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25화 (125/232)

제 7장 증거 인멸

사천 하늘을 가득 메웠던 먹구름이 장강을 따라 호남까지 밀려온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어둠과 함께 거칠어지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하면서 장대비로 돌변했다. 존재하는 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과 그 어둠을 꿰뚫는 비뿐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강물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동체가 있었다. 선수에는 물에서 솟구쳐 올라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한 형태를 한 용이 전면을 굽어보고, 측면에 이 층으로 노가 걸려 있는 거대한 동체의 배는, 언뜻 보면 황룡호와 비슷했다.

하지만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은 이철상을 비롯한 하오밀문 문도들이 아니었다. 배 위임에도 불구하고 삼엄한 기운을 쏟아내고 있는 자들은 밀천의 정예인 밀천무영대 대원과 밀천의 천주를 근접 호위하는 밀천금의대 대원들이었다. 황룡호와 비슷한 모습으로 꾸민 이 배의 주인은 무무대야 나천후였던 것이다.

위층 선실에 앉은 나천후의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그 서류 뭉치는 하오밀문 수뇌로부터 얻어낸 정보였다.

“ 서른 곳이라.....”

그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첫 장은 하오밀문의 거점이 그려진 지도고, 둘째 장부터는 현재 하오밀문을 이끌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수뇌들에 대한 신상 정보였다. 신상 정보를 보고 있던 그는 다시 첫 장을 들추었다.

거점은 동정호로 들어오는 네 개의 강을 중심으로 설치돼 있었다. 그곳에서 수집된 정보가 동정호로 들어와 황룡호에 있는 하오밀문 수뇌부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더불어 거점을 파괴하게 되면 하오밀문은 마비될 것이다.

“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지.”

나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하오밀문과 율령궁의 싸움을 통해 나천후가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양패구상이었다. 양쪽 다 치유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해야 하는데 아직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 가만!”

문득 나천후의 시선이 상강으로 향했다.

송백, 담백, 금전, 삼문, 대택, 상음, 하오밀문 거점을 하나씩 훑어가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율령궁의 서방사자영이 전멸한 장소가 대부분 상강 주변에 몰려 있었다. 그 말은 곧 하오밀문이 만든 서른 곳의 거점은 단순한 거점이 아니라 함정을 파놓은 거점이라는 의미였다.

“ 여우 같은 놈!”

이제야 서방사자영 무인이 당한 이유를 알 듯했다. 서방사자영 밀정들의 실종 소식은 이틀 간격으로 올라왔다. 한 번에 처리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오밀문 문도들은 서방사자영 무인들을 거점으로 유인하고, 처리는 잠룡 십 조와 지옥을 탈출한 노인들이 한 것이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묘강독존이라는 희대의 독공 고수까지 포함돼 있다. 일단 율령궁 밀정을 빠져나갈 수 없는 곳으로 유인한 다음 독을 이용하여 조용히 처리했을 것이다.

“ 그래서 이틀거리를 두고 거점을 만들었던 거야. 무인이 부족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 맞다. 천후야. 그놈은 율령궁을 야금야금 없앨 참이었다.”

선실 밖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부님!”

나천후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조부는 군산에서 밀천의 개파대전 준비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 앉으십시오.”

나천후는 간이 주방으로 가서 찻잔을 가지고 왔다.

“ 어쩐 일이십니까?”

찻잔에 물을 따르고 차를 집어넣으며 물었다.

“ 네가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아서 왔다.”

나적리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 상황은 대충 파악이 된 것 같은데, 양패구상 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 어떤 상황말이냐?”

“ 그러니까 연우강은......”

나천후는 조금 전 정리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 연우강 녀석은 시간을 끌면서 율령궁을 야금야금 없앨 생각이었는데, 우담보가 역공을 취했단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조부님. 우담보는 서방사자영을 없앤 자들이 잠룡 십 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그들의 가문을 공격하는 강수를 택하게 됩니다.”

“ 하지만 문제가 생겼지.”

