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부상보다 더 무서운 건
밤이면 늘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뚝 그치고, 서늘한 기운이 자모곡에 몰아쳤다. 그리고 검은 옷을 걸친 자들 수천 명이 자모곡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남뢰곡을 떠나온 밀천 무인들이었다.
휙! 휙휙! 휙!
조용한 파공성과 함께 네 명이 나적리 곁으로 날아 내렸다. 그들은 동서남북 각 방향을 맡고 있는 풍밀가 수뇌들이었다.
“ 배치 끝났습니다.”
“ 끝났습니다.”
“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네 사람은 나적리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나직이 말했다.
“ 적진은 어떤가?”
“ 경계 서는 자들만 있을 뿐, 조용합니다.”
“ 좋네. 돌아가서 기다리도록 하게.”
“ 존명!”
네 사람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나적리는 뒤편에 서 있는 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를 받ㄷ은 사내는 곧 등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먹였다.
“ 오늘 승부가 결정날 것이다. 혁련무극!”
나적리는 주먹을 지그시 말아 쥐었다.
휘이익!
날카로운 소리를 남기며 효시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 공격하라!”
“ 공격하라!”
“ 공격하라!”
동서남북 사방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흘러나오고, 이천오백 명의 밀천 무인들은 터진 봇물처럼 자모곡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 적이다!”
“ 피하라!”
“ 도망쳐라!”
경계를 서고 있던 야궖 무인들은 일제히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 응?”
문도들을 따라 몸을 날리던 나적리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경계를 서던 자들이 대항을 포기하고 도망을 친다는 것은 천막 안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 설마......”
“ 아무도 없습니다.”
“ 텅 비었습니다.”
바로 그때 천막을 덮쳤던 밀천 무인들은 당혹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 주변을 경계하라! 외곽에 있는 문도들은 주변을 살펴라!”
나적리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꾸준히 감시를 해 왔고, 경계를 서는 자들도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 자고 있어야 할 자들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 아무도 없습니다!”
“ 없습니다.”
이번엔 외곽을 살폈던 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문도들은 동뢰곡으로 가라!”
나적리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 동뢰곡이다!”
“ 동뢰곡으로 이동하라!”
밀천 무인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동뢰곡으로 향했다. 동뢰곡은 자모곡에서 한 식경 거리쯤 떨어져 있었다.
순식간에 작은 봉우리를 넘어 동뢰곡에 당도한 일행을 맞이한 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과 텅 빈 천막들이었다.
“ 아뿔싸!”
나적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자목고과 동뢰곡에 적이 없다면 그들이 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 태상천주님!”
주변을 둘러보고 온 원세군이 나적리 곁으로 다가갔다.
“ 놈들은 전부 무곡에 있네. 원 가주.”
나적리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이 있네.”
“ 어떤 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곧바로 남쪽으로 길을 잡아 직진하는 길과, 약간 돌아가게 되지만 흑우평으로 가는 길이 있네. 남쪽으로 직진해 가면 매복을 걱정해야 하고, 흑우평으로 가면 그들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네.”
“ 남쪽으로 가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 글쎄......”
나적리는 말끝을 흐렸다.
무곡으로 간 이덕무 일행은 이미 전쟁을 시작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그들을 구한다는 건 무리다.
“ 전쟁의 목적은 승리지. 부하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태상천주님.”
원세군은 단호하게 말했다.
“ 그들을 포기하잔 말인가?”
“ 포기하는 게 아니라 불가항력입니다.”
“ 만일 혁련무극이 지금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흑우평에 매복해 있으면 그땐 어떻게 할 텐가?”
역시 나적리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급한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혁련무극의 의도를 읽어내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듣거라!”
원세군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 남쪽과 북쪽으로 가서 대규모로 이동한 흔적을 찾아라!”
“ 알겠습니다.”
밀천 무인들은 급하게 남쪽과 북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들 중에는 군무옥과 무원도 끼어 있었다.
두 사람이 가는 곳은 북쪽이었다.
[ 어떻게 생각하쇼?]
군무옥은 무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 다 들었으면서 뭘 물어?]
방금까지 두 사람은 전음으로 나적리와 원세군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 나적리 저놈이 어디로 갈 전기 그걸 묻는 게 아니라 혁련무극 그 놈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걸 묻는 거 아니오.]
[ 넌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휙!
