야겠구먼.”

윤허까지 거들고 나서자 담대무궁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사유성과 윤허까지 거들고 나섰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차라리 잠룡 십 조가 하오밀문과 한통속이 돼 율령궁을 공격하여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하였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히 밀천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일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 좋소. 이 소저. 그럼 잠룡들의 임무를 밀천과 전쟁으로 바꾸도록 하겠소.”

결국엔 그 수밖에 없었다.

율령궁과 정말로 전쟁을 치를 게 뻔한데 윤허와 이지약에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이세 천마는 포기하는 건가요?”

이지약은 비아냥대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 포기가 아니라 잠시 미루는 거요. 이 소저. 그리고 난 잠룡대의 대주요.”

“ 삼합평에서 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건 담대 공자 때문이 아니라 잠룡 십 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담대 공자가 삼합평에 왔을 때는 이미 왼팔이 없었고요. 그건 이곳에 있는 잠룡들 전부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이지약은 차갑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난 삼합평에서 왼팔을 잃었다고 말한 적 없소.”

“ 하지만 동정호 지하에서 잃었다고 말하지도 않았죠.”

이지약은 독고철응 건너편으로 앉았다.

[ 너무 몰아붙이는 거 아닙니까?]

지금껏 술잔을 들이키며 지켜보던 독고철응은 웃는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 몰아붙인게 아니고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이에요. 환노.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도덕성과 솔직함이에요. 도덕성과 솔직함이 결여된 자가 지휘관을 맡게 되면 그 조직은 금세 몰락하고 말죠.]

[ 저놈이 공주님의 목을 노리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 환노가 있는데 걱정할 이유가 없잖아요.]

[ 흐흐흐! 그렇습니다. 공주님. 저놈이 공주님을 향해 살기를 발산하는 순간, 놈의 목이 먼저 떨어질 겁니다.]

[ 잠룡 십 조는 지금 어디 있죠?]

[ 노구포 근처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럼 환노는 그 주변을 정찰하고 오세요.]

[ 율령궁 집행사자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알아 와야 되겠군요.]

[ 당연한 걸 묻고 그래요.]

[ 그런데 지금 나가도 괜찮겠습니까?]

[ 담대공자가 보고 있다는 거예요?]

[ 그렇습니다.]

[ 우린 율령궁이 아니라 밀천 무인을 없애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 중이에요, 환노. 신경 쓰지 마세요.]

[ 알았습니다. 공주님.]

독고철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들으라는 듯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 정녕!’

밖으로 나가는 독고철응을 노려보던 담대무궁은 왼편 끝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열세 명의 잠룡들이 세 곳에 나뉘어 앉아 있었다. 호위조라는 이름으로 담대무궁을 호위하면서 각 조에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 호풍검!”

담대무궁은 그들 중 한 명을 호명했다.

“ 말씀하십시오. 대주님.”

각진 얼굴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호풍검 막동으로 호위조의 조장이었다.

“ 대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밀천 무인들의 위치를 정찰해 오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대주님.”

막동은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호위대 잠룡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막동, 가면서 들어라.]

막 나가려고 하는 막동의 귓전으로 담대무궁의 전음이 들려왔다. 막동은 태연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 막동, 너는 지금 당장 파릉 객잔으로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고 이곳 상황을 전달해라.]

[ 어떻게 전달하면 됩니까?]

[ 밀천 무인이 잠룡 십 조를 공격한다는 소문 때문에 잠룡대 대원들이 집행사자들을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해라.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피치 못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대비하란 말도 하고.]

[ 알겠습니다. 대주님.]

막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 네 뜻대로 되도록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이지약.’

담대무궁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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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탁자가 들썩이며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 병신 같은 놈!”

곧 짜증이 잔뜩 밴 욕설이 뒤를 이었다. 탁자에 놓인 첩지를 노려보며 욕설을 뱉어낸 사람은 율령궁 궁주 우담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십일 조와 이십 조 집행사자들이 몰살당한 소식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담대무궁이 이끄는 잠룡대가 집행사자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올라온 것이다.

“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가?”

우담보는 버럭 소리쳤다.

“ 담대공자가 은밀하게 요 영반을 찾아왔답니다.”

요 영반은 동방사자영을 맡고 있는 쇄안 요장남을 일컫는 말이었다.

“ 그래서?”

