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난 당신의 부하가 아니오
“ 크윽!”
“ 으윽!”
“ 헉!”
“ 악!”
사망혈궁에서 흘러나온 굉음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혁련무극을 비롯한 노욱 그리고 연우강 옆에 있던 이지약까지 사망혈궁이 쏟아낸 음공으로 인해 진기의 흐름이 끊어지면서 비틀거렸다.
영향권 밖에 있는 그들이 그 정도인데 담대천호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사실 담대천호는 연우강과 이지약이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 녀석과 마주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싸우고 있는 혁련무극도 연우강과는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즉 담대천호는 혁련무극도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곁눈질로는 연우강을 감시하면서 혁련무극의 눈치를 살폈다.
연우강이 장난감 같은 활을 꺼내 들 때에는, 먼저 연우강을 없애고 나서 승부를 내자고 혁련무극에게 전음까지 보냈다. 하지만 혁련무극에게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공격이 더욱 거칠어졌다.
결국 연우강을 무시하고 혁련무극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엇다. 그런데 그 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진기가 끊길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그것뿐이었다면 이렇듯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퍽! 퍽!
가공할 음공에 이어, 벌겋게 달궈진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양쪽 허벅지에서 밀려왔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허벅지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기운이 허벅지 안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대천호는 급하게 내기를 양쪽 허벅지로 밀어 넣었다. 허벅지 안으로 들어온 이질적인 기운을 막아내지 않으면 두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내기를 밀어 넣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조금 전 음공으로 인해 마비가 된 듯 진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담대천호는 내기를 풀어내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내기가 빠르게 두 다리를 향해 움직여 갔다.
쿠쿠쿵! 콰콰콰!
바로 그 순간 또다시 엄청난 굉음이 귓전을 강타했다.
“ 커억!”
담대천호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 우엑!”
결국 그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이번에는 오른팔에서 극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간신히 숨을 고른 담대천호는 고개를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장난감 같은 활을 쏘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음공은 뭐며, 몸 안으로 파고들어 온 이 이질적인 기운은 다 뭐란 말인가?
“ 뭐냐?”
담대천호는 물었다.
“ 풍뢰!”
연우강은 담대천호를 향해 걸어갔다.
“ 풍뢰?”
“ 네 다리를 보면 알 거야.”
“ 다리........”
퍼억! 퍽!
다리로 시선을 주는 순간 허벅지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 크아악!”
극렬한 고통에 담대천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자 터져 나간 부분에서 튀어 오른 살점과 핏물이 담대천호의 얼굴을 흠뻑 적시고, 일부는 입 안으로 들어갔다.
담대천호는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가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공을 익힐 때도 그랬고, 장만보와 남궁우문을 없앨 때도, 무영 일 호를 없앨 때도 그랬다.
실패를 염두에 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성공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두 다리가 폭죽처럼 터지며 떨어져 나간 것이다.
퍼억!
이번엔 오른 팔이 터져 나갔다.
“ 이건 꿈이야.”
담대천호는 넋을 잃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꿈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는 대야벌 벌주의 친동생이고 부벌주이며 수천 명의 부하가 있고, 천단십절마예를 익혔으며 얼마 전에는 무적뇌화결까지 수습했다.
그런데 두 다리와 한 팔이 잘려나가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홍건하게 적신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는 꿈밖에 없다고 담대천호는 확신했다.
“ 피를 보는 꿈은 길몽이라고 했으니까......”
담대천호는 꿈에서 깨려는 듯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 마라천력이 극한에 이르면 진기가 폭발하는 시간도 조절할 수가 있어.”
“ 마라천력이라고?”
담대천호는 연우강을 보았다.
“ 맞아, 무영 일호처럼 나도 마라천력인이야.”
“ 네가 그걸 어떻게.......”
담대천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우강으로부터 무영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다.
게다가 마라천력인이라니.
“ 전에 묵사패를 네게 보낸 적이 있는데 받지 못한 거야?”
“ 묵사패? 설마.....”
담대천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저기 유골함에 담겨 있는 분이 묵사패의 주인이야. 내 아버지고.”
