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51화 (151/232)

제 5장 탈출

낭희전으로 잠룡대 대원들이 모여든 것은 장만보라는 외침이 들려온 후였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아 연우강을 기다렸다. 하지마 반 시진이 지나도 연우강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끄응!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장사덕은 얼굴을 지푸렸다.

야궐 무인들이 펼친 천라지망으로 인해 외부로 나가는 길은 전부 막혔다. 그런데 명령을 내려야 할 연우강이 보이지 않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 차나 마셔!”

출입문 쪽에 있던 군무옥이 낮게 말했다. 언제 따라왔는지 그는 찻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 지금 차가 넘어갑니까?”

“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도 못 들었어? 그리고 야궐 놈들은 당분간 안으로 들어올 일 없으니까 도박을 하든지, 차를 마시든지, 밥을 먹든지 아무거나 해.”

“ 야궐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건 무슨 소리요?”

장사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우린 인질을 잡고 있잖아, 인마.”

“ 인질이라고요?”

“ 야궐, 묵야련, 사자림, 사해림 무인을 합치면 육백여 명이나 된다. 그놈들이 이 안에 있는데 공격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 아!”

장사덕은 탄성을 내질렀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대원들 또한 이제야 야궐 무인들이 공격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다.

“ 쓸데없는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전쟁은 느긋한 놈이 이기는 거야.”

군무옥 옆에 앉아 있던 백을상이 나직이 말했다.

장사덕을 비롯한 몇몇이 차가 준비돼 있는 곳으로 가서는 주전자와 찻잔을 가지고 각 탁자를 돌며 대원들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 대외담당관 본 사람.”

장사덕은 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이들은 전부 이곳으로 왔지만 담대무궁과 그를 따르던 몇몇은 보이지 않았다.

“ 진작 튀었겠지. 아직 남아 있겠냐?”

찻잔을 받던 이철상이 이죽댔다.

“ 그나저나 총대주는 왜 안 오는 거야?”

장사덕은 낭희전 창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대원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연우강은 그때 단고웅 일행을 만나고 있었다.

“ 총대주님.”

단고웅은 곤혹스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물론 흑호군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난 자네들을 데리고 갈 수 없어.”

“ 저희들을 못 믿으시는군요.”

“ 아냐, 믿어.”

“ 그럼 왜 함께 가지 못한다는 겁니까?”

“ 출세하려는 이유가 뭐지?”

“ 제가 출세 때문에 따라나서겠다고 한 줄 아십니까?”

“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내 질문은 이곳 잠룡대가 아니라 묵야련에서 출세하려고 했던 이유가 뭐냐는 거야.”

“ 그건.....”

“ 개인적인 욕심만 있었던 거야?”

“ 그건 아닙니다.”

“ 가족이란 말이지?”

“ 그렇습니다.”

단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도 그랬어. 가족을 위해 군에 갔고, 이 전쟁을 시작한 것도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였어. 담대만승이 내 가족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난 이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우리 모두가 그럴 거야. 상관이 기분 나빠하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광대가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시켰을 때도 당당하게 못 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내 뒤에 나만 바라보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가족이 있는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봐. 만일 자네가 날 따라나서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어?”

“ 총대주님.”

단고웅은 참담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할게.”

“ 말씀하십시오.”

“ 반 시진만 시간을 끌어 줘.”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단고웅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척자빈을 보았다.

“ 우린 이곳에 가족이 없으니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총대주.”

“ 영감, 안 돼.”

“ 무슨 소립니까?”

“ 나 아주 떠나는 거 아냐.”

“ 그럼 돌아올 겁니까?”

“ 난 별명이 개독새야, 영감. 개독새란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라고.”

[ 백록원의 태을검제 자운을 찾아가.]

[ 무슨 말입니까?]

느닷없는 전음에 척자빈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 가서 창노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해. 그럼 그 영감이 알아서 자리를 마련해 줄 거야.]

“ 다시 돌아온단 말입니까?”

[ 그쪽은 언제 뚫어놨습니까?]

연우강이 단공우에게는 비밀로 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척자빈은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곧바로 전음을 보냈다.

“ 난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놈이야.”

“ 정말로 돌아오실 겁니까?”

이번엔 단고웅이 물었다.

