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인질범을 상대하는 법
[ 무슨 소리죠?]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 실종됐다네.]
[ 실종?]
[ 그렇다네. 처음 보는 자들을 쫓아갔는데, 그 후론 소식이 없다고 하네. 아무래도 내가 한발 늦은 모양이네.]
[ 끄응!]
결국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연우강은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 잠깐 정찰을 나갔다 올 테니까 조용히 기다리도록.”
연우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딜 간다는 거요?”
모곤필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 지금 조용하잖아.”
“ 그래서요.”
“ 조용하다는 건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아무도 없다는 건 나가도 된다는 말이거든.”
“ 그러니까 절벽 위쪽 상황을 알아보러 나간단 말이오?”
“ 네가 다녀온다면 난 쉴게.”
연우강은 다시 드러누웠다.
“ 누가 간다고 했소?”
모곤필은 찔끔한 얼굴을 하더니 얼른 드러누웠다.
“ 자식. 겁은.”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 어딜 갈 참이냐?]
독고철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눈치 챈 창노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천수장해 안에 들어 있던 무공은 익혔어요?]
[ 우주일만검결을 말하는 거라면 완벽하게 익혔다.]
창노는 어깨를 으쓱했다.
[ 거기에 나와 있는 은신술은요?]
[ 익히다 보니까 동영의 만화은신사영과 비슷하더구나.]
[ 좋아요. 그럼 함께 가요.]
고개를 끄덕인 연우강은 모곤필을 보았다.
“ 내가 다녀올 동안 조장은 모곤필 네가 맡아라. 경거망동 하지 말고 죽은 듯이 처박혀 있어. 정 아니다 싶으면 귀환하도록 하고.”
“ 얼마나 걸리오?”
모곤필은 연우강을 빤히 보며 물었다.
“ 작전의 시작은 내가 하지만 끝은 상황이 결정하는 거야. 상황이 좋으면 금세 돌아올 거고. 좋지 않으면 시간이 걸릴 거야.”
연우강은 창노와 함께 동굴을 나섰다. 동굴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절벽을 타고 오른 두 사람은 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오십여 장 정도를 나아간 다음 비로소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독고철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 위치가 어디요?”
연우강이 물었다.
“ 앞으로 한 식경 정도는 더 올라가야 하네.”
“ 어디를 말하는 거냐?”
창노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놀라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말해 줄게요.”
“ 무슨 일인데 그렇게 겁을 주는 거냐?”
“ 향노 일행이 실종됐다는 말입니다. 영감님.”
“ 향노 일행이라면..... 설마?”
창노의 얼굴이 일순간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향노는 운화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 그가 실종됐다면 운화도 함께 실종됐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창노의 몸에서 질식할 듯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 어떤 놈이냐?”
창노는 연우강을 보았다.
“ 패천림이라고 하네요.”
“ 그놈들이 이곳에 있단 말이냐?”
“ 여기가 집이랍니다.”
“ 어디냐?”
“ 놀라지 말라고 했잖아요.”
“ 운화가 납치됐다고 한 사람은 너다.”
“ 그러니까 나왔잖아요. 갑시다.”
연우강은 독고철웅을 보며 말했다.
“ 따라오게.”
세 사람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로부터 세 사람은 한사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커다란 바위 앞에 내려섰다.
“ 저곳으로 들어갔단 말이오?”
연우강은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 오른쪽 귀퉁이로 들어가는 순간 모습이 사라졌네.”
“ 어떻습니까?”
연우강은 창노를 보았다.
“ 뭘 물어. 인마. 들어가야지.”
“ 아무튼 못났어.”
연우강은 혀를 끌끌 찼다.
“ 혈육이 아니니까 넌 그렇게 한가할지 몰라도 난 아냐. 자식아.”
창노는 원망어린 눈빛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이곳까지 오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패천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조차 연우강이 뜸을 들이자 화가 치밀었다.
“ 잤습니다.”
연우강은 감각을 끌어올려 바위를 살피며 말했다.
“ ..........”
창노는 멀뚱히 연우강을 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 친아버지 앞에서 잤단 말입니다.”
“ 그게 무슨 말이냐?”
