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반격
자꾸 당하다 보면 모든 일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천상천 집무실에 앉아 있는 담대만승과 만우량이 그랬다.
두 사람이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의 정예가 잠룡대를 쫓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건 한 달 보름 전이다.
나소산맥 초입에서 그들을 봤다는 연락이 오고 감감무소식이다가 최근에 다시 보고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는 백의정검군, 중천추살군, 녹림파풍군, 혈랑구유군 오백여 명이 발견됐다는 내용만 들어 있었다. 첫 보고서에서는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가 동원한 무인의 수가 총 이천 명이 넘는다고 했었는데, 무려 사분지 일로 줄어든 것이다.
그 상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다시 조사를 시켰다. 그리고 바로 오늘 세 번째 보고서가 올라온 것이다.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 무인들과 잠룡대가 충돌한 지 한 달 만이었다.
“ 또 당했군.”
보고서를 읽고 있떤 담대만승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넘실댔다. 보고서에는 나소산맥 끝에서 발견된 자들은 각 문파에서 잠룡대로 파견한 무인들이라고 돼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잠룡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자들까지 가짜라는 말이 된다. 완벽하게 당한 셈이었다.
“ 무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담대만승은 만우량을 보며 물었다.
“ 보고서를 접하자마자 곧바로 벌주께서 보잔다고, 백록원과 녹죽원 그리고 낭묘에 연통을 넣었습니다.”
“ 그런데?”
“ 장례 준비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 거절이란 말이군.”
“ 그런 것 같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보는가?”
“ 구심점이었던 공손정우가 죽고, 네 문파의 주축이었던 백의정검군, 중천추살군, 녹림파풍군, 혈랑구유군이 전멸했습니다.”
“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인가?”
“ 황궐과 벌내쟁투 때 입었던 피해와 이번을 합치면 그들의 전력은 오 할 이상 감소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네 개의 문파가 두 개로 줄었들었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군.”
“ 정예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두 개 문파 전력도 되지 않습니다.”
“ 그렇군. 그럼 현재 대야벌 전력은 어떻게 되는 건가?”
“ 완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문파는 야궐, 묵야련, 사자림. 사해림, 군마련, 철무련, 여섯 개고, 황궐,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며, 무궐, 구중련, 녹사련, 낭인림 또한 황궐과 비슷한 실정입니다.”
“ 그 문파들을 지휘하는 자는 누군가?”
“ 현재 황궐의 임시 궐주는 환우광마창 나도욱입니다.”
“ 황룡질풍대 대주였던 그 나도욱인가?”
“ 그렇습니다.”
“ 남아 있는 무인은 어느 정돈가?”
“ 일천오백 명으로 파악됐습니다.”
“ 생각보다 많군.”
“ 담대 련주와 무인 대 무인으로 비무를 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천호가 살려줬단 말인가?”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그랬군. 금황련의 상황은 어떤가?”
“ 금혼영웅대 대주 대제 과일우가 임시련주를 맡고 있으며 살아남은 무인은 오백 명가량입니다. 풍운련은 풍운금의대 대주 운검 표상진이 임시 련주를 맡고 있으며 살아남은 자는 금황련과 비슷하게 오백 명입니다. 그리고 천추림은 천추제일대 대주 용무검 강일남이 대주를 맡고 있고, 남아 있는 무인은 오백 명가량입니다.”
“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에 연락을 취해서 약속을 잡게.”
“ 날짜는 어떻게 할까요?”
“ 삼 일 후에 내가 찾아가겠다고 하게.”
“ 그쪽으로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 이제 대야벌 내부 전쟁은 끝났네. 뇌천. 지금부터 자네와 내가 해야 할 일은 내실을 다지는 거네.”
“ 밀천이 남았습니다. 벌주님.”
“ 팔황새에서는 연락이 왔는가?”
“ 내부적으로 처리할 일이 많아서 당분간 중원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 혹시 낌새를 챈 것은 아니고?”
“ 그런 상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그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네.”
“ 바로 처리하시겠다는 말입니까?”
“ 천호에게 맡길 참이네.”
“ 군마련 련주가 따를 걸로 보십니까?”
“ 천호가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지만 친동생이네. 천호는 오늘 중으로 만날 참이네.”
