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마웅보, 마룡보, 사자방의 멸망은 강호 무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멸망한 문파의 수장들은 대야벌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야벌 출신이 수장으로 있는 문파를 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공격이 아니라 멸문을 시켜 버렸으니 강호 무인들이 충격을 받는 건 당연했다.
강호 무인들은 숨죽이며 대야벌을 주시했다.
그러는 사이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귀주와 절강의 패자로 알려진 맹호방과 풍운방이 연이어 멸문을 당한 것이다. 그들 역시 문파의 수장은 대야벌 출신이었다.
- 대야벌은 더 이상 무림이 아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모르는 말이 강호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대야벌은 여전히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이제 대야벌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하는 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의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삼궐칠련십림의 이십 개 세력 중 남아 있는 곳은 군마련, 묵야련, 철무련, 사자림, 사해림밖에 없다.
지난 사 년 동안 무려 열다섯 개 문파가 사라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태만 보면 대야벌은 괴멸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야벌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하는 자들도 대야벌의 그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야벌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르다.
괴멸된 문파의 대부분은 수뇌부를 비롯한 정예만 몰살당했을 뿐 나머지 무인은 문파에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자들과 군마련을 비롯한 다섯 문파의 무인을 합친 수는 이만이 천 명에 달하고 그들이 있는 대야벌은 여전히 철옹성이었다. 그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담대만승이었다.
담대만승은 흡족한 얼굴로 대연무장을 보았다. 지금 대연무장에는 출병 나간 철무련 무인을 제외한 나머지 무인 전부가 모여있었다.
대연무장에 모인 무인의 수는 일만 구천.
과거 총원 오만 명에 비하면 사 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무 개의 세력이 있었고, 저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자는 각 세력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야벌 무인 이만이천 명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벌주인 자신이다. 저들 전부가 벌주의 한마디에 꼭두각시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된 것이다.
담대만승은 오른편에 서 있는 만우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만우량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곧 내공이 가득 실린 그의 목소리가 대연무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 따로 방을 붙이겠지만 이번에 개정된 율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소! 첫째 그동안 벌주를 추대해 왔던 백인위원회는 오늘부로 해산하였고, 차기 벌주의 선출은 현 벌주에 일임한다. 둘째는 궐, 련, 림으로 구분했던 조직을 마도맹, 사도맹, 정도맹의 세 조직으로 나누고 부벌주 직위를 신설한다. 부벌주는 십절무적검 담대천호가 맡을 것이며, 마도맹의 부맹주는 철사자왕 악붕이, 사도맹의 맹주는 광해용왕 해천일이, 정도맹의 맹주는 천기만리통 혁세군이 맡을 것이다."
변한 조직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만 해도 대야벌 문도들은 웅성거렸지만 곧 잠잠해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금부터 벌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조직도에 대한 설명을 마친 만우량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 와아!"
" 우와아!"
" 와아아!"
대야벌 무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담대만승은 차분한 얼굴로 문도들을 둘러보았다. 박수 소리와 함성이 점점 커지자 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함성이 뚝 그쳤다. 담대만승은 흡족한 얼굴이었다. 곧이어 담대만승의 입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무천자께서 대야벌의 문을 열 때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대연무장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동안 대야벌은 중원 무림이 됐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단체가 됐다. 그리고 제군들과 나는 대야벌 제이기의 시작점에 섰다. 난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앞으로 천오백 년 후 대야벌 제삼 기를 열 후예들은 우리에게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담대만승을 비롯한 제군들은 대야벌의 황금기를 연 장본인이라고 말이다!"
" 와아!"
" 우와아!"
" 와아아!"
무인들은 다시 열화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편히 쉬어라!"
함성은 계속 이어졌다. 열렬하게 소리치는 무인들을 지켜보던 담대만승은 몸을 돌렸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담대만승을 비롯한 부벌주인 담대천호, 그리고 세 맹의 맹주와 만우량 범일승이 천상천 회의실로 모였다. 대야벌 제이기 출범식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모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날이 날인 만큼 술을 준비하긴 했지만 술잔을 들어올리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담대만승 또한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만우량을 돌아보았다.
