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36화 (136/232)

제 9장 약을 올리는 이유

서릉협은 무협, 구당협과 더불어 장강삼협의 하나로 물살이 얕고 거셀 뿐 아니라 수시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예로부터 선원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협곡이다. 좌우 측으로는 가파르게 경사진 산들이 서 있고, 산이 뚝 끊긴 곳에는 어김없이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

원숭이와 안개만 오르내렸던 낭떠러지 위쪽에 언제부터인가 무복을 걸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체구는 위풍당당했다.

대춧빛 피부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고, 떡 벌어진 어깨와 곧게 선 허리 그리고 웬만한 여자 허리둘레보다 더 두꺼운 허벅지는 사십 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강건하다. 다만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검은 머리보다 더 많은 백발이었다.

노인은 허리춤에 찬 도갑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뇌전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도갑 표면에는 뇌정마도라는 초서체 글자가 음각돼 있었다.

낭떠러지 끝임에도 불구하고 천년거암처럼 전혀 흔들림 없는 그는 범천뇌격단의 단주 뇌정도제 담대진승이었다. 담대진승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안개처럼 밀려와 주변을 감싸고 시뻘겋게 보이는 황토색 물살은 옅어진다. 다만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만 더 요란하게 들려왔다.

“ 접니다. 단주님.”

뒤편에서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노인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뇌격팔마의 대형인 건곤마도 담대사웅이었다.

“ 무슨 일이냐?”

담대사웅은 담대진승의 먼 친척으로 항렬도 낮을뿐더러 나이도 세 살 적었다. 담대진승이 반말을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 요 며칠 사이에 특이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 어떤 일인데 그러느냐?”

“ 처음엔 두 척의 배가 철관협까지 왔다가 되돌아갔고, 오늘도 오전 중에 한 척의 배가 철관협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 선박의 규모는 어느 정도라고 하더냐?”

“ 최소 백여 명은 태울 수 있는 큰 배였다고 합니다.”

“ 놈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구나.”

“ 놈들이 동정호를 출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하지만 놈들은 팔십여 명에 불과하다.”

“ 밀천 무인이 나왔을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밀천도 우리 위치를 파악했을 거란 말이냐?”

“ 대야벌에서 우리가 떠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 더구나 이곳은 호남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요.”

“ 그렇구나. 찬승은 지금 어디 있느냐?”

“ 이틀 후면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 그럼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군.”

“ 놈들을 끌어들일 곳은 어디로.....”

쉿!

담대진승은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 따라와라!”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담대진승은 은밀하게 몸을 날렸다. 낭떠러지 오른편으로 오십여 장을 나아가자 잡초가 무성한 자그마한 공터가 나왔다.

‘ 저건?’

담대사웅은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는 두 명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 범천뇌격단 이 새끼들이 어디에 숨어 있을까?”

“ 그걸 어떻게 알아, 수색이나 하자고.”

‘ 죽일 놈들!’

담대사웅은 도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날리려고 했다.

턱!

그때 담대진승이 급하게 담대사웅을 붙잡았다. 담대사웅은 고개를 돌려 담대진승을 보았다.

[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 저놈들을 잡아 족치는 게.......]

전음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뜨고 있었다. 담대진승과 담대사웅은 전음을 나누다 말고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사내들을 따라 몸을 날렸다.

일 각 정도 달렸을까. 두 사내가 계곡으로 들어가자 담대진승은 주변을 살폈다. 두 사내가 들어간 계곡은 범천뇌격단이 은신해 있는 봉우리 북쪽이었다. 같은 봉우리를 두고 범천뇌격단은 북쪽에 있고, 놈들은 남쪽에 있는 셈이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양측 절벽이 안쪽으로 쓰러질 것처럼 경사가 가파른 계곡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이십여 장 들어가자 이곳저곳에서 인기척이 감지됐다.

[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담대진승은 담대사웅을 돌아보며 물었다.

[ 최소한 오십 명 이상입니다.]

[ 내 생각도 그렇다. 그만 가자.]

두 사람은 은밀하게 계곡을 빠져 나왔다.

“ 이곳을 잘 기억해 둬야 한다.”

“ 물론입니다.”

담대사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 전경을 머릿속에 담으며 자리를 떴다. 담대진승과 담대사웅이 자리를 뜨자 계곡 입구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조금 전 계곡 안으로 모습을 감췄던 사내들이었다.