“ 영감님 이상으로 나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에는 머리는 급하게 굴리되 다리는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실수가 없어요. 일단 만화은사신영부터 끌어올리고 따라오도록 하세요.”
연우강은 바위 옆으로 걸어갔다.
드러난 모습은 바위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연우강은 한사가 사라졌다고 한 곳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마치 물속에 손을 담근 것처럼 그의 손이 쑥 밀려들어갔다.
“ 여기에 옷을 벗어놓고 가죠.”
연우강은 겉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런 연우강을 창노는 의아한 얼굴로 보았다.
“ 싸우다 보면 옷이 찢길 수도 있잖아요. 그럼 복잡해지잖아요.”
연우강은 옷을 둘둘 말아 바위 아래쪽으로 밀어 넣었다.
“ 싸워?”
창노는 옷을 벗던 동작을 우뚝 멈추고 연우강을 보았다.
운화와 향노를 비롯한 하오밀문 문도가 적에게 납치된 상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곧바로 싸울 태세다.
“ 인질범을 상대하는 건 제게 맡기세요.”
연우강은 조금 전 손을 밀어 넣었던 바위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창노는 연우강 옷 옆에 자기 옷을 던져 넣고 바위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엔 또 다른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연우강은 바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손은 안으로 밀려들어 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바위는 환영이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다.
“ 막힌 거냐?”
창노는 바위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바위 환영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왔지만 주변 전경은 환영 바깥쪽과 꼭 같았다.
“ 당연히 막혀 있어야죠.”
연우강은 손바닥을 왼편으로 가져가 바위를 더듬었다.
“ 막혀 있어야 한다고?”
“ 누군가가 우연히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잖아요.”
“ 자연스럽게 저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진짜 바위를 두었다는 말이구나.”
창노는 오른편 숲을 보았다.
연우강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우연히 바위 환영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왔던 누군가는 이 곳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테고, 지금 연우강이 그런 것처럼 바위를 더듬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자연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라 여기며 오른쪽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 여긴 없고.”
주변을 더듬고 난 연우강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바위 높이는 이 장 가량이었다.
“ 우연히 들어온 누군가의 손에 닿지 않을 곳이면.”
연우강의 몸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일 장 높이까지 올라간 그는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바위를 더듬었다.
“ 여기요.”
연우강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팔은 팔꿈치까지 바위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창노와 독고철웅은 연우강 곁으로 올라갔다.
세 사람은 곧 바위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들은 계단을 밟지 않은 채 허공답보 경공을 펼쳐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석문이 있었다.
“ 은신술을 펼치세요.”
연우강은 석문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 너는?”
창노는 은신술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갔다.
“ 어떻게 들어간다는 거냐?”
“ 문은 열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석움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고는 천근추 수법을 사용하여 몸을 무겁게 했다.
그르릉!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연우강이 서 있던 공간 자체가 석문과 함께 돌아갔다.
‘ 저녀석?’
창노는 감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매번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녀석이지만 석문에 기관 장치가 돼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낼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 전에 겪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거네.]
그때 독고철웅의 혜광심어가 들려왔다.
[ 전에 겪어봤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 동정호 지하에서도 저런 식으로 작동하는 석문을 본 적이 있었네.]
[ 여긴 패천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창노는 고개를 갸웃했다.
독고철웅은 패천림 무인인 한사가 밀천 무인을 없애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구조가 동정호 지하에서 봤다는 밀천 총단과 같다는 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 이유는 저 친구가 알고 있는 것 같구먼.]
독고철웅은 한편 동굴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은 연우강을 가리켰다.
[ 이곳 구조가 동정호 지하 밀천과 같다는 건 무슨 소리냐?]
창노는 연우강 곁으로 다가가 전음으로 물었다.
[ 영감님께 드린 그 비급의 주인이 지은 구조물입니다.]
[ 천수귀장 혁미월이 지었다고?]
[ 동정호 지하에 있던 구조물의 특징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연우강은 조금 전까지 관찰하고 있던 곳을 가리켰다.
[ 그 홈이 그녀가 지은 구조물의 특징이란 말이냐?]
[ 이 홈은 배수로면서 식수를 운반하는 수로이기도 합니다.]
