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69화 (169/232)

제 3장 해독제를 얻는 법

간혹 차를 마시는 소리만 들려올 뿐 석실 안쪽은 침묵이 감돈다.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은 유, 신유, 천유, 한사 네 사람이었다.

“ 접니다.”

나직한 소리가 들려오자 네 사람의 시선이 출구로 향했다. 곧 장한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첩지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유 앞으로 다가간 사내는 공손하게 첩지를 내밀었다.

- 연우강 일행 남뢰로 진입.

- 혁련무극 일행 동뢰로 진입.

- 나적리 일행 서뢰로 진입.

- 야궐 무인 일부 북뢰로 진입.

첩지를 확인한 유의 얼굴이 비로소 약간 밝아졌다. 그는 첩지를 신유에게 내밀었다.ㅏ 그러고는 일행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다행히 모든 진식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모양입니다.”

일행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무곡을 중심으로 펼쳐진 혼돈음양반천진은 천오백 년 전에 구축된 진식이다. 이곳으로 온 후 유의 가문인 모용세가에서 보관해 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작동할 지는 미지수였다.

그런데 모든 부분이 정상작동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 이제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했구려.”

천유가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 그렇소. 천유. 수천 아니 수만 명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이곳은 끄덕없소. 그리고.....”

천유는 고개를 돌려 벽면에 걸린 지도를 보았다.

그가 주시하는 지점은 무곡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간 통로들이었다. 그 통로는 패천에서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무곡 안으로 들어온 자들이 탈출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돈음양반천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걸 알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비로소 통로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 저 통로들은 적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들이오.”

유가 내린 결론이었다.

만일 패천이 보유한 무인이 많았다면, 각 통로에 배치했을 테고, 그곳 또한 사문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 그곳에 아군을 배치해야 한다는 말이구려.”

신유가 물었다.

“ 그렇소. 지금 우리 패천이 보유한 무인으로는 그곳까지 감당할 수 없지만 나중엔 달라질 거요. 담대만승을 비롯한 대야벌 무인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왔을 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부 없앨 수 있을 거요.”

유는 천유를 보았다.

“ 그들 주변 인물의 삼 할 정도를 바꿨소이다.”

“ 전부 바꾸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 반년 정도를 예상하고 있소이다. 천주.”

“ 좋소. 그 기간 동안 이번에 나타난 진식의 허점을 보완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각 뇌옥으로 무인을 투입하고 특히 연우강이 들어온 쪽은 신경을 쓰시오. 이번엔 반드시 없애야 하오.”

“ 알겠습니다. 천주님.”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유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갔다.

진식도 밤낮이 잇는 듯.

어느새 주변은 새카만 어둠으로 들어차 있었다.

여전히 회오리바람은 불고, 그 안에는 새하얀 암기인 설화인과 풍천마인이 날아다녔다.

하지만 바람의 막 속에 있는 이들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 안에서 볼일을 보고 심지어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힘든 사람은 마라천력을 펼치고 있는 연우강이었다.

“ 괜찮은 게냐?”

미안한 얼굴로 창노가 연우강을 보았다.

“ 괜찮으면 그게 괴물이지 사람입니까?”

“ 넌 괴물이잖아.”

창노는 웃으며 말했다. 말투에 여유가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은 괜찮다는 의미일 것이다.

“ 끔찍한 소리 마세요. 몸은 어때요?”

연우강은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 우리야 뭐 말짱하다.”

창노와 무원 독고철웅은 무료한 듯 하품을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주변이 조용해졌다.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보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회오리바람이 멈춘 것이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을 해제했다.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기를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일순 연우강은 비틀거렸다.

한계를 넘어 마라천력을 펼친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연우강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 이건?”

무원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 왜 그러시오?”

연우강은 무원을 돌아보았다.

“ 넌 괜찮은 게냐?”

“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무원을 보았다.

“ 자넨 어떤가?”

무원은 고개를 돌려 창노를 보았다.

“ 내기가 흩어지고 있습니다.”

창노의 얼굴도 잔뜩 굳었다.

“ 선배는?”

무원의 시선이 독고철웅에게로 향했다.

“ 나도 마찬가지네. 마치 군자산에 중독된 것 같은 증상이네.”