두 사람은 연우강과 이철상이었다.

“ 제대로 된 것 같지?”

“ 저 안에 있는 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만 않으면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죠.”

“ 이렇게 좋은 자리를 두고 옮긴다면 그건 바조지.”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계곡에서 십여 장 떨어진 은밀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이번 일이 끝나면 난 휴가 갈란다.”

연우강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휴가요?”

이철상은 뜨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벌써 삼 년이 다 돼가잖아.”

“ 저희들은요?”

“ 너희들은 자발적으로 왔고 난 끌려왔잖아, 자식아.”

“ 그래서 혼자만 휴가를 가겠단 겁니까?”

“ 시간 맞춰서 들어갈 거야.”

“ 가만, 시간 맞춰 들어온다면 계속 남아 있을 생각입니까?”

이철상은 활짝 갠 얼굴로 물었다.

“ 너희들 생각은 어때?”

“ 저야 광랑이 있으면 좋죠.”

“ 무원 영감에게 분관 오십 개를 준비해 두라고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

“ 똥을 푸란 말입니까?”

“ 똥을 푸면서 천마삼경을 얻었고, 파천육기를 얻었다.”

“ 하지만 이젠 없겠죠.”

“ 아무튼 혼자만 알고 있어.”

“ 조용히 사라질 참입니까?”

“ 죽을 거야.”

“ 죽는다고요?”

“ 언제까지 듣고 있을 겁니까?”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허공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 쉬고 싶으세요?”

허공에 이지약의 얼굴이 나타났다.

[ 얼레?]

이지약을 데리고 나왔던 몽요의 눈이 암팡지게 변했다. 연우강을 보는 이지약의 눈빛은 분명 애틋함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 여자가 남자를 향해 그런 눈빛을 보내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 저 눈빛은 전에 함께 잤거나 앞으로 잘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경우에 보내는 건데... 이 여우는 함께 잔 경우 같은데, 하여간.’

그녀는 연우강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재주도 좋은 사람이다.

휴가를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으면서 언제 저렇듯 작업을 해 두었는지.

그녀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 영업장을 너무 오래 비워뒀습니다. 영업장 관리를 해줘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서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줘야지요.”

“ 죽음을 가장해서 빠져나가겠다는 거예요?”

“ 네, 그리고 담대진승인가 하는 놈에게 여기 위치를 알려줬습니다.”

“ 담대진승은 담대무궁의 삼촌뻘이에요. 금세 알아차릴 거에요.”

“ 그건 이미 염두에 두었던 일입니다.”

“ 범천뇌격단이 기습을 해올지 모르니까 대비하라는 말이죠?”

“ 그렇습니다.”

“ 알았어요. 연 공자. 날 찾을지도 모르니까 들어가 볼게요, 다음에 봐요.”

이지약은 다시 허공으로 잠겨들어 갔다.

“ 가자.”

연우강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 이 소저와는 언제 잔 거죠?]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는데 귓전으로 몽요의 전음이 들려왔다.

[ 무슨 소립니까?]

[ 시치미 떼 봐야 소용없어요. 이 소저의 눈빛은 이미 잤다고 말을 하고 있다고요.]

[ 자리 깔아도 되겠습니다. 몽요.]

[ 실토하는 거예요?]

[ 전 뭐든지 많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그래도 너무했어요.]

[ 뭐가요?]

[ 일단은 절대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전 다그치고 그래야 사는 게 재밌잖아요.]

[ 절대 안 잤습니다.]

[ 흥! 가기나 해요.]

몽요는 연우강의 어깨 위로 올라타며 툭 쏘아붙였다.

[ 재미없어요?]

[ 네, 서방님. 진짜 재미없네요.]

[ 그럼 속도를 좀 내볼까요?]

[ 내든지 말든지.]

그로부터 한 식경 후 세 사람은 잠룡 십 조 조원들이 은신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잠룡 십 조 조원들이 은신해 있는 곳은 봉우리 중턱에 위치한 동굴 안이었다.

“ 어떻게 됐는가?”

연우강이 들어오자 욱일승이 물었다.

“ 일단 잠룡대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긴 했소.”

“ 그럼 기다리면 되겠구먼.”

“ 그럼 재미가 없어서 안 되오.”

“ 그럼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 원래 싸움이란 약올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거야, 영감.”

“ 약올리는 과정?”