연우강은 사망궤 위에 놓인 유골함을 가리켰다.
“ 네, 네가 주선엽의 아들이란 말이냐?”
“ 담대천호 네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
연우강은 담대천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 마, 말도 안 돼.”
“ 내 생각도 그래, 담대천호. 너처럼 나쁜 놈은 진작 망하거나 벼락을 맞아 죽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아왔다는 사실이, 정말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 그럼 대야벌을 그 지경으로 만든 원흉이 너란 말이구나.”
“ 맞아. 야효를 죽이고, 그 사건을 따라온 추소백을 죽인 사람이 나야. 그리고......”
연우강은 담대천호의 다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의 양손이 새하얗게 변하는 듯하더니 터져 나간 부분이 꽁꽁 얼며 피가 멈췄다. 다리를 지혈시킨 그는 담대천호의 오른팔도 같은 방법으로 지혈시켰다.
“ 네 다리의 팔을 지혈시킬 때 사용한 무공은 백옥수야. 무영 구십구 호였던 추소백을 죽인 무공이기도 해.”
“ 처, 천마삼경의 주인이 너였다는 말이구나.”
“ 맞아. 천마삼경을 이용해서 생사림을 없앴을 뿐 아니라, 사월림에 나를 죽여 달라고 천만 냥의 청부를 넣은 사람도 나고, 화약으로 금릉 연씨 세가를 날려 버린 사람도, 담대민의 목을 친 사람도, 범천담대세가에 화판을 퍼부은 사람도, 담대만승의 아들인 무적신호검 담대천명의 목을 자른 사람도 나야. 그리고 담대무궁의 팔도 내가 잘랐어. 죽여 버릴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없애야 담대만승을 완전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살려둔 것뿐이야. 천신군의 오제를 죽인 사람도, 칠왕을 죽인 사람도, 우담보를 죽인 사람도 나야.”
담대천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지난 사 년 동안 대야벌에서 일어나 크고 작은 일 전부가 연우강 작품이었다. 벌주인 형님을 비롯한 대야벌 모든 무인들은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다.
경악한 사람은 비단 담대천호뿐만이 아니었다.
혁련무극 또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범천담대세가를 날려 버리고 담대만승의 큰아들은 물론이고, 둘째 아들까지 없앴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담대무궁 또한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일부러 살려 주었다고 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 거짓말!”
담대천호도 혁련무극과 같은 심정이었는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 믿어달라고 한 말이 아냐.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지금 네 상태는 그분과 같아. 그분은 두 다리와 두 팔이 없는 상태에서도 검애까지 도망츨 치셨어. 왜냐면 종남산에 만삭이 부인이 있었거든. 그래서 네게도 기회를 줄 참이야. 아니, 시간이라고 해야겠지.”
“ 무, 무슨 말이냐?”
“ 난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아. 밀천을 없애야 하고, 모용세가도 없애야 해. 약간의 변동은 있겠지만, 길게 잡는다고 해도 육 개월 안에 대야벌로 들어가게 될 거야. 그 안에 네 가족을 피신시켜, 그럼 네 가족은 손 대지 않을게.”
“ 내 가족을 죽이겠단 말이냐?”
“ 네가 내 입장이라면 그렇게 할 거잖아.”
연우강은 담대천호의 볼을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연우강!”
담대천호는 중앙단으로 걸어가는 연우강을 불렀다.
“ 서둘러 담대천호. 네가 그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
하지만 두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담대천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연우강!”
담대천호는 또다시 연우강을 불렀다.
단 앞에 선 연우강은 한동안 유골함을 바라보았다.
“ 팔다리를 잘라놓고 가족을 피신시키라고 하는 건 비열한 짓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그렇게 하면 담대만승이나 담대천호와 같은 놈이 된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복수를 하는데 같은 놈이 되면 또 어때요. 전 성인군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죽어서 좋은 곳에 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복수는 당한 것보다 몇 배로 갚아주고, 은혜를 입은 건 가급적 잊으면서 살래요.”
연우강은 유골함을 챙겨 사망궤 안으로 집어넣고 걸머졌다.
“ 안 갈 거예요?”