독고철웅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 너도 그래?”

연우강은 군무옥에게 물었다.

“ 그런 것 같소.”

군무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했다. 독이라면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왜 난 괜찮은 거지?”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빠르게 내기를 돌려 몸 내부를 점검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었다.

“ 설마 음양뢰?”

독고철웅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 무슨 소리요?”

연우강은 독고철웅을 돌아보았다.

“ 나도 가문의 책자에서 우연히 보게 된 건데......”

독고철웅은 음양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독고철웅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일행의 눈이 커졌다. 설마 영세오천에 그런 비사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그럼 난 어떻게 된 거요?”

“ 선천지기를 내공으로 익힌 무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는 걸로 나와 있었네.”

“ 그러니까 선천지기를 익힌 자들은 음양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오?”

“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영세오천의 적자들은 그 음양지에서 최후를 맞이한 걸로 알고 있네. 그 일을 주도했던 가문이 바로 지천 오대가문의 한 곳인 천단모용세가.... 맙소사! 이건?”

독고철웅은 품속에서 허연 물체를 꺼냈다. 그것은 바람 속에 섞여 있던 백색 암기였다.

“ 아는 거요?”

“ 그 당시 천단모용세가에는 설화인이란 절대 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더구먼. 밀천의 초살도와 더불어 천하이암절이라고 불렸네.”

“ 그럼 그놈이 설화인이란 말이구려.”

“ 그런 것 같네.”

“ 유 그자는 모용세가의 가주고.”

“ 맞다. 연우강.”

대답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연우강은 시선을 들어 방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

바로 그 순간, 횃불이 밝혀지며 어둠이 걷혔다.

연우강은 전면을 보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은 폭이 삼십여 장가량 되는 원형 광장이었다.

연우강은 횃불을 든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광장 건너편에 서 있었는데, 선두에는 패천오로 장육철이 서 있었다.

“ 기회를 잘 잡았구나.”

연우강은 장육철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실 지금 그의 몸은 최적의 상태가 아니었다.

흑풍마라천력은 마라천력과 내공을 결합시킨 무공이었다. 쉬지 않고 사용하게 되면 심력과 내력이 동시에 소모된다. 마라천력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운기행공이 아니라 충분한 휴식과 잠이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무원 일행을 보호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적과 마주하게 된 셈이었다.

“ 난 널 죽이는데 목숨을 걸었다. 연우강.”

장육철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동료인 대창익이 죽는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머리끝까지 치민 분노를 꾹꾹 누르며 참았다.

이젠 그 복수를 해야 할 때였다.

“ 대창익을 죽인 사람은 유 그놈이잖아.”

“ 네놈은 대창익의 단전을 훼손했다. 그럴 바엔 죽여주는 게 낫다. 놈.”

“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 새끼.”

“ 개자식!”

장육철은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가 곧바로 몸을 날리는 이유는 연우강 또한 다른 이들처럼 내공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우선은 제압해 놓고 상황을 즐길 참이었다.

‘ 잘돼야 할 텐데.’

연우강은 주먹을 슬쩍 그러쥐고는 장육철의 얼굴을 보며 강하게 마라천력을 끌어올렸다. 그가 심뢰를 펼친 시기는 장육철이 첫 번째 도약을 끝내고 막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찰나라고 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한 가지 동작을 끝내고 새로운 동작을 시작해야 하는, 동작과 동작의 교차점이다. 무인의 약점은 그 교차점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만일 상대가 장육철이 아니고 보통 무인이었다면 그런 상황을 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육철은 패천오관을 맡았던 초강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쭈뼛!

“ 헉!”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자 장육철은 급하게 양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방어했다. 들어올린 양손으로 강기막을 펼침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바닥을 차며 물러났다.

“ 커억!”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장육철은 피를 토해냈다.

머릿속이 검게 변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는 벽면에 손을 짚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 공격하라!”

장육철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무인들이 일제히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쩝!”

연우강은 입맛을 다셨다.

장육철이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왔더라면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놈이 물러나는 바람에 심뢰가 실패하고 만 것이다.

“ 역시 사람은 잠을 자야 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달려오는 자들을 보았다.

적은 이미 십 장 앞가지 와 있었다.

