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29화 (129/232)

제 1장 구부 능선의 의미

어떤 식으로 공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없지만 대야벌의 각 세력은 파벌끼리 뭉쳐 있었다. 남쪽에는 사월림과 만마림이, 서쪽에는 군마련과 철무련이, 동쪽에는 무궐, 구중련, 녹사련, 낭인림이, 북쪽에는 야궐, 묵야련, 사자림, 사혜림이 황궐을 향해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려 열두 개 단체의 연합 세력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쳐들어가고 있지만 전투는 지지부진했다.

담대천호는 어둠 속을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벌내쟁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시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진격한 거리는 삼백 장이 채 되지 않았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부딪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하들만 보낸 것도 아니고 이번엔 련주들이 직접 참여하는 상황이 아닌가.

여간 짜증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 나요, 련주.”

바로 그때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이 담대천호 곁으로 다가갔다. 갑옷과 비슷한 붉은 색 전포를 걸치고 있는 이 자는 철무련의 련주 혈사신군 모두악이었다.

모두악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정찰을 나갔다 돌아오는 중이었다.

“ 어떤 자들이었소?”

“ 금황련 무인들이었소이다.”

“ 어느 정도요?”

“ 금황련의 전력이 전부 투입된 모양이외다.”

“ 진식은 어떻소?”

담대천호는 어둠 속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전면에 진식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반 시진 전이었다. 그 진식을 뚫기 위해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을 뿐 뚫지를 못했다.

“ 숨겨둔 진식이었던 모양이외다.”

모두악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문파 건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비장의 수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금황련에서는 그 진식을 펼친 듯했다.

“ 약점도 찾지 못한 거요?”

“ 아직은 그렇소이다.”

“ 다른쪽은 어떻소?‘

“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소이다. 그들 또한 막혀 있는 상황이오.”

“ 결국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단 말이군.”

진식을 돌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식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진식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모두악을 비롯한 이십여 명 내외다.

“ 그렇소. 일단 부딪쳐 봐야 어떤 진식인가 가닥이 나올 것 같소이다.”

“ 좋소, 해봅시다.”

담대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담대천호 뒤편에는 여덟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들은 군마팔선이라 불리는 자들로 군마련 최고 원로들이었다.

“ 이제 힘 좀 쓰는 겁니까?”

중앙에 있던 노인이 웃으며 물었따. 약간 통통한 체형의 노인은 군마팔선의 대형으로 자하유선 호담생이란 자였다.

“ 그래야 할 것 같소. 호 노.”

“ 클클클! 준비하겠습니다. 련주님.”

“ 그럼 난 철무십옹을 데리고 가야겠군요.”

보고 있던 모두악이 말했다.

철무십옹은 철무련 원로 열 명을 일컫는 말이었다.  를 비롯한 밀정들을 살해한 수법은 네  “ 무인암 앞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담대천호는 발을 옮기며 말했다.

무인암은 천무비고에서 이백 장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삼 장 높이의 커다란 바위를 말하는데, 멀리서 보면 검을 든 사람 형태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알았소. 그곳에서 보도록 합시다.”

모두악은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담대천호를 비롯한 군마팔선은 주변을 살피며 무인암으로 향했다. 황궐과 가까워질수록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살기는 강해졌다.

“ 마기를 발산하는 진식인 모양이군.”

담대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살기만이 아니었다.

마음속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마기까지 섞여 있었따. 만일 심력이 약한 자가 저 기운에 장시간 노출되면 적의 공격이 아니라 자괴감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 터였다.

“ 재미있군.”

담대천호는 차갑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일행은 무인암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혈사신군 모두악과 철무십옹이 와 있었다.

“ 먼저 왔구려.”

“ 좀 서둘렀소이다. 담대 련주.”

“ 올라가 봅시다.”

담대천호와 모두악은 몸을 날려 무인암으로 내려섰다. 삼장 높이에 불과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지역이 약간 높아서 그런지 주변이 대부분 시야에 들어왔다.

창! 창창! 창창창!

“ 크악!”

“ 아악!”

“ 으아악!”

높은 곳으로 올라오자 사방에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더 크게 들려왔다. 담대천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황궐이었다.

담대천호는 눈을 감고 감각을 풀었다.

진식을 부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다. 진식을 파훼하기 위해서는 진식의 힘이 집중돼 있는 중심을 깨트려야 한다. 감각을 사방으로 푼 이유는 그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 쿡!”

담대천호의 입에서 나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기가 집중돼 있는 장소는 왼쪽에 하나, 전면으로 보이는 곳에 하나 그리고 오른편에 하나가 있었다.

이곳에 펼쳐진 진식이 전부 세 개라는 말이다. 더불어 중앙에 있는 마기가 가장 강했다.

“ 우리가 뚫어야 할 곳은 저기요, 모 련주.”

담대천호는 전면을 가리켰다.

“ 그곳만 뚫으면 진식을 와해시킬 수 있는 거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마땅찮은 듯 모두악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 설치된 진식이 세 개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와해되진 않을 거요. 하지만 중앙을 파훼하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거요.”

“ 그렇구려.”

모두악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담대천호는 구룡금창 공야일우에 이어 대야벌 백대 고수 서열 이 위에 올라 있지만, 그 사실을 곧이고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형제가 대야벌의 전권을 쥐고 흔든다는 말을 들을까 봐 일부러 일 위 자리를 내주었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 듯하다.

자신은 한가운데 구축된 진식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은 고사하고 세 개의 진식이 설치돼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런데 담대천호는 대번에 파악해 낸 것이다.

담대천호와 자신과의 실력 차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갑시다, 련주.”

담대천호는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래로 내려온 담대천호는 잠시 일행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지금부터는 무조건 직진할 거요. 가로막는 자는 무조건 없애시오.”

“ 알겠습니다. 련주.”

“ 알았소이다.”

군마팔선과 천무십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갑시다.”

담대천호와 모두악을 비롯한 이십 명은 일제히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백여 장 가량을 달렸을까.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인영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군마련의 천위군마대 소속 무인들이었다.

“ 천위군마대는 길을 터라!”

앞서 가던 자하유선 호담생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 천위군마대는 길을 터라!”

그러자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소리치며 일행 곁으로 달려왔다. 그는 천위군마대 대주인 패혼탈명창 형광이었다.

“ 형광은 부하들을 데리고 우리를 따라라!”

담대천호는 형광을 향해 소리치며 앞으로 나갔다.

“ 존명! 천위군마대는 나를 따라라!”

담대천호 일행이 지나쳐가자 형광은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형광을 따라 몸을 날린 군위천마대 대원드은 백여 명 가량이었다.

창! 창창! 창창창창!

“ 천위군마대는 길을 터라!”

호담생의 외침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오자 금황련 무인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 적이다, 자리를 고수하라!”

“ 자리를 고수하라.”

금황련 무인들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스스스!

풀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천위군마대 대원들과 드잡이를 하고 있던 금황련 무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그랬군.”

담대천호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싸늘해졌다.