무원이 묻자마자 군무옥은 신발을 던져 올렸다.
잠시 후 떨어진 신발은 정확히 북동쪽을 가리켰다.
[ 북동쪽이오.]
[ 북동쪽이라고?]
무원은 황당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점이니까 믿어도 되오. 저기 보시오.]
군무옥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을 가리켰다.
[ 뭐가 있단 말이냐?]
무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낙엽은 다른 곳에 쌓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군무옥은 그 낙엽이 이상하다는 것처럼 말한 것이었다.
[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지요. 자꾸만 손가락만 보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 아뇨.]
[ 달?]
[ 낙엽 위쪽 나무를 보란 말이오.]
[ 처음부터 나무를 보라고 하면 되잖아. 자식아.]
무원은 툭 쏘아붙이며 낙엽 쌓인 곳 위쪽의 나무를 보았다. 그가 쳐다본 나무는 소나무였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 소나무 아래쪽에 단풍잎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단 말이오?]
[ 이곳은 산중이야. 녀석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 더 많은 것도 몰라?]
[ 아무튼 그런 머리로 어떻게 팔황정벌에 나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러니까 쫄딱 망했지.]
군무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북하게 쌓인 단풍잎을 걷어냈다.
[ 누가 연우강 부하 아니랄까 봐. 아무튼 너와 우강이 그놈은 주둥일 꿰메버려야 해.]
[ 꿈에라도 그런 생각 하지 마쇼. 영감. 난 괜찮은데 대장의 입을 꿰매면 정말 큰일 나오.]
[ 왜 큰일이 나는데?]
[ 대장은 말이오. 말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얌전하오. 그가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사람을 죽일 때밖에 없단 말이오. 찾았네.]
군무옥은 싱긋 웃었다.
단풍잎을 걷어내고 나자 수십 개의 발자국이 찍힌 바닥이 나타났다. 발자국이 향하는 방향은 전부가 북동쪽, 즉 흑우평 방향이었다.
[ 덮어, 인마.]
무원은 질겁하며 군무옥 옆으로 다가갔다.
“ 뭐냐?”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수뇌로 보이는 자가 다가왔다.
[ 늦었소, 영감. 벌써 발각된 모양이오.]
[ 그러게 자식아. 그걸 왜 들춰?]
무원은 군무옥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 전쟁 수칙 제 1조가 뭔지 아시오?]
“ 발자국이구나.”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온 자는 바닥을 확인하더니 곧 나적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 전쟁 수칙은 또 뭐냐?]
[ 대장이 만든 전쟁의 정석이오. 전부 네 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1조는 ‘적장의 성향을 철저하게 파악하라’요.]
[ 그게 지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 두고 보시오.]
군무옥은 주변의 낙엽을 전부 걷어냈다. 낙엽이 걷히면서 발자국은 점점 많아졌다. 십 장가량 낙엽을 치웠을 때 나적리와 원세군이 다가왔다.
“ 북쪽으로 갔습니다. 태상천주님.”
발자국을 확인한 원세군이 말했다.
“ 확신하는가?”
“ 발자국을 숨기기 위해 낙엽으로 덮어두었다는데 그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십니까?”
“ 그렇긴 하네만........”
“ 어째 여긴 소나무밖에 없는데 단풍나무 잎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 단풍나무는 남쪽에만 있던데.”
그때 낙엽을 치우던 군무옥이 말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나적리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나적리는 주변 나무를 보았다.
엎드려 낙엽을 치우고 있는 녀석의 말처럼 주변엔 소나무만 있었다. 그런데 바닥을 덮고 있는 낙엽은 전부가 단풍잎이었다.
‘ 약은 놈!’
나적리의 눈빛이 깊어졌다.
북동쪽으로 가는 것처럼 하기 위해 발자국을 만들고, 낙엽으로 가리는 신중함을 발휘했지만, 솔잎이 아닌 단풍잎으로 덮은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 놈들은 이곳에 발자국을 만들고 남쪽으로 갔네. 우린 흑우평으로 가야 하네.”
“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원세군은 주변에 있는 수뇌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 흑우평으로 간다!”
“ 서둘러라.”
“ 모든 문도들은 흑우평으로 간다!”
“ 한시가 급하다. 서둘러라!”
독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밀천 무인들은 전력을 다해 흑우평을 향해 몸을 날렸다.