연우강은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천장에 박힌 야명주 하나가 동굴을 밝히고 있는데, 길이는 십 장가량이었다. 세 사람은 동굴 끝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곳 또한 석문으로 막혀 있었다. 석문을 통과하는 방법은 전과 같았다. 연우강은 석문에 바짝 붙어 천근추를 펼쳤다.
그르릉!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석문을 여는 방식은 같았지만 안쪽 상홍은 조금 전과 달랐다.
“ 웬 놈이냐?”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차가운 예기가 연우강을 향해 몰아쳐 왔다.
스윽!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의 신형이 왼편으로 이동했다. 날카로운 예기를 흘린 연우강이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스르릉!
허리춤에서 검 뽑히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곧 허공에 가위 형태의 궤적이 남았다. 가위 표식의 궤적은 사내를 향해 폭사돼 갔다.
슉!
가위 표식의 검은 궤적은 흡수되듯 사내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순간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다.
사내의 양쪽 목 근처에서 붉은 선이 생겨나더니 가위 표시를 이루며 아래로 빠르게 이어졌다. 마치 폭발한 용암이 새로운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듯한 모흡이었다.
쩍!
사내의 몸통이 가위 표식의 궤적을 따라 갈라지며, 피가 폭포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 독고 영감!”
연우강은 동굴 끝을 향해 달려가며 창노를 불렀다.
“ 말하게!”
“ 지금부터 영감은 동굴 가장자리 배수로를 살펴주시오.”
“ 어떤 걸 중점적으로 보면 되는가?”
“ 배수로를 보면 물이 흐를 거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물이 흐르는 방향이오.”
“ 물이 흐르는 방향이라면 지하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군.”
“ 가장 깊은 곳에 감옥이 있을 거란 말인가?”
“ 아니오.”
“ 그럼?”
“ 남궁 소저를 납치하라고 시킨 놈이 있을 거요.”
“ 패천림 림주를 만날 생각인가?”
“ 그래야 남궁 소저 행방을 알 것 아니오.”
“ 그렇군.”
독고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지하가 얼마나 넓은지 감옥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남궁운화 일행을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가장 좋은 방법은 림주를 찾아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르릉!
또다시 석문이 열렸다.
“ 적이다!”
이번엔 두 명이었다.
“ 차앗!”
연우강은 전방으로 폭사돼 가며 검을 쭉 내밀었다. 그의 검 끝에서 검은 광채 수백 개가 폭사돼 나갔다.
“ 헉!”
“ 허억!”
연우강을 향해 달려가던 패천림 무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수백 마리의 말이 그들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던 거였다.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달려오는 말을 보았다.
퍽! 퍽퍽퍽! 퍽퍽!
“ 크아악!”
“ 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갑시다.”
연우강은 다시 석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우주일만검결이구나.”
창노는 감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검을 찔러냄과 동시에 나타는 수백 개의 검은 광채. 그것은 우주일만검결을 펼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 나도 모르게 다 익혀버린 모양입니다.”
“ 왼쪽으로 가야 하네.”
독고철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왼편 석문 앞으로 거칠게 날아 내렸다.
그그긍!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석문을 지키고 있던 인원수도 점점 늘어나는 듯 이번엔 네 명이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운명 또한 앞에 있던 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우주일만검결에 의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 오른쪽이네.”
배수로를 살피던 독고철웅은 나직이 말했다.
연우강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날아 내렸다. 물론 날아 내릴 때마다 천근추를 펼치는 걸 잊지 않았다.
그그긍!
“ 이렇게 쳐 죽이는 게 인질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독고철웅은 열린 석문 안쪽으로 날아 들어가며 물었다.
“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오.”
연우강은 검을 쭉 내밀며 대답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그의 검 끝에서 검은 광채가 쏘아져 나가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어육으로 변한 패천림 무인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 야! 이 미친놈아!”
보다못한 창노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은신술을 펼치고 있어 드러나진 않았지만 연우강을 노려보는 창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왜 그러십니까?”
연우강은 창노가 있는 곳을 빤히 쳐다보며 석문 앞으로 걸어갔다.
“ 운화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냐?”
창노는 재차 소리쳤다.
