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86화 (186/232)

제 10장 최소한의 예의

연우강을 발견한 남철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연우강 때문이었다.

제검 양정일이 떠난 다음 낙양 쪽을 살피고 있는데 마총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남철진은 황당했다.

마총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였다. 그런데 마총이 발견됐다니.

그것도 연우강에 의해서.

순간 연우강이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당파의 만광진인을 찾아가 제검 양정일이 연우강을 없애기 위해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만광진인이 장로와 사형제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보고 그날 밤 위사들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무덤은 마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마총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단 한 가지.

연우강의 머리만 있으면 될 터였다. 그런데 그 머리가 나타난 것이다.

" 화산파와 무당파 장문인이 널 찾는 것 같던데......"

남철진은 슬쩍 떠보았다.

연우강이 혼자인지 아니면 다른 자들이 있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재미있는 놈이네."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화산파의 양정일과 무당파의 만광진인은 현역이 아니라 총퇴식을 하고 무림에서 사라진 자들이다. 무림인들도 행방을 몰랐던 그들을 남철진이 안다는 것은 서로 내왕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 뭐가 재미있다는 말이냐?"

" 양정일 그 놈 알아?"

연우강은 대뜸 물었다.

" 모, 모른다."

남철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구룡천군의 무인들이 주축이 돼 세워지는 구룡천문은 공식적으로는 황실과 별개다. 결코 알은 체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알아차린 듯했다.

" 그러니까 총퇴식을 하고 나간 놈들이 전부 황실에 있었단 말이구나."

" 눈치 하나는 귀신처럼 빠르구나."

남철진은 순순히 시인했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부정하면 모양새만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살인멸구가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 날 죽일 자신이 있나 보지?"

" 잘 아는 구나."

" 난 그렇다 치고 여기 있는 이 소저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연우강은 이지약을 가리켰다.

" 넌 그녀 걱정을 할 필요 없다. 연우강. 네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네 자신과 연금석 일행이다."

" 내 가족들에게도 손을 쓴 거야?"

" 지금쯤 압송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전에 나천후를 만나더니 그걸 상의한 모양이지?"

" 나천후는 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 나천후 그놈 악수를 뒀구나."

" 아니다. 연우강. 악수를 둔 사람은 날 적으로 돌린 너다. 나천후는 아주 튼튼한 동아줄을 잡은 셈이고."

" 그거야 네가 살아 있을 때 이야기고, 여기서 죽으면 튼튼한 동아줄 아니라 쇠사슬이라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 날 죽이겠다는 말이냐? 금의위 북진무사인 이 남철진을?"

남철진은 황당한 얼굴을 했다.

" 금의위 북진무사 목은 질긴 모양이지?"

" 구족이 몰살을 당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 그것도 네가 살았을 때 이야기지."

" 정수!"

남철진은 뒤편에 있는 관정수를 불렀다.

" 죽여라!"

기다렸다는 듯 관정수는 위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관정수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의위 위사들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촤르르!

철컥! 철컥! 철컬!

오른 손목에서 사망묵환이 풀려나오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사망낭조가 차가운 광채를 뿌렸다.

스악!

오른편에서 위사 한 명이 검과 하나가 돼 날아왔다. 연우강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위사의 검을 피했다.

턱 밑으로 검 끝을 흘려보내자마자 곧바로 오른손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푹!

이 장 길이의 사망묵환 끝이 구부러지면서 위사의 목 뒤로 파고들어갔다.

" 커억!"

위사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연우강은 사내의 목으로 시선을 주엇다. 끝만 약간 튀어나와 있던 사망낭조가 살아 있는 것처럼 튀어나오더니 사내의 목을 감싸고 돌았다.

그 상태에서 연우강은 오른손을 잡아 당기며 왼손을 내뻗었다.

툭!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위사의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

철컥!

왼손으로 다른 위사의 검을 잡고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사망묵환의 날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위사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위사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차르르!

사망묵환은 쉬지 않았다.

위사의 목을 잘라 내면 어느새 방향을 바꿔 다른 위사의 목을 노리고,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또다시 허공을 단축하며 다른 위사의 목을 노렸다. 사망묵환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해 허공을 유영하며 위사들의 머리를 잘라냈다. 사망낭조 날을 드러낸 왼손은 상대의 무기를 막거나 쳐내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지약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우강에게는 사망낭조나 사망묵환이 아니더라도, 백여 명 정도는 한 방에 없앨 수 있는 수많은 암기가 있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두 번이나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암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사망묵환 만을 이용해서 금의위 위사를 없애고 있다.

