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47화 (147/232)

제 1장 얼굴만 비치면 되는데.......

세수를 한 잠룡대 대원들은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가장 먼저 엉덩이를 빡빡 문질러 씻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눌어붙은 그것들이 쉽게 씻어질 리가 없었다. ‘한곳에 모인 때를 사방으로 분산시킨다.’는 군대 빨래의 정의처럼 엉덩이 쪽에 몰려 있던 그것들을 주변으로 분산시켰을 뿐 제대로 씻지를 못했다.

오히려 그리 크지 않은 호수에 이백여 명 가까이 들어가 몸을 씻어대자 물만 더 더러워졌다.

“ 빌어먹을!”

“ 젠장!”

여기저기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수여설과 남궁운화도 다르지 않았다.

대원들의 배려로 호수 가장 위쪽 자리를 확보하여 편하게 씻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도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물속으로 들어오기 전보다 더 엉망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 그러게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망궤를 내려놓고 그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알고 있었어요?”

“ 한 달 동안 퍼지른 그것들을 엉덩이에 달고 콧구멍만 한 호수로 몰려 들어가면 그 뒤는 빤하잖아요.”

“ 이제 어쩌죠?”

“ 화풀이를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 화풀이?”

“ 공격하라!”

“ 놈들을 없애라!”

바로 그때 계곡 입구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 놈들을 죽여라!”

“ 죽여라!”

“ 죽여라!”

이어 우렁찬 함성과 함께 수백 명의 무인들이 계곡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기를 뽑아들고 살기등등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은 잠룡대 대원들을 쫓아왔던 네 문파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들은 무궐의 백의정검군이었다.

다른 세 단체에 비해 나아 보이긴 했지만 그들 역시 십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한 상태. 평소 움직임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 살기를 뿌려대며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물속에 앉아서 엉덩이를 씻고 있던 잠룡대 대원들은 동작을 멈추고 백의정검군을 보았다.

“ 개새끼들!”

누군가 나직이 소리쳤다.

“ 썅노무새끼들!”

이어 대원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 안 그래도 똥 때문에 열불이 뻗치는데!”

또 다른 대원은 허리춤에 차고 걸고 있던 검 손잡이를 잡았다.

“ 똥같은 새끼들이...”

츄악!

촤악! 츄악! 촤아악!

물속에 앉아 있던 잠룡대 대원들이 일제히 바닥을 차며 몸을 날렸다. 누런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백의정검군을 향해 돌진한 잠룡대 대원들은 가차 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 지금 내 기분은 정말 똥 같단 말이야, 새꺄!”

스악!

“ 크아악!”

“ 니들이 똥으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 한 달 동안 달려봤어?”

“ 오줌을 싸면서 달려봤냐고, 새끼들아.”

“ 이제야 간신히 씻고 있는데 그걸 방해해?”

“ 온몸에서 나는 냄새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것도 못 참아줘?”

“ 에라! 개자식들아!”

잠룡대 대원들은 욕설을 뱉어내며 백의정검군 사이를 휩쓸고 다녔다.

십여 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운기행공도 제대로 못했던 자들과, 푹 잤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료의 등에서 잠을 자며 피로를 풀고, 완전한 운기행공을 한 자들의 싸움은 시작부터 승패가 결정 나 있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반 각도 지나지 않아 백의정검군은 거의 전멸 지경까지 몰렸다.

“ 광랑수호단은......”

[ 그냥 두십시오, 수 소저.]

수여설이 광랑수호단을 불러 모으려고 하는데 연우강의 전음이 막았다.

[ 왜죠?]

수여설은 전음으로 물었다.

[ 지금 수 소저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 진형이고 나발이고 전부 박살을 내고 싶어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무려 한 달 만에 물을 만났고 이제야 간신히 씻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더덕더덕 묻은 그것들은 물에 씻기는 게 아니라 주변으로 퍼져 나가 더욱 지저분하게 되고 말았다. 물에 풀린 그것들을 온몸에 뒤집어 쓴 꼴이다.