“ 알겠습니다. 벌주님.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 이왕 약속 잡는 거, 태을검제 일행과도 만날 수 있게 해 놓게. 그들은 나흘 후로 약속을 잡도록 하게. 그때도 역시 내가 찾아갈 거네.”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우량은 담대만승을 보았다.
“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 연우강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요.”
“ 지금부터 할 참이네. 난 자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네.”
“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내 아들인 무궁과 그놈을 비교했을 때 누가 나은가?”
“ 그건.....”
만우량은 말끝을 흐렸다. 담대만승이 이렇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올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네.”
“ 연우강이 낫습니다.”
“ 어느 정도 나은가?”
“ 담대 공자가 화초라면, 그는 야생화입니다.”
“ 무궁은 물을 주지 않거나 밖에 내놓기만 해도 죽지만, 그 놈은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는단 말인가?”
“ 게다가 꽃도 훨씬 화려합니다.”
“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가지 갖췄다는 말이군.”
“ 지금까지 많은 무인들을 보았지맍 연우강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습니다.”
“ 그럼 나와 비교하면 어떤가?”
“ 솔직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 시작할 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네.”
“ 좋습니다. 벌주님. 만일 벌주님이 아니라 그 친구를 먼저 만났더라면, 전 그를 따랐을 겁니다.”
“ 먼저 만난게 아니라 동시에 만났다면?”
“ 같은 조건이라도 역시 그 친굽니다.”
“ 그렇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담대만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죄송합니다. 벌주님.”
“ 아니네, 솔직하게 대답해줘서 오히려 고맙네. 지금 놈이 잠룡대에 있다고 했는가?”
“ 이틀 전에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야제에게 다녀오게.”
“ 벌주님!”
만우량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연우강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더니 이제는 야궐의 궐주 혁련무궁을 만나겠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연우강이 있는 잠룡궁을 치겠다는 말이었다.
“ 난 천호를 만나고 오겠네.”
담대만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가 모시.......”
“ 아니네. 혼자 가겠네.”
담대만승은 곧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천상천을 나선 그는 수행원도 없이 군마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반 시진 후 그는 동생인 담대천호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 벌주님께서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시비가 차를 준비해 주고 밖으로 나가자 담대천호가 입을 열었다.
“ 아비 눈에는 아무리 바보 같은 자식이라도 천재처럼 보인다는 건 아느냐?”
“ 저는 제 자식을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 하지만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겟지. 예를 들면 무궁 같은 녀석 말이다.”
“ 그건.....”
담대천호는 형님을 가만히 보았다.
느닷없이 혼자 찾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담대무궁 이야기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내심을 짐작할 수 없었다.
“ 난 지금도 무궁을 천재라고 여기고, 연우강 그놈보다 낫다고 확신한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 그런데 만우량은 아닌 모양이더구나. 만우량 그 친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연우강이라고 하더라. 만일 나와 연우강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연우강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 형님!”
담대천호는 버럭 소리쳤따.
하지만 담대만승의 얼굴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담대천호를 가만히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내가 벌주 자리를 넘겨주면 지켜낼 자신이 있느냐?”
“ .......!”
담대천호는 멍해졌다.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환청이 들린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벌주인 형님이 할 소린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 대답하거라.”
담대만승은 채근했다.
“ 솔직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담대천호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느냐?”
“ 좋습니다. 그럼 저도 대답하겠습니다. 최소한 형님보다 잘 다스릴 자신이 있습니다.”
담대천호는 단언하듯 말했다.
“ 확신하느냐?”
“ 확신합니다. 형님.”
“ 천단십절마예가 최강이라고 여기는 모양이구나.”
“ 대야벌은 무공으로 다스리는 곳이 아닙니다.”
“ 겉으로 드러난 대야벌의 모습은 분명 그렇다. 하지만 다스리는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최강의 무인이 아니면 안 된다. 다시 묻겠다. 천단십절마예가 최강이라고 확신하느냐?”
“ 무적뇌화결 말고는 상대가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아니다. 잘못 알고 있다.”
“ 뭘 잘못 알고 있단 말입니까?”
“ 지천 오대 가문을 아느냐?”
“ 알고 있습니다.”
“ 말해 보거라.”
“ 담대세가, 혁련세가, 모용세가, 독고세가, 하후세가의 다섯 가문을 지천 오대 가문이라고 합니다.”
