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46화 (146/232)

제 9장 막장으로 가는 길

" 놈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공손정우는 적환규를 보며 물었다.

" 이 지점에 있습니다."

적환규는 지도상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나소산맥 남부의 정강산 근처였다.

잠시 그곳을 내려다보던 적환규는 다시 물었다.

" 놈들이 나소산맥으로 간 이유를 알아냈는가?"

" 훈련이라고 합니다."

" 훈련?"

" 전에 잠룡 십 조를 데리고 잠룡강호행을 나설 때도 놐은 대부분 산으로 다녔습니다."

" 이번엔 잠룡대 대원들을 훈련시킨단 말인가?"

" 그런 것 같습니다."

" 훈련이라....."

적환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연우강이 어떤 훈련을 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대야벌로 돌아왔을 때 잠룡 십 조 대원들은 연우강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방법으로 잠룡대 대원들을 장악하겠다는 건가.'

그는 본래의 표정을 찾으며 적환규를 보았다.

" 우리 대원들은 어디 있는가?"

" 동쪽, 서쪽, 남쪽에서 반나절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습니다."

" 북쪽만 열어두었단 말이군."

" 그렇습니다."

" 대야벌에 있는 자들은 어떤 상황인지 확인했는가?"

가장 주시해야 할 자들은 이곳에 있는 잠룡대 대원들이 아니라 대야벌에 남아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이곳에 있는 잠룡대를 공격하고 있을 때 그들이 뒤통수를 친다면 오히려 아군이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 여전히 달리기를 하고 통나무를 드는 기초체력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대야벌을 떠난다거나 하는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화급으로 연락하라고 해 놓았습니다."

" 여전히 내공을 금제한 상태라고 하던가?"

" 그렇습니다. 형님."

" 그렇군. 우리가 공격할 장소는 어딘가?"

공손정우는 다시 지도로 시선을 내리며 물었다.

" 일단 나소산맥 중부에 있는 무공산의 천등평에서 첫 공격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적환규는 나소산맥 중간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 서쪽은 누가 맡았는가?"

" 서쪽은 제가 맡고, 동쪽은 육 아우, 남쪽은 설 아우가 맡고 있습니다."

" 그럼 동쪽과 서쪽은 좀 더 밀고 나가서 호리병 진형을 구축하고 놈들을 몰도록 하게."

" 그렇게 지시를 내려놓겠습니다."

" 난 천등평으로 먼저 가 있겠네."

" 그럼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형님."

적환규는 곧바로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적환규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공손정우는 시선을 돌려 전면을 보았다.

" 이번엔 반드시 죽인다, 연우강."

짓 씹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가자!"

휙!

휙! 휙휙! 휙휙휙!

공손정우는 호위 무인들과 함께 몸을 날렸다.

나소산맥 서쪽 산기슭을 타고 수백 명이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바닥을 차고 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와 나무를 뛰어넘는 자들이 있고,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풀잎을 밟고 가는 자들도 있었다.

녹색 무복에 방갓을 눌러쓰고 있는 이들은 구중련의 중천추살군이었다.

무정사인객 호태웅이 군주로 있는 중천추살군은 오백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구중련에서 가장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고, 적환규에 대한 충성심 또한 가장 강하다. 적환규가 십여 년째 련주를 역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중천추살군이었다.

그 중천추살군 선두에 구중련 련주 철혈매화검 적환규와 중천추살군 군주 무정사인객 호태웅이 달려가고 있었다.

" 접니다. 련주님!"

오른편에서 나직한 외침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구중련 무인 중 경공만 극한으로 익힌 자들로 구성된 비비무영군 군주로, 한 호흡으로 천리를 달린다고 하여 천리비영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는 임추였다. 이번 작전에서 각 세력간의 연락을 맡고 있는 자들이었다.

" 보고하게!"

적환규는 나아가는 속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 놈들과 중천추살군 사이의 거리는 반나절입니다."

" 녹사련은 어떤가?"