약한 무인들이 힘을 합쳐 한두 명을 강하게 만드는 단순한 진식이 아니었다. 저들이 펼치는 진식에는 은신술까지 포함돼 있었던 거였다. 군마련 무인들이 고전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슥!

스윽!

휙!

느닷없이 전면에서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다.

차앙!

담대천호의 허리춤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허공으로 솟구친 검을 잡아낸 담대천호는 나아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전면을 향해 내리그었다. 그냥 보면 단 한 번 그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담대천호 앞에는 십여 개의 달빛 광채가 나타나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 크악!”

“ 아악!”

“ 아아악!”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군마팔선과 철무십옹이 나아가는 곳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차앗!”

나아가던 담대천호의 신형이 삼 장 높이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도 검은 그림자들이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 흥!”

담대천호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어렸다. 아래로 내리고 있던 검이 교묘한 변화를 일으키며 허공을 횡으로 갈라갔다. 손목을 비틀어 원을 그리는 것도 같고, 위아래로 잘게 잘라내는 동작 같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검은 달빛 광채를 쏟아냈다.

노르스름한 색의 광채는 겉보기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듯하다. 하지만 그 광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는 안락함과는 동떨어진 잔혹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달빛에 닿은 자들의 몸은 걸레처럼 찢겨나가 버린 것이었다.

“ 워, 월광무?”

어둠 속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교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

꽃과 나비가 어울리네.

그 모습에 취해 있다 보니

바람과 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보지 못했네.

어느새 어둠은 세상을 뒤덮고

비가 오고 번개가 치네.

불타는 유성이 대지를 찢어발기니

지옥이 도래했네

하늘과 땅이 분노하니 삶과 죽음의 구분이 모호하네.

덧없는 세상이야......

천단십절마예.

군마련 련주인 담대천호가 익힌 무공 이름이고 그 무공은 월광무, 화접무, 망혼무, 풍운무, 암흑무, 우레무, 유성무, 지옥무, 생사무, 무상무의 열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담대천호가 천단십절마예를 펼친 광경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따. 다만 일식인 월광무를 펼칠 때에는 달빛처럼 교교한 광채가 흐르고 이 식인 화접무를 펼칠 때에는 꽃 냄새가 흐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달빛과 꽃 냄새를 맡았다가는 시체를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한다. 지독한 아름다움으로 시작했다가 지독한 잔인함으로 끝을 맺는 무공. 그 무공이 바로 천단십절마예였던 것이다.

“ 담대천호란 말이냐?”

담대천호는 다시 자기 애병인 십절마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검에서 흘러나온 달빛은 점점 싸늘해지고 광채가 쏘아져 가는 거리도 멀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은 더욱 처절했다.

담대천호를 비롯한 일행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금황련 무인들을 도륙하며 전진해 나갔다.

하지만 금황련 무인들의 저항은 거셌다.

담대천호와 모두악, 군마팔선, 철무십옹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들을 뒤따르던 천위군마대 대원들은 비명과 함께 쓰러져 갔다.

“ 타앗!”

담대천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사르릉!

마치 미약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전면이 붉은 색으로 들어찼다. 어떻게 보면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면 나비 같기도 했다. 그것들은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살랑거리면서 어둠을 뚫고 나아갔다.

이 초인 화접무였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

“ 크악!”

“ 악!”

“ 크윽!”

어둠 속에서 솟구친 검붉은 액체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 으음!”

담대천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조금도 변화가 없는 진식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진식은 진식을 구성하는 매개체에 이상이 생기면 변형이 일어나거나 파훼돼야 한다. 그런데 십여 명을 격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식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 밑동을 잘라내야 한단 말인가?”

담대천호는 중얼거렸다.

지금 없앤 자들이 나무의 가지라면 마기가 집중돼 있는 부분은 밑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을 자랄내야 진식이 와해되면서 적의 실체가 드러날 듯했다.

“ 해달라면 해 줘야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금황련 무인들은 쉬지 않고 반격을 해왔지만 담대천호가 나아가는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 엄청나군.’

모두악은 감탄한 얼굴로 담대천호를 보았다.

담대천호가 무공을 펼치는 걸 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대야벌에서 벌이는 비무대회에서 담대천호가 펼치는 무공을 견식한 적이 있었다. 그때 펼쳤던 무공이 땅이었다면 지금 펼치는 무공은 하늘이다.

비무 대회에서 보여준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모궁주.”

“ 아, 알았소이다.”

담대천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악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무기를 휘둘렀다. 그 또한 담대천호에게지지 않기 위해 일 초 일 호에 전력을 다했다.

비명이 난무하고 피가 튀었다. 더불어 중앙을 맡고 있던 반천역행만마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 투입돼 있습니다.”

그 사실은 금세 금황련 련주인 남옥에게 전해졌다.

“ 담대천호가 들어온 모양이군.”

남옥은 전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서쪽 성벽 위에 세워진 십여 장 높이의 망루 안이었다. 그곳에 있으면 아래쪽 상황이 한눈에 보이고, 각 진식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남옥이 진식의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은 진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다. 그런데 중앙을 맡고 있는 진식의 기운이 급격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 접니다. 련주님.”

바로 그때 망루 아래쪽에서 과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제 과일우는 중앙의 반천역행만마진을 지휘하고 있는 자였다.

“ 담대천혼가?”

남옥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 담대천호와 군마팔선, 모두악과 철무십옹이 빠르게 진입해 오고 있습니다.”

“ 여유는 얼마나 있는가?”

“ 일 각 정도면 진의 중심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게.”

“ 알겠습니다.”

과일우는 고개를 숙이고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 쉽지 않을 거다, 담대천호.”

남옥은 어둠 속을 노려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 이제 다 왔소. 저기만 깨트리면 중앙을 돌파할 수 있소이다.”

담대천호는 제 애병인 십절마검으로 전면을 가리켰다.

“ 그렇군요.”

모두악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앞에 서자 가공할 기운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감지할 수 있었다.

“ 자, 이제 끝장을 봅시다.”

담대천호는 십절마검을 가슴 앞에 세웟따. 그러고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파르르!

담대천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에 어둠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 요동은 점점 강해지더니 천천히 주변을 장악하며 퍼져나갔다.

‘ 맙소사, 이건?’

모두악은 경악한 얼굴로 담대천호를 보았다.

담대천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주변이 아니라 자연을 장악해나가고 있었다. 이미 심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대하면 대할수록 놀라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척!

담대천호의 검이 하늘로 향했다.

그러자 주변으로 퍼져나갔던 기운들이 급격하게 십절마검을 향해 몰려들었다.

모두악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검으로 모여두는 기운이 확연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만일 저 기운이 전방으로 풀어진다면 최소한 주변 십여 장은 초토화될 게 분명했다.

“ 접니다. 련주님!”

바로 그때 뒤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패혼탈명창 형광이었다.

“ 휴~!”

담대천호는 들이마셨던 숨을 내뿜으며 십절마검을 내렸다. 그리고 형광을 돌아보았다.

“ 무슨 일인가?”

“ 련이 공격받고 있답니다.”

“ 뭐라고?”

담대천호의 눈이 사정없이 치켜 올라갔다.