“ 돌아오지 않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위험해져. 아무튼 시간을 좀 끌다가 밖으로 나가.”

“ 부하들 중에 밀고하는 자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설사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도중에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럼 각 문파의 수장들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 사실대로 말해도 돼.”

“ 네?”

“ 상관이 자꾸만 물으면 사실대로 말해야지 방법이 없잖아.”

“ 그래도 상관없겠습니까?”

“ 사실대로 말해야 해. 그래야 내가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

“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 아무튼 지금은 그 정도만 알고 있으면 돼. 그리고....”

연우강은 척자빈을 보았다.

“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 나가기 전에 불 좀 질러주고 가라고.”

“ 다시 돌아온다면서 굳이 불을 지를 필요가 있습니까?”

“ 이사 갈 때는 더 좋은 집으로 가야 하는 거잖아.”

“ 집을 옮기실 참입니까?”

“ 대야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갈거야.”

“ 클클클!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시원하게 불을 질러놓고 가겠습니다.”

척자빈은 빙그레 웃었다. 대야벌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 그곳은 다름 아닌 천상천이었다.

“ 아무튼 수고들 해.”

연우강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그는 곧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사실대로 말해야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단고웅은 척자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 그건 나도 모르네.”

“ 짐작도 안 됩니까?”

“ 그동안 겪으면서 느낀 점인데, 총대주의 내심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네. 우린 시키는 일이나 하세.”

“ 끄응! 알겠습니다. 저희들은 북쪽에서 시작하겠습니다.”

“ 그럼 우린 남쪽에서 북으로 올라가며 불을 지르도록 하겠네. 끝나고 서쪽에서 보세.”

“ 알겠습니다.”

단고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호군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단고웅이 떠나고 잠시 후 척자빈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귀괴옹 지을덕, 녹혈마 파득인, 장백마도 여홍삼, 환요 인마 철홍이 그 옆으로 모여들었다.

“ 어떻게 됐는가?”

지을덕은 척자빈을 보며 물었다.

“ 가면서 이야기하세.”

“ 어디로 간단 말인가?”

“ 이곳을 몽땅 태워버리라고 했네. 우리가 맡은 곳은 남쪽이네. 전부 남쪽으로 간다!”

척자빈은 일행에게 소리치며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 몽땅 태운다고?”

지을덕은 그를 따르며 물었다.

“ 다음에 돌아올 땐 전망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구먼.”

“ 전망 좋은 곳?”

“ 그러니까.....”

척자빈은 방금 연우강과 나눴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 가능할 거라고 보는가?”

이야기를 듣고 난 지을덕은 물었다.

많은 문파들이 사라지고 과거에 비해 전력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대야벌은 여전히 무림 최강 세력이다. 게다가 강자들이 즐비하다. 대야벌 내부에서 벌주로 선출된다면 모를까 힘으로 대야벌을 정복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 하지만 그가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누군가를 없애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네.”

“ 누구를 없앤단 말인가?”

“ 차기 벌주로 가장 유력한 사람이 되겠지.”

“ 그럼 담대무궁, 담대천호, 혁련무극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거란 말이군.”

“ 아직은 내 생각일 뿐이네. 그런데 인요가 보이지 않는 구먼.”

척자빈은 환요인마 철홍을 보았다.

“ 팔자를 바꾸려고 갔어요.”

“ 무슨 소린가?”

“ 잠룡대에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다는 말이에요.”

“ 그러니까 이 급한 와중에도 사내를 만나러 갔다는 건가?”

척자빈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 지금 상황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서른다섯 살 처녀보다 급하진 않아요.”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그렇고 인요가 눈독을 들인 사내는 누군가?”

남쪽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간 척자빈은 일행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물어다. 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각 건물에 불을 놓기 시작했다.

“ 그건 비밀이에요.”

철홍은 싱긋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그게 뭐 비밀이라고 그런가. 인요가 눈독들이고 있는 사람이 흑랑군 총군장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지을덕이 철홍을 따라 들어가며 픽 웃었다.

지을덕의 말대로였다.

일행을 떠난 백자홍은 낭희전 근처 은밀한 곳에서 군무옥을 만나고 있었다.

“ 무슨 일이냐?”

군무옥은 의아한 얼굴로 백자홍을 보았다.