[ 혁련무극이 어디에 있을 거라고 보느냐?]
무원은 일행을 따르며 군무옥에게 물었다.
[ 혁련무극 그놈은 흑우평에 매복해 있소.]
[ 신발점 말고 네 의견을 말해 보란 말이다, 이놈아!]
[ 신발점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날 믿으시오. 이놈들은 호랑이 굴로 달려가고 있는 거요.]
[ 너 정말?]
[ 늙으면 느는 건 주름살과 고집과 의심만 는다고 하더니.... 발자국을 자세히 본 거요?]
[ 발자국?]
[ 발자국은 정상적으로 달릴 때와 자국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찍을 때는 다르다는 걸 정말 모른단 말이오?]
[ 몰라.]
[ 아무튼 저 머리로 어떻게 벌주가 됐는지. 혹시 무공보다는 마작이나 골패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거 아뇨?]
부드득!
무원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걸음을 걸을 때 발바닥에서 가장 많이 힘이 들어가는 부분은 어디요?]
[ 앞부분이란 말이냐?]
[ 걸어보면 알 거 아뇨. 우린 걸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발끝으로 바닥을 밀어내고 있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발자국은 앞쪽이 약간 더 깊이 파이게 되오. 하지만 흔적을 남길 때는 걷는 게 아니라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그럼 그 발자국은.......]
[ 깊이가 일정하단 말이구나.]
[ 그렇소. 저 뒤쪽에 남겨진 발자국은 전부가 앞쪽이 약간 더 파여 있었소.]
[ 야궐 무인은 흑우평으로 갔단 말이구나.]
[ 적장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라는 거요.]
[ 하지만 그는 네가 아니었다면 남쪽으로 갈 수도 있었다.]
[ 나적리는 처음부터 북동쪽으로 갈 생각이었을 거요. 난 다만 그에게 좀 더 빨리 결정하도록 도움을 줬을 뿐이고.]
[ 아무튼 대단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군무옥은 나적리의 심리뿐 아니라 혁련무극의 심리상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 지금 대단한 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오.]
[ 그럼 뭐가 문제란 말이냐?]
[ 전쟁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주먹 감잔데. 그걸 못하게 생겼단 말이오. 흑우평에서는 글렀고, 무곡에서는 꼭 해야 하는데.]
군무옥은 아쉬운 얼굴을 하며 몸을 날렸다.
‘ 주먹 감자는 또 뭐야?’
무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군무옥을 따랐다.
************
창! 창창! 창창창!
“ 크악!”
“ 으악!”
“ 아아악!”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이 부유물처럼 계곡 안쪽에 떠다녔다.
“ 으음!”
이덕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적군에 비해 아군의 수는 다섯 배 이상이다.
그런데 계곡의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수적 우세로 인한 장점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폭이 넓은 곳으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 크아악!”
“ 빌어먹을!”
전방에서 비명이 흘러나오자 이덕무는 욕설을 내뱉었다. 선두로 나선 자들은 전부가 은원 고수들이다. 그런데 적군에도 야궐의 원로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 저놈!”
이덕무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솟아 나왔다.
오창선과 적일광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주변 다른 은원 무인들을 없애고 있었다.
“ 귀사, 사사 뭘 하고 있는가?”
보다 못한 이덕무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내가 보기엔 그쪽보다는 자넬 더 신경 써야 할 때인 것 같은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덕무는 시선을 들었다.
그에게 말을 건 세람은 흑마괴문을 이끌고 있는 창노였다.
“ 자네?”
아무리 다급한 와중이라고 해도 인간이 이상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덕무가 그랬다. 후미에 있던 그가 흑마괴문 쪽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좁아진 계곡 폭 탓이었다.
폭이 좁은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후퇴를 하든지 빠르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자들이 흑마괴문이었다. 적은 강약에 따라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중앙의 야노원 무인들이 가장 강하고 왼편의 야랑대 무인이 그 다음이다. 오른편에 있는 흑마괴문이 가장 약했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강한 자가 기준이 되지만 물러날 때는 약한 자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흑마괴문이 물러나면 중앙과 왼편에 있는 자들 또한 함께 물러날 수밖에 없기에 그 점을 노리고 흑마괴문 쪽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갓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자네라고 한 것이다. 뜨거운 기운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 이런 죽일 놈이!”
