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52화 (152/232)

제 6장 두 번째 선택은?

살수의 강함을 결정짓는 잣대는 내공의 대소가 아니라 은밀함과 추격술이다. 누가 얼마나 은밀하게 움직여 상대를 없애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그래서 살수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야장의 복장전과 패천림 사이에서 싸우는 살수들은 달랐다. 동영의 인자들과 묵야련의 무형혈인대가 격돌한 그곳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선두에서 적을 향해 공격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은 욱일승 일행이었다. 욱일승, 이자승, 수천월, 갈인효, 네 사람이 일렬로 늘어선 채 전방을 향해 각자의 무공을 난사하고 있었다. 욱일승의 십육마환무정검과 이자승의 용황신공은 전방을 초토화시키고, 수천월의 빙공은 주변을 꽁꽁 얼렸다. 그리고 갈인효의 지옥청화독공이 스치고 간 곳은 물처럼 흐물흐물 녹아 내렸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은신술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무는 잘리고, 풀은 독에 녹거나, 빙공에 얼거나, 자잘하게 잘려 눈처럼 휘날린다. 아무리 강한 은신술이라고 해도 빗자루로 쓸 듯 무공을 펼치면 방법이 없었다.

간신히 네 사람의 공격을 피해 도망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변에 은신해 있는 동영 인자들은 도망치는 무형혈인대 무인들의 목을 향해 가차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후펴 파는 듯한 통증에 무형혈인대 무인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 으음!”

중년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무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는 무형혈인대 대주 잠객 창일이었다. 창일이 이끄는 무형혈인대가 맡은 임무는 복장전에서 도망치는 야장 무인들의 격살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살수가 나타났다는 전갈이 와서 부하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는데, 적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 접니다. 대주님.”

바로 그때 부대주 나일상이 몸을 날려왔다.

“ 어떤 놈들이냐?”

창일은 나일상을 보며 물었다.

“ 빙공과 독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설마 그들이란 말이냐?”

지옥에서 나온 자들이 연우강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지옥청화도공의 주인인 갈인효였다.

“ 그런 것 같.... 커억!”

나일상의 입에 쩍 벌어지며 목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 웬 놈이냐?”

창일은 밟고 있던 나뭇가지를 차며 몸을 날렸다. 그는 전 내공을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날 노리고 왔단 말이지?”

창일은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렸다. 잠시 후 그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월림 오대 비기와 더불어 대야벌 최고 은신술이라고 불리는 은형무였다.

“  흥!”

“ 놈!”

허공에서 코웃음이 들려오자 창일은 곧바로 몸을 날리며 쥐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은 허공만 잘라냈을 뿐이었다.

“ 대야벌 최고라고 들었다.”

또다시 허공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계집?’

창일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방금 귓전으로 들려온 것은 여자 목소리였던 것이다.

“ 어기전성을 사용하는 모양이구나.”

전 내공을 끌어올린 창일은 가공할 속도로 주변을 휩쓸고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것도 결려들지 않았다.

휙!

툭!

바로 그때 오른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일은 반사적으로 그곳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스악!

창일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나무 위쪽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목소리의 주인은 없었다.

투둑!

파앗!

창일은 잘려나간 나무 단면을 차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간 창일의 검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뚝!

“ 썅!”

욕설과 함께 창일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쏘아져갔다. 그의 검이 좌우로 휘둘러지고 소리가 들려왔던 곳이 초토화됐다.

툭!

바닥으로 내려서자마자 오르편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창일의 신형이 공간을 단축했다. 허공에 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기 때문에 그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창일의 신형은 순식간에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공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천리지청술을 펼치고 귀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역시 이번에도 계집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순간 뒤편에서 바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거리가 약간 멀어 십여 장 가량이었다.

창일은 곧바로 바닥을 차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휙!

삼 장가량 나아갔을까.

느닷없이 허공에서 섬뜩한 기운이 튀어나왔다. 창일은 급하게 몸을 틀었다. 하지만 섬뜩한 기운은 틈을 주지 않고 창일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창일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가슴을 보았다.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고 있는 검 한 자루가 가슴으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중원의 검이 아니라 동영의 왜도였다.

