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새 사업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당하면 얼이 빠지기 마련이다.
담대만승이 그랬다.
몇 번이고 확인한 사항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담대사웅과 이방산에게 확인을 하였고, 아들인 담대무궁에게도 확인했다. 그랬던 놈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담대만승은 앞에 서 있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암암리에 내공을 운용하여 연우강의 전신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공은 일천하다.
문득 전에 만우량으로부터 들었던, 잠능패혈대법이란 무공이 떠올랐다. 그때 만우량은 잠능패혈대법을 완성하면 혈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고 했다.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것처럼 할 수는 있어도 무공을 약간 익힌 이류 무인처럼 보이게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놈에게서는 내공이 감지되고 있다.
그 말은 결국 잠능패혈대법도 아니라는 말이다.
“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 운이 좋았습니다.”
담대만승의 말에 연우강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 운?”
“ 보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 보의?”
“ 혹시 사망보의라고 들어봤습니까?”
“ 처음 듣는구나.”
“ 고대 전폰데, 죽음으로부터 구해준다고 해서 사망보의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 네가 입고 있던 그 검은 옷을 말하는 거냐?”
“ 그렇습니다. 하짐나 사망보의로도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 부상을 입었단 말이냐?”
“ 보시다시피 이렇습니다.”
연우강은 가슴을 슬쩍 펼쳐 흉터를 보여주었다.
“ 으음!”
담대만승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흉터가 심해서가 아니었다. 연우강의 가슴에 나 있는 흉터는 대범천뇌정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천뢰에 당한 흔적이었다.
“ 아래쪽이 무이 아니고, 내 가솔인 귀노가 없었더라면 그곳에서 죽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연우강이 담대만승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 궁금한 게 있는 얼굴이구나.”
“ 이런 흔적을 남기는 무공을 혹시 알고 있나 해서 말입니다.”
연우강은 흉터를 좀더 넓게 보여주었다.
“ 글쎄, 강호 무림엔 워낙 무공이 많아서 말이다.”
내심 찔끔했지만 담대만승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 비슷한 무공이라도 알 수 없습니까? 전 워낙 무공에 문외한이라서 말입니다.”
“ 알면 복수라도 할 참이냐?”
“ 장강삼협이 절경이라고 해서 귀환하기 전에 구경 차 들렸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는 새끼들 없습니까?”
“ 설사 안다고 해도 무슨 수로 죽인단 말이냐?”
“ 유능한 장수는 직접 나서지 않는 법입니다.”
“ 부하들을 시키겠다는 말이냐?”
“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그놈들이나 잡으러 다녀야지요. 더구나 이것까지 생기지 않았습니까?”
연우강은 범천룡패를 들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 넌 교육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이곳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 말은 곧 대야벌에 애정이 없다는 소리고, 그런 지휘관을 부하들이 잘 따를 걸로 보느냐?”
“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 어떻게 바뀌었단 말이냐?”
“ 돌아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 도, 돌아갈 곳?”
“ 어떤 개자식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놈을 잡으면 닭 모가지 비틀 듯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겁니다. 혹시 제 집이 불탔다는 소식 들었습니까?”
“ 사월림과 만마림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던데 듣지 못했느냐?”
“ 정말입니까?”
“ 동창과 금의위에서 그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더구나.”
“ 저런 개자식들. 가만..... 그들은 전부 멸문했다고 들었는데?”
“ 이번 벌내쟁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곳이 그들이기도 하다.”
“ 아직 살아 있는 놈들도 있겠죠?”
“ 가족은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그놈들을 닦달하면 배후를 밝혀낼 수 있겠군요.”
“ 그것도 유능한 부하를 시킬 거냐?”
“ 물론 그래야죠. 그런 일 시키자고 돈 주고 밥 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나를 인정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벌주님.”
연우강은 깎듯이 고개를 숙였다.
‘ 영악한 놈!’
담대만승은 연우강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놈을 잘라낼 방법이 없다.
연우강을 범천룡에 임명한다는 말은 대야벌 전 무인이 들었고, 동생인 담대천호와 무궐의 궐주 공손정우는 만면에 웃음까지 띠고 있다. 이제 와서 범천룡 임명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놈을 인정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옷을 잘 입고 온 것 같습니다.”
고개를 든 연우강은 제 옷을 쓰다듬으며 히죽 웃었다.
담대만승은 연우강의 옷을 보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최고급 비단으로 지어진 옷. 마치 범천룡패를 받을 걸 예상이라도 한 듯한 행색이었다.
