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84화 (184/232)

제 8장 영약을 안주로

' 저놈!'

모두악의 눈빛이 깊어졌다.

화산파 무인이 연우강을 공격할 때만 해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연우강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모두악은 연우강을 입만 살아 있는 삼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본 연우강은 완전히 달랐다. 굳이 무공을 확인하지 않아도 고수를 대하는 태도만 보면 얼마나 강자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연우강은 화산파 무인이 서른 명이나 있고, 철무련 무인이 오십 여 명이나 있는 곳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발을 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 해도 이곳은 지하 수십 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연우강이 화산파 무인을 도발했다는 건 지금껏 비밀로 했던 뭔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설사 도망치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화산파 무인과 적당히 싸우다가 도망치면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단 네 수만에 화산파 무인 서른 명을 도살해 버린 것이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모우악은 연우강을 보았다.

그는 아래로 쏘아낸 암기를 아직 회수하지 않은 채였다.

' 한번 쏘아낸 암기는 허공섭물로 끌어당겨야 한다. 하면 놈에게는 지금 암기가..... 없다.'

모두악은 고개를 돌려 철무십옹의 대형인 망귀 염옹 구작노를 보았다.

[ 지금 놈을 치지 않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련주님.]

사도맹 부맹주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작노는 모두악을 련주로 부르고 있었다.

[ 나도 같은 생각이오. 염옹!]

모두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연우강에게 죽임을 당한 화산파 무인들은 철무십옹과는 비슷하고, 차혼암영단 대원들보다는 한 단계 위다.

부지불식간이라고 하지만 그런 자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부하들이라고 안전할 리가 없었다. 공격하여 놈을 없애는 게 최선이었다.

" 공격하라!"

모두악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철무련 무인들은 일제히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은 모두악을 보았다.

" 너.... 실수한 거야."

연우강은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며 차갑게 웃었다.

" 설마....."

모두악은 차가운 얼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리릭!

연우강 근처에서 암기들이 날아올랐다. 암기들은 곧바로 철무련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하지만 화산파 무인들을 공격할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암기를 쏘아내는 게 아니라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삼류 무인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암기는 느리고 힘이 없었다.

철무련 무인들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 차앗!"

" 타앗!"

" 하아!"

철무련 무인들은 무기를 들어올렸다.

느리게 날아오는 암기는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손으로 쳐내거나 발로 차대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었다.

" 지옥의 입구는 활짝 문을 열었다."

연우강의 입에서 노랫가락처럼 나직한 구절이 흘러나왔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철무련 무인들의 입가에 어린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모두악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연우강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던가. 수많은 무인이 죽었다. 그들 중에는 철무련 출신 무인이었던 궁왕 종만리, 천검자 장양락, 천랑마효 인후겸, 섬수 윤효직이 있었다. 그들의 복수를 이제야 하게 됐으니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하게 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 지옥탄!"

바로 그때 낮지만 강한 목소리가 연우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미친 놈!"

푸아악! 슈아악!

" 허억!"

느닷없이 연우강의 몸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유성처럼 쏘아져 나오자 모두악은 질겁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놀란들 이들만큼은 아니었다.

연우강을 향해 기세 좋게 몸을 날려 가던 구작노 일행의 얼굴은 검게 죽었다. 무기는 번쩍 들어 올린 채고, 남은 손과 발은 앞서 날아온 암기를 쳐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검은 덩어리들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는 것이었다.

눈을 감는 것 말고는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푹! 푹푹푹! 푹푹! 푹푹푹!

" 으악!"

" 크아악!"

" 아악!"

비명, 비명, 비명.

공터 안은 온통 비명으로 가득 들어찼다.

아마 목소리가 실체화돼 나타난다면 공터 안은 이미 꽉 채워져 더 이상 파고들어 갈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앞에 있는 자들을 없앤 사망정주는 뒤편으로 계속 날아갔고, 조금 전 힘없이 떨어진 암기들까지 합쳐졌다. 그리고 백육십 여개에 달하는 암기가 공터 반쪽을 완전히 뒤덮었다.

" 크악!"

" 아악!"

" 으악!"

모두악이 있는 곳에서 두 번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두악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다른 이들보다 무공이 강해 간신히 암기를 쳐내고 있지만 팔과 다리에는 몇 개의 암기가 관통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 이럴 수가......"