“ 왜 삼국시대 전쟁사 같은 걸 보면 일기투라고 있는데 들와봤소?”

“ 각 진영을 대표하는 장수가 한 명씩 나와서 싸우는 걸 말하는 건가?”

“ 그 일기투라는 게 바로 상대방을 약올리기 위한 싸움이오.”

“ 아군 진영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일기투를 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 일기투를 해보았단 말인가?”

“ 물론 돈이 떨어질 때마다 했지.”

“ 돈이 떨어질 때마다 했다고?”

욱일승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행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 돈 벌이가 짭짤하거든.”

“ 그, 그러니까 일기투에 돈을 걸었단 말인가?”

“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놀아.”

“ 끄응! 아무튼 좋네. 약이 오른 이유가 뭔가?”

“ 난 항상 부하에게 걸 수밖에 없잖아. 설사 부하 놈이 적보다 훨씬 약해 보인다고 해도 상관 된 입장에서 적에게 걸 순 없잖아. 그래서 부하에게 걸었는데.....”

“ 그 새끼가 나가자 뒈져 버렸다는 거 아뇨.”

그 다음 말은 마장승이 했다.

“ 그러니까 부하가 죽어서 화가 났다는 게냐?”

이번엔 이자승이 물었다.

“ 전쟁에서 죽음은 늘 있는 일인데 그 정도로 화가 날 리가 없잖습니까.”

“ 하면?”

“ 돈을 잃어서 화가 난 거 아닙니까. 특히 광랑은 돈을 잃은 날이면 완전히 돌아버리곤 했습니다.”

“ 부하의 죽음이 아니라 돈 때문에 돌아버렸다고?”

이자승은 연우강을 보았다.

“ 영감님도 한 달 월급을 몽땅 잃어보십시오. 그때부터 누에 뵈는 게 없어집니다.”

“ 미친 놈!”

“ 맞습니다. 영감님. 돈을 잃게 되면 광랑은 그때부터 미친 놈이 됩니다. 완전히 미쳐서 적의 씨가 마를 때까지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린 대승을 거뒀고요.”

마장승은 맞장구를 쳤다.

이자승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과 마장승 일행을 번갈아 보았다. 이놈들과는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다.

늘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마친다.

녀석들과 오랫동안 생활하면 머리가 돌아 죽든지, 터져 죽든지 둘 중 하나는 할 것 같았다.

“ 일기투는 약올리는 게 맞습니다. 영감님. 영자!”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장사를 불렀다. 영자는 연우강이 전장사에게 지어준 별호였다.

“ 네! 태상!”

전장사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 놈들의 정확한 위치는 알아냈어?”

“ 이 산 북쪽 계곡에 숨어 있습니다.”

“ 열 명만 없애고 와.”

“ 알겠습니다. 태상.”

전장사는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인사대 대원 열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장사를 따라 나섰다.

[ 저도 다녀올게요. 우강.]

듣고 있던 몽요가 전음으로 말했다.

[ 가급적이면 눈동자가 확 돌아버리게 해놓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런 건 우리 전문이니까 걱정 마세요.]

[ 수면 가루는 사용하면 안 됩니다.]

[ 왜요?]

[ 그건 내일 사용해야 합니다.]

[ 그것도 약올리기 위한 건가요?]

[ 이럴 땐 승리를 위한 작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 알았어요.]

곧 몽요의 기척이 사라졌다.

“ 잠룡대 대원들이 가만히 숨어만 있을 거라고 보는 거냐?”

두작군이 물었다.

“ 무슨 소리야?”

“ 잠룡대 대원들은 밀천 무인을 찾는다며 곳곳을 수색하러 다닐 테고, 범천뇌격단 놈들은 잠룡대 대원들이 숨어 있는 계곡을 계속 감시할 거라는 말이다.”

“ 그러다가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다는 말?”

“ 그놈들에게는 행운이 될 테고, 우리에겐 불행이 되겠지.”

“ 그럼 만나지 못하게 막아야지.”

“ 어떻게 막는단 말이냐?”

“ 두 영감이 잠룡대 대원들이 숨어 있는 계곡 근처로 가 있으면 되잖아. 천리지청술을 펼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범천뇌격단 놈들이 오는 기척을 감지하면 경계근무를 서는 잠룡대 대원처럼 행동하고, 잠룡대 대원들이 수색을 나가기 위해 나오면 잽싸게 자리를 피해, 그럼 잍릉느 버틸 수 있을 거야.”