그는 멍하니 서 있는 혁련무극 일행을 돌아보며 소ㅤㄹㅣㅌ쳤다.
“ 가, 가야지.”
퍼뜩 정신을 차린 혁련무극과 노욱 일행은 연우강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나갈 때는 들어갈 때의 역순이었다.
소림사 승려들이 죽어 있던 곳을 지나칠 때 일행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시신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 역시 독이군.”
혁련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이 곳곳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보호할 기관이 없는 걸 보고는 하독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보석에 독이 발라진 흔적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뼈만 남은 소림사 승려들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로를 따라온 연우강은 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마차가 내려온 공간은 뻥 뚫려 있었다.
일행은 그곳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도 많은 시체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멀쩡했다. 보석을 만지지 않아 독에 중독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곳을 나선 일행은 무덤 입구로 향하는 계단 앞에 당도했다.
연우강은 곧바로 계단 옆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폭이 두 자가량 되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 비밀 통로예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따르며 물었다.
“ 교묘하게 숨겨져 있더군요.”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데리고 갔다.
그가 가는 곳은 들어오는 입구를 무너뜨릴 생각을 한 후 다른 통로를 찾다가 발견했다. 도굴꾼이 뚫어놓은 토굴이었던 것이다.
통로는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비좁았다.
“ 도굴꾼이 뚫은 것 같은데요?”
이지약은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야명주를 꺼내 비췄다.
야명주 불빛으로 통로를 발ㅤㄱㅣㅎ며 십여 장가량을 걸었을 때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폭은 지나온 곳과 비슷했고, 엉성하게나마 계단 형태로 땅을 파서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급경사를 이루는 계단은 높이만 해도 이십여 장가량 되었다. 이런 곳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토굴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계단 끝에 도달해서야 알 수 있었다. 끝을 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치우자 또 다른 무덤이 나온 것이었다.
그 무덤 또한 상당한 규모였다.
토굴이 무사한 건 이 무덤 때문에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아서인 듯했다.
“ 밖에 사람이 많은 것 같구먼.”
천리지청술로 무덤 외부를 살피던 혁련무극이 연우강을 돌아보았다.
“ 많다는 건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건데.......”
연우강은 이지약을 보았다.
안으로 들어갈 때 군무옥에게 각 세력끼리 싸움을 붙이라고 했다. 녀석이 성공했다면 주변에서는 아직 싸움이 벌어지고 있든지, 싸움이 끝났다면 아무도 없어야 한다. 아니 군무옥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군무옥도 없고, 주변엔 많은 무인들이 매복한 것처럼 은신해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지약은 천마환환신공을 펼쳐 무덤 밖으로 나갔다.
상당히 먼 곳까지 돌아본 듯 이지약이 돌아온 건 반 시진 후였다.
“ 왜 그래요?”
잔뜩 굳은 이지약의 얼굴을 보며 연우강이 물었다.
“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 은신해 있던 자들은 한 명도 없어요. 대신 금의위 위사들과 구파일방에서 은퇴한 자들이 사방에 은신해 있어요. 그리고 남경왕과 금의위 영반 공오인이 와 있고요.”
“ 싸운 흔적은 있던가요?”
“ 묘곡 주변은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해요.”
“ 그럼 전투를 치른 그들이 떠나고 난 다음에 금위와 구파일방 전대 무인들이 왔다는 거군요.”
“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할래요?”
“ 그들이 왜 았을까요?”
연우강은 한쪽 구석으로 가 사망궤를 내려놓고 그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남경왕과 공오인의 주무대는 북경이고,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물론 마총의 소식을 듣고 올 수도 있지만 그건 시간상 맞지 않다. 다른 일로 하남성에 왔다가 우연히 마총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왔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했다.
연우강은 궁금한 건 그 다른 일이었다.
“ 아무나 한 명 잡아올까요?”
“ 잡아오면 죽여야 하잖아요. 그냥 여기서 죽치고 있다가...... 이런.”
연우강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외부에서 강한 기운이 감지된 것이었다. 그 기운은 무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연우강은 이지약을 보았다.
[ 몸을 숨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 알았어요.]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마환환신공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 궐주도 이곳에 있으시오.]