왜 그러는지......

" 혹시......"

그녀의 시선이 죽은 자들에게로 향했다.

어느새 연우강의 손에 죽어간 자들의 수가 이십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체들 중 머리가 붙어 있는 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지약은 연우강을 보았다.

빠르게 달려들고 있는 위사들에 비해, 그의 동작은 느리고 신중했다. 그러면서도 사망낭조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먼저 사망묵환 끝이 뒷목을 파고들어 가고 이어 둥글게 감아 돈다. 그 다음 오른손을 빠르게 당기면 위사의 목은 허공으로 떠오르든지 굴러 떨어진다.

그러고는 왼손으로는 위사의 무기를 막고 오른손의 사망낭조를 휘둘러 같은 작업을 한다. 마치 도자기를 빚는 도공처름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 확인사살을 하고 함께 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어.'

이지약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꺼번에 없애도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확인하면서 없애는 건, 남철진이 가족을 들먹였기 때문이다. 남철진은 연우강의 가장 싫어하는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촤르르! 철컥!

처절한 비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연우강의 뒤에는 머리 없는 시체가 쌓였다.

" 한꺼번에 쳐라!"

관정수는 고함을 내질렀다.

금의위 위사들은 기합과 함께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연우강의 움직임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위사들 또한 계속해서 목이 잘렸다.

" 저럴 수가.,"

남철진은 경악했다.

나름 연우강에 대해서는 자신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연우강에 대한 그 많은 정보 중에 저런 모습은 단연코 없었다.

연우가이 상대하는 금의위 위사들은 금의위에서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연우강은 장난감 다루듯 하고 있다.

믿기지가 않는 광경이었다.

" 지금까지 날 속였단 말이구나. 연우강."

남철진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재빨리 상황을 살폈다. 오십여 명이 죽임을 당했고, 지금도 죽어나가고 있다.

" 흐름을 끊어야 해. 그렇지 못하면......"

남철진의 시선이 이지약에게로 향했다.

[ 정수.]

남철진이 관정수에게 전음을 보냈다.

[ 말씀하십시오.]

[ 저 둘이 어떤 관계일 것 같냐?]

[ 이지약과 연우강 말입니까?]

[ 그래.]

[ 보통 상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 너도 그렇게 느꼈느냐?]

남철진은 조금 전 연우강과 이지약이 함께 들어오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남녀 사이를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이라면 이질감이 느껴지고, 약간의 친분이 있다면 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어색함이 묻어 나온다. 그리고 아주 친한 사이라면 마치 어떤 물건을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놓았을 때처럼 자연스럽다.

그런데 연우강과 이지약의 모습이 그랬다.

마치 부부를 보는 것 같았다.

[ 그렇습니다. 진무사.]

[ 이지약을 공격해라.]

[ 진무사?]

관정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남철진을 보았다.

이지약은 남철진이 금의위 영반보다 더 믿고 있는 남경왕 주진무의 며느리다. 그런데 그녀를 공격하라니.

질못 들었나 싶었다.

[ 저 계집은 남경왕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구림세가는 남경왕이라는 배경이 필요했고, 남경왕은 구림세가의 무력이 필요해서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뿐이다. 설사 저 계집이 죽는다고 해도 우리가 죽였다는 사실만 비밀로 하면 아무 문제없다.]

[ 그럼.......]

[ 연우강 놈을 잡으려면 저 계집을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 시작하라!]

[ 알겠습니다. 진무사.]

관정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 아악!"

" 크아악!"

" 으아악!"

그 와중에도 금의위 위사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연우강이 위사들을 죽이는 방법도 같았다. 목에 사망묵환을 찔러 넣은 다음에 감아서 잘라냈다. 어느새 사망자는 백여 명에 달하고 있었다.

" 차앗!"

" 타앗!"

" 이야압!"

명령을 받은 금의위 위사들은 이지약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 흥!"

이지약의 입에서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이미 내공을 운용 중이던 그녀는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죽이진 마세요.]

[ 왜요?]

[ 굳이 손에 피묻힐 필요 없잖아요. 피하기만 하세요.]

[ 알았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사들의 공격을 피해 다녔다.

" 놈이 당황하고 있다. 더욱 거칠게 밀어붙여라!"

관정수의 외침이 들려오자 이지약은 고개를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단극효는 더듬거렸다.

' 저 사람?'