“ 그럼 각 문파의 최강 무공을 아느냐?”
“ 우리 담대세가의 최강 무공이 무적뇌화결이란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 나머지 가문도 지존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혁련세가는 야수구벽신권이라는 개세 신공이 있었고, 모용세가는 천단십절마예를 독고세가는 대범천뇌정도법을, 하후세가는 무극천라검해라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
“ 그, 그럼 우리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던 천단십절마예나 대범천뇌정도법이 오대 가문 중 두 가문의 무공이란 말입니까?”
담대천호는 깜짝 놀라 물었다.
수백 년 전부터 가문에 내려왔던 두 무공.
그 무공들이 다른 가문의 가주 무공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그 무공들이 우리 가문에 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 정복했단 말입니까?”
“ 그랬다. 모용세가를 멸문시키고 천단십절마예를 빼앗았고, 독고세가를 멸문시키고 대범천뇌정도법을 빼앗았다. 그래서 그 두 무공이 우리 가문에 있었던 거다.”
“ 하면 야수구벽신권과 무극천라검해는?”
“ 바로 내 옆에 있다.”
“ 혀, 형님 옆에 있다고요?”
더욱 놀라운 말이었다. 담대천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야수구벽신권을 익힌 사람은 혁련무극이고, 무극천라검해를 익힌 사람은 만우량, 아니 하후량이다.”
“ 맙소사.”
담대천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천 오대세가. 천오백 년 전에 사라진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세 곳이 바로 이곳에 남아 있었던 거였다.
“ 일 갑자 전에 천마의 무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강호 공적이된 독고철웅을 기억하느냐?”
“ 혹시 유령신마존을 말하는 겁니까?”
“ 그가 바로 독고세가의 후손이었다. 아버지는 그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강호 공적으로 만든 거였다.”
“ 그럼 지천 오대세가는 전부 살아남았다고 봐야겠군요.”
“ 물론이다. 이제 다시 처음 했던 질문을 하겠다. 내가 벌주 자리를 내주면 지킬 자신은 있는냐?”
“ 그 대답을 하기 전에 혁련무극의 무공 정도를 알아야겠습니다.”
“ 혁련무극과 나는 일만 초를 싸웠다.”
“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 반 초 차이로 내가 이겼다.”
“ 반 초란 말입니까?”
담대천호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 그를 이길 수 있겠느냐?”
담대천호는 자신 있게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반 초 차이라면 형님을 이겨야 혁련무극을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형님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 혁련무극도 벌주 자리에 욕심이 있단 말입니까?”
“ 벌주 자리는 대야벌 무인의 꿈이다.”
“ 형님이 벌주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절대 무기를 뽑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는 말이군요.”
“ 그렇다. 네가 벌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벌주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그는 계속 이인자로 남을 것이다.”
“ 그래서 벌주를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날 넘어서라는 거다.”
담대만승은 품속에서 책을 한 권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 이건?”
담대천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형님이 내놓은 책은 범천담대세가의 최고 무공인 무적뇌화결이었던 것이다.
무적뇌화결은 범천담대세가의 가주에게만 허락된 무공이다. 차기 가주로 지목되지 못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 해도 무적뇌화결은 익힐 수가 없다.
그 무적뇌화결이 바로 앞에 있었다.
“ 네가 익힌 천단십절마예에 무적뇌화결을 심을 수 있다면 넌 날 이길 수 있다. 날 이기면 혁련무극도 이긴다.”
“ 원하는 게 뭡니까?”
담대천호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 네가 천단십절마예에 무적뇌화결을 심을 때까지는 군마련의 련주가 아니라 내 동생으로 남기를 바란다.”
“ 제가 혁련무극을 넘어서면 벌주 자리를 주실 참입니까?”
“ 난 지금부터 모든 노력을 다해 무궁 그 녀석을 최고의 무인으로 만들 참이다. 네가 익히고 있는 천단십절마예도 전수할 테고, 범천뇌정도법도 전수할 거다.”
“ 벌주가 되기 위해서는 무궁 그 녀석과도 싸워야 한다는 말이군요.”
“ 앞으로 대야벌 벌주 자리는 담대 성씨를 가진 자들에게만 열려 있게 될 것이다. 네가 벌주가 되고 싶으면 당연히 무궁과 싸워야 한다.”