창일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은형무가 풀리며 모습이 드러났다.

왜도가 파고든 곳은 창일의 오른편 가슴이었다.

“ 누구냐?”

창일은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앞 허공이 일렁거리는 듯하더니 몽요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은밀막부의 가주.”

몽요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 그랬군. 어쩐지 흔적이 남지 않는다 했어.”

창일의 시선이 몽요의 왼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조약돌 서너 개가 들려 있었다.

“ 그걸로 난 현혹했더냐?”

“ 넌 조약돌 소리를 못 듣더구나.”

“ 그건...”

창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분명 처음에 뭔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보다 나뭇가지 부러진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런 후로는 뭔가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계집은 계속해서 조약돌을 던진 모양이었다.

“ 내가 나무를 공격할 때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을 이용해서 조약돌을 던졌구나.”

“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서.”

몽요는 손목을 틀며 왜도를 뽑았다. 그러고는 창일의 목을 향해 횡으로 휘둘렀다.

스악!

그녀의 검이 창일의 목을 통과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창일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휙!

창일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잡아챈 그녀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일행은 상당히 전진하여 패천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욱일승 일행 근처로 간 그녀는 적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창일의 머리를 던졌다.

“ 대주의 머리다! 대주가 당했다!”

질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우왕좌왕하는 적의 모습이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 전력으로 간다!”

욱일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내공을 검에 주입하며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일행은 거침없이 천라지망을 돌파하여 대야벌을 나섰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생사림 쪽을 살펴보았다. 생사림이 있는 곳 하늘로 새카만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잠시 연기를 바라보던 일행은 어둠 속을 향해 몸을 돌렸다.

생사림 하늘을 가득 채운 연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또 있었다. 그는 야궐의 궐주인 야제 혁련무극이었다.

혁련무극이 있는 장소는 생사림 서문과 당호 중간 지점이었다.

" 접니다. 궐주님."

어둠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육십 대 노인이 혁련무극 앞으로 다가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이 노인은 야궐의 총관이자 혁련무극의 오른팔인 단야 유악재였다.

" 어떻게 됐는가?"

혁련무극은 유악재를 보며 물었다.

" 파견 보냈던 무인들이 멀쩡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 으음!"

혁련무극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번졌다.

그가 생사림을 포위한 채 기다렸던 것은 파견했던 무인들의 안위가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압박이 외부에서 가해지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나로 뭉쳐 그 압력에 대항하거나, 반란을 일으켜 지휘관을 포박하여 투항하게 된다.

혁련무극이 바랐던 것은 후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문파에서 파견 보낸 무인들은 잠룡대로 들어갈 때부터 거의 개 취급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식 체력훈련까지 받았다면 반감은 극에 달했을 터였다. 그래서 그들이 들고 일어나기를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아무 일 없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 다른 말은 없던가?"

" 불을 질러달라고 해서 각 건물에 불을 놓고 나왔답니다."

" 연우강의 명을 따랐단 말이군."

" 그렇습니다. 궐주님. 그리고....."

유악재는 말끝을 흐렸다.

" 말하게."

" 혈라마문 문주를 비롯해 백여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 무슨 소린가?"

여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혁련무극이 버럭 소리 쳤다.

" 방금 들어온 보곱니다. 혈라마문이 있는 곳으로 무원 일행이 들이닥친 모양입니다."

" 무원이 정말 장만보라고 하던가?"

" 무원은 낙일마검법을 펼이고, 창노는 창궁대연검법을 펼쳤다고 합니다."

" 정말인가?"

" 옆에서 보질 못해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낙일마검과 창궁무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 그럼 그자들에게 도철이 당했단 말인가?"

" 도철을 해친 자는 그들이 아니었답니다."

" 하면?"

" 연우강이었다고 합니다."

" 연우강이라고?"

혁련무극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연우강이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담대무궁을 바보로 전락시켜 버린 그의 능력만 보아도 그 뛰어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연우강이 도철을 없앨 정도로 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 그렇습니다. 연우강에게 당한 문도가 장만보 일행에게 당한 문도들 수보다 더 많았답니다."