“ 하지만!”

연우강은 오른발이 번쩍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으며 가슴을 움츠렸다.

“ 네 녀석들 정도는......”

연우강은 잔뜩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폈다.

슈아악!

그의 가슴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화살처럼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것은 백여덟 개의 사망정주였다.

“ 아, 암기다. 피하라!”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던 자들은 다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피하기엔 사망정주의 수가 너무 많았고, 거리도 가까웠다. 가공할 속도로 공간을 단축한 사망정주는 이십 명 무인의 몸을 찢어발기며 파고들어 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광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이십 명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몸은 걸레처럼 찢겨 광장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 개자식!”

부하들이 벌어준 짧은 시간에 몸을 회복한 장육철은 연우강을 향해 오른손을 사정없이 뿌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붉은 광채가 쏘아져 나왔다. 적무천마장의 일초 적천이었다. 전력을 다했다고 하지만 장육철의 장에도 큰 힘은 실려 있지 않았다.

이곳 음양뢰에서 활동하기 위해 별도로 익힌 심법 때문이었다. 음양순응기라고 불리는 심법은 일종의 해독제라고 할 수 있다. 음양의 기운이 상충하는 이곳에서는 음양순응기를 익히지 않는 자는 내공을 끌어올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음양순응기를 익히면 음양지 안에서 무공을 평소처럼 펼칠 수는 있지만 그 위력은 팔 할에 불과하다.

패천십경 중 육 경에 해당하는 강력한 무공인 적무천마장이 전보다 약해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퍼억!

붉은 광채가 연우강의 가슴에 작렬했다.

약해졌다고 해도 적천의 위력은 엄청났다.

“ 커억!”

비명과 함께 연우강의 신형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턱!

그때 누군가 뒤에서 몸을 잡아주었다. 연우강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몸을 잡아준 사람은 군무옥이었다.

“ 팔 년 만이오.”

“ 뭐가?”

“ 대장이 피를 흘리는 걸 보는 게 말이오.”

“ 내가 피를 흘려?”

“ 아주 많이!”

군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피를 흘린단 말이지?”

연우강은 입가를 스윽 닦았다. 그러자 손등에 홍건히 피가 묻어 나왔다.

“ 저 자식도 한가락하는 모양이다.”

연우강은 장육철을 보았다.

장육철은 삐르게 이편을 향해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는 듯 장육철의 양손은 피를 머금은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 달려!”

연우강은 짧게 말했다.

“ 아무튼 열심히 해주시오. 대장 손에 우리 목숨이 달렸다는 것 명심하고.”

군무옥은 연우강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연우강의 손을 잡고 장육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공을 운용할 수 없다고 해도 연우강을 들고 달리는 덴 문제가 없었다.

“ 뭐 하는 짓이냐?”

두 사람을 지켜보던 무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놀란 사람은 무원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날려 가던 장육철도 의아한 얼굴로 군무옥과 연우강을 보았다. 조금 전 일격으로 연우강은 상당한 내상을 입었고, 연우강을 끌고 오는 놈의 내공은 음양기로 인해 일천하기 그지없다. 반면에 자신은 팔 할의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 오냐, 한꺼번에 보내주마!”

장육철은 양손에 내공을 집중하면서 몸을 날렸다. 지금 거리에서도 충분하게 무공을 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좁히는 이유는 조금 전 상황 때문이었다.

연우강을 공격할 때 전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상을 입히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엔 최대한 접근하여 이 초인 혈무를 펼칠 참이었다.

어느새 연우강과 거리는 오 장으로 좁혀져 있었다.

“ 차앗!”

장육철은 기합을 지르며 양손을 쭉 내밀었다.

스윽!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군무옥과 연우강의 위치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앞으로 나온 연우강은 등을 보인 채였다.

그 상태에서 연우강은 군무옥을 힘껏 던져 올렸다. 그와 동시에 군무옥은 바닥을 찼다. 위로 들어올려지는 순간 바닥을 차면 나아가는 방향은 전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육철은 장력과 함께 빠르게 다가오는 상황.

군무옥의 신형은 순식간에 장육철의 머리 위에 도달했다. 군무옥을 던진 연우강은 뒤꿈치를 들어올려 발끝으로 섰다.