연우강은 사망궤를 둘러매며 혁련무극에게 전음을 보냈다.
[ 혼자 나가겠다는 말인가?]
[ 남경왕과는 안면이 있소. 궐주보다는 내가 상대하는 게 훨씬 낫소. 아무튼 숨어 있다가 주변에 있는 자들이 철수하면 그때 나오도록 하시오.]
[ 그 인연이라는 게 좋은 인연인가?]
[ 부하였던 녀석이 부모니까 궐주보다는 훨씬 나을거요.]
연우강은 조금 전 나왔던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우르릉!
지진이 난 것처럼 무덤이 흔들리더니 잠시 후 연우강 일행이 나왔던 출구가 무너져 내렸다. 출구가 완전하게 무너지자 연우강은 무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우강 일행의 기척을 발견한 사람은 소림사의 고조인 요료대사와 개방의 용왕개였다. 두 사람이 연우강 일행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볼일을 보기 위해 으슥한 곳을 찾아 나섰다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고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그런데 무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잡혀든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마총으로 들어간 자들이란 사실을 눈치 챈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무덤으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무덤 안에서 검은 옷을 걸치고 철립은 쓴 자가 걸어나왔다. 두 사람은 그가 연우강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바로 특이한 복장 때문이었다.
“ 네가 연우강이더냐?”
주선풍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당신들은?”
연우강은 두 사람을 가만히 보았다.
한 명은 중이고 다른 한 명은 거지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상당했다. 무덤 안에 있는 혁련무극에 비해 결코 아래가 아니었다.
“ 원래 말투가 그러냐?”
주선풍은 연우강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하지만 절반 정도가 철립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 싹수머리가 없다고?”
“ 싹수머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 난 그나마 알고는 있잖아.”
연우강은 주선푸응ㄹ 빤히 보았다.
“ 나는 모른단 말이냐?”
주선풍이 대번에 받아쳤다.
“ 원래 아랫도리가 거뭇해지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 어른 취급을 해줘야 하는 거잖아. 나이를 처먹었다고 반말을 찍찍 해대는 건 예의가 아니지. 배웠다는 놈이 할 짓도 아니고.”
“ 클! 하하하! 프! 하하하!”
주선풍은 크게 웃었다.
백오십 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저렇듯 광오한 놈은 처음이다. 보통 사람은 요료대사와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런데 녀석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다.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난 개방의 용왕개다. 이 땡초는 소림의 요료고.”
주선풍은 연우강을 살폈다.
이번에는 연우강이 질겁할 거라고 확신했다. 무림이라면 이 갑자 전에 활동했던 자신들을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주선풍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연우강은 요료대사와 주선풍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런데?’ 라는 듯한 얼굴로 주선풍을 빤히 보았다.
[ 용왕개는 지금 방주의 고조라고 보면 돼요.]
그때 귓전으로 이지약의 혜광심어가 들려왔다.
[ 고조면 전전전대 방장?]
연우강 역시 혜광심어로 물었다.
[ 네.]
[ 요료도 그래요?]
[ 그는 소림사 고조에요.]
[ 그러면 구파일방의 고조들이 전부 살아 있다고 봐야겠군요.]
[ 그런 것 같아요.]
“ 날 막아선 이유가 뭐요?”
연우강은 물었다.
“ 널 보고 싶어하는 분이 계신다.”
“ 보고 싶어하는 분?”
“ 그렇다.”
주선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 쿡!” 우강은 사망궤를 걸머졌다.
연우강의 입가에 조소가 물렸다.
“ 그 웃음의 의미가 뭐냐?”
“ 내가 웃는 의미를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 우릴 아느냐?”
“ 난 내가 고조고 누군가의 개 노릇을 하고 있다면 후손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할 거야. 왜냐면 내가 후손을 아는 척하는 순간 그 녀석들마저도 개로 만들어 버리니까 말이야.”
“ 지금 우릴 개라고 한 거냐?”
주선풍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넘실댔다.
“ 어렸을 때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물건을 물어 오라면 물어오고, 사람을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고,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하고, 제 집으로 들어가서 쉬라면 쉬더라고. 난 그 녀석을 개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스런 부하라는 뜻으로 ‘충견’이라고 불렀어.”
