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37화 (137/232)

제 10장 다시 부르는 진군가

담대진승은 뇌정마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연우강과 거리는 팔 장.

아직 공격할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가 공격 준비를 취한 것은 연우강 뒤편의 전경 때문이었다. 그곳은 이틀 전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곳이었다. 천길 낭떠러지가 있어 설사 무인이라고 해도 떨어지면 살아난다고 장담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 아악!”

“ 드디어 끝이구나. 연우강!”

뒤편에서 뇌격팔마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는 무시했다.

‘ 설사 잠룡 십 조를 다 없애지 못한다고 해도 연우강 그놈만큼은 반드시 없애야 하네.’

담대진승이 대야벌 천상천을 떠나기 전 담대만승과 독대를 하는 중 받은 명령이었다.

지금 몸을 돌리면 뇌격팔마를 구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구하는 것보다 연우강을 죽이는 게 우선이었다. 들어 올린 담대진승의 도 끝에 푸른 기운이 맺혀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범천뇌정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천뢰를 펼치기 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 아악!”

또다시 뇌격팔마 중 한 명의 비명이 들려왔다.

“ 복수는 놈을 없앤 다음에 해주마.”

그의 뇌정마도 끝에 어린 뇌정의 기운이 점점 커지면서 급기야 푸른 뇌전 기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연 공자, 그쪽으로 가면 낭떠러지네. 연 공자 실력으로는 무리네. 어서 피하게!”

뒤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대진승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놈이 도망치고 있는 낭떠러지는 앞쪽으로 튀어나간 곳이고 이미 그 안으로 들어섰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 아악!”

“ 으악!”

“ 커억!”

세 번의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벌써 다섯 명이 당했으니 이제 남은 자는 세 명일 테다.

우우웅!

“ 하지만.......”

뇌정마도가 도명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담대진승은 마지막 도약을 했다. 연우강과 거리는 오 장.

이젠 놈을 끝장내야 할 때였다.

“ 차앗!”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이대로 죽지 않는다, 놈!”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껏 쉬지 않고 도망치던 연우강이 느닷없이 방향을 바꿔 담대진승에게 돌진했다. 사냥 당하던 짐승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사냥꾼을 향해 돌진해 오면 사냥꾼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지금 담대진승의 상황이 그랬다.

느닷없이 연우강이 돌진해 오자 뇌정마도를 휘두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더불어 뇌정마도 끝에 어려있던 뇌정의 기운이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 이야압!”

천뢰의 기운이 약해졌다고 해서 공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뇌정마도를 아래로 그었다.

‘ 헉!’

뇌정마도를 휘두르던 담대진승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느닷없이 뭔가가 떠받치는 듯한 기분이 들며 내리긋는 도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것이었다. 연우강을 없애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펼쳐왔던 것과 다른 기분이 들자 공연히 찜찜했다.

“ 단주님. 뒤를 조심..... 으아악!”

바로 그때 뒤편에서 뇌격팔마의 외침과 함께 차가운 기운이 감지됐다.

담대진승은 연우강을 보았다. 몸을 날려 오는 놈의 손이 엉덩이 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놈의 엉덩이에 있는 검이 파천육기의 하나인 묵사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 끝낸다.”

생각은 길고 동작은 짧았다.

담대진승은 뒤편에서 날아오는 차가운 기운과 머릿속을 잠식해 드는 찜찜한 기운을 무시하고 내리긋던 뇌정마도에 힘을 주었다.

스악!

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 으아아악!”

척!

그리고 처절한 비명과 동시에 연우강의 신형이 담대진승의 몸에 철썩 달라붙었다. 담대진승은 여전히 앞으로 달려나가는 중이었고,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빠르게 절벽으로 날아갔다.

“ 커억!”

담대진승 또한 비명을 토해냈다.

뒤편에서 감지된 차가운 기운이 몸 안으로 파고들어 온 것이었다. 느낌은 검 같았다. 하지만 검은 몸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못하고 등 근육에 잡혀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담대진승은 생각했다.

그는 나아가던 몸을 멈추기 위해 내공을 줄였다.

“ 헉!”

담대진승은 당황했다. 내공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바로 시선을 내렸다. 연우강이 여전히 혹처럼 붙어 있었다.

‘ 혹시 이 놈이!’

