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목적이 같으면 적이라도 손을 잡는다
연우강 일행이 흑우평에 도착한 것은 축시초 무렵이었다.
흑우평은 소가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뿔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두 개의 협곡이 있는데 대우각협과 소우각협이라 부른다. 다리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전우족곡, 전좌족곡, 후우족곡, 후좌족곡이라 부르는 네 개의 계곡이 있고, 꼬리 부분에는 우미곡이라 불리는 긴 계곡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한 소 모양의 조각상을 만들어 도장 찍는 것처럼 찍어낸 듯한 형태다.
물론 그 크기는 동서 십 리, 남북 오 리가량으로 어마어마하다.
연우강 일행은 들고 왔던 시체를 전좌족곡 부근에 묻은 다음 소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길을 떠났다.
일행이 장안봉 북쪽 능선의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은 새벽 무렵이었다.
다른 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거점은 낙석애라고 불리는 절벽 아래쪽 동굴이었다. 입구는 여러 개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로 합쳐지는 특이한 형태였다.
불을 피운 듯 동굴 안쪽엔 훈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별일 없었나?"
불을 쬐고 있던 탁강일이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적을 만났소."
연우강은 모닥불 앞으로 앉으며 오는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 잘 처리했네."
탁강일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탁강일은 문득 지금껏 유패를 잘못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또한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정찰 나온 적을 만나 처리를 햇다. 하지만 시체는 그 자리에 버려두었을 뿐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가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패는 시체를 흑우평으로 옮겨 적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요?"
" 우리가 이곳으로 온 목적은 적의 교란과 지형 파악이네."
"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겠구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 있던 조원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왔다.
" 각 조장들은 이쪽으로 모여라."
탁강일의 말에 일곱 명이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인원을 다시 편성하도록 하겠다."
탁강일은 일행을 보며 말했다.
" 어떻게 편성한단 말입니까?"
마혈삭 조남철이 물었다.
" 자네들 넷이 한 조가 된다. 물론 조원들도 포함된다."
탁강일은 막혈삭 조철남, 전광삭 도철, 혈무삭 요삼, 독삭 노운산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조장은 마혈삭 너다."
" 알겠습니다. 부문주님."
" 그리고 이 조 조장은 천인삭이 맡도록."
" 알겠소이다."
" 작전은 간단하다. 마혈삭이 이끄는 일 조는 주로 북쪽에서 활동하고, 천인삭이 이끄는 이 조는 아미곡과 남뢰곡 남쪽에서 활동하도록 해라."
" 연락은 어떻게 합니까?"
연우강은 탁강일을 보며 물었다.
" 보름만 견디다가 귀환하면 된다. 어떻게 하는지는 특별히 말하지 않겠다."
" 알았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 출발할 참인가?"
"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 그럼 수고하게."
" 수고하십시오. 부문주님."
연우강은 탁강일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동굴 밖으로 나갔다. 이어 앉아 있던 자들 중 삼십여 명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가자!"
연우강은 일행이 따라나오자마자 곧바로 몸을 날렸다.
[ 어디로 갈 거냐?]
창노는 연우강을 따르며 물었다.
[ 감로봉 북쪽에 무곡이라는 곳이 있더군요.]
[ 안개가 많이 끼는 계곡인 모양이구나.]
[ 지도상에는 그렇게 나와 있는데, 그곳에 가봐야 알겠지요.]
연우강은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장안봉을 떠난 일행이 종나만 최남단에 위치한 감로봉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적의 매복을 살피다보니 늦은 것이었다.
무곡이란 이름답게 주변은 안개가 자욱하게 흐르고 있었다.
연우강은 지도를 꺼냈다. 무곡은 밀천 무인들이 주둔해 있는 남뢰곡과 아미곡에서 이십 리 가량 떨어진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무곡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곧바로 은신처를 찾았다. 안개 속을 헤매길 반 시진, 오른편 절벽 중간에서 적당한 동굴을 찾았다.
" 각자 소개를 하지."
연우강은 조장을 맡고 있던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 난 민오승이오. 별호는 사삭이오."
광대뼈가 유독 도드라진 장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난 독룡삭 곽정일이오."
" 난 화풍삭 차진철이오."
이어 턱수염이 텁수룩한 자와 거의 칠 척에 가까운 엄청난 키의 장한이 자신을 소개했다.