“ 나, 나보고 가라고?”

“ 원래 이런 일은 말 꺼낸 놈이 책임을 지는 거야, 영감.”

“ 난 어른이야. 자식아.”

“ 그럼 그런 힘든 일을 어른이 해야지, 애들을 시켜?”

“ 애, 애들?”

“ 두 영감 나이로 보면 쟤들은 애들이 맞잖아.”

“ 야! 자식아!”

“ 경험 많고 노련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가야 해.”

“ 경험이 많고 노련하고 믿을 만한 사람?”

“ 들키면 큰일 나잖아.”

“ 알았다. 다녀오마.”

두작군은 헤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자도 데리고 가.”

“ 알았다.”

두작군은 남궁운화를 보았다.

“ 가요, 할아버지.”

남궁운화는 벌떡 일어나 두작군을 따라나섰다. 그녀가 일어나자 남궁운화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창궁사수 네 명도 덩달아 따라 나갔다.

“ 나보다 단순한 사람은 처음 보네.”

밖으로 나가는 두작군 일행을 쳐다보던 군무옥은 피식 웃었다.

“ 그래도 두 할아버지는 신발점으로 운명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전랑.”

수여설이 웃으며 군무옥의 말을 받았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점이 바로 신발점입니다. 형수님! 지금까지 신발점이 틀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산적이 있는 곳까지 알아낸 점이 신발점이란 말입니다.”

“ 호호호! 알았어요. 믿을게요.”

“ 그만 하고 잠들이나 자둬.”

연우강은 사망궤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 그놈들이 내일 공격을 시작하면 어쩔 참이냐?”

자리에 누운 이자승은 연우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 잠룡 십 조는 이백여 명 정도로 공격해서 없앨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수차례에 거쳐 증명됐습니다. 그들은 절대 공격하지 못합니다.”

“ 이 진이 올 때까지 기다린단 말인구나.”

“ 그렇습니다. 놈들의 공격은 모레 밤에 시작될 겁니다.”

나갔던 몽요와 전장사 일행이 들어온 건 새벽녘이었다. 연우강은 조용히 눈을 뜨고 전장사를 보았다. 전장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자리로 들어가 누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저녁 무렵이 됐다.

“ 오늘은 오십 명이야.”

연우강은 전장사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러고는 묘강독존 갈인효를 보았다.

“ 나도 가란 말인가?”

“ 잠룡 십 조 대원들 중에 가장 확실하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갈 영감이잖아.”

“ 알았네. 독공의 흔적을 남기고 오겠네.”

갈인효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장사 일행과 함께 동굴을 나갔다.

다음날.

보고를 받은 담대진승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전날 열 명. 그리고 간밤에 오십 명.

이틀 동안 적에게 당한 부하들의 수였다.

“ 당장 공격하게 해 주십시오. 단주님.”

담대사웅은 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지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열 명의 부하를 잃고 간밤엔 경계를 대폭 강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 명이라는 엄청난 수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죽이는 방법도 잔인했다. 먼저 독공을 이용하여 기절시킨 다음 목을 잘라냈는데, 일검에 잘라냈더라면 이렇듯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려나간 단면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그건 검을 휘둘러 자른 게 아니라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 듯 썰었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 나도 당장 놈들을 공격하고 싶다. 사웅.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찬승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담대진승은 단호하게 말했다.

“ 하지만.”

“ 놈들은 감시하고 있느냐?”

“ 그렇습니다.”

“ 기다려라. 오늘밤이면 놈들의 피로 목욕을 하게 될 테니까.”

“ 알겠습니다. 단주님.”

담대사웅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자리를 떴다.

그는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한 듯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바닥이 푹푹 파였다.

복수의 시간을 기다라는 것은 길고 지루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늘의 해를 따서 서쪽 산 너머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능력 밖의 일. 담대사웅은 절벽을 부수며 시간을 보내고 분노를 쌓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왔다.

그리고 기다리던 이 진이 도착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막 벼려놓은 검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노인이 서 있었다. 그가 바로 범천뇌격단의 부단주이자 담대진승의 사촌인 무정마혈도 담대찬승이었다.

“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담대찬승은 담대진승을 보며 물었다.

계곡 안쪽에서 진득한 살기가 감지된 탓이었다.

“ 이틀에 걸쳐 공격을 받았네.”

담대진승은 그간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 감시는 하고 있었습니까?”