" 녹사련의 녹림파풍군은 우리보다 한 시진 정도 쳐져 있습니다."

" 호리병 진형을 구축하기로 했네."

" 속도를 더 내야겠군요."

" 그렇네. 임 군주."

"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낭인림 상황은 어떤가?"

" 낭인림의 혈랑구유군 역시 반나절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백의정검군은 출발했는가?"

" 그렇습니다. 천등평까지 곧바로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 일상적인 보고는 한 시진 간격으로 하고, 놈들이 방향을 바꾼다거나 하는 특별한 일이 있으면 곧바로 보고해 주게."

" 알겠습니다. 련주님."

임추는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멀어졌다.

" 반나절을 더 따라잡아야 한다. 서둘러라!"

곧이어 무정사인객 호태웅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중천추살군 대원들이 나아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 제 1군장, 2군장, 3군장은 서쪽을 정찰하라!"

" 존명!"

" 제4군장, 5군장, 6군장은 동쪽을 정찰하라!"

" 존명!"

" 제 7군장, 8군장, 9군장은 후미를 정찰한다!"

" 존명!"

우렁찬 외침과 함께 아홉 명의 군장들이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 지금부터 신나게 달린다. 먹고, 자고, 싸는 것도 전부 달리면서 해결한다."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잠룡대 대원들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전방으로 질주해갔다.

" 달리면서 먹는 건 괜찮은데 나머진 어떻게 하죠?"

남궁운화가 몸을 날리면서 물었다.

" 우린 항상 이 속도를 유지할 겁니다. 남궁 가주."

" 급한 사람은 먼저 가서 해결을 하든지 아니면 해결을 하고 쫓아오란 말인가요?"

" 뒤엔 적이 쫓아오고 있으니까 해결을 하고 쫓아오는 건 불가능할 걸요?"

" 그럼 먼저 가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 아니면 가면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가면서 해결하라고요?"

"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 그런 경험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승리하고 싶으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해야겠죠?"

남궁운화는 배시시 웃으며 연우강을 보았다.

" 맞습니다. 남궁 가주. 이번 전쟁은 망가지는 쪽이 이깁니다."

[ 정말로 달려가면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거예요?]

이번에는 수여설이 전음으로 물었다.

[ 이번엔 그래야 합니다.]

[ 그건 고문이나 다름없는데.]

[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쫓고 있는 녀석들도 그럴 겁니다.]

" 잡랑!"

연우강은 선두에서 길을 잡고 있는 장사덕을 불렀다.

" 부르셨습니까?"

장사덕은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며 연우강을 기다렸다.

" 나소산맥 북쪽 끝까지는 얼마나 걸려?"

" 보름 거립니다."

" 거리를 세 배로 늘려."

" 세 배로 늘이란 말입니까?"

" 가급적이면 눈치 채지 않도록 해야 해."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장사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몸을 날려갔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 이번 훈련의 명칭은 '막장으로 가는 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버티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휴식은 없다. 모든 건 달리면서 해결할 것이다."

그의 외침은 어둠을 뚫고 멀리 퍼져나갔다.

" 헐!"

잠룡대 대원들이 달려가는 곳으로부터 동쪽으로 백여 장 떨어진 장소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잠룡대의 이동속도에 맞춰 몸을 날리고 있는 이자는 구중련의 비비무영군 대원 중 한 명이었다.

잠룡대 대원들 주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비비무영군 대원은 전부 삼백 명이다. 그들은 잠룡대에서 흘러나온 말이나 이동 방향을 알아내, 서쪽에 있는 자들은 구중련으로 동쪽에 있는 자들은 녹사련으로, 남쪽에 있는 자들은 낭인림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 미친놈들. 이 산중에서 쉬지 않고 달린다고? 그대로 된다면 내가 성을 간다."

사내는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몸을 날렸다.

사내가 동쪽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서쪽과 남쪽으로 몸을 날리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서쪽으로 몸을 날린 사내와 마찬가지로 방금 들은 정보를 전달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녹림파풍군이 몸을 날리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몸을 날릴 때마다 피풍의가 펄럭거렸다. 마치 야조가 날아가는 듯했다.