“ 죽일 놈!”
주선풍은 몽둥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게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연우강의 허리춤에 있던 뇌섬이었다.
“ 헉!”
주선풍은 헛바람을 삼키며 급하게 위호 솟구쳐 올랐다.
쐐액!
하지만 뇌섬은 무서운 속도로 주선풍을 쫓아 올라갔다.
“ 아미타불!”
바로 그때 요료대사의 입에서 나직한 불호가 흘러나왔다. 요료대사의 불호눈 유형의 힘으로 변해 곧바로 뇌섬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것은 목소리만으로 사악한 기운을 몰아낸다는 항마후였다.
콰앙!
커다란 소리가 뇌섬에서 흘러나오고 주선풍을 향해 쏘아져 가던 뇌섬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휘리릭!
주선풍은 공중제비를 돌아 뒤편으로 물러났다.
스악!
바로 그때 연우강의 머리에 있던 사망마립이 주선풍이 내려설 곳을 향해 공간을 단축하며 날아갔다.
“ 빌어먹을 놈!”
주선풍은 허공에 우뚝 멈췄다.
하지만 연우강의 공격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아래쪽으로 향하던 사망마립이 여덟 개로 분리되더니 등뒤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리고 조금 전 요료대사의 사자후에 의해 멈췄던 뇌섬이 다시 주선풍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처럼 빠르게 나아가지 않았다. 손으로 잡아챌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뇌섬을 본 주선풍의 얼굴을 달랐다. 그는 경악한 눈으로 뇌섬을 바라보았다.
“ 무, 무극지도!”
주선풍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앞과 뒤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기운. 자연과 공명하는 경지인 무극지도였던 것이다. 무극지도를 앞에 두고 감히 태만할 수 없었다.
주선풍은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가 끌어올린 무공은 혼원일기공이었다. 혼원일기공은 한 번에 모든 내공을 전부 쏟아 붓는 동귀어진의 무공이다. 하지만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아홉 군데 요혈을 노리고 다가오는 암기를 막아내야만 했다.
“ 아미타불!”
요료대사가 항마후의 기운을 불호에 실어 날려 보내면서 연우강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간다는 금강부동신법이었다.
이동하면서 금강반야신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요료대사의 몸은 불상처럼 금광에 휩싸였다.
픽!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흑풍마라천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거력을 머금고 주선풍을 압박해 가던 암기들이 일제히 되돌아와 본래의 자리로 찾아 들어갔다.
‘ 으음!’
주선풍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는 경황이 없어 아무 생각도 못했지만 연우강이 암기를 거둬들이자 비로소 조금 전의 상황이 정리가 됐다.
여덟 개로 분리된 철립과 벽력의 기운을 지니고 있던 암기, 그 아홉 개의 암기는 전부 무극지도의 기운을 머금은 채 다가왔다.
과연 그런 무공이 존재할 수 있는지.
아무리 머릿속을 더듬어 보아도 복수의 무기에 무극지도를 심는 무공은 없다. 다만 그게 가능하다면 복수의 무기에 이기어검수릉ㄹ 싣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론상 불가능한 무공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체질은 있다.
“ 마라천력인이더냐?”
“ 그렇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반갑구나.”
“ 반갑다는 건 무슨 말이오?”
“ 너 정돈 아니었지만 내 마누라도 마라천력인이었다.”
“ 그랬구려. 아무튼 방금 그건 경고요.”
“ 경고?”
“ 내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라을 올리면 죽인다는 뜻이오.”
“ 네가 무슨 밥상을 차려놓았단 말이냐?”
“ 대야벌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나요. 영감. 담대만승의 머리도 내 거고, 대야벌은 물론이고 강호 무림도 전부 내거라는 말이오. 손끝 하나, 아니 쳐다보지도 마시오. 입맛만 다셔도 전부 없애 버릴 거요.”
“ 대야벌 벌주가 되고 싶은 게냐?”
“ 당신네 주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야벌 벌주가 될 수밖에 없게 됐소.”
