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발자국의 비밀
연우강이 눈을 뜬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후였다.
물론 어둠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인들은 내공이 소모되는 정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기도 하는데, 특히 무원과 창노는 내공 상태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두 사람 때문이었다.
눈을 뜬 연우강은 광장 중앙에 모여 있는 암기로 시선을 주었다.
휘리릭!
그의 시선을 받은 암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더니 사망묵의 곳곳에 장착됐다.
" 별일 없었소?"
연우강은 통로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 그렇구나."
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육철이 들어왔을 때를 생각하면 벌써 수십 번도 더 공격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공격해오지 않았다.
이상한 알이었다.
" 오며 ㄴ죽는다는 걸 알았나 보네요."
연우강은 광장 끝에 있는 석문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에 이어 나머지 네 명도 다가서자 석문이 천천히 돌아갔다.
석문은 또 다른 광장과 이어져 있었다.
광장의 크기는 조금 전 있었던 곳과 비슷했다.
광장 중앙에는 회색 마의를 걸친 노인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는 패천림 최강 고수라고 알려진 무검 한사였다.
연우강 일행이 들어서자 한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연우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몸은 정상으로 돌아온 겐가?"
" 얼레?"
연우강은 놀란 얼굴로 한사를 보았다.
패천 무인들이 공격해 오지 않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듯했다.
바로 한사 때문이었던 것이다.
" 이유가 뭐요?"
연우강은 한사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 자네 덕분에 패천구관에서 기연을 얻었다네. 그래서 약간의 보답을 한 거네."
" 패천십관을 부순 사람이 나란 걸 알았단 거요?"
" 그 당시엔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됐네."
" 이왕 도와줄 거면 먹을 것도 좀 가져오지."
연우강은 코를 벌름거렸다. 어디선간 고기 냄새가 술술 풍겨오고 있었다.
" 허허허! 자넨 역시 물건이구먼. 걱정 말게. 연 공자. 먹을 것도 준비해 왔으니까."
한사는 저도 모르게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그렇지만 재미있는 녀석이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행동이나 말투는 살 만큼 산 노인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묘하게 마음이 통하는 녀석이었다.
한사는 웃으며 뒤편에 있던 대나무 궤짝을 앞으로 내놓았다.
" 이래서 관록은 속일 수 없다고 하는 모양이오. 유 그놈 같으면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텐데."
연우강은 헤벌쭉 웃으며 한사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고는 대나무 궤짝의 뚜껑을 열었따.
안에는 삶은 닭 다섯 마리와 술이 들어 있었다.
" 아이고, 음식이네."
군무옥이 쪼르르 연우강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 영감님들도 드시오."
연우강은 술병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 이거 참!"
" 별일이네."
무원 일행은 어색하게 웃으며 연우강 일행 곁으로 몸을 날려갔다. 적에게 음식을 얻어먹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허기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궤짝 앞으로 다가앉은 일행은 체면 불구하고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 천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자네가 식량을 가져다주기로 했다고 하던데..."
"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소."
연우강은 군무옥이 건네준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 그런데 아직 안 왔다고 투덜대는 것 같더구먼."
" 내가 식량을 대주지 않으면 굶어 죽기라도 하는 거요?"
" 돈이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네. 자네가 먹고 있는 그 닭도 마지막이네. 그리고 천주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네."
" 굶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 식량을 줄 참인가?"
" 그건 아니오."
" 하면?"
" 굶어 죽기 전에 내 손에 전부 죽을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이오."
술병을 향해 손을 뻗던 한사가 우뚝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하지만 연우강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 진심이군."
한사는 신음처러 말했다.
" 누굴 죽인다는 말을 거짓으로 내뱉진 않소이다. 유를 비롯한 패천 무인 전부는 내 손에 죽소. 이곳은 패천의 무덤이 될 거요."
" 자신있는 모양이군."
"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감이나 성공을 확신하고 일을 처리한 적은 없소. 다만......."
" 다만?"
한사는 연우강의 입을 뚫어지게 보았다.
" 우리 대장은 등 뒤에 천길 낭떠러지를 만들어놓고 싸워, 영감."
대답은 정신없이 닭고기를 뜯던 군무옥이 대신했다.
" 배수의 진을 친단 말인가?"
" 그렇게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전쟁이 끝난다는 뜻이야. 유인지 모용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낀 큰 실수 한 거야. 그리고 영감은 그들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이번에도 역시 군무옥이 대답했다.