그들을 빠르게 지나친 사내는 선두로 갔다.

" 접니다. 련주님."

사내는 녹림마제 육사이를 향해 소리쳤다.

" 말하게."

육사이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조금 전 들었던 말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 정말 그랬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련주님. 훈련명이 '막장으로 가는 길'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네."

" 그럼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다시 오겠습니다."

사내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내가 떠나자 육사이는 옆에 있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을 보았다. 그 중년인은 녹림파풍군의 군주 철무정 공일도였다.

“ 제 놈이 아직 정천호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공일도 역시 소식을 전해주었던 비비무영군 대원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입매가 슬쩍 비틀렸다.

그런 훈련은 경공을 펼치지 못하는 일반 군인이나 하는 거라고 공일도는 생각했다. 순식간에 수백 장을 주파하고, 수십 장 높이의 나무를 오르는 무인들에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런 훈련은 무의미하다. 무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부류이지 않는가.

“ 내 생각과 같군. 아무튼 우린 재미있는 놈을 사냥하고 있는 것 같네.”

육사이는 덩달아 웃엇다.

두 사람이, 같은 조건이면 설사 한계를 초월한 자들이라고 해도 나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잠룡대 대원들은 무려 하루 동안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달렸다. 당연 그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녹림파풍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대원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련주님.”

후미를 둘러보고 온 공일도가 당혹한 얼굴로 보고했다. 녹림파풍군 대원들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내공의 고갈이 아니라 생리적인 문제였다. 워낙 빠르게 질주하고 있고, 방향이 자주 바뀌는 터라 볼일을 보려고 잠시 지체하게 되면 바로 낙오하고 만다.

대형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서는 참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는 것도 한계에 달한 것이었다.

녹림파풍군 대원들뿐만 아니라 공일도 그도 문제였다.

대변은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소변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쉬지 않고 발을 놀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 으음!”

육사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역시 다른 대원들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 반각의 시간을 주겠네. 그 안에 무조건 전부 해결하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련주님.”

공일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후미를 향해 소리쳤다.

“ 반각이다. 반각 안에 전부 해결하라!”

공일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녹림파풍군 대원들이 체면도 잊고 요대를 풀어 바지를 내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숨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반각이라고 하였지만 하루 동안 참았던 볼일이 그 안에 끝날 리가 없었다. 소변은 시작에 불과했고, 대변까지 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그곳에서 일 각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쫓기는 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쫓는 자의 입장에서 일 각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녹림파풍군 대원들은 옷을 추스르자 마자 지체했던 일 각의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건 녹림파풍군뿐만이 아니었다. 녹림파풍군을 그렇게 만든 잠룡대 대원들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 총대주님,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장사덕이 바로 옆에 있는 연우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잠룡들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면서 연우강이 선두로 나온 것이었다.

[ 싸는 게 힘들어?]

[ 우린 짐승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총대주님. 사람은 달리면서 싼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대원들 중에는 여자가 두 명이나 있습니다.]

“ 그냥 싸!”

연우강은 매몰차게 말하며 몸을 날렸다.

“ 그건......”

“ 세상에!”

“ 맙소사!”

그때 뒤에서 신음처럼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사덕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대원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 맙소사!”

그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을 날려가고 있는 연우강의 뒤편으로 물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행중 가장 먼저 달려가면서 볼일을 본 사람은 연우강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연우강은 말없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이 먼저 시작하자 뒤따르던 대원들도 하나둘 달리면서 볼일을 봤다.

“ 이건.....”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가던 수여설은 곤혹스런 얼굴로 남궁운화를 보았다.

“ 앞으로 나갈 수도 없어요. 언니.”

남궁운화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부터 수여설이 일행보다 앞서가서 급한 불을 끄자고 했던 것이다.

“ 왜요?”

“ 연 공자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요. 만일 우리가 미리 앞으로 가서 볼일을 보게 되면 그의 의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아요.”