“ 다오!”
담대만승은 연우강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연우강은 가지고 있던 범천룡패를 담대만승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범천룡패를 받아든 담대만승은 무인들로부터 잠룡들까지 차례로 훑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사초 연우강이 이 패를 받아야 할 이유는 이미 설명했다. 죽었다고 여겼던 그가 살아왔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수 범천룡은 사초 연우강이다! 받아라, 연우강!”
담대만승은 다시 범천룡패를 연우강에게 주었다.
“ 감사합니다. 벌주님!”
연우강은 당당하게 말하며 범천룡패를 받았다.
“ 원하는 걸 말해라.”
“ 아무 거라도 상관없습니까?”
“ 물론이다, 연우강!”
“ 우리 잠룡대가 기거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 새로 짓는 건 불가능하다.”
“ 과거 생사림이 있던 자리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 그곳은 보수를 해야 한다.”
“ 야장에 맡기면 보름에서 한 달이면 가능할 겁니다.”
“ 좋다. 그건 허락하겠다.”
“ 그리고 인원이 부족합니다.”
“ 인원을 더 달라는 말이냐?”
“ 천호소는 군사 천이백 명을 거느립니다. 현재 이백 명이니까 천 명 정도만 지원해 주십시오.”
“ 천 명이면 각 문파 당 백여 명 정도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각 문파 수장들은 잠룡대가 현대 상태로 머물기를 바란다.”
“ 내일 전체 회의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안건으로 상정해 주십시오.”
“ 그렇게는 해보겠다만 기대는 하지 마라.”
“ 알겠습니다. 벌주님!”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라!”
담대만승은 단상에서 비켜나 자리로 가 앉았다. 범천룡에게 연설권을 주는 건 퇴교식의 전통이었다.
“ 내공이 일천하여 뒤에까지 들리려나 모르겠소이다. 들리오?”
연우강은 뒤편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 걱정 말고 알아서 하시게. 듣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른편 무인들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 알았송다. 그럼 편하게 하겠소. 오늘 이걸 받았소이다.”
연우강은 손에 든 범천룡패를 들어 보였다.
“ 축하드리오!”
이번엔 왼편 무인들 속에서 축하한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 고맙소이다. 사실 난 이곳 대야벌에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었소. 상단 집안에 뭘 뜯어먹을 게 있는지 잠룡쟁패를 보냈지 뭐겠소. 그래서 마지못해 왔고, 삼 년 과정이 끝나면 이곳을 나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소.”
“ 이젠 나갈 생각이 없단 말이오?”
“ 나가고 싶어도 집이 없지 않소. 그래서 별 수 없이 대야벌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됐소. 그리고 이곳에 벌여놓은 사업도 있고 해서 당분간은 머물러야 하겠소이다.”
“ 혹시 잠룡대 대주가 돼도 야장 일을 계속하겠단 말이오?”
“ 원래 대장 짓을 하려면 이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조양궁에서 나오진 않을 테고 내가 벌어야 하지 않겠소.”
연우강은 엄지와 집게를 둥글게 맞붙여 들어 올렸다.
“ 하하하! 그거 말 되오, 대주. 그럼 직업이 두 가지가 되겠구려.”
“ 그렇소, 난 주업은 똥지게고, 부업은 잠룡대 대주요.”
“ 하하하!”
“ 크큭!”
무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그가 야장 일을 계속하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연우강이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작은 조직이라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운영비 말고도 별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 자, 이제 본론을 말하겠소.”
무인들의 웃음소리가 잦아지자 연우강은 다시 입을 열었다.
“ 방금 천리지청술을 펼치고 있던 분은 들었겠지만 난 방금 벌주께 생사림 건물을 쓰는 걸 허락 받았고, 인원도 늘려달라고 하였소. 아마 내일 총회 때 우리 잠룡대의 인원 충원에 대한 안건이 올라갈 테고 각 궐 및 련 또는 련의 수장들께서는 기꺼이 문도를 내주실 걸로 믿소이다”
“ 인원은 얼마나 채울 참이오?”
“ 난 군에 있을 때 정천호였소. 그래서 많이도 말고 딱 천이백 명만 채울 참이외다. 혹시라도 현재 직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새로운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 분은 우리 잠룡대 문을 두드려 주시오. 두 팔 벌려 환영하겠소이다. 잘 부탁드리오.”