이덕무는 창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창노를 향해 몸을 날린 것은 극도로 기분이 나쁜 이유도 있지만, 창노가 흑마괴문의 수뇌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창노를 없애고 곧바로 더욱 거칠게 밀어붙이면 넓은 장소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했다.
창노를 향해 몸을 날리는 이덕무의 신형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그것은 이덕무의 독문 무공으로 백 개의 환영을 만들어낸다는 미리백환신공이었다.
“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군.”
창노는 피식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백여 개로 늘어난 이덕무의 환영을 향해 천천히 찔러 넣었다. 그의 움직임은 백 개의 환영을 만들어낸 이덕무의 무공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찌르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옆이나 뒤에서 보았을 대에 한했다. 미리환백신공에 이어 최강의 수를 준비하고 있던 이덕무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검 끝.
그것은 이기어검술과 심검 사이의 경지인 무극검이었던 것이다. 무극검은 펼치는 자의 내공은 물론이고 주변의 기운을 검끝으로 빨아들여 하나의 점을 만든다. 그런 다음 적의 움직임을 좇아 그 점을 쏘아내게 되는데 지금껏 하나로 압축됐던 점은 적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폭발한다.
이제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무극검을 익혔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다.
“ 하지만 내가 만든 환영은 백 개다. 누구를 선택해서 무극검을 펼칠 거냐. 무극검을 실패하는 순간, 넌 내 손에 죽는다.”
환영 백 개의 입이 동시에 열리고 똑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내게는 전부 선택할 방법이 있다네.”
창노는 빙그레 웃으며 검을 우에서 좌로 천천히 이동시켰다. 그의 검이 이동할 때마다 환영처럼 검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곧 군마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 저, 저저.....”
이덕무의 입에 쩍 벌어졌다.
검 끝이 이동할 때마다 푸른색 군마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니, 이젠 검조차 보이지 않는다. 군마가 군마를 낳고, 그 군마가 다시 군마를 낳고 있다.
그리고 수백 개로 불어난 군마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 파, 파천군마도!”
이덕무는 경악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동정호 지하 석실에 있던 그림으로 우주일만검결이 숨겨져 있다고 하였다. 그 그림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수백, 아니, 수천 번도 더 보았다. 하지만 우주일만검결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파천군마도가 야궐 무인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파천군마도가 아니라 우주일만검결이었다.
“ 어떻게.....”
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주일만검결은 밀천 천주의 독문 무공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적이, 그것도 혁련무극도 아니고 흑마괴문의 문도가 익히고 있단 말인가?
이덕무는 너무 놀라 무공을 펼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우주일만검결로 생성된 군마가 짓쳐들어갔다.
퍽! 퍽퍽퍽! 퍽퍽! 퍽!
퍼억! 퍼억!
그의 몸으로 파고들어 간 우주일만검결의 군마는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이덕무의 신형은 폭죽처럼 터졌다.
“ 쉽네.”
창노는 어깨를 으쓱했다.
[ 그건 뭡니까?]
그때 연우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 내공을 잃고 나니 무극검이 찾아오더구나.]
[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까 새로운 경지가 보였단 말이군요.]
[ 그랬다. ]
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려서 얻는다는 말을 그때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연우강이 준 영단을 복용하고 운기행공을 하던 도중에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그게 바로 무극검이었다.
무극검을 얻고 나자 신기하게도 운화에게 줬던 것보다 더 많은 내공이 몸 안으로 축적됐다.
자연의 기를 검 끝으로 모으는 무극검은, 심검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무공의 최후 단계라는 공령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이었던 것이다.
[ 그래서 우주일만검결에 무극검을 합친 겁니까?]
[ 그 반대다. 주는 무극검이고, 우주일만검결은 부다.]
[ 그게 그거 아닙니까?]
[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끝내. 녀석아. 통로로 갔던 녀석들이 나올 때 됐어.]
알면서도 말을 걸어오는 연우강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녀석은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 알았습니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앞쪽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직 이덕무의 죽음을 알지 못한 듯했다.
아니, 연우강의 무공에 놀라 기절할 지경이 된 오창선과 적일광은 다른 곳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 어디서 이런 놈이?’
오창선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지금껏 오창선은 무공으로 누군가에게 밀릴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수만 접어주면 태상천주인 나적리와도 동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물며 지금은 적일광과 힘을 합친 상태가 아닌가?
