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34화 (134/232)

제 7장 몰살 본능

우담보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연우강을 따랐다. 연우강은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면서 용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우엑!”

길을 가던 그는 또다시 엎드려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담보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놈을 없애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 아니다. 어차피 동정호로 나간다고 했으니까.’

우담보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였다.

“ 제기랄 너무 많이 마셨어. 아무리 심심해도 다섯 통 이상 마시면 누구라도 이렇게 되고 말지.”

속이 좋지 않은 듯 연우강은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동정호로 향했다. 우담보는 주변을 살피면서 연우강을 따랐다. 성벽 근처에 도착한 연우강은 성벽 아래쪽 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우담보는 몸을 훌쩍 날려 성벽 위로 올라서 연우강을 보았다. 성벽을 나선 연우강은 곧바로 호수로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걸음걸이는 곧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다.

우담보는 아래로 내려선 다음 연우강을 따랐다.

악양루를 지나친 연우강은 곧바로 호수로 걸어들어 갔다.

우담보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감지되지 않았다.

우담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은 물이 허리까지 차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 연우강.”

우담보의 걸음이 빨라졌다.

물에 빠져 죽은 놈을 건져서 목을 치고 싶진 않았다. 지금껏 당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마지막에 목을 쳐야 할 터였다.

급기야 연우강이 목까지 차 오르는 곳까지 가자 우담보는 경공을 펼쳤다. 그리고 나직이 소리쳤다.

“ 멈춰라!”

그러나 연우강은 듣지 못한 듯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 빌어먹을!”

우담보는 더욱 내공을 끌어올렸다.

호변에 당도한 우담보는 바닥을 찍으며 몸을 날렸다. 연우강과 거리는 오 장, 연우강의 머리는 삼분지 이가 물에 잠겨 있었다. 우담보는 손을 아래쪽으로 뻗으며 몸을 날렸다.

츄악!

하지만 손에 잡힌 건 물뿐이었다.

우담보는 나아가던 몸을 멈추고 물 위에 섰다. 그런 다음 천리지청술을 펼쳐 물 속을 확인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녀석이면 곧 위로 나올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내공을 귀에 집중해도 허우적거리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 가라앉았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우담보는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물 속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담보는 천리지청술을 펼치면서 호수 바닥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시간은 상당히 흘렀다. 그러나 호수 바닥에서는 연우강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우담보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자신이 물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연우강이 밖으로 나왔나 싶어서.

“ 귀신 곡할 노릇이네.”

우담보는 고개를 갸웃했다.

밖에도 연우강은 보이지 않았다. 우담보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연우강이 빠진 곳을 중심으로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담보는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좀더 넓은 곳을 수색할 참이었다. 작은 소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극한의 천리지청술을 펼치고, 양손으로는 바닥을 더듬었다. 그렇게 일 각 정도가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연우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 목욕하기엔 물이 좀 차지?”

문득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는 건 우담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연우강을 찾기 위해 천리지청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정도인데 사람 목소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담보는 방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있는 곳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물속에서 사람 러미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 수공이라도 익힌 모양이구나.”

우담보는 수면 위로 몸을 내밀었다. 천천히 물 속에서 빠져나와 연우강을 향해 걸어갔다. 수면 위를 걸어가고 있지만 발은 물 속으로 빠지지 않았다.

“ 물 속에서는 나도 한가락 해.”

연우강은 다시 물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런 다음 깊은 곳을 향해 이동해갔다.

“ 어림없다, 놈!”

우담보는 등평도수 경공을 펼치며 몸을 날렸다. 우담보가 발을 튕길 때마다 뒤편으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가 스러졌다.

“ 나도 할 말이 많아, 우담보.”

이십여 장 밖에서 머리를 내민 연우강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쫓고 쫓기며 호수 가운데로 향했다.

“ 언제까지 도망칠 테냐!”

우담보는 발을 힘차게 구르며 소리쳤다.

“ 적당한 곳까지 나왔으니까 이제 더 이상 갈 이유가 없지.”

연우강은 우담보와 십오 장 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 술 취한 것처럼 한 거더냐?”

연우강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느껴지자 우담보는 다시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혹시 뒤편에 방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뒤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 응! 술을 바닥에 뿌렸어.”

“ 하지만 너는 물론이고, 이자승도 토했고, 다른 잠룡들은 술통을 돌리고 있었다.”