“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담대 공자가 율령궁이 잠룡 십 조를 공격한다는 소문 때문에 잠룡대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요 영반은 밀천의 소행이라고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그 증거로 왜도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 병신 같은 놈!”

동정루에서 일어난 일의 내막을 알 리 없는 우담보 입장에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방사자영과 잠룡대가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겁니다.”

“ 잠룡대와 충돌이 없을 거란 말인가?”

“ 아직 충돌했다는 소식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단 말이군. 아무튼 좋네. 그 일은 담대무궁을 믿고 잠시 보류하도록 하세. 십일 조와 이 십 조가 몰살당한 사건의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가?”

“ 잠룡 십 조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 밀천이 아니란 말인가?”

“ 잠룡 십 조에 들어가 있는 몽요라는 계집은 은밀막부의 가주였습니다.”

“ 맞아 그랬지.”

“ 그런데 삼합평 전투에서는 그 계집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 동영으로 가서 부하들을 데려왔다는 말인가?”

“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 그럼 십일 조와 이십 조를 없앤 자들이 잠룡 십 조란 말이군. 놈들은 지금 어디 있나?”

“ 그게....”

유선은 말끝을 흐렸다.

“ 모른단 말인가?”

“ 갈대 숲에 숨어 있는 건 확실한데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답니다.”

“ 은신해 있다는 건가?”

“ 그런 모양입니다. 그리고.....”

“ 뭔가?”

“ 밀정들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 그것도 은밀막부의 소행으로 봐야 하는가?”

“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 그에 대한 대안은?”

“ 각처에 흩어져 있는 밀정과 감찰사자들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일단 잠룡 십조를 정리하자는 건가?”

“ 그렇습니다.”

우담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오천 명에 달하는 율령궁 문도들.

밀정이니 감찰사자니 집행사자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

그 말은 곧 율령궁에는 만오천 명의 무인이 있다는 말이 된다. 반면에 적은 오십 여 명. 지옥의 죄수들까지 합친다고 해도 백 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백 명에 불과한 그들에게 만오천 명의 문도를 가진 율령궁이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금 상태로 끌려가다 보면 남는 건 패배밖에 없을 테다.

작전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었다.

“ 좋네. 호남 전역에 퍼져 있는 밀정과 감찰사자들을 악양으로 불러들이게. 그리고 작전을 새롭게 짜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궁주님.”

“ 지휘본부도 악양으로 옮길 테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하게.”

“ 본부도 옮긴단 말입니까?”

“ 우리가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늦은 정보 때문이네.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포위망을 더욱 좁히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유선은 고개를 숙이고는 분석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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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이어지면 처음엔 신경이 잔뜩 곤두서게 된다. 하지만 점차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무뎌지기 마련이다.

십사 조 소속인 일월장 맹군의 심리 상태도 그랬다. 강 건녀편에 있던 십일 조와 이십 조가 전멸당한 사건으로 인해 장강 북편에 있던 십사 조와 십육 조 진영은 발칵 뒤집혔다.

처음엔 이백 명 전부가 강변으로 나와 하루 종일 놈들을 감시했다. 뗏목이 다가올 때는 긴장한 채로 무기를 뽑았다. 하지만 뗏목에 놈들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다.

뗏목은 하루에 두 번씩 다가왔다가 강 중간 지점에서 물살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가곤 했다.

“ 지금이 몇 신지 내기할 텐가?”

맹군은 옆에 있는 옥면객 민도룡을 보며 물었다.

“ 나온 지 반 시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기 때문이었다.

“ 야식 시간이네.”

“ 벌써 축시란 말인가?”

민도룡은 깜짝 놀라며 강을 보았다.

곧 그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검은 덩어리 세 개가 이편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축시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뗏목이었다. 처음엔 잔뜩 긴장한 채 뗏목을 살폈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시각을 알려주는 장치로 여기고 있다.

“ 아무튼 시간 하나는 정확한 놈들이야.”

맹군은 웃으며 품속을 더듬었다.

강 건너 어디에서 보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갈대 뗏목은 정확하게 이편을 향해 다가오다가 강 중간 정도에 다다르면 방향을 틀어 아래로 흘러간다.

그때가 바로 야식 시간이었다.

“ 근데 서쪽을 맡고 있는 놈들은 죽을 맛이라고 하던데 들었는가?”

문득 육포를 찢다 말고 맹군이 물었다.

“ 무슨 소린가?”