다른 때보다 더 잔인하게 적을 처리하는 연우강의 행동 때문이었다. 아군이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이고 적진에 진입한 상태라면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해야 하고, 발각될 경우가 아니면 적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설사 죽인다고 해도 시체는 보이지 않는 장소로 치우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패천림 무인들이 비명을 내질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육신을 조각조각 잘라 처리하고 있다.
그를 보면 들어왔다고 광고 하는 거 같았다.
“ 친아버지 앞에서 잤다는 말 못 들었소?”
“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도대체 놈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처리하는 이유가 뭐냐?”
“ 난 패천림 놈들과 원한을 산 적이 없습니다. 영감님.”
“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란 말이냐?”
“ 나완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 놈들이 남궁 소저를 납치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 하지만 놈들은 납치했다. ”
“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알아야 합니다. 납치범들의 목적을 모르면 인질을 절대 구할 수 없습니다.”
“ 너는 알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 당연히 알고 있죠.”
“ 놈들이 운화를 납치한 목적이 뭐냐?”
“ 접니다.”
연우강은 자신을 가리켰다.
“ 너라고?”
“ 보통 어떤 경우에 납치를 하죠?”
연우강은 석문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그가 올라서자 석문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문이 열리며 나타난 장소는 크지 않은 광장이었다. 광장 안에는 삼십여 명의 패천림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서 있었다.
그들 중에 연우강도 아는 자가 있었다.
매부리코에 작은 눈을 가진 칠척장신의 인물. 그는 바로 패천십관에서 만났던 지노 대창익이었다.
“ 웬 놈이냐?”
대창익은 차가운 눈으로 연우강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 납치는 인질과 친분 관계에 있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할 때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창노는 적을 살피며 다시 혜광심어로 조금 전 연우강의 질문에 대답했다.
[ 우선 적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누구냐고 물었다.”
대창익은 다시 소리쳤다.
“ 이런! 얼굴을 아직 바꾸지 않았네.”
연우강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환영축골공을 풀었다. 그러자 냉막한 중년인의 얼굴이 사라지고 본래 얼굴이 드러났다.
“ 넌?”
대창익은 깜짝 놀랐다.
“ 맞아. 연우가이야.”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사망묵의 주머니에서 사망낭조를 꺼내 각 손가락에 끼웠다.
“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대창익의 입가에 조소가 머물렀다 사라졌다.
“ 잘 알고 있는데 어떡하지?”
연우강은 대창익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 알고 있다고?”
“ 내가 아는 건 너희 패천림이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거야.”
파앗!
연우강의 신형이 패천림 무인들을 향해 폭사돼 갔다.
“ 저런 미친!”
대창익은 당황했다.
어떤 방법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건 남궁운화와 향노를 비롯한 하오밀문 무인들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놈의 행동이다.
보통은 친인이 납치되면 가장 먼저 요구 사항이 뭔지를 묻는다. 그런데 놈은 다짜고짜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다.
“ 쳐라!”
대창익이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자, 다른 무인이 고함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은 달려오는 자를 향해 검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검은 정확하게 사내를 향해 쏘아져갔다.
사내는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연우강의 검을 쳐냈다.
카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절반으로 부러졌다.
연우강의 검을 부러뜨린 사내는 피식 웃었다.
검에 실린 힘 때문이었다.
강한 무인이 던진 검을 쳐내게 되면 튕겨나가는데 연우강의 검은 중간에서 부러진 것이었다.
그것은 곧 무공이 강하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 역시 소문은...... 헉!”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하려던 사내의 눈이 문득 휘둥그레졌다. 부러진 절반이 가슴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급하게 몸을 틀었다.
하지만 가슴 바로 앞가지 와 있는 검을 피할 수가 없었다.
푸욱!
“ 아악!”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허공으로 올라가는 연우강의 오른손이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철컥! 철컥!
잔뜩 독오른 독사처럼 모습을 드러낸 사망낭조가 사내의 안면으로 파고들어 갔다.
“ 크아아악!”
고통에 겨운 비명이 광장을 강타했다.
연우강은 찔러 넣었던 손을 강하게 잡아당김과 동시에 왼손을 내리찍었다. 그의 왼손에는 어느새 뽑아 들었늦지 손괭이가 들려있었다.
츄악!
퍼억!