인분 냄새로 가득한 옷을 삼매진화로 말릴 수도 없어 속만 끓이고 있는데 놈들마저 공격해 오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맡은 직책이 있어 참고 또 참으면서 대원들을 부른 것이었다.

[ 그럼 그렇게 하세요.]

[ 그렇게 해도 돼요?]

[ 이리가 잔뜩 독이 올랐을 때는 그냥 풀어두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막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수여설은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 광랑수호단은 듣거라!”

“ 하명하십시오, 단장님.”

곳곳에서 대원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 그냥 알아서 쳐죽여! 전부 죽여버리라고!”

수여설은 버럭 소리치며 적진을 향해 쏘아져갔다.

순식간에 백의정검군 앞에 당도한 그녀는 양손을 거칠게 뿌렸다.

쩌엉!

대기가 어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며 새하얀 광채가 부챗살처럼 퍼져나갔다. 그것은 빙하빙백강과 백옥수를 합쳐 빙하빙백수라 명명한 무공이었다.

빙하빙백수에 격중된 자는 물론이고 스친 자들마저도 그 자리에 우뚝우뚝 멈췄다.

쩌어억!

마치 두껍게 언 얼음이 깨질 때처럼 백의정검대 무인들은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금이 쩍쩍 갔다. 그리고 돌무더기가 한 번에 무너지듯 풀썩 쓰러졌다.

“ 헉!”

“ 억!”

주변에 있던 백의정검군 무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그러게 조금만 있다가 왔으면 좋잖아!”

일순간 혼미해진 백의정검군 무인들을 향해 창룡이 입을 쩍 벌리고 덮쳐갔다. 그것은 남궁운화가 펼친 창궁천추였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수여설이 펼친 빙공에 당했을 때와는 달리 백의정검군 대원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 다시 태어나거든 경공을 펼치면서 오줌 싼 놈들은 절대 건들지 마라, 개자식들아!”

우렁찬 외침과 함께 염왕수 장사덕이 백의정검군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가공할 기운을 머금은 그의 양손이 좌우로 뻗어나갔다. 일천독행신을 바탕으로 한 일천파류혼이었다.

장사덕의 앞은 물론이고 좌우측에 있던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진 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한결같이 박살나 있었다.

“ 그리고 똥 싼 놈은 진짜 건들지 마.”

장사덕에 이어 표풍마권 차남승의 양손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그 역시 펼치는 무공은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이었다.

하지만 원래 일천파류혼과는 달랐다.

그가 펼치는 일천파류혼에는 표풍마권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는 그의 양손은 말 그대로 표범의 발톱이었다. 그의 손에 걸리는 것은 그대로 찢겨 나갔다. 표풍마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양팔에 찬 두 개의 방패는 일천파류혼이 놓친 적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환비도 종리우의 비도가, 사자신권 사후련의 권이, 유성비검 신도영의 검이, 아니 과거 잠룡 십 조에 속했던 모든 이들이 일천독행신의 보법을 밟으며 자신의 무공이 섞여 들어간 일천파류혼을 펼쳤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양손을 뻗어낼 때마다 강한 권강이 흘러나오는 자.

커다란 덩치로 일천독행신을 펼치며 거력패왕권이 섞인 일천파류혼을 펼치고 있는 그는 거철산이었다.

거철산의 주먹은 강하고 권강은 무거웠다. 그의 권에 머리를 맞으면 머리가 날아가고, 배에 맞으면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마치 소림의 최고 권법 중의 하나인 백보신권을 연속적으로 펼치는 것 같았다.

“ 뭐냐 그건?”

거철산 옆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윤허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거철산이 지난 삼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쉬지 않고 뻗어내는 주먹에 흘러나오는 것은 전부가 권강이었다.

“ 잠룡 십 조에 있을 때 배운 무공입니다.”

거철산은 양손을 거칠게 휘두르며 대답했다.

“ 그러고 보니......”

윤허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장웅, 전관수, 신도영, 차남승, 사후린, 종리웅, 장사덕 등 과거 잠룡 십 조에 속했던 자들은 각자의 무기는 다르지만 펼치는 무공은 거의가 비슷했다. 아니 보법은 전부가 같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거철산까지.