“ 그렇습니다. 조부님. 연우강은 철응방을 멸망시킨 조직이 율령궁이라는 소문을 내면서 잠룡 십 조를 대야벌로 귀환시키게 됩니다.”

“ 만일 그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야벌 벌주인 담대만승도 그를 보호해주지 못하겠지.”

“ 그래서 우담보는 우리 밀천을 끌어들인 겁니다.”

“ 그는 성공했지.”

“ 물론입니다. 조부님. 그는 우리가 철응방을 공격했다는 소문을 흘리면서 광동차가를 멸망시켰습니다. 서방사자영이 전멸한 이후 행보만 놓고 본다면 우담보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또한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 어떤 약점 말입니까?”

“ 잠룡 십 조를 노구포에 몰아넣고도, 율령궁이 잠룡들을 공격한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쉽게 공격을 하지 못했다.”

“ 그래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거군요.”

나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잠룡 십 조는 오십여 명에 불과하고 율령궁은 수천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위한 체 미적대는 게 이상했는데, 율령궁이 잠룡 십 조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던 것이다.

“ 그렇다. 율령궁이 미적대는 사이에 잠룡 십 조는 대야벌로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 전쟁을 택한 거다. 그 결과물이 바로 노구포에서 죽임을 당한 집행사자 이백 명이고.”

“ 잠룡 십 조가 전쟁을 택하자 우담보는 작전을 바꿔 잠룡 십 조를 먼저 없애기로 한 거군요.”

“ 그런 거지. 그래서 호남 전역에 있던 밀정과 감찰사자를 전부 노구포 주변으로 불러들였다.”

“ 하지만 저는 잠룡 십 조는 물론이고 율령궁 무인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나천후는 하오밀문 거점이 표시된 종이를 나적리 앞으로 밀었다.

“ 그건 나도 봤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다.”

나적리는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 좋은 수라도 있습니까?”

“ 하오밀문 수뇌들의 가족을 이용하는 거다.”

“ 가족을 어떻게.....?”

“ 하오밀문 거점 상황은 확인했느냐?”

“ 율령궁을 따라 이곳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최소 인원만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럼 이걸 율령궁 측에 자연스럽게 흘려라.”

“ 율령궁에만 흘리면 된다는 말입니까?”

“ 다른 생각이라도 있느냐?”

“ 전 추격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 먼저 하오밀문 수뇌들의 가족을 잡아 거점으로 던져 놓고 그 사실을 양측에 알리는 겁니다.”

“ 그럼 하오밀문 문도들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율령궁이 그들의 뒤를 쫓을 거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 우담보가 그대로 따를 거라고 보느냐?”

“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보십니까?”

나천후는 되물었다.

“ 율령궁을 우습게 보고 있구나.”

“ 무슨 말씀이십니까?”

“ 다른 세력이 개입됐다는 걸 눈치 채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 정말 그럴 거라고 보십니까?”

“ 정보를 다루는 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고 해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런 다음 확신이 생겼을 때만 움직인다.”

“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 조금 전에 말한 대로다. 우리가 할 일은 이걸 자연스럽게 흘리는 것까지다.”

“ 그 다음부터는 율령궁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 그렇다. 우린 하오밀문의 거점에 무인만 은신시켜 두고 있으면 된다.”

“ 율령궁에서 하오밀문 거점을 이용할 거라고 보시는군요.”

“ 우담보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나적리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굳이 그럴 이유라도 있습니까?”

“ 첫째는 자존심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 밀천 때문이다.”

“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조부님.”

“ 지금 우담보 입장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 이번 일에 목숨을 걸 정도로 화가 나 있습니다.”

“ 그럼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 하오밀문은 물론이고 그들을 도왔던 잠룡 십 조까지 몰살을 시켜야 하겠지요. 그것도 전투를 주시하는 모든 이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담보는 하오밀문의 거점을 그대로 이용해서 하오밀문 문도와 잠룡 십조를 없애려고 한다는 거다.”

“ 가족을 잡고 거점에 함정을 파고 기다린단 말입니까?”