“ 그거 물이야.”

“ 물이라고?”

“ 물도 많이 마시면 토하거든.”

“ 그렇게까지......”

“ 상대가 율령궁 궁주 우담보인데 적당히 해서는 속일 수가 없잖아.”

“ 그럼 이지약 이야기를 꺼낸 것도?”

“ 그것뿐만이 아니라 서찰을 보낼 때부터 시작한 거야. 널 죽이겠다는 게 아니라 비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말 말이야.”

“ 맙소사!”

우담보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벌써 몇 달 전에 지금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 내가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이냐?”

“ 그 정도는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예상할 수 있지. 원래는 서른 곳의 거점에서 성공했다면 우담보 널 찾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몇 군데에서 놓친 놈들이 있지 뭐야. 그래서 작전을 살짝 바꿨어.”

“ 끌어들이기로 했단 말이구나!”

“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죽이려면 그 수밖에는 없잖아.”

우담보는 할말을 잃었다.

이곳 호남에서 율령궁은 멸문했다. 그런데 살아남은 오백 명마저도 없애기 위해 함정을 파다니.

정말로 지독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 어쩔 수가 없어. 난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개독새니까.”

“ 그럼 그곳에 있는 이들도 전멸하겠구나.”

“ 물론이지.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을 거야.”

연우강은 속삭이듯 말했다.

“ 하지만 그들은 오백 명이다, 연우강.”

“ 천리지청술을 펼쳐봐. 그럼 조금 후에 비명이 들리기 시작할 거야.”

우담보는 저도 모르게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건 당연했다.

우담보가 귀를 귀울이고 있는 그 순간 유선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유선은 부하들을 이끌고 장화루로 이동한 후였다. 유선을 비롯한 이백 명은 지붕 위로 올라와 있고, 나머지 대원은 장화루 안으로 들어와 담을 중심으로 은신해 있다. 이제 공격 명령만 내리면 되는데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 유 원주.]

아래쪽에서 이사진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사진은 삼백 명을 데리고 담 아래쪽에 은신해 있다. 위에서 먼저 뛰어들면 그들 또한 공격을 시작하기로 했던 것이다.

[ 알았소.]

고개를 끄덕인 유선은 좌우 측을 번갈아 보았다.

“ 공격하라!”

유선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본관 건물 지붕에 있던 자들과 별관 건물 지붕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 공격하라!”

곧이어 담이 있는 곳에서도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삼백 명의 율령궁 무인들이 잠룡 십 조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 오늘 일당은 다섯 명이다. 그럼 진짜 술을 마시게 된다!”

느닷없이 잠룡 십 조 대원들 사이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더니 팔십여 명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미 뽑아 놓은 무기가 새파란 광채를 남기며 허공을 갈랐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지붕에서 날아 내렸던 율령궁 무인들은 털썩털썩 쓰러졌다.

“ 허억!”

유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잠을 자고 있던 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놈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아군을 도륙해버린 것이었다. 이곳으로 온 자들은 대부분이 밀정이나 감찰사자로 구성돼 있어 무공은 일천하다.

잠룡들과 지옥의 죄수들로 구성된 저들과 싸워 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술이 잔뜩 취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공격할 엄두도 내지 않았을 테다. 그런데 저들은 술이 취한 게 아니라, 술이 취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일도양단, 일격필살.

사방에서 율령궁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후.....”

번쩍!

후퇴하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새파란 광망이 유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선의 목을 잘라낸 사람은 욱일승이었다.

욱일승의 검이 워낙 빨랐던 탓일까.

검이 통과해 갔음에도 불구하고 유선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유선은 담 근처에서 둥실 떠오르는 머리 하나를 보았다. 여러 개의 머리 중 유독 그 머리가 시선에 잡힌 건 머리의 주인이 평생 지기였던 천법원 원주인 이사진이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 개독새!’

머리가 떨어지기 전 유선은 그 말을 떠올렸다.

‘ 개 씨부랄 놈의 독종 새끼.’

그 상스러운 별명이 주는 의미를 비로소 알 듯했다.

툭!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유선의 머리는 힘없이 떨어졌다.

“ 일당 다섯이란 사실을 명심해라!”

또다시 살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오고 잠룡과 노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율령궁 밀정들과 감찰사자들을 도륙했다.

“ 하, 함정이다. 도망쳐라!”