" 반갑소. 알고 있겠지만 난 유패요. 잘해봅시다."
세 사람을 가만히 쳐다보던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모곤필을 보았다.
" 하, 하실 말씀이라도 있소?"
모곤필은 당혹스러웠다. 모곤필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던 건 감시를 위해서였지. 조장으로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위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돌리게 되고, 방금은 자기도 모르게 말까지 올려버리고 만 것이다.
" 넌 지금부터 식량 담당이야. 보름 동안 먹고살아야 하니까 식량 배분에 신경 쓰도로고 해."
" 아, 알았소."
" 사삭은 무곡 동편을 정찰하고, 독룡삭은 서편 그리고 화풍삭은 남쪽을 정찰하고 와. 혹시 적을 발견하더라도 죽이진 말고 그대로 두고 오도록."
" 알았소이다."
세 사람은 조원들을 데리고 동굴을 나갔다.
" 모곤필!"
연우강은 다시 모곤필을 불렀다.
" 네."
다른 조원들이 놓고 간 식량을 정리하던 모곤필은 벌떡 일어났다. 느닷없이 귓전을 강타한 부름에 저도 모르게 일어난 것이다. 모곤필은 일그러진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지?"
연우강은 슬쩍 조소를 지었다.
방금 모곤필을 부를 때 일부로 목소리에 내공을 실은 것이었다.
" 그건....."
모곤필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었다.
" 몰라?"
" 저, 적의 동태를 감시할 장소를 확보하는 겁니다."
" 그건 사식 일행이 조사하러 갔잖아. 내 질문은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 뭐냐는 거야."
" 전 식량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 그것만 하면 되는 거야?"
" 다른 건........"
모곤필은 이번에도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 여기서 며칠을 머문다고 했지?"
" 보름입니다."
" 잠을 자려면 뭐가 필요해?"
" 자는 데 필요한 게.....아! 모닥불이 필요합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낙석애에서 모닥불을 피웠던 게 떠올랐다.
" 적이 사방에 깔려 있는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몰라?"
" 여긴 동굴 안입니다. 불빛이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모곤필은 볼멘소리를 했다.
" 물론 불빛은 새어나가지 않겠지. 하지만 연기는 어떻게 할 거야?"
" 연기라고요?"
모곤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이곳에서 불을 피우면 불빛은 새여나가지 않더라도 연기는 바람을 타고 흐를 것이다. 그럼 적은 이곳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게 될 테고.
" 아직도 뭐가 필요한지 모르는 거야?"
" 이부자리가 있어야 하네."
미적거리는 모곤필이 답답하다는 듯 괴삭 차석인이 대답했다.
" 맞소. 괴삭."
" 그럼 우린 밖으로 나가서 마른 풀을 모아 와야겠구먼."
" 그게 남은 우리가 할 일이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동굴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시계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 너무 나서는 거 아니냐?]
창노는 걱정스런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연우강이 하는 양을 보고 있으면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마조마하다. 만일 조원들 중 누군가가 정말 유패냐고 따지고 들면 그땐 어떠헤 할는지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 아직도 모르세요?]
연우강은 아래쪽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 뭘 모른다는 말이냐?]
연우강을 따라 몸을 날리던 창노가 말을 받았다.
[ 모곤필, 괴삭, 마삭은 제가 유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게 아니고 알고 있다는 말이냐?]
창노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 모곤필은 의심하는 정도고, 괴삭과 마삭은 제가 연우강이라는 사실마저도 알고 있을 거예요.]
[ 정말?]
[ 늙은 생각이 맵다고 하잖아요. 그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거예요. 안개의 비밀이 밝혀졌네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앞쪽을 가리켰다.
창노는 시선을 돌려 연우강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마치 습지처럼 넒은 지역에 걸쳐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위로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바닥에서 솟구치고 있는 물은 다름 아닌 온천수였던 것이다.
[ 몽요가 그러는데 온천수는 몸에 엄청 좋대요.]
[ 이 녀석아, 지금 온천수 타령할 때냐?]
창노는 버럭 소리쳤다.
[ 이 물을 따라가면 연못이 나오겠죠?]
연우강은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 연우강!]
[ 설사 제가 연우강이란 사실을 알아차린다고 해도 혁련무극은 절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도 돼요.]
