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91화 (191/232)

제 5장 민심은 누구도 모른다.

" 어떻게 됐느냐?"

이대진은 절강성 지부장 권혁민을 보며 물었다.

" 절강성 전역에 전시 동원령 상황이 내려지고 모든 권한은 승선포정사사에서 도지휘사사에게로 넘어갔습니다."

" 도지휘사사 오셨습니다. 진무사."

바로 그때 밖에서 부지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모셔라!"

권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잠시 후, 갑옷을 걸친 무장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절강성의 군권을 통할하는 도지휘사 유찰관이었다.

" 진무사 뵈오이다."

안으로 들어온 유철관은 포권을 취했다.

품계로 보면 유찰관의 신분이 더 높다. 하지만 이대진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금의위 진무사. 품계가 높다고 해서 목에 힘을 줄 입장은 아니었다.

" 반갑소. 유 장군. 난 남진무사 이대진이오. 앉으시오."

이대진은 건너편 자리를 가리켰다.

유철관이 자리에 앉자,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시비가 차를 가져와 세 사람 앞에 놓았다. 차를 따르고 찻주전자를 한편에 놓은 시비는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소이다. 진무사."

유찰관은 찻잔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동원령을 내리는 권한은 도지휘사사 권한이고 갑, 을, 병의 세 단계가 있다.

갑 상황은 전시체재를 말하고, 을 상황은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에 발동하며, 병 상황은 적과는 무관하게, 천재지변이나 도적의 창궐 또는 왜구가 침범하여 치안 유지가 불가능할 때 발동되곤 한다.

일 단계와 이 단계는 황제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이며 병은 도지휘사사 단독으로 내린다. 그런데 그 병 상황을 남진무사 이대진이 발동해 버린 것이다.

" 우리 금의위는 지금 서호에서 왜구와 전쟁 중이오, 유 장군."

" 왜구가 침입해 들어왔단 말이오?'

유관찰은 깜짝 놀랐다.

왜구가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그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그는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이대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구가 상륙한 지역에서 경계를 서는 자들에게 치도곤을 내려야 한다.

금의위 위사 이백 명이 죽었소. 그래서 부득이하게 간밤에 병 상황을 발동했소."

" 으음!"

유찰관은 신음을 내뱉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이백 명이나 죽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 제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십니까?"

유찰관은 곧바로 공대를 했다.

절강성에서 금의위 위사 이백 명이 왜구들에게 죽었다면, 절강성의 군권을 통할하는 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모든 권한을 이대진에게 일임하고 명령을 따르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걸 유찰관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곧바로 부하를 자처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절강성 해군 오 할을 형주만과 전단강에 배치하고, 신분 증명서를 지참하지 않은 자는 전부 잡아들이도록 하시오.”

“ 만일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 목을 쳐도 좋소.”

“ 명령서가 필요합니다. 진무사.”

공연히 도지휘사사까지 오른 게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중요한 사항은 구두가 아닌 문서로 된 명령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이미 준비해 두었소.”

이대진은 탁자 오른편에 둘둘 말려 있는 걸 들어 유찰관에게 내밀었다.

유찰관은 종이를 펼쳤다.

그곳에는 금의위 영반을 대신하여 진무사 이대진이 병 상황을 발동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 알겠습니다. 진무사.”

명령서를 갈무리한 유찰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그럼 수고해 주시오, 장군.”

“ 수고하십시오.”

유찰관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우리도 가자.”

유찰관이 나가자 이대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지금 놈들은 어디에 있느냐?”

정원으로 나온 이대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 조금 전 봉황산으로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많이 지쳤겠지?”

“ 그렇습니다. 진무사. 아마 움직일 힘도 없을 겁니다.”

“ 그들 말고 위사들을 말하는 거야, 지부장.”

“ 그, 그건.....”

“ 시간은 많으니까 급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속도 조절을 하라고 해.”

“ 아, 알겠습니다. 진무사.”

대답을 하긴 했지만 권혁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금의위 위사 이백여 명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 오백여 명이 남았고, 이젠 해군까지 동원한 상황이다. 조금만 더 몰아치면 그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속도를 늦추라니. 납득하기 힘든 명령이었다.

“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기가 쉽다. 그리고 출세의 가장 큰 적은 방심이라는 걸 명심해라.”

이대진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그렇군요.”

권혁민은 멍한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지금껏 권혁민은 금의위에서 남철진이 가장 뛰어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늘 보니 이대진 또한 남철진 못지 않은 자였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왔던 이대진이 더 뛰어난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명심하겠습니다. 진무사.’

권혁민은 내심 중얼거렸다.