“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놈들이 군마련으로 쳐들어 왔다고 합니다.”

“ 빌어먹을!”

담대천호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반격이었다. 지금껏 많은 벌내쟁투가 있었지만 목표가 된 자들이 반격을 취한 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허를 찔리고 만 셈이다.

담대천호는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곳만 처리하면 진식 하나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 싸움을 끝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마련의 희생을 통해 그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몰락하겠지만 군마련도 그에 못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 철수한다!”

담대천호는 전 내공을 끌어올려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 천위군마대는 철수하라! 가장 빠른 속도로 군마련으로 귀환하라!”

형광은 담대천호를 따라 몸을 날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 철무련 무인들은 철수하라! 지금 당장 련으로 철수하라!”

뒤이어 모두악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황궐을 향해 밀고 들어간 무인들은 급하게 몸을 뺐다.

[ 적이 물러가고 있습니다. 련주님.]

망루 근처로 달려간 과일우는 위쪽을 올려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 작전대로 시행하게.]

[ 알겠습니다. 련주님.]

과일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진식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 서둘러라!”

여기저기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오고, 금황련 무인들은 빠르게 서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서쪽 끝에 위치한 야궐이었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금황련 무인들이 야궐을 치자, 북쪽에서 황궐을 공격하던 야궐, 묵야련, 사자림, 사해림이 철수를 하였고, 군마련을 공격하던 별동대가 방향을 바꿔 무궐을 공격하자, 금황련 동쪽에서 공격하던 무궐, 구중련, 녹사련, 낭인림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은 자들은 사월림과 만마림이었다.

사월림과 만마림의 황궐의 상대가 아니었다. 서쪽과 동쪽으로 갔던 금황련과 황궐 무인들이 돌아와 협공을 가하자 사월림과 만마림 무인들은 도망치듯 후퇴하고 말았다.

“ 으음!”

간밤에 일어났던 벌내쟁투에 대한 보고를 받은 담대만승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무려 열두 곳의 문파가 공격했다. 그런데 오히려 공격한 자들이 철수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 어떻게 된건가?”

담대만승은 만우량을 보았다.

“ 벌내쟁투가 시작되자마자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에서 뽑은 별동대 이천 명이 군마련을 공격한 모양입니다.”

“ 군마련과 철무련이 철수를 한 건가?”

“ 그렇습니다. 군마련과 철무련 무인들이 철수하고 그들을 막고 있던 금황련 무인들은 곧바로 야궐로 쳐들어갔답니다. 그들이 야궐을 치는 사이에 별동대는 무궐을 향해 진격을 했고요.”

“ 야궐과 무궐 무인들은 동시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겠군.”

“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벌주님.”

“ 그건 무슨 말인가?”

“ 이걸 보십시오.”

만우량은 탁자 위를 가리켰다.

탁자 위에는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화살표와 더불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 야궐과 무궐이 포위됐단 말이군.”

담대만승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황궐을 공격했던 야궐 무인등른 금황련과 풍운련 무인들에게 포위된 상태고, 무궐, 구중련, 낭인림 무인들은 별동대와 황궐 무인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공격을 받던 자들이 오히려 반격을 취한 형태였던 것이다.

“ 피해는 어느 정도 났다고 하던가?”

“ 야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물론이고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도 황궐 공격에 나섰던 무인 절반 이상을 잃었답니다.”

“ 사월림과 만마림은?”

“ 그들은 칠 할 이상이 괴멸되었습니다.”

“ 대승이군.”

담대만승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공야일우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벌내쟁투가 벌어졌을 때 공격하는 문파의 최대 약점을 반격의 빌미로 이용하여 하룻밤을 버텨낸 것이었다.

“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무려 열두 개 문파의 공격을 버텨낸 겁니다.”

“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소 같으면 벌주인 자신이 중재를 해서 벌내쟁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더불어 목표가 됐던 자들이 철저하게 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목표가 됐던 자들이 승리한 반대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 만일 여기서 중재를 하여 벌내쟁투를 멈추게 되면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장차 벌주님의 최대 경쟁자가 될 겁니다.”

“ 열두 개 문파와 전쟁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렇다고 계속 모른 척하는 건 부담이 너무 크네. 뇌천.”

“ 그렇다고 공야일우에게 벌주 자리를 넘겨줄 수는 없잖습니까, 어차피 굵직굵직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굵직굵직한 사건이라면 밀천의 개파를 말하는 건가?”

“ 그것뿐만이 아니라 팔황새도 들어옵니다.”

“ 금세 잊혀질 거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벌주님. 불안감을 가지고 가는 것보다 기회가 났을 때 제거하는 게 낫습니다.”

“ 만일 글대로 두었다가 오늘과 같은 상태가 일어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건가?”

“ 일어나지 않게 해야지요.”

“ 방법이 있단 말인가?”

“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흩어 놓으면 오늘밤 안에 정리될 겁니다.”

“ 어떻게 흩트려 놓는단 말인가?”

“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을 공격하는 겁니다.”

“ 거기는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

담대만승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무공도 모르는 일반 양민을 공격하자는 말이기 때문이었따. 만일 그 일이 세간이 알려지면 벌주 자리를 지키는 건 고사하고 강호 공적이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일이다.

“ 공손정우가 사주한 걸로 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 무궐의 짓인 것처럼 꾸민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무면천군단 이백 며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이용하면 감쪽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 허락할 수 없네.”

담대만승은 고개를 저었다.

설사 비밀리에 처리한다고 해도 무면천군단 이백 명은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셈이 된다. 너무 위험했다.

“ 벌주님은 나설 필요 없습니다.”

“ 하면?”

“ 벌주님은 관여되지 않는 걸로 할 생각입니다.”

“ 제가 보다 못해 나선 걸로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자네가 혼자 꾸민 걸로 하겠단 말이지.”

담대만승은 만우량의 왼팔로 시선을 주었다.

만우량이 배신을 한다면 자신은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늘밤도 같은 결과가 나올 테고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승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궐주인 공야일우는 차기 벌주가 되려고 할 테고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몽땅 뒤집어쓰면 됩니다.”

“ 어떻게 뒤집어쓴단 말인가?”

“ 실종도 좋은 방법이지요.”

“ 사라지겠단 말인가?”

“ 벌주님께서 차기 벌주에 오르시면 그때 다시 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 그렇구먼. 좋네. 뇌천. 시행하게.”

담대만승은 결정을 내렸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벌주님.”

만우량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 그건 그렇고.....”

“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 무궁에 대한 말 들었는가?”

“ 잠룡대가 집행사자 이백 명을 해쳤다는 보고를 말하는 겁니까?”

“ 그렇네.”

담대만승의 얼굴은 대번에 어두워졌다.

“ 사실은 그 부분에 대해서도 혁세군 궁주와 이미 상의를 했습니다.”

“ 어떻게 결론이 나왔는가?”

“ 아무리 변명을 한다고 해도 잠룡대가 집행사자 이백을 해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그랬군.”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이지만, 직접 듣고 나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렇다고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무궁에게 범천룡 자리를 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담대만승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 하면 어떻게 할 참인가?”