퍼억! 퍽!

바로 그때 연우강의 왼편 등판에 장육철의 혈무가 작렬했다. 발끝으로 선 상태에서 왼편 등판에 강한 힘이 작렬하자 그의 신형은 팽이처럼 빙글 돌아갔다.

“ 헉!”

장육철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마치 수면을 향해 주먹을 찔러넣은 것처럼 발출한 장력이 흡수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빙글 돈 연우강은 어느새 전면을 보고 있는 상태고 그의 왼손이 빠르게 단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장육철은 급하게 내기를 끌어올려 아래를 방어했다.

“ 난 안중에도 없는 거야?”

머리 위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유철은 보지도 않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 기분 더럽네.”

군무옥의 오른손이 사정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의 오른손에는 조금 전 여눙강의 허리춤에서 뽑아낸 낫이 들려 있었다.

푸욱!

먼저 연우강의 왼손에 있던 사망낭조가 장육철의 왼팔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군무옥의 낫은 그의 어깨를 뚫고 들어갔다.

“ 크악!”

장육철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바로 그때 연우강의 오른손이 장육철의 단전을 훑었다.

“ 아악!”

두 번째 비명이 장육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 어렸던 광채가 급격하게 스러졌다.

단전이 박살나면서 내공이 사라진 탓이었다.

“ 가자!”

연우강은 조금 전 장육철 일행이 들어왔던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 어떻게 된거요?”

군무옥은 연우강을 따라 달려가며 물었다.

“ 뭐가?”

“ 지금 대장의 입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뇨?”

“ 깜빡 잊은 게 있었어.”

“ 뭘 잊었단 말이오?”

“ 불괴수호신공!”

대답은 무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원 일행은 경악한 얼굴로 연우강과 군무옥을 보고 있었다. 장육철은 패천십관을 담당했던 장로 중 한명이다. 몸 상태가 거의 완벽해 보였던 장육철이 내공 운용도 제대로 못하는 두 사람에게 너무나 어이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 어떻게 된 겁니까?”

창노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육철은 장력을 펼치는 무인이고, 장력을 펼치는 무인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는 연우강 바로 앞까지 와서 공격을 했을 뿐 아니라 반격가지 당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공격을 왜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장육철은 처음 일 초에 전력을 다했네.”

“ 그런데요?”

“ 장육철은 그 정도 공격이면 우강이 저 녀석 몸이 갈가리 찢길 거라고 생각했을 거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녀석은 내상만 입었지 않은가.”

“ 사망묵의를 걸치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결과지요.”

“ 하지만 장육철은 우강이 녀석이 사망묵의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네. 다만 삼대 외공 중의 하나인 흑철마신을 익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네.”

“ 흑철마신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근접해서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군요.”

“ 그래서 장육철은 접근해서 우강이 녀석을 없애려고 한거네.”

“ 우강인 장육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역이용한 거고요.”

“ 의도를 알아차린 게 아니라 처음부터 녀석은 그럴 생각으로 장육철의 장력을 맞아준 거네.”

“ 방금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서 그랬단 말입니까?”

“ 장육철이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됐겠는가. 아마 우리 중 두 명 정도는 죽임을 당했을 거네.”

“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단 말이군요.”

“ 그런 셈이지.”

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저놈은 왜 살려준 겁니까?”

창노는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장육철을 가리켰다.

“ 낸들 알겠는가. 일부러 살려준 것 같기는 한데..... 두고 보면 알겠지.”

그때 연우강과 군무옥은 석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 불괴수호신공이 뭐요?”

군무옥은 연우강을 향해서 낫을 휘두르며 물었다.

연우강은 손괭이를 들어올려 군무옥의 낫을 막았다.

차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아악!”

군무옥은 이번에 비명을 내질렀다.

“ 상대방의 공격을 흘리는 호신 무공인데 주로 외공 무인들이 익혀.”

“ 그런 건 언제 익힌 거요?”

“ 전에 무공을 숨길 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열심히 낫과 손괭이를 부딪쳤다.

“ 아아악!”

이번엔 연우강이 비명을 내질렀다.