“ 그가 뭘 원한다는 거죠?”

“ ‘막장으로 가는 길’ 이라고 했잖아요.”

“ 달리면서 볼일을 보면 막장이 된다는 뜻인가요?”

[ 그래서 시험해 볼 참이에요. 언니.]

가면서 볼일을 보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전음을 이용했다. 남궁운화는 달리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동안 조이고 있던 근육을 풀어버렸다.

“ 맙소사!”

수여설은 울고 싶었다.

아니 쉬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고, 앞에 대원들이 없다면 울고 말았을 것이다.

[ 나쁘지 않아요, 언니.]

[ 정말?]

[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에요.]

‘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남궁운화가 웃는 얼굴에 힘을 얻은 수여설 역시 조이고 있던 엉덩이 근육을 풀었다.

뜨뜻한 느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보는 사람이라고는 남궁운화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여설의 얼굴은 불쾌감과 수치심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계속 수치심에 휩싸여 있기에는 배설이 주는 만족감이 너무 컸다. 몸을 날려가는 수여설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맺혔ㄷ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잠룡대 대원들은 소변이 마려우면 거리낌 없이 해결했다. 두 번째 난관이 닥쳐온 건 달리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소변에 대한 걱정을 덜자 이번엔 큰일이 문제였다.

가급적이면 큰일을 막아보려고 육포를 조금씩 섭취했지만 인간인 이상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도움을 청하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본 건 연우강의 손에서 팔랑거리는 천이었다. 그것은 엉덩이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낸 천이었다. 누런 색을 띠고 있던 그것은 구겨진 채 연우강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

“ 오른손으로 육포를 먹는 사람은 왼손만 사용하고, 왼손으로 육포를 먹은 사람은 오른손만 사용해. 그래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

‘ 젠장!’

‘ 빌어먹을!’

절로 욕설이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욕을 입 밖으로 뱉어내는 자는 없었다. 가장 먼저 잠룡 십 조 소속이었던 대원들이 속옷과 바지를 찢어 주머니에 넣었고, 다른 대원들이 그들을 따라 했다. 그러면서도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장포를 걸쳤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죽여버릴 거야.”

수여설은 잘라낸 천을 주머니 안에 넣으며 씩씩 댔다.

연우강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이런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에 대한 분노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달리면서 먹고, 달리면서 소변을 보고, 달리면서 대변을 본 잠룡대 대원들의 몸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여전히 너무 멀리 있었다.

다시 하루 정도를 달려가자 이번에는 수마가 일행을 덮쳤다.

“ 이 인 일조로 조를 짜라. 그런 다음 덜 졸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어라.”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잠룡대 대원들은 두 명씩 조를 짰다. 그런 다음 한 사람씩 업었다.

“ 업힌 사람은 무조건 자라. 정확하게 두 시진 후에 교대한다.”

동료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그걸로 얼굴을 찌푸린 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두 시진이 지나면 자신도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서 몸을 날렸다.

수면이 최고의 보약이란 말은 맞았다.

두 시진에 불과했지만 대원들은 조금씩 힘을 되찾았고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그들을 쫓는 자들의 상황은 처참했다.

동편에서 잠룡대 대원들을 쫓는 구중련 무인들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대소변을 보는 것까지는 허락됐지만 잠을 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주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멈출 수가 없었다.

“ 너희들은 구중련 최정예인 중천추살군이다! 저런 햇병이리들이 잠을 자지 않고 달려가는데 너희들이 멈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알겠습니다. 군주님.”

중천추살군 대원들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누렇게 뜬 얼굴과 흐릿한 눈동자는 휴식 명령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는 휴식 명령은 결코 들려오지 않았다.

적환규나 호태웅도 부하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한 문파가 아니라 네 문파가 동원됐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더구나 무궐의 공손정우와 백의 정검군이 천등평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지금 진형을 유지한 채로 천등평으로 가야 했다.

“ 이러다가 놈들을 잡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쓰러집니다. 련주님.”