피가 솟구치던 사내의 머리가 두부처럼 으깨졌다.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낫을 꺼내 들었다.
“ 역시 내겐 이게 어울려.”
그는 싱긋 웃으며 패천림 무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차앙!
괭이로 막고 낫으로 후려치고, 낫으로 막고 괭이로 찍는 난투박투가 펼쳐졌다.
하지만 전에 천옥에서 보여주었던 난투박투와는 조금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그는 간혹 쥐고 있던 낫과 괭이를 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양손 손가락에 끼워진 사망낭조가 적의 숨통을 끊었다.
손괭이 낫, 사망낭조 그리고 마라천력.
그 네 가지로 이루어진 살겁의 현장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참혹했다.
“ 간-다! 가-라! 새카만 이리가 사막을 달린다!”
연우강의 입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 부순다! 부숴라! 우리를 막~는 적군을 부순다!”
한 번의 죽음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적의 무기를 마라천력으로 흘리고 손괭이로 찍고, 낫으로 자르고, 사망낭조로 할퀸다. 사방으로 키가 튀고, 잘려나간 부위가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 남긴다! 남겨라! 흑랑이 나가면 시체만 남긴다!”
퍼억! 스악! 퍼억!
“ 에이! 씨부랄! 에이! 씨부랄!”
“ 크악!”
“ 아아악!”
“ 저럴 수가!”
대창익은 경악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천주인 유가 남궁운화를 비롯한 하오밀문 문도들을 인질로 잡아야 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던가.
설사 강한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연우강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우강의 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인질로 잡는다고 했으니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모습은........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 달린다! 달려라! 미-친 이리가 적진을 달린다!”
퍼억! 슉! 퍽!
“ 크아악!”
“ 아악!”
“ 죽일 놈!”
대창익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기 위해 내기를 끌어올렸다.
뜨끔!
바로 그때 양쪽 어깨의 거궐혈과 뒷목 천주혈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 허억!”
대창익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어이없게도 점혈당한 그곳은 온몸을 마비시키는 마혈이었던 것이다. 그는 급하게 점혈을 풀기 위해 내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제압을 당한 듯 내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누구냐?”
대창익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수십 년 동안 무공에 매진했고, 패천십경의 하나인 지옥마환지를 극성으로 익혔다. 무공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는데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연우강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뒤에 있는 자 또한 자신과 비슷한 실력자라는 의미였다.
“ 지금은 궁금증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즐길 궁리를 하게나.”
대창익을 제압한 사람은 독고철웅과 창노였다.
두 사람은 대창익의 양쪽 어깨에 엉덩이를 걸치고 연우강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죽인다! 죽여라! 한 놈도 남김없이! 씨-를 말려라. 마셔라! 마셔라! 적군의 피-로 갈증을 식혀라!”
퍼억!
스악!
“ 아악!”
“ 으악!”
독고철웅과 창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독고철웅은 강호 공적으로 무수히 많은 싸움을 했고, 창노는 팔황새 정벌에서 수많은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저렇듯 잔인한 광경은 그들도 처음이었다.
손괭이가 노리는 곳은 패천림 무인의 양쪽 어깨나 머리다. 손괭이에 당한 패천림 무인이 움찔하면 그 다음엔 낫이 사지 중 한 곳을 잘라낸다. 물론 잘래낸 것 중에는 목도 포함된다. 보통 목을 잘라내면 시체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연우강은 나이었다.
그는 낫이나 손괭이를 시체의 잘려나간 부위에 꽂아놓고 허공으로 떠오른 머리를 향해 사망낭조를 휘두른다.
무려 세 번에 걸쳐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창노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찌푸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으음!”
그러다가 그는 신음을 내뱉었다.
연우강의 몸에서 어떤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살인을 하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기가 흘러나오게 된다.
설사 살기를 슴기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흘러나오지 않지만 적을 죽이는 마지막 순간에는 저도 모르게 발산하고 만다.
그런데 연우강의 몸에서는 전혀 그런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건 곧 적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니, 본인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자네도 느꼈는가?”
독고철웅이 물었다.
그 역시 연우강의 몸에서 어떤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 그렇습니다.”
창노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모습만 보아도 연우강의 과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연우강은 한마디로 살인기계였다.