“ 광랑께 배운 무공입니다.”

“ 총대주가 무공을 가르쳐 줬다고?”

“ 그게.....”

[ 그게 뭐 비밀이라고 지금껏 숨기고 있냐? 가르쳐 줘.]

그때 귓전으로 연우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입니다.”

거철산은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이라고?”

윤허는 일순 멍했다.

일천파류혼 일천독행신.

대야벌로 들어오기 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무공 이름이다.

천오백 년 대야벌의 제일 전설.

그 전설을 찾아내면 천하제일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무공을 익혔다니. 잘못 들었나 싶어 거철산을 다시 보았다.

“ 위험합니다. 형님!”

거철산은 윤허를 밀어내고 양손을 좌우로 뿌렸다.

쇄애액!

강력한 소성과 함께 권강이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퍽! 퍽!

“ 크악!”

“ 아악!”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백의정검군 대원 두 명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풀썩 쓰러졌다.

“ 맞는 모양이구나.”

윤허는 넋을 잃었다.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을 익히고 있는 잠룡 십 조 대원들이나 거의 자신에 필적할 정도로 강해진 거찰산의 무공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무려 천오백 년 전부터 내려왔던 대야벌의 전설. 그 전설을 얻어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원들에게 줘버린 연우강의 행위에 넋을 읽은 것이었다.

연우강이 그 무공을 어떻게 얻었는지, 지금 무공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그 무공을 얻었다면 연우강처럼 그렇게 부하들에게 가르쳐주었을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무공을 전수해 준 것이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그동안 잘 몰랐다. 더불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한 무공이 아니라 강하고 충성스런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말도 몰랐다. 아니 의미는 대충 알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연우강을 보며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만일 연우강이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을 혼자 익혔다면 그는 최강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무공을 혼자 익히는 대신 잠룡 십 조 대원들에게 전수함으로써 최강 무인 시십구 명을 얻은 것이다.

한 명의 고수와 오십 명의 고수.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은 그의 시종인 염자생과 함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 언제까지 동생에게 맡겨둘 참이냐?]

“ 응? 응!”

연우강의 전음에 화들짝 놀란 윤허는 급하게 거철산 옆으로 몸을 날려갔다.

“ 총대주는 무공이 어느 정도냐?”

윤허는 적을 향해 검을 뿌리며 물었다.

[ 너보다 강하고 담대무궁보다 강해.]

이번에도 연우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 그럼 십뢰로 내기할 때도?]

[ 그땐 잠능패혈대법으로 무공을 숨기고 있었어.]

“ 개자식!”

윤허는 욕설을 뱉어내며 적진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 흥분할 필요 없어. 십뢰로 내기를 할 땐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니까. 아니 십뢰는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는 무기야.]

“ 그걸 어떻게 믿어, 자식아!”

[ 상관이 검은 걸 희다고 하면 희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라. 그래야 편하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사망궤를 열어 사망마립을 꺼내 쓰고 사망낭조를 손가락에 끼웠다.

“ 권익현은 뭐하고 있느냐?”

바로 그때 좌측에서 공손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장 검혈녹천군을 투입하라!”

공손정우는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전장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일 각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백의정검군의 생존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설마 잠룡대가 저렇듯 강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잠룡대 대원들 중에서 과거 잠룡 십조에 속했던 자들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했다.

손바닥에서 쏘아져 나온 건 장강이고, 주먹에서 쏘아져 나온 건 권강이다. 그것뿐만이아니다. 검강이, 도강이, 수강이 쏟아져 나오며 아군을 격살하고 있다. 저런 상황이면 후미에 있는 녹림파풍군이나 중천추살군, 혈랑구유군을 투입한다고 해도 상황은 뻔하다.

그들은 오히려 전멸한 백의정검군보다 더 열악한 상황 아닌가?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력은 회혼마인들밖에 없었다.

삐리리리! 삐리리!

“ 녹림파풍군은 길을 터라!”

“ 중천추살군은 길을 터라!”

“ 혈랑구유군은 길을 터라!”