" 도대체 그놈이 무슨 무공을 익히고 있다던가?"

" 암기라고 합니다."

" 돌아버리겠군."

혁련무극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녀석 주변에 있는 잠룡들의 강함은 익히 알고 있었고, 대비 또한 그들에 대해서만 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터진 것이다.

" 지금 어디 있는가?"

" 혈라마문을 초토화시키고, 잠룡대를 가로질러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잠룡들은?"

" 그들의 흔적은 사라졌습니다."

" 잠룡대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했는가?"

' 당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그곳은 누가 맡고 있는가?"

" 흑마괴문이 맡고 있습니다."

" 서문 쪽은?"

" 대라검문이 맡고 있습니다."

" 연우강과 장만보가 죽으면 대야벌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그들이 죽었을 때 실익을 따져보자는 말입니까?"

" 그렇네."

혁련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걸 따지기 전에 군마련 련주가 이번 일에 나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 오늘 낮에 군마련 련주는 벌주를 만났습니다. 아니 벌주가 군마련 련주를 찾아갔습니다."

" 둘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었을 거란 말인가?"

" 지금 우리가 공격하는 자들은 대야벌 세력이 아니고 야장입니다. 천오백 년 대야벌 역사 중 야장을 공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장만보의 존재를 알고 야장을 공격했을 수도 있네."

" 아닙니다. 궐주님. 벌주는 지금까지 장만보의 존재를 전혀 몰랐습니다."

"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 의심을 했더라면 장만보가 연우강을 제자로 받아들일 때 조사를 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벌주와 만우량은 아무렇지 않게 야장에서 제자를 받아들이는 걸 허락했습니다."

" 그럼 야장을 공격할 정도로 급했거나, 아니면 야장을 없애도 상관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이겠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두 가지 답니다."

" 두 가지 다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궐주님. 저는 벌주가 야장을 없애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일어났던 벌내쟁투에 대해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 결과가 나왔는가?"

" 연우강이 무공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어떻게?"

" 대야벌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연우강이란 사실입니다."

" 말이 되는 소릴 하게. 이 사람아. 그동안 멸문한 문파가 열한 곳이네. 대야벌의 절반이 넘는단 말이네. 절반이 넘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가?"

혁련무극은 피식 웃었다.

전멸은 아니지만 멸문에 가까울 정도로 타격을 받은 문파는 열한 곳이다. 그들은 대야벌 절반이 아니라 강호의 절반인 것이다. 그런 엄청난 세력을 한 사람이 없앤다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아니 신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 생사림의 멸문 원인이 뭐였는지 기억하십니까?"

" 그거야 천마삼경 때문 아니었는가?"

" 물론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천마삼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천마삼경 사건이 있기 전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 무슨 일 말인가?"

" 여의전 약사였던 이승걸의 죽음 말입니다."

" 이 약사의 복수를 위해 연우강이 그 일을 일으켰다고 보는가?"

" 생사림 림주 유악태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은 대야벌 외부에 있는 오물 집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도망칠 때 유악태는 손가락과 발가락 전부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 일을 누가 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 연우강이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 그럼 천마삼경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설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유악태는 벌내쟁투로 모든 걸 잃엇고, 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곳 또한 연우강 앞이었습니다. 무공이란 게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게 아니라는 건 궐주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잠룡들에게 알아보니 유악태가 죽던 그날 마지막 상대는 연우강이었다고 하더군요."

" 그럼 연우강은 유악태를 담대무궁에게 일부러 넘겼단 말인가?"

" 그랬답니다. 그런 다음 담대무궁을 반쯤 죽여놓고 떠났다고 하더군요."

" 좋네. 그럼 그 일은 연우강이 벌였다고 하세. 사월림과 만마림은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 설명이 아니라 그들이 한 짓을 봐야 합니다."

" 연우강의 집안을 공격한 걸 두고 하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사월림과 만마림이 멸문한 결정적인 원인은 금릉 연씨 세가 공격이었습니다."

" 그것도 연우강과 관련이 있군. 그럼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는 어떻게 된 건가?"