“ 지, 지금 벌주가 담대성씨를 가진 자들을 위한 자리라고 했습니까?”
담대천호는 경악한 얼굴로 담대만승을 보았다.
벌주의 꿈을 꾸기 시작한 십 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벌주 자리를 범천담대세가의 전유물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형님은......
“ 벌주 자리에 오르면서부터 꾸었던 꿈이다.”
“ .....!”
담대천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먼저 태어난 이유만으로 아버지와 가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가주가 됐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벌주 자리를 욕심내고 있을 때 형님은 대야벌 자체를 범천담대세가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완전한 패배였다.
“ 이제 한 가지 남았다.”
“ 뭐가 남았단 말입니까?”
“ 야장만 사라지면 우리 범천담대세가를 방해할 세력은 없다는 말이다.”
“ 야장을 공격하겠다는 겁니까?”
“ 대야벌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야장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게냐?”
“ 설마.......”
“ 장주인 무원을 비롯하여 칠전의 전주들은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그들을 없애지 못하면 우리 담대세가는 대야벌을 장악할 수 없다.”
“ 우리가 야장을 공격한 사실을 강호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니 밀천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담대천호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야장은 대야벌의 공기와 같은 존재들이다. 즉 있을 때는 그들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없으면 당장 불편한 존재들. 사회계층의 가장 밑바닥을 형성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공격하여 없애게 되면 강호 무인들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테고, 대야벌은 더 이상 무림이란 말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을 공격하겠다니.
더구나 밀천까지 등장한 상황이 아닌가?
“ 밀천이 등장했기 때문에 야장을 공격할 수 있는 거다. 야장을 없앤 다음 곧바로 밀천과 전쟁을 시작할 참이다. 그렇게 되면 야장 일은 금세 묻히고 만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 강호 무림엔 대야벌이 아닌 범천담대세가만 남게 될 거다. 하지만 네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 생각할 시간이 없다.”
“ 그렇게 급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 지금 너와 내가 만났다는 사실은 오늘 저녁이면 무원의 귀에 들어간다. 그럼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 그렇군요.”
담대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혁련무극과도 같은 약속을 잡아두었다.”
“ 제가 거절하면 그를 만날 필요도 없겠군요.”
“ 물론이다.”
“ 좋습니다. 형님. 따르겠습니다.”
능력이 닿으면 벌주가 된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담대천호는 탁자 위에 놓인 무적뇌화결을 집어 들었다.
“ 네가 맡아줄 곳은 철장전이다.”
“ 안정전이 아니고 철장전이란 말입니까?”
안정전에는 야장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무원과 창노가 있기 때문이었다.
“ 안정전은 야장 중앙에 있고, 야장의 모둔 힘이 모여 있다. 그곳부터 치기 시작하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 외부부터 정리하면서 밀고 들어가는 게 낫다.”
“ 그렇군요. 공격 시간은 언젭니까?”
“ 오늘 밤 자시 말이다.”
“ 알겠습니다. 정확하게 그 시간에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 믿겠다.”
담대만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형님이 하시는군요.”
“ 그건 걱정마라. 만일 네가 무적뇌화결을 천단십절마예에 심고 나면 얼마든지 도전을 받아주겠다.”
“ 믿겠습니다. 형님.”
담대만승과 담대천호는 서로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 그럼 가보겠다.”
“ 생사림은 누가 맡을 겁니까?”
“ 혁련무극에게 맡길 참이다. 그럼 내일 보자꾸나.”
“ 형님은 나서지 않을 참입니까?”
“ 이번 일은 벌내쟁투로 처리될 것이다. 난 관여할 수 없다.”
“ 상대는 무림 세력이 아니고 야장입니다. 형님. 벌내쟁투로 처리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 야장은 제자를 받았다. 제자를 받은 이상 야장 또한 대야벌 세력의 한 곳이다.”
“ 그런 명분이 있었군요.”
담대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수고해라.”
담대만승은 밖으로 나갔다.
“ 급했구려.”
담대천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느닷없는 방문에 느닷없는 제의.
물론 그의 말처럼 대야벌을 범천담대세가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소, 형님.”
자식이 천재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다.
담대무궁의 비교 대상은 당연 연우강일 수밖에 없다. "
그런데 담대무궁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연우강보다 못했다. 게다가 공정하게 경쟁을 했던 것도 아니다.