이지약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관정수의 말처럼 연우강은 당황한 것처럼 보법이 꼬여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금의위 위사들의 머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연우강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금의위 위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정말로 치밀하고 잔인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 이크!'

차앙!

느닷없이 검이 코앞으로 밀려오자 이지약은 급하게 쳐내며 왼편으로 몸을 날려왔다. 이지약은 천마환환신공을 변형한 보법을 밟으며 사내 왼편으로 이동했다.

" 헉!"

방금 전면에 있던 이지약이 어느새 왼편에 가 있자 금의위 위사는 신음을 내뱉었다.

" 건방진 놈! 감히 소명 공주인 나를........"

이지약은 차갑게 말하며 위사의 목을 향해 검을 쓸었다.

스윽!

그녀의 검은 물을 가르는 것처럼 위사의 목을 통과했다.

" 아악!"

위사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위사를 죽이자마자 당장 연우강으로부터 혜광심어가 날아왔다.

[ 계속 피해 다니기만 하면 의심해요. 해아. 의심하지 않게 하려면 간혹 한 명씩 없애 줘야 한다고요.]

이지약은 다시 비틀거리면서 위사들의 무기를 피하고 다녔다. 그녀는 위사들의 무기를 간신히 피하는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 묘아의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남철진 네놈을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 뭐 하고 있느냐?"

남철진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연우강과 이지약을 번갈아 보았다.

연우강이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묘아라는 말. 그 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구림세가에서도 이지약의 아버지인 구림제독 이연과 조부인 이자승만 그렇게 부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애칭을 연우강이 그렇게 불렀다는 건 두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아니 부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연우가잉 묘아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라는 뜻이고, 평정심을 잃은 무인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금의위 위사들도 눈치를 챈 듯 더욱 거칠게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연우강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 금의위 위사들은 계속 머리가 잘려 쓰러졌다.

어느새 금의위 위사들과 연우강의 싸움은 반 시진을 지나 한 시진 째 접어들었다.

연우강은 계속해서 남철진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금의위 위사들의 목을 베었고, 이지약은 비틀대면서도 용케 위사들의 검을 피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그녀 말처럼 간혹 한 명씩 저승으로 보냈다.

또다시 반 시진이 흘렀다.

하지만 상황은 싸움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백여 명에 달했던 금의위 위사들은 다섯 명만이 남았고, 그들 또한 위태로웠다.

" 크악!"

" 아악!"

" 으악!"

긴 싸움에 이은 정적이 찾아들었다.

남철진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죽여라! 뭐 하고 있느냐? 죽여라! 놈을 죽여라! 계집을 죽여라! 그 말만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런데 연우강과 이지약은 멀쩡하고 금의위 위사들만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연우강의 허리춤에서 쏘아진 붉은 줄 하나가 목을 감고 있다.

" 넌........"

" 난 웬만한 건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내 가족을 위협하는 놈은 살려준 적이 없어."

" 네가 이곳으로 온 사실을 남경왕도 알고 있다. 연우강."

" 그래서 널 죽이면 남경왕이 날 범인으로 지목할 거란 말이야?"

" 다 죽고 너만 살아 나가면 당연히 그렇게 할 거다. 금의위 북진무사를 살해하게 되면 반역죄로도 처벌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 그래서 살려달라고?"

" 살려주면 이 안에서 있었던 일은 불문에 붙이겠다. 금의위 북진무사 남철진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다!"

" 넌 죽지 않을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 살려주겠단 말이냐?"

굳었던 남철진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연우강이 살수를 쓰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금의위 북진무사를 살해한다는 건 곧 자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놈에게는 키워준 양부모가 있지 않은가?

" 잘 생각했다. 연우강. 네 양부와 양모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날 죽여선 안 된다. 날 죽이면 최소한 구족이 몰살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게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자 마음이 편해진 듯 남철진은 말이 많아졌다.

"네가 죽지 않는다고 했지 살려 주겠다고 하진 않았어."

연우강은 사망혈삭을 천천히 당겼다.

" 무, 무슨 소리냐?"

" 난 한 놈만 민다는 뜻이야. 내가 밀 녀석은 남철진 네가 아니고 북경의 개작두 유설연이고."

" 허억!"

남철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마치 동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서, 설마......"

" 넌 죽지만 네 얼굴은 계속 돌아다닐 거야. 물론 자주 출몰하지는 않아. 가끔 출몰해서 남철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알리고 다시 사라질 거야. 그럼 우리 가족이 당할 일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겠지?"