그는 비틀거리며 계속 물러났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한두 명도 아니고 오십여 명이 있었고, 철무십옹은 철무련 최강 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몰살을 당한 사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만일 지금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 넌?"

모두악은 손을 들어 연우강을 가리켰다.

" 그는 개독새라고 했잖아요."

대다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모두악은 멍한 얼굴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파고들어 갔는지.

싸늘한 광채를 뿌리는 검 한 자루가 심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 누....."

" 연 공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지약이에요."

이지약은 얼굴만 드러내고는 싱긋 웃었다.

" 소명공주?"

" 잘 아시네요."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틀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검을 뽑았다.

" 크윽!"

모두악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때 연우강은 쏘아 보냈던 암기를 회수하고 있었다.

백육십여 개에 달하는 암기가 그를 향해 날아가더니 집을 찾아들어 가는 새처럼 차례로 장착됐다.

" 지금껏 세상을...."

아마도 지금껏 세상을 속이고 있었다고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악은 끝내 말을 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따.

" 이제 전리품을 챙겨볼까요?"

연우강은 물속의 상자를 보았다.

상자 표면에는 영약이란 글이 씌어 있었다.

" 쯧, 뭐가 들었는지 보지도 않고......"

연우강은 혀를 찼다.

화산파 무인과 철무련 무인들은 상자 안쪽은 확인하지도 않고 영약이란 글자만 확인하고 서로 칼부림을 한 모양이었다.

" 금이 지천으로 깔린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영약이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했다면 굳이 열어볼 이유가 없죠."

이지약이 연우강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 그렇게 되는 건가요?"

" 연 공자 같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 하긴."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검은 상자를 꺼냈다.

" 어떻게 된 거죠?"

" 뭐가요?"

연우강은 상자를 살피며 되물었다.

상자는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이음새 부분이 밀랍으로 처리돼 있었다.

" 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잖아요."

이지약은 주변을 가리켰다.

방금 연우강에게 죽은 자들의 수는 팔십여 명에 달했다. 물론 단순하게 암기를 닐려 저들을 없앤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세 번 이상 교묘한 속임수를 썼고, 화산파와 철무련 무인들은 그 속임수에 속아넘어가 전멸을 당했다.

그렇다고 해도 시체로 변한 자들은 간단하게 없앨 수 있는 그런 약자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연우강은 전혀 힘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 전 원래부터 강했습니다."

연우강은 오른팔을 구부려 알통을 만들며 말했다.

" 연 공자가 처음에 죽인 자는 화산파 전대 문주인 제검 양정일이었다고요."

" 전대 문주?"

" 저자는 전대 문주고, 저들 중 열다섯 명은 장로고 나머지는 사형제들이에요."

" 총퇴식인가 뭔가를 하고 나서 잊혔던 자들?"

" 네."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저들이 왜 나를 노리는지 아세요?"

" 먼저 제 질문부터 대답해 주세요."

" 화산 검애 아래쪽 동굴에서 아버지를 만났어요."

연우강은 걸음을 옮겼다.

시체가 너무 많아 쉴 공간이 없었다.

" 아버지라면......"

" 친아버지요."

" 사, 살아 있었어요?"

이지약은 깜짝 놀라 물었다.

" 그럴 리가 없잖아요."

" 그럼?"

" 무영들에게 쫓기다가 그곳에서 숨을 거두셨는데 우연히 발견했어요."

" 그랬군요."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그분이 심검에 대한 걸 남겼더라고요. 마라천력인 입장에서 본 심검에 대한 건데...."

"그래서 심검을 얻었다는 거예요?"

" 그 전에도 대충 얼개는 잡고 있었어요. 그리고 종남산 지하에 있는 음양지에서 음양쌍극기를 얻었고요."

" 혹시 음양쌍극기라는 게 양극불사신공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기운을 말하는 거예요?"

" 양극불사신공도 알아요?"

" 양극불사신공의 구결도 알고 있다면 믿겠어요?"

"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 황실 무고에서 슬쩍 했어요."

" 슬쩍?"

" 이름이 너무 멋지잖아요. 그런데........"

" 음양쌍극기가 없으면 익힐 엄두도 내지 못하는 무공이란 말이죠?"