“ 내가 우담보라면 그렇게 하겠다.”

“ 알겠습니다. 정보를 자연스럽게 흘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이곳으로 온 건 율령궁의 배를 공격하기 위함이냐?”

“ 율령궁에 하오밀문 정보를 흘린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게 낫다. 지금 율령궁은 상황이 어떠냐?”

“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나천후는 오른편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악양과 노구포 주변의 상세 지도였다. 그 지도에는 붉은색으로 아홉 개의 점이 찍혀 있고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나천후의 손이 가리킨 곳은 장강 남서쪽이었다.

“ 강에서 십오 리 가량 떨어진 이곳에 동방사자영 이천 명이 은신해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 끝에는 남방 사자영 이천이 은신해 있고요.”

“ 가운데 있는 두 개는 집행 사자더냐?”

나적리는 동방사자영과 남방사자영 사이에 있는 두 개의 붉은 점을 보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강변에서 팔 리 가량 떨어져 있고, 조 당 집행사자의 수는 이백 명입니다. 고 간 거리는 십 리고요. 그리고 장강에는 집행사자 백 명을 태운 배 두 척이 있고, 장강 북쪽에는 북방사자영 이천, 감찰 사자 삼천오백이 집행사자 이백 명, 총 오천오백 가량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 남쪽으로 몰겠다는 뜻인 모양이구나.”

“ 우담보는 잠룡 십 조를 대야벌로 보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 담대무궁이 잠룡대를 이끌고 들어왔다는 말이 들리던데 알아봤느냐?”

“ 생각지도 않은 변수, 아니 우군들이 들어온 셈입니다.”

나천후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 담대무궁의 의사완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잠룡 십 조를 공격하는 세력이 우리 밀천이란 소문이 돌자 이지약과 사유성이 강력히 주장한 모양입니다.”

“ 클클클! 제 도끼로 발등을 찍은 꼴이로구나.”

“ 그런 셈이 됐습니다.”

“ 잠룡대는 더이에 있느냐?”

“ 여기에 있습니다.”

나천후의 손이 장강 남쪽 동방사자영과 집행사자 중간 지점을 가리켰다. 나천후가 잠룡대의 위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잠룡대에 들어가 있는 사유성으로부터 수시로 연락이 오기 때문이었다.

“ 집행사자가 있는 쪽으로 유도하면 되겠구나.”

“ 밀천무영대 대원들 중에서 빠른 자들로 스무 명을 보냈습니다.”

“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구나.”

“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나천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장대비는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줄기차게 퍼붓고 있었다.

“ 아악!”

“ 으아악!”

두 줄기 비명이 빗속을 갈랐다.

“ 무, 무슨 일이냐?”

담대무궁은 질겁한 얼굴로 비명이 들려오던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는 각 조 조장들이 도착해 있었다. 담대무궁은 잠룡들을 헤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 이건?”

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잠룡 두 명이 목에서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 아는 사람 있는가?”

그는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 암습을 당한 것 같네. 조장.”

시체를 살피던 윤허가 일어나며 대답했다.

“ 암습이라고?”

담대무궁은 말이 안된다는 듯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이곳은 서쪽에는 동방사자영의 밀정들이 있고, 동쪽에는 집행사자 이백 명이 있다. 더불어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 잠룡대의 이동 경로를 율령궁에다 알렸다.

누군가 잠룡대를 암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오는 걸 밀천에서 눈치를 챈 모양이네요.”

시체를 보고 있던 이지약이 담대무궁을 보며 말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이 소저. 이곳에는......”

이곳에 주둔해 있는 자들은 율령궁 무인들이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이제 와서 그들의 정체를 밝히면 지금껏 잠룡들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테고 신뢰는 급격하게 무너진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 밀천 무인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이지약은 담대무궁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하,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말이오, 이 소저.”

“ 좀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 그, 그렇소.”

슉! 슉슉!

담대무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귓전으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담대무궁은 반사적으로 파공성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가 손을 뻗어냄과 동시에 이지약도 손을 뻗어냈다.