[ 왜 공격할 수 없다는 거냐?]
[ 지금 저와 영감님은 야궐 편이잖아요.]
[ 야궐 편?]
[ 우리처럼 열심히 싸워주는 사람을 없애려고 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고요. 그리고 저와 영감님이 그냥 죽어줄 사람도 아니잖아요. 제 손에 걸리면 최소한 천 명 정도는.... 아니다. 그때보다 세 배 이상 강해졌으니까, 일 년만 시간을 준다면 삼천 명 전부 없앨 수도 있겠네요.]
[ 혁련무극이 가만있을 거란 말이냐?]
[ 궐주 자리를 도박해서 딴 게 아니라면 가만있을 수밖에 없어요.]
[ 도박해서 딴 게 아니라는 건 또 무슨 소리냐?]
[ 한 문파의 수장이 된다는 건 단순히 실력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거예요. 운도 따라야 하고 머리도 좋아야 해요. 담대만승이나 혁련무극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에요.]
[ 하지만 넌 담대만승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 그건 담대만승의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런 거예요.]
[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건 무슨 말이냐?]
[ 부모는 원래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잖아요.]
[ 담대무궁 때문이란 말이냐?]
[ 담대만승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어요.]
[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말이냐?]
[ 다른 이유가 없다면 혁련무극이 우리를 쫓아올 이유가 없잖아요. 와아!]
연우강은 활짝 웃었다.
흐르던 온천수가 한 곳으로 모여 커다란 못을 형성하고 있었다.
연우강은 연못 앞에서 옷을 벗었다.
[ 지금 뭐하는 거냐?]
창노는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연우강은 겉옷 안쪽에 사망묵의를 걸치고 있었던 거였다.
창노는 재빨리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창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앞으로 보름간 목욕할 시간도 없을 거예요.]
연우강은 옷을 벗고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 아무튼 넌!]
창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들어오세요. 몽요가 그러는데 온천은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네들에게 더 좋대요."
" 알았다. 녀석아."
창노는 피식 웃으며 옷을 벗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연우강의 말처럼 온천은 딱 알맞게 따뜻했다. 몸을 담그자마자 근육이 노곤하게 풀렸다.
창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최근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정리를 해 보았다.
이번 일은 연우강이 아니라 담대만승에 의해 촉발됐다. 그는 영구 집권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야장을 공격했다. 만일 야장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문제는 담대만승이 왜 영구 집권의 야욕을 드러냈느냐 하는......'
창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연우강을 보았다.
담대만승이 영구 집권의 야욕을 드러내게 된 계기가 바로 무궐 궐주 공손정우를 비롯한 네 명의 죽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담대만승이 검을 뽑도록 만든 사람이 연우강이었다.
" 담대만승이 검을 뽑을 거라는 건 예상한 거냐?"
" 어떤 방법으로든 야욕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 대상이 야장일 줄은 생각지 못했죠. 그리고 혁련무극이 우리를 따라나올 줄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고요."
" 전에는 너는 혁련무극이 홀로 서기를 시도한 것 같다고 했다."
" 물론 그랬죠. 하지만 그거로는 미진해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혁련무극과 담대만승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영감님은 아세요?"
연우강은 오른편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 응?"
창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주변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 귀신이구먼."
늙수그레한 목소리와 함께 허공이 일렁였다. 그리고 독고철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이 소저는 잘 지내고 있소?"
연우강은 독고철웅을 향해 물었다.
" 다 늙은 나를 닦달해서 이곳까지 보냈다네."
독고철웅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북경에 있는 이지약은 연우강이 공격당했다는 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녀석은 야궐 무인으로 변장한 것도 부족하여 한가하게 목욕을 하고 있다.
십뢰를 가지고 내기를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무공보다 배짱이 더 강한 녀석이었다.
" 걱정거리가 한 가지밖에 없다면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네. 언제 온 거요?"
" 보름 동안 자네를 찾아다녔네."
" 용케 찾아왔네.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목욕이나 하시오."
" 아무래도 그래야 할 모양이네. 자네를 찾아 헤매고 다녔더니 삭신이 쑤기는구먼."
독고철응은 옷을 벗고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 아! 좋다. 그런데 이분은 누군가?"