" 맞아요. 그런데 이제야 그 주인을 찾은 것 같네요. 가요."

이지약은 연우강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던 이지약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한 듯 활짝 웃었다.

" 저기요."

연우강은 이지약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천장까지 높이는 사 장가량이었다. 그런데 천장 가장자리에 다락방과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는 마라천력을 펼쳐 곧바로 그곳으로 올라갔다.

" 진짜 다락방이네."

이지약은 빙그레 웃었다. 안쪽은 가로세로 높이가 각각 일장 길이로 돼 있는 석실이었다.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석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지약은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야명주를 밝혔다. 그녀가 야명주를 꺼내는 사이에 연우강은 조금 전 물속에서 건졌던 검은 색 상자의 뚜껑을 열였다.

밀랍을 벗겨내자 뻥 소리가 났다.

" 진공 상태였나 봐요."

이지약은 궁금한 얼굴로 야명주로 상자 안을 비췄다.

" 소리 때문에?"

" 진공 상태였다가 공기를 접하면 소리가 난다고 해요."

" 그럼 안에 있는 녀석들도 멀쩡하다는 말이겠네요."

연우강이 먼저 집어 든 것은 중지손가락 크기의 자기병이었다. 자기병 표면에는 전서체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사망궤 안쪽에 보면 술 있어요."

" 술 생각이 날 정도에요?"

" 일단 술하고 술잔을 꺼내요."

" 알았어요."

이지약은 술병과 술잔을 꺼내 연우강 앞에 놓았다.

" 술은 절반씩만 따르면 돼요."

연우강은 자기병의 병마개를 땄다. 병마개를 따자마자 머리를 맑게 해주는 향이 흘러나왔다.

" 그건 뭐죠?"

이지약의 물음에 연우강은 대답하지 않고 자기병 안에 있는 내용물을 양쪽 잔에 나눠 따랐다. 자기 병 안에서 유백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 혹시......"

이지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자요."

연우강은 술잔을 들어 이지약에게 내밀었다.

" 혹시 이거 한 두방울만 마셔도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그 영약은 아니겠죠?"

" 저번엔 소저가 샀으니 이번엔 제가 사는 겁니다."

연우강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 멋진 여자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미주알고주알 캐물으면 안 되겠죠?"

이지약은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챙!

맑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두 사람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내려놓은 연우강은 다시 상자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천에 쌓여 있었다.

이지약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연우강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천을 출자 말라비틀어진 뿌리가 나왔다. 생김새가 조선국에서 난다는 산삼 같았다.

" 이번엔 안주부터 먹자고요."

연우강은 절반을 잘라 내밀었다.

"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거예요?"

" 네."

연우강은 마른 뿌리를 입 안으로 던져 넣고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지약도 연우강을 따라 했다. 술을 마시고 마른안주를 먹고, 안주를 먹고 술을 마셨다.

뿌리처럼 생긴 안주가 있는 가 하면 시원한 맛이 나는 것도 있고, 처음 마셨던 것처럼 술에 타서 먹는 액체도 있었다.

" 아직 남았어요?"

이지약은 고개를 내밀어 상자 안을 보았다.

" 배불러요?"

" 터질 것 같아요."

이지약은 배를 두드렸다.

" 지금 당장 옷을 벗지 않으면 정말로 터지고 말 거예요?"

" 그게 무슨 소리죠?"

이지약은 깜짝 놀라 물었다.

" 저 상자 안에는 두 가지가 남았거든요?"

" 어떤 건데요?"

" 풍천영수하고 만년지극화령실이에요."

" 그럼 방금 연 공자와 나눠 먹었던 것들이 전부 영약이었단 말이에요?"

" 처음에 술에 타서 먹은 건 공청석유였어요."

" 진짜?"

" 술을 한 병이나 마셨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잖아요."

" 그것 때문에 공청석유라는 거예요?"

" 아무튼 무를 말린 것 같은 그놈은 만년삼왕이었어요."

" 마, 만년삼왕은 먹으면 일 갑자의 공력을 얻는 영약이죠, 특히 남자 정력에 최고고."

" 그리고 그 다음에 먹은 천년하수오."