" 저승에 있는 자는 이승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 없단 말인가?"
" 잘 아네."
군무옥은 씨익 웃으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한사는 다시 시선을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 자넨 특이한 사람이구먼."
" 난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오.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은 담대만승이고."
" 낭중지추란 말을 아는가?"
" 주머니 속 송곳은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말 아니오."
" 자넨 아니라고 보는가?"
" 내가 송곳일지는 모르지만, 난 송곳 끝을 잘라버렸소. 그대로 두었더라면 튀어나올 일도 없었을 테고, 설사 튀어나왔다고 해도 다시 들어갔을 거요."
" 그걸 튀어나오게 한 사람이 담대만승이란 말인가?"
" 아니오."
연우강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럼?"
" 내 가족이오."
"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대야벌과 전쟁을 시작했단 말인가?"
" 난 강호 정의니 국가에 대한 충성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소. 내 관심사는 오직 가족이오. 그들이 아무 일 없이 편하게 사는 게 내가 원하는 바요. 현재 내 가족을 위협하는 자, 장차 내 가족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자는 전부 내 손에 죽소."
" 우리 패천은 자네 가족을 위협한 적이 없네."
" 내 가족을 위협한 적은 없지만 내 친인을 납치해 위협했소. 그 말은 곧 기회만 생긴다면 내 가족을 납치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되오. 그래서 패천에 속한 무인은 전부 죽게 될 거요."
"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 난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오, 영감. 적의 가족까지 돌봐줄 가슴은 없소이다."
" 그럼 난 목숨을 걸고 자네를 막아야겠군."
" 영감은 이번 일과는 상관없는 걸로 알고 있소."
" 난 패천의 무인이네. 연 공자."
" 무공 때문에 패천으로 들어간 것 아니었소?"
" 그렇게 보였는가?"
" 그렇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연우강은 한사를 죽이고 싶지 않았따.
아니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게 옳다. 많은 무인을 겪었지만 한사만큼 명리에 초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강호 무림에 저런 사람 한 명 정도는 남아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잘못봤네. 내가 패천림으로 들어간 건 야망 때문이었네."
" 그러면 중간에 변했단 말이오?"
" 변한 게 아니라. 도태됐네.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됐지. 함께 들어왔던 친구들은 승승장구해 가는 데 나만 혼자 남겨졌다네. 그래서 포기하고 말았다네. 그런데 재미있는 게......"
" 포기하고 나니까 새로운 길이 열렸단 말입니까?"
" 그랬네. 그런데 너무 늦었지. 그때 내 나이가 벌써 육십이었으니까. 야망일란 말을 입에 담기가 부끄러워지는 나이가 돼버렸지. 그래서 패천구관에 틀어박혀 무공에만 매달렸던 거라네."
한사는 술병을 병째 입으로 가져갔다.
" 실패한 인생이란 말이오?"
" 그렇다네. 난 철저하게 소외된 삶을 살았네. 그런데 자넨 그 소외된 삶조자 그만두라고 말하고 있네. 자네 같으면 그만둘 수 있겠는가?"
" 미안하게 됐소이다. 난 영감이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지금 사는 걸로 만족하는 걸로 알았소이다. 그래, 가족은 있소?"
" 있으면 돌봐줄 참인가?'
" 심적으로야 도움을 주지 못하겠지만 돈은 조금 가지고 있소이다."
" 말이나마 고맙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가족이 없네."
한사는 술병을 연우강 앞으로 내밀었다.
" 실패한 인생 맞구려."
연우강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비웠다.
연우강이 술병을 내려놓자 한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군무옥은 남은 닭과 술병을 챙겨 광장 끝으로 몸을 날려 갔다. 뒤이어 무원, 창노, 독고철웅 세 사람이 군무옥을 따라 몸을 날렸다.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 만일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기면 자네 가족은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주겠네."
한사는 검으로 시선을 주었다.
차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가슴 앞에 섰다. 검은 한사의 심정을 대변하듯 부르르 떨었다.
" 묻어주길 원하시오, 아니면......"
" 무명소졸로 태어났다가 무명소졸로 죽는데 무덤은 무슨. 시체가 남는다면 태워주게."
" 나도 그렇게 해주시오."
연우강은 편하게 손을 늘어뜨리며 빙그레 웃었다.