게다가 적은 흑마괴문의 애송이.
꿈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 누, 누구냐?”
오창선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 이제 끝낼 시간이야.”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철삭에 마라천력을 극한으로 주입했다. 마라천력을 받아들인 철삭은 검은 광채를 뿌려대며 시위를 당긴 활처럼 휘어졌다.
“ 어림없다. 놈! 죽을 놈은 너다!”
적일광은 버럭 소리치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밀사께서 죽음을 당했다.”
“ 밀사께서 당했다!”
바로 그때 왼편에서 잔뜩 겁먹은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헉!”
“ 허억!”
오창선과 적일광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치 커다란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두 사람은 비틀거렸다.
슈아앙!
두 사람이 멈칫 하는 순간, 잔뜩 휘어져 있던 철삭이 가공할 속도로 적일광의 머리로 떨어졌다.
“ 피, 피하게.”
퍼뜩 정신을 차린 오창선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적일광에게 경고하는 것보다 먼저 방어를 했어야 했다. 적일광을 공격하던 철삭의 반대편 끝이 오창선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가공할 속도로 파고들었다.
“ 커억!”
먼저 비명을 지른 사람은 적일광이었다.
활처럼 튕겨졌던 한쪽 끝이 적일광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간 것이었다.
“ 크악!”
그리고 두 번째 비명은 오창선의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반대편 철삭은 정확하게 오창선의 단전에 박혀 들어가 있었다.
“ 넌.....!”
오창선은 손을 들어 연우강을 가리켰다.
“ 별동대 대주.”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철삭으로 시선을 주었다.
철컹!
나직한 소리와 함께 철삭은 오창선과 적일광의 몸에서 빠져나와 연우강에게로 날아왔다.
“ 귀사와 사사 어르신이 당했다!”
“ 두 분이 당했다!”
오창선과 적일광이 당했다는 외침이 터져 자오자 밀천 무인 진영은 급격하게 와해됐다.
“ 대라검문 무인들은 공격하라!”
“ 죽여라!”
바로 그때 밀천 무인 후미에서 우렁찬 외침과 함께 대라검문 무인 이백여 명이 밀천 무인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들 선두에는 부문주 사혈검 강석일과 초소칠이 서 있었다. 남쪽으로 이동한 초소칠은 대라검문 무인들을 이끌고 십 번 통로를 통해 나온 것이었다.
“ 별동대는 공격하라!”
“ 공격하라!”
“ 공격하라!”
동시에 세 곳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지금껏 물러서던 별동대 무인들이 방향을 바꿔 밀천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크악!”
“ 아악!”
“ 아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덕무, 오창선, 적일광의 죽음은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앞뒤로 포위가 된 상태라 도망칠 곳도 없었다. 밀천 무인들은 한 명 두 명 차가운 지면에 몸을 뉘였다.
“ 전쟁 수칙 제 4조.”
연우강은 철삭을 휘두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 전부 죽여라!”
별동대 대원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적진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녔다.
“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완벽하게 끝내라!”
“ 크악!”
“ 아악!”
“ 으아악!”
앞과 뒤에서, 뒤와 앞에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한 식경이 지났을 때, 이덕무를 따랐던 밀천 무인들 중 서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 광삭!”
연우강은 대라검문 무인들 근처에 있는 초소칠을 불렀다.
“ 네, 대주님.”
초소칠은 연우강 앞으로 몸을 날려와 부동자세를 취했다.
“ 대라검문 본대는 어디쯤 와 있지?”
“ 진행 속도로 보건대 육 번 통로 부근을 지나고 있을 겁니다.”
“ 가서 부문주를 불러와라.”
“ 알겠습니다. 대주님.”
초소칠은 고개를 숙이고는 후미로 달려갔다. 곧 초소칠과 강석일이 다가왔다.
“ 적은 총 몇 명이나 되오?”
“ 육백 명가량입니다.”
강석일은 연우강을 가만히 보았다.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흑마괴문의 평 문도였던 자다. 그런데 지금은 야노원 원로들은 물론이고 궐주 호위대 대주인 야랑대 대주까지 부하로 거느린 엄청난 자가 된 것이다.
신분으로 따지면 더 위였다.
“ 오는 동안에 백 명 정도는 죽었을 테니까 오백 명으로 잡으면 되겠구려.”