" 철검방, 맹호방, 서해방 멸문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만우량은 담대만승 앞으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하오밀문과 전쟁에서 잃었던 정보망의 팔 할 이상을 복구했다. 그런데 복구하자마자 대야벌 지부의 멸문 소식이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다.
" 밀천인가?"
담대만승이 물었다.
" 전마 사유성이 있는 환밀가가 대야벌의 지부를 멸문시키고 있습니다."
" 병력은 어느 정돈가?"
"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았지만 최소 천오백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환술을 익힌 자들이라서 상대하는 게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 하남으로 이동 중입니다."
" 하남에는 어떤 문파가 있는가?"
" 전마방, 풍운방, 동해방, 귀원산장이 있습니다."
전마방은 과거 묵야련 지부고, 풍운방은 사자림, 동해방은 사해림, 그리고 귀원산장은 철무련 지부였다.
" 야궐의 적호문 지부도 하남에 있지 않은가?"
" 그렇습니다. 벌주님!"
"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담대만승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 놈들은 우리 사도맹에서 맡겠습니다. 궐주님."
과거 사해림의 림주였던 광해용왕 해천일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 자네 생각은 어떤가?"
담대만승은 만우량을 보았다.
" 사도맹의 부맹주 혈사신군 모두악이면 충분할 걸로 사료됩니다. 벌주님."
혈사신군 모두악은 과거 철무련 련주였던 자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사도맹의 부련주가 된 자였다. 만우량이 혈사신군 모두악이면 충분할 거라 한 이유는 철무련이 환술을 추구했던 문파이기 때문이었다.
" 좋네. 환밀가 건은 사도맹에서 처리하게."
담대만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벌주님."
해천일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야궐은 어떻게 됐는가?"
" 종남산 전투 결과는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 결과가 금세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전투가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구먼."
"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야궐의 잔당은 부벌주가 맡게."
담대만승은 담대천호를 돌아보았다.
"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릴 참이었습니다. 벌주님."
담대천호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기 벌주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 그 관문이 바로 혁련무극이었다.
" 야궐 잔당에 대한 정보를 내게 주시오, 군사."
담대천호는 밖으로 나가며 만우량에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부벌주님."
" 그들은 어떻게 됐는가?"
담대천호가 나가자 담대만승은 만우량을 돌아보았다.
담대만승이 야궐의 궐주인 혁련무극만큼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야장의 장주였던 장만보와 창노 남궁우문이었다.
" 장만보와 남궁우문은 연우강과 함께 종남산에 들어갔고, 지옥에서 탈출한 욱일승 일행은 절강성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절강성으로 가는 이유는 알아냈는가?"
" 연금석 일행 때문이었습니다."
" 연금석?"
" 지금까지 우리 턱밑에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 대담한 놈!"
설마 제 부모를 대야벌에 숨겨 두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데 이제는 욱일승 일행에게 맡기고 제놈은 야궐과 싸우고 있다. 비록 적이라고 하지만 소름 끼치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 절강성에는 대외총관이 가주게."
담대만승은 범일승을 돌아보며 말했다.
" 연금석을 없애면 되는 겁니까?"
" 그들에 대한 정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소이다. 대외총관, 일단 절강성 지부로 가면 좀더 많은 정보가 축적돼 있을 거요."
" 무슨 소리요?"
범일승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연금서고가 그 가족은 없애기로 하였고, 그 작전은 아직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작전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 그들을 쫓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소."
" 아직 그들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는 말이구려."
" 절강성은 이제 막 정보망이 가동되기 시작했소."
" 알았소이다. 절강성 지부로 가서 지시를 기다리도록 하겠소."
범일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으니까 한잔하도록 합시다."
담대만승은 술잔을 들어올렸다.
" 한 말씀 하십시오. 벌주님."
만우량은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 훌륭한 지휘관은 말을 적게 한다고 하더구먼. 아무튼 잘 부탁하네."
담대만승은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 위하여!"
" 위하여!"