“ 그렇네.”

“ 그럼 이상하군요.”

“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 첫날이야 은밀하게 행동해서 몰랐다고 하지만 둘 째 날은 철저하게 감시를 했을 거 아닙니까?”

“ 감시하던 녀석들이 실수를 저질렀네.”

“ 어떤 실수를 저질렀던 말입니까?”

“ 놈들은 계곡 입구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장소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네.”

“ 그놈들하고 계곡 사이의 이십 장 공간은 감시를 못 했단 말입니까?”

“ 그런 모양이네. 그리고 당한 녀석들은 대부분 독에 중독돼 있었네.”

“ 묘강독존 갈인효가 나섰단 말이군요.”

“ 그렇다네.”

“ 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 이 봉우리 반대편 계곡에 숨어 있네.”

“ 언제쯤 가실 겁니까?”

“ 날이 완전하게 어두어지면 가야지.”

“ 제가 올 때 보니까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던데요.”

“ 그럼 더 좋지.”

“ 운기행공이나 해 둬야겠습니다.”

담대찬승은 한쪽 구석으로 가 가부좌를 했다.

“ 대원들은 운기행공을 시작하라!”

곧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고 새롭게 합류한 이백오십 명의 범천뇌격단 대원들은 일제히 가부좌를 하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운기행공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친 범천뇌격단 일행은 은밀하게 계곡을 나섰다. 절반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서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산 중턱 동굴을 나온 연우강 일행이었다.

연우강은 이철상을 보았다.

“ 공격진형을 구축한 채 움직일 겁니다. 결코 흩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이철상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안개 낀 어두운 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적은 범천뇌격단 대원이 아니라 혼란이다.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쪽이 당하게 될 것이다.

이철상은 뒤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자들은 오늘 합류한 신도영 일행이었다.

“ 며칠 지났다고 감각이 녹슬거나 하지 않습니다. 교랑, 그동안 못했던 걸 이번에 확실히 갚겠습니다.”

“ 내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런 점이다. 유성랑!”

“ 무슨 말입니까?”

신도영은 의아한 얼굴로 이철상을 보았다.

“ 공격진이 됐든 방어진이 됐든 진식의 기본은 조화다. 그 조화가 깨지면 진식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 전처럼만 하라는 말입니까?”

“ 그렇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막에서 했던 것만큼만 해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 알겠습니다.”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이야기 끝났으면 가자고.”

그들은 담대진승 일행이 갔던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잠룡 십 조를 비롯한 노인들과 인사대 대원들은 계곡 근처에 도착했다.

아직 진입을 하지 않은 듯 계곡 안쪽은 조용했다.

휙! 휙휙! 휙!

바로 안개 속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범천뇌격단이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 웬 놈들이냐?”

느닷없이 계곡 안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독고철응이었던 것이다.

“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독고철응의 목소리가 재차 이어졌다.

“ 왜 저러는 거죠?”

전면을 주시하고 있던 몽요가 물었다.

“ 인사 없이 바로 싸우도록 만들기 위해섭니다.”

“ 싸울 때 인사를 한다고요?”

“ 잘해보자는 그런 인사 말고, ‘범천뇌격단은 공격하라!’ 든지 ‘잠룡대 대원들은 적을 추살하라!’는 명령이 터져 나오면 복잡해지잖아요.”

“ 서로를 알게 되면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흐지부지 끝날 수 있다는 말이군요.”

“ 그땐 정말로 반갑다고 인사를 하게 될 겁니다. 우린 할 일이 없어지고요.”

“ 그럼 지금 들어가서 몇 놈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그래서 제가 몽요를 좋아하는 겁니다.”

“ 알았어요. 당장 들어가서 미치도록 싸우게 만들어 놓을게요.”

몽요는 생긋 웃으며 계곡 안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 크아악!”

독고철응이 선수를 친 듯 계곡 안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놈들의 정체는 확인했느냐?”

담대무궁은 무적뇌화검을 뽑아든 채 소리쳐 물었다.

“ 안개와 어둠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대주님.”

안개 속 어디선가 잠룡대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적은 얼마나 되느냐?”

“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 크악!”

“ 아악!”

두 명의 잠룡이 당한 가까운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 빌어먹을! 잠룡들은 공격하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공격해온 자들을 물리치고 나서 상황을 살펴야 할 듯했다.

단 한 마디가 운명을 바꿔놓은 순간이었다.