“ 그렇습니다.”
아군 또한 비슷한 수가 당했지만 강석일은 말하지 않았다.
“ 다음 작전도 이곳에서 시작할 거요.”
“ 무곡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여깁니까?”
“ 그렇소. 부문주.”
“ 그럼 여기가 적을 절반으로 자를 생각이십니까?”
강석일은 머리가 빨리 도는 자였다. 그는 이곳이 폭이 가장 좁다는 말에서 적을 둘로 쪼개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절반으로 쪼개는 건 우리 별동대가 맡을 거요.”
“ 알겠습니다. 그럼 은밀하게 놈들을 따르다가 십 번 통로가 가까워지면 공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좋소. 수고하시오.”
“ 대주님도 수고하십시오. 어르신들도요.”
강석일은 연우강을 비롯한 일행에게 포권을 취한 후 몸을 날려갔다. 곧 이백오십 명의 대람검문 무인들은 십 번 통로로 들어갔다.
“ 각 조장들은 부상자를 파악해서 보고하고, 나머진 사망자를 찾아내도록.”
연우강은 물러서 있는 별동대 대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고는 절벽 가장자리로 가서 기대앉았다.
잠시 후 인원 점검을 끝낸 조장들이 연우강 곁으로 다가왔다.
“ 사망 이십 명, 부상 다섯 명입니다.”
“ 부상 정도는?”
“ 세 명은 팔을 하나씩 잃었고, 두 명은 팔과 다리를 잃었습니다.”
“ 이 조 조장은 이 근처에 동굴을 찾아봐.”
“ 후송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위독해?”
“ 그건 아닙니다.”
“ 위독하지 않으면 함께 싸워야지.”
“ 그들은 무기를 들 형편이 아닙니다.”
함께 싸운다는 말에 복양후는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팔과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방금 보고했다. 그런데 함께 싸우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건 나도 알아.”
“ 그런데 함께 싸운다는 건?”
“ 그 전에 내가 물을게. 그들을 어디로 후송시킬 거지?”
“ 그건......”
복양후는 말끝을 흐렸다.
이미 궐주가 이끄는 본진도 동뢰곡과 자모곡을 떠났을 것이다. 지부 아니면 갈 곳이 없다.
“ 지금 우리에게 남은 인원은 칠십오 명이야. 인원을 뺄 수도 없어. 그럼 다섯 명만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물론 세 명은 다리가 멀쩡하니까 다리를 잃은 두 사람을 부축해서 갈 수는 있을 거야. 그렇게 가기를 바라?”
“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대주님.”
복양후는 고개를 숙였다.
“ 이번 전쟁에 참여한 야궐 무인은 삼천여 명이다. 설사 전쟁이 끝나서 논공행상을 하더라도 삼천 명 중 이천구백명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해. 아니, 받는 건 고사하고 지휘관들은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아. 잘해야 돈 몇 푼 또는 술 몇 잔이 전부야. 그런 그들이 왜 이런 개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봐. 그리고 부상자들 다섯 명 데려와.”
“ 알겠습니다.”
복양후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뒤편으로 갔다.
잠시 후 부상자 다섯 명을 데리고 왔다.
“ 이름이 뭔가?”
연우강은 맨 오른편에 있는 사내를 보며 물었다.
“ 이석민입니다.”
“ 강군남입니다.”
“ 진철입니다.”
다섯 명은 차례로 이름을 말했다.
“ 가족은 있는가?”
“ 있습니다.”
다섯 명은 동시에 소리쳤다.
“ 싸울 수 있겠나?”
“ 물론입니다. 대주님. 저흰 싸울 수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섯 명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무인이 팔과 다리를 잃었다는 것은 사형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다섯 명의 얼굴엔 절망적인 기색이 가득했다.
“ 좋다. 그럼 지금부터 자네들에게 임무를 내리겠다. 자네들의 임무는 유골함 스무개를 지키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는가?”
“ 유골함이라면?”
이석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죽은 동료의 유골을 가족에게 전해주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 임무를 완수하고 너희들은 야노원에 배치될 것이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팔과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무공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야, 야노원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 물론이다. 여기 노욱 원주가 약속했으니까 믿어도 된다.”
“ 감사합니다. 원주님.”
다섯 명은 노욱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 이거 참!’