호태웅이 적환규를 보며 말했다.

“ 놈들은 정상일 거라고 보는가?”

“ 그건 아닐 겁니다.”

“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네. 호 군주. 그리고 놈들은 죽음의 구렁텅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안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된단 말이네. 그런데 우리가 지쳐서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을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네.”

“ 알겠습니다. 련주님. 좀더 독려하도록 하겠습니다.”

호태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천추살군 대원들 사이로 들어갔다.

“ 방금 연락이 왔다. 놈들은 우리보다 더 지쳤고,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하였다.”

사실 비비무영군 또한 간간이 소식이 올 뿐이다.

경공만을 극한으로 익힌 자들이라 아직은 견디지만 언제 소식이 끊어질지 모른다.

“ 힘을 내라!”

하지만 부하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빌어먹을!’

호태웅은 내심 욕설을 뱉어냈다.

차라리 비비무영군이 잠룡대의 흔적을 놓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게 되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책임은 중추추살군이 아니라 비비무영군이 지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이 미친 짓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제발 부탁이다. 이제 연락을 그만해라, 자식들아.’

호태웅은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비비무영군 대원들은 호태웅이 생각하는 것보다 끈질겼다. 아니 더 끈질긴 게 아니라 지독했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을 쑥 들어가고 얼굴까지 누렇게 떴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잠룡대에 대한 소식을 가져왔다.

그렇게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

급기야 중천추살군 대원들 중 낙오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잠은 차치하고라도 내공이 바닥나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 도저히 불가능해. 놈들을 만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죽어.’

결국 호태웅은 이 미친 짓을 끝내기로 결심을 굳혔다.

“ 련주님!”

그는 굳은 얼굴로 적환규를 불렀다.

“ 왜 그러는가?”

적환규는 호태웅을 돌아보았다.

“ 더 이상은......”

“ 접니다. 련주님.”

그때 비비무영군 군주 천리비영 임추가 몸을 날려왔다. 그의 얼굴 또한 다른 대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며칠 만에 얼굴 살이 홀쭉 빠져 광대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 놈들은 어떤 상태가?”

“ 드디어 멈췄습니다. 련주님.”

“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 호 군주.”

“ 알겠습니다. 련주님.”

호태웅은 이 미친 짓을 끝내자고 하려던 말을 꿀꺽 삼키고 몸을 돌렸다.

“ 지금부터 휴식을 취한다. 볼일을 보고 간단하게 운기행공을 하라!”

“ 무슨 소린가?”

운기행공을 하라는 말에 적환규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운기행공을 하게 되면 최소한 반 시진 이상은 멈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 대원들은 련주님과는 다릅니다. 운기행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은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호태웅도 양보할 수 없었다.

잠을 자지는 못해도 운기행공은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대주천까지는 할 시간이 없네. 호 군주. 피로를 회복할 정도만 허락하겠네.”

“ 감사합니다. 련주님.”

호태웅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나아가던 몸을 멈추기 위해 내공을  “ 비비무영군은 어떤가?”

적환규는 임추를 돌아보며 물었다.

“ 아직 견딜 만합니다.”

임추는 허세를 부렸다.

사실 비비무영군 대원들도 거의 초주검 상태다.

하지만 임추는 그렇게 보고할 수가 없었다. 비비무영군은 경공에 집중하느라 무공을 익힐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조직보다 무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무공이 약한 무인은 무시를 당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곤 하는데, 오직 달려가기만 하는 이런 상황에서 중천추살군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 일상적인 보고를 반 시진 간격으로 해주게.”

“ 시간을 단축한다는 말입니까?”

임추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 힘들겠는가?”

“ 아, 아닙니다. 해보겠습니다. 련주님.”

“ 놈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주게.”

“ 알겠습니다. 련주님. 그럼.”

“ 접니다. 련주님.”

그때 비비무영군 대원 한 명이 급하게 몸을 날려왔다.

“ 출발했느냐?”

임추는 대원을 보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 가자!”