단상 옆으로 나온 연우강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 허!”
공손정우는 어이없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범천룡의 연설을 들어왔다. 하지만 저 자리에서 무인을 뽑겠다고 한 범천룡은 녀석이 처음이었다. 더구나 각 문파 당 백여 명 정도를 달라니.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단상을 내려가는 연우강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퇴교식을 마치겠소.”
곧이어 잠룡궁 궁주 혁세군의 폐회 선언이 있고 무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처소로 향했다. 그런데 무궐 궐주 검천제 공손정우와 군마련 련주 십절무적검 담대천호는 방향이 같았다.
무궐과 군마련 천우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서 있어 그들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군마련 담대천호 처소호 들어갔다.
“ 어떻게 할 참이오?”
시녀가 차를 놓고 나가자 담대천호가 입을 열었다.
“ 먼저 벌주가 어떻게 나올지 그걸 먼저 파악해야 하오.”
“ 벌주는 무인을 내주자고 할 거요. 더불어 벌주파인 야궐, 묵야련, 사자림, 사해림은 벌주의 의견에 찬성할 테고.”
“ 담대무궁 때문이란 말이군요.”
“ 그렇소. 담대무궁은 그동안의 일로 인해 잠룡대 대원들에게 신뢰를 잃었소이다. 자칫 잘못하면 잠룡대에서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오. 녀석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담대무궁 편을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소이다.”
“ 만일 우리가 반대한다면?”
“ 그럼 파견하겠지요.”
“ 전에 막장을 야장에 보냈던 것처럼 파견 명령을 내릴 거란 말인군요.”
“ 그렇소. 공손 궐주. 우리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벌주는 잠룡대에 무인을 보낼 테고, 그들은 장차 담대무궁을 대야벌의 후계자로 만드는 조력자가 될 거요.”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 보내야지요.”
“ 최소한 백여 명은 보내야 하오, 성주.”
“ 대신 정규 무인이 아니라 미친놈들을 보낼 거외다.”
“ 미친놈이라면 어떤 자들을 말하는 거요?”
“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도 있고, 내치고 싶었는데 내 체면 때문에 차마 보내지 못했던 자들이 널렸소이다.”
“ 그동안 눈 밖에 난 자들을 이번 기회를 빌어 정리한다는 말이오?”
공손정우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그런 자들이라면 무궐에도 적지 않다. 비단 죄수들뿐만이 아니라 눈엣가시 같은 자들도 상당수다. 파문을 시키고 싶어도 명분이 없어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 자들.
담대천호는 그런 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 우리도 파견 형식으로 내보내면 될 거요. 대신 파견 기한은 없어야겠지요.”
“ 잠룡대를 개판으로 만들자는 말이군요.”
“ 설사 담대무궁이 대주가 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엉망으로 만들어 줘야지요.”
“ 허허허!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공연히 고민했소이다. 그려. 그나저나 우리가 찬성하면 벌주의 얼굴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오.”
공손정우는 만족스런 얼굴로 웃었다.
그동안 껄끄러웠던 자들도 정리하고, 담대만승의 계획을 망치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 그런데 그것 봤소이까?”
“ 뭘 말입니까?”
“ 연우강 가슴에 나 있던 상처 말이오.”
“ 나도 봤소이다. 천뢰에 당한 흔적 같던데 성주 생각은 어떻소?”
“ 맞소. 그건 우리 가문의 도법인 대범천뇌정도법의 천뢰의 흔적이오.”
“ 도대체.......”
공손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 놈의 무공을 알 수가 없단 말이오?”
“ 그렇소이다. 지금껏 수많은 살수와 무인들이 놈을 없애려고 나갔소. 하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부 죽음을 당했소이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나만의 생각이오?”
“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봤소이다. 하지만 천뢰를 펼치는 순간에 담대진승은 검에 당한 상태였다고 하오.”
“ 마지막 순간까지 내공을 이어주지 못했단 말이오?”
“ 그렇소.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해도 등에 검이 꽂히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소.”
“ 그것도 운이라고 봐야 하는 거요?”
“ 부잣집 업둥이로 들어간 운인데 오죽 하겠소. 아무튼 놈 때문에 우린 편하게 됐으니까 우선은 그걸로 만족합시다.”
“ 그래야겠소이다.”
공손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려고요?”
“ 잠룡대에 보낼 자들도 뽑아야 하지 않겠소.”
“ 그렇구려. 그럼 살펴가시오.”