" 전에 창궁무제라고 불렸고, 지금은 야장 안정전 전주로 있는 창노요."
" 허허허! 위명이 쟁쟁했던 창궁무제를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그려. 난 독고철웅이외다."
무원과 창노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독고철웅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창노는 달랐다.
" 서, 설마 유령신마존 선배십니까?"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독고철웅을 보았다.
" 그건 일 갑자 전에 얻은 별호고 그 전엔 뇌정독고세가의 가주였다네."
" 뇌정독고세가라면?"
창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이 거창하다는 건 단순한 가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 지천의 다섯 축 중의 한 곳이었다네." 북받친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없다. 마치 소금을 " 그, 그럼 선배께서 지천 출신이란 말입니까?"
창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오대세가도 전부 후인이 있다네."
" 누구요?"
이번엔 연우가잉 물었다.
" 자네와 싸우고 있는 담대만승은 범천담대세가의 가주고, 지금 손을 잡은 혁련무극은 구벽혁련세가의 가주, 담대만승 옆에 있는 만우량은 무극하후세가의 가주네. 모용세가의 후예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네."
" 그럼 만우량의 본명은 하후량이겠군요."
" 그럴 거네."
"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 범천담대세가의 가주 무공은 무적뇌화결이고, 구벽혁련세가의 가주 무공은 야수구벽신권, 천단모용세가의 가주 무공은 천단십절마예, 뇌정독고세가의 무공은 대범천뇌정도법. 무극하후세가의 무공은 무극천라검해네. 그것들 주. 무적뇌화결, 천단십절마예, 대범천뇌정도법은 범천담대세가에서 보유하고 있네."
" 네 가문 중 두 가문이 범천담대세가에게 멸문했다는 말이군요."
" 정확하게는 세 가문이네. 가주 무공을 잃진 않았지만 무극하후가문 또한 범천담대세가에 멸문했네."
" 이제야 비밀이 풀렸네요."
연우강은 활짝 웃었다.
" 무슨 비밀이 풀렸단 말인가?"
독고철웅과 창노는 동시에 연우강을 보았다.
" 그동안 제가 승승장구했던 비밀 말입니다."
" 그러니까 자네가 대야벌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면에 만우량, 아니 하후량의 도움이 있었단 말인가?"
" 만우량은 저를 도와준 게 아니라, 길이 같았을 뿐이에요."
" 만우량도 대야벌의 멸망을 원하고 있었다는 말이군."
독고철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정확하게는 대야벌이 아니라 범천담대세가겠지요. 아무튼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것 같네요."
"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건가?"
독고철웅은 연우강과 창노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 혁련무극의 편에 서서 열심히 싸운답니다."
대답은 창노가 했다.
" 열심히 싸워?"
독고철웅은 연우강을 보았다.
" 열심히 밀천 무인을 쳐 죽이면 밀천 무인도 화가 나서 야궐 무인들을 열심히 죽일 거 아뇨. 그러니까 열심히 싸울밖에."
"그러다가 혁련무극에게 들키면?"
" 영감 같으면 목숨 걸고 영감을 도와주는데 해코지하겠소?"
" 가만있을 거라고?"
"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가만있어야지 지가 어쩔 거요."
" 허!"
독고철웅은 황당한 얼굴로 창노를 보았다.
" 방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 무제 자네 생각도 저 친구와 같은가?"
" 전 지금 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무래도 자네가 설명해야겠네."
독고철웅은 다시 연우강을 보았다.
" 죽이려고 했던 놈이 아군으로 잠입해 들어왔을 때 처리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아세요?"
" 잡아 죽이는 것 말고는 모르겠네."
" 그건 머릿속에 돌만 들어 있는 녀석들, 즉 지휘관 자리를 도박으로 딴 놈들이 하는 짓이요."
" 유능한 지휘관은 어떻게 하는가?"
" 먼저 잠입한 그놈이 필요한 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오."
"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건 어떤 경운가?"
" 역정보를 흘릴 수 있는 매개체로 이용할 수 있을 때는 죽여선 안 되오."
" 일리가 있구먼. 하지만 자네에게는 역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네."
" 역정보를 흘려 이익을 볼 입장은 아니지만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밀천 무인들을 패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잖소. 수적으로 부족한 야궐 입장에서는 나 같은 무인이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되오."