만일 담대무궁이 ‘잠룡들’이 아니라 ‘잠룡대’라고 하였다면 범천뇌격단은 자신들의 공격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잠룡대가 아니라 잠룡이라고 외친 것이다.

범천뇌격단 입장에서는 그들을 막고 있는 자들이 잠룡 십 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죽여라!”

“ 쳐라!”

담대진승과 담대찬승은 부하들을 독려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 사웅!”

안쪽을 살피던 담대진승이 담대사웅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단주님.”

“ 싸움은 부하들에게 맡기고 넌 연우강 놈을 찾아라!”

“ 알겠습니다. 단주님.”

번쩍!

“ 크악!”

“ 아악!”

“ 으아악!”

“ 응?”

느닷없이 안개 속에서 시퍼런 광채가 터져 나오자 담대진승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상당히 눈에 익은 광경이었던 것이다.

“ 설마 저 무공은......”

담대세가 출신인 담대진승이 무전뇌화결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가장 익히고 싶어했던 무공이 아니었던가.

그는 다시 눈에 내공을 집중하여 전면을 주시했다.

“ 우-하!”

“ 우우-하!”

바로 그때 뒤편에서 특이한 함성이 들려왔다.

“ 죽여라!”

“ 우!”

“ 하!”

“ 으악!”

“ 아악!”

“ 크아악!”

“ 아아악!”

곧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그 인원을 둘로 나눴단 말이냐?”

담대진승은 질겁했다. 그가 알고 있는 잠룡대는 전부 합친다고 하여도 팔십여 명 남짓이다. 그런 적은 인원을 두 패로 나누다니. 그로선 생각도 못한 전술이었다.

“ 하지만.......”

“ 우-하! 우-하!”

쿠웅! 쿠웅! 쿠웅!

잠룡 십 조 대원들이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계곡이 흔들릴 정도였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확살하라!”

“ 확살!”

“ 찬승은 후미를 맡아라!”

담대진승은 주변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알겠습니다. 형님!”

담대찬승을 비롯한 이백여 명의 범천뇌격단이 후미로 빠지자, 그동안 형편없이 밀리고 있던 잠룡대 쪽은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 누구라고 보시오?”

윤허는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검을 뿌리며 이지약에게 물었다.

“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자들보다 강자임에는 분명해요.”

“ 우-하! 우-하!”

쿠웅! 쿠웅!

“ 저건 잠룡 십 조가 내지르는 외침 아니오?”

“ 맞는 것 같아요. 그들이 우릴 도우러 왔나 봐요.”

“ 정말 도우러 왔다고 생각하시오?”

“ 아니란 말인가요?”

“ 난 이번 일을 벌인 사람이 그 친구라고 생각하오만.”

“ 그가 획책한 일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잠룡 십 조가 온 바람에 우린 전멸을 면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해요.”

“ 그럼 우릴 공격하고 있는 저들도 어쩌면 익히 아는 자들일 수도 있겠군요.”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들은 우리를 공격해 왔고, 현재 우린 전멸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게 중요해요, 차앗!”

이지약은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그러고는 전면을 향해 검을 힘차게 뿌렸다. 그녀의 검이 뿌려진 순간, 수십 개의 검탄강기가 쏟아져 나와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퍽! 퍽퍽! 퍽퍽! 퍽퍽!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그녀 전면이 초토화됐다. 그것은 혁미월이 창안한 우주일만검결이었다.

“ 엄청나군.”

윤허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검으로는 무당과 쌍벽을 이룬다는 화산파의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그녀의 무공이 어떻다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방금 그녀가 쏘아낸 것은 검기가 아니라 강기다.

아니 일반 강기가 아니라 강기를 분리해서 쏘아대는 검탄강기다. 과연 잠룡들 중 저렇듯 많은 검탄강기를 동시에 쏘아댈 자가 있을는지.

어쩌면 담대무궁과 비슷한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이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도 질 수는 없지.”

윤허는 검을 들어 올렸다.

가슴 앞으로 세운 그의 검이 부르르 떤다 싶더니 자색 광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가 펼치는 무공은 화산파 최고 신공이라고 불리는 자하검결이었다.