" 천년하수오는 백발을 흑발로 만들어 준다는 전설의 영약이죠. 달거리가 멎은 여자도 천년하수오를 복용하면 젊음을 되찾는다고 하죠. 무림인이 복용하면 반 갑자의 공력을 얻는 다고 했고요."

" 그 다음엔 인형설삼을 찢어 먹었네요."

" 인형설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좋은 약이죠. 주안의 효과가 있어 젊음을 오래 유지하게 해줄 뿐 아니라 빙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영초라고 불리죠."

" 그 다음에 주워 먹은 열매는 천년설연실이에요."

" 천년설연실 역시 인형설삼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좋은 영약이죠."

이지약은 옷고름을 풀며 말했다.

" 그 다음에 술에 타 먹은 건 지심한령액이에요."

" 그것 역시 영약 중의 영약이네요."

이지약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갑자기 몸이 더워지는 듯하더니 한기와 열기가 동시에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연우강이 읊고 있는 영약들이 발출하는 기운이었다.

" 그 다음에 먹은 것은 만년빙정신수에요.:"

" 그걸 먹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네요."

" 그 다음에 먹은 건 빙백옥지."

" 그 다음엔요?"

" 천년음백실."

" 그건 주안과네요. 그리고 마지막에 먹은 건?"

" 생령수라고 적혀 있었어요."

" 그것도 내공을 높이고 젊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주안과에요."

어느새 이지약은 마지막 속옷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이지약은 연우강 바로 앞에 가부좌를 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약으로 배를 채우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흘겨보았다.

사실 지금 그녀의 몸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영약들이 습기가 빠져나가 마른 상태였기 때문에 약효가 조금 늦게 나타나 견디고 있을 뿐 원래 상태였다면 진작 폭발하고 말았을 것이다.

" 내공은 많을 수록 좋은 거잖아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옷을 벗었다. 그러고는 이지약 앞으로 다가갔다.

"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구결을 잘 들어요."

연우강은 제석강으로부터 전수받은 운우지정공의 구결을 읊었다. 다섯 번을 읊어주자 이지약은 운우지정공을 전부 암기할 수 있었다. 암기를 끝낸 그녀는 곧바로 연우강 위로 엉덩이를 걸치며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영약의 기운으로 생성된 내기는 단전으로 모여들었다가 결합된 부분을 통해 연우강의 몸으로 건너가고, 그것은 곧 음양쌍극기가 돼 되돌아왔다.

" 맙소사!"

내기가 나가고 들어올 때 생겨나는 엄청난 쾌감에 이지약은 깜짝 놀랐다. 설마 운우지정공이 이런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참으려고 하면 안 돼요. 이 소저. 운우지정공의 완성은 감정에 몸을 맡기는 데에 있어요. 모든 게 잘될 거니까 감정을 따르도록 하세요.]

연우강의 전음이 들려오자 이지약은 느낌에 몸을 맡겼다. 얼마나 많은 파도를 타고 넘었는지 모른다. 파도 꼭대기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를 수십 번.

어느새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지약은 문득 자신이 환골탈태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연우강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 제가 환골탈태를 한 건가요?"

" 처음이에요?"

" 네."

" 내공이 그렇게 강한데 어떻게 처음일 수가 있죠?"

" 어렸을 때 벌모세수를 받아서 그랬나 봐요."

"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환골탈태도 늦어진다는 거군요."

"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 내공이 얼마나 될까요?"

" 그건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 저도 측정을 못할 것 같아요."

" 그게 좋은 거예요. 이 세상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세 가지 있는데 알아요?"

" 뭐예요?"

이지약은 웃으며 물었다.

" 돈, 내공, 무공이에요."

" 연 공자는 한 가지가 더 있잖아요."

" 뭐가요?"

" 여자 말이에요."

이지약은 활짝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 그런 건 절대 공개적으로 말해선 안 되는 거잖아요. 자칫하다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된단 말입니다."

" 장가를 가기 전엔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요?"

" 물론이죠."

연우강은 환하게 웃었다.

*********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본인의 실력에 대한 믿음과 그 어떤 일이 원래 목적했던 것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때다.

지금 담대천호가 그랬다.

담대천호가 이곳 무덤으로 들어온 이유는 마총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이곳이 태양왕 주걸의 무덤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총과 상관없으면 바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무덤의 주인이 태양왕 주걸이라면 달라진다.