" 내가 익힌 무공은 패천십경중 제일경인 마뢰개벽마해라는 무공이네. 일 초는 마뢰네."
고오오!
한사가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자 그의 검에서 새하얀 광채와 더불어 검명이 흘러나왔다.
" 내 무공은 흑풍마라천력이외다. 흑천 천주 무공이오."
" 흑천의 천주였는가?"
새하얀 광채를 뿜어내던 검이 약간 흔들렸다. 흑천의 천주라는 말에 한사가 격동한 탓이었다.
하지만 곧 검은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한사는 잔잔한 눈빛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런 한사를 보며 연우강은 입을 열었다.
" 사막에서 우연히 기연을 얻었소. 내가 사용하는 무기는 암기요. 내 몸에는 전부 백육십한 개의 암기가 있는데, 지금은 여덟 개가 빠진 상태요."
" 혹시 그 암기를 펼치는 힘이 마라천력인가?"
" 그렇소이다."
" 전에 마라천력을 가진 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혹시 아는가?"
" 무성의 전대 성주를 말하는 거라면 조금 안다고 할 수 있소."
" 어떻게 아는가?"
"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친부요."
" 그의 성씨가 주씨라는 것도 아는가?"
" 그분의 성씨는 주씨지만 난 연씨요."
" 성을 찾지 않을 생각이군."
" 내가 아니라도 주씨 성을 쓰고 있는 자는 북경에 가면 넘치오. 그리고 난 연씨가 더 좋소이다."
" 주씨를 찾게되면 가족을 잃는다는 뜻이구먼."
" 그렇소이다. 난 내 가족을 사랑하오."
[ 넌 알고 있었느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창노가 군무옥을 보며 물었다.
[ 뭘 말이오?]
[ 우강이 저 녀석 친부가 전대 묵사였고, 그가 주씨였다는 사실 말이다.]
[ 나도 처음 듣는 말이오.]
[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단 말이냐?]
[ 대장이 무상 그 녀석을 편애하는 것 같아서 처음엔 둘이 사귀는 줄 알았소.]
[ 무상이라면 보국천위장군의 시호를 받은 그 주무상을 말하는 거냐?]
[ 그렇소.]
[ 그럼 우강이 저 녀석은......]
창노는 고개를 돌려 무원을 보았다.
[ 무성의 전대 성주 이름이 주선엽이라는 말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네.]
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 무성 성주였던 주선엽을 친부로 두고, 군왕세자 주무상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자, 그런 연우강의 신분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조금 전 한사는 주씨의 성을 찾는다면 가족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연우강은 그럴 거라고 했다.
그 말은 곧 연우강이 본래의 신분을 되찾게 되면 지금 부모인 연금석과 이숙경으로부터 절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절을 올리는 관계를 어떻게 부모 자식사이라고 하겠는가?
[ 그럼 저 녀석의 진짜 신분이 황족이겠군요.]
[ 좋은가?]
[ 손녀사위의 신분이 황족이라는 데 기분 나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솔직히 금릉 연씨 세가 아들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창노는 헤절쭉 웃었다.
[ 만일 녀석이 신분을 되찾으면 자넨 이 녀석이란 말 대신에 군왕세자 저하라고 불러갸 하는데 그래도 좋다고?]
[ 그렇게 되는 겁니까?]
창노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 일반 벼슬아치면 모르지만 황족이라면 그래야 하네.]
[ 그냥 연우강이라고 부르렵니다. 돈 많고, 얼굴 잘생기고, 무공 출중한 걸로도 충분합니다. 아니, 넘칩니다.]
창노는 어깨를 으쓱하며 히죽 웃었다.
스아악!
바로 그때 전방에서 대기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얼른 시선을 들었다.
대화가 끝난 듯 두 사람은 각자의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단아하게 묶었던 한사의 머리는 풀려 허공으로 치솟고, 회색 장포는 바람을 잔뜩 머금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연우강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사망묵의는 먹물보다 더 새카만 광채를 흘려대고 있었다.
푸스스!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던 술병이 가루로 흩어졌다.
바로 그 순간 한사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슴 앞에 머물고 있던 검이 방향을 틀더니 연우강을 향해 쏘아져 갔다.
" 달빛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월광잔."
연우강의 입에서 나직한 읊조림이 흘러나왔다.
철컹!