낭희전 안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백자홍이 찾아와 잠깐만 시간 좀 내달라고 한 것이었다.

“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왔어요.”

철홍은 군무옥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 함께 갈 것 같으면 따로 모일 이유가 없잖아요. 시간은 얼마나 있죠?”

“ 총대주가 와 봐야 안다.”

“ 한 식경 정도는 시간 낼 수 있죠?”

“ 그 정도는 가능할 거다. 그런데 한 식경이 필요한 이유가 뭐지?”

“ 좋아요. 그럼 서둘러요.”

백자홍은 군무옥 곁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는 급하게 요대를 풀고 옷을 벗었다.

“ 지, 지금 뭐하는 거냐?”

군무옥은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백자홍이 옷을 벗는 속도는 엄청났다. 이미 단추를 풀어놓은 듯 요대를 풀자 알몸이 드러났다. 그녀는 속옷조차 입지 않은 채였다.

군무옥은 멍한 얼굴로 백자홍의 알몸을 보았다.

옷 위로 볼 때도 몸매가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몸의 그녀는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갑자기 아래쪽으로 피가 급속하게 쏠렸다.

“ 여자가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이유가 뭐겠어요. 뭐 해요?”

백자홍은 군무옥이 꼼짝없이 있자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군무옥은 당황했다.

그동안 훈련을 하면서 백자홍을 눈여겨보긴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군무옥이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안 백자홍은 급하게 손을 놀렸다. 곧 건장한 알몸이 드러났다.

“ 호!”

백자홍의 입가에 뇌쇄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군무옥의 알몸을 스윽 훑어보고는 왼손을 뻗어 군무옥의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군무옥의 아래를 움켜쥐었다.

“ 억!”

군무옥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육참낭아곤으로 적을 잔인하게 도륙하던 전장의 이리 군무옥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노려보듯 백자홍을 쳐다볼 뿐이었다.

“ 백자홍은 내 본명이에요.”

백자홍은 군무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군무옥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숨결은 거칠었고,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 내, 내 본명은 군무옥이오.”

“ 난 부모님이 누군지 몰라요.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고 지금껏 많은 남자를 만났어요. 처녀도 아니에요.”

백자홍은 오른손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 나, 나도 숫총각은 아니오.”

군무옥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게요. 당신은 내 마지막 남자가 될 거예요.”

그녀는 오른손을 끌어당겼다.

“ 어응!”

군무옥은 비명처럼 신음을 내지르며 백자홍을 덮쳤다.

그는 왼손으로 백자홍을 끌어당기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백자홍과 군무옥은 곧바로 벗어놓은 옷 위로 몸을 뉘었다.

두 사람은 마치 몸싸움이라도 하듯 거칠게 뒤엉켰다. 어느 결에 바닥에 깔린 옷을 벗어나 맨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비명과 같은 괴성을 지르며 서로에게 몰두했다.

“ 내 마지막 남자가 되 줄 건가요?”

백자홍은 군무옥 위로 올라타며 물었다.

“ 물론이오. 백 소저의 마지막 남자가 되겠소.”

군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요. 군 공자.”

백자홍은 활짝 웃으며 몸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곧 두 사람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신음은 너무 커서 낭희전 근처까지 들렸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연우강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보았다.

‘ 드디어 임자를 만난 모양이네.’

그는 싱긋 웃으며 낭희전 아래쪽을 잡고 내공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오고 곧 불길이 올랐다.

출입문에 불을 지른 그는 낭희전 외벽을 따라 돌아가면서 불을 놓았다. 곧 낭희전 곳곳에서 벌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잠시 불길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안으로 들어갔다.

“ 어서 오십시오.”

연우강이 들어서자 대원들은 벌떡 일어나며 맞았다. 대원들의 얼굴엔 비장감이 흘렀다.

“ 호들갑 떨지 말고 다들 앉아.”

연우강은 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찻잔에 차를 따라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오른편부터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들어올 때 낭희전에 불을 질렀어.”

“ 알고 있습니다.”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서 시작한 불길이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안쪽으로 스며 들어오고 있었다.

“ 긴말하지 않겠다. 오늘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대야벌로 돌아오지 못한다. 즉 너희들이 바랐던 장밋빛 미래는 물 건너간다는 말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라.”