척! 척!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암기를 잡아챘다.

‘ 소리는 세 개였는데....’

“ 커억!”

담대무궁이 내심 중얼거리는 순간 왼편 끝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담대무궁은 급히 시선을 돌렸다.

빗소리 때문에 암기가 날아오는 파공성을 감지하지 못한 듯, 잠룡 한 명이 목을 틀어쥐고 쓰러졌다.

츄악!

전면에서 물을 차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차앗!”

이지약의 입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오고 방금 잡아챘던 암기가 비를 뚫고 날아갔다.

“ 크윽!”

그리고 빗속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 가요!”

이지약은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 이곳에서 대기하라.”

담대무궁은 잠룡들에게 소리치며 이지약을 따라 내달렸다. 하지만 담대무궁의 명령을 듣는 잠룡은 아무도 없었다. 암기에 당한 잠룡의 숨이 끊어졌기 때문에 굳이 돌볼 필요가 없었다. 동료의 죽음으로 흥분한 잠룡들은 시체를 버려두고 담대무궁을 쫓아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일행은 검은 무복을 걸친 사내 앞에 몸을 내렸다. 사내는 이미 숨이 끊어진 채였다. 시체 주변에는 이지약, 윤허, 사유성, 담대무궁이 서 있었다.

담대무궁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사내의 복장이 집행사자와 같은 검은색인 탓이었다. 무복은 거기서 거기라 색이 같으면 여간해서는 구분하기 힘들다.

‘ 신분패를 찾아야.....’

문득 집행사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신분증명서가 떠올랐다. 사각형으로 된 패에는 집행사자란 명칭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일 시체가 그 패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정말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담대무궁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보통 몸수색은 조장이 아니라 부하들이 나서서 하는 일이다. 자신이 하게 되면 의심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으려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바로 그때.

“ 일단 몸을 수색해 봐야겠군.”

불쑥 사유성이 나서다니 쪼그려 앉아서는 시체의 품속을 뒤졌다.

‘ 빌어먹을!’

담대무궁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사유성이 나섰는데 직접 몸수색을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담대무궁은 긴장한 얼굴로 사유성을 보았다.

“ 여기 있군.”

사유성은 사내의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 휴우!’

담대무궁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집행사자들이 가진 신분패는 사각형인데 사유성이 꺼낸 물건은 둥근 형태였던 것이다.

“ 밀천무영대라고 적혀 있네. 조장.”

사유성은 둥근 패를 담대무궁에게 내밀었다.

“ 그럼 이곳 어딘가에 밀천 무인들이 은신해 있단 말이 되는 건가?”

슉! 슉슉! 슉!

“ 피해라!”

또다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오자 담대무궁은 버럭 소리치며 자세를 낮췄다.

“ 저쪽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이지약은 양손을 휘둘러 암기를 쳐내며 암기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쫓아라!”

“ 가자!”

이어 윤허와 사유성이 쫓으라는 명령을 내리며 이지약을 쫓아 내달렸다. 잠룡대 대원들은 조장들을 쫓아 지면을 차고 날았다.

“ 젠장!”

담대무궁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잠룡 세 명이 죽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담대무궁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런데 그가 나아가는 방향은 잠룡대 대원들이 가고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담대무궁은 잠룡들을 우회하여 잠룡대보다 먼저 집행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잠룡대가 공격해 올 거라는 사실을 알리고 피하게 할 참이었다

그는 천리지청술을 펼치며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희미하게 잠룡들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잠룡대 또한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담대무궁은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어둠과 비를 뚫고 내달린 그는 한 식경 후 집행사자들이 은신해 있는 근처에 도착했다.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몰려오자 담대무궁은 그 자리에 멈췄다.

“ 난 잠룡대 대주 담대무궁이오.”

담대무궁은 전방을 향해 나직이 소리쳤다. 하지만 주변을 장악한 싸늘한 기운은 해소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싶어 담대무궁은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호흡을 골랐다.

“ 난.......”

“ 크악!”

“ 아악!”

“ 적이다. 적이 쳐들어 왔다!”