그의 읊조림이 끝나는 순간, 허리춤에서 사망월반이 풀려나와, 거의 빛으로 변해 있는 한사의 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검과 사망월반이 쏘아져 가는 모습은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빨랐다.
파악!
쇠와 쇠가 부딪친 소리치고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무기가 부딪친 소리만 작았을 뿐이다.
끼이익! 찌이익!
두 무기가 뿜어내는 힘은 서로 엉켜들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파앗! 파앗! 퍽! 퍽퍽!
돌로 된 바닥에 수백개의 구멍이 생겨나고, 돌가루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 엄청나군."
독고철웅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단순히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싸움이 아니었다. 무기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일 뿐이고, 실제 싸우는 건 무기와 함께 움직이는 숨겨진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부딪치며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바닥은 가루로 변하고 있다.
쿵쿵! 쿵쿵!
두 사람은 동시에 두 걸음씩 물러났다.
마치 젖은 땅을 밟은 것처럼 두 사람이 앞에는 깊은 발자국이 생겨났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해 날아갔던 무기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 닫혀 잇는 모든 것을 연다!”
합장했던 한사의 양팔이 날개를 펴는 새처럼 활짝 펴졌다.
“ 벽!”
한사의 압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지고, 그의 검이 공간을 단축했다.
“ 미친 늑대는 바람을 타고 내달린다. 광랑풍!”
연우강의 동작은 한사와는 반대였다. 그는 활짝 폈던 양손을 강하고, 빠르게 합쳤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아홉 개의 사망낭조가 한사의 검을 향해 쏘아져 갔다.
사망낭조는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새끼 오리들처럼 일렬로 늘어선 채였다.
파아악!
한사의 검과 사망낭조가 날아가는 경로를 따라 아래쪽 바닥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퍼억!
검과 사망낭조가 맞부딪치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무기가 뿜어내는 기운이 먼저 부딪치면서 니온 소리였다. 마치 고도로 압축된 공기가 실체화돼 부딪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곧이어 광장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쿠쿠!
두 무기가 가까워질수록 공장의 흔들림은 더욱 커졌다. 마침내 두 무기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파앙!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듯 강렬한 소리엿다. 담대만승보다 더 크다. 문득 자신들은 힘겨 콰콰쾅! 쾅쾅!
곧이어 강렬한 폭음과 함께 좌우측 벽이 터져 나갔다.
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
이번에는 한사가 네 걸음, 연우강이 여섯 걸음 물러났다. 돌바닥에 찍힌 발자국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고, 폭 또한 넓어졌다. 두 사람이 물러나는 사이에 충돌한 무기는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발자국으로만 보면 연우강이 밀린 것처럼 보였다.
한사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듯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 세상의 모든 기운을 풀어헤친다. 해!”
한사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날개를 펴듯 활짝 펴고 있던 양팔을 다시 합쳤다.
“ 지옥의 입구는 문을 활짝 열었다. 지옥탄.”
잔뜩 움츠렸던 연우강의 가슴이 활짝 펴졌다. 던 창노가 남궁운화를 불렀다.
쿠아앙!
슈아앙!
두 사람 앞에서 동시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한사의 검은 새하얀 광채를 토해냈고, 연우강의 사망정주는 칠흑 같은 어둠을 쏟아냈다.
빛과 어둠의 대결.
두 사람의 모습이 그랬다.
공동은 더욱 흔들리고, 쩍쩍 갈라진 부분에서 돌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돌 조각은 바닥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두 무기에서 흘러나온 기운으로 인해 곧바로 가루로 변해 흩어져 버린 것이었다.
“ 아무튼 저 인간은?”
군무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쳐다보는 것은 방금 연우강이 찍어놓은 발자국이었다. 한사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두 발자국 더 물러난 것이다. 앞에 있는 한사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있는 연우강이, 한사를 도발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테고, 그가 노리는 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저 급한 와중에도 나중을 생각하는 연우강의 머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이러다 무너지겠네.”
군무옥은 천장을 흘끔 보았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천장은 쩍쩍 금이 가 있었다. 어쩌면 천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너지든 말든.”
군무옥은 이내 시선을 내렸다.
빛과 어둠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밀려간다. 빛이 밀고 들어오면 어둠은 방어하고 어둠이 밀고 들어가면 빛은 막아낸다.
군무옥은 고개를 돌려 창노를 보았다.