“ 더불어 잠룡대를 해체할 수도 있습니다.”

“ 해체하면 무궁을 위해 잠룡대를 창설했다고 욕을 먹게 되겠지.”

“ 그렇다고 다른 잠룡에게 범천룡 자리를 줄 수도 없고요.”

“ 범천룡 후보에 올라 있는 잠룡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등천대룡 윤허, 전마 사유성, 다라밀영 이라파, 혼무영 나웅, 소명공주 이지약은 범천룡 자리를 주게 되면 비상할 잠룡들입니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담대공자는 묻혀버리고 맙니다.”

“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담대만승은 답답한 얼굴로 물었다.

잠룡대를 해체할 수도 없고, 아들인 담대무궁은 물론이고 다른 잠룡들에게 범천룡의 자리를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답답했다.

“ 잠룡 십 조가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잠룡 십 조?”

“ 비록 앵속쟁이라고 소문이 난 조장을 모시긴 했지만 잠룡 십 조는 이번 잠룡강호행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했고, 평가 또한 가장 좋았습니다. 잠룡 십 조 전원에게 준다면 다른 잠룡들 또한 불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우린 범천뇌격단을 출병시켰네. 그들이 범천뇌격단의 살수를 피할 걸로 보는가?”

“ 그들이 전부 죽임을 당하면 그땐 죽은 잠룡들 모두에게 범천룡의 지위를 내리면 됩니다.”

“ 그것도 방법 중의 하나군. 죽은 자들에겐 관대한 법이니까.”

담대만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인 담대무궁에게 주지 못할 바엔 다른 자들 또한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은 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범천룡의 직위를 내린다면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잠룡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잠룡대를 이끌 지휘관이다.

“ 하면 잠룡대의 수장은 누구에게 맡길 참인가?”

“ 허수아비를 한 명 세울 참입니다.”

“ 생각해둔 잠룡이라도 있는가?”

“ 그건 혁 궁주가 맡기로 했습니다.”

“ 알았네. 이제 한시름 놨구먼.”

담대만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들었다.

“ 전 무면천군단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벌주님.”

“ 그렇게 하게.”

“ 그럼.”

만우량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천상천 건물을 나서 곧바로 무면천군단 숙소를 향해 내달렸다.

무면천군단 숙소는 침묵에 빠져 있었따. 원래부터 조용한 곳이지만 금릉 연씨 세가를 공격하다가 단주 담대민ㅇ르 비롯한 삼백 명이 몰살당한 이후, 이곳은 거의 폐허처럼 변하고 말았다.

“ 나, 뇌천이다.”

대문 앞에 선 만우량은 나직이 소리쳤다.

끼이익!

그러자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대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 직진하시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옵니다.”

오른쪽 나무 그늘 아래쪽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우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삼십 장 가량 나아가자 아래쪽으로 향하는 게단이 나왔다. 만우량은 지체 없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 어서 오십시오. 군사.”

계단 아래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만우량을 맞았다. 그는 월마 담대민이 죽은 이후 무면천군단 단주를 맡고 있는 무영신수 사공도였다.

“ 할 말이 있네. 사공도.”

만우량은 구석에 있는 탁자 앞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 임무입니까?”

“ 그럴 리가 없겠지만 설사 죽는다고 해도 자네들이 나섰다는 말을 할 수가 없네. 그리고 이번 임무의 책임자는 자네와 나네.”

비공식적인 임무인 모양이군요.“

“ 그렇네. 명령권자는 나네.”

“ 말씀하십시오. 군사.”

사공도는 만우량을 빤히 쳐다보았다.

“ 자네도 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젯밤 황궐을 비롯한 열두 개 문파가 패했네.”

“ 들었습니다.”

“ 오늘밤도 패하게 되면 차기 벌주는 황궐의 궐주인 공야일우가 될 거네.”

“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보십니까?”

“ 비록 열두 개 문파가 전력을 다 투입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이 패했다는 건 보통 큰일이 아니네. 더구나 황궐은 동창과 선이 닿아 있는 조직 아닌가. 이대로 방치하면 자네나 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거네.”

“ 임무를 말해주십시오.”

“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이네.”

“ 양민이란 말입니까?”

사공도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지만 양민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금릉 연씨 세가 공격 명령을 받은 적이 있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벌 내에 있는 양민을 공격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우리가 악역을 맡는 수밖에 없네.”

“ 준비하겠습니다.”

사공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해해줘서 고맙네, 단주.”

“ 우린 천상천 소속 무인입니다. 군사. 선악에 대한 판단은 천상천에서 하는 것일 뿐 우리가 아닙니다.”

“ 허허허! 벌주님께서는 복이 많은 분이구먼.”

만우량은 흐뭇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무면천군단 숙소를 나선 만우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했던 눈에 점차 감정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 이제 구 분 능선을 넘었다. 아니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제 남은 건.....”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만우량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 2 장. 미친 놈, 아니 년

이번 벌내쟁투는 여러모로 기록을 양산해냈다.

목표가 됐던 문파가 승리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은 것은 물론이고, 공격은 하루 동안만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도 깨졌다. 두 번째 날 저녁이 다가오자 전날 당했던 각 문파들은 또다시 황궐을 향해 진격해갔다.

전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인의 수가 두 배로 늘었다는 것이었다. 황궐 궐주 공야일우를 비롯한 네 명의 얼굴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벌주가 중재를 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지만 해가 지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담대만승은 끝까지 중재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소. 우리기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공야일우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 오늘밤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이다.”

남옥의 얼굴은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전날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공격하는 자들의 허를 찔렀고, 보기 좋게 먹혀 들어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놈들도 대비하고 있을 테고 그 수법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 오늘은 다른 작전을 쓸 거요, 남 련주.”

“ 어떤 작전을 쓴단 말이오?”

남옥은 기대 어린 얼굴로 공야일우를 보았다.

“ 북쪽을 제외한 세 곳 중 한 곳을 골라 별동대를 투입할 거요.”

“ 그래서요?”

“ 그럼 놈들은 별동대를 막기 위해 방어진을 칠 거요. 바로 그때 방어진을 펼치고 있는 곳은 진식을 해진하고 별동대를 도와 적을 공격하면 되오.”

“ 별도대의 공격 목표는 어디로 할 거요?”

“ 어제 남쪽에서 공격해 오던 사월림과 만마림은 거의 궤멸됐소. 그럼 각 세력은 남쪽은 보강하기 위해 전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소.”

“ 어딜 공격할 참이오?”

“ 무궐이오.”

“ 무궐은 쉽지 않은 상댑니다.”

남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 물론 그건 나도 알고 있소.”

“ 하면 무궐을 선택한 이유라도 있소?”

“ 그 또한 차기 벌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오. 물론 군마련의 담대천호나 야궐의 혁련무극 또한 벌주 자리를 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오. 하지만 그들은 담대만승에게 물려받는 걸 택할 자들이지 담대만승에게 반기를 들진 못하오. 하지만 공손정우는 다르오. 그는 담대만승에게 반기를 들어야만 벌주가 될 수 있소.”