대야벌 벌주를 아비로 둔 담대무궁은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받았다. 반면에 연우강은 상당수가 나서서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우강은 승승장구하고 담대무궁은 계속 바닥을 기었다.
천재는 연우강이고 담대무궁은 평범한 사람 이상도 이하도 이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가장 강자인 혁련무극에게 연우강을 없애 달라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 아무튼 난 어떤 상항이라도 상관없소. 난 벌주 자리만 원할 뿐이오.”
담대천호는 빙그레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
“ 알아봤습니까?”
창노는 찻잔을 건네며 물었다.
담대만승의 동생인 담채천호를 만나고, 야궐 궐주 혁련무극을 만나고 다녔다는 정보가 들어온 건 반 시진 전이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무원은 밖으로 나갔다가 지금 들어오는 중이었다.
“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 같네.”
“ 그들이 만난 이유는 알아냈습니까?”
“ 술을 마셨다네.”
“ 술을 마셨다고요?”
“ 마지막 남은 눈엣가시를 제거하지 않았는가. 축배의 잔을 들 만도 하지.”
“ 공손정우 일행을 없앤 사람은 우강입니다. 형님.”
“ 누가 됐든 공손정우 일행이 죽임을 당함으로써 대야벌은 담대만승 세상이 됐지 않는가. 이제 그는 영구 집권을 획책할 거네.”
“ 영구 집권이라고요?”
“ 대야벌 무인들의 꿈이 벌주라면 벌주의 꿈은 영구 집권이네.”
“ 형님도 그런 꿈을 꾸었습니까?”
“ 나도 사람이네, 이 사람아.”
“ 하지만 형님은 몰라도 담대만승 그놈은 절대 안 됩니다.”
“ 자네가 막을 참인가?”
“ 우강이 녀석이 있는데 그걸 왜 제가 막습니까. 아마 담대만승 그놈은 우강 그 녀석을 죽이고 싶을 겁니다.”
“ 맙소사.....”
무원의 손에서 찻잔이 뚝 떨어졌다.
“ 왜 그러십니까?”
창노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 담대만승이 그들을 만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 들어온 정보가 없다면서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 방금 자네가 말하지 않았는가.”
무원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밖을 향해 소리쳤다.
“ 향노!”
“ 부르셨습니까? 장주님.”
옆방 문이 벌컥 열리며 향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당장 잠룡대로 가서 적이 공격해 올 거라고 알리게. 한시가 급하네.”
“ 알겠습니다. 장주님. 지금 당장 다녀......”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향노의 말을 자르고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을 관통하여 들려왔다.
“ 아뿔사!”
무원은 바로 밖으로 튀어나갔다.
콰앙!
문을 부수고 뛰쳐나간 그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 맙소사!”
무원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장인전과 복장전이 있는 서쪽으로 불길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 뭐, 뭡니까. 형님?”
뒤따라 올라온 창노가 질겁한 얼굴로 물었다.
“ 우리였네.”
“ 설마 담대만승이 우릴 공격한단 말입니까?”
“ 그런 모양이네.”
무원은 넋을 잃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뿐만이 아니었다. 남쪽과 동쪽에서는 달빛을 뚫고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의미였다.
“ 장주님!”
“ 장주님!”
곧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연락을 맡고 있는 야장 무인들이었다.
“ 보고하게.”
무원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지금 철장전을 공격해 온 자들은 군마련 무인들입니다. 군마련 련주 담대천호가 이끌고 있습니다.”
“ 우리 장인전을 공격해 온 자들은 철무련 무인들입니다. 련주인 혈사신군 모두악이 선두에 서 있습니다.”
“ 우리 복장전을 공격해 온 자들은 묵야련 련주를 비롯한 철혈전마대 무인들입니다.”
“ 우리 취몽전은 사해림 무인들입니다. 림주인 광해용왕 해천일이 이끌고 있습니다.”
“ 우리 천농전은 사자림 무인들입니다. 림주인 철사자왕 악붕이 선두에 서 있습니다.”
“ 으음!”
무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각 세력의 수장이 앞장섰다면 전 전력이 전부 동원됐다고 봐야 한다.
“ 허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진가 보군.”
무원은 창노를 보았다.