그때 창노는 넋을 잃고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쉴 새 없이 백색 기운과 검은 기운을 쫓아다녔다.
쿡!
군무옥은 창노의 옆구리를 찔렀다.
“ 왜 그러느냐?”
창노는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 이기어검술의 대결은 원래 저런 거요?”
“ 아니다.”
“ 그럼 저건 어떤 싸움이오?”
“ 지금 나도 그걸 생각 중이다.”
이기어검술 대 이기어검술의 대결.
물론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보았던 것은 저 모습과 달랐다. 서로가 던져낸 두 무기는 빛살처럼 움직이며 상대를 노렸다. 그런데 연우강과 한사는 공간을 장악하여 싸우고 있다.
즉 광장의 절반은 연우강 영역이고, 절반은 한사 영역이다. 그 영역을 가득 채운 내기는 고도로 압축돼 있어, 작은 틈만 보이면 반대편 영역으로 파고들어 간다. 두 사람의 무기는 그 틈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가 아닌 기운과 기운의 싸움.
“ 이기어검술과 심검의 중간 과정이네.”
옆에 있던 독고철웅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또한 이기어검수릉ㄹ 넘어선 무인들의 싸움은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 그럼 대장이 봐주고 있는 거네.”
군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독고철웅은 군무옥을 보며 물었다.
“ 대장은 심검을 익혔거든요.”
군무옥이 단정짓듯 말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연우강은 음양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한사보다 부족할 게 없었다.
“ 이기어검술과 심검의 차이가 얼마나 날 거라고 보느냐?”
“ 거의 없단 말이오?”
심검이 월등하다면 굳이 물을 이유가 없기에 하는 말이었다.
“ 물론 심검을 익힌 자가 더 강한 건 맞다. 하지만 이기어검술을 익힌 자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선공을 취한다면 심검을 익힌 자라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다.”
“ 그럼 저 상황은?”
“ 한사가 일부러 만들어낸 상황이다.”
“ 일부러 만들어냈다는 건 무슨 뜻이오?”
“ 우강이 무기를 생각해 보거라.”
“ 대장의 무기는 암기 아니오.”
“ 암기에 마라천력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지. 그 말은 곧 여러 방향에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 그러니까 한사 저 양반은 마라천력으로 펼치는 암기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공간을 장악하는 수법을 썼단 말이오?”
“ 그럴 게다.”
독고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미친 듯이 요동치던 대기의 움직임이 뚝 그쳤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은 시선을 돌려 전면을 보았다. 대기의 움직임만 그쳤을 뿐, 연우강과 한사는 내기를 거둬들인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 난 이제 한 초식 남았네.”
한사는 연우강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 나도 마지막 초식을 펼치겠소. 악미 여덟 개가 없어서 완전한 모습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진 않을 게요.”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무튼 즐거웠네. 그리고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자네와 같은 길을 가고 싶네.”
“ 어개 위에 오렬놓은 패천이라는 짐을 내려놓으면 지금이라도 가능하오. 한사.”
“ 허허허! 나도 그렇게 하고 싶네. 연 공자.”
“ 왜 못하는 거요?”
“ 난 내 스스로 패천림으로 걸어 들어갔고,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네. 그런 다음 열쇠를 던져버렸다네. 내 어깨 위에 있는 건 패천림이라는 짐이 아니라, 무검 한사가 살아온 백일 년의 세월이라네. 그 세월은 벗고 싶다고 해서 벗을 수도 없고,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네. 자네가 늘 지고 다니는 궤짝과 같은 거라네. 인생의 짐이란 때로는 힘들고 무겁지만 결코 벗을 수 없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네. 이 한사의 생이 다할 때까지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네. 아무튼 두 번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만남이었네. 자넬 결코 잊지 않겠네. 부디 극락왕생하시게나.”
“ 나도 즐거웠소. 영감. 극락왕생을 기원하겠소.”
연우강은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처럼 양손을 어깨 너비로 벌린 다음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 이야압!”
연우강이 숙였던 고개를 드는 순간 한사는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주변 기운이 한사를 향해 빨려들어 갔다.
고오오!
검은 울음과 더불어 새하얀 광채를 토해냈다.
새하얀 광채로 둘러싸인 한사 주변은 파고들어 갈 틈이 없었다. 그 속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저 냐왔다.
“ 모든 것을 부수고, 모든 것을 열고, 모든 것을 풀어해친다.”