도망치라는 외참과 함께 밀정과 감찰사자들은 담 위로 몸을 날렸다. 그들 대부분은 후미에 있던 자들이었다.

스악! 삭! 스윽!

“ 크윽!”

“ 으윽!”

“ 아악!”

하지만 그들은 날아오는 속도와 비슷하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고 있는 그들의 목에서는 한결같이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도망치는 율령궁 무인들의 목을 따버린 자들은 백인이 이끄는 인사대 대원들이었다.

“ 퇴로가 막혔다!”

“ 항복하라!”

“ 무기를 버려라!”

더 이상의 대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율령궁 수뇌 한 명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항복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직 살아남은 자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항복 선언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항복은 머리를 들고 해라!”

“ 머리를 들고 있는 놈만 살려준다.”

잠룡들 사이에서 두 마디 외침이 들려오더니 네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율령궁 밀정사자들과 감찰사자들을 향해 가차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끝이 낫처럼 생긴 커다란 무기가, 검이, 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자들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들은 마장승 일행이었다.

“ 크악!”

“ 하, 항복했소, 살려주시오.”

“ 머리를 안 들었잖아, 새꺄!”

스악!

“ 크악!”

군무옥의 육참낭아곤에는 자비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은 목을 자르고 도망치는 자들은 쫓아가서 등을 찍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잠룡과 노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철상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문득 연우강이 간혹 부르던 노래를 떠올렸다.

- 흑랑이 나가면 시체만 남긴다!

딱 그 상황이었다.

항복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잔혹한 손속.

저들에게 있어 생존자를 용납하지 않는 한 몰살은 분노했을 때만 나타나는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본능이었다.

“ 크아악!”

마지막으로 남았던 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잘려나간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일각.

율령궁 무인 오백 명을 없애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잠룡과 노인들은 멍한 얼굴로 네 사람을 보았다

그때 그들의 귓전으로 군무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축제는 끝났다. 나보다 키가 작은 놈과 늙은 놈은 열외다!”

“ 무슨 말입니까, 형님?”

퍼뜩 정신을 차린 이철상이 물었다.

“ 시체를 치우고 주변을 정리해야 진짜 술을 마실 거 아냐.”

“ 그렇군요. 치우자.”

고개를 끄덕인 이철상은 잠룡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 그럼 저는 쉬어도 되는 건가요?”

남궁운화가 배시시 웃으며 군무옥 옆으로 가 섰다.

잠룡들 중 군무옥보다 작은 유일한 사람이 그녀였던 것이다.

“ 물론입니다. 작은 형수님.”

군무옥은 남궁운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제 열아홉 살, 그런 그녀가 온몸을 피로 덧칠한 채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어린 아이를 저렇듯 살귀로 만들었는지.

“ 작은 형수님이라고요?”

남궁운화는 깜짝 놀라 물었다.

“ 그 인간은 가만있으면 절대 다가오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들이대야 합니다.”

“ 호호호! 그걸 전랑이 어떻게 알죠?”

수여설이 웃으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 뭐 하시는 겁니까, 형수님.”

군무옥은 시체를 치우는 잠룡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 나, 나도 치우라고요?”

“ 저보다 키가 큰 것 같은데, 아닙니까?”

“ 난 여자잖아요.”

“ 시체를 치우는 덴 남녀 구분 같은 건 없습니다. 오직 키가 저보다 작고, 나이가 많은 놈만 열욉니다.”

“ 끄응! 알았어요.”

수여설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잠룡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서 빙하빙백강이 펼쳐지고 시체들의 꽁꽁 얼었다.

“ 광랑은 잘 하고 있겠죠?”

수여설을 지켜보던 남궁운화가 군무옥을 보며 물었다.

“ 구경 가시겠습니까?”

“ 가봐도 될까요?”

“ 물론입니다. 가시죠.”

군무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 어때?”

연우강은 우담보를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같은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연우강은 물 속에서 머리만 내민 채고 우담보는 물 위에 서 있었다. 우담보는 지금껏 천리지청술을 펼쳐 장화루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비명이 난무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다 죽었단 말이냐?”

“ 아직 다 죽은 게 아니지.”

“ 내가 남았다는 말이구나.”

“ 내가 그랬잖아. 우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고. 그걸 몰살 본능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나봐.”

“ 내가 이번 작전을 펼친 건 잠룡 십 조 대원들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우강.”