“ 그럼 내일 회의 때 봅시다. 성주.”
공손정우는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군마련을 나선 공손정우는 무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공손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연우강에게 관심을 갖는 건 젊은 시절 저질렀던 일을 캐고 다니는 자가 연우강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데.... 언젠가는 기회가 나겠지.’
상념을 털어내듯 공손정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날려 무궐로 향했다.
한편.
퇴교식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잠룡들은 아직 연무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식 제자가 되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탓이었다. 물론 각 문파로부터 제안을 받지 않은 잠룡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파로 들어가 말단에서 시작하는 게 옳은지. 잠룡대에 남아 있는 게 옳은 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그때 전방 단상에서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룡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우강에게로 모였다.
“ 잠룡대에 남아 뜻을 펼치고 싶은 사람은 내일 아침까지 생사림으로 와라, 이상이다.”
연우강은 단상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 가자!”
연우강이 휘적휘적 걸어가자 이철상이 소리쳤다.
잠룡 십조 조원들은 일어나 연우강을 따라나섰다.
“ 그들이 무인을 내줄 거라고 보십니까?”
이철상은 연우강을 따르며 물었다.
“ 응!”
“ 어떻게 그리 자신하십니까?”
“ 상황이 그렇잖아.”
“ 상황이 그렇다고요?”
“ 두 번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이따가 들어!”
“ 궁금합니다. 광랑.”
“ 참아!”
연우강은 부지런히 걸었다.
야장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전에 살던 집이 가까워지자 연우강은 코를 벌름거렸다. 안쪽에서 소고기 볶음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거였다.
“ 너희들은 무원 영감님에게 가봐. 인사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하는 게 좋겠어.”
집 앞에 다다르자 연우강은 이철상 일행을 보며 말했다.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잠룡들을 부모님이 계시는 집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 보는 눈이 있을 리가 없겠는데요?”
이철상은 웃으며 말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초옥을 둘러싸고 있었다. 은밀막부의 인자들일 터였다.
“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게 없잖아.”
“ 알겠습니다. 교랑.”
잠룡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원의 거처로 향했다. 연우강은 집으로 향했다. 집도 맣ㄴ이 달라져 있었다. 안쪽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선 담은 삼 장 높이로 높아져 있었다. 그가 대문 앞으로 다가가자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엔 염자생이 서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기운상 일행이 웃으며 맞았다.
“ 엄청나게 달라졌네.”
안쪽을 둘러보던 연우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쪽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마치 숲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인자들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이상하게 보는 자들은 없었고?”
“ 대대적으로 야장 보수공사를 하면서 함께 했습니다. 더구나 큰 일이 많이 일어난 바람에 이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 그렇긴 하네. 아무튼 들어가자고.”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 구조 또한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보수 공사를 하면서 집도 넓힌 듯 방수도 많아지고 못 보던 가구도 놓여 있었다.
“ 어서 오너라.”
연우강이 들어가자 연운상과 연금석 부자가 맞았다.
“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연우강은 활짝 웃었다.
“ 약간의 긴장감도 있고 나쁘지 않았다. 넌 어떠냐?”
“ 저야 나쁠 일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항상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 그래, 아주 건전한 사고방식이구나. 그런데 넌 머리 깎은 여자를 좋아하는 게냐?”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아가가 머리를 바싹 밀어버렸더구나.”
“ 그건 어쩔 수 없이.......”
“ 아무리 취향이 그런 쪽이라고 해도 최소한 남 앞에 나설 수 있게는 해 줘야 한다, 우강아!”
“ 하, 할아버지. 전 아주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 정상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걸 나도 아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에미 기다릴 텐데 주방으로 가 보거라.”
“ 험! 아버지. 저 녀석은 네 아들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 역할을 가로채실 참입니까?”
연금석은 연운상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
“ 아무나 먼저 나서는 놈이 임자지. 소고기 볶음에 술이나 한잔할까.”
연운상은 낄낄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험! 조금 전에 네 할아버지도 말씀하셨지만 머리카락은 중요한 거다. 우강아. 너희 둘이 합의하여 잘랐을 테니까 할 말은 없다만 최소한 가발 정도는 준비해 주거라. 사내란 그래야 한다.”
“ 아버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 예끼, 녀석아. 사내끼린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느냐. 아비는 다 이해한다. 부부 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을 못 하겠느냐. 사실 나도 젊었을 땐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네 어미 성깔이 보통이 아니잖느냐. 그래서 못 해봤는데... 아무튼 네 그쪽은 날 닮은 모양이다.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해.”