후미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잠룡대 대원들을 향해 달려가던 자들은 일제히 좌우 측으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중앙이 텅 비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몸을 날려왔다. 죽음의 기운을 풍기며 다가오는 그들은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에서 심혈을 다해 제강한 회혼마인이었다.

회혼마인이 나타나자 연우강은 사망궤를 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은 아냐, 귀노!”

염자생이 공손정우 쪽을 흘끔거리자 연우강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 장주님!”

“ 복수는 부하들 앞에서 하는 게 아냐. 부하들이 다 죽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 하는 거야. 그래야 더 비참해 지는 거라고, 가자고.”

연우강은 가볍게 지면을 찼다.

그는 단숨에 호수를 건너 잠룡대 선두로 날아 내렸다.

“ 몇 구야?”

연우강은 옆으로 다가온 윤허를 보며 물었다.

“ 총 백 굽니다. 전에 말한 회혼마인입니까?”

연우강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듯 윤허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 응! 보통 검강으로도 잘라내는 건 쉽지가 않아.”

슈캉!

연우강의 엉덩이에서 묵사가 뽑혀 나와 윤허 앞 허공에 멈춰 섰다.

“ 무슨 뜻입니까?”

“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삐친 거 아냐?”

“ 제가 그딴 일로 삐치는 놈으로 보입니까?”

“ 응!”

연우강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 그거나 잡아.”

연우강은 묵사를 턱으로 가리켰다.

“ 잡아서 어쩌게요?”

“ 우선 손에 맞는지 보고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연우강은 왼편 허리에 걸린 도구에서 뇌섬을 잡아 뺐다. 그러자 붉은색의 사망혈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쪽 끝을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사망혈조 홈에 끼우고, 반대편은 왼손의 사망혈조 홈에 끼워 고정시켰다. 양퍌을 가볍게 당기자 사망혈삭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파르르 떨었다.

“ 그건 뭡니까?”

윤허는 묵사를 쥐며 물었다.

“ 회혼마인의 천적.”

파앗!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우강의 신형이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 찌르지 말고 잘라라!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목이 됐든 팔이 됐든 다리가 됐든 무조건 한 번에 잘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죽는다!”

“ 크아!”

연우강이 다가서자 강시는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강력한 힘이 실린 강시의 오른손은 빠르게 연우강의 목을 향해 나아갔다.

슥!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연우강의 신형이 우뚝 멈추더니 상체가 뒤편으로 약간 젖혀졌다. 그리고 양손이 위로 올라오면서 왼손이 허공에서 작은 원을 그렸다.

목 앞으로 지나가는 강시의 팔을 사망혈삭으로 감는 동작이었다.

바로 그 순간 강시는 오른팔에 이어 왼팔을 연우강의 가슴으로 찔러넣는 중이었다.

하지만 연우강의 움직임은 빨랐다. 옆으로 이동하며 사망혈삭으로 강시의 왼팔마저도 감았다. 그런 다음 양손을 쭉 당겼다.

삭!

강시의 팔이 떨어지는 사이에 등 뒤로 돌아가서는 사망혈삭을 강시의 목에 감고 사정없이 당겼다.

“ 나쁜 자식!”

연우강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윤허는 어이없는 얼굴로 몸을 날렸다. 약간은 부자연스럽다고 해도 강시의 몸놀림은 고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연우강의 몸놀림은 강시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

저런 엄청난 실력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숨긴 연우강보다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 너! 잘 걸렸다.”

윤허는 몸을 날려오는 강시를 쏘아보았다.

콰앙!

바로 그때 투명한 강기가 강시의 가슴을 쳤다.

뒤에 있던 거철산이 강시의 가슴을 향해 권강을 뿌린 것이었다.

충격에 의해 강시의 몸이 뒤편으로 훨훨 날아갔지만 보통 무인을 상대했을 때처럼 구멍이 뚫리진 않았다. 윤허는 뒤편으로 날아가는 강시를 쫓아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강시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목을 향해 묵사를 내리찍었다.

카앙!

파고드는 순간 약간 멈칫했던 묵사는 곧 강시의 목을 자르고 빠져나왔다.