조금 전 분명 천뢰가 놈의 몸에 껴중하는 걸 눈으로 확인했고 비명도 들었다. 그런데 몸에 붙은 놈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공을 펼치지도 않는데 낭떠러지로 향해 달려가는 이것은 다 뭐란 말인가.

‘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단 말이구나.’

그는 다시 뇌정마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도 손잡이로 연우강의 등을 사정없이 찍었다.

“ 으아악!”

연우강의 입에서 두 번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 몸이 돼 날아가는 두 사람 아래쪽으로 피가 철철 떨어져 내렸다. 워낙 많은 피가 흘러내려 뒤쪽에서 보아도 확인히 가능할 정도였다.

“ 연 공자!”

“ 연 공자!”

“ 장주님!”

욱일승 일행은 뇌격팔마 두 사람을 버려두고 연우강은 부르며 낭떠러지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연우강과 담대진승은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졌다.

담대진승의 눈이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고 있는 단전이었다.

“ 붙어 있으니까 잘 안 보이지?”

연우강은 몸을 뗌과 동시에 뇌섬을 쏘았다.

그의 허리춤에서 쏘아져 나간 뇌섬은 절벽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곧이어 내공을 끌어올리자 그와 담대진승은 낭떠러지 아래쪽에 멈췄다. 이십여 장 아래쪽에는 강물이 무서운 기세로 흘러가고 있었다.

“ 마, 말도 안 돼!”

담대진승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연우강의 손이 자신의 단전 깊숙이 파고들어 가 있는 것이었다.

“ 말을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 안 되는 경우는 없어, 인마.”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담대진승을 보았다.

“ 어떻게?”

담대진승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원래 세상은 속고 속이는 거야. 아무튼 내게 휴가를 줘서 고마워. 더불어 잠룡대 대주 자리도.”

“ 잠룡대 대주 자리를 내가 줬다고?”

“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거야.”

연우강은 담대진승의 단전에 박힌 오른손에 혈잔수 기운을 주입했다.

“ 커억!”

큰 비명도 없었다. 단전부터 가루로 변하기 시작한 담대진승의 몸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 이제 휴가네.”

연우강은 절벽에 꽂아 넣었던 뇌섬으로 시선을 주었다. 뇌섬이 빠져나오고 연우강의 몸은 그대로 강물로 추락했다.

첨벙!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오고 연우강은 물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 난 내려가 보겠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염자생이 남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가 몸을 날려 가는 곳은 지금 있는 곳처럼 낭떠러지가 아니라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 우리도 함께 가세.”

욱일승과 수천월도 염자생을 따라 몸을 날렸다.

세 사람이 급하게 떠나자 남아 있던 뇌격팔마 두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일마 건곤마도 담대사웅과 이마 경천마도 이방산이었다.

욱일승 일행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은 머뭇머뭇 낭떠러지 쪽으로 향했다.

낭떠러지 끝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낭떠러지 중간에 담대진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아무리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담대진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아무래도 그 늙은이가 던진 검에 치명상을 입은 모양이네.”

담대사웅은 이방산은 보며 말했다.

“ 연우강은 죽었겠지?”

“ 이 피는 단주 등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니었네.”

담대사웅은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가리켰다.

“ 그렇지. 그건 두 사람 사이에서 떨어졌으니까.”

“ 맞네. 연우강과 동귀어진한 걸로 보고할 수밖에 없네.”

“ 내려가 보지 않아도 되겠는가?”

여전히 단주의 안위가 걱정이 된 듯 이방산은 아래를 살폈다.

“ 그러다 그들을 다시 만나면 우린 보고도 못하게 될 거네. 일단 이번 일은 보고가 우선이네.”

“ 알았네, 그만 가세.”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연우강을 찾아 떠날 줄 알았던 욱일승과 수천월이었다.

“ 허!”

욱일승은 어이없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연우강의 주도면밀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완벽하게 처리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완벽하다. 이렇듯 바닥에 피까지 흥건하게 고여 있고, 뇌격팔마의 두 놈이 확인까지 하고 갔으니 어떻게 의심을 하겠는가.

“ 아무튼 그 친군........”

수천월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도 다시 돌아올 때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처럼 해서 나타날 것이다.

“ 그 친구를 보면 과유불급이란 말이 새삼 떠오르곤 해.”