혁련무극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사실 그 부분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연우강과 원한을 맺은 문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멸문시킬 이유를 알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 그런데?"

" 연우강 옆에 황궐의 전대 궐주인 이자승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 자네 지금....."

혁련무극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유악태를 보았다.

" 제 말이 맞을 겁니다. 궐주님. 연우강은 영악하게도 이자승을 이용해서 대야벌에 세력을 심어놓은 겁니다."

" 추측인가, 확신인가?"

" 확신입니다."

" 확신을 하려면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하네."

" 제가 확신하는 근거는 얼마 전 연우강이 가지고 들어왔던 공손정우 일행의 머립니다."

" 연우강이 머리를 가지고 들어왔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 머리가 간 곳은 황궐을 비롯한 네문파일 겁니다."

" 세상에....."

혁련무극은 할 말을 잃었다.

유악재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할 만한 근거는 없다. 게다가 연우강이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를 장악한다고 해서 대야벌을 어떻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있다. 지금까지 멸문한 모든 문파는 직, 간접적으로 연우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공교로웠다.

" 문제는 놈이 대야벌을 나가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 지금 나가는 것도 뭔가를 노리고 하는 행동이란 말인가?"

혁련무극의 얼굴엔 유악재의 말을 수긍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우강을 비롯한 야장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고 도망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뭔가를 획책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연우강 같은 사람은 처음입니다."

"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인가?"

" 저도 나름 머리가 좋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단 삼 년 만에 대야벌을 이렇게 만들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벌주와 만우량도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야장을 공격하는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 순전히 연우강 때문이란 말인가?"

" 제가 말한 두 가지 중 첫 번째 이윱니다."

" 하면 두 번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 영구 집권입니다."

" 그렇군."

혁련무극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담대만승과 비무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비무는 처음부터 백중지세였고, 남는 건 둘 다 패자가 되는 양패구상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후 초식을 남겨두고도 차마 펼치지 못했다.

어쩌면 담대만승이 양보해 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담대만승은 양보 대신 최후 초식을 펼치며 공격해 들어왔다. 거의 함께 죽자는 동귀어진에 가까운 수법이었다.

' 그때 그 초식을 받아쳤더라면.....'

혁련무극은 씁쓸하게 웃었다.

'찰나'라고 해야 할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그 순간 수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양패구상이 두려워서였다.

" 그는 양패구상을 택했고, 난 양패구상을 피했지."

인생이 걸린 한 초식에서 담대만승은 승자가 되고 자신은 패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맹세를 했다. 그가 벌주 자리에 있는 한 절대 벌주 자리를 놓고 검을 뽑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이젠 담대만승이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다.

" 아악!"

" 크악!"

" 으악!"

밤하늘을 뚫고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드디어 연우강 일행이 잠룡대 서문을 넘어 공격을 해온 모양이었다.

" 궐주님."

유악재는 다급한 얼굴로 혁련무극을 불렀다.

" 가세."

혁련무극은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 야랑대는 궐주님을 호위하라!"

낮은 외침과 함께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혁련무극을 따랐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혁련무극을 호위하는 야랑대 대원들이었다.

잠시 후 혁련무극과 유악재는 잠룡대 서문 외곽에 당도했다. 혁련무극과 유악재는 곧바로 커다란 나무 위쪽으로 날아 올라갔다.

그곳에 서자 서문 앞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라검문과 혈라마문 무인들이 서문을 에워싼 채고, 그들 앞에 여섯 명이 반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여섯 명의 중앙에 검은 철립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연우강이었다.

" 도망치지 못한다. 연우강."

대라검문 진영에서 살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우린 여섯 명밖에 없는데, 너무 심하잖아."

" 응?"

혁련무극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바로 앞쪽에 오백 명이 넘는 무인이 포진해 있다.

그 정도 무인이 앞을 막아선 상황이면 아무리 담이 큰 자라고 해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방금 들려온 연우강의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다.

" 공격하라고 하게."

혁련무극은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유악재에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악재는 대라검문의 문주 백마검 온자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 공격하라!"

곧 대라검문 진영에서 명령이 하달됐다.

" 공격하라!"