“ 먼저 총대주는 어떻게 할 건지 그걸 알고 싶소.”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윤허가 물었다.

“ 전쟁터에서는 내일이란 말은 없어. 하지만 한가지는 약속할 수 있어. 만일 살아남는다면 난 이곳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야.”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했다.

“ 어딜 가는 겁니까?”

윤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 난 지상으로 가고, 너희들은 지하로 갈 거야.”

“ 대주를 두고 우리만 도망치란 말입니까?”

“ 너희들이 가는 지하 통로는 이미 알려진 곳이야. 그쪽으로 간다고 해도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어.”

“ 그럴 거면 함께 움직이는 게 낫잖소.”

“ 따로 움직이는 게 훨씬 나아. 나와 장만보 벌주가 함께 가면 최소한 오백 명 이상은 끌고 갈 수 있으니까.”

“ 그분이 정말로 전대 벌주요.”

“ 그럴 거야.”

고개를 끄덕인 연우강의 시선이 이철상에게로 향했다.

“ 말씀하십시오.”

“ 내가 돌아올 때가지 진식을 외부와 내부에 설치하는 방법을 찾아내.”

“ 알겠습니다. 총대주님. 이번엔 반드시 외부와 내부 두 곳에 설치하는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 못 하면 머리를 부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연우강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수여설과 남궁운화를 보았다.

“ 두 사람은....... 갈 거죠?”

“ 물론 가야죠.”

“ 그럼 다음에 봐요.”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 가져 가시오.”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은 연우강을 향해 윤허가 묵사를 던졌다.

“ 이놈은 내가 선물로 준 거잖아.”

연우강은 묵사를 받아들고 윤허를 보았다.

“ 한 번 줬던 선물을 다시 뺏아아 가는 건 아주 치사한 짓이라는 것만 알면 되오.”

“ 살아 돌아와서 돌려주라고?”

“ 그렇소. 총대주. 행운을 비오.”

윤허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우강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 잘 쓸게.”

연우강은 묵사를 허리에 걸쳤다.

“ 한 식경 정도만 있다가 떠나.”

“ 알았습니다. 총대주님.”

이철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행운을 빌게.”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들어갈 때 질렀던 불은 빠른 속도로 지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연우강은 그 불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 백 소저, 잠깐만요.”

군무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백자홍의 허리를 잡았다.

“ 왜요?”

“ 대장께 인사하고 올게요.”

“ 꼭 지금 가야겠어요?”

“ 난 예의가 바른 놈입니다. 백 소저.”

군무옥은 백자홍을 번쩍 들어올려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대충 아래만 가리고 연우강이 있는 낭희전 출구로 몸을 날렸다.

“ 그때처럼 또 혼자 가는 거요?”

군무옥은 연우강 앞으로 날아 내리며 말을 건넸다.

“ 뭐냐 그건?”

연우강은 군무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발가벗은 상태에서 아래만 겨우 가리고 있었다.

“ 혼자 가는 것도 질렸소.”

“ 장가는 남자의 무덤이라고 하던데....”

“ 무덤이 됐든 관이 됐든 일단 가볼 참이오.”

“ 궁합은 맞는 것 같아?”

“ 이거요.”

군무옥은 해죽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 다행이구나. 한 식경 가량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천천히 해.”

“ 나 때문에 기다리라고 한 거요?”

“ 부하 녀석이 장가 좀 가보겠다고 발악을 하는데 방해할 순 없잖아?”

“ 발악한 건 아니오.”

“ 전쟁이 목전에 닥쳤는데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건 발악 중에서도 최고의 발악이야.”

“ 그렇게 되는 거였소? 아무튼 언제 올 거요?”

“ 혁력무극 그자 좀 돌리다가 돌아올게.”

“ 알았소. 몸조심하시오.”

“ 형수씨도 조심하라고 해.”

연우강은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 지금 형수씨라고 한 거요?”

“ 백 소저는 내 부하가 아니잖아. 그리고 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고!”

“ 그럼 앞으로 형님으로 부르는 건 어떻소?”

“ 장가도 가기 전에 죽고 싶냐?”

“ 말이 그렇다는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쇼. 아무튼 잘 갔다 오쇼.”

군무옥은 움찔하더니 백자홍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 오래 기다렸죠?”