“ 나를 잡기 위해 장화루로 왔다는 거야?”

“ 물론이다.”

우담보는 구천뇌혼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집을 물 속으로 던져 버렸다.

“ 목숨을 건다는 말?”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 널 잘못 봤다는 걸 인정한다는 말이다.”

우담보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장 큰 실책. 그건 연우강을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정보를 다루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입견이다. 작전을 세우는 데 선입견이 개입되면 그 작전은 백이면 백 실패로 끝난다.

그런데 연우강을 무시했다.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야벌로 들어올 때부터, 아니 금릉 연씨 세가를 장악하려고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녀석 때문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반격을 해온 것이다.

녀석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였다. 당연히 맨 마지막 단추게 제대로 끼워질 리가 없을 터였다.

“ 하지만 너무 늦었지.”

연우강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내공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동체가 서서히 부상했다. 어깨가 드러나고, 가슴이 드러나고, 허리가 드러나고, 다리가 드러났다. 그리고 두 발은 물을 딛고 섰다.

그 모습을 우담보는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일반적으로 물을 딛고 선다는 것은 허공답보의 신법을 펼친다는 말이고, 그 말은 곧 내공이 삼 갑자를 넘어섰다는 말이 된다.

구천뇌혼검을 쥔 우담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더구나.”

“ 아냐, 영감. 늦은 건 늦은 거야.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라고.”

연우강은 오른발을 들어 가볍게 굴렀다.

쩌엉!

발이 닿자마자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호수 표면에 서리가 낀 것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것은 얼음이 얼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발치에서 시작한 새하얀 기운은 급속하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 헛!”

싸늘한 기운이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자 우담보는 헛바람을 삼키며 물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허공에 멈춰선 우담보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맙소사, 저건?”

우담보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놈은 단 한 번 발을 굴렀을 뿐이다. 그런데 직경 삼십 장 가량 되는 널따란 얼음 벌판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극상승의 빙공을 익힌 자가 얼음 벌판을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빙공을 익힌 자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우담보는 시선을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 백옥수야.”

“ 배, 백옥수라고?”

우담보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백옥수.

천마삼경의 하나인 윰여계의 손에 있다고 알려져 왔고, 그 때문에 생사림이 멸문했다. 그런데 그 백옥수를 익힌 사람이 연우강이라니. 연우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원래 천마삼경을 발견한 사람은 나였거든.”

“ 네가 발견했다고?”

“ 응!”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왜.....”

우담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놈이 발견했다는 천마삼경이 왜 생사림 림주에게 있다고 소문이 난 건지. 철검광자 추소백의 시체가 어떻게 생사림에서 발견된 건지 문득 궁금했다.

“ 생사림 림주 마수귀의 유명계에게 뒤집어씌운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야?”

우담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놈들이 유명계를 처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잖아. 그래서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어.”

“ 우리가 유명계를 왜 처단한단 말이냐?”

“ 여의전의 이 약사를 살해한 놈이 유명계 그놈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거야?”

“ 그러니까 이승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철검광자 추소백을 죽여서 생사림에 던져 놓았다는 거냐?”

“ 맞아. 그리고 난 백옥수를 익힐 수 있는 내공을 익혔거든.”

“ 선천지기?”

“ 응! 그놈을 던져 놓으니까 그때부터는 니들이 알아서 정리를 하더라고. 아마 생사림을 처단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놈이 우담보 너였지?”

와락!

우담보는 검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 아직 화를 내기는 일러.”

“ 아니다. 연우강.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담보는 구천뇌혼검을 들어 올렸다.

“ 아직 해결해야 할 게 많잖아. 인마. 금릉 연씨 세가 폭발 사건도 해결해야 하고, 범천담대세가의 사건도 해결해야 하잖아.”

“ 그것도 다 네가 한 짓이라고?”

“ 이번 벌내쟁투는 물론이고 네가 율령궁 문도를 이끌고 강호로 나온 것까지 전부 연결돼.”

“ 그게 무슨 소리냐?”

“ 금릉 연씨 세가에 포탄을 설치한 사람은 우리 아버지고, 담대민의 목을 친 사람은 나야. 그리고 담대민의 머리를 비롯하여 사월림과 만마림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뒀어. 그런 다음 동창과 금의위에 정보를 흘렸고.”

“ 그들의 머리를 백옥수로 얼렸단 말이구나!”