“ 과유불급?”

“ 담대만승이 중원 상권에 대한 욕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 친구가 대야벌로 올 이유가 없었겠지.”

“ 그렇구먼. 공연한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네그려.”

“ 허허허! 우리도 한때 그러지 않았는가.”

수천월은 터널웃음을 터뜨렸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또한 그놈의 욕심 때문에 주화입마에 들었다.

벌주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무공을 익혔더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고,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있을지도........

“ 그랬지. 그래서 한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수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무튼 무서운 친구야, 그만 가세.”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고는 자리를 떴다.

“ 거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모르겟구먼.”

문득 계곡 상황이 떠올랐다.

잠룡 십 조가 강하고, 잠룡대라는 지원군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는 천상천 정예인 범천뇌격단이다. 잠룡 십 조 대원들이 다치지나 않았는지 공연한 노파심이 일었다.

“ 여차하면 도망치라고 해 놨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도 서두르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욱일승도 걱정스러운 듯 걸음이 빨라졋다.

[ 대충 정리돼 가고 있어요, 교랑.]

몽요는 이철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 어느 정돕니까?”

[ 범처뇌격단의 손실은 칠 할 가량이에요.]

“ 백오십 명 정도 남았단 말입니까?”

[ 대충 헤아린 거예요.]

“ 그럼 천천히 후퇴해야겠군요.”

이철상은 각 조장들을 향해 전음으로 후퇴명령을 내렸다. 전음을 받은 잠룡들은 싸우면서 조금씩 물러났다.

잠룡 십 조가 물러나기 시작하자 범천뇌격단 무인들은 거칠게 공격하며 따라 나왔다.

범천뇌격단 무인 대부분은 자신들이 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계곡 밖으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룡 십 조가 물러나니 그들로서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계곡 안쪽보다는 뒤편에 집중하자, 잠룡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이번엔 안쪽에 있던 자들이 죽어나갔다.

범천뇌격단 무인들이 계곡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인원이 오십여 명으로 줄어 있었다.

“ 후퇴하라!”

“ 철수하라!”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범천뇌격단 무인들은 북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 놈들을 잡아라! 아니 죽여라!”

그때 잔뜩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룡 십 조는 의아한 얼굴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욱일승과 수천월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 무슨 일입니까?”

연우강이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철상이 모른 척 소리쳐 물었다.

[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 지금부터 연기를 해야 한다....]

[ 잘 들어라......]

욱일승과 수천월 그리고 이철상은 잠룡대 대원들에게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그들이 보낸 전음은 곧바로 다른 대원들에게 전달됐다.

“ 놈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연 공자가 당했다.”

“ 무슨 소립니까?”

이철상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영감님이 가셨는데.......”

이철상은 비롯한 잠룡들은 욱일승과 수천월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이윽고 잠룡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이런 개새끼들!”

“ 이런 죽일 놈들이!”

“ 썅노무새끼들!”

잠룡들은 저마다 욕설을 뱉어내며 일부는 범천뇌격단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가고 일부는 장강 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순식간이었다.

잠룡 십 조 대원들은 꺼지듯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 제기랄! 절경을 구경하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마지막으로 욱일승이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 무슨 일인가?”

계곡 안쪽에 있던 담대무궁이 바깥쪽으로 나오며 물었다. 그의 시선을 받고 선 사람은 심복인 호풍검 막동이었다.

“ 연우강이 죽었답니다.”

“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대주님. 조금 전 우리와 싸웠던 자들의 수장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 설마 .... 그놈이 얼마나 질긴 놈인데......”

담대무궁은 고개를 돌려 윤허를 보았다.

“ 자넨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겠구먼.”

윤허는 담대무궁을 빤히 쳐다보았다.

“ 부인하지 않겠네. 나는 놈에게 두 번이나 치욕적인 모욕을 당했네. 만일 동료가 아니었다면 내 손으로 그놈을 아주 고통스럽게 죽였을 거네.”

“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지.”

“ 무슨 사실 말인가?”

“ 잠룡 십 조 대원들이 아니었다면 자네나 나나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네.”

“ 그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말인가?”

“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군.”

“ 우린 충분히 강하네. 윤 형. 얼마든지 놈들을 막아낼 수 있었네.”