" 태양왕을 아시오?"

담대천호는 옆에 서 있는 호담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 태양왕 주걸에 대한 기록은 범천담대세가에 남아 있소."

" 어떤 잡니까?"

" 쌓아놓은 보물에서 흘러나온 광채가 태양 같다고 해서 태양왕이라는 별호를 얻었다고 하오."

" 그럼 엄청나겠군요."

" 금릉 연씨 세가 재산보다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진 않을 거요."

" 그의 재산이 전부 이 무덤에 있단 말입니까?"

" 주걸은 죽기 직전 모든 재산을 금, 은, 보석으로 바꾸어 무덤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소."

" 그럼 이건......."

호담생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수로 바닥에서 주은 금전이 들려있었다.

" 그건 쓰레기요."

" 이건 순금입니다."

" 이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오."

담대천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렸을 때는 무공이 전부인 줄 알았다.

강한 자가 아니면 세상을 지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공에 매진했고, 군마련의 련주가 됐고, 무영이 됐다. 그 자리에 오르자 세상을 다스리는 또 다른 수단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금력이었다.

아니 오히려 강한 무공을 지닌 자보다, 많은 돈을 가진 자가 더욱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금릉 연씨 세가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세상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은 대야벌이나 황실보다 더 컸다.

그게 바로 돈의 힘이었다.

" 벌주께 보고할 생각입니까?"

호담생은 담대천호를 보며 물었다.

"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소. 호노. 여기에 있는 보물은 훗날 우리를 위해 쓰이게 될 거요. 내가 벌주가 되고, 호 노를 비롯한 군마팔선이 대야벌 장로가 됐을 때 사용하게 될 거요."

담대천호는 어둠 속으로 시선을 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 멀리 희미한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무인들이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 그럼 이곳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좋겠군요?"

호담생은 담대천호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아예 없어야 하오."

" 그렇군요."

호담생은 고개를 돌려 일행을 보았다.

호담생의 시선을 받은 일곱 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파앗! 파앗!

호담생을 비롯한 군마팔선 여덟 명은 몸을 날렸다.

군마팔선을 따라 몸을 날리며 담대천호는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어둠 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자들의 정체를 캐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귓전에 나직한 목소리가 잡혀들었다.

- 여기가 어디라고 보십니까?

- 글쎄...... 좀 더 둘러봐야 할 것 같네. 금이 널려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사람의 무덤 같ㄱ는 한데.......

- 마총은 아닌 건 확실하죠?

- 그런 것 같네.

담대천호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저들은 이곳이 태양왕 주걸의 무덤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담대천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담대천호를 비롯한 군마팔선의 목표가 된 자들은 무당파의 전대 장문인인 만광진인을 비롯한 장로들이었다.

만광진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를 비롯한 무당파의 장로들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마총에 대한 소문의 확인과 척살령이 내려진 연우강을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마총이란 사실도 확인하지 못했고, 연우강도 잡지 못했다. 다만 이곳에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 이번엔 운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옆에 있던 무인이 만광진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만광진인 바로 아래 사제이자 장로를 역임했던 만선진인이었다.

" 이곳에 있는 보물이면 구룡천문을 세우는 건 일도 아니란 말인가?"

" 그렇지 않습니까. 금이 지천에 깔렸는데, 창고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이 들어 있겠습니까?"

" 허허허! 그렇기도....."

만광진인은 말을 끊고 몸을 돌렸다. 측면에서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던 것이다.

" 누구신가?"

만광진인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 그냥 죽어주기만 하면 된다."

호담생은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에서 시퍼런 광채가 무당파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 선자불래 내자불선이란 말인가?"

만광진인은 호담생을 향해 몸을 날려가며 말했다.

" 두말하면 잔소리지."

만선진인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담대천호였다.

속전소결을 결심한 듯 담대천호는 일 초부터 전력을 다했다. 그의 검에서 달빛처럼 차가운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천단십절마예의 일 초인 월광무였다.

쓰쓰쓰!

풀벌레 울음소리 같은 미약한 소리를 흘리며 달빛 광채는 무당파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 피, 피하라!"

만광진인은 다급히 소리치며 담대천호를 향해 검을 내던졌다. 그가 이기어검술로 검을 내던지며 펼친 검법은 무당파 장문인만 익히는 태청풍뢰검법이었다.