" 이용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 그렇소."
" 좋네. 그럼 두 번짼 뭔가?"
" 머리가 약간 도는 자의 유형인데, 두고 보면서 감시만 하는 거요."
" 지금 자네 상태란 말이군."
" 맞소. 만일 감시 상태에서 끝난다면 난 원래 계획대로 이 전쟁이 끝나고 혁련무극을 없애면 되오."
" 감시 말고 다른 것도 있는가?"
" 감시 상태를 넘어 마음껏 부려먹는 경우가 있소이다."
" 마음껏 부린다는 건 무슨 소리냐?"
이번엔 창노가 물었다.
" 제 능력을 최댛나 뽑아내기 위해 중책을 맡기는 경우를 말합니다. 영감님."
" 이를테면?"
" 특별한 조직을 만들어 제게 맡기는 거지요."
" 그가 정말 그럴 거라고 보느냐?"
" 진짜 머리가 좋은 지휘관은 그렇게 합니다. 만일 혁련무극이 그런 자라면 난 그를 죽일 수 없다는 뜻, 아니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 우강아!"
" 자네!"
창노와 독고철웅은 동시에 연우강을 불렀다. 두 사람의 얼굴엔 답답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 제가 변장하고 있는 유패는 그리 뛰어난 무인이 아닙니다. 즉 중책을 맡길 인물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지만 연우강이라면 달라집니다. 전 지금껏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최고의 지휘관이었습니다."
" 그러니까 혁련무극은 부하들에게 네 정체를 밝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따르라고 명령을 내릴 거란 말이구나?"
이번엔 창노가 물었다.
" 네."
" 부하들이 혁련무극의 말을 들을 거라고 보느냐?"
창노는 다시 물었다.
"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이라면 당연히 거부해야겠죠."
" 거부하지 않으면?"
"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연우강은 물속에 얼굴을 담갔다. 그러고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머리를 들어 올렸다.
" 그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연우강은 숨을 토하듯 말을 뱉었다.
" 혁련무극을 말하는 거냐?"
" 나적리 말입니다. 지금쯤 부하들의 시체를 발견했겠죠?"
" 우강아!"
창노는 인상을 그었다. 한창 혁련무극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화제를 돌려버렸기 때문이었다.
"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결과를 예측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 아무리 그렇다고....."
" 시간도 많은데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어이쿠 대단하구나."
연우강의 하체를 쳐다보던 독고철웅은 화들짝 노란 표정을 지었다.
" 뭐가 대단하다는 말이오?"
연우강은 독고철웅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터벅터벅 연못 밖으로 나갔다.
" 물건이 댇ㄴ하다는 말이지 뭐겠는가?"
" 변태요?"
" 내가 변태로 보이는가?"
" 변태가 아니면 사내 물건을 보고 침을 흘릴 이유가 없잖소."
연우강은 옷을 입으며 이죽댔다.
" 내가 침을 흘렸단 말인가?"
" 아니오?"
" 난 행복해하실 공주님의 얼굴이 떠올라 그랬을 뿐이네."
독고철웅은 헤죽 웃었다.
" 장가도 안 간 양반이 별걸 다 아네. 그건 그렇고 황실 상황은 어떻소?"
" 폭풍전야네."
" 폭풍전야?"
" 타는 소리는 분명 들려오는데 심지가 보이지 않는 포탄을 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란 말이네."
" 조만간 뭔 일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이구려."
" 그런 셈이네."
" 알았소. 아무튼 영감은 무곡 입구나 잘 감시하시오. 놈들이 오면 즉각 알려주고."
사망묵의를 입은 연우강은 그 위로 흑마괴문 옷을 걸쳤다.
" 날 부려먹을 참인가?"
" 도와주려고 온 거 아뇨?"
" 도와주려고 왔지. 자네 명령을 들으러 온 건 아니네."
" 내 명령을 듣는 게 도와주는 거요, 영감."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 아무튼 저 자식은 말을 해도....."
독고철웅은 얼굴을 찌푸리며 온천에서 나왔다.
" 늘 당하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뭘 그러십니까?"
" 자네도?"
" 손녀딸은 물론이고, 남궁세가까지 주면서도 눈에 힘도 못주고 있습니다."
뒤따라온 창노는 푸념처럼 말하며 옷을 걸쳤다.