“ 밀천 놈들이다!”

또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서쪽에서 비명과 더불어 밀천 무인들이 쳐들어왔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 아뿔싸!”

담대무궁은 신음을 내뱉었다.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잠룡대는 이곳에 숨어 있는 자들을 밀천 무인이라 확신하고 달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룡대인지 집행사자 측인지 알 수 없는 어중간한 장소에서 밀천 무인이란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 말은 곧 서로가 적이 밀천 무인이라고 오인할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금은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 아닌가.

“ 빌어먹을!”

담대무궁은 욕설을 뱉어내고 집행사자 진영으로 무작정 몸을 날렸다.

“ 웬 놈이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싸늘한 기운이 닥쳤다.

차앙!

“ 난 담대무궁이오!”

담대무궁은 무적뇌화검을 뽑아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검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 정말 담대 공자란 말이오?”

담대무궁을 공격하던 자들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사내는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느닷없이 달려오는 담대무궁을 향해 공격을 한 것이었다.

“ 그렇소. 빨리 조장에게 안내해주시오.”

“ 따라오십시오.”

담대무궁과 사내는 급하게 서쪽으로 내달렸다.  전에 연우강에게 당해 똥물을 먹었던 기억 “ 조장이 누구요?”

담대무궁은 사내를 따라 달리며 물었다.

“ 마영신수 가득선 님과 팔비 석초 님이 조장을 맡고 있습니다.”

‘ 첩첩산중이군.’

담대무궁은 고개를 저었다. 아는 자라면 쉽게 대화를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사내가 말한 두 사람의 별호는 금시초문이었다.

‘ 일단 설득해 보는 수밖에.....’

담대무궁은 굳은 얼굴로 사내를 따랐다.

몇몇 집행사자를 마난 조장의 위치를 물은 사내는 담대무궁을 두 사람 앞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담대무궁을 알아보았다.

“ 잠룡대 대주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마영신수 가득선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담대무궁이 아니라 연신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긴히 할 말이 있소, 두 분.”

담대무궁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 급한 일입니까?”

“ 그렇소. 석 대협. 지금 이곳을 공격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말이외다.”

“ 밀천 놈들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 그들은 밀천이 아니오, 가대협]

담대무궁은 전음으로 말했다.

“ 무슨 소립니까?”

가득선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 그게......]

담대무궁은 조금 전 겪었던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 그, 그러니까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이.....”

“ 소리가 크오, 가 대협.”

[ 잠룡대란 말입니까?]

가득선은 경악한 얼굴로 담대무궁을 보았다.

“ 그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외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소.”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가득선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쳐들어온 자들이 벌주의 아들인 담대무궁이 이끄는 잠룡대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차아앗!”

“ 크악!”

“ 아악!”

“ 으아악!”

바로 그때 뾰족한 외침에 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빌어먹을 계집!’

담대무궁은 내심 욕설을 뱉어냈다. 방금 기합의 주인은 이지약이었던 것이다.

“ 집행사자들을 철수시켜 주시오. 가 대협.”

“ 지금 철수라고 하셨습니까?”

“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차간에 피해가 극심하게 될 거요. 가 대협도 알겠지만 잠룡들의 실력은 이미 웬만한 무인을 넘어섰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같는다’는 말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조각조각 잘려나간다.

즉 같은 말이거나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가며 해야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집행사자들은 잠룡들을 대야벌 임시 제자로 여기고 있을 뿐 정식 무인으로 보지도 않았다.

가득선이나 석초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잠룡대는 담대무궁을 키워주기 위해 벌주가 만든 유령 단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단체의 수장이란 자가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잠룡대가 집행사자들을 공격하고 있으니 몸을 피하라고 한다. 그 말은 곧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도망치란 말이오?”

가득선의 말투가 대번에 호전적으로 바뀌었다.

“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라......”

“ 난 우담보 궁주의 명령을 받고 있소. 담대 공자. 그리고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은 밀천 무인이라는 보고가 올라 왔소이다.”