" 말도 안 돼!"

" 내 생각도 그래.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환영축골공이라는 엄청난 무공을 창안했는지, 찾아내서 상이라도 주고 싶어."

" 서, 성공할 거라고 보느냐?"

" 그건 뒈질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잖아. 성공 여부는 내가 고민할 테니까 넌 죽어 주면 돼."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마라천력을오 사망혈삭을 당겼다.

스악!

" 컥!"

잘려 나간 남철진의 머리가 뚝 떨어졌다.

사망혈삭을 감아들인 연우강은 이지약 곁으로 걸어갔다.

" 정말 없애 버렸네요."

이지약은 걱정스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이곳으로 남철진이 들어온 것은 외부에 있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다. 어쩌면 남경왕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모두 죽고 연우강만 살아 나가면, 남철진을 살해한 범인으로 연우강을 지목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환영축골공이 있으니까 남철진의 죽음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 더구나 남철진은 남경왕의 심복이 된 상태가 아닌가.

" 놈을 살려두면 장차 더 큰 화근이 돼 우리 뒤통수를 치게 될 거예요. 기회가 왔을 때 없애버리는 게 나아요."

" 남경왕은 어떻게 할 거죠?"

" 그건 그 양반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죠."

"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다는 건 혹시......."

" 무상의 아버지에 대한 예의는 이미 차렸고, 마지막 절도 올렸어요."

"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 황제를 죽여야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겁니다."

" 남경왕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군요."

" 일단 이곳을 나가 좀 쉬었다가 가죠."

연우강은 조금 전 들어왔던 곳으로 향했다.

" 그쪽으로 가면 나가는 길이 있어요?"

" 보물에 독을 발라놓은 자가 굳이 비밀 통로 같은 걸 만들 리가 없잖아요.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태양왕을 볼 수 있을 거예요."

" 이제 남은 사람은 담대천호 한 명인가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따르며 물었다.

" 이 안으로 들어온 자들 중에는 그럴 거예요. 무영 서열 이 위이고, 최근엔 담대만승의 오른팔이 됐죠."

" 그를 없애면 담대만승에게 큰 타격이 되겠군요."

" 오른팔이 잘려나가는 기분일 거예요. 저기서 좀 쉬었다가 가요."

밖으로 나온 연우강은 천장 가장자리에 있는 다락 형태의 공간을 가리켰다.

" 피곤해요?"

" 수백 명을 파리 죽이듯 죽였잖아요. 몸은 괜찮지만 여긴 엄청나게 피곤해요."

연우강은 제 머리를 툭 쳤다.

" 마라천력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거군요?"

" 네. 쉬어 주지 않으면 담대천호에게 오히려 당할지도 모르거든요."

" 혁련 궐주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나?"

" 야제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못 만났을 때에 대한 대비도 해둬야 할 것 같아서요."

" 그렇겠네요."

연우강과 이지약은 천장에 나 있는 좁은 공간으로 올라갔다. 연우강은 사망궤를 내려놓고 드러누웠다.

" 이 소저도 누워요."

" 경계를 서지 않아도 될까요?"

" 그건 걱정 말고 누우세요. 내공이 강해지면 잠 같은 건 등한시하기 쉬운데 그럼 큰일나요. 내공이 강해질수록 더더욱 몸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해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해야 하고요."

" 알았어요."

이지약은 얼른 연우강 곁으로 드러누웠다.

그동안 싸움으로 피곤했던 듯 두 사람은 금세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연우강과 이지약이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그 시각, 무인들과 관복을 걸친 자들이 북망산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구룡천문의 창설을 위해 소림사로 모인 구룡천군 무인들과 주진무 그리고 금의위 영반 공오인 수행원들이었다.

저녁 무렵 소림사에 도착한 주진무는 개방의 전대 방주 몽취개 우중선으로부터 뜻밖의 보고를 받았다.

낙양의 묘곡에서 마총이 발견됐는데 만여 명 이상의 무인들이 마총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보고를 듣자마자 주진무는 당장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였고, 오백 명이 급하게 무복으로 갈아입고 무기를 챙겼다.

소림사를 나서려고 하는데 두 번째 소식이 들어왔다. 그 소식은 마총 주변에 있던 자들이 싸움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총 안으로 들어간 자들의 신분도 드러났다.

" 마총 안으로 들어간 자는 누군가?"

주진무는 우중선을 따라 달리며 물었다.