" 남궁세가까지 줘버릴 참인가?"
독고철웅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 가주인 운화가 가면 남궁세가도 당연히 따라갈 수밖에 없잖습니까?"
" 녀석에게는 말을 했는가?"
" 귀찮다고 할까봐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 허허! 아무리 딸 가진 죄인이라고 하지만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구먼."
" 앞으로 좋아지겠지요. 아무튼 수고 좀 해주십시오."
" 종종 놀러오도록 하겠네."
옷을 입은 독고철웅은 천마환환신공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곧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 고수란 고수는 다 들어붙어 있구먼.'
창노는 사라지는 독고철웅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옥에서 나온 고수들. 흑천의 무인인 경천사마, 유령신마존 독고철웅 등 한시대를 풍미했던 무인들이 연우강 곁으로 모여들고 있다. 점점 연우강의 그림자가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어쨌든 좋은 거니까.'
창노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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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안에는 다섯 명이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문쪽에서 가장 먼 곳, 상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자는 나적리였다.
나적리 오른편에는 칠십대로 보이는 노인 세 명이, 왼편에는 오십대 중년인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밀천 수뇌들이었다.
일곱 명의 얼굴은 침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밀천 무인들은 지난 며칠 동안 종남산의 북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을 이잡듯 뒤졌다. 그런데 종남산 어디에서도 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천여 명이 있는데, 설사 은밀하게 숨어 있다고 해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종남산에 들어와 있는 야궐 무인은 동쪽에 있는 천여 명이 전부라는 결론을 내리고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찰 나갔던 부하 여섯 명이 시체가 돼 돌아왔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죽은 여섯 명은 일섬무영참 원세군이 이끄는 무인들이었다.
" 어디서 발견됐는가?"
나적리는 원세군을 보며 물었다.
" 흑우평의 전좌족곡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나적리는 한편에 걸어둔 지도로 시선을 주었다.
흑우평의 전좌족곡이면 야궐 무인들이 있는 동뢰곡보다는 이곳 아미곡에서 더 가깝다. 게다가 지금껏 단 한 번도 흑우평에서 적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그는 다시 원세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
" 어떤 상태였다고 하던가?"
" 여섯 명 전부 목이 꺾여 죽었고, 묻혀 있었다고 합니다."
" 용케도 찾아냈구먼."
" 그곳에서 볼일을 보던 녀석이 배설물을 덮으려고 낙엽을 끌어모으다가 땅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 그랬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나적리는 오른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적리 오른편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은원의 최고 수뇌인 밀천삼사였다. 과거 동정호 지하에서 연우강에게 당했던 밀천삼환도 은원에 소속된 무인들이었다.
" 지금껏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공격을 해온다는 건....."
나적리 바로 옆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소한 체구의 이자는 밀천삼사의 대형인 밀사 이덕무였다.
" 냄새가 난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태상천주님."
"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적리의 시선이 이덕무 옆으로 향했다.
환자처럼 얼굴이 창백한 그는 밀천삼사의 둘째인 귀사 오창선이었다.
“ 먼저 시체의 상태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 목이 꺾인 채 묻혀 있었을 뿐 다른 상처는 전혀 없었소이다.”
원세군이 대답했다.
“ 무기는 주변에 있던가?”
“ 무기도 없었다고 합니다.”
“ 그럼 다른 곳에서 살해당해 옮겨졌을 가능성은 없는가?”
“ 전좌족곡은 그들의 수색 구역이었기 때문에 그건 알 수가 없소이다.”
“ 그랬군.”
오창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는 시선을 돌려 나적리를 보았다.
“ 말하게.”
“ 저도 밀사와 같은 생각입니다. 적은 동뢰곡과 자모곡에 있는 자들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그들이 아군을 살해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 시간을 벌기 위한 것 같습니다.”
“ 시간 벌기라....”
나적리는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 두 분 말이 맞습니다. 태상천주님. 동뢰곡과 자모곡에 있는 적은 흑마괴문과 야랑대 그리고 야노원 늙은이들이 전붑니다. 지금 당장 공격해야 합니다.”
원세군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 접니다. 태상천주님.”
그때 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와라.”
나적리의 말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육십대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밀천무영대 대주 유밀 권자기였다.