“ 그건 자네 생각일 뿐이네. 담대 형. 자네를 제외한 잠룡대 전원은 잠룡 십 조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네.”

조소인 듯한 미소를 흘리며 윤허는 몸을 돌렸다.

담대무궁은 멀어지는 윤허의 등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 접니다. 대주님.]

그때 귓전으로 막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러느냐?]

[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 뭐가 말이냐?]

[ 시체들을 살펴보았는데 천상천 무인 같습니다.]

[ 천상천이라고?]

담대무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재빨리 주변에 널린 시체를 살폈다.

‘ 이럴 수가?’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죽은 시체들 옆에는 무기가 뒹굴고 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도였다.

천상천 무인들 중 대부분이 도를 사용하는 집단은 범천뇌격단밖에 없다. 더불어 상당히 눈에 익은 얼굴로 보였다.

‘ 저들이 왜?’

담대무궁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범천뇌격단이 왜 잠룡대를 공격한단 말인가.

‘ 혹시.......’

문득 잠룡 십 조를 공격하러 왔다가 잠룡대를 잠룡 십 조로 착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더구나 사물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이었다.

[ 들은 말 없느냐?]

담대무궁은 막동에게 전음을 보냈다.

[ 무슨 말을 말하는 겁니까?]

[ 잠룡 십 조 대원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말이다.]

[ 유람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유람이라.........”

[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대주님.]

‘ 그렇군.’

담대무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적이 범천뇌격단이라는 사실이 잠룡대 대원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희생자를 묻고 이곳을 떠난다!”

담대무궁은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 알겠소.”

‘ 빌어먹을.’

담대무궁은 내심 욕설을 내뱉었다.

‘ 알았소.’라는 대답은 잠룡대 대원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대답이다. 더 이상 자신을 대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아직 대주로 인정하고 있다면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할 터였다.

‘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나를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담대무궁은 조소를 베어 물었다.

잠룡강호행이 끝나면 잠룡들에게는 문파를 선택할 권리를 준다. 하지만 저들은 잠룡대를 떠나지 못한다.

‘ 왜냐면 잠룡대는 이제 시작하는 단체이지만 각 문파는 이미 완성된 조직이거든. 완성된 조직에서는 웬만해선 위로 올라갈 수 없지. 어쩌면 평생 말단으로 썩을 수도 있거든.’

교육기간이 끝난다고 해도 잠룡들은 절대 잠룡대를 떠날 수 없을 거라고 담대무궁은 확신한다. 완성된 조직 체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배경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잠룡대밖에 없을 것이다.

담대무궁은 차갑게 웃으며 계곡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곡 밖에서 기다리길 반 시진 가량. 일을 마친 잠룡대 대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 이제, 귀환한다!”

담대무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룡대 대원들은 이곳에서 죽은 동료들에게 미안한 듯 계곡을 흘끔 쳐다보고는 묵묵히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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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왔을 때 반드시 해야 할 일 열 가지.

1. 늘어지게 자기.

- 허리가 아파 더 이상 누워 있지 못할 지경이 되면 기어서 나와라.

2. 돈 구하기!

- 휴가 기간 동안 쓸 돈을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확보하라. 부모님의 도움아 필수라는 걸 명심해라.

3. 닭튀김 먹기.

- 그 외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 전부 먹어라. 배가 터질 때까지.

4. 사복 입기.

- 유행이 지난 건 상관없지만 싸구려는 절대 안 된다. 무조건 최고급으로 빼 입어라.

5. 술 마시기

- 반드시 열 번 이상 토할 때까지 마셔 줘라. 노상방뇨 또한 필수 과정임을 명심하라.

6. 최고급 기루 가기.

- 쌍코피는 무시하라. 허리가 아파 견딜 수 없는 것도 무시하라. 지긋지긋할 때, 웃는 기녀 얼굴이 악마처럼 보일 때 그때 나와라.

7. 친구 만나기.

- 반드시 고급 기루에서만 만나라. 전날 기녀의 얼굴은 잊어라.

8. 친구 정리.

- 기루가 아닌 찻집에서 만나자고 하는 친구 놈은 이번 기회를 빌어 정리해라.

9. 정인 만들기.

- 떠날 수도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많이 만들어라.

10. 효도하기.