‘ 이런 걸 장난치듯 잘라?’

윤허는 다시 연우강을 보았다.

그는 종횡무진 강시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양손을 교묘하게 틀어 강시의 팔과 목을 잘라내고 있다.

비단 연우강뿐만이 아니었다.

파삭!

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강시 한 구가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강시를 얼음 조각으로 만든 사람은 수여설이었다.

“ 엄청나..... 맙소사!”

윤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대한 창룡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강시의 머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크아아!”

창룡의 입에서 강시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곧 검은 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 저럴 수가!”

윤허는 넋을 잃었다.

연우강과 수여설에 이어 남궁운화도 저렇게 강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연우강이나 수여설보다 남궁운화가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창룡이 강시의 머리를 물어뜯을 때마다 가루가 흩날리고 있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가 않는 게 아니라, 남궁운화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 형님! 위험합니다.”

새파란 광채가 바로 옆으로 쏘아져가고 강시 두 구가 훨훨 날아가고 있지만 윤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수여설, 남궁운화, 거철산, 마장웅, 전관수, 신도영, 차남승 등 다들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데, 자신만 뒷걸음치고 있는 것 같았다.

[ 천재를 이기는 노력이다. 네가 멍하게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궁운화는 실전을 통해 자신의 무공을 완성해 가고 있어. 그녀는 지금까지 하루에 두 시진 이상 자 본 적이 없고, 내가 전수해 준 일천독행신이나 일천파류혼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오직 가문의 무공인 창궁대연검법 하나만 미친 듯이 연마했다. 그 끈기와 노력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거다. 그녀의 경쟁자는 잠룡들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 그래, 너 잘났다. 자식아. 똑똑하다고!”

연우강의 전음에 윤허는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강시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왜 그러십니까?”

옆으로 다가온 윤허를 돌아보며 거철산이 물었다.

“ 냄새가 심해서 그런 것뿐이야.”

윤허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날려 오는 강시를 피하며 묵사를 휘둘렀다.

“ 저기 저 노인은 누군지 아십니까?”

순식간에 강시 뒤로 돌아간 거철산은 강시의 턱을 양손으로 잡고는 사정없이 돌렸다.

우두둑!

뼈가 꺾이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강시의 머리가 한 바퀴 돌아갔다.

그가 터득한 강시를 없애는 방법이었다.

강시의 몸에서 살아 있는 사람과 가장 비슷한 부분은 바로 관절이었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완전하게 죽이진 못하더라도 불능 상태로 만들 수는 있었다.

“ 누구?”

윤허는 거철산이 불능 상태로 만든 강시의 목을 향해 묵사를 휘둘렀다.

“ 총대주님 옆에 있는 노인 말입니다.”

“ 노인?”

윤허는 연우강을 보았다.

거철산의 말처럼 연우강 옆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속은 가공했다. 묵사로도 제대로 잘리지 않는 강시들이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두부처럼 으깨지고 있었다.

‘ 누구지?’

지옥에서 나온 무인들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그들이라고 해도 저렇듯 강하지 않다.

윤허는 고개를 갸웃했다.

‘ 나중에 물어보면 알겠지.’

이내 시선을 돌린 그는 다시 강시를 향해 돌진했다.

“ 다시 태어난 기분이 어떻습니까?”

연우강은 강시의 목에 걸었던 사망혈삭을 당기며 물었다.

무불 백강이 싸움에 끼어든 걸 알게 된 것은 조금 전이었다.

“ 그 기분을 알아보기 위해 이 자리로 왔다.”

배강은 오른손을 가볍게 뿌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시뻘건 광채가 뇌전 문양을 띠며 강시의 머리로 폭사돼 갔다.

백강마뢰의 이 초인 혈뢰였다.

푸스스!

강시의 머리는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 알아냈습니까?”

“ 아직은 모르겠다. 그런데 그분을 형님이라고 불렀다고 하더구나.”

“ 큰 아들이라서 형님이 없거든요.”

“ 난 막내라서 동생이 없다.”

“ 동생이 없는 게 아니고 먹고 살 일이 막막한 거 아닙니까?”