수뇌들은 술잔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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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은 중원 칠대고도 중 낙양, 개봉, 안양 세 곳이 몰려 있을 정도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북부를 관통하는 황하 덕에 물을 풍족하게 공급받아 평야가 발달하고 곡창지대가 형성돼, 예로부터 중원 인구의 이할이 살아갈 정도로 풍족했다.
지정학적으로는 수도 북경이 있는 하북성과 인접해 있고,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원 최대의 곡창지대를 끼고 있는 하남성은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곳이었다.
무림문파 또한 다르지 않았다.
구파일방 소림사와 개방 총타가 하남성에 있고, 이름난 문파들은 지부를 냈다. 대야벌 각 세력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파일방까지 지부를 두고 있는 곳이 바로 하남이었다.
지부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하남성에 살기가 안개처럼 깔리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부터였다.
그 기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자들은 개봉에 총타를 두고 있는 개방 무인들이었다. 하남성 곳곳에서 날아오른 전서구들과 첩지를 든 자들은 개봉으로 들어갔고, 전서구 대롱에 또는 정보원의 손에 들린 첩지는 개봉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 엄청나군."
보고서를 내려다보고 있던 불취개 양택승은 혀를 내둘렀다. 양택승은 개방의 정보 총괄 조직인 파발원의 원주였다. 그가 혀를 내두른 이유는 최근에 올라오는 보고서들 때문이었다.
밀천과 대야벌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이곳 하남 또한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문제는 전쟁의 규모였다.
하남성에 있는 대야벌의 지부는 전마방, 풍운방, 동해방, 귀원산장, 적호문 다섯 곳이고 무인의 수는 이백에서 삼백 명 남짓이다. 그런데 하남성으로 들어오는 무인의 수와 신분은 상상을 초월했다.
- 혈사신군 모두악 심양으로 들어옴. 그를 따라온 무인의 수는 이천가량으로 보임.
- 야제 혁련무극으로 보이는 자가 낙양으로 들어왔음.
- 십절무적검 담대천호가 개봉으로 들어옴.
그를 따라온 무인의 수는 약 이천 가량으로 보임.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그 세 가지만으로도 총타가 발칵 뒤집어질 만했다.
양택승은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방주 집무실 옆 회의실이었다. 회의실에는 방주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 응?"
그들 중 한 사람을 바라보던 양택승은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회의실 안에는 이십 년 전 총퇴식을 통해 개방을 떠났던 전대 방주 몽취개 우중선이 앉아 있었다.
" 태상방주님 오셨습니까?"
양택승은 허리를 직각으로 꺾다시피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린 시절에 우중선으로부터 무공을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 너 택승 아니냐?"
우중선은 웃어 보였다.
" 그렇습니다. 태상방주님."
" 그래, 지금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느냐?"
" 파발원을 맡고 있습니다."
" 허허허!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책은 제대로 맡은 것 같구나."
" 태상방주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양택승은 슬쩍 미소를 머금고는 오른편에 앉아 있는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 앞으로 걸어갔다.
중년인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수염은 깔끔하게 정리한 채였다. 더불어 입고 잇는 옷 또한 새 옷은 아니지만 떨어져 기운 흔적은 없다. 거지이면서도 전혀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 자. 그래서 불개라는 별호로 불리는 그는 십만 개방 방도를 이끌고 있는 이막수였다.
" 최근에 하남으로 들어온 자들입니다."
양택승은 보고서를 내밀었다.
" 하남에서 한바탕 벌어질 모양이군."
" 그런 것 같습니다. 방주님."
양택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누가 들어왔는데 그러는가?"
우중선이 궁금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 야제 혁련무극과 십절무적 담대천호, 그리고 혈사신군 모두악이 하남으로 들어왔답니다."
이막수는 우중선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 정말로 이자들이 하남으로 들어왔단 말인가?"
우중선 역시 깜짝 놀랐다. 이십 년 전에 은퇴를 했다고 하지만 혁련무극이나 담대천호 모두악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특히 혁련무극과 담대천호는 대야벌의 기둥으로 알고 있었다.
" 모두악은 밀천 무인을 상대하기 위해 들어왔고......"