- ‘진정한 사내가 돼서 돌아오겠습니다.’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살겠습니다.’ 그런 말보다 ‘복무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나오지 않겠습니다.’가 가장 좋은 말이라는 걸 명심하라.

“ 뭡니까?”

염자생은 종이를 받아들며 물었다.

“ 군에 있을 때 녀석들이 했던 걸 정리한 거야.”

“ 그래서 장주님도 해보고 싶다는 겁니까?”

“ 나쁜 게 없잖아.”

“ 그런데 왜 일찍 일어나신 겁니까?”

염자생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화야장에 돌아오긴 했지만 연우강의 생활은 떠나기 전과 다르지 않다. 오늘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 일어나 이렇게 몸을 풀고 있다.

“ 기상나팔 소리 때문에 일어난 거야. 이 짓 끝나고 다시 들어가서 잘 거야.”

“ 약은 드시겠죠?”

“ 내가 언제 약 거르는 거 봤어?”

“ 들어가서 준비하겠습니다.”

“ 여기에 흉터 하나 만들어야겠지?”

연우강은 왼편 가슴을 가리켰다.

“ 담대진승의 천뢰에 당한 흔적을 말하는 겁니까?”

“ 그래야 구사일생이란 말을 써먹을 수 있잖아. 욱 영감이 담대진승에게 던진 검, 내가 익힌 불괴수호신공, 그리고 천고의 보물인 사망보의면 내가 살았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잖아.”

“ 사망보의는 또 뭡니까?”

“ 사망묵의를 사망보의라고 소문을 내야지. 금릉 연씨 세가 장남이 그 정도 보물을 가지고 있는 건 이상할 것도 없잖아.”

“ 그렇군요. 그럼 흉터를 솜씨 있게 잘 만들어내는 자를 수소문해 봐야겠군요.”

“ 장의사 쪽으로 알아보면 될 거야. 그자들은 시체 꿰매는 덴 선수들이니까.”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솜씨 좋은 목수도 알아 봐.”

“ 솜씨 좋은 목수라면?”

“ 거기 열 번째 보면 효도하기라고 돼 있잖아.”

“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말입니까?”

“ 휴가를 자주 나와도 된다고 하겠지?”

“ 그럴 겁니다. 장주님. 항주에서 가장 훌륭한 목수를 찾아 보겠습니다.”

“ 나갈 때 마차를 타고 가.”

“ 경공이 더 편합니다.”

“ 마차를 타고 서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그 다음에 업무를 봐.”

“ 서호 주변을 돌라는 건?”

“ 화야불이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각 기루에 알려야 할 거 아냐.”

“ 클클클! 알겠습니다. 장주님. 먼저 약부터 대령하겠습니다.”

염자생은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연우강은 다시 동작에 몰두했다.

화야불이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항주 환락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서호 주변에 위치한 최고급 기루 주변은 청소를 하고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고, 기녀를 단장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새롭게 하는 이유가 화야불이가 매상을 많이 올려줘서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다니는 자들이 항주 최고 부자들이고 그들로부터 나오는 매상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화려한 옷을 걸치고 나타난 화야불이는 마치 순례하듯 서호 주변의 모든 기루를 섭렵하고 다녔고 그때마다 엄청난 매상을 올려주곤 했다.

“ 젠장! 벌써 다했네.”

연우강은 종이를 내려다보며 투덜댔다.

반드시 해야 할 일 열 가지에는 검은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 이제 보름 남았습니다. 장주님.”

염자생은 웃으며 말했다.

“ 들어갈 때라고?”

“ 그렇습니다.”

“ 준비는?”

“ 옷만 입으시면 됩니다.”

“ 최고급으로 준비한 거야?”

“ 황실에 진상하는 비단으로 옷을 지었습니다.”

“ 이건 그럴싸해?”

연우강은 가슴을 가리켰다. 그의 가슴에는 왼쪽 쇄골 바로 아래부터 배꼽까지 길게 흉터가 나 있었다. 마치 불에 달군 검으로 그은 상처가 나온 것처럼 덴 자국과 베인 자국이 동시에 남아 있었다.

“ 아주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 그 정도면 담대진승 본인이라고 해도 진짜라고 여길 것 같습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처소로 향했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화려하게 비단옷을 챙겨 입은 연우강과 등에 사망궤를 진 염자생이 화야장을 나섰다. 물론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갈 때 사용한 문은 후원에 있는 개구멍이었다.