“ 남에게 얻어먹는 밥보다 동생에게 얻어먹는 밥이 훨씬 마음이 편하겠지.”

“ 흑천의 노인들은 날 천주님이라고 부릅니다.”

“ 몇 살인데?”

“ 백 살이 넘습니다.”

“ 나보다 천오백 살 아래구나.”

“ 그렇게 되는 거군요. 그럼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당연히 그래야지. 그건 그렇고 굳이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

백강은 연우강의 손에 끼워진 사망혈삭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 이기어검술이나 심검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내력소모가 적어서 더 편합니다.”

“ 그게 다가 아니겠지?”

“ 더불어 실력을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요.”

“ 클!”

백강은 픽 웃으며 양손을 거칠게 뿌렸다. 그의 양손 장심에서 새하얀 광채가 쏟아져 나와 전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십여 구의 강시가 가루가 돼 흩어졌다. 마지막 초식인 백뢰였다. 이지를 되찾으면서 백강마뢰를 완벽하게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잉!”

강시들을 지켜보던 백강의 얼굴을 찌푸렸다.

“ 왜 그러십니까?”

백강의 활약으로 주변 강시들이 사라지자 할 일이 없어진 연우강이 물었다.

“ 저 녀석 말이다.”

백강은 광인으로 강시의 목을 잘라내는 염자생을 턱으로 가리켰다.

“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 돼지 목에 진주야.”

“ 광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단 말이군요.”

“ 그래.”

“ 귀노!”

연우강은 염자생을 불렀다.

염자생은 앞으로 다가온 강시의 목을 향해 광인을 사정없이 후려치고는 연우강 곁으로 몸을 날려왔다.

“ 부르셨습니까?”

“ 여기 형님이 한수 가르쳐준다니까 잘 배워.”

“ 네?”

“ 아무튼 그렇게 해.”

연우강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날려갔다.

“ 따라와라, 이놈아!”

백강은 염자생을 빤히 쳐다보더니 강시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염자생은 의아한 얼굴로 백강을 보았다.

“ 뭐하고 있느냐?”

“ 아, 알겠습니다.”

염자생은 급하게 몸을 날렸다.

휙!

바로 그때 전방에서 검은 동체 하나가 염자생을 향해 날아 왔다. 염자생은 부지불식간에 광인을 휘둘러 강시의 목을 쳐냈다.

까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오고, 광인은 간신히 강시의 목을 잘라냈다.

“ 무작정 세게 휘두른다고 능사가 아냐. 이놈아. 광인은 톱처럼 휘둘렀을 때 가장 예리하게 변하는 무기야.”

백강은 또다시 강시의 뒷목을 틀어쥐고는 염자생을 향해 던졌다.

“ 톱처럼 사용하라고요?”

염자생은 광인의 날이 강시의 목에 닿는 순간 당기는 듯한 기분으로 베어냈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금껏 강시의 피부와 광인이 부딪치면서 흘라나왔던 쇳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훨씬 쉽게 강시의 목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 쯧쯧! 무식한 놈 같으니라구. 톱질을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지 누가 진짜 톱질을 하라고 했느냐?”

“ 무슨 말씀이십니까?”

염자생은 의아한 얼굴로 백강을 보았다.

“ 내기를 톱질하는 것처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놈아!”

“ 아!”

염자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천히 광인에 내기를 주입했다.

내기를 톱처럼 만든다는 것은 광인 안쪽으로 밀어 넣은 내기를 다시 배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광인 안에 내기가 꽉 들어차자 의념을 보냈다. 그가 머릿속에 그린 의념의 사물은 톱이었다.

지잉!

광인이 부르르 떨더니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마치 광인과 비슷한 형태의 갑옷을 입힌 것처럼 검은 기운이 광인을 둘러쌌다. 그리고 날이 있던 부분은 내기가 톱날처럼 돋아나 있었다.

휙!

바로 그때 전방에서 강시가 날아왔다.

“ 차앗!”

염자생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오고 광인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광인은 단숨에 강시의 몸통을 잘라냈다.