연금석은 한쪽 눈을 깜빡하면서 연우강의 어깨를 툭 쳤다.
“ 끄응!”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있어 봐야 도움 될 일이 없을 듯했다.
방을 빠져나온 연우강은 코를 벌름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냄새를 지우기 위해 설치했던 커다란 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작은 솥과 조리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조리대 앞에는 어머니와 수건을 머리에 두른 몽요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샛문 쪽에는 두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식탁이 놓여 있었다.
식탁 앞에는 먼저 나간 할아버지가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 어서 오너라!”
이숙경은 따스한 미소로 연우강을 맞았다.
“ 어서 오세요.”
곧이어 몽요도 혀를 쑥 내밀며 인사를 했다.
“ 불편하지 않으세요?”
연우강은 조리대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 요즘 아주 살맛난다.”
이숙경은 환하게 웃으며 식도를 들어 올렸다.
“ 왜요?”
“ 남편을 위해 머리를 깎는 며느리를 얻는 건 쉽지 않거든.”
“ 어머니까지 왜 그러세요.”
“ 호호호! 식사 준비 다 됐으니까 앉거라.”
[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겁니까?]
연우강은 연우상 자리에 앉으며 몽요에게 전음을 보냈다.
[ 일 때문에 잘랐다고 하면 어떤 일이냐며 구구절절 캐물으실 거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깎게 됐다고 했어요.]
[ 세 분이 전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 틀린 말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 네에?]
[ 제게 했던 말 기억나요?]
[ 끄응!]
[ 호호호! 그건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 귀엣말 그만 나누고 밥 먹어라.”
“ 아! 네”
연우강은 젓가락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 참! 젓가락을 놓지 않았구나.”
이숙경은 식기를 둔 곳으로 오른손을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숟가락과 젓가락이 그녀의 손 안으로 빨려들어 왔다.
“ 맙소사! 그건 뭡니까?”
연우강은 질겁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니가 허공섭물 무공을 펼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도 무공이라는 걸 배웠다.”
이숙경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연우강 앞으로 놓으며 말했다.
“ 무공이 얍! 하면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겁니까?”
“ 배워지던데?”
“ 말도 안 돼요. 어머니. 무공은...... 혹시?”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 네가 제대했을 때 보약이라며 지어준 그게 영약일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아냐?”
“ 그럼 그걸 내공으로 만드신 겁니까?”
‘ 기 공이 도와줘서 금방 익힐 수 있었다.“
“ 아무리 그렇다고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 어머닌 무공을 익히는데 천재에요, 우강.”
듣고 있던 몽요가 거들었다.
“ 정말?”
“ 그렇다니까요. 만일 젊어서 무공을 익히셨다면 강호에 걸출한 여걸이 탄생했을 거예요.”
“ 허 참!”
연우강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어머니가 무공을 익혔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힘든 일을 해도 피곤하지도 않고 훨씬 좋아. 무공이 이런 거였으면 진작 배울걸 그랬어.”
“ 펴, 편하시니다니까 됐네요. 그런데 어느 정돈가요?”
“ 기 공 말로는 일 갑자 가량 된다고 하던데?”
“ 고수 탄생이네요.”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 진작 좀 가르쳐주지 그랬느냐, 녀석아.”
“ 제가 익힌 무공은 어머니가 익힐 수 없는 것들이라서 그렇죠.”
“ 호호호! 해본 소리야, 어서 먹어라.”
“ 알겠습니다.”
연우강은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식사를 마친 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하실로 향했다. 전에 물건을 보관하던 곳에 우진이 식구가 살고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마음이 바빠 걸음까지 빨라졌다. 하지만 결국엔 얼굴을 구기며 나왔다. 우진 녀석 또한 몽요의 머리 이야기만 했던 것이었다.
“ 아무튼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병신 되는 건 한순간이라니까.”
연우강은 투덜거리며 무원의 처소로 들어섰다.
안에는 무원과 이철상 그리고 이자승, 욱일승, 수천월 갈인효와 사마윤 일행이 연우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 창 영감은 어디 갔습니까?”
연우강은 무원을 보며 물었다.
“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더니 그래도 보이지 않으니까 궁금한 모양이지?”
무원은 웃으며 되물었다.