“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장원을 벗어나자 염자생이 입을 열었다.

“ 뭐가?”

“ 몽요님은 왜 따라오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사실 내내 궁금했던 사항이었다.

연우강 옆에 찰싹 붙어 있었던 그녀의 성격으로 볼 때 이곳까지 따라오고도 남는다. 더구나 동영으로 갈 때 연우강 부모님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으니 몽요는 화야장의 위치도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달이 넘도록 이곳에 머물렀는데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거야.”

“ 머리가 좋으면 이곳으로 와서 감시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부모님이 야장에 있잖아.”

“ 대장주님께 잘 보이기 위해 대야벌로 갔단 말입니까?”

“ 부모님께 잘 보이기 위해 간 게 아니라 감시하기 위해 간 거야.”

“ 일부러 떼어내려고 일감을 준 거군요.”

염자생은 히죽 웃었다.

연우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아마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 몽요에게 어떤 부탁을 했을 테고, 그녀는 이곳이 아니라 대야벌로 갔을 테다.

“ 난 그렇게 나쁜 놈이 아냐, 귀노.”

“ 그럼 몽요님이 왜 오지 않는 겁니까?”

“ 감시 때문이라고 했잖아.”

“ 그러니까 누굴 감시한다는 겁니까?”

“ 수 소저와 이 소저지 누구겠어.”

“ 수여설 소저와 이지약 소저라고요?”

염자생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나랑 잤다는 사실을 몽요가 알고 있거든.”

“ 그걸 말했단 말입니까?”

“ 죄를 진 것도 아닌데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 그러니까 수 소저와 이 소저가 대장주님 부부와 친해지는 걸 감시하기 위해 갔다는 거네요?”

“ 그런 것 같아.”

“ 그런 것 같다고요?”

“ 몽요의 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단지 그렇게 짐작할 뿐이지. 서둘러.”

“ 아무튼 도망갈 구멍 파는 덴 장주님은 최곱니다.”

염자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우강을 따랐다.

“ 헛소리 그만하고 길이나 잡아.”

“ 이미 일직선으로 접어놨습니다.”

염자생은 반으로 접힌 지도를 흔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이 길을 재촉하고 있는 그 시각. 대야벌에서는 담대만승과 담대무궁 그리고 담대사웅이 연우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확신하는가?”

담대만승은 담대사웅을 보며 물었다.

“ 그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담대사웅은 그 날 보았던 광경을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 그러니까 단주의 천뢰가 놈의 몸에 격중했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 그 순간 뒤에서 던진 욱일승의 검이 단주의 등에 꽂혔고.”

“ 네! 두 사람이 날아가던 아래쪽에 떨어진 피도 확인했습니다. 그 피는 단주의 등에서 흘러나온 피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 알았네. 그만 나가 보게.”

“ 알겠습니다.”

담대사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네 생각은 어떠냐?”

담대만승은 담대무궁을 보며 물었다.

“ 놈들은 미친 듯이 몸을 피한 범천뇌격단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범천뇌격단 단주의 무공은 저보다 더 강합니다. 아버지.”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연우강을 공격한 시점과 검에 당한 시점이 교묘하게 일치한다. 난 그게 마음에 걸린다.”

“ 만일 살아있다면 진작 나탔을 겁니다. 놈은 나타나지 않을 놈이 아닙니다.”

“ 그렇겠지. 범천룡 자리는 그놈에게 주기로 했다.”

“ 네?”

담대무궁은 깜짝 놀랐다.

호남에서의 일로 범천룡 자리를 놓쳤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연우강에게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내가 녀석의 생사에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엔 십지십룡패를 비롯한 범천룡패는 죽은 잠룡들에게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 하지만 하필이면 왜 연우강에게.......”

“ 녀석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많지만, 이번 잠룡강호행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조가 십 조라는 사실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앵속쟁이 연우강이 조장으로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에게 주지 못할 뿐이엇다. 그런데 잠룡 십 조 대원들의 점수를 깍아먹었던 연우강이 죽고 말았다.”

“ 죽은 자의 죄는 면책된다는 말입니까?”

“ 그럴 수밖에 없다. 죽은 자에게까지 죄를 묻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다. 너를 범천룡으로 만들기 위해 연우강이 앵속쟁이라는 소문을 냈다고 할 게 분명하다.”