복명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대라검문 선두에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연우강 일행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린 자들의 수는 열두 명으로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공격을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연우강의 손가락 끝에서 사망낭조 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쿠웅!

사망낭조에서 싸늘한 살기가 흘러나오는 순간 연우강의 오른발이 지면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박수를 치는 것처럼 양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스아악!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떤 사망낭조가 섬뜩한 소성을 남기며 부챗살처럼 퍼져나갔다. 날아가는 사망낭조는 얼마나 빠른지 육안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 광랑풍!"

이어 나직한 외침과 함께 연우강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돼 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중앙에 있는 자였다.

" 헉!"

느닷없이 연우강이 쏘아져 들어오자 사내는 헛바람을 삼키며 검을 휘둘렀다.

" 환환난!"

차앙!

또다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연우강의 손목에서 사망묵환이 풀려 나와 뱀처럼 움직이며 사내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 컥!"

" 크윽!"

" 으윽!"

" 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연우강 일행을 공격했던 자들이 그 자리에 멈췄다. 곧이어 피를 쏘아내며 풀썩풀썩 쓰러졌다.

중앙에서 공격한 사내의 목에 사망묵환을 찔러 넣은 연우강은 손가락을 활짝 편 채로 양손을 틀어쥐었다.

휘리릭!

그러자 사방으로 쏘아져갔던 사망낭조들이 새가 제 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돌아와 활짝 편 손가락에 안착했다.

차르르!

이어 사망묵환을 거둬들인 연우강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 뭐냐 그건?"

창노는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적이 이인 일조로 공격해 오기에 전 내공을 끌어올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준비한 보람도 없이 연우강 혼자 끝내버린 것이다.

" 처음 야장에 들어왔을 때 봐줬다는 것만 알면 됩니다."

" 뭘 봐줘, 인마."

" 영감님이 그때 나 팼잖아요."

" 내가 패, 팼다고?"

" 기억 안 나요?"

" 전혀."

창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심 찔금했다.

그날 정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연우강을 두들겨 팼다. 그런데 녀석은 피할 수가 없어 맞은 게 아니라 일부러 맞아준 것이었다. 만일 녀석이 맞아줄 생각이 없었더라면 그 반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 아무튼 편리한 뇌 구조를 가졌어요."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엄청난 무력에 당황한 듯 대라검문 무인들은 멍한 얼굴로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 그만 할 거면 비켜 주는 게 어때?"

연우강은 대라검문 무인들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연우강이 앞으로 다가가자 대라검문 무인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 무슨 무공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혁련무극이 단야를 향해 물었다.

" 암기입니다."

" 암기라는 건 나도 아네. 하지만 수많은 암기술 중 던져냈던 암기를 다시 회수하는 무공은 없는 걸로 알고 있네. 심지어 중원 최강의 암기술이라는 사천당문의 만천화우도 회수하는 기능은 없네."

" 저도 지금 그 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본인이 던져냈던 무기를 회수하는 무공은 이기어검술뿐이네. 하지만 이기어검술이라고 해도 아홉 개의 무기를 동시에 회수하는 건 불가능하네."

" 무공이 아니란 말입니까?"

" 그렇네."

" 그럼?"

" 마라천력이네."

" 연우강이 마라천력인이란 말입니까?"

" 맞네. 그는 마라천력인이 확실하네."

" 마라천력인을 본 적이 있습니까?"

" 물론, 마라천력인을 본 곳은 바로 이곳 대야벌이었네. 그는..."

혁련무극은 말을 끊고, 연우강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사실 혁련무극이 연우강을 본 건 두 번이다.

한 번은 잠룡강호행을 나갈 때였고, 다른 한 번은 잠룡대 퇴교식 때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우강의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유악재를 보았다.

" 하실 말씀일도 있습니까?"

"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에 공통점을 생각해 보게. 먼저 야효네. 그리고 철검장과 추소백, 흑의사신 천세걸, 섬수 윤효직, 천랑마효 인후겸, 암흑마수 낭걸, 벽력마군 유백천, 천검자 장양락, 탕마신검 기후철, 철전패왕 백독수, 천광마자 낙천....."