임추는 곧바로 부하와 함께 몸을 날려갔다.

“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출발한다!”

적환규의 명령이 떨어지자 운기행공을 하고 있던 중천추살군 대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간단하게나마 운기행공을 해서 그런지 무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 출발한다!”

곧이어 호태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중천추살군 대원들은 일제히 몸을 날렸다.

“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호태웅은 힘차게 몸을 날려 가는 대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원들이 운기행공을 할 때 인원을 파악했는데 삼십여 명 정도가 낙오하여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 같은 조건이니까.’

호태웅은 불안감을 떨쳐내듯 고개를 흔들며 몸을 날렸다. 중천추살군이 두 번째 운기행공을 한 것은 그로부터 엿새 후였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보고를 하려는 순간 잠룡대 대 대원들은 쉰다는 전갈이 온 것이었다.

그날은 련주인 적환규도 버티기 힘들었던지 운기행공을 했다. 하지만 잠은 자지 않았다.

' 입장이 바뀌었군.'

호태웅은 운기행공을 하고 있는 부하들을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잠룡대를 쫓고 있는 쪽은 분명 자신들이다. 그런데 잠룡대가 쉬면 함께 쉬고, 잠룡대가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고 있다. 쫓기는 자들이 주도권을 쥔 특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얼마 남지 않았다. 놈들!"

호태웅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중천추살군이 운기행공을 하고 있는 그 시각.

그들로부터 동쪽으로 오백여 장 떨어진 곳에 있는 잠룡대 대원들은 소주천을 마치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 마랑!"

연우강은 마장웅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총대주님!"

" 몸은 어때?"

" 견딜 만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 전투를 치른다는 건 무립니다."

" 1. 2. 3 군장은 내 뒤로 서."

" 무슨!"

" 시키는 대로 해."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마장웅과 북리태우 그리고 이라파 세 사람이 연우강 뒤로 섰다.

" 잡랑!"

" 하명하십시오. 총대주님."

" 지금부터는 가급적이면 나무가 적은 쪽으로 가. 두 시진만 그렇게 가면 돼."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 출발해!"

" 출발한다!"

장사덕의 외침이 떨어지고 잠룡대 대원들은 일제히 몸을 날렸다.

" 대주님... 어?"

연우강을 부르던 마장웅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몸이 둥실 떠오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북리태우와 이라파 또한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너희 셋은 지금부터 정식 운기행공을 해라."

" 정식 운기행공이라고요?"

" 날 믿어라. 그리고 빨리 할수록 날 편하게 해주는 거라는 것도 명심해!"

연우강은 잠룡대 대원들을 따라 몸을 날리며 말했다.

" 아, 알겠습니다."

놀랐던 것도 잠시. 마장웅 일행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허공을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작은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은 곧 눈을 감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 세상에."

수여설은 경이로운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설마 그가 마라천력을 이용하여 대원들에게 운기행공을 시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견딜 수 있겠어요?"

수여설은 걱정스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연우강의 체력도 급격하게 저하돼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마라천력이 제대로 끌어올려질 수 있을는지 걱정스러웠다.

" 최대 백 명까지는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날렸다.

그렇게 두 시진이 흘렀고 마장웅 일행은 무사히 운기행공을 마쳤다.

" 너희 셋은 지금부터 나소산맥 북쪽 끝으로 가라. 그곳에 가면 총군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 정말 그들이....."

마장웅은 놀란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새롭게 들어온 잠룡대 대원들은 아직도 훈련을 받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소산맥 북쪽에 대기하고 있다니.

" 적당한 장소를 골라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하면 된다."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마장웅은 고개를 숙이고는 북리태우와 이라파와 함께 북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 그들도 나왔어요?"

수여설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우리가 이틀 전에 대야벌을 나왔습니다."

" 그럼 공손정우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 아닙니다. 대야벌에서는 여전히 잠룡대 대원 천 명이 기초체력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죠?"

" 야장에서 인원을 동원했습니다."