" 담대천호는 혁련무극을 없애기 위해 들어왔을 거란 말인가?"
" 그걸 어떻게......"
이막수는 놀란 눈으로 우중선을 보았다.
" 내가 혁련무극과 대야벌의 관계를 알고 있어서 놀랐는가?"
" 그렇습니다."
이막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우중선과 장로들의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림에 나올 일이 없을 거라면서 떠났다. 그러고 나서 지난 이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것도 놀랍거는 강호 무림을 환하게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동안 난 용왕개 사조님을 모시고 있었네."
" 요, 용왕개 사조님이란 말입니까?"
이막수는 벌떡 일어났다.
용왕개 주선풍, 고조에 해당하는 분이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 용왕개 사조뿐만 아니라 소림의 요료대사와 무당의 창천진인도 모셨네."
" 맙소사......"
이막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중선이 언급한 요료대사나 창천진인은 역시 용왕개 고조와 동시대 인물인 것이다. 이백 살이 됐을지도 모르는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을 함께 모셨다는 말이다.
그 말은 지난 이십 년 동안 함께 있었다는 뜻이고, 강호 정세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조지긍ㄹ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 혹시 총퇴식을 통해 떠난 분들께서는......"
" 십일 후에 소림사에서 회합을 개최하기로 했네."
" 지금 회합이라고 하셨습니까?"
" 그렇네. 방주."
" 회합을 개최한다는 건 새로운 세력을 창설하는 걸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 그럴 거네."
"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이막수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 대야벌 천오백 년 역사 중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네. 게다가 우린 권력을 함께 쥐고 있네."
"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건......"
" 그건 며칠 후에 알게 될 거네."
" 그 권력도 볼 수 있습니까?"
이막수는 눈치가 빠른 자였다. 권력을 함께 쥐었다는 말에 바로 황실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그럴 거네. 그보다 한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해 주게."
" 한 사람이라면 누굴 말하는 겁니까?"
" 대야벌을 박살내는 데 일등 공신을 찾고 있네."
" 사초 연우강을 말하는 겁니까?"
" 그자도 하남에 들어왔는가?"
" 어떤가?"
이막수는 고개를 돌려 양택승을 보았다.
" 연우강이 들어왔다는 소식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양택승은 고개를 저었다. 연우강 또한 강호 무림에 영향을 미치는 자들 중 한 명으로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 접니다. 원주님."
바로 그때 밖에서 파발원 대원 중의 한 명인 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냐?"
" 밀천 무인들이 낙양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 낙양에는 누가 있느냐?"
" 묵야련의 전마방이 있습니다."
" 밀천이 노리는 자들이 전마방이란 말이구나."
" 정주에 있는 풍운방 무인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올라왔습니다."
" 전마방과 풍운방이 힘을 합쳤단 말이구나."
" 그런 것 같습니다."
" 알았다. 낙양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일순위로 파악하도록."
" 그리고 타구대에 들러 출병 준비하라고 일러라."
양택승에 이어 이막수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 알겠습니다. 방주님."
" 출병할 참인가?"
" 다른 곳은 몰라도 하남성에는 소림사와 개방이 있습니다. 외지에서 온 놈들이 설치게 놔두면 우리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이막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도 함께 가도 되겠는가?"
"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곧 이막수와 우중선은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낙양을 향해 몸을 날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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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평원과 위수분지를 잇는 지점에 위치한 낙양은 교통 요지를 이루고 고래로부터 아홉 개의 왕조가 이곳을 국도로 정했다고 해서 구조고도라고 불린다. 아홉 개의 왕조가 도읍을 두었던 기간은 구백여 년이고, 군림했던 왕의 수는 칠십여 명에 달한다.
그 왕들을 비롯한 고관대작을 묻은 장소가 바로 낙양 북쪽에 병풍처럼 늘어 있는 망산이다.
동쪽의 정주까지 오백 리를 늘어서 이는 망산은 낙양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망산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연우강과 군무옥이 하오밀문 하남 지부장인 서이를 따라 망산 어귀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거름 녘이었다.
" 남궁 가주에게서는 연락 왔소?"