“ 어제의 패배로 인해 공손정우는 전력을 다하지 못할 거란 말이군요?”

남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소. 공손정우 입장에서는 굳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벌내쟁투는 그들의 승리로 끝날 거라고 여길 테고 벌내쟁투보다는 훗날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소. 우린 그 점을 노리는 거요.”

“ 별동대는 어디로 보낼 참입니까?”

유일천이 공야일우를 보며 물었다.

“ 묵야련, 철무련, 구중련이 있는 곳으로 보낼 참이네.”

묵야련, 철무련, 구중련은 승천곡 왼편에 나란히 위치해 있는 문파들이었다.

“ 나쁘지 않은 작전이군요.”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 창창창! 창창!

“ 크악!”

“ 아악!”

“ 으아악!”

벌써 전투가 시작된 듯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보고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를 기다리자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전령들이 달려왔다.

“ 북쪽엔 군마련과 철무련 연합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 서쪽엔 야궐, 묵야련, 사자림 연합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 남쪽엔 사월림, 만마림, 낭인림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 동쪽으로는 무궐, 구중련, 녹사련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전령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보고했다.

“ 우리도 시작합시다.”

공야일우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 무운을 빕니다.”

“ 무운을.....”

“ 행운을 빕니다.”

나머지 세 사람이 차례로 공야일우의 손을 잡았다.

“ 오늘밤만 버텨주시오. 그럼 우리가 이기오.”

“ 그럼!”

일행은 손을 놓고 각자의 자리로 몸을 날려갔다.

공야일우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황궐 동편으로 향했다. 이미 전투는 시작됐고,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밤하늘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 가자!”

공야일우는 구룡금창을 틀어쥐고 동문을 나섰다. 그 뒤를 수백의 무인들이 결연한 얼굴로 따랐다.

“ 황궐 무인들이여!”

밖으로 나온 공야일우는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고함을 내질렀다.

“ 하명하십시오, 궐주님!”

전날 승리 때문인 듯 황궐 무인들의 외침은 검지곡이 떠나갈 정도로 컸다. 공야일우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물렸다. 이 정도 사기라면 오늘밤을 넘기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곳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땅이다. 그런데 도적놈들이 쳐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죽여 없애야 합니다.”

“ 그렇다. 제군들. 우린 놈들을 없애고 우리 땅을 지켜야 한다. 상대는 도적에 불과하다! 도적을 없애서 황궐이 건재함을 증명하라. 황궐이 대야벌 최고 문파임을 저 간악한 자들에게 보여줘라, 진격하라!”

“ 와아!”

“ 와아아!”

“ 우와아!”

황궐 무인들은 우렁차게 함성을 내지르며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 별동대는 듣거라!”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황궐 무인을 지켜보던 공야일우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 하명하십시오, 궐주님.”

선두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한 식경 후에 남쪽으로 출발하도록 해라. 너희들의 목표는 구중련, 철무련, 묵야련이다!”

“ 알겠습니다. 궐주님!”

“ 그럼 행운을 빈다. 가자!”

공야일우는 호위 무인들을 이끌고 전방으로 몸을 날려갔다. 황궐 무인들이 진식을 풀고 나오면서 공격을 해오자 무궐 무인들은 당황한 듯 뒤편으로 밀리고 있다.

공야일우는 차갑게 웃으며 전장의 선두로 나섰다.

“ 난 황궐 궐주 공야일우다! 누가 내 창을 받겠느냐?”

쩌렁쩌렁한 공야일우의 외침이 어둠을 강타했다.

하지만 대야벌 백대 고수 서열 일 위에 올라 있는 공야일우를 향해 몸을 던지는 무궐 무인은 없었따.

“ 나 공야일우가 여기 있다. 공손정우는 어디 있느냐?”

앞으로 나아가던 공야일우가 구룡금창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구룡금창은 투명한 광채를 뿜어내며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 마, 막아라!”

“ 창이 날아온다!”

콰콰쾅! 쾅쾅!

하지만 일반 무인들의 힘으로 구룡금창을 막아낸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둔탁한 소성과 함께 구룡금창을 막아섰던 자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 이기어창이다!”

“ 이기어창이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무궐 무인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 공손정우는 어디 있느냐?”

공야일우는 재차 고함을 내지르며 되돌아온 구룡금창을 내던졌다.

구룡금창은 다시 어둠을 뚫고 쏘아져갔다.

바로 그 순간,

“ 차앗!”

슈캉!

우렁찬 외침과 함께 뭔가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크윽!”

공야일우는 비틀거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기어창으로 던져낸 구룡금창은 내기로 이어져 있고, 날아가는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전 뭔가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내기가 끊어져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구룡금창을 잘라낸 게 분명했다.

공야일우가 생각하기엔, 이기어창으로 던져낸 구룡금창을 잘라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대야벌을 통틀어 그걸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은 담대만승 한 명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나타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 아닌가.

“ 여기 있다. 공야일우!”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어둠을 뚫고 나왔다.

“ 너희들은?”

공야일우는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무궐 궐주 공손정우와 군마련 련주 담대천호였던 것이다. 문득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들은 정보에 의하면 군마련은 북쪽에서 공격해 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담대천호가 공손정우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 머리는 너만 쓰는 게 아니다. 공야일우.”

공손정우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 전부 이쪽으로 몰려 있단 말이냐?”

“ 궐주가 손을 잡았는데 우리라고 손을 잡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소. 북쪽에 있는 군마련 무인들은 삼백에 불과하오.”

“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군.”

공야일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공손정우는 이기어검술을 익히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럼 구룡금창을 잘라낸 자는 담대천호일 것이다. 이기어창으로 던진 창을 잘라냈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던진 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는 의미다.

그런 자가 공손정우와 함께 공격을 해온다면 막아낼 수가 없을 테다.

“ 우리도 있소, 궐주!”

설상가상이란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담대천호와 공손정우 뒤편으로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구중련의 련주 철혈매와검 적환규, 녹사련의 련주 녹림마제 육사이, 낭인림의 림주 구천검제 설야였다.

“ 도욱!”

공야일우는 전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이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궐주님.”

갑옷을 걸친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황궐 궐주를 호위하는 황룡질풍대의 대주 환우광마창 나도욱이었다.

“ 마지막 명령이네, 황룡질풍대를 데리고 물러나게.”

“ 그럴 수 없습니다. 궐주님.”

노인은 강하게 소리쳤다.

[ 그 분을 기억하는가?]

공야일우는 전음으로 물었다.

[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 자네에게 환우광마창이란 비급을 전수해주었던 분 말일세.]

나도욱에게 환우광마창을 전수해준 것 뿐만 아니라 구룡금창이란 무기를 준 사람도 이자승이었다. 더불어 황룡질풍대를 만든 사람도 그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황궐은 물론이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 태황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분이 강호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네.]

[ 그럴 수 없습닏. 궐주님.]

[ 여기서 죽는 게 능사가 아니네. 이곳에서 물러나는 즉시 그분을 찾아가게. 그리고, 내 후예를 부탁하겠네.]