“ 마셔라! 마셔라! 적군의 피-로 갈증을 식혀라!”
“ 크아악!”
잘린 머리 하나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츄악!
다섯 줄기의 광채가 허공으로 떠오른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연우강의 오른손이었다. 그의 손은 빠르고 강했다. 보통 허공에 떠 있는 물체를 후려치면 물체는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머리는 허공에 그대로 있다. 그것은 연우강의 손에 있는 사망낭조가 가공할 속도로 머리를 가르고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그 머리의 주인을 끝으로 지하 광장에 살아남은 자는 대창익밖에 없었다.
“ 이제 자네의 생사가 결정될 순간이구먼.”
독고철웅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가 자리를 뜨자 창노 또한 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은 천천히 대창익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괭이와 낫이 들려 있었다.
“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연우강은 대창익 앞에 섰다.
대창익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패한 것, 죽음을 받아들이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핮만 죽음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처럼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슨.....”
대창익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맞다. 패천림 림주가 누군지 모르지만, 큰 실수를 했다는 말까지 했지.”
“ 지금 네 실력을 보니까 큰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아주 잘 한 것 같구나.”
대창익의 눈에 반짝 빛이 어렸다.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발견한 조난자의 눈빛이었다. 인질을 잡고 있는 이상 연우강이 자신을 해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대창익은 심호흡을 하여 잠식해 들어오는 불안감을 떨쳐냈다.
“ 왜?”
연우강은 대창익을 빤히 보았다.
“ 왜냐면 날 죽이면 인질도 죽기 때문이지.”
“ 나하곤 생각이 다르네.”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 어떻게 다르단 말이냐?”
“ 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야.”
연우강은 오른손의 낫을 들어올렸다.
“ 난 패천의 장로다!”
대창익은 연우강의 낫으로 시선을 주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 불안감이 어렸다.
“ 패천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들어올린 낫이 사정없이 공간을 갈랐다.
“ 나, 난.......크악!”
대창익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쥐어짜는 듯한 고통도 잠시, 아직 정신이 말짱하다는 생각에 대창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렇게 좋아할 것 없어. 낫은 여기 있으니까.”
“ 서, 설마.....”
시선을 내린 대창익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연우강의 낫은 단전을 뚫고 박혀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 낫이 꽂힌 부분을 살짝 얼렸어.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거야.”
“ 그, 그러니까.....”
“ 패천림을 패천으로 개명한 것 같은데 밎아?”
“ 그, 그렇다.”
“ 그럼 대장을 천주라고 부르겠네?”
“ 물론이다.”
“ 누구지?”
“ 유가 천주다.”
“ 승천비고에 있던 그 요괴들의 제자?”
“ 그렇다.”
“ 그럼 아직 천주 자질이 있는 자인지 검증하지 못했겠네?”
“ 그는 사조께서 인정한 인물로 검증이 필요 없다.”
“ 사조라면 혹시 천마를 말하는 거야?”
“ 그, 그걸.....”
그 말은 내공을 잃었다는 사실도 잊게 할 만큼 위력적이다. 연우강이 천마 제석강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 일백마의 무덤을 만들어준 사람이 나야, 인마.”
“ 호, 혹시....”
전에 패천십관에 도전해 온 자가 연우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 세상엔 비밀이 없는 거야. 아무튼 목 빠지게 천마를 기다렸던 제천강은 닭 쫓던 개꼴이 된 셈이네?”
“ 제천강 그분도 천주를 인정하고 따르고 있다.”
“ 천마가 후계자로 지정한 놈이니까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유는 너희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그것도 생각해 봐야지.”
“ 그도 우리를 패천의 원로로 인정하고 있다.”
“ 그렇게 생각해?”
“ 물론이다!”
“ 그럼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봐야겠어.”
“ 어떻게 확인한단 말이냐?”
“ 수장의 자질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대창익은 말없이 연우강을 보았다.
“ 그건 바로 쓸모 없어진 부하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그걸 보면 알 수 있어. 그런 면에서 보면 넌 유의 자질을 시험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거야.”
연우강은 대창익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난 유 그자가 네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쪽에 내 전 재산을 걸 거야.”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대창익의 아혈을 점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