연우강은 서이를 따라가며 물었다.
종남산을 떠나오기 전에 남궁운화는 창노 일행을 데리고 남궁세가로 가 있으라고 한 것이다. 남궁운화보다는 무원, 창노, 백강, 염자생, 독고철웅을 위한 배려였다.
"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서이가 연우강과 군무옥을 데리고 간 곳은 삼 장 높이의 절벽 근처였다.
절벽 앞으로 걸어간 그는 불쑥 튀어나온 부분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둔탁한 소리와 함게 폭이 반 장가량 되는 석문이 열렸다.
" 무덤인가 보죠?"
연우강은 석문 안쪽을 보았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었다.
" 무덤으로 조성한 것 같은데 실제로 쓰이진 않은 곳입니다. 묘실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지부로 쓰기는 그만입니다."
서이는 아래로 내려가며 무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세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자 석문이 닫혔다.
연우강은 지풍을 쏘아 조금 전 보았던 유등에 불을 붙였다. 불이 밝혀지자 내부 전경이 드러났다.
계단 아래쪽은 직사각형의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바닥에는 편편한 돌이 깔렸고, 들어가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에는 석문이 달려 있었다.
그르릉!
" 이쪽으로 오게."
중앙 석문이 열리더니 허일구가 손짓을 했다.
" 바쁘네."
연우강은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연우강은 사망궤를 내려놓고 탁자로 가 앉았다. 그러자 그 옆으로 군무옥이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자리하자 서이가 차를 내왔다.
"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연우강은 차를 마시며 물었다.
" 대야벌이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났네."
" 새로운 조직이라는 건 무슨 소리야?"
" 대야벌이라는 이름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전부 바뀌었네."
" 어떻게?"
" 벌주를 선출했던 백인위원회는 해체됐고, 삼궐칠련십림은 마도맹, 사도맹, 정도맹 세 맹으로 바뀌었네!"
" 백인위원회가 해체됐다는 건 영구 집권하겠다는 거네?"
" 그렇네. 차기 벌주 또한 현 벌주가 뽑고 부벌주 직책을 신설했네."
" 부벌주는 담대천호겠지?"
" 잘 아는구먼. 마도맹 맹주는 사자림의 림주 철사자왕 악붕이 됐고, 부맹주는 묵야련의 련주 묵연도노 유자웅이네. 사도맹의 맹주는 사해림의 광해용왕 해천일이고, 부맹주는 철무련의 혈사신군 모두악이네. 그리고 정도맹의 맹주는 천기만리통 혁세군이 됐네."
" 범일승은?"
" 그는 대야벌의 대외총관이네."
" 대내총관은 만우량이겠네?"
" 그렇네."
" 이제야 제대로 된 그림이 나왔네."
연우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 무슨 소린가?"
" 내가 바라는 상황이라는 뜻이야."
" 자네가 바라는 상황?"
" 원래는 백인 위원회란 놈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볼 참이었거든."
" 뭘 물어본단 말인가?"
" 내가 벌주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참이었어."
" 대야벌의 벌주가 될 셈인가?"
" 내가 말하지 않았어?"
" 오늘 처음 듣네."
허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너도?"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군무옥을 보았다.
" 흑랑대 대주도 됐는데 대야벌 벌주 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쇼.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지."
군무옥은 어깨를 으쓱했다.
" 염소수염 영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 그거야 대장을 아직 모르니까 그런 거고."
" 정말로 벌주가 될 셈이군."
허일구는 신음처럼 말했다.
" 굳이 벌주 자리가 아니더라도, 대야벌 모든 무인들이 내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런 상황이 필요하게 됐어."
" 그러니까 자네 말은 백인위원회가 있는 것보다, 해체된 지금 상황을 원했단 말인가?"
" 백 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게 훨씬 낫잖아."
" 그 상대는 담대만승이네."
" 그놈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야. 사람이면 반드시 죽고."
"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지."
" 아무튼 이번 싸움에서는 내가 이길 테니까 걱정 붙들어매. 그리고 세상은 늙은 놈이 먼저 죽게 돼 있어."