“ 그건 무슨 소리냐?”
“ 지켜야 할 가족이 있어서 그렇다고 해둡시다. 그 양반은 저기 있는 거요?”
연우강은 묘곡 서쪽 절벽 위에 세워진 천막을 가리켰다. 천막 앞에는 모닥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연우강은 천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금릉 연씨 세가엔 업둥이로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맞느냐?”
“ 그들은 내 가족이오.”
“ 네 친부가 누군지 아느냐?”
“ 모르오.”
“ 네 친부도 마라천력인이었느냐?”
“ 마라천력은 유전된다고 알고 있소.”
“ 네 할아버지는......”
“ 뭐가 궁금한 거요?”
연우강은 걸음을 멈추고 주선풍을 돌아보았다.
“ 아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은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다.”
“ 어렸을 때는 매년 수십 명씩 친부라며 찾아온 자들이 있었소.”
“ 무슨 소리냐?”
“ 금릉 연씨 세가는 중원 최대 부호 아니오. 업둥이라고 하지만 그런 집안의 큰아들로 들어갔으니까.....”
“ 한몫 잡으려는 자들이 네 친부를 사칭했다는 말이구나.”
“ 그자들이 가장 많이 한 소리가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었소.”
“ 나도 그렇단 말이냐?”
“ 아니면 말고.”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잠시 후 그는 천막 근처에 당도했다.
천막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부터 백여 명의 무인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아무랗게나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은연중에 천막을 호위하는 진세를 구축한 채였다.
연우강이 주선풍과 요료대사와 함께 다가가자 그들은 흘끔 쳐다보고는 진세를 풀고 길을 터주었다.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천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막 문 앞에는 천해장군 철리목을 비롯한 사장군이 서 있었다.
“ 상자는 내려놓고 무기도 풀고 들어가라.”
천해장군 철리목이 연우강의 손목에 차고 있는 사망묵환을 보며 말했다. 전에 한 번 당한 적이 있는 무기는 차고 들어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 미친놈!”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천막에서 멀어졌다.
“ 멈춰라!”
철리목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천막 주변에서 진세를 구축하고 있는 구룡천문 무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연우강을 막아섰다.
“ 명줄대로 살고 싶으면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마!”
연우강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구룡천군 무인들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 영감, 저놈들 말리는 게 좋아.”
연우강은 주선풍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 왕야 앞으로 갈 때는, 왕야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무기를 소지할 수 없다는 건 대명률에 나와 있는 조항이다.”
“ 그 왕야는 날 죽이려고 해. 난 무기를 가지고 날 지킬 수밖에 없어. 셋을 셀 거야. 그 안에 저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으면 전부 죽일 거야.”
연우강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젠장.....’
주선풍은 천막 안을 보았다.
지금과 같은 경우엔 주진무가 나서서 처리해 줘야만 한다. 그런데 천막 안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다.
‘ 설마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건가?’
주선풍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주진무가 나서지 않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우강은 금릉 연씨 세가의 장자다.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금릉 연씨 세가의 장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 명분을 얻기 위해 철리목이 시비를 거는 걸 그대로 둔 것이었다.
[ 물너나라.]
주선풍은 구룡천군 무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구룡천군 무인들은 주선풍의 말을 듣지 않았다.
“ 건방진 놈! 총퇴식을 하고 물러났다고 하지만 우린 구파일방의 전대 고수들이다. 너 같은 놈에게까지 무시당할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구룡천군 무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내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놈들은 전부 없애 버리겠다고 전에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전하.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치르르!
연우강의 손에서 사망묵환이 풀려 나왔다. 창처럼 쭉 뻗은 사망묵환은 곧 가공할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철컥! 철컥! 철컥!
사망묵환에 이어 사망낭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콰앙!
그의 오른발이 거칠게 바닥을 찍어대고, 일천오백 년 동안 대야벌의 전설로 자리했던 일천독행신이 펼쳐졌다. 오른발을 내디딜 때 왼손의 사망낭조가 허공을 찢어발기고, 왼발이 나아갈 때 오른손의 사망묵환이 무수한 궤적을 허공에 남겼다. 그것은 일천파류혼이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연우강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처절한 비명과 피와 살점이 남았다.