“ 도대체 저 녀석들 뭐하는 거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창노가 무원을 보며 물었다. 창노의 얼굴엔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단 창노뿐만이 아니었다. 무원과 독고철웅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연우강과 군무옥을 보았다.

“ 도대체!”

휙!

바로 그때 광장 안으로 두 명이 뛰어들어왔다.

퍼억! 퍽!

그 순간 연우강의 손괭이와 군무옥의 낫이 동시에 허공을 갈랐다. 손괭이와 낫이 향하는 곳은 사내들이 뒷목이었다.

“ 커억!”

“ 큭!”

뒷목을 강타당한 두 명은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그런데 두 명의 목에서는 피가 흘러니오지 않았다. 손괭이와 낫의 날이 아닌 등으로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휙! 휙휙!

연이어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안쪽으로 몸을 날려 왔다.

퍼억! 퍽!

연우강과 군무옥의 무기가 또다시 허공을 가르자 두 명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놈들이 살아있다!”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 당연히 살아 있어야지.”

연우강의 손이 비쾌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쳤다. 마치 먼지를 털어내는 것처럼 사망묵의를 칠 때마다 검은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사망묵의 곳곳에 꽂혀 있는 사망마비였다.

“ 컥!”

“ 크윽!”

“ 으윽!”

안으로 들어왔던 자들은 단전을 감싸쥐고 쓰러졌다. 열여덟 개의 비수를 전부 사용하고, 사망지화까지 사용하고 나자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없었다.

“ 한곳으로 모아.”

연우강은 사망혈궁을 들고 출구를 주시하며 군무옥을 향해 말했다.

“ 알았소.”

군무옥은 연우강의 허리춤에 낫을 꽂아놓은 다음 쓰러진 자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 네가 할래, 아니면 내가 할까?”

“ 고문은 내 전문이오. 대장.”

군무옥은 싱긋 웃으며 등에 메고 있던 자루를 풀어 내렸다. 그런 다음 안쪽에서 육참낭아곤을 꺼내 조립했다.

철컥! 철컥!

조립을 마칠 때마다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육참낭아곤은 날카로운 낫이 달린 무기로 변했다.

“ 아가들아!”

군우목은 싱긋 웃으며 맨 끝에 있는 자 곁으로 다가갔다.

“ 죽여라!”

사내는 군무옥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 제법 강단 있는 놈이네. 지금 기분이 어때?”

군무옥은 사내를 빤히 보며 물었다.

“ 헛소리 말고 죽여라. 놈!”

“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사실 이 아저씨는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 왜냐면 원래 내공이 삼 갑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 혹시 내 내공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

“ 모른다.”

“ 그럼 죽어야지.”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군무옥은 육참낭아곤을 도끼질하듯 내려찍었다.

퍼억!

“ 크악!”

머리가 좌우로 쩍 갈라지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쩍 갈라진 사내의 머리에서 육참낭아곤의 날을 뽑아낸 군무옥은 옆에 있는 사내 앞에 섰다.

그는 사내의 눈을 보며 천천히 육참낭아곤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역시 도끼질하는 자세였다.

“ 사실 이 아저씨는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 왜냐면 원래 내공이 삼갑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 혹시 내공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

사내의 시선이 가장 먼저 맨 끝에 있는 장육철에게로 향했다.

“ 넌 패천의 무인이다.”

장육철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그럼 죽어야지!”

군무옥의 육참낭아곤은 가차 없었다.

사내가 고개를 젓자마자 곧바로 내리찍어 죽음을 선사했다. 그런 다음 바로 옆자리로 옮겼다.

“ 사실 이 아저씨는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 왜냐면 원래 내공이 삼 갑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 혹시 내공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

군무옥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은 사내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 그럼.......”

“ 음양순응기......”

“ 놈! 죽고 싶어서 환장했느냐?”

사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장육철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죄, 죄송합니다. 장로님.”

“ 그럼 죽어야지.”

군무옥은 거리낌없이 사내의 머리를 향해 육참낭아곤을 휘둘렀다.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자 주변에 있던 자들은 눈을 질끈 감고 부들부들 떨었다.

“ 정신 차려라! 너희들은 패천 무인들이다.”

장육철은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 저거 참! 계속 방해를 하시네.”