“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은 뗏목이 떠내려 오면 물속까지 들어가 수색 작업을 펼친다네.”

“ 이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운이 좋은 건가?”

“ 그런 셈이지.”

맹군은 빙그레 웃었다.

[ 아니네, 자넨 지독히 운이 없는 셈이네.]

“ 무슨 소리야. 우리처럼 운 좋은 사람.... 헉!”

맹군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바로 옆에 있던 민도룡의 고개가 푹 꺾여 있었던 것이다.

“ 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손이 맹군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새퍄랗게 날이 선 왜도가 맹군의 목으로 파고 들어갔다. 맹군의 목에 도를 찔러넣은 자는 백인이었다.

맹군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백인은 품속에서 깃털 하나를 꺼내 허공에 가만히 놓았다. 약한 바람이 서쪽으로 불고 있었다. 그는 동쪽으로 가라는 수신호를 보내며 몸을 날렸다. 그로부터 반 각 후, 백인을 비롯한 인사들은 집행사자 진영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렬로 늘어선 인사들은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들며 은신술을 펼쳤다.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면서 일 장 높이로 날아오른 다음 주머니 안에 있는 가루를 날렸다.

그 가루는 인사대 대원들이라면 반드시 지참하고 다니는 수면 가루였다.

가루를 뿌리고 난 백인은 품속에서 특이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로 서역에서 들어온 모래시계였다. 평평한 땅 위에 모래시계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아 떨어지는 모래로 시선을 주었다.

위쪽에 있는 모래가 다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각은 정확하게 일 각이다.

그리고 수면 가루가 효과를 발휘하는 시각은 반 시진, 최소한 세 번은 뒤집어야 할 터였다. 뒤집어 놓기를 반복하던 그는 세 번이 끝나자 모래시계를 품속으로 집어넣고 일어났다. 백인은 말없이 수신호를 했다. 고개를 끄덕인 인사들은 소리 없이 집행사자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스며들어 갔다.

‘ 큭!’

백인은 비릿하게 웃었다.

은밀하게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행사자들은 갈대 곳곳에 흩어져 잠이 들어 있었다. 은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단 의미였다.

반면에 잠룡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은신을 한 상태다. 그들은 먼저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안에는 갈대 잎을 채운다. 그런 다음 갈대를 잘라 구덩이 위쪽에 가로로 걸쳐놓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마른 갈대 잎을 덮어 구덩이를 숨긴다.

그러면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지금껏 잠룡 십 조는 그곳에 들어가 몸을 숨겼던 것이다. 잠룡 십 조가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윽!

백인은 조용히 다가가 잠들어 있는 자들의 사혈을 눌렀다. 잠들어 있는 자들을 없애는 건 육체적인 피곤함보다는 정신적인 피곤함이 더 크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들을 없앤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인사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고도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약 한 식경 정도가 지나자 이백 명에 달했던 집행사자들 중 살아남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작업을 마친 인사들은 집행사자들의 몸 안에 흙과 돌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살해하는 작업보다 돌을 채워 넣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 일이 끝나자 이번엔 시체를 강으로 옮겼다.

흙과 돌로 채워진 시체들은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이동한다!”

맨 처음에 없앴던 시체 두 구를 처리하고 나자 백인은 강 중간으로 헤엄쳐 갔다. 강 중간에는 수여설을 비롯한 잠룡 십 조 대원들이 갈대 뗏목의 모서리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 어때요?”

수여설을 다가오는 백인을 보며 물었다.

“ 전부 수장시켰습니다.”

“ 떠오를 가능성은?”

“ 돌을 채웠으니까 당분간은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 수고했어요. 가요.”

고개를 끄덕인 수여설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잠룡들은 일제히 잡고 있던 뗏목을 놔버리고 하류로 헤엄쳐 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동한 탓에 그들이 율령궁 선박이 정박해 있는 곳에서 이십 장 떨어진 곳에 도착한 건 한 식경 후였다.

뗏목은 이미 적선을 지나쳐 흘러가고 난 후였다.

“ 어떻게 할 참이냐?”

이자승은 수여설을 보며 물었다.

이렇듯 급하게 적을 처리하는 이유는 전날 받은 소식 때문이다. 이철상이 보낸 첩지에는 율령궁의 모든 밀정과 감찰사자들과, 밀천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 있었다. 잠룡 십 조 입장에서는 더는 노구포 갈대 숲에 숨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를 탈취하기로 하였다. 그 첫 번째 작업이 바로 강 건너에 있는 자들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들을 없애 놓으면 율령궁의 시선은 강 북쪽에 집중될 테고, 당분간에 불과하겠지만 잠룡 십 조는 시간을 벌게 된다.