기현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평소 사람들이 찾지 않는 산이라 나무는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만일 전에 올라왔을 때 표시를 해두지 않았더라면 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 저기네.”

커다란 바위를 발견한 기현의 얼굴에 싱긋 미소가 물렸다. 그는 그 바위 앞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커다란 바위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송림이 나오고, 그 송림을 지나면 석림 계곡이 나온다.

연금석 가족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혹시 따르는 자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기현은 바위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식경 정도를 걸어 송림을 통과하고 나자 돌이 기둥처럼 우뚝우뚝 솟아 있는 계곡이 나타났다. 눅눅한 습기로 들어차 있는 계곡은 상당히 깊었다.

좌우를 살피며 이십여 장을 전진했을까, 왼편에서 차가운 기운이 쏘아져 왔다.

기현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 하오밀문 절강 지부장 기현입니다.”

기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이자승이었다. 그는 기현 뒤편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 혼잔가?”

“ 그렇습니다.”

“ 전 대장.”

이자승은 전장사를 불렀다.

“ 알겠습니다.”

전장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의 지시를 받은 인사대 대원들은 계곡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그들이 돌아온 건 일각 후였다.

“ 아무도 없답니다. 어르신.”

“ 전부 확인한 건가?”

“ 그렇습니다.”

전장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자승은 기현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이쪽으로 오게.”

기현은 왼편으로 걸어갔다. 이자승 일행은 오 장 높이에 있는 동굴 안에서 쉬고 있었다.

기현이 동굴 아래쪽에 당도하자 이자승은 허공섭물로 끌어올렸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내려서자마자 기현은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 반갑네. 앉게.”

이자승은 자리를 권했다.

기현은 이자승 건너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 항주는 어떤가?”

기현이 앉자마자 이자승은 물었다.

“ 항주 전역에 병 상황의 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 병 상황의 동원령이라니 무슨 소린가?”

“ 항주에 왜구가 상륙했다는 이유를 들어 남진무사 이대진이 동원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 우리를 왜구와 결탁한 자들로 만들 셈이군.”

이자승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동안 쫓아오는 자들이 금의위란 사실 때문에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왜구로 가장한 자들이 나타나며 한결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왜구를 없애는 것처럼 하면서 금의위까지 함께 없앨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금의위에서 실수한 걸로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금의위에서는 그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

금의위에는 연금석 일가를 왜구와 결탁한 자로 몰아가기 위해 왜구 복장을 한 자들을 동원한 것이다. 더구나 연금석 가족을 돕고 있는 자들은 은밀막부 무인들이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자들이 금의위인데, 하물며 왜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면,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왜구와 결탁했다는 누명을 벗겨줄 곳은 한 곳밖에 없다. 바로 동창이다.

“ 동창 지부장은 만났는가?”

이자승은 물었다.

“ 만났습니다. 어르신.”

“ 뭐라고 하던가?”

“ 연 가주 가족만 탈출시켜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가?”

“ 내일 후조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기현은 말끝을 흐렸다.

“ 걸리는 거라도 있는가?”

“ 걸린다기보다는 그가 이번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자세히 말해 보게.”

“ 그러니까 그게......”

기현은 채성만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과정을 한 가지도 빼지 않고 상세하게 말했다. 심지어 채성만의 표정까지도 흉내를 냈다.

“ 채 지부장이 몇 살이고 했는가?”

“ 예순다섯 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럼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먼.”

“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예순 다섯 살이면 출세를 생각할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 사건 사고 없이 조용히 살다가 은퇴하기를 바라는 나이라는 건가?”

듣고 있떤 욱일승이 물었다.

“ 그렇지. 아무튼 동창 지부장이 배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움직이도록 하세.”

이자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일 새벽까지 후조문으로 가도록 하겠네.”

“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르신.”

“ 그렇게 하게.”

이자승은 허공섭물을 펼쳐 기현을 내려주었다.

바닥으로 내려선 기현은 어둠을 뚫고 총총 걸음을 옮겼다.

이자승 일행이 동굴을 떠난 건 그로부터 한 시진 후였다. 운기행공으로 몸을 추스른 일행은 은밀하게 길을 나섰다.

“ 조용하군.”

동굴을 떠난 지 반 시진 후, 욱일승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시진 후 그는 또다시 조용하다는 말을 했다.

“ 그러게 말이네.”

이자승은 욱일승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일행이 전단강의 후조문에 도착한 건 새벽녘이었다. 전당강에는 크고 작은 전함 수십 척이 떠 있었다. 각 전함은 횃불을 환하게 밝혀 수면까지도 감시를 하고 있었다. 전함을 십여 장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데 사각지대가 전혀 없는 그런 진형이었다.