" 십절무적검 담대천호, 야제 혁련무극, 혈사신군 모두악, 전마 사유성, 제검 만광진인, 개방 방주 부불개 이막수, 소림사 장로 망현대사, 남철진, 연우강 등이 들어갔습니다."

" 아직 나오지 않은 거요?"

"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연우강이 동굴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은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 그럼 묘곡 주변에 있는 자들은 얼마나 되오?"

" 일만가량입니다."

" 그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주진무는 내공을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그 정도 인원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면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끝난 건가?'

주진무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를 달렸을까.

느닷없이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강한 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은 피비린내였다.

" 저기가......"

묘곡의 위치를 말하던 우중선은 말끝을 흐렸다.

어두컴컴하다고 하지만 사물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에 온통 시체들로 넘쳐났다.

" 으음!"  부르는 호칭이었다. 신유가 나웅을 마지막으로 본 건 이곳에 자리를 잡고난 후였 모두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정도의 참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들이 이곳에서 죽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시체는 묘곡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묘곡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시체 산을 보았다. 마총 근처는 발을 디딜 틈조차 없었다. 시체가 바닥을 채웠고, 시체가 없는 곳은 피웅덩이로 채워져 있었다.

" 생존자를 찾아보게."

주진무의 말에 일행은 일제히 주변으로 몸을 날렸다.

"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잠시 후 마총 위쪽에서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주진무는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생존자는 금의위 위사였는데 왼팔이 잘렸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 진무사는 마총 안으로 들어가면서 마총 입구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명령을 받고 우린 마총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위사는 그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 한참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흰옷을 걸친 노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상대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차별하게 살수를 펼쳤고, 상당수가 그들 손에 죽었습니다. 그들 중에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가 손을 뿌릴 때마다 오십여 명씩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불사선곡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 불사선곡?"

주진무는 우중선을 보았다.

" 무릉도원과 같은 전설에 등장하는 계곡입니다."

"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란 말인가?"

" 그런 것 같습니다."

"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어떻게 됐느냐?"

"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몽취개!"

" 하명하십시오."

" 이곳을 정리하게."

" 알겠습니다. 전하."

우중선은 고개를 숙이고는 구룡천군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구룡천군 무인들은 넓은 공터를 찾아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체를 치운 곳은 한눈에 마총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시체가 치워지고 주변이 정리되자 후미에 있는 금의위 위사들이 앞으로 나와 천막을 설치했다.

" 영반은 묘곡 중심으로 주변 십 리를 금의위 작전구역으로 선포하게!"

위사들이 천막 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주진무는 금의위 영반 공오인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 존명!"

공오인은 허리를 꺾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망산 곳곳에서 위협적인 외침이 흘러나왔다.

" 이곳은 금의위 작전구역이다. 망산으로 들어온 자는 지금 당장 떠나라!"

" 망산에서 떠나지 않는 자는 적국의 첩자로 간주하겠다. 지금 당장 망산에서 벗어나라!"

" 천막 설치가 끝났습니다. 전하!"

천막 설치 작업을 감독하고 있던 철리목이 다가오며 말했다.

" 수고했네."

주진무는 천막이 세워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막 안에는 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와 의자가 구비돼 있고, 탁자 위에는 차가 준비돼 있었다.

주진무는 찻잔을 들고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열린 문 사이로 마총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구룡천문 무인들 중 배분이 가장 높은 요료대사 일행이 안으로 들어왔다.

" 저기가 마총이라고 생각하시오?"

용왕개 주선풍이 주진무를 보며 물었다.

" 그동안 연우강의 행적을 보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주진무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럼 소문을 낸 이유는 무인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라는 말인데... 놈이 노리는 자는 누구일 것 같소?"

" 어쩌면 안으로 들어간 자들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 그 전부에 남철진도 포함되는 거요?"

" 남철진, 제검, 만광진인, 이막수, 망현대사는 놈의 목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들어간 이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주진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구룡천문 무인들이 묘곡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 연우강이 살아나올 거라고 보는가?"

" 그건 상관없습니다. 놈이 살아 나오면 이곳에서 죽이면 되니까요."

내공을 끌어올린 듯 주진무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살기와 더불어 쭉 튀어나왔다.

그런 주진무를 주선풍은 가만히 보았다.

얼마 전 남철진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전사한 줄 알았던 주무상이 연우강에게 살해당했다고 하였다. 연우강은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주무상을 영웅으로 탈바꿈시켜 보고를 올렸고, 황실에서는 보국천위장군이라는 시호를 내렸다는 것이다.