“ 궁금하기는....... 바늘과 실처럼 붙어 있던 사람이 안 보이니까 그런거지.”
연우강은 무원 건너편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 운화와 함께 울고 있을 게다.”
“ 밝히기로 한 겁니까?”
“ 네 녀석이 다 까발리고 다녔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냐?”
“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로 등이나 긁어주며 살라고 밝혔습니다.”
“ 우리에겐 등 긁어줄 마누라가 없단 말이냐?”
“ 그렇죠.”
“ 두 영감도 식구 만나러 간 모양이군요.”
“ 그렇지. 그 녀석은 사십 년이 넘었으니까.”
무원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하였던 말을 녀석으로부터 실감하는 중이다.
창노는 손녀딸을 찾고, 두작군은 아들과 손녀를 찾고, 자신은 친구를 찾고, 연우강을 만난 후 좋은 일만 생긴 것 같았다.
“ 권력이니 뭐니 하는 그런 거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진작 그렇게 살았을 거 아뇨, 그따위가 뭐라고.....”
연우강은 혀를 찼다.
사십 년, 아니 평생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가족마저 버리고 추구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물론 저들 또한 사십 년 세월을 잃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결코 제대로 산 삶이라고 할 수가 없다.
“ 허허허! 그땐 누구도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놈아. 그리고 우린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 너희들도 명심해, 인마.”
“ 왜 우릴 걸고 넘어지는 거요?”
군무옥이 툭 쏘아붙였다.
“ 쓸데없는 곳에 인생 허비하지 말란 말이야. 장가도 가고 자식도 낳고, 그렇게 사는 게 최고라고.”
“ 광랑은 저보다 나이가 어리오. 간혹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먹는 것 같소.”
“ 내 경험이 아니라 내 부모님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자식아.”
“ 그럼 여자나 소개시켜 주든지.”
“ 내가 아는 여자라고 해봐야 기녀들밖에 없는데? 나와 잔 기녀라도 괜찮으면 소개시켜 주마.”
퍼억!
“ 에라, 이 나쁜 자식아.”
듣고 있던 이자승이 연우강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 왜 그러십니까?”
연우강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소리쳤다.
“ 우리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어?”
“ 무슨 말요?”
“ 기방에 갔다는 말을 하고 싶냐는 말이다. 이놈아.”
“ 영감님도 수시로, 거의 매일 기루에 들락거렸으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피가 펄펄 끓는 청년은 주기적으로 발산을.....”
“ 됐어, 자식아. 풀어놔 봐라.”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자승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사실 그를 비롯한 방안에 있는 이들이 연우강을 기다렸던 이유는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녀석이 범천룡이 되겠다고 한 말은 악양에서 술에 취한 척하면서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녀석은 자신이 말한 대로 정말로 범천룡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 담대무궁은 장강에서 집행사자를 공격할 때 책임자였기 때문에 절대 범천룡이 될 수가 없습니다.”
“ 허며?”
“ 그럼 윤허나 이 소저, 사유성, 이라파, 나웅이 남는데 그들에게 주는 건 모험에 가깝습니다.”
“ 모험이라고?”
“ 잠룡대를 장악해 버릴 소지가 다분하단 말입니다.”
“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 너라고?”
“ 제가 아니고 죽은 녀석들이지요. 전 죽은 녀석들의 대표가 됐을 뿐이고요.”
“ 그러니까 담대만승이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일부러 죽은 척 했다는 거냐?”
“ 원래 사냥의 기본은 길목을 지키는 겁니다.”
“ .....!”
이자승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문득 손녀딸인 이지약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집행사자를 공격하는 위험한 짓을 왜 했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연우강이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하였다.
녀석은 담대만승이 수를 잃어서 범천룡이 된 게 아니라 담대만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상대방의 수를 읽어내는 것을 넘어 상대방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든다.
그런 자가 가자 무서운 법이다. 바로 앞에 있는 연우강처럼.
게다가 녀석은 담대만승을 비롯한 대야벌 수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동안 잠룡 십 조가 거둔 혁혁한 전과는 대야벌 무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잠룡 십 조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평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자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담대만승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 있는 연우강에게는 결코 범천룡패를 줄 수가 없다. 연우강에게 범천룡패를 주지 않기 위해 앵속쟁이는 지휘관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지 않았던가.
하지만 연우강이 죽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앵속쟁이니 뭐니 하는 말은 잊혀지고 연우강이라는 인간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인 담대무궁에게 범천룡패를 주지 못할 바엔 죽은 자에게 주는 게 최선이다.