공야일우는 담대천호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궐주님!”

“ 내 말을 명심하게!”

“ 감히 내 앞에서 도망치겠다는 거냐?”

공손정우가 버럭 소리쳤다.

“ 저들을 치기 전에 날 먼저 잡아야 한다. 공손정우.”

공야일우는 양손을 둥글게 말아 쥐고 창을 잡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오른발을 바닥에 끌 듯이 앞으로 내밀고 자세를 약간 낮췄다.

“ 먼저 움직인 놈이 먼저 죽는다!”

공야일우는 기해혈을 활짝 열었다. 혈도를 열자 단전에 쌓여 있던 내기가 무서운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공야일우는 그 내기에 진원지기를 더했다.

푸아악!

단정하게 묶였던 머리카락이 솟구쳐 오르며 광포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둥글게 말아 쥐고 있던 양손 사이에 투명한 광채를 뿌리는 탕이 들렸다.

“ 무영창!”

담대천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의 마지막이 심검인 것처럼 창의 마지막은 무영창이라고 부른다. 비록 진원지기를 끌어올린 상태라고 하지만 무영창을 생성해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도욱! 뭐하고 있는가?”

“ 아, 알겠습니다. 궐주님! 그럼 저승에서 뵙겠습니다.”

나도욱은 풀썩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 저승에서 뵙겠습니다. 궐주님!”

뒤이어 황룡질풍대 대원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는 엎드린 채 뒤로 물러났다.

“ 그동안 행복했네. 도욱!”

“ 저도 행복했습니다. 궐주님!”

“ 저도 행복했습니다. 궐주님.”

황룡질풍대 무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멀어졌다.

“ 천단십절마예를 구경하고 싶네.”

공야일우는 담대천호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 이거 참!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지 않소.”

담대천호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십절마검을 뽑았다.

구우웅!

십절마검을 가슴 앞으로 세우자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담대천호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파앗!

그것도 잠시, 그의 검에서 투명한 광채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채는 방어막처럼 담대천호 주변을 둥글게 둘러쌌다.

“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 무슨 약속을?”

“ 난 이미 진원지기를 끌어올린 상태라, 이 싸움의 결과에 상관없이 죽네. 내가 죽으면 벌내쟁투를 멈춰주게.”

“ 황궐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 저들은?”

공야일우는 공손정우 일행을 보았다.

“ 조금 전에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에 불길이 올랐다는 보고를 받았다.”

“ 무슨 소린가?”

공야일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세 문파의 무인은 전부 이곳으로 나와 있고, 각 문파는 텅 빈 상태다. 아니 무공을 모르는 가족들만 남아 있다.

그런데 그곳에 불길이 올랐다면.......

“ 설마......”

“ 난 아니다. 담대 림주와 널 없애기로 했을 뿐이다.”

“ 아니란 말이냐?”

공야일우는 버럭 소리쳤다.

“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겠지.”

“ 하면!”

“ 난 모르는 일이다.”

“ 담-대-만-스-응!”

공야일우의 입에서 짐승의 그것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이곳에 있는 공손정우가 하지 않았다면 그런 짓을 할 자는 천상천에 있는 담대만승밖에 없을 터였다.

“ 죽는 사람은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소. 시작합시다.”

파앗!

담대천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야일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아니다, 담대천호. 죽는다고 해도 남겨진 자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공야일우 신형 또한 빛살처럼 담대천호를 향해 쏘아져 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빨라진 두 사람의 신형은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 차앗!”

담대천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오고, 가슴 앞에 세워져 있던 검이 전방으로 쭉 내밀어졌다.

그의 검은 거의 투명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푸욱!

담대천호의 검은 그대로 공야일우의 가슴을 꿰뚫었다.

“ 왜 그런거요?”

담대천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오던 공야일우가 마지막 순간에 무영창을 거둬들여 버린 것이었다. 만일 그가 무영창으로 공격을 했더라면, 패하진 않았을 테지만 상당한 내상을 감수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력을 거둬들여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린 상태에서.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자넨 내게 목숨을 빚졌네. 련주.”

“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오. 궐주. 지금껏 내 실력을 전부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 하지만 난 목숨을 내주는 대신 자네 팔 하나는 가져갈 수 있었네. 아마 자넨 심한 내상도 입게 되겠지. 그렇데 되면 자네도 이곳에서 죽었을 거네.”

공야일우는 뒤편을 슬쩍 넘겨다보았다.

‘ 그렇군.’

담대처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야일우의 말이 맞다. 승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가 더 문제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공손저우는 달려들지 못하겠지만 내상을 당한 상태라면 저들은 독아를 드러낼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는 그들밖에 없다.

“ 그럼 궐주가 날 봐줬다는 말인데, 왜 그런 거요?”

“ 련주의 눈빛도 나와 같기 때문이네.”

공야일우는 담대천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물론 공격을 했떠라면 이렇듯 쉽게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팔 하나 정도는 가지고 저승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천호라고 하던데, 아닌가요?”

“ 뭐가 같다는 말이오?”

“ 야망 말이네.”

“ 그럼 내 야망을 위해 힘을 풀었단 말이오?”

“ 자네 야망이 아니라 날 위해서 그런 거네. 내 후손들을 위해. 그리고 담대만승과 만우량을 없애줄 사람은 저들이 아니라 자네라고 느꼈기 때문에.”

“ 그는 내 친형이오.”

“ 클! 권력엔 피도 눈물도 없다는 걸 모르는가? 그리고 자넨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웅이 될 거네.”

“ 궐주와 싸움에서 이겼다고 영웅이 되진 않소.”

“ 그 때문에 영웅이 된다는 게 아니네. 벌내쟁투를 중단시키면 자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되네.”

“ 어떻게 달라진단 말이오?”

“ 조금 전 난 전 내공을 실어 담대만승의 이름을 외쳐 불렀네. 내가 지른 목소리는 대야벌 곳곳으로 퍼져 나갔을 테고, 많은 무인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다음날 날이 밝아서 보니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이 잿더미로 변하고 무공을 모르는 이들까지 전부 죽임을 당한 사실이 알려진단 말이네. 그럼 누굴 의심할 것 같은가?”

“ 벌주를 의심한단 말이오?”

“ 하지만 자네가 벌내쟁투를 중단시키면 희생을 최대한 줄인 사람으로 인식되겠지. 반면에 담대만승은 무인들 가족마저 도륙한 사악한 자가 될 테고. 물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정치란 밑바닥부터 파고 들어가는 사람이 결국엔 승자가 된다는 공식을 알아야 하네.”

“ 결국 가족을 살려달라는 말이구려.”

“허허허!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다했네.”

푸스스!

십절마검이 파고든 공야일우의 가슴에서 가루가 날리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담대천호는 공야일우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잠을 자는 듯했다. 하지만 공야일우의 얼굴은 금세 가루가 돼 바람에 날려갔다.

“ 극락왕생하기를.....”

담대천호는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 공손 궐주!”

몸을 돌린 담대천호는 공손정우를 보았다.

“ 말씀하시오.”