군무옥은 앞을 가리고 있던 옷을 휙 던져버리고는 백자홍을 덮쳤다.

“ 일 초만 늦었어도 쫓아가려고 했어요.”

백자홍은 군무옥을 껴안으며 귀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 총대주가 그러는데 한 식경밖에 없답니다.”

군무옥은 급하게 백자홍을 품었다.

“ 그런데 혼자 보내도 괜찮아요?”

백자홍은 군무옥을 꼭 끌어안았다.

“ 전에도 혼자 일천 명을 유인해 갔다가 돌아왔는데요, 뭘.”

“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무인이잖아요.”

“ 그때도 무인이었습니다.”

“ 무인이었다고요?”

“ 혈도부대라고 알아요?”

“ 물론 알죠. 그놈들이 몰살을 당하는 바람에 전에 없이 잠룡을 많이 뽑았는데요. 그런데.”

“ 그놈들을 전부 없앤 사람이 총대주였습니다.”

“ 정말요?”

“ 네.”

“ 자세히 좀 말해봐요.”

“ 정말 듣고 싶어요?”

“ 네.”

“ 조금 전 총대주가 한 말 못 들었어요?”

“ 어떤 말요?”

“ 한 식경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던 말 말입니다.”

“ 맞다.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해요.”

백자홍은 군무옥의 엉덩이를 힘껏 틀어쥐었다.

“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백 소저.”

잠시 후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격정적인 신음이 터녀 나왔다.

[ 싸울 힘은 남겨둬야 한다. 대마.]

그때 군무옥의 귓전으로 마장승의 전음이 들려왔다.

“ 너 같으면 남겨두겠냐, 자식아!”

군무옥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 무, 무슨 소리에요?”

“ 사랑, 그 자식에게 들킨 것 같아요.”

“ 잘 됐네요.”

“ 네?”

“ 우리 관계를 전부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 떳떳하게 만날 수 있잖아요.”

“ 우린 떳떳하게 만나는 게 아니고 떳떳하게 하는 겁니다. 백 소저.”

“ 뭐가 됐든 허락 받은 거잖아요.”

백자홍은 활짝 웃으며 군무옥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한편.

낭희전 안에 있는 대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었다.

“ 이 계단 아래쪽 지하 통로는 과거 생사림 때 사용한 곳으로 적도 알고 있다. 어쩌면 통로 끝에 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지하를 통해 대야벌을 탈출할 것이다. 함께 갈 사람은 지하로 들어오고, 남을 사람은 우리가 떠난 다음 이곳을 나가면 된다.”

이철상은 가장 먼저 지하로 들어갔다.

잠룡 십 조에 속했던 대원들이 아래로 내려갔다.

“ 어차피 담대무궁의 눈 밖에 났으니까 이곳에 남아 있어봐야 의미가 없지. 가자, 철산.”

윤허와 거철산이 아래로 내려가자 다른 대원들 또한 윤허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갔다. 대부분이 아래로 내려가고 남은 사람은 두보관과 막장, 마장승, 사마윤, 백을상, 수여설, 남궁운화까지 일곱 명이었다.

“ 전 할아버지와 함께 갈 테니까 여러분들은 먼저 가세요.”

남궁운화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 우리랑 함께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수여설이 말을 받았다.

“ 할아버지는 내공을 제게 전부 물려주셔서 전과 달라요. 제가 보호해 드려야 해요.”

“ 그럼 나도 남겠습니다.”

막장이 남궁운화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아니에요. 이건 할아버지와 제 일이고 남궁세가 일이에요. 막 대협은 두 대협을 모시고 떠나도록 하세요.”

“ 남궁 가주.”

수여설이 남궁운화를 불렀다.

“ 걱정 마세요. 언니. 연 공자보단 못하지만 강호 무림에서 절 어찌할 수 있는 무인은 거의 없어요.”

남궁운화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 그건 알지만......”

수여설은 말끝을 흐렸다.

“ 막내 형수는 내가 모시고 갈 테니까 걱정 마시고 떠나십시오.”

그때 출입문 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군무옥이 불길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 조금 전엔 대장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지 않았냐?”

“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 대장이 빡 돌아버릴까 봐?”