" 전부 연우강을 공격하다가 당한 자들입니다."

이름을 전부 대기도 전에 유악재는 대답했다.

"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가 더 있네."

" 그게 뭡니까?"

" 전부 무영이라는 사실이네."

" 무, 무영이란 말입니까?"

" 그렇다네. 그리고 무성의 전대 성주가 바로 마라천력인이었다네."

" 정말입니까?"

" 나도 한때 무영 중 일인이었네."

" 맙소사!"

유악재는 경악한 얼굴로 혁련무극을 보았다.

설마 궐주인 혁련무극이 무영의 일인이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단 한 번도 그는 무영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그 일이 있고 난 후 무성을 떠났네."

" 그 일이라면?"

" 비무에 패하고 나서 난 담대만승을 벌주로 만드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네. 결코 그를 위해서가 아니었네."

" 궐주를 위해서 그랬단 말이군요."

" 그기 벌주가 되면 난 벌주에 패한 사람이 되니까."

" 최소한 이인자란 말이군요."

" 그랬지. 그래서 담대만승이 벌주가 되는데 마지막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를 공격했다네. 그런데......"

혁련무극은 말끝을 흐렸다.

그 일을 끝내고 담대만승을 벌주에 앉히고 나자 지독한 모멸감에 시달렸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마주친 그의 눈빛이 화인처럼 박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무영 자리를 내놓고 무성을 떠났다.

" 후회하시는군요."

" 어쩌면 그럴지도...."

혁련무극은 다시 전장을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 진형을 공격진형으로 바꾸라고 하게."

" 공격진형입니까?"

유악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적과 조우했을 때 구축하는 진형은 공격진형과 방어진형으로 나뉜다. 두 진형중 어떤 진이 더 강력하다고 묻는다면 유악재는 당연 방어진형이라고 답한다.

방어진형은 밀고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소극적인 진형이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막아야 한다는 전재가 따른다. 하지만 공격진형은 적을 공격하되 공격하는 무인의 목숨까진 걸지 않는다. 힘들면 동료에게 맡기고 쉬어도 되는 진형인 것이다. 당연 공격진형보다 방어진형이 더 탄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격진형을 구축하란 말은 곧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 이곳뿐만 아니라 당호 주변에 있는 흑마괴문에도 공격진형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내리게."

" 알겠습니다. 궐주님."

유악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 공격진형을 구축하라! 대라검문 문도들은 공격진형을 구축하라!"

" 혈라마문 문도들은 공격진형을 구축하라!"

곧 두 방향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오고, 에워싸듯 서문을 막아섰던 야궐 무인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 차앗!"

" 타앗!"

공격이 시작됐다.

하지만 야궐 무인들은 연우강 일행 근처에 가기도 전에 픽픽 쓰러졌다. 연우강의 몸에서 쏘아져 나온 암기들 때문이었다. 검기를 쏟아내고, 암기를 피해 몸을 날려도 소용이 없었다. 연우강의 몸에서 쏘아진 암기는 살아 있는 것처럼 야궐 무인을 쫓았다.

" 으악!"

" 아악!"

"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혁련무극은 태연한 얼굴로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니 지켜보는 게 아니라 그의 눈에는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과거의 한 곳으로 돌아가 있었다.

' 하하하! 나 같은 놈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성주께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무공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는 말을 들었소.'

' 해박하면 뭣 하겠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펼치지도 못했는데.'

' 혹시 마라천력이라고 아시오?'  사유는 유를 돌아보았다.

' 물론 알고 있습니다.'

' 그 마라천력을 타고난 자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은 강호상에 없는 거요?'

' 마라천력을 타고나신 겁니까?'

' 뭐 그렇다고 해둡시다.'

' 현재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과거엔 있었단 말이오?'

' 천오백 년 전 흑천의 천주였던 묵사 가립하가 마라천력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럼 없다고 보면 되겠구려.'

' 그렇습니다.'

' 쯧! 쓸 데도 없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는 공연히........'

' 무인으로서 그런 능력을 타고났다는 건 복입니다. 성주.'

' 그렇게 되는 거였소? 아무튼 대답해 줘서 고맙소.'