“ 아! 빌어먹을 사망비비여!”
“ 마뢰개벽마해.”
“ 난 너를 저주하노라!”
들어올렸던 한사의 팔이 아래로 향하고, 연우강의 오른발이 강하게 내대뎌졌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한사가 쏘아낸 검은 태양처럼 광채를 사방에 뿌려댔고, 연우강의 몸에서 쏘아진 백육십여 개의 암기는 한사의 검에서 뿌려진 광채를 막아나갔다.
시간이 정지한 듯.
새하얀 광채와 검은 광채만 일렁였다.
퍽!
그때 어디선가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광장 안에 있는 이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군무옥은 멍한 얼굴로 전면을 보았다.
백색 광채와 검은색 광채가 서로 섞여갈 뿐 어떤 힘도 감지되지 않았다.
퍽! 퍽퍽퍽! 퍽퍽! 퍽!
문득 조금 전의 그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검은색 광채가 서서히 한사를 향해 밀려가고 있었다.
“ 이겼군.”
군무옥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연우강이 이겼으면 기뻐해야 한다. 그런데 기쁨보다는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든다. 어쩌면 한사를 진정한 무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연우강은 시선을 들어 한사를 보았다.
새하얀 광채 속에 한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 해탈!”
군무옥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사의 웃는 얼굴을 보자 언젠가 절에서 보았떤 부처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금박을 입혀 환하게 빛나던 부처님의 얼굴이 한사의 얼굴과 겹쳐진다.
이내 부처님의 얼굴은 한사 얼굴로 흡수되듯 사라지고, 환한 광채를 발하는 한사 얼굴만 남는다.
“ 나무아미타불!”
군무옥은 저도 모르게 합장을 했다.
파앗!
바로 그 순간, 한사의 얼굴이 가루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아래쪽도 천천히 가루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공수래공수거!
가루로 변한 한사를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떠올랐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 나무관세음보살!”
군무옥은 계속해서 불호를 외었다.
“ 우엑!”
바로 그때 연우강이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무옥을 비롯한 일행은 연우강 곁으로 뛰어갔다.
싸움을 막 끝낸 상황에서 토하는 건, 내상에 이한 각혈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 어?”
연우강 곁으로 다가간 군무옥 일행은 다들 의아하다는 얼굴이었다.
바닥엔 조금 전 먹었던 닭고기가 흩어져 있다. 피를 토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무옥은 조금 전 연우강이 읊었던 마지막 초식을 떠올렸다.
“ 아! 빌어먹을 사망비비여 난 너를 저주하노라!”
어쩌면 그 초식을 이루는 어구가 지금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칠 일 만에 채운 배였는데.....”
연우강은 투덜대며 얼굴을 들었다.
군무옥은 연우강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구토를 하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슬픔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연우강의 눈에는 눈물이 홍건하게 고여 있었다.
“ 좀 남았을 거요.”
군무옥은 들고 있던 술병을 내밀었따.
“ 젠장! 황금백수 시절이 좋았는데.”
술병을 받아 든 연우강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병 주둥이를 입 안으로 처박고 남은 술을 몽땅 털어 넣었다.
일행은 말없이 연우강을 지켜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원이 입을 열었다.
“ 계속 여기에 있을 거냐?”
“ 남궁 소저를 찾아야 하는데 그럴 순 없지요.”
연우강은 술병을 던져버리고 출구를 향해 걸었다. 연우강과 한사의 싸움으로 인해 석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광장은 좁은 동굴 기로가 이어져 있었다.
연우강 일행은 동굴 길로 들어섰다.
연우강 일행이 광장을 벗어나는 순간, 이십여 명이 연우강 일행이 들어왔던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을 이끄는 세 사람은 만기팔유의 여섯째 마유와 일곱째 사유, 그리고 막내 환유였다. 세 사람은 광장을 살피며 걸어갔다.
“ 한사의 무공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앞서 가던 마유가 사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 대야벌을 떠나기 전에 어기어검술을 얻었다고 들었네.”
“ 그럼 아직 초기란 말인가?”
“ 그런 셈이네.”
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하다고 보는가?”
마유가 거듭 확인한 이유는 연우강의 무공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물론 천주로부터 연우강의 무공 정도에 대해 들었다. 천주는 연우강이 오십 장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했었다. 그 말은 곧 심검을 얻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마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제 서른도 되지 않은 자가 심검을 얻었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천주가 연우강의 허장성세에 속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우리 눈으로 본 적이 없으니까 믿을 순 없지.”