“ 멈춰라, 연우강!”
연우강을 지켜보던 주선푸이 버럭 소리쳤다.
“ 난 당신 부하가 아냐. 주선풍. 명령은 당신 부하에게나 내려!”
연우강은 조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일천파류혼은 어느새 일천파세혼으로 변했고, 더 많은 무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 쳐라!”
“ 죽여라!”
“ 놈을 죽여라!”
싸움이 벌어지자 망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금의위 위사들과 구룡천군 무인들이 몸을 날려왔다.
그런 그들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연우강이 구룡천군 무인들을 끌어가는 바람에 어렵잖게 무덤을 나올 수 있었던 혁련무극 일행이었다.
“ 어찌 감당하려고 저러는 건지.”
혁련무극은 걱정스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이 상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한 남경왕 주진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의 부하들을 도륙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는 빈말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대답은 허공에 숨어 있는 이지약으로부터 나왔다.
“ 무슨 말이신가?”
혁련무극은 이지약이 있는 허공을 보며 물었다.
“ 조금 전에 주선풍에게 그랬잖아요. 밥숟갈 올리면 죽이겠다고.”
“ 그럼?”
“ 방금 전에 내린 경고를 ㅤㅅㅣㄿ천에 옮기고 있는 거예요.”
“ 그러니까 남경왕에게 했던 약속과 조금 전 용왕개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단 말인가?”
“ 그런 셈이에요,”
“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지녔다는 남경왕 주진무네. 이 소저.”
“ 그가 최고 권력자들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저렇게 싸우는 거예요.”
“ 난 이 소저 말을 이해할 수가.......”
“ 최고의 권력을 지닌 자에게 선전포고를 할 때는 강한 충격을 받을 정도로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어요. 아니 오히려 반격을 당하게 되죠.”
“ 크악!”
“ 아악!”
“ 으아악!”
“ 크악!”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 저건 무슨 무공인가?”
혁련무극은 방금 연우강에게 죽어간 자들을 보았다.
연우강 주변은 온통 시체로 가득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백 명 이상이다.
이지약의 말처럼 정말로 선전포고를 하는 거라면 최고의 효과를 낸 것 같았다.
“ 우주일만검결이에요!”
“ 밀천의 최강 무공이란 말인가?”
“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조금 전에 펼쳤던 무공은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이에요. 그 무공들은 그를 따랐던 잠룡들도 익히고 있고요.”
“ 빌어먹을 자식!”
혁련무극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 호호호!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자는 정말 나쁜 놈이라고요.”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연우강!”
그리고 천막 안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외침의 주인공은 남경왕 주진무였다.
주진무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연우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연우강은 주진무의 외침을 듣지 못한 것처럼 구룡천군을 향해 무차별한 살수를 펼쳤다. 또다시 수십 명의 구룡천군이 죽임을 당했다.
“ 죽일 놈!”
주진무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철리목이 시비를 걸때 일부러 그대로 두었다. 아니 오히려 놈이 싸움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럼 싸움을 핑계삼아 놈을 없애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은 원하는 대로 됐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왔다. 순식간에 구룡천군 무인 백여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 멈춰라! 연우강!”
주진무는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 으악!”
“ 아아악!”
“ 아악!”
연우강은 구룡천군을 죽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으드득!
주진무의 입에서는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멈추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계속한다는 건, 싸움을 끝내고 싶으면 구룡천군을 물리라는 뜻이었다. 즉 ‘나는 네 부하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 싸움을 계속 끌고 갈 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멈출 건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룡천군들은 망설임없이 연우강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연우가의 상대가 아니었다. 일 장 근처까지 접근하면 어김없이 뱀처럼 꿈틀거리는 연검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
“ 구, 구룡천군은 물러나라!”
결국 주진무는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룡천군 무인들은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진세를 풀지 않았다. 그들은 연우강을 포위한 채로 십여 장가량을 물러나 명령을 기다렸다.
연우강은 사망묵환을 말아 넣으며 천천히 주변을 쓸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난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 어떡하지?”
연우강의 입매가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