“ 그 인간이 돌면 말릴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 알았다. 그럼 네가 막내 형수님 모시고 대장을 따라가라. 우린 금릉 연씨 세가에서 출동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마.”

“ 그래, 가시죠. 막내 형수님.”

군무옥은 싱긋 웃으며 남궁운화를 보았다.

“ 언니 나중에 봐요.”

혹시 수여설이 말릴까 봐 남궁운화는 밖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 우리도 가자꾸나.”

두보관은 아래로 향했다. 곧 나머지 일행도 두보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밖으로 나온 남궁운화는 군무옥에게 물었다.

“ 동쪽으로 갔습니다.”

“ 그럼 가요.”

두 사람은 바닥을 차며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서쪽으로 몸을 날리는 그 시각, 무원과 창노, 향노는 잠룡대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 조용하군요.]

격전을 치르고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뜻밖에도 잠룡대가 조용하자 창노는 무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저 앞에는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네.]

[ 그렇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뚫고 들어가야지 별수 있는가?]

무원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보다 한 발 늦게 창노와 향노의 신형 또한 가공할 속도로 나아갔다.

“ 적이다!”

이십여 장 정도를 나아갔을까.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숲에서 터져 나왔다. 세 사람을 발견한 야궐 무인이 내지른 외침이었다.

“ 차앗!”

무원은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그의 검 끝에서 붉은 석양처럼 새빨간 광채가 흘러나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 크악!”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무원의 무위는 가공했다.

검 끝에서 쏘아져 나간 광채는 십 장 밖에 있는 야궐 무인의 몸을 양단했다.

“ 타앗!”

“ 차앗!”

무원에 이어 창노의 검에서 푸른색 광채가 쏘아져 나가고 향노의 검에서는 검은색 광채가 폭발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전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 사람은 빠르게 전방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야궐 무인들의 대응도 빨랐다. 세 사람이 삼십여 장을 나아가기 전에 수십 명이 딜려들었다.

“ 타아아!”

또다시 무원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검 끝에서 석양빛 노을이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달빛을 헤집고 나아가는 핏빛 광채는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했다.

무원의 독문검법인 낙일마검의 이 초 낙일사홍이었다.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무원 전방을 가로막았던 자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갈가리 찢겨 나갔다.

“ 나, 낙일마검법!”

어둠 속에서 경악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궐은 전부 다섯 개의 문파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사막에서 잠룡 십 조에게 몰살을 당했던 단철도문과 혈라마문, 대라검문, 비도사문, 흑마괴문이다.

방금 고함을 내지른 자는 혈라마문의 문주 혈마광자 도철이었다.

도철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커져 있었다.

그가 전대 벌주인 낙일마검 장만보의 낙일마검법을 곧바로 알아본 이유는 검법의 특징 때문이다.

낙일마검법을 펼치게 되면 노을과 같은 광채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그 광채를 접한 자의 몸은 갈가리 찢겨나간다고 하였다. 그 무공의 잔인함 때문에 낙일검법이 아니라 낙일마검법으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만일 달빛이 없는 밤이었다면 도철은 낙일마검법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이 환하게 떠 있고, 생사림의 건물을 태우는 불길이 이곳까지 미치고 있어 비교적 명확하게 사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 정말로 장만보란 말이냐?”

그는 넋을 잃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 아악!”

“ 으아악!”

“ 아악!”

도다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혈라마문 문도들은 놈들을 막아라! 아니 죽여라!”

퍼뜩 정신을 차린 도철은 고함을 질렀다.

“ 그럼 안 되지.”

“ 헉!”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철은 질겁하여 검을 휘둘렀다. 부지불식간에 휘둘렀움에도 불구하고 도철의 검에서는 검탄 강기가 쏘아져 나갔다.

퍽! 퍽퍽퍽!

그러나 도철이 쏘아낸 검탄강기는 나무만 잘라냈을 뿐, 목소리의 주인은 그 곳에 없었다.

“ 어기전성......?”

자신의 흔적을 숨기기 위해 일정 거리 떨어진 곳으로 목소리만 보내는 고절한 수법이 바로 어기전성이었다. 더불어 어기전성을 펼칠 정도면 특급 고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파앗!

위험을 감지한 도철은 몸을 튕겨 자리를 옮겼다. 암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재빨리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쐐액!