우담보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불타올랐다고 하였다. 그런 와중에 담대민의 얼굴은 그을린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연우강이었던 것이다.

“ 그것뿐만이 아냐. 동정호 지하에서 유설연에게 범천조화신기를 건네준 사람도 나야.”

“ 그럼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도 네 작품이란 말이구나.”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 역대 어느 벌내쟁투보다 치열했고,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나 그들을 공격했던 문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연우강이 시작한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아직 한 가지가 더 남았다. 담대만승에게 치명타를 주었고, 율령궁이 출병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

바로 범천담대세가의 몰살이다.

“ 범천담대세가 수천 발의 포탄을 쏟아 붓고 담대세가의 첫째인 담대천명의 목을 친 사람도 나고.”

허공에 머물고 있던 우담보는 저도 모르게 아래로 내려왔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동안 대야벌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 모든 사건이 녀석의 머리에서 시작됐다.

더불어 율령궁이 하오밀문 토벌작전에 나서게 된 것도 놈이 획책한 일이라는 말이다.

“ 어떻게.....”

인간이 그런 일을 전부 해낼 수 있는지. 아니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놈은 그걸 해냈다.

아니 놈은 혼자서 대야벌 전력의 사 할을 박살내 버린 것이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 그런 걸 자업자득이라고 하지. 백수 짓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나를 끌어들인 ㄴ모들은 바로 너희들이야. 대야벌은 이제 끝장났다고 보면 돼.”

“ 웃기지 마라, 연우강. 지금까지 네가 없앤 대야벌 전력은 사 할에 불과하다. 아직 육 할이 남았다. 그리고 올해가 지나면 삼 년의 교육 기간이 끝난다.”

“ 그래서 방법을 바꿨어.”

“ 방법을 바꿨다고?”

“ 그래서 이번엔 범천룡이 될 참이야.”

“ 쿡!”

우담보는 피식 웃었다.

범천룡이 된다는 말은 곧 잠룡대의 수장이 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연우강은 이미 모든직책에서 열외된 상태고, 교육 과정이 끝나고 나면 대야벌에서 내보낼 것이다. 그런데 범천룡을 꿈꾸다니.

“ 교육 과정이 끝나면 나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떠벌리고 다니더니 마음이 바뀐 거냐?”

문득 삼 년 교육이 끝나면 나가겠다고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 마음이 바뀐 게 아니고 상황이 바뀌었어.”

“ 상황?”

“ 날 없애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상대하려면 대야벌에 있어야 하거든.”

“ 남경와 주진무를 말하는 거더냐?”

“ 맞아. 그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노리고 있거든. 그래서 바람막이가 필요해.”

“ 하지만 죽었다가 깨어나기 전에는 네가 범천룡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구나.”

“ 바로 그 방법을 이용할 거야.”

“ 그 방법?”

“ 죽었다가 깨어나는 방법 말이야. 그 방법을 쓰면 난 틀림없이 범천룡이 돼 있을 거야.”

“ 그 방법을 어떻게 쓴다는 말이냐?”

“ 그런데 지금도 충분히 약이 오르지 않았어?”

“ 무슨.....”

“ 내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상황을 쫙 읊어준 이유를 몰랐던 거야?”

“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한 이유가 날 모욕 주기 위해서였단 말이냐?”

“ 넌 대갈통 굴리는 걸로 먹고살았던 놈이잖아.”  습니다.”

“ 그 이야기를 하면 내가 화라도 낼 줄 알았느냐?”

“ 응!”

“ 그 정도로 날 모욕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놈!”

“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 물론이다.”

“ 화가 안 난다고?”

“ 그렇다.”

“ 정말?”

“ 물론이다.”

“ 진짜?”

“ 그렇다, 놈!”

우담보는 버럭 소리쳤다.

“ 거짓말 하지만, 인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으면서 화가 안 난다고 하면 내가 믿어줄 것 같아?”

“난 아무렇지도 않다.”

“ 거참! 성질내라고 실컷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화를 내지 않는다면 완전 삽질했다는 말인데.... 그럼 이건 어때?”

연우강은 우담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네가 철응방이나 광동차가에 했던 걸 대야벌에 있는 네 가족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거 말이야.”

“ 내 가족을 해하겠단 말이냐?”

우담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비둘기를 죽였다고 사백여 명의 식솔을 무참히 없앤 놈이 제 가족은 걱정이 되나 보지?”