우르릉!

우렛소리를 내며 만광진인의 검이 담대천호를 향해 날아갔다.

" 자넨 내 차지라네."

만광진인의 검이 담대천호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수십 개의 손 그림자가 막아섰다. 그것은 군마팔선의 둘째인 팔비선옹 유광칠의 팔비천수였다.

차앙! 창창! 창창창!

유광칠의 팔비천수가 만광진인의 검을 막는 순간 담대천호의 검에서는 짙은 꽃향기가 흘러나왔다. 월광무에 이은 화접무였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꽃향기를 맡고 달빛에 소인 무당파 무인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어육이 돼 흩어졌다.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무당파 무인들은 현역도 아니고 이십여 년 전에 무당파를 이끌었던 장로들과 그들의 사형제들이다. 그런 그들이 담대천호의 무공 앞에서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 응?"

호담생의 눈에 반짝 이채가 서렸다.

호담생은 담대천호의 무공 정도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담대천호의 무공이 과거와는 달랐다. 전에도 월광무와 화접무를 펼치는 걸 보았는데 저 정도는 아니었다. 찢겨나간 시체들 중에는 탄 자국이 있는 자들까지 있었다. 그건 곧 천단십절마예에 다른 무공이 섞여들었다는 뜻이다.

' 무적뇌화결이군.'

호담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단십절마예는 신공의 범주에 들어가는 강한 무공이다. 먹물에 다른 색을 섞는다고 해도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 것처럼, 천단십절마예에 다른 무공을 섞는다고 해도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다. 다만 천단십절마예와 비슷한 수준의 무공을 섞었을 때만 흔적이 남게 되는데, 저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무공은 범천담대세가의 가주 무공인 무적뇌화결밖에 없다.

' 더 잔인해지고 더 강해질 수밖에 없겠군.'

" 으악!"

" 크아악!"

" 아악!"

호담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담대천호의 십절마검은 무당파 무인들을 헤집고 다녔다.

망혼무가 펼쳐지고, 풍운무, 암흑무가 연이어 펼쳐지자 동굴 안쪽은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들어찼다.

" 담대천호!"

만광진인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대야벌, 아니 담대만승과 담대천호.

저들 때문에 총퇴식을 하고 강호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이십 년 동안 몽산에 머물며 절치부심 무공을 익혔다. 총퇴식을 할 때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고, 앞으로 무공으로 치욕을 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담대천호는 이십 년 전보다 몇 배 강해져 있었다.

대야벌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 하지만!"

만광진인은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의념을 받아들인 검이 푸른 광채를 줄기줄기 쏟아냈다.

" 차앗!"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허공에 머물러 있던 검이 한순간에 공간을 단축했다. 팔비선옹 유광칠은 전력을 다해 팔비천수를 펼쳤다. 그의 전면은 온통 그의 손그림자로 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상대는 무당파 전대 장문인.

푸른색 뇌전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만광진인의 검은 팔비천수를 뚫고 들어갔다.

"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유광칠의 신형이 가루로 흩어졌다.

" 죽인다!"

유광칠을 없앤 만광진인은 광포한 고함을 지르며 담대천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금새 막혔다.

이번에 그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군마팔선의 셋째인 철마선 사마현이었다. 사마현이 만광진인을 막는 사이에 담대천호는 무당파 무인들을 도륙했다.

의도적인 듯 그는 도륙한 무당파 무인의 시신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겨 만광진인 근처로 내동댕이쳤다.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 크아아!"

만광진인은 짐승처럼 포효했다.

단아했던 머리는 풀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외부로 발산하는 힘을 견디지 못한 도포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 그것은 바로 내기의 폭주 상태인 주화입마였다.

주화입마에 들게 되면 짧은 순간에 진원지기까지 전부 토해 내게 돼 비정상적으로 강해진다.

" 크아아!"

번쩍!

" 아악!"

푸른 광채가 번쩍하는 순간 사마현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 물러나시오!"

담대천호는 고함을 내지르며 만광진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걸음에 만광진인 앞에 선 그는 십절마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천단십절마예의 팔 초인 지옥무였다.

그의 검에서 광포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그 기운은 곧바로 만광진인을 향해 쏘아져 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위험은 금세 알아차렸다.