연우강은 그걸 노리고 죽은 척 했던 것이다.
진정 소름끼치는 머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녀석은 범천룡패를 쥐고는 잠룡대에서 무인을 받겠다고 하였다. 아니 담대만승에게 무인을 달라고 정식으로 청원을 넣었다고 하였다. 그것도 천 명이나.
“ 그가 무인을 내줄 거라고 보느냐?”
“ 당연히 내줄 겁니다.”
“ 당연히?”
“ 어쩌면 천 명을 넘게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 설명을 해보거라.”
“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하였습니다. 영감님.”
“ 그러니까 네 말은 담대무궁 때문에 무인을 보내줄 거란 말이냐?”
“ 조직이라는 게 만들어지면 파벌이 생겨나고, 강한 힘을 가진 파벌이 그 조직을 장악하게 됩니다. 담대무궁은 잠룡들에게 신뢰를 잃은 상태니까 지금 상태로는 파벌을 만들 수 없습니다."
" 담대무궁을 지원할 지원군을 보낸다는 말이구나. 하지만 벌주를 지자하는 자들은 야궐을 비롯한 네 문파가 전부다. 더불어 총회 안건으로 상정된 사항을 최소한 오 할 이상의 문파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 반대할 문파가 있을 거란 말입니까?"
" 공손정우와 담대천호는 반대할 거다."
이번엔 무원이 말했다.
" 그들은 반대할 수 없습니다. 영감님."
"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 대야벌에는 파견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공손정우나 담대천호도 자신들이 반대를 하면, 담대만승은 파견 형식으로 무인을 보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 결국 그들도 무인을 보낼 수밖에 없단 말이냐?"
" 대신 잠룡대를 개판으로 만들 자들을 골라서 보내겠지요."
" 잠룡대를 개판으로 만들 자라면?"
"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나, 죄수, 또는 파문시키고 싶은데 명분이 없어 자르지 못한 자들 위주로 보낼 겁니다."
" 그것까지 예견했던 거냐?"
무원은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만일 공손정우를 비롯한 담대천호 일파가 그런 자들 위주로 보낸다면 잠룡대가 담대무궁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 그들은 각 문파에서도 포기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데리고 어떻게 잠룡대를 이끌어간다는 말이냐?"
" 저 녀석들이 있잖습니까?"
연우강은 군무옥 일행을 턱으로 가리켰다.
" 그런 놈들을 다루는 건 우리가 전문이니까 걱정 붙들어 매쇼. 지들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흑랑기 대원들에 비하면 병아리 새끼들에 불과하니까. 딱 반 년 만에 아주 고분고분한 병사로 만들어 놓겠소."
군무옥은 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 무슨 수로 그들을 다룬단 말이냐?"
" 내 무기에 육참낭아곤이라고 이름지어 준 놈들이 바로 흑랑기 대원들이었소. 고기 다지듯 잘근잘근 다져주면 아무리 대가 센 놈이라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소. 영감.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말이오, 죽는 게 아니라 맞는 거요. 뒈지기 직전까지 맞는 거. 그러다 죽는 거란 말이오."
" 팬단 말이냐?"
무원은 황당한 얼굴로 군무옥 일행을 보았다.
" 뒈지기 직전까지 패고 또 패면 말을 듣게 돼 있소."
" 그래도 듣지 않으면?"
" 죽었을 텐데 파묻어야지, 별수 있겠소."
" 단순해서 좋구나."
" 아무튼 그 일은 우리가 전문이니까 맡겨두시오."
군무옥은 활짝 웃었다.
" 접니다. 장주님."
바로 그때 밖에서 향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인가?"
" 막 림주가 왔습니다."
" 왔으면 들어올 일이지 뭘 묻고 그러나."
" 그게 좀......"
" 잘린 줄 알고 있으니까 들어와!"
연우강은 밖을 향해 낮게 소리쳤다.
" 무슨 소리냐?"
무원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연우강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밖을 향해 소리쳤다.
" 니 자리 만들어놨으니까 들어오라고, 인마."
" 무슨 자리를 만들어 놨다는 거냐"
문이 벌컥 열리며 막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집을 나온 사람처럼 커다란 봇짐 하나를 둘러매고 있었다.
"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거든."
" 새로운 사업?"
" 이름만 정해 두었어."
" 이름?"
" 흑벌이야."
연우강은 막장을 보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