" 아무튼 그놈의 배짱은......"
" 됐어. 그보다 이곳에 와 있는 놈이 누군지 그거나 말해."
" 이곳에 와 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남성에 들어오 있는 자들을 먼저 알아내야 하네."
" 대단한 자들이 들어와 있는 모양이지?"
" 담대천호가 이천 명가량 데리고 들어왔고, 혈사신군 모두악도 이천 명을 데리고 나왔네."
" 담대천호가 나왔단 말이지?"
연우강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 하지만 낙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네."
" 적호문이 어디 있지?"
" 용문에 있네. 담대천호가 혁련무극을 노리고 왔다고 보는가?"
"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곳까지 나올 이유가 없잖아."
" 그럴 수도 있겠구먼."
" 모두악은?"
" 모두악은 망산 북편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네. 밀천 무인들은 우리가 있는 남쪽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고, 무인의 수는 이천오백 명이네."
" 그들이 전부야?"
" 아니네. 망산의 정상 부근에는 전마방과 풍운방 무인 오백여 명이 무덤 속에 은신해 있었네."
" 그럼 담대천호가 데려온 자들이 이천 명. 모두악이 이천 명. 사유성이 이천 명, 혁련무극이 데려온 자들이 이천 명이니까 총 팔천오백 명이 하남성으로 들어온 셈이네?"
" 그렇네."
" 그들이 전부가 아니겠지?"
" 또 있을 거라고 보는가?"
" 지금 날 시험하려고 그러는 거지?"
연우강은 허일구를 빤히 보았다.
" 내가 자넬 시험할 주제나 되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 뿐이네."
" 황실에서는 나오지 않았어?"
" 아무튼 자넨 귀신 맞아."
" 남ㅊ러진 그놈이 이런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잖아."
" 맞네. 남철진이 금의위 위사 천여 명을 데리고 정주에 들어와 있네."
" 생각보다 많네?"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북진무사라고 해도 천여 명이나 되는 위사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연우강은 군무옥을 보았다.
" 남철진 그놈이 대장을 잡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오."
" 그들의 목표가 나야?"
이번엔 허일구를 보았다.
" 그건 아닌 것 같네."
" 그럼?"
" 만일 자네를 노리고 왔다면 그들은 정주가 아니라 이곳으로 왔어야 했네. 여기보다는 소림사에 어떤 일이 있어서 온 것처럼 보이네."
" 아! 숟가락!"
연우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 숟가락은 무슨 소린가?"
" 전에 내가 그랬잖아. 그자들은 내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 혹시 구파일방이 하나로 합쳐질 거라고 보는 건가?"
"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아무튼 그쪽도 철저하게 감시해."
" 그렇게 지시를 내려놓았네. 참 식사했는가?"
" 아직!"
" 그럼 식사나 하세."
허일구는 두 사람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 도대체 여긴 묘실이 몇 개야?"
허일구가 또다시 안쪽 석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연우강이 물었다.
" 여긴 무덤이 아니고 지하에 만든 집이라고 해도 되네."
" 집 구조와 같은 무덤이라는 말?"
" 주방까지 만들어져 있더구먼."
" 괜찮은 곳이네."
주방은 가장 안쪽이었다. 미리 준비를 해놓은 듯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음식은 돼지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썰어 죽순과 목이버섯 등의 야채와 볶아 전분과 육수로 걸쭉하게 마무리한 어향육사와 포자가 놓여 있었다.
" 술은?"
식탁을 내려다보던 연우강이 물었다.
" 오늘 밤은 쉴 텐가?"
연우강이 술을 찾자 허일구가 물었다.
" 소문이 나기 전까지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거야."
" 무슨 소문 말인가?"
" 사초 연우강이 낙양으로 숨어 들어왔다는 소문 말이야."
" 소문을 낼 참인가?"
" 남철진하고 숟가락만 들고 있는 자들을 이곳을오 불러들이려면 소문을 내야 하지 않을까?"
" 불러들여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할 거야."
"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 싸움 구경 말이야."
" 끄응!"
허일구는 연우강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