“ 무슨 일인가?”
나적리는 권자기를 보며 물었다.
“ 남쪽에 다량의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 발자국?”
“ 시체가 발견된 후 정찰 범위를 두 배로 확장했습니다.”
“ 발자국을 발견한 곳은 어딘가?”
“ 무곡 근처입니다.”
“ 무곡?”
“ 남쪽으로 이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계곡입니다. 계곡 길이는 대략 삼십 리고 연중 안개에 휩싸여 있습니다.”
“ 그곳에 놈들이 있다는 말이구나.”
“ 정황상 그렇습니다. 그리고...”
“ 또 있느냐?
“ 태상천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새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 어떤 새더냐?”
“ 설산신조와 비응마조였습니다.”
“ 설산신조와 비응마조였다고?”
나적리는 깜짝 놀랐다.
설산신조와 비응마조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대야벌 율령궁을 멸망으로 읶느 단초를 제공한 새였다. 아울러 설산신조와 비응마조가 이곳에 있다면 연우강도 종남산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말이었다.
“ 그렇습니다.”
권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밀사.”
나적리는 고개를 돌려 이덕무를 보았다.
“ 말씀하십시오.”
“ 출동 준비를 해주게.”
“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덕무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지금껏 많은 자들이 연우강을 경시하다가 죽임을 당했네. 밀천삼환 또한 그렇게 죽었네.”
“ 삼환도 놈에게 당했단 말입니까?”
이덕무는 깜작 놀랐다.
주변에 있던 이들 또한 놀란 얼굴로 나적리를 보았다.
밀천삼환은 영환, 미환, 은환의 세 사람을 일컫는 말로 범천조화신기 사건이 있던 시기에 동정호 지하에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밀천삼환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자는 없었다. 다만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과 싸우던 중에 죽임을 당한 걸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우강 손에 죽었다니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 연우강의 무공이 그렇게 강합니까?”
원세군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그 당시 연우강 옆에는 여러 명의 고수가 있었네. 정확하게 누구 손에 죽었는지 알 순 없지만, 밀천삼환의 목적은 연우강을 없애는 것이었네.”
“그러니까 연우강을 없애러 갔다가 당했다는 말이군요.”
“ 그렇다네. 그리고 이곳에 연우강이 있다면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네. 놈은 지금껏 내가 겪은 자들 중 최고였네. 놈을 없애지 않고는 절대 이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 되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금 나적리가 그랬다.
나적리는 그동안 연우강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동정호 지하에서, 그리고 용미곡에서는 유명계에게 지시를 내려 없애려고 했다.
연우강이 율령궁과 싸웠던 호남에서도 없애려고 했고, 나소산맥에서도 뒤를 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했다.
그가 연우강을 없애고 난 후 전쟁을 시작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리가 맡겠습니다.”
밀사 이덕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 당장 출발하게.”
“ 알았습니다. 태상천주님.”
이덕무를 비롯한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는 등을 돌렸다.
“ 유밀!”
세 사람이 나가자 나적리는 권자기를 보았다.
“ 하명하십시오. 태상천주님.”
“ 넌 밀천무영대를 데리고 무곡 서쪽과 남쪽을 틀어막아라. 그리고 사사귀에게는 동쪽과 남쪽을 막으라고 해라.”
“ 포위하실 참입니까?”
권자기는 긴장했다. 사사귀 무영세는 밀천사영대 대주였다.
“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연우강을 잡아와야 해.”
“ 알겠습니다. 태상천주님. 당장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권자기는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연우강을 너무 크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원세군은 불만 어린 얼굴로 나적리를 보았다.
밀천금의대 오백 명, 밀천사영대 오백, 은원 원로 삼백이다.
연우강이 무곡에 있는지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천삼백 명의 무인을 출병시켜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 크게 보는 게 아니라 놈은 내 손자보다 더 큰 놈이네. 놈을 없애지 못하면 설사 담대만승을 없앤다고 해도 우린 중원의 주인일 될 수 없네.”
나적리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 그 정돕니까?”
“ 그것뿐만이 아니네.”
“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 무궐의 궐주 공손정우에게 마총 장보도가 있었네.”
“ 그럼?”
“ 그렇네. 마총 장보도의 현 주인은 공손정우를 없앤 연우강이네.”
나적리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