“ 차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윤허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오 장 높이까지 솟아 오른 그는 신형을 뒤집어 머리를 아래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아래쪽으로 쏘아져 가며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 끝에서 자색 광채가 폭사돼 지상으로 쏘아져 갔다. 빛처럼 안개를 뚫은 그것은 아래쪽에 있는 자들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절한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범천뇌격단 무인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이번엔 잠룡대 대원들이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곡 안에는 범천뇌격단, 잠룡 십 조, 잠룡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존재들.

소리없이 움직이며 일검에 적의 숨통을 끊어 놓는 그들은 인사대 대원들이었다. 인사대 대원이 다녀갔다는 증거는 목을 틀어쥔 채 쓰러지는 범천뇌격단 대원들의 모습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 저놈!”

적을 없애고 다니던 몽요는 입맛을 다셨다.

일 장 건너편에 탄탄하 체구의 노인이 주변을 쓸어보며 서 있었다. 손에 들린 고색창연한 도를 보니 그가 범천뇌격단 단주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 아쉽네.”

몽요는 이내 몸을 돌렸다.

범천뇌격단의 단주는 그녀의 몫이 아닐 연우강의 몫이었던 것이다.

“ 사웅, 사웅은 어디 있느냐?”

방금 자신 앞에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담대진승은 연우강을 찾아내라고 하였던 담대사웅의 이름을 불렀다.

“ 단주님! 연우강 놈이 후미에 있습니다.”

그때 담대진승의 귓전으로 담대사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말이냐?”

담대진승은 확인하듯 소리쳐 물었다.

“ 그렇습니다. 단주님. 검은 옷에 검은 방갓을 쓴 놈이 뒤편에서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 따라와라!”

담대진승은 오른편으로 몸을 뺀 다음 절벽을 따라 뒤편으로 이동했다. 연우강은 맨 후미에 잠룡 십 조 본진과 오 장 가량 떨어진 곳에서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 놈!”

담대진승은 빠르게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뇌격팔마 여덟 명이 흉흉한 살기를 뿌리며 따랐다.

“ 잠룡 십 조는 위치를 고수하라!”

“ 우-하! 우우-하!”

“ 산!”

연우강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자 잠룡 십 조 조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곧이어 잠룡 십 조원들이 멈춰선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잠룡 십 조 대원들은 검과 방패를 차례대로 휘두르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전진......!”

“ 타아!”

연우강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담대진승의 도에서 새파란 광채가 튀어나와 연우강을 향해 쏘아져갔다.

“ 아악!”

연우강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의 신형이 뒤편으로 훨훨 날았다.

“ 광랑!”

“ 광랑!”

연우강이 공격당하자 후미에 있던 잠룡들이 질겁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 우리가 구하겠네.”

가장 먼저 담대진승 일행을 따라 나선 사람은 욱일승 귀노, 수천월이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척!

연우강은 내려서자마자 계곡 밖으로 몸을 날렸다.

연우강이 몸을 날려가는 모습은 마치 부상을 입은 자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 어림없다, 놈! 넌 오늘 내 손에 죽는다!”

담대진승은 고함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쫓았다. 그 뒤를 뇌격팔마가 쫓고, 뇌격팔마 뒤편에서는 욱일승 일행이 따르고 있었다.

[ 뭐하는 짓인가?]

욱일승은 몸을 날리며 전음을 보냈다.

[ 휴가 가려고.]

[ 휴가?]

[ 원래 군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휴가를 보내주거든. 그런데 난 지난 삼 년 동안 죽어라 일만 했다는 거 아니오.]

[ 그래서 쉬겠다는 건가?]

[ 날 쫓아오는 놈이 가장 강한 놈 같은데 아니오?]

[ 그래서 그놈과 함께 죽겠다는 건가?]

[ 저 뒤에 오는 놈들 중 한 명 정도는 살려줘야 해.]

[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 내가 죽었다고 보고할 사람이 있어야 할 거 아뇨, 한 놈이 아니라 세 놈을 살려주시오.]

[ 알았네.]

“ 차앗!”

이자승 일행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뇌격팔마와의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 귀노!]

이번엔 염자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 말씀하십시오. 장주님.]

[ 내가 떨어지면 바로 따라와!]

[ 떨어진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 아무튼 따라와!]

연우강은 뒤편을 흘끔 쳐다보았다.

어느새 낭떠러지가 가까워진 듯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뭐 하는 거요, 욱 영감. 놈이 날 죽이려고 하고 있단 말이오.”

“ 잠시만 기다리게!”

욱일승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놈들을 막아라!”

담대진승은 뒤편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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