" 야, 야장 인원이라고요?"

수여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통나무를 들어올리고, 뜀박질을 하고, 기마 자세를 취하는 건 무공을 익힌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 그, 그러니까 잠룡대 대원들을 은밀하게 빼돌리기 위해서 처음부터 체력 훈련만 시켰다는 거예요?"

" 그건 아닙니다."

" 그럼?"

" 지금 대원들을 보십시오.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최악의 순간이 닥치면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는 건 체력입니다. 강한 체력을 가진 자는 그만큼 살아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체 생활을 하게 되면 단결력도 높아지게 됩니다."

" 하지만 잠룡대 대원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오래가지 않을 텐데요?"

" 오랫동안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 네?"

" 놈들을 없애는 게 목적이잖아요."

" 그 목적 달성만 하면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말?"

" 그렇죠."

" 만일 공손정우나 적환규가 추격을 포기하면 그때 어떻게 할 거죠?"

문득 든 생각이었다.

만일 쫓아오던 자들이 중도에 포기를 해버리면 이번 작전은 물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그때는 어떻게 할 건지.

" 원래 사람이란 완전하게 멀어져버리면 포기를 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 하면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존잽니다."

" 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 한다는 걸 어떻게 판단하죠?"

" 휴식이죠."

" 휴식이라고요?"

" 우린 십이 일 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고, 적은 육 일 전에 운기행공을 하고 이번까지 두 번 운기행공을 했습니다. 물론 그 동안 잠을 잔 적은 없고요."

" 그러면 다음에 또 쉬겠네요."

" 오 일 만에 휴식을 취할 겁니다."

" 굳이 오 일로 한 건 의미가 있나요?"

" 처음엔 십이 일 만에 쉬었던 자들이 오 일 만에 휴식을 취하게 되면 적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고 하겠군요."

" 그렇습니다. 다음엔 사 일 만에 휴식을 취하고 그 다음엔 삼 일, 이틀, 하루로 점차 줄일 겁니다."

" 그리고 대원들에게는 정식 운기행공을 할 수 있게 해 주고요?"

조금 전 세 군장이 운기행공을 하던 광경을 떠올리며 물었다.

" 물론입니다."

" 휴식시간을 하루까지 당기면 그 후에는?"

" 바로 전투가 시작되죠."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 아무튼!"

수여설은 연우강을 보며 천천히 입맛을 다셨다. 더불어 그녀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어렸다.

" 지금 수 소저와 제 엉덩이는 냄새 풀풀 나는 그걸로 떡져 있습니다."

" 누가 뭐래요? 당신이 너무 멋지다는 건데."

수여설은 배시시 웃었다.

" 그럼 적은 이십칠 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는 건간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운화가 끼어들었다.

" 보통 사람은 죽겠죠?"

" 제가 알기로는 십일 일이에요."

" 그럼 무인임을 감안하면?"

" 연 공자가 운기행공할 시간을 주고 있으니까 이십칠 일이라고 해도 죽진 않을 거예요."

" 하지만 거의 죽기 직전이겠지요?"

" 물론 그럴 거예요."

남궁운화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죠?"

연우강은 남궁운화 엉덩이 쪽을 더듬어 보았다.

" 어딜 보는 거예요?"

남궁운화는 연우강의 등에 있는 사망궤 위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 혹시......"

[ 입 다물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예요.]

남궁운화는 두 손으로 연우강의 목을 잡으며 전음을 보냈다.

[ 거기 괜찮지 않아요?]

[ 뭐가 괜찮다는 거죠?]

[ 화장실로 사용하기엔 아주 좋은 장소라는 말입니다.]

[ 흥! 연공자가 귀머거리라면 아주 좋은 장소겠죠.]

남궁운화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내심 연우강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앉아서 볼일을 본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지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망궤 위쪽은 최고의 화장실임에는 분명했다. 금방 말한 것처럼 그의 귀에 들리지만 않는다면.

" 헐!"