" 그가 마라천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은 나였지."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연우강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던 야궐 무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 쫓아라!"

" 추격하라!"

포위망을 빠져나간 듯 우렁찬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야궐 무인들은 빠르게 서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 궐주님!"

유악재는 혁련무극을 보았다.

어떻게 할 건지, 명령을 내려달라는 눈빛이었다.

" 연우강이 외부로 나가는 이유는 아직 말하지 않았네."

혁련무극은 이곳으로 오기 전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분명 연우강은 대야벌 밖으로 도망치는 중이다. 그런데 유악재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거라고 하였다.

" 그의 무공 정도라면 굳이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대야벌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 일부러 우리를 택했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혁련무극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연우강은 그동안 많은 일을 해냈지만 그를 따르고 있는 자는 잠룡대 잠룡들이 전부다. 반면에 야궐 무인은 삼 천 명가량이다.

그런데 야궐을 노리다니.

" 연우강은 지금껏 제 힘으로 적을 없앤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차도살인을 통해 적을 없앴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 그럼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쓸 걸로 보는가?"

" 밀천입니다."

" 재미있군."

혁련무극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야궐이 외부로 나가면 밀천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솔직하게 대답해 주게."

" 말씀하십시오. 궐주님."

" 내가 차기 벌주가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 보는가? 아니 벌주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 묵야련, 사자림, 사해림이 궐주님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 그들은 나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현 벌주를 몰아내고 날 벌주로 앉혀줄 정도는 아니네."

" 우리 야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 그럼 다른 질문을 하겠네. 만일 우리 야궐이 탈퇴한다면 대야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 과거처럼 강호 무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십니까?"

" 그렇네."

" 맙소사!"

유악재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 왜 그러는가?"

" 연우강 그놈이 노리는 건 차도살인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를 없애는 것 말고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놈은 대야벌을 일개 무림 세력으로 만들 참입니다."

" 내가 대야벌을 떠나면 그렇게 된다는 말인가?"

" 방금 제가 말씀드린 사항들은 만우량도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 담대만승도 어떤 조치를 취할 거란 말인가?"

" 제가 벌주 입장이라면 이번 기회에 규동 밀천 총단을 치겠습니다."

" 그러니까 나는 연우강을 쫓아가고, 밀천에서는 날 잡기 위해 나오면 밀천의 규동 총단은 텅 빈단 말인가?"

" 우리 야궐은 대야벌에서 가장 강한 세력입니다. 그런 세력을 공격하려면 밀천 또한 그에 걸맞은 전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규동 총단은 텅 빈 거나 다름없게 됩니다. 대야벌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담대만승은 묵야련의 묵연도노 유자웅에게 그 일을 시키겠군."

" 그렇습니다. 궐주님. 우린 연우강을 쫓고, 밀천에서는 우리를 쫓고, 벌주는 밀천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대야벌은 무림 세력으로 전락하게 되고요. 그보다 더 무서운 건......"

" 무서운 건?"

" 그 사실을 알면서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겁니다."

유악재는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보통 전쟁을 하거나, 누군가와 경쟁을 할 때면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 이유는 역으로 치고 들어가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엔 연우강의 의도를 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 연우강이라는 진흙탕에 전부 발을 담근 셈인가?"

" 그, 그렇습니다. 궐주님."

" 추격하게."

" 추격 인원은 얼마나....?"

" 전부 동원하게."

" 그렇게 되면 야궐을 비워야 합니다."

" 지금은 비워야 할 때네. 연우강 일행을 끝까지 추격하는 건 흑마괴문만 할 거네."

" 그럼 나머지 무인들은?"

" 지부로 보내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궐주님."

꾸벅 고개를 숙인 유악재는 나무 아래로 몸을 날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대기하고 있던 야궐 무인들이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인가?"

전엔 마지막 초식을 펼치지 않아 벌주가 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이번엔.....

혁련무극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 주변으로 달무리가 져 있었다.

" 강해야 할 게다. 연우강. 강하지 못하면 죽는 게 무림이다. 네 아버지도 그래서 죽은 거다."

혁련무극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 가자!"

그는 낮게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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