“ 이 싸움을 계속 하겠다는 말이오?”

어쩌면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보지 못하고 살아와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율령궁의 수뇌도 아니고 단순히 집행사자들의 조장인 가득선이 잠룡들을 아니, 자신을 깔보는 듯한 말을 하자 담대무궁의 언성이 높아졌다.

“ 우리 집행사자를 움직이는 건 궁주님의 명령이외다. 담대 공자. 그리고 철수는 우리가 아니라 잠룡대가 해야 할 것 같소이다.”

가득선과 석초는 고개를 숙이고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 건방진 놈!”

담대무궁은 멀어지는 가득선과 석초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 후회하게 될 거다. 가득선.”

담대무궁은 짓씹듯 말하고는 집행사자 진영 밖으로 몸을 날려갔다. 건방진 놈이라고 말하는 자는 비단 담대무궁뿐만이 아니었다. 전방으로 달려가는 가득선 또한 주먹을 불끈 틀어쥔 채 담대무궁의 욕을 하고 있었다.

“ 지가 벌주의 아들이면 아들이지, 감히 내게 명령을..... 개자식.”

가득선은 전면을 노려보았다.

“ 공격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곧이어 그의 입에서 살기 가득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와아!”

“ 우와아!”

비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란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앞에서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사자들은 잠룡대 대원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 타앗!”

“ 차앗!”

“ 이야압!”

잠룡들은 거칠게 고함을 내지르며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이지약의 검에서는 우저일만검결이 쏟아져 나오고 윤허의 검에서는 화산파 절기가, 사유성의 검에서는 환밀가의 절기가, 거철산의 양발과 손은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흔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쏟아낸 절기는 폭풍처럼 집행사자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피가 난무하고, 잘려나간 신체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집행사자들만 죽어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잠룡들 또한 집행사자들의 무기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 타앗!”

바로 그때 시퍼런 광채가 전면을 수직으로 갈랐다.

“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시퍼런 광채 앞에 있던 집행사자 세명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 풋!”

이지약은 피식 웃었다.

시퍼런 광채의 주인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담대무궁이었다. 그의 일검 일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집행사자들의 몸이 대나무처럼 쩍쩍 갈라졌다.

“ 저놈을 죽여라! 저놈을 죽여라!”

이지약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눈에 보아도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법한 자가 담대무궁을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뿐만 아니라 집행사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구나. 담대무궁.”

이미 예견했던 상황이었다.

담대무궁의 성정으로 보아 정중하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테고 집행사자 수뇌를 찾아가 고압적인 자세로 철수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아니, 이곳에 있으면 전멸당할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는지도.

하지만 집행사자 입장에서 보면 잠룡들은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그런 자들을 피해 도망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일 테다. 오히려 담대무궁에게 작전에 방해가 되니까 풋내기들을 데리고 철수하라고 했을 것이다.

“ 지휘관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담대무궁. 든든한 배경으로 지휘관이 됐다고 해도 본인의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부하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없다. 신뢰를 얻어내지 못하는 지휘관은 도태되는 곳이 바로 세상이란 말이다.”

이지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대무궁에게서 멀어졌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는다고 굳이 담대무궁 근처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 죽여라! 반드시 놈을 죽여라!”

“ 차앗!”

“ 타앗!”

가득선의 명령에 집행사자들은 진득한 살기를 쏟아내며 담대무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오냐, 가득선. 나 담대무궁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마. 난 벌주의 아들이라서 특혜를 받은 게 아니라 내 실력으로 잠룡대의 대주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마.’

담대무궁은 이를 부드득 갈며 검을 휘둘렀다.

동정호에서 목숨을 건져 나온 이후 많은 생각을 하였고, 무적뇌화결 또한 구 성에 이르렀다. 구 성의 무적뇌화결이면 대야벌 각 단체의 수뇌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잠룡대 대주가 된 걸 축하한다고 하면서 뒤돌아서서는 욕을 해댔다. 아버지가 벌주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대주가 됐겠느냐며 비웃었다.