자신이 잘라내고도 믿어지지 않는 듯 염자생은 멍한 얼굴로 강시를 보았다. 이번에 잘라낸 곳은 목이 아니라 몸통이다. 목보다 두 배 이상 두꺼운 부분을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목을 자른 것보다 훨씬 쉬웠다.

“ 멍하게 있을 시간 없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날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거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 구의 강시가 염자생을 향해 날아왔다. 염자생은 미친듯이 광인을 휘둘렀다.

일 초인 구유만환이 펼쳐지고 이 초인 신월잔백.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삼 초인 일천지옥이 펼쳐졌다. 광인에서 흘러나오는 악마의 호곡성은 귀를 멀게 하고, 염자생 주변을 가득 채운 검붉은 기운은 눈을 멀게 했다. 그 검붉은 기운 속에서 잘려나간 강시의 머리와 몸통 이 튀어나왔다.

“ 저럴 수가.....”

공손정우의 눈이 찢어질 즛 커졌다.

회혼마은을 동원하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회혼마인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느닷없이 나타난 노인과 도를 들고 있는 자는 회혼마인을 장난감 다루듯 다루고 있다.

“ 잠룡대 대원들은 놈들을 공격하라!”

“ 와아!”

“ 우와아!”

연우강의 명령이 떨어지자 강시를 상대하고 있던 잠룡대 대원들은 일제히 강시 후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쳐라!”

“ 쳐라!”

“ 공격하라!”

적환규, 육사이, 설야는 동시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 안 되네. 적 아우!”

공손정우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양측 무인들의 함성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십여 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던 백의정검군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거의 한 달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운기행공조차 제대로 못한 자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무인의 수가 많으면 유리하다고 하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그는 적환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 멈추게. 적 아우! 저들은........”

공손정우는 세 사람을 보며 소리쳤다.

“ 쳐라! 공격하라!”

“ 와아!”

“ 와아아!”

바로 그때 계곡 입구에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수백 명의 무인들이 안쪽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 밀천까지...”

공손정우는 절망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백 명의 무인들은 다름 아닌 밀천무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밀천 무인들의 상태도 구중련이나, 녹사련, 낭인림 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대로 경공을 펼친다고 펼치는 것 같지만 무공을 익히지 못한 일반 양민들보다 약간 빠를 뿐이었다.

밀천 무인들 역시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를 쫓느라 잠을 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잔병들이 벌이는 사투.

양측의 전투 상황은 그랬다.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무기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고, 힘차게 휘두른 검을 상대가 피해버리면 풀썩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그들에 비해 비교적 완전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잠룡대 대원들은 펄펄 날았다. 그들은 대야벌 무인과 밀천 무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잠룡대 대원들의 무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양쪽 무인들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런 그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계곡 입구를 틀어막고 선 이들은 대야벌 잠룡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각 문파에서 파견 나온 자들이었다.

“ 도대체 저것들은 뭡니까?”

적수 척자빈이 군무옥을 돌아보며 물었다.

척자빈은 도무지 안쪽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맨 나중에 들어간 밀천 무인들은 겪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지만 안쪽에 있는 자들은 전부가 아는 자들이다. 방갓을 쓰고 녹색 옷을 걸치고 있는 자들은 녹사련의 녹림파풍군이다. 그리고 붉은 옷에 늑대머리를 하고 있는 자들은 낭인림의 혈랑구유군이다. 각 문파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다.

잠룡대 대원들이 엄청 강해서가 아니었다. 중천추살군, 녹림파풍군, 혈랑구유군 대원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해서 당하고 있는 것이다.

“ 한달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저렇게 된다.”

“ 쉬지 않고 달렸단 말입니까?”

“ 물론이다.”

“ 그럼 도망치던 잠룡대 대원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 잠룡대 대원들이 달렸으니까 저놈들도 달렸겠지.”

“ 그건 나도 압니다. 총군장. 나는 잠룡대 대원들은 왜 멀쩡한지 그걸 알고 싶습니다.”

“ 달리면서 싸고, 달리면서 먹고, 달리면서 자면 된다.”