“ 그러니까 잠룡 십 조 조원들 중 한 명에게 범천룡패를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죽은 연우강에게 준다는 말입니까?”

“ 그런 셈이다.”

“ 잠룡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 그럼 대주는?”

“ 다른 문파에서 하는 것처럼 잠룡대 대주도 대원들에게 맡길 참이다.”

“ 그랬군요.”

담대무궁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범천룡과 십지십룡을 뽑지 않겠다는 의도를 알 듯했다. 어느 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잠룡들은 다른 문파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잠룡들에게 대주 선출 건을 맡긴 것도 그렇다.

수장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물론 무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합이다. 잠룡대 내의 화합뿐만 아니라 다른 문파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천상천과의 원홀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잠룡들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벌주의 아들인 자신밖에 없다.

“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잠룡들과 친분을 쌓아두도록 해라.”

“ 알겠습니다. 아버지.”

담대무궁은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보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고 드디어 삼 년 교육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이른 아침 일어난 잠룡들은 운기행공을 마치고 세안을 한 후 훈련복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엇다. 아침을 마친 잠룡들은 원호 옆 훈련장으로 향했다. 퇴교식이 거행되는 장소가 바로 훈련장이었다.

훈련장으로 향하는 잠룡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삼 년.

오백 명이 들어왔는데 교육 기간을 무사히 마친 잠룡은 이백 명에 불과하다. 삼 년 동안 삼백 명의 잠룡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이제는 대야벌의 정식 무인이 된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윤허 또한 다른 잠룡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음미하듯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님?”

옆에서 따르던 거철산이 물었다.

“ 무궐의 제안 말이냐?”

“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잠룡을 최소 스무 명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 형님 능력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데리고 간다는 건 곧 책임을 진다는 걸 의미한다. 무궐에서 접촉해서 데려가는 거라면 모를까, 그들을 데려가는 걸로 내 영달을 꾀할 수는 없다.”

“ 그럼 잠룡대에 남을 참입니까?”

“ 글쎄, 그것도 생각해 봐야지. 범천룡 자리를 담대무궁에게 주면 잠룡대도 떠나야겠지.”

“ 무궐도 못들어가고, 잠룡대도 떠나면 대야벌을 나가겠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형님.”

“ 무공도 익힐만큼 익혔는데 내 한 몸 의탁할 곳이 없겠느냐.”

원호를 지나 두 사람은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훈련장 안에는 벌써 많은 무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 저 친구들!”

훈련장 중앙을 쳐다보던 윤허의 얼굴은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오십여 명의 무인들.

여전히 훈련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잠룡 십 조 대원들이었다.

“ 아직도 그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윤허는 거철산을 보았다.

“ 제 생각일 뿐입니다.”

“ 그가 죽지 않았다는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냐?”

윤허는 황당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모든 정황이 연우강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거철은 연우강이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연 공자는 자신이 앵속쟁이였다는 사실 때문에 잠룡 십 조 대원들이 불리한 대우를 받을까 봐 죽음을 가장하여 떠났습니다.”

“ 그의 무공이 담대진승과 싸워서 이길 정도로 강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

“ 그건 제게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형님. 이제 그만 가시죠.”

거철산은 훈련장 안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잠시 후 잠룡 십 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 그는 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잠룡들이 전부 들어오고 퇴교식이 시작됐다.

개회식이 있고 그 다음엔 귀빈들의 인사 그리고 축사 등 무슨 식을 하게 되면 빠지지 않는 식순이 이어졌다.

늘 그렇듯 내빈들의 축사는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담대만승이 연단 위로 올라오자 잠룡들은 긴장한 얼굴로 연단을 주시했다.

드디어 삼 년 간의 평가가 내려지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 먼저 제군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무사히 교육을 마친 것에 대해 축하의 말을 전한다. 지난 삼 년이 삼십 년 같았던 잠룡도 있었을 테고, 삼 개월 같았던 잠룡도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 어떤 의미든 교육 기간은 끝났고, 제군들은 내일부터 대야벌 정식 제자가 된다. 대야벌에서 지급하는 패를 소지하게 될 것이고, 중원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대야벌 무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수고했다. 제군들.”