만광진인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기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쾅쾅!

공터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폭음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 으음!"

담대천호는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보통 주화입마에 들게 되면 배 이상 강해진다.

물론 초식의 정교함이나 활용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밀어붙이는 힘은 무지막지하다. 그런데 만광진인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천 초 이상 싸워야 할 초강자.

시작부터 밀리고 있었다.

" 하지만!"

담대천호는 십절마검을 불끈 틀어쥐었다.

혁련무극을 넘어야 하고, 궁극에 가서는 형님인 담대만승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주화입마에 들었다고 하지만 만광진인에게 밀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 차아아!"

담대천호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십절마검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단전을 활짝 열었다. 그의 검에서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천단십절마예의 아홉 번째 초식인 생사무가 펼쳐졌다.

" 크아아!"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만광진인은 괴성을 내지르며 담대천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방어 자체를 도외시한 동귀어진의 공격이었다.

" 빌어먹을!"

담대천호는 전력을 다한 걸 금세 후회했다.

공격을 피하면서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게 훨씬 효과적인데 공연한 짓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펼치던 무공을 중간에 멈추게 되면 더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 별수 없군.'

담대천호는 강하게 검을 내리그었다.

콰콰콰! 콰콰콰!

두 사람의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각자의 일 장 앞에서 부딪쳤다. 폭풍이 부는 것처럼 바람이 터져 나오고 바닥이 푹푹 깎여 나갔다.

스아악! 스스스!

그리고 두 무기가 서로를 향해 쏘아져 갔다.

우르릉!

쾅! 쾅쾅쾅! 쾅쾅쾅! 쾅쾅!

" 크아악!"

" 커억!"

처절한 비명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리고 산발한 머리를한 자가 뒤편으로 튕겨나갔다. 한 번에 십여 장을 날아가 동굴 벽에 부딪친 사람은 무당파의 전대 장문인 만광진인이었다.

폭주하는 내기를 전부 쏟아내고 나자 정신이 든 듯 만광진인의 눈동나는 안정돼 있었다.

"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려도 안 되는군."

그는 허탈한 얼굴로 담대천호를 보았다.

담대천호가 물러난 거리는 심 장에 불과했다.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하고, 왼팔이 사라지고 없지만 저 정도면 며칠이면 털고 일어날 것이다.

만광진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당파 무인은 전부 죽임을 당했고, 적은 네 명이 죽었다. 역시 대야벌의 저력은 엄청났다.

"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담대천호. 우리 구파일방은 이제 시작했을......."

푸스스!

만광진인의 신형이 머리부터 가루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우엑!"

담대천호는 또다시 피를 토해 냈다.

" 괜찮으십니까?"

호담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왼팔을 잃은 것만 해도 걱정이 아닐 수 없는데 담대천호가 토하는 피가 선홍색이다. 선홍색 피를 계속 토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상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자들과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상이 너무 심각했다.

" 상대는 무당파 전대 장문인인 만광진인이었고, 주화입마 상태였소. 팔 하나를 잃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봐야 하오." 럼 보였다.

담대천호는 입 안에 남은 피를 뱉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 둘째, 셋째, 넷째, 여덟 째가 당했습니다."

호담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 어쩔 수 없지. 갑시다!"

담대천호는 걸음을 옮겼다.

' 윽!'

앞으로 걸어가던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움직일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 빌어먹을!'

자신의 경솔함에 저절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하지만 담대천호는 고통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담대천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담대천호와 군마팔선 네 명이 떠난 자리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연우강과 이지약이었다.

연우강은 담대천호가 토한 자리로 갔다. 그러고는 바닥에 남은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로 가져갔다.

" 뭐하는 거예요?"

이지약은 나무라는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 피 맛을 보면 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거든요."

" 어떻게 나왔는데요?"

" 최소한 보름 이상 드러누워서 요양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고 나오네요."

" 그럼 바로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 사냥의 묘미는 몰아가는 데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놈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천천히 몰아갈 겁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주 천천히."

담대천호 일행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연우강은 나직하게 말했다.

' 아!'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을 즐기듯 천천히 몰아가겠다는 것은 아버지 복수를 이곳에서 하겠다는 말이었다.

다시 연우강을 보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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