“ 정확하게 두 시진 후에 전쟁을 끝냅시다.”

“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소이다. 련주.”

공손정우는 불만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 만일 벌내쟁투를 계속하면 양민을 죽인 것까지 우리가 뒤집어쓰게 되오. 그래도 상관없다면 말리지 않겠소.”

“ 젠장!”

공손정우는 욕설을 내뱉었다.

담대천호의 말이 틀리지 않다. 만일 아침까지 벌내쟁투가 이어지면 양민을 학살한 것까지 전부 자신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더불어 두 시진이면 웬만큼 정리가 될 테고, 길게 끌어봐야 의미가 없다.

담대천호의 말대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 알았소. 련주.”

그로부터 두 시진 후.

“ 군마련 무인들은 듣거라! 벌내쟁투는 끝났다! 지금 당장 철수하라!”

“ 무궐 무인들은 듣거라! 공야일우는 죽었다! 지금 당장 철수하라.”

“ 구중련 무인들은 듣거라.....”

“ 녹사련 무인들은 듣거라.....”

이틀동안 이어졌던 벌내쟁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다른 방향에서는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이었지만 담대천호를 비롯한 공손정우 일행이 벌내쟁투가 끝났다고 선언하자 그들 또한 물런라 수밖에 없었다.

이틀 동안 이어졌던 벌내쟁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어떻게 됐는가?”

이른 아침 담대만승은 만우량을 불러들였다.

“ 네 문파의 수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은 무인이 오백 정도 남았고, 건물은 전불 불탔습니다.”

“ 그들의 가족은 어떻게 됐는가?”

“ 생존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돕니다.”

“ 황궐은?”

“ 가장 피해가 적었습니다. 무인은 천오백 정도 살아남았으며, 가족들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 다른 문파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 아직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 폭풍이 불겠구먼.”

“ 이번 벌내쟁투에 참여하지 않은 문파는 봉황림, 만독림, 패천림 세 곳밖에는 없습니다. 벌주님. 폭풍이 분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 문제없을 거란 말인가?”

“ 약간의 소란 정도로 끝날 걸로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만 벌내쟁투에 참여했던 문파들의 피해가 너무 미미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 그들의 피해는 어느 정돈가?”

“ 이 할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 이 할이라.... 그건 나쁘지 않군.”

“ 접니다. 벌주님.”

그때 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냐?”

“ 동창 소제독 유설연이 남천문 밖에 와 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

담대만승은 피식 웃었다.

“ 아직 불길이 오르고 있으니까 멀리서도 보일 겁니다.”

“ 자네가 다녀오게.”

“ 알겠습니다. 궁주님.”

만우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행렬은 엄청났다.

중앙의 가마를 둘러싸고 있는 동창 무인들의 수는 삼백여 명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거미줄처럼 얽혀 마차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 호호호! 늦은 게 아니라 적닿나 시기에 온 거야, 성연.”

가마 안에서 맑은 교소가 흘러나왔다.

우성연을 보며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화화호 유설연이었다.

“ 저 불길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세요?”

우성연은 열린 문 너머 검은 연기를 가리켰다.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곳은 세 곳이었다.

“ 성연, 너는 저걸로 그들을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보았더냐?”

유설연은 오른편에 놓아둔 범천조화신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 그들은 맹세를 했잖아요.”

“ 오백 년 전이잖아.”

“ 듣지 않을 거란 말이세요?”

“ 공야일우는 물론이고, 그들 네 명은 범천조화신기로 무릎을 꿇릴 수 있는 자들이 아냐.”

“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세요?”

“ 피해 상황은 알아봐야겠지만,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아. 그건 그렇고 다 익혔어?”

“ 뭘 말하는 거죠?”

“ 범천조화신공이지 뭐겠냐, 이것아.”

“ 그거야 진작 익혔죠. 그런데.....”

“ 왜?”

“ 사내 무공이라 그런지 피부가 거칠어진 것 같아요.”

우성연은 제 얼굴을 쓰다듬었다.

“ 정말?”

“ 보세요.”

우성연은 유설연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 어디!”

유설연은 우성연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 정말이네?”

“ 그렇죠. 이제 어떡해요?”

우성연은 울상을 하며 연신 얼굴을 쓰다듬었다.

“ 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어쩔 수 없잖아.”

“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해요. 언니. 혹시?”

우성연은 유설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 왜?”

“ 시험해보려고 먼저 익히라고 한 거 아니에요?”

“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 지부장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더 잘 알죠. 이제 어떡할 거예요? 언니가 책임지세요!”

우성연은 유설연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 이것아. 그럼 내가 그렇게 거친 피부를 가졌으면 좋겠냐? 그럼 좋겠어?”

유설연은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 다 우리가 잘 되기 위해 그런 거야. 어쨌든 피부에 좋다는 건 전부 구해줄게.”

“ 약속했어요, 언니.”

‘ 맙소사!’

남천문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 만우량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분명 남천문 밖 가마 안에 있는 둘은 사내들이다. 그런데 이야기 주제는 피부다.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범천조화신경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아마도 유설연은 피부에 문제가 생길까 봐 범천조화신경을 익히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유설연은 동정호 지하에서 지옥군마대 대원들을 개처럼 패 죽였다. 자신을 북경의 개작두라고 하면서.

계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내도 아닌 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바로 그때 남천문 밖에서 유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이것아. 중원을 전부 뒤져서라도 구해줄 테니까 그거나 완벽하게 익혀. 그리고 무공을 완성하게 되면 굳이 좋은 쓸지 않아도 피부는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 범천조화신경을 완성할 즈음에는 젊음은 다 가고 말 거라고요.”

“ 그러니까 더 늙기 전에 열심히 익혀야지”

‘ 변태같은 것들!’

만우량은 내심 욕설을 뱉어내며 남천문 문턱을 넘었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칼날처럼 예기가 쏘아져왔다.

“ 누구냐?”

선두에 있던 동창 무인이 차갑게 물었다.

“ 난 대야벌 천상천 군사 만우량이오.”

만우량은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 무슨 일이냐?”

동창 무인은 또다시 물었다.

만우량은 황당한 얼굴로 동창 무인을 보았다. 대야벌을 방문한 사람은 유설연이고 자신은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방문한 자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놈!”

자신들이 방문자라는 사실을 잊은 듯 동창 무인은 취조라도 하는 기세로 검 손잡이를 잡아갔다. 뿐만 아니라 말을 건넨 사내 주변에 있던 자들도 일제히 살기를 뿌려대며 각자의 무기를 잡았다.

“ 난........”

“ 호호호! 길을 터라!”

나직한 교소와 함께 가마 안에서 유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동창 무인들이 일제히 좌우로 물러나며 길을 만들었다. 만우량이 있는 곳에서 마차까지는 십여 장에 달했다. 길을 따라 걸어가는 만우량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소제독 앞에 당도하는 즉시 무릎을 꿇어라! 꿇지 않으면 당장 목을 베겠다.]

차가운 목소리가 전음으로 들려오자 만우량은 굴욕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가마 앞으로 간 그는 그 자리에 멈춰 마차 안을 보았다.