그런 그들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는 자가 있었다. 바로 잠룡대 대원들로부터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따르고 있는 무불 백강이었다.

" 천육백 년 만에 처음 보는 물건이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빠르게 멀어지는 연우강을 보았다. 녀석이 펼치는 작전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무공을 완전하게 무력화시켜 버린다.

심검의 경지에 올라 있는 자신마저도 잠룡대 대원들을 쫓아가기 힘이 드는데 잠룡대를 쫓고 있는 자들은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거리가 멀고 속삭이는 경우가 많아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잠룡대 대원들은 비교적 멀쩡한 듯 보인다.

" 이러다 나도 가면서 싸야 할지도 모르겠네."

백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백강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체질이라 큰일을 볼 일도 별로 없었고, 소변은 내공으로 태워버린 탓이었다.

더불어 연우강 일행이 휴식을 취하는 바람에 그는 비교적 편하게 따를 수 있었다.

연우강이 말한 것처럼 두 번째 휴식은 오 일 후에 있었고, 일행은 어느새 천등평을 앞두고 있었다.

" 천등평은 우회해서 간다!"

멀리 벌판이 보이자 연우강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라고 명령을 내렸다.

" 빌어먹을!"

연우강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공손정우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백의정검군은 천등평을 완전하게 포위한 상황이다. 그런데 천등평을 이백여 장 앞두고 잠룡대 대원들이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었다.

" 놈들을 따라간다!"

공손정우는 백의정검군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접니다. 궐주님."

막 몸을 날리려고 하는데 비비무영군 단주 임추가 몸을 날려 다가왔다.

" 그동안 수고했네. 어떤 상황인가?"

" 그러니까 그게......"

임추는 그동안 겪어던 일을 빠르게, 그러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 정말 그랬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각 문파 대원들은 지금껏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 그래서 이곳에서 공격을 하자고 하던가?"

"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고 합니다."

" 잠룡대 놈들의 상태는 어떤가?"

"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여기선 곤란하네."

" 그건 알지만."

잠룡대 대원들이 흩어지면 잡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건 임추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비무영군은 물론이고 각 문파의 대원들이 너무 지친 상태다.

" 우리와 상황이 같다면 놈들도 머잖아 '막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훈련을 끝내게 될 거네. 그때가 공격할 시점이네. 혁련주에게 그렇게 전하도록 하게."

" 하지만......"

임추는 간절한 얼굴로 공손정우를 보았다.

" 잠룡대 안에 담대무궁이 있다면 자네 말대로 했을 거네. 하지만 놈들 속에는 담대무궁이 없네. 내가 연우강을 죽여주면 담대무궁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꼴이 되네."

" 이곳에서 살아나간 잠룡대 대원들이 담대무궁의 부하가 될 거란 말입니까?"

" 그럼 바로 잠룡대는 잠룡림이 되네."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궐주님."

임추는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공손정위의 말이 맞다. 아니 굳이 담대무궁이 아니더라도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이천삼백 명을 동원했다.

그런데 연우강을 비롯한 몇몇만 잡게 된다면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 할 터였다.

멀어지는 임추를 지켜보던 공손정우는 먼저 간 백의정검군을 쫓아 몸을 날렸다.

중천추살군이나 녹림파풍군, 혈랑구유군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라고 하지만 백의정검군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연우강 일행을 쫓다가 그들이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 것은 나흘 후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흘 후에 휴식을 취했고, 최종적으로 하루 만에 휴식을 취했을 때 구름을 낳는다고 하여 생운계라는 이름 붙은 계곡에 도착했다.

" 물이다!"

" 물이다!"

" 이젠 씻을 수 있다!"

계곡 안쪽에 있는 널따란 호수를 발견한 잠룡대 대원들은 사막에서 녹주를 발견한 것처럼 함성을 내질렀다. 무려 이십 칠 일.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물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얼굴부터 씻고 들어가라! 엉덩이부터 씻는 놈은 죽여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장사덕의 목소리가 계곡 양측 절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 제 15권 끝.>

황금 백수 16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