“ 널 죽이겠다, 연우강.”

우담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컥! 철컥! 철컥!

바로 그때 연우강의 손가락에서 일제히 사망낭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 차앗!”

십여 장 남겨둔 지점까지 달려간 우담보는 얼음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가슴 앞으로 세운 그이 구천뇌혼검 끝에서 푸른 색 검강이 솟아 나왔다.

우담보의 무공은 대야벌 십대 무공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구천단류검법이었다.

“ 네놈을 죽이고 대야벌로 가겠다. 연우강, 타앗!”

우담보는 검을 위로 들어 올려 힘차게 휘둘렀다. 그천단류검법의 일 초인 구천섬광뢰였다. 구천섬광뢰는 검탄강기로 펼치는 쾌검이었다.

그와 연우강의 거리는 오 장.

검 끝에서 솟구쳐 있던 푸른색 검강이 화살처럼 연우강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져 갔다.

검 형태를 띠고 있는 검탄강기는 새파란 살기를 사방으로 뿌려댔다.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의 왼손이 빛살처럼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앞으로 뿌려졌다.

슉!

연우강의 몸에서 검은 광채 하나가 튀어나와 검탄강기를 향해 쏘아져갔다. 그것은 여덟 개의 사망마비 중 하나였다.

“ 콰앙!”

사망마비와 검탄강기가 부딪치며 강력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아래쪽 얼음이 부서지며 파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 차앗!”

일 초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우담보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려 뿌리듯 사선으로 휘둘렀다. 구천단류검법의 이 초인 구천파멸류였다. 사선으로 휘두르며 뿌려진 그의 검 끝에서는 여덟 개의 검탄강기가 순차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각각의 검탄강기가 나아가는 속도는 일 초인 구천섬광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즉 구천섬광뢰를 여덟 번 펼친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쿠웅!

연우강은 힘차게 발을 굴렀다.

바닥에 얼음이 부서지면서 그곳으로부터 여덟 줄기의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휘리릭!

허공으로 솟구친 여덟 개의 물줄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검탄강기를 향해 쏘아져 갔다.

쾅! 쾅쾅쾅! 쾅쾅!

“ 으음!”

우담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검탄강기는 쇠를 두부처럼 잘라낸다. 그런 검탄강기를 단지 물로 막아낸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다!”

우담보는 재차 검을 들어 올렸다.

그는 전 내공을 끌어올려 검에 집중했다.

우우웅!

검이 부르르 떨리며 검명을 토해냈다.

그는 앞선 두 초식과는 다르게 들어 올린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그의 모습을 보면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내리누르는 듯 했다.

스윽!

검이 머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했을 때 하나의 검탄강기가 튀어나와 연우강을 향해 밀려나갔다. 검탄강기가 나아가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검탄강기가 내포하고 있는 힘은 앞선 두 초식보다 훨씬 가공했다. 그것은 검탄강기로 펼치는 변형된 무극지도였다. 검이 시야와 같은 높이에 왔을 때 두 번째 검탄강기가 튀어나왔다.

“ 역시!”

연우강은 감탄한 얼굴로 천천히 다가오는 검탄강기를 보았다. 지금껏 펼치는 무공을 보면 우담보는 이기어검술을 익히지 못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저 검탄강기는 이기어검술보다 약하다고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저렇듯 천천히 다가오지만 상대방이 피하거나 물러나면 빛으로 변해 날아올 것이다. 같은 수법이 아니면 막아낼 수 없는 무공이었다.

연우강은 목에 걸고 있는 사망정주 하나를 꺼내 천천히 밀어냈다. 연우강의 손을 떠난 사망정주는 우담보의 검탄강기가 날아오는 것처럼 천천히 날아갔다.

사망정주 하나를 날려 보낸 연우강은 또 다른 사망정주를 꺼내 날렸다. 그사이에 우담보는 두 개의 검탄강기를 더 생성하여 날려 보내고 있었다. 두 개를 날려보낸 연우강은 차례로 두 개의 사망정주를 더 날렸다.

네 개의 검탄강기와 네 개의 사망정주가 천천히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팍! 픽! 픽픽픽!

아래쪽 얼음덩어리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쿠웅!

땅속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울림이 사망정주와 검탄강기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처음 날린 두 거력이 부딪친 것이었다.

스아악!