유설연은 왼발을 끌어당겨 무릎을 세우고 오른 다리는 편하게 뻗은 채다. 상체는 등받이에 기대고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뉘었다. 그러고는 과자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다.

만우량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저 자세는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릴 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 꿇어라!”

바로 그때 가마를 메고 있던 자의 입에서 내공이 가득 실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팔신장의 우두머리인 밀사신장 유덕이었다.

만우량은 유덕을 쏘아보았다.

“ 소제독이시다!”

유덕은 만우량의 눈빛을 받으며 차갑게 소리쳤다.

“ 으음!”

만우량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가마를 들고 있는 여덟 명. 그들의 무공은 결코 대야벌 무인에 비해 낮지 않았다. 최소한 대야벌의 각 문파의 장로급이고, 방금 소리친 자는 련주나 림주 급이었다.

만우량을 쏘아보던 유덕은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 대야벌 천상천 군사 만우량이란 잡니다.”

“ 전에 본 적 있어, 밀사.”

“ 그러셨습니까?”

“ 아무튼 알았으니까 들어갈 준비해.”

유덕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 안내하거라, 만우량.”

유설연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 알겠습니다. 소제독.”

만우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설연을 보았다.

“ 마중 나오기 전에 술 먹었어?”

유설연은 만우량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아닙니다.”

“ 그럼 얼굴이 왜 그렇게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지?”

“ 그, 그건....”

만우량은 말끝을 흐렸다.

“ 그럼 사내도 계집도 아닌 놈, 아니 년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 모양이지?”

“ 아, 아닙니다. 소제독.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얼굴이 붉어졌을 뿐입니다.”

“ 몸이 안 좋아?”

“ 그, 그렇습니다. 간밤에 잠을 설쳤습니다.”

“ 하긴 늙으면 잠이 없기는 하지. 안내해.”

“ 모시겠습니다. 소제독.”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리는 만우량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 언니,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때 가마 안에서 우성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기 심하다는 거지?”

“ 저 치는 대야벌 천상천 군사라고 했잖아요?”

“ 천상천 군사가 관직이야?”

“ 관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 벼슬아치도 아니면서 벼슬아치처럼 행동하는 개잡노무새끼들을 잡아들이는 게 우리 동창 임무야. 그런 놈들은 전부 잡아들여서 물건을 싹둑싹둑 잘라버려야 해. 그래야 고분고분해진다고.”

부르르!

앞서가던 만우량이 몸을 떨었다.

유설연의 말투에서 진득한 살기가 감지된 것이다.

“ 전엔 이 세상을 사내들로 채웠으면 좋겠다고 했잖아요.”

“ 사내들이 아니라 진짜 사내들이라고 했어, 성연.”

“ 저 치도 사내잖아요.”

“ 종양이 달렸다고 전부 사내라고 누가 그랬는데?”

“ 종양? 그게 뭐죠?‘

“ 혹 말이다. 이 바보야.”

“ 깔깔깔! 그거 말 되네요. 언니. 종양, 혹, 아주 괜찮은 말같아요.”

“ 맞아. 덜렁거리기만 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는 그건 종양이야. 악성 종양!”

흐흡! 후우! 흐흡! 후우!

만우량은 계속해서 심호흡을 했다.

지금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몸을 날려 두 년의 주둥이를 뭉개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삭일 수밖에.

“ 만 군사.”

“ 마, 말씀하십시오, 소제독.”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오자 만우량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 저 연기가 뭔지 알 수 있을까?”

“ 간밤에 벌내쟁투가 있었습니다.”

“ 벌내쟁투라면 종양 달고 있는 녀석들이 서로 일등이 되기 위해 싸우는 걸 말하는 거야?”

“ 그, 그렇습니다.”

‘ 아주 좋은 질문이다. 계집 같은 놈! 이제부터 한 번 당해봐라.’

만우량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껏 당했던 걸 되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벌내쟁투의 목표가 누구였지?”

“ 황궐,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이었습니다.”

“ 호호호! 범천조화신기에 무릎을 꿇게 될 자들이 전부 죽었다는 거네?”

‘ 웃어?’

만우량은 얼굴이 흠칫 굳었다.

유설연의 말처럼 방금 언급한 네 문파는 범천조화신기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문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멸망을 당했다는 데도 웃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였다.

“ 그럼 옥처인과 양도욱도 죽었겠네?”

“ 아직 벌내쟁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 혹시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오도록 해.”

“ 시, 시체를 말입니까?”

“ 응! 목이 잘렸다면 꿰매 와야 할 거야.”

“ 꿰, 꿰매 오라고요?”

“ 난 옥처인과 양도욱을 꼭 만나야 해. 그래서 목을 잘라야 한단 말이야.”

“ 모, 목을 자른단 말입니까?”

“ 깔깔깔! 놀라기는 자식. 혹시 종양이 쪼그라든 거 아냐?”

“ 노, 농담인 줄 알았지만 너무 놀라운 말이라서.”

“ 농담 아냐.”

“ 예?”

“ 그놈들에게 내린 형벌은 육체분시야. 먼저 종양을 제거하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자르고, 그 다음엔 목을 자를 거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준비하도록 해.”

‘ 미, 미친놈!’

만우량은 질겁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유설연이라는 놈, 아니 년은 정말로 미친 놈이었다.

죽은 자의 목을 자르는 것만 해도 미친 짓이거늘 놈은 한 술 더 떠, 잘려나간 부위를 본래대로 꿰매서 다시 잘라낸다고 한다.

“ 준비해줄 거지?”

“ 그, 그건......”

만우량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준비가 힘들다는 거야?”

“ 강한 적을 만나면 가루로 부서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 그럼 빨리 가서 그놈들 시체를 확인해 줘.”

“ 아, 알겠습니다. 소제독.”

시체를 확인해 달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빨리 가라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만우량은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 깔깔깔! 성연. 종양 흔들리는 소리가 아름답지 않아?”

“ 호호호! 그런 것 같아요. 언니. 아주 아름답게 들려요.”

유설연과 성연은 빠르게 멀어지는 만우량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밀사!”

만우량의 모습이 완전하게 사라지자 유설연은 유덕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소제독.”

“ 호남에서 올라온 소식은 없었어?”

“ 새로운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 지금쯤 반격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유설연은 가마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그가 있는데 뭘 걱정하고 그러세요. 언니.”

“ 좋아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건 당여한 거야, 이것아.”

“ 좋아해요?”

“ 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동업을 할 수 있어?”

“ 하지만 짝사랑이잖아요.”

“ 짝사랑?”

“ 언니마 좋아하고 그는 관심도 없잖아요.”

“ 언젠가는 그도 내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올 거야.”

“ 헹! 그런 날이 백 번 오겠다.”

“ 온다고?”

“ 언니가 북경의 개작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와요. 도망가지 않은것만 해도 다행이겠네.”

“ 이 세상ㅇ데서 가장 치사한 놈이 여자 과거에 연연하는 놈이야. 그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냐, 이것아.”

유설연은 단언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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