“ 검이 필요하십니까?”
“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창노는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창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무원은 금제를 풀었다.
그의 단전이 활짝 열리며 그동안 갇혀 있던 내공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휘이익!
전 내공을 끌어올리자 장포가 팽팽하게 부풀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부상하듯 허공으로 떠올랐다.
곧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 난 야장의 장주이자 전대 벌주였던 장만보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무언의 외침이 천둥처럼 야장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 헉!”
“ 허억!”
다급한 얼굴로 명령을 기다리던 야장 무인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낙일마검 장만보.
일개 낭인에서 벌주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임기조차도 채우지 못하고 팔황정벌에서 산화했다는 비운의 벌주.
설마 야장의 장주였던 그가 전대 벌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은 멍한 얼굴로 무원을 보았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야장을 공격하던 각 문파 무인들조차도 장만보란 외침에 동작을 멈췄다.
“ 그랬던가?”
담대천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파면인 얼굴과 뭔가 비밀이 많아 보이는 듯했던 행동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그는 야장을 장악하며 권토중래할 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 그래서 연우강에게 그렇게 공을 들였던 거로군.”
이번 야장 공격은 참으로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귓전에 장만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장 장주로서 그대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모든 야장 무인들은 대야벌에서 탈출하라!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모든 무인들은 대야벌에서 탈출하라!”
“ 그럼 창노는 창궁무제 남궁우문이겠네. 재미있군.”
담대천호는 환하게 웃었다.
“ 지옥군마대는 듣거라!”
담대천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 하명하십시오. 련주님!”
“ 지금 당장 안정전까지 밀고 들어간다!”
“ 존명! 지옥군마대는 돌격하라!”
“ 돌격하라!”
살기 가득한 외침과 더불어 지옥군마대 무인들이 무서운 기세로 짓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야장 수신위는 듣거라!”
그때 또다시 무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 하명하십시오, 장주님.”
“ 대야벌을 탈출하라! 이것도 장주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탈출하라!”
“ 존명!”
곧이어 야장 곳곳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고 수백 명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몸을 날렸다.
곧 사방에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가세.”
지붕에서 내려온 무원은 욱일승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곳 또한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담대만승이 마지막 재물로 야장을 택한 건가?”
무원이 다가가자 욱일승이 물었다.
“ 그렇습니다. 야장 주변엔 천라지망이 펼쳐진 것 같습니다.”
“ 어떻게 할 참인가?”
욱일승은 다시 물었다.
“ 우선 놈들을 유인해야 합니다.”
“ 어디로 유인할 참인가?”
“ 잠룡대로 유인을 해야겠습니다.”
“ 좋네. 그럼 그쪽으로 가세.”
“ 아닙니다. 어르신. 생사림에는 저와 창노 그리고 향노 셋만 가겠습니다.”
“ 무슨 소린가?”
“ 최대한 희생을 줄이면서 탈출하는 방법은 그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제가 잠룡대로 갈 테니까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도록 하십시오. 가세.”
무원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다시 전 내공을 끌어올려 고함을 내질렀다.
“ 탈출에 실패한 야장 수신위는 잠룡대로 와라! 다시 한 번 말하겠다. 탈출에 실패한 수신위는 잠룡대로 와라!”
그는 쉬지 않고 소리치며 잠룡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형님!”
두작군이 욱일승을 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얼굴이었다.
“ 무원 말대로 해야 하네.”
“ 놈들을 그냥 두고 가자는 말입니까?”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훗날을 도모하는 거네. 살아 있어야 나중에 우강이 그 녀석과 무원을 도울 수 있네. 지금은 화가 난다고 적을 향해 돌진할 때가 아니란 말이네.”
“ 젠장!”
두작군은 욕설을 내뱉었다.
과거처럼 또다시 아무것도 못 하고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 진정해라. 작군.”
옆에 있던 허일삼이 두작군의 어깨를 툭 쳤다.
“ 넌 진정이 되는 모양이지만, 난 아냐.”
“ 나도 화가 난다. 하지만 이번엔 전과 다르다. 그땐 벌주께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이번엔 누가 됐든 반드시 돌아온다. 난 칼을 갈며 기다릴 참이다.”