강이 저 정도면 육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걸음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로 삼엄했다.

일행은 조용히 후조문의 갈대 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 시진 쯤 기다렸을 때, 선착장으로 가는 길 위에 커다란 마차가 나타났다. 그 마차 지붕에는 동창 지부장을 나타내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와 갈대 숲으로 달려왔다.

“ 접니다.”

그는 하오밀문 지부장 기현이었다.

“ 지부장은 어디 있는가?”

“ 마차에 타고 있습니다.”

“ 이리 나오게.”

이자승은 뒤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연금석을 비롯한 그의 가족 여섯 명이 앞으로 나왔다.

“ 여섯 분만 가시는 겁니까?”

기현은 연금석 일행을 살피며 물었다.

금릉 연씨 세가 가주라면 호위하는 자가 있어야 하기에 묻는 말이었다.

“ 빈자리가 있는가?”

“ 없소. 그들만 보내주시오.”

이자승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마차 안에서 흘러나왔다.

“ 없다는군.”

이자승은 기현을 보았다.

“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기현은 앞서 걸었다.

그 뒤를 이자승과 연금석 가족이 따랐다. 곧 마차를 앞에 둔 일행은 열린 문을 통해 재빨리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에는 채성만이 앉아 있었다.

“ 난 구림세가 이자승이네.”

안으로 들어간 이자승은 채성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 동창의 절강성 지부장 채성만이외다.”

채성만은 이자승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개국공신 가문의 전대 가주라고 하지만 지금은 권력에서 물러난 사람이 이자승이다. 어른 대우를 해줄 수는 있지만 상관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 여기 있는 운상은 내 친한 친구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금릉 연씨 세가 가주네. 만일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네 목을 칠 테니까 그렇게 알게.”

“ 지금 협박하는 거요?”

채성만은 기분 나쁜 얼굴로 이자승을 쏘아보았다.

“ 맞네. 지부장. 난 지금 자넬 협박하는 거라네. 아무쪼록 정중하게 모셔 주길 바라네.”

이자승은 채성만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마차에서 내렸다.

“ 가자!”

이자승이 내리자마자 채성만은 마부에게 소리를 질렀다.

“ 이럇!”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선착장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 누구냐?”

선착장 입구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이자승은 긴장한 얼굴로 선착장을 보았다. 곧이어 마부석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동창 지부장 채성만 님의 마차다!”

“ 마차를 확인해봐야겠소!”

스악!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금의위 위사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머리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 건방진 놈! 금의위 나부랭이가 감히 누구 마차를 확인한단 말이냐?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이 마차는 동창 절강성 지부장 채성만 님의 마차다. 또 확인하고 싶은 놈 있느냐? 확인하고 싶은 놈은 당장 앞으로 나와라!”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다리던 마차는 천천히 선착장 끝으로 나아갔다. 마차가 다가가자 돛대 끝에 동창 깃발이 걸려 있는 전함 한 척이 선착장을 향해 다가왔다.

쿠웅!

선착장에 도착한 전함의 측면이 열리더니 선착장과 전함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 마차는 그 다리를 지나 배로 들어갔다.

그르릉!

마차가 오르자 배의 열렸던 부분이 닫히고 후진하여 강 중앙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방향을 틀어 하류로 향했다.

전함을 지켜보던 이자승 일행은 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몸을 돌렸다.

“ 이제 좀 자겠구나.”

욱일승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 그러게 말이다.”

일행은 웃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봉황산 석림 계곡으로 들어갔다.

한편.

마차에 탄 채 동창 전함에 오른 연금석 일행은 선실로 자리를 옮겼다. 일행을 안내해준 사람은 채성만이었다.

“ 이거 너무 험하군요.”

선실을 훑어본 연금석은 얼굴을 지푸렸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선실이 너무 지저분했다. 이건 선실이 아니라 창고 수준이었다.

“ 미안하게 됐네. 지금 이곳 항주에는 병 상황의 동원령이 발동된 상태네. 최고 명령권자는 금의위 남진무사 이대진이고, 혹시 아는가?”

“ 북진무사에게 밀려 빛을 잃기는 했지만 상당히 뛰어난 자로 알고 있소.”

“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가 내 배를 수색하자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네. 그리고 자네들이 이 배에 탔다는 사실은 선원들에게조차 비밀로 했네. 불편하겠지만 참아주게.”

“ 알았소이다. 지부장.”

연금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 먹을 건 저쪽에 준비해 두었네. 밖에서 문을 잠글 테니까 가급적이면 소리를 지르지 말게.”

채성만은 선실을 나가며 말했다.