누가 시간을 지배하느냐 하는 싸움에도 적의 위치를 모른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율령궁에서 북쪽을 수색할 때 자신들은 율령궁 배에서 적을 없애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선을 탈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배에 타고 있던 집행사자들이 한 명이라고 빠져나가면 배가 탈취당한 사실이 적에게 알려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 일단 그물을 쳐야죠.”

“ 어떻게 그물을 친다는 말이냐?”

이자승은 의아한 얼굴로 수여설을 보았다.

“ 지켜보세요.”

수여설을 빙긋 웃으며 배와 거리를 가늠했다.

“ 가요, 할아버지.”

“ 그러자꾸나.”

곧 수여설과 수천월이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배와 십 장 거리를 남겨둔 지점에 멈춘 수여설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여설이 들어간 깊이는 약 삼 장이었다. 그녀는 단전을 활짝 개방하고 양팔을 벌리면서 빙하빙백강을 끌어올렸다.

쩌엉!

그녀의 양손에서 빙하빙백강이 발출되고, 세 자 두께의 얼음 덩어리가 생겨났다. 만들어진 얼음은 급속하게 커지더니 수면 위로 살짝 튀어나왔다.

수여설은 여전히 양손을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그녀는 천천히 뒤로 이동했다.

“ 세상에...!”

두 사람을 따라왔던 이자승의 입에 쩍 벌어졌다.

물속에 무려 세 자 두께의 거대한 얼음벽이 생겨나고 있었다. 더불어 수여설은 율령궁 배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려 나갔다. 수천월 또한 수여설을 따르며 얼음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나갔다.

저 얼음벽이 바로 조금 전 그녀가 말한 그물이었던 것이다.

얼음벽을 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거의 반 시진에 걸쳐 얼음벽을 친 수여설은 밖으로 나와 호흡을 골랐다.

일행은 멍한 눈으로 수여설을 보았다.

그녀의 무공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엄청난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내게 시킬 일이라도 있느냐?”

수여설의 시선을 느낀 욱일승이 물었다.

“ 배 바닥에 구멍을 뚫어야 해요, 할아버지.”

“ 예쁘게 잘라내마.”

욱일승이 검을 뽑아들었다.

“ 그리고 갈 할아버지는 독공을 준비해 주시고요.”

“ 허!”

이자승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얼음 벽이 아니라 수조였다. 얼음벽 아래쪽도 얼음으로 막고 배에 구멍을 내면 배는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수조에 독을 플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가 막힌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 가요, 할아버지.”

호흡이 안정되자 수여설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으로 들어간 그녀와 수천월은 바닥을 얼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욱일승은 배 바닥으로 향했다. 구멍을 뚫는 것도 간단했다. 검강을 끌어올리고 가볍게 돌려주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 잘라낸 판은 버리지 말고 가져오세요. 할아버지.]

혜광심어가 들려오자 욱일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사실을 이곳 장강에서 깨닫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심검의 경지라고 부르는 빙허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강한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녀의 진짜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자는 그녀였던 것이다.

[ 할아버지.]

[ 아, 알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욱일승은 잘라낸 나무판을 들고 아래쪽으로 헤엄쳐 내려갔다. 이미 얼음 수조는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수여설은 조금 남았던 부분을 마무리하고는 수면으로 나왔다.

그녀를 비롯한 세 사람이 나오자 갈인효는 얼음 수조 안으로 들어가 지옥청화독공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갈인효가 쏟아넣은 지옥청화독공은 물과 뒤섞여 얼음 수조 안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데 어때요?”

“ 호흡을멈추면 어떻게 되냐?”

이자승은 욱일승을 보며 물었다.

어차피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집행사자들은 호흡을 멈출 수밖에 없고, 만일 호흡을 통해 중독되는 독이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지옥청화독공은 피부로도 중독되잖아.”

“ 그랬나?”

이자승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 독동도 발전하는 무공이다. 자승!”

“ 새로 창안했다는 말이냐?”

“ 그런 셈이지.”

“ 기대 되네.”

이자승은 빙그레 웃으며 가라앉고 있는 적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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