노욱은 황당한 얼굴로 부상자들과 연우강을 번갈아 보았다.
[ 팔이나 다리를 잃은 것보다 더 비참한 건, 희망을 잃는 거야, 영감.]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부상자는 전부 야노원으로 밀어넣을 참입니까?]
[ 조직의 미래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녀석을 발굴하여 키우는 게 아니라, 조직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대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 가에 달려 있어. 설사 전쟁터에서 죽거나 부상당해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믿음 말이야. 그리고 하루 종일 노닥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건설적인 일이잖아.]
[ 알았습니다.]
노욱은 피식 웃으며 부상자들을 보았다.
“ 대주님 말씀대로다. 너희들은 앞으로 야노원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열심히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는 기회도 잡게 될 게야.”
“ 감사합니다. 원주님.”
다섯 명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지금부터 유골함을 만들도록 하자고.”
그들을 지켜보던 연우강은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묘한 매력을 지닌 녀석이네.’
노욱은 연우강의 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잠룡대에서 탈출할 때 야궐 무인 수십 명을 죽인 녀석이다. 녀석이 하는 짓으로 봐서는 악감정을 가져야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미움은 희석되고, 오히려 좋은 점이 부각된다. 참으로 놀라운 녀석이었다.
“ 우리도 시작하세.”
노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체 속에서 동료들 시신을 찾아내고, 얼굴을 확인하고 삼매진화로 태워 유골함에 담는 작업은 한 식경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름이 적힌 유골함 스무 개를 부상자와 함께 절벽 위쪽의 동굴로 올려보낸 별동대 대원들은 십 번 통로로 이동하여 몸을 숨겼다.
반 시진 가량 지났을까.
차앙! 창창! 창!
“ 으악!”
“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대라검문 무인들의 선두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지금부터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적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두 명씩 짝을 이뤄 등을 맞대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연우강은 전면을 보며 말했다.
새벽이 오고 잇는 듯 무곡의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악!”
“ 으악!”
“ 아악!”
계곡 안쪽을 비명으로 채우며 뒤편으로 물러나는 대라검문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별동대 대원들은 숨을 죽인 채 대라검문 무인들을 보았다. 그들이 지나가고 잠시 후 드디어 밀천 무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별동대 대원들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시선을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 던져라!”
연우강은 나직이 소리쳤다.
휙! 휙! 휙!
복양후 일행은 들고 있던 물건을 밀천 무인들을 향해 사정없이 던졌다. 둥근 물체 수십 개가 밀천 무인들 사이로 떨어졌다. 복양후 일행이 던진 그것은 다름 아닌 밀사 이덕무를 비롯한 은원 무인들의 머리였다.
“ 억!”
“ 허억!”
밀천 무인들 진영에서 놀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 미, 밀사 어르신이다!”
“ 귀사 어르신이다!”
“ 사사 어르신이다!”
“ 은원 원로들의 머리다!”
최강 고수들의 머리는 밀천 무인들을 극심한 공포와 혼란에 휩싸이게 했다.
“ 죽여라!”
“ 죽여라!”
바로 그때 십 번 통로에 있던 별동대 부인들은 살기 어린 외침을 토해내며 적진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비록 칠십오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는 폭풍을 방불케 하였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밀천 무인 중앙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별동대 무인들 중 최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자들은 흑마괴문 무인들과 야랑대 대원들이었다.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밀천 무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 허허!”
별동대 대원들을 살피고 있던 노욱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별동대 대원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적을 향해 돌진하는 투견이 돼 있었다. 마치 동귀어진 수법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한쪽은 혼란과 공포에 전 채고, 다른 한쪽은 몸을 사리지 않는 공격을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밀천 무인 중앙은 금새 뚫렸다.
“ 저것이 바로 희망의 힘인가?”
연우강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 일 조는 남쪽을 맡고, 이 조와 삼 조는 북쪽을 맡아라!”
내공이 잔뜩 실린 연우강의 목소리는 좌우측 절벽을 강타하고 메아리가 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존- 명!”
노욱을 비롯한 대원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 대라검문 무인들은 공격하라! 한 놈도 남기없이 주살하라!”
바로 그때 북쪽에서 내공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곳리의 주인은 대라검문 문주 은자추였다.
“ 와아!”
“ 우와아!”
“ 와와와!”
엄청난 함성이 계곡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승리의 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