두작군을 바라보는 허일삼의 눈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역시 두작군과 다르지 않았다. 능력이 허락된다면 당장 담대만승에게 찾아가 목을 따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일천독행신을 익혔고, 일천파류혼과 일천파세혼을 익혔지만 담대만승을 없앨 능력은 되지 않는다. 혀를 깨물고 참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두작군은 고개를 돌려 이숙경 옆에 있는 몽요를 보았다.
몽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생인 쿠라다 소라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 암자대는 전방을 맡고, 인사대는 우측, 은자대는 좌측을 맡는다. 그리고 호가대는 후미를 맡아라.”
“ 하이!”
나직한 외침과 함께 동영 인자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오백 명에 달하는 인자들이 금릉 연씨 세가 가족과 두연화를 중심으로 진영을 구축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 가급적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게. 적을 없애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자네들은 연 가주 가족을 보호하는데 총력을 다하게.”
턱! 턱턱! 턱턱!
욱일승의 말에 주변에서 가슴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어느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는가?”
욱일승은 옆에 있는 수천월에게 물었다.
“ 무원이 잠룡대 방향으로 갔으니까 놈들 또한 그쪽으로 몰릴 거네.”
“ 하면?”
“ 복장전을 우회해서 패천림 쪽으로 가세.”
“ 들었는가?”
욱일승은 전면을 향해 말했다.
“ 알겠습니다.”
앞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일행은 바로 출발했다. 주변을 살피며 나아가던 그들이 멈춘 곳은 복장전을 오 리 가량 남겨둔 지점이었다.
복장전 각 건물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오르고 주변은 온통 연기로 들어차 있었다. 그 속에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죽어가며 내지르는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일행은 주먹을 불끈 틀어쥔 채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를 걸었을 때 선두에서 나아가던 암자대 대원들이 일제히 신호를 보내왔다.
일행은 조용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 이게 살기라는 모양이지.]
이숙경은 얼굴을 찌푸리며 몽요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주 거북살스러운 느낌이 온몸을 짓누르며 살갗이 따끔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전음도 하세요?]
몽요는 신기한 듯 이숙경을 보며 물었다.
[ 우진이에게 배웠는데, 비밀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유용하더구나!]
[ 맞아요. 이곳엔 사릭가 자욱하게 깔려 있어요.]
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라지망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적들이 포진해 있는 듯 했다.
[지금부터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
몽요는 이숙경 옆에 있는 두연화에게로 시선을 주고는 연우진의 아내인 소여진의 허리를 감았다.
시선을 받은 두연화는 이숙경의 손을 잡았다. 이어 이자승은 연운상의 허리를 감싸 안고, 두작군은 연금석을 안았다.
그리고 그들을 한가운데 두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는 정천사마 일행이 한 명씩 섰다.
“ 출발하세!”
스스스! 스스스!
욱일승의 말이 떨어지자 먼저 동영 인자들이 움직였다.
파앗! 파앗! 파앗!
곧이어 중앙에 포진해 있던 욱일승 일행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욱일승 일행은 일부러 인기척을 냈다. 전방과 좌우 측에서 몸을 날려 가는 인자들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 놈들이다!”
“ 야장 놈들이다!”
예상대로 주변에 은신해 있던 묵야련 무인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내질렀다. 바로 그 순간 나아가던 인자들의 검이 그들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윽!”
“으윽!”
“ 컥!”
목을 감싸 쥐고 쓰러지는 묵야련 무인들의 눈에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분명 인기척을 감지한 곳은 앞쪽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목 안에 검이 박혀 있는 것이었다.
“ 바카야로!”
인자들이 속삭이듯 소리치며 검을 뽑았다.
털썩! 털썩!
“ 살수다. 살수들이다. 조심하라!”
“ 무형혈인대는 살수들을 제압하라!”
묵야련 진형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 이런.”
전방으로 빠르게 달려가던 욱일승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무형혈인대. 묵야련이 보유한 살수 조직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 하지만.....”
휙!
오 장 앞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뛰어나왔다. 동영 인자들의 공격을 피한 묵야련 무인인 듯햇다.
욱일승의 검이 전방으로 쭉 내밀어졌다.
검 끝에서 검은색 고리 하나가 묵야련 무인을 향해 폭사돼 갔다.
“ 크윽!”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묵야련 무인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 막으면 죽는다!”
그는 차갑게 중얼거리며 시체를 지나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