채성만이 나가자 일행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연금석이 연운상을 보며 물었다.

“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두고 보면 알겠지. 일단 한숨 자자꾸나.”

연운상은 눈을 감았다.

그들은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채성만이 탄 동창 전함은 전단강을 빠져나가 항주만으로 들어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제지를 받지 않았다. 항주만을 떠난 배는 유유히 주사군도로 항해하여 사도에 도착했다.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이 모두 모래로 둘러싸인 사도에는 채성만의 별장이 있었다.

“ 지부장님, 사도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정박하자 부지부장 양상휘가 선실로 들어와 보고했다.

“ 전부 내리라고 해라.”

“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내립니까?”

“ 누가 감히 동창 비주방이 탄 배를 넘보겠느냐. 걱정 말고 쉬도록 해라. 그리고 별장 보수 공사를 할 참이다.”

“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고개를 숙인 양상휘는 선원들에게 내리라는 지시를 했다.

별장 보수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특히 목수 일을 겸하고 있는 노잡이들은 필수 인원이었다. 그리고 금의위가 작전을 펼치고 있는 항주로 돌아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다. 나중에 적당히 보고서를 써 올리면 될 터였다.

양상휘는 부하들을 데리고 배에서 내렸다. 부하들이 전부 내리고 맨 마지막으로 채성만이 내릴 준비를 했다.

[ 접니다. 아버지.]

배와 선착장에 남겨진 목교를 건너는데 아들인 이대진의 전음이 들려왔다.

[ 중갑판 창고에 가둬 두었다. 군자산을 푼 음식을 잔뜩 먹었으니까 반항하진 않을 게다.]

[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이젠 어디로 가실 참입니까?]

[ 먼 곳에서 네가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마.]

[ 안녕히 가십시오, 아버지.]

[ 늘 사방을 살펴야 한다.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 너의 등을 향해 날카로운 검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거라.]

채성만은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와 전함을 할퀴고 지나갔다. 얼추 한 시진가량 흘렀을까.

일단의 무리가 선착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동창 전함에 올랐다. 그러고는 중앙 돛대 위에 휘날리고 있는 동창 깃발을 떼어내더니 다른 깃발을 달았다.

사내가 단 깃발은 다름 아닌 금의위 깃발이었다.

“ 출발하라!”

뒤로 물러난 전함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가 출발하고 망망대해가 나오자 이대진은 중갑판으로 내려갔다.

“ 이 안에 금의위 영반으로 가는 길이 있단 말이지?”

이대진은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문고리를 풀고 문을 열었다.

“ 응?”

이대진은 의이한 얼굴로 안쪽을 보았다.

저들을 창고에 집어넣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 정도 시간이면 보통 사람은 초조해하기 마련이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안쪽에 있는 여섯 명은 전부가 잠을 자고 있었다.

“ 웃기는 것들이군. 험!”

이대진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그만 일어나거라.”

이번엔 약간 내공을 실어 소리를 질렀다.

“ 끄응! 어떤 빌어먹을 놈이 어르신 잠을...... 엥?”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던 연금석은 깜짝 놀란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 넌 누구냐?”

연금석은 이대진의 얼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연금석의 외침에 자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눈을 뜨고 일어났다.

“ 대 금릉 연씨 세가의 가주가 나 같은 말단을 알 리가 없겠지. 난 금의위 남진무사 이대진이다.”

“ 그, 금의위라고?”

연금석은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경악한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 그동안 잘도 숨어 다녔는데 결국엔 내 손에 잡혔구나. 연금석.”

이대진은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 채성만 이 죽일 놈이......”

연금석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찰싹!

연금석의 뺨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커억!”

연금석은 피를 토하며 한편 구석으로 처박혔다.

이대진이 허공을 격하고 연금석의 뺨을 후려갈겨 버린 것이었다.

“ 아버지!”

연우진이 쓰러진 연금석을 부축했다.

“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연금석. 최소한 그들은 왜구와 결탁해 반란을 도모한 너희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 우리가 왜구와 결탁했다는 거요?”

연우진이 이대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대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우진 앞으로 갔다. 연우진과 마주한 그는 발을 들어 연우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 우리 금의위는 수십 구의 왜구 시체를 증거물로 가지고 있다. 이번엔 금릉 연씨 세가의 재력으로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 우리 재력으로는 안 되겠지만 동창 제독의 권력이면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그리고 이 냄새나는 발은 치워주는 게 어떻겠소?”

연우진은 이대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이대진의 발이 연우진의 얼굴에 작렬했다.

퍼억! 퍼억!

“ 크윽!”