천리지청술을 펼치자마자 엄청난 소성이 귓전으로 잡혀들었다. 그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차앙!

푸욱!

“ .......!”

입은 쩍 벌어졌지만 도철의 입에서는 비명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도철은 고개를 숙였다.

붉은색 줄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는 줄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이동했다.

‘ 연우강!’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붉은 줄은 검은 철립을 쓰고 궤짝을 맨 연우강의 허리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연우강과 거리는 무려 삼십여 장에 달했다.

“ 쉿!”

연우강은 집게손가락을 펴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도철 목 뒤로 튀어나온 뇌섬에 의념을 보냈다. 뇌섬은 도철의 목을 감아돌았다.

‘ 어떻게..’

도철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짧은 거리도 아니고 무려 삼십 장이나 된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줄이 달린 무기를 사용하여 공격을 성공한 것이다.

[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 그냥 현실을 받아들여.]

스악!

사망혈삭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도철의 목을 단숨에 잘라냈다. 목이 완전하게 절단됐지만 도철의 입에서는 비명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도철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연우강에게로 회수되는 작은 물체를 좇았다. 하지만 뇌섬이 연우강의 허리춤으로 모습을 감추기 전에 도철의 신형이 쓰러졌다.

털썩!

몸통이 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잘려나간 머리가 분리됐다.

“ 문주께서 당했다! 문주께서 당했다!”

주변에 있던 혈라마문 문도들은 질겁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 저놈이다. 저놈이 문주를 해쳤다!”

혈라마문 문도들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그럼 난 더 좋고.”

연우강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혈라마문 문도들을 향해 돌진했다. 십여 장을 남겨둔 지점에서 연우강의 양쪽 어깨가 강하게 튕겨졌다.

쐐애액! 쐐액!

순간 연우강의 상체에서 사망정주가 공간을 갈랐다.

“ 커억!”

“ 크아악!”

“ 아악!”

수십 명의 몸에서 솟구친 피로 달빛이 붉게 물들었다.

휘이익!

바람 소리와 더불어 쏘았던 사망정주들이 돌아와 본래의 자리로 장착됐다. 시체를 둘러보며 연우강은 걸음을 옮겼다.

휙! 스윽! 파앗!

또다시 사방에서 진득한 살기가 밀려왔다.

연우강의 입가에 어린 살소가 더욱 진해졌다.

턱! 턱턱턱! 턱턱!

마치 먼지를 터는 것처럼 그의 양손이 몸 곳곳을 후려쳤다. 양손이 몸을 치고 나올 때마다 전장으로 검은 광채가 쏘아져나갔다. 빛살처럼 나아가는 그것들은 사망마비였다. 또다시 어둠 속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 크아악!”

“ 아악!”

사망마비를 수거하고 있는 데 십여 장 앞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휙! 휙휙!

그리고 세 사람이 연우강 앞에 나타났다.

“ 바로 가죠.”

인사할 겨를도 없이 연우강은 잠룡대 안으로 몸을 날려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 대장이오?”

어둠 속에서 군무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군무옥과 남궁운화가 걸어나왔다.

“ 얼레?”

연우강은 깜짝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

“ 난 백소저가 죽어도 따라가라고 해서 왔소.”

“ 형수씨가 왜 따라라고 했는데?”

“ 바로 그 형수씨란 말 때문이지 뭐겠소. 아무튼 대장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군무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길을 잡았다.

“ 심심하진 않겠네. 아무튼 잘 왔다. 그런데 남궁 가주는......”

“ 전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왔어요.”

남궁운화는 창노 곁으로 가며 대답했다.

“ 난 아직 팔팔해 녀석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창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는 남궁운화의 손을 꼭 잡았다.

“ 이제 가 볼까요?”

인사가 끝나자 연우강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 우릴 막고 있는 놈들은 누구냐?”

무원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 전부 다 모여 있을 겁니다.”

“ 쉽지가 않겠구나.”

무원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 낙일마검 장만보가 잔챙이들을 겁내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 허허허! 그렇게 되는 거냐?”

“ 물론입니다.”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 우리도 가세.”

무원은 일행을 향해 소리치며 연우강을 쫓아 몸을 날렸다.

여섯 명이 달려가는 사이에도 생사림의 각 건물은 거칠게 타오르며 뜨거운 숨결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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