주선풍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왕세자라는 주무상의 신분을 감안하면, 일견 일리는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살해하고 나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주무상은 행정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휘관도 아니었다. 죄수로 구성된 부대인 흑랑기 대원이었으며, 흑랑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출병을 나간다. 그럼 사망자는 늘 나오기 마련이다.

즉 살인을 했다고 해도 전사로 기록해 버리면 간단하게 정리된다. 게다가 마지막 작전에서 흑랑기는 다섯 명만 남기고 전멸했다고 한다. 연우강 입장에서는 굳이 주무상의 이름을 들먹일 이유가 없다.

'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주선풍은 마총으로 시선을 주었다.

지금까지 들은 말을 종합하면 연우강은 소름 끼칠 정도로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자신의 살인을 숨기기 위해 주무상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이 있으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다. 설사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다고 해도 주진무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 넌 운이 없구나. 연우강.'

주선풍은 내심 중얼거렸다.

그 시각.

연우강과 이지약은 잠을 잤던 곳에서 나와 수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 괜찮아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두 시진 남짓 자기는 했는데 그 정도로 정신적 피료가 풀렸을지.

" 얼음이 얼어 있는 수면처럼 깔끔해요."

" 다행이네요."

콰앙! 쾅쾅! 쾅쾅!

멀지 않은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곧이어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과 벽이 흔들리며 돌가루들이 떨어져 내렸다.

" 이러다가 이 속에서 죽는 거 아닌가 몰라."

이지약은 겁먹은 것처럼 연우강의 팔짱을 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잖아요."

" 언제요?"

" 전에 동정호 지하에서."

" 그건 해아가 한 말이잖아요."

" 그랬나?"

" 맞아요. 해아가 그랬어요. 저 같은 미녀와 함께 있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어요."

" 나중엔 묘아도 그랬을걸요?"

"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네요."

" 마음이 변했다는 말?"

"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살아 나가서, 당신 허리춤에 있는 사망혈삭처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요."

" 혼자?"

" 혼자라면 가늘게 길게 살 이유가 없잖아요."

" 그렇군요."

두 사람은 커다란 석문과 마주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는 석문이 달려 있었다.

" 아무래도 이 안에 태양왕이 있나 보네요."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석문을 밀었다. 그러자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석문 안쪽은 조금 전 남철진 일행이 들어가 있던 광장처럼 팔각형으로 돼 있었다. 한가운에데는 높이 삼 척, 지름이 삼 장가량 되는 단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단의 형태 또한 팔각형이었다. 그 팔각형 단 위에는 커다란 수정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수정관에서 일 장 떨어진 곳에는 연꽃 형태의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안에서 화려한 광채가 흘러나와 수정관을 감쌌다.

" 쯧! 술 한잔도 얻어먹지 못할 거면서....."

연우강은 수정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목내이로 만들어서 집어넣었는지 수정관 안에는 검은 시신 한 구가 들어 있었다. 관 외부 여덟 곳에서 흘러나온 화려한 광채와 검은 시신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콰앙! 쾅쾅쾅! 쾅쾅!

단 건너편에서 요란한 소성이 들려왔다.

쿵쿵쿵! 쿵쿵!

" 음!"

" 으음!"

발걸음 소리와 신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연우강과 이지약은 단 위로 올라갔다.

싸우고 있는 자들은 혁련무극과 담대천호였다. 내상을 입은 듯 두 사람의 입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안쪽에는 시체 네 구가 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군마팔선 중 살아남은 네 명인 듯했다. 시체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는 노욱을 비롯한 야노원 원로들이 서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우강은 지고 있던 사망궤를 내려놓았다.

뚜껑을 열고 보석을 헤집은 다음 돌로 만든 함을 꺼냈다. 그는 다시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함을 올려놓았다.

" 뭐죠?"

이지약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당신을 살해한 자의 최후는 보여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요."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사망혈궁을 꺼냈다.

그러고는 혁련무극을 향해 몸을 날려 가는 담대천호를 겨냥하여 시위를 당겼다. 사망혈궁이 둥글게 휘어지고, 그곳에 새카만 광채를 뿌리는 내기로 만들어진 화살 두 개가 생겨났다.

콰콰콰! 콰앙!

" 크윽!"

" 으윽!"

커다란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은 튕겨나가듯 반대편으로 물러났다.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은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쿠쿠쿵! 콰콰콰!

사망혈궁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 제 19권 끝>

황금 백수 20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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