담대무궁은 단전을 활짝 열고 무적뇌화검에 내기를 주입했다. 검 끈에서 푸른색 검강이 생겨나고 그것은 곧 전방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한 담대무궁의 무공은 가공했다.

허공을 가르는 푸른색 검강은 걸리는 것들을 전부 잘라냈다. 그렇지 않아도 집행사자들을 밀어붙이고 있던 잠룡대 쪽에 담대무궁은 천군만마였다. 잠룡대 대원들은 폭풍처럼 밀고 들어가며 집행사자들을 유린했다.

“ 석 형!”

가득선은 석초를 불렀다.

“ 말씀하시오, 가 형.”

“ 이 사실을 궁주님께 알려주시오.”

“ 싸움에서 빠지란 말이오?”

“ 억울하지만 놈들은 우리가 감당할 수준을 넘었소. 어차피 이곳에 있어 봐야 개죽음밖에 당하지 않소이다.”

“ 가 형은 가지 않을 거요?”

“ 나는 놈을 시험해봐야겠소. 아무튼 서두르시오. 석 형.”

가득선은 담대무궁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담대무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놈!”

그는 집행사자 선두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 알았소, 반드시 전하겠소.]

석초는 전장에서 빠르게 물러나며 전음을 보냈다.

“ 죽일 놈!”

석초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몸을 날렸다. 설마 집행사자들이 벌주의 아들이 이끄는 잠룡대에게 전멸을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잠룡들이 저렇듯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봐야 옳다.

“ 하지만 넌 이제 끝났다. 담대무궁.”

“ 천만에, 난 앞으로도 계속 건재할 거야.”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석초의 눈앞에서 푸른 광채가 번쩍했다.

“ 넌?”

석초는 온 힘을 다해 몸을 굴렸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 전력을 다한 담대무궁의 검을 피한다는 건 무리였다.

무적뇌화검은 단숨에 석초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 이제 가득선만 없애면 되는 건가?”

담대무궁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 석초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자들과는 달리 적수공권인 가득선의 모습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가득선은 빠르게 움직이며 잠룡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담대무궁은 가득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가득선 근처에 내려선 그는 막아서는 집행사자들을 베어 넘기며 전진했다.

[ 가득선]

그는 전음으로 가득선을 불렀다.

“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다. 놈!”

담대무궁의 전음이 들려오자 가득선은 몸을 홱 돌려 양손을 후려쳤다.

[ 넌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 가득선. 그랬더라면 넌 오랫동안 장수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 너도 나와 다르지 않다. 놈! 오늘 이후로 너도 끝장났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득선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 우리 잠룡대가 공격한 자들은 밀천 무인이었다. 난 그렇게 보고를 올릴 것이다.]

“ 너를 본 자들이 몇 명인지 아느냐?”

[ 난 아니라고 하고, 그들은 나라고 하면 누구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 석초가 이미 네놈의 만행을 보고하기 위해 떠났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구나, 놈!”

[ 그놈은 이미 죽었다. 이제 네놈만 주으면 날 알고 있는 자들은 없어진다.]

“ 주, 죽었다고?”

[ 그렇다!]

담대무궁은 무적뇌화검을 들어 올린 채 가득선을 향해 쏘아져갔다.

“ 어림없다!”

가득선은 날아오는 담대무궁을 향해 힘차게 양손을 뿌렸다. 그의 독문 무공인 마영산수였다. 수십 개의 손 그림지가 허공을 장악한 채 담대무궁을 향해 쏘아져갔다.

[ 이따위 잡기로 날 우롱한 모양이구나.]

담대무궁은 차갑게 소리치며 들어 올렸던 무적뇌화검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그의 검에서 일 장 가량 검강이 튀어나와 허공과 손 그림자를 한 번에 잘라냈다.

“ 억!”

가득선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 잡기는, 애들 앞에서 자랑해라, 가득선.]

담대무궁의 무적뇌화검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가르자 가득선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 그리고 저들도 발설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왜냐면 우린 공법이란 말이다.”

담대무궁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집행사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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