“ 자네 생각은?”
마유는 이번엔 환유를 돌아보았다.
“ 우린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한 것 빼고는 한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네. 그의 무공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장육철이었고.”
환유 역시 사유와 같은 생각이었다.
설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는데, 자신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테다.
“ 우리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
“ 그렇네.”
환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날을 밟고 사는 무인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공 정도를 말할 때 약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 막 검기를 익혔다면, 능숙하게 펼치는 것처럼 말하고, 강기의 경지에 올라섰다면 검탄 강기를 펼치는 수준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 대우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기어검술을 얻었다고 말했다는 건 발만 적신 상태를 일컫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럼 한사는 이기어검술에 발을 담근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군.”
마유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엔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깊게 골이 파여 있고,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마유는 발자국의 수를 헤아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놈이 심검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 놈의 나이는 서른도 되지 않았네. 마유.”
사유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 내 생각도 자네와 같네. 여기가 연우강이 있던 자리 맞겠지?”
마유는 발자국이 찍힌 자리를 가리켰다.
가장 왼편에 있는 발자국은 두 개였고, 그 옆에는 여섯 개 그리고 오른편에는 여덟 개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잠시 발자국을 내려다보던 마유는 걸음을 옮겨 건너편으로 갔다.
“ 우리가 들어온 곳으로 들어왔으니까.”
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단 말이지.......”
마유는 잠시 발자국을 내려다보다가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 역시!”
한사의 발자국을 확인한 마유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걸렸다.
“ 찾은 거라도 있는가?”
사유는 마유를 보며 물었다.
“ 여기 발자국을 보게.”
마유는 앞뒤로 나란히 찍힌 두 개의 발자국을 가리켰다.
“ 저쪽에도 두 개 있지 않았나?”
“ 맞네. 그러니까 이 두 개의 발자국은 일 초를 의미하네.”
“ 발자국으로만 보면 일 초는 대등했다고 보면 되겠군.”
“ 그런 셈이지. 그런데 여기엔 네 개의 발자국이 찍혔다.”
“ 가만!”
네 개의 발자국이란 말에 환유는 몸을 날려 연우강이 찍은 발자국을 향해 갔다.
“ 여긴 여섯 개네.”
바닥을 확인한 환유가 소리쳤다.
“ 그 옆은 여덟 개 맞는가?”
마유는 바닥을 쳐다보며 물었다.
“ 그렇네. 마유. 여긴 여덟 개네. 거긴........”
“ 여기엔 여섯 개가 찍혔네.”
“ 그럼?”
듣고 있던 사유가 마유를 보았다.
“ 놈은 한사보다 무공이 낮네.”
마유는 단언하듯 말했다.
두 무인이 비무를 한 자리에서 무공 정도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단연 발자국이었다. 물론 두 무인이 남아 있으면 그들의 몸 상태만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싸운 흔적만 남아 있을 때는 발자국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중 강자가 남긴 발자국은 더 깊고, 선명하다. 그리고 약자의 발자국은 얕으면서 가장자리가 약간 허물어진 채로 나타난다. 그리고 강자는 발자국 수도 적게 남긴다.
똑바로 마주 선 상태에서 서로를 밀었을 때 힘이 약한 자가 많이 물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 그렇군.”
사유와 환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놈이 한사를 이긴 건?”
환유는 마유를 보았다.
“ 독고철웅이나 창노의 도움을 받은 게 분명하네.”
“ 들었느냐?”
사유는 뒤편에 있는 부하를 보았다.
“ 들었습니다.”
장한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넌 지금 바로 신유께 가서 방금 우리가 나눴던 말을 그대로 전하거라.”
“ 알겠습니다.”
장한은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광장을 나갔다.
“ 놈이 들어가는 곳이 나적리가 있는 곳인가?”
장한이 광장을 나가자 사유는 마유를 보았다.
“ 그렇네.”
마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놈이 나적리와 싸운 다음에 우리가 나서면 되겠군.”
“ 그렇지.”
그들은 곧 광장 끝에 있는 통로로 몸을 날렸다.
일행이 떠난 광장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군무옥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던 두 개씩 더 찍힌 발자국. 그 발자국은 연우강이 던진 미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