“ 달리면서 싸고, 먹고, 잤단 말입니까?”

“ 잠룡대 대원들의 옷을 자세히 봐라. 특히 엉덩이 쪽을.”

척자빈 일행은 잠룡대 대원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허!”

잠룡대 대원을 살피던 척자빈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엉덩이 쪽이 한결같이 누렇게 변색돼 있었던 것이다.

“ 크, 큰 것까지 달리면서 해결을 했단 말이군요.”

“ 저것들이 미친놈들처럼 날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군무옥은 피식 웃으며 계곡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런데 우린 왜 온 겁니까?”

척자빈은 군무옥을 따라붙으며 물었다.

저 상태라면 굳이 일천 명이나 되는 지원군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어 보였다.

“ 도망치는 놈을 잡기 위해서 왔지 왜 왔겠냐?”

“ 그렇군요.”

척자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만이 아닐 테다. 단 이백 명으로 대야벌 최정예라고 불리는 무인 이천삼백 명을 잡아내는, 엄청난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까지 데리고 왔을 것이다.

사실 자신들은 이곳까지 오면서도 저런 장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 자신들이 아니면 잠룡대 대원들은 몰살을 당할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다.

잠룡대 대원들은 펄펄 날고, 대야벌과 밀천 무인들은 손만 대면 바로 쓰러질 지경이다.

[ 총대주 그 사람 인간 맞소?]

그때 귓전으로 마귀괴옹 지을덕의 전음이 들려왔다. 지을덕의 목소리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 우린 엄청난 사람을 총대주로 모신 모양이네.”

척자빈은 빙그레 웃으며 연우강을 찾았다. 하지만 연우강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엄청난 사람을 총대주로 모신 게 아니라 괴물을 총대주로 모신 거다.”

“ 그런 것 같습니다. 총군장.”

“ 아무튼 지금부터 청소 시간이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치워라!”

“ 존명!”

척자빈 일행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치우라는 말, 그건 생존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몰살 멸영이었다.

일행과 함께 몸을 날리던 사검천자 나박은 조양마검 단고웅을 보았다. 단고웅은 뭔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 어떻게 생각하는가?]

[ 뭘 말이오?]

단고웅은 나박을 돌아보았다.

[ 연우강 말이네.]

[ 총대주가 어쨌단 말이오?]

‘ 응?’

나박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보름 전만 해도 단고웅은 총대주란 말 대신 연우강이라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연우강을 총대주라고 부른 것이다.

‘ 그를 다시 보게 됐다는 건가?’

이내 나박은 얼굴을 풀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달려가는 주변 대원들을 보았다. 대원들 또한 단고웅처럼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 그렇게 둘 수는 없지.’

[ 그는 지금 전장에 없네.]

연우강은 겁쟁이란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마 연우강이라고 하지 못하고 그라고 했다.

[ 지금은 없지만 조금 전까지 잠룡대 대원들을 지휘했소. 그리고 총대주는 무공이 그다지 강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소이다.]

[ 무공이 약하면 전장에서 빠져도 된단 말인가?]

나박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연우강의 단점을 자꾸만 덮어주려고 하는 단고웅의 말 때문이었다.

[ 담대공자 또한 총대주를 따라 밀천의 개파대전에 참석한 걸로 알고 있소. 그런데 담대 공자를 비롯한 그를 따랐던 잠룡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구려.]

[ 난 지금 담대 공자가 아니라 연우강 이야기를 하고 있소. 단 대협!]

[ 난 지휘관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말하고 있소이다. 바빠서 이만.]

단고웅은 무인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 이런 자리에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제기랄!”

나박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날렸다.

연우강의 머리에서 나왔건, 다른 자의 머리에서 나왔건, 이번 작전은 대성공이다.

물론 적이 공손정우 일행이라 찜찜한 면이 없지 않지만, 밀천 무인들도 포함돼 있고, 먼저 공격해 온 쪽이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 무인들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얼굴만 내밀면 공을 세운 걸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 좋은 자리에 담대무궁은 없었다.

“ 아무튼 운도 지지리도 없는 분.”

나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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