군무옥은 슬쩍 얼굴을 찌푸리고는 장육철 앞으로 걸어갔다.

“ 네 역할은 끝났는데 이제 조용 좀 하는 게 어때?”

“ 내 역할이라고?”

장육철은 의아한 얼굴로 군우목을 보았다.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굳이 살려준 이유가 지금껏 궁금했다. 그런데 역할이라니.

“ 널 살려준 이유는 저놈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어.”

군무옥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자들을 가리켰다.

“ 무슨 희망 말이냐?”

“ 네가 우리와 협상을 시도하게 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말이야.”

슈아악!

“ 크아악!”

바로 그때 연우강이 있는 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안으로 뛰어들던 자가 사망혈궁에 당한 모양이었다. 연우강 쪽을 흘끔 쳐다본 군무옥의 시선이 다시 장육철에게로 향했다.

“ 꿈을 꾸고 있구나. 놈!”

“ 꿈이 아니고 아주 큰 효과가 있었어. 방금 뒈진 놈이 해독제가 음양순응기라고 했잖아. 해독제 이름을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거든.”

군무옥은 싱긋 웃으며 육참낭아곤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조금 전 다른 자들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했다.

“ 사실 이 아저씨는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 왜냐면 원래 내공이 삼 갑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 혹시 내공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

“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게 될 거다. 그건 내가 약속하마.”

장육철은 짓씹듯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놈이 말한 해독제.

그건 바로 음양순응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궁금증을 남기고 죽는 게 최선의 복수였다.

“ 넌 무공만 약한 줄 알았더니 머리도 나쁘구나. 아직 스무 명이 남았다는 걸 알아야지.”

군무옥은 가차없이 육참낭아곤을 내리찍었다.

“ 크아악!”

장육철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이런 제기랄! 늙은이라 그런지 살이 질기네.”

가슴까지 파고들어 가 뼈에 박힌 육참낭아곤을 보며 군우목은 투덜댔다.

“ 야!”

육참낭아곤을 뽑아내기 위해 낑낑대던 그는 장육철 옆에 있는 자를 불렀다.

“ 네!”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사내의 아랫도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이것 좀 뽑아줘.”

군무옥은 육참낭아곤을 가리켰다. 군무옥은 육참낭아곤 맨 끝을 한 손으로 잡고 있는 상태였다.

“ 아, 알겠습니다.”

사내는 육참낭아곤 앞을 잡았다.

“ 발로 놈을 밀어야 무기가 뽑히지.”

“ 아, 알겠습니다.”

사내는 발로는 장육철의 몸통을 밀고, 육참낭아곤을 당겼다. 바로 그때 귓전으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실 이 아저씨는 지금 부지하게 기분이 나빠. 왜냐면 원래 내공이 삼 갑자였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 혹시 내공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

“ 아, 알고 있습니다.”

“ 왜 그런거지?”

“ 그건 음양순응기를 익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음양순응기는 어떻게 익히는 건데?”

사내의 입에서 음양순응기 구결이 줄줄 흘러나왔다. 무원을 비롯한 세 사람은 정신을 집중하여 사내의 말을 들었다.

“ 난 기억력이 아주 나쁘거든?”

“ 다시 구술하겠습니다.”

사내는 또다시 음양순응기를 읊었다.

그렇게 열 번을 구술하고 나자 비로소 사내는 군무옥에게서 풀려났다. 독고철웅과 무원 그리고 창노는 곧바로 음양순응기 연마에 들어갔다.

“ 저기로 들어가면 어디가 나오지?”

군무옥은 연우강이 지키고 있는 통로를 가리켰다.

“ 우린 장로님만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 저놈만 알고 있다는 거야?”

“ 그렇습니다.”

“ 좋아, 그럼 가봐.”

군무옥은 손을 휘저었다.

“ 저, 정말 가도 되는 겁니까?”

“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건 도둑질이잖아.”

군무옥의 시선이 사내들의 단전으로 향했다. 사내들의 단전에는 아직 사망마비가 꽂혀 있었다.

“ 무, 물론입니다.”

사내들은 사망마비를 뽑아 한곳으로 모았다.

사망마비가 빠져나간 단전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지만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반대편으로 가야겠지.”