축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담대만승은 박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지난 삼 년 동안 제군들은 많은 일을 겪었다. 무공이 일취월장한 잠룡이 있는가 하면, 교육 중 목숨을 잃은 잠룡이 있다. 또 어떤 잠룡은 무림 세력의 수장이 되기도 했다. 특히 밀천의 수장이 된 무무대야 나천후 잠룡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대야벌에는 빈자리가 많다는 사실도 많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싶다. 비록 대야벌을 떠났지만 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원하면 밀천의 자리를 대야벌에 만들어 줄 용의가 있다. 왜냐, 대야벌은 바로 무림이기 때문이다.”

“ 옳소!”

“ 옳소!”

이곳저곳에서 함성과 함께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담대만승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터져 나오던 박수 소리가 뚝 그쳤다.

“ 이제 지난 삼 년 동안 제군들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겠다.”

일순 소음이 뚝 그치며 정적이 감돌았다.

지난 삼 년간의 평가. 그건 곧 십지십룡과 범천룡을 발표한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 먼저 십지십룡이다. 십지십룡은 제군들보다 먼저 간 삼백한 명의 영령에게 내리기로 하였고, 십지십룡패는 ‘영면의 방’에 안치하기로 하였다.”

담대만승은 잠룡들을 내려다보았다.

실망한 얼굴이 된 잠룡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의 잠룡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 그리고 십지십룡 중 가장 출중한 인재에게 주는 범천룡은 금릉 연씨 세가의 장자이자 잠룡 십 조 조장이었던 연우강에게 내리기로 했다. 그는 일천한 무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잠룡강호행 동안 가장 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단 한번의 패배도 없었고, 잠룡 십 조 조원들의 희생도 없었다. 비록 앵속쟁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그 또한 소문에 불과할 뿐이고, 누구도 그가 앵속을 복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해서 잠룡궁의 평가위원 전부는 사초 연우강에게 범천룡패를 내리기로 결정하였다.”

“ 맙소사!”

이철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연우강이 이런 결과를 노리고 죽음을 가장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범천룡패를 대신 받을 잠룡은 앞으로 나와라!”

하지만 잠룡 십 조 대원들은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범천룡이 된 연우강을 추모하느라 일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 범천룡패를 대신 받을 사람은 나오라고 하였다!”

“ 교랑!”

수여설이 조용히 이철상을 불렀다.

“ 네!”

이철상은 벌떡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이철상이 단상에 올라서자 담대만승은 연단 옆으로 나와서 황금빛 광채가가 번쩍이는 패를 내밀었다.

“ 이 패는 사초 연우강을 비롯하여 그를 따랐던 잠룡 십 조 대원들에게 하사하는 범천룡패다. 앞으로도 대야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벌주님!”

이철상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범천룡패를 받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단상에서 내려왔다.

‘ 받았소, 광랑!’

이철상은 범천룡패를 불끈 틀어쥐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철상이 자리로 돌아가자 담대만승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 우리는 지금 대단히 혼란스런 시국을.......”

바로 그때였다.

간-다! 가~라!

새카만 이리가 사막을 달린다!

우렁찬 외침이 남천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연설을 하던 담대만승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렸다. 아니 내공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부순다! 부숴라!

우리를 막는 적군을 부순다!

남긴다! 남겨라!

흑랑이 나가면 시체만 남는다.

에이! 씨부랄! 에이! 씨부랄!

내공이 가미된 듯 특이한 외침은 너무도 명확하게 들려왔다.

“ 이런 빌어먹을!”

담대만승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놈은 조금 전 범천룡 직위를 내렸던 연우강이었다.

“ 광랑이다!”

“ 광랑이 살아있다!”

잠룡 십 조 대원들은 벌떡 일어나더니 남천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의 선두에 선 사람은 이철상이었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 담대만승으로부터 받은 범천룡패가 꼭 쥐어져 있었다. 그들이 달려가는 와중에도 진군가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달린다! 달려라!

미친 이리가 적진을 향해 달린다.

죽인다! 죽여라!

한 놈도 남김없이 씨를 말려라!

마셔라! 마셔라!

적군의 피로 갈증을 식혀라!

에이 씨부랄! 에이 씨부랄!

죽여! 죽여!

에이! 씨부랄!

죽여! 죽여!

에이! 씨부랄!     <황금백수 14권 끝>

황금 백수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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