사망정주와 검탄강기가 부딪치면서 흘러나온 반발력으로 인해 수면이 깊이 파이며 속살을 드러냈다.

콰콰쾅!

곧이어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오고 물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 속에서도 두 번째 쏘아냈던 검탄강기와 사망정주가 부딪치고 반발력은 배가 되었다.

“ 으음!”

우담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구천단류검법의 사 초식 중 삼 초식인 구천마벽력은 무극지도를 바탕으로 펼치는 중검이기 때문에 사초인 구천혈루비보다 내공 소모가 더 심하고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 초식이 아니고 삼 초식으로 기록된 이유는 펼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상황에서는 구천마벽력을 펼칠 여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죽은 초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우강은 구천마벽력을 같은 방법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쿠쿠쿵!

“ 크윽!”

네 번째 폭발음과 함께 우담보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 비릿한 기운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우담보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입 안을 가득 채웠던 피가 튀어나가 솟구쳐 오르던 물과 합쳐졌다.

쐐액!

바로 그때 심장으로 가공할 기운이 쏘아져 들어왔다.

우담보는 급하게 검을 내려 심장을 보호했다.

슈캉!

검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담보는 고개를 숙였다. 붉은색 줄이 심장으로부터 나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줄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그곳에는 연우강이 서 있었다.

“ 진원지기를 사용할 걸 그랬구나.”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원지기를 사용했더라면 이렇듯 허망하게 당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진원지기를 사용하게 되면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죽게 되겠지. 그럼 대야벌에 있는 가족을 구할 수가 없고.”

“ 진원지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가족을 없애겠다고 했던 거냐?”

“ 난 쉽고 편한 걸 선호하거든.”

“ 내 가족은....”

“ 네 가족의 생사를 결정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전무웅과 광동차가의 가주 차기울이야.”

연우강은 사망혈삭을 감아 들이며 천천히 다가갔다.

“ 살려다오.”

연우강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우담보는 애원했다.

“ 죽는 놈은 살아 있는 사람을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죽으면 돼.”

연우강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 부탁이다, 연우강!”

“ 그냥 죽어!”

연우강은 오른손을 사정없이 찍었다.

푸욱!

사망낭조 다섯 개가 우담보의 얼굴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연우강은 광채가 스러지는 우담보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며 오른손을 그러쥐었다.

“ 적당히 하쇼.”

오른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강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군무옥과 남궁운화가 서 있었다.

“ 돌은?”

“ 여기 있소.”

군무옥은 손에 들고 있던 어른 머리 크기의 돌을 내밀었다.

“ 그동안 승진했나?”

“ 이 정도면 됐냐고 묻는 건데 까칠하게 왜 그러쇼?”

군무옥은 얼른 우담보 곁으로 다가가서는 들고 있던 돌을 사정없이 밀었다. 돌은 뼈를 부수고 가슴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 단단하게 고정한 거야?”

“ 뼈가 물고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매쇼. 뼈가 썩기 전에는 절대 빠져나오지 않을 거요.”

“ 놔도 되지?”

“ 날 믿으쇼.”

“ 알았어.”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우담보의 얼굴에 박아 넣고 있던 사망낭조를 뽑았다. 그러자 우담보의 시신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물 한 줌을 끌어올려 사망낭조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 그곳은 어떻게 됐냐?”

“ 우리가 늘 하던 방식대로 끝냈소.”

“ 시체는?”

“ 지금 묻고 있을 거요.”

“ 수고했다.”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궁운화를 돌아보았다.

“ 왔어요?”

“ 네? 네!”

느닷없는 연우강의 말에 남궁운화는 깜짝 놀랐다.

“ 놀란 얼굴이네요?”

“ 돌 때문에요.”

남궁운환느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호숫가에 멈춰 선 군무옥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커다란 돌 하나를 주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을 왜 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군무옥은 돌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물 속으로 잠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는 무슨 소린지 몰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야 군무옥이 들고 온 돌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우담보의 시체를 갈아앉히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연우강이 떠날 때 돌을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군무옥 또한 이곳으로 온다고 하지도 않았다.

“ 원래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생활하게 되면 상대방이 원하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 그런 거예요?”

“ 네.”

연우강은 호수 가로 걸음을 옮겼다.

‘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남궁운화는 앞서가는 연우강의 등을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 언젠가는 되겠지. 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연우강을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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