“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내를 비롯한 살아남은 자들은 상처를 감싸쥐고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 한마디만 더.”

군무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내들은 일제히 멈췄다.

“ 이곳에서 이렁난 사실을 위에 보고하면 너희들은 어떻게 될 것 같냐?”

“ 처, 처벌을 받을 겁니다.”

“ 맞아. 나 같으면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너희들을 죽일 거야. 더구나 패천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위계질서가 엉망이잖아.”

“ 그, 그건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키 자근 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얼마 전 대창익 장로의 죽음으로 인해 패천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에게 음양순응기를 알려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들은 내공도 잃은 상태가 아닌가.

“ 다섯을 세겠다. 그 안에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 놈은 죽이겠다!”

군무옥은 차갑게 소리쳤다.

“ 아, 알겠습니다.”

사내들은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광장 끝에 도착한 그들은 우르르 한곳으로 다가가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어 우르릉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 썅노무새끼들!”

군무옥의 입에서 진득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길은 장육철만 알고 있다고 했던 놈들이 곧바로 통로를 찾아내 밖으로 나간 것이다.

“ 하지만.....!”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석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 거기엔 설화인이 날아다니고 있어, 자식들아!”

군무옥은 피식 웃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 사내들로부터 들었던 음양순응기의 구결을 떠올리며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음양순응기는 여타 무공처럼 익히는 무공이 아니라 원래의 내공심법으로 운기행공을 할 때 덧붙여 주는 무공이었다.

몇 번의 시도를 하자 운기행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며 내기가 흩어지는 현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운용 가능한 내기는 팔 할에 불과했다. 나머지 이 할은 음양순응기를 유지하는 데 소모됐다.

무원 일행은 이미 운기행공을 끝낸 상태였다.

그들은 시체들 사이에서 연우강의 암기를 찾아내 한편으로 모으고 있었다.

“ 쯧!”

군무옥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우강은 지금껏 암기를 쓰고 나서 회수하지 못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한쪽에 너부르저 무원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연우강의 지금 상태를 알 만했다.

“ 그만 자쇼.”

군무옥은 연우강을 보며 말했다.

“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연우강은 시체가 없는 곳으로 가서 몸을 뉘였다.

“ 우리 얼마나 굶은 거요?”

문득 생각난 듯 군무옥이 물었다.

“ 사오 일은 됐을 거다. 왜,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 거냐?”

연우강은 군무옥을 빤히 보며 되물었다.

“ 안..... 되겠죠?”

군무옥은 시체들로 시선을 주었다.

“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연우강은 눈을 감았다.

곧 그의 코에서 나직이 코 고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무슨 소릴 한 거냐?”

창노는 군무옥을 보며 물었다.

" 닷새를 굶었다는 말 못 들었소?"

" 그 말은 들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짐승이란 말이다."

" 이 안에 고기라 널렸다는 말이지 뭐겠소."

군무옥은 주변을 가리켰다.

" 고기?"

창노는 의아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그가 고기라고 한 것은 시체들이었다.

" 너희들 설마.....?"

조금 전 연우강이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 다시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

그 말은 곧 인육을 먹었다는 의미였다.

" 전쟁터에서 인륜이나 도덕을 찾는 것은 사치요. 그곳에는 죽어선 안 될 자들만 있소. 그 외는 아무런 의미가 없소."

군무옥은 시체들을 향해 장력을 난사했다.

삼매진화 기운이 담긴 그의 장력은 시체를 가루로 만들었다. 안에 있던 시체를 전부 가루로 만든 그는 연우강 옆으로 가 누웠다.

" 씨팔! 고기 생각나 죽겠네. 하나만 남겨둘 건 괜히......"

군무옥은 아쉬운 듯 투덜거리는 눈을 감았다.

곧 그에게서도 코 고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허!"

창노 일행은 멍한 얼굴로 군무옥을 보았다.

녀석이 미친듯이 삼매진화를 펼쳐 시체를 없앤 이유를 비로소 알 듯했다. 녀석은 혹시 시체가 남아 있으면 자기가 먹게 될까봐 일부러 없애버린 것이다.

그래놓고 지금은 아쉬워하고 있다.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출구 앞으로 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저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아온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무원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 그런 모양이오."

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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