연우진의 동체가 거칠게 바닥에 처박혔다. 이대진을 노려보는 연우진의 입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 이번엔 동창 제독이 와도 안 돼. 연우지. 왜냐면 동창 제독이나 유설연은 너희들이 어디에 있는 지 찾지 못할 테니까.”

이대진은 속삭이듯 말하며 몸을 돌렸다.

“ 남진무사 이대진이라고 했소?”

연우진은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 그렇다. 연우진. 난 남지무사 이대진이다.”

“ 머릿속에 새겨두겠소. 진무사. 다음엔 이 손으로 당신의 입을 찢어 버릴지도 모르오.”

연우진은 손을 들어 올렸다.

“ 건방진 놈!”

이대진은 연우진을 향해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강한 장력이 쏘아져나가 연우진의 가슴에 작렬했다.

퍼억!

“ 커억!”

연우진은 가슴을 감싸쥐고 피를 토해냈다.

“ 하하하! 마음대로 하거라. 연우진. 하지만 빨리 해야 할 게다. 연우강 그놈을 잡아넣으면 그땐 정말 시간이 없을 테니까.”

이대진은 비릿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 아이고 아파라!”

이대진이 선실을 나가자 연우진은 가슴을 감싸쥐고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 그러게 왜 그자를 자극해요. 이왕 잡힌 거 가만있으면 좋잖아요.”

소여진이 쫑알거리면서 연우진 곁으로 걸어갔다.

“ 어떤 놈인지 성격을 알아봐야지요.”

“ 어때요?”

“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야. 저런 녀석 앞에서는 그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얌전하게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 이렇게 된다는 말이에요?”

옆에 있던 연화가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먹고 자는 것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건 누구에게 배운 거냐?”

“ 뭘요?”

“ 목을 긋는 행동 말이다.”

“ 어렸을 때는 가르쳐 줘서 배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배우는 거잖아요.”

연화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 아무튼 애들 앞에선 찬물도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구나. 피곤할 텐데 자거라.”

연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눈을 감았다.

“ 제 생각도 그래요. 누가 감히 금릉 연씨 세가 가족을 건들겠어요. 지금은 마음 편하게 잠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팔이나 주세요.”

소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진의 팔을 펴서는 베개로 삼았다.

“ 건방진 놈들!”

밖에서 선실 안쪽 동정을 살피던 이대진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물렸다.

동창이나 금의위에서는 사용하고 버릴 자들을, 미끼와 떡밥 두 가지로 구분한다.

떡밥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 뿌려지는 걸 말하고 미끼는 말 그대로 목표물을 낚기 위해 쓰인다.

떡밥과 미끼는 비슷한 것 같지만, 떡밥이 된 자들은 살아날 가능성이 있고 미끼는 반드시 죽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저들은 미끼다.

살려주었따가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 자들은 처음부터 제거할 생각을 하고 일을 추진하는데 저들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연우강을 잡아들이는 목적을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전부 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금릉 연씨 세가의 식솔이니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 한마디로 주제 파악을 못하는 자들의 전형이었다.

‘ 너희들은 미끼라는 걸 알아야 한다. 목적 달성이 끝나면 제거되는 미끼 말이다.’

이대진은 상 갑판으로 올라갔다.

짠 냄새가 가득한 바닷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는 빙긋 웃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 하하하!”

이대진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승자가 돼 우뚝 선 자의 웃음소리였다.

이대진이 연금석 가족을 잡았다는 소식은 급전으로 남경왕 주진무에게로 전해졌다. 개봉 총단에서 구룡천문 개파대전에 여념이 없던 주진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드디어 놈의 약점을 잡았소이다. 여러분.”

주진무는 앞에 있는 다섯 사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 앞에는 금의위 영반 공오인, 소림사의 고저 요료대사, 무당파의 고조 창천진인, 화산파의 고조 자허검신, 개방의 고조 용왕개가 앉아 있었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남진무사 이대진이 연금석 가족을 생포했다고 하오.”

하지만 공오인을 제외한 다섯 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용왕개 주선풍은 떨떠름한 얼굴로 주진무를 보았다.

“ 표정이 왜들 그러시오?”

요료대사 일행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주진무는 기분 나쁜 얼굴로 물었다.

“ 너무 연우강에게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해서 그렇습니다. 군주.”

“ 내가 사적인 일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오?”

“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용왕개였다. 주진무에게 가장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그였기에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대답을 한 것이었다.

“ 연우강 그놈에게 몇 명의 구룡천군이 죽임을 당했는지 잊은 게요?”

“ 그들은 무공이 부족해서 패했습니다.”

“ 그래서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거요?”

“ 복수도 정당한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의 가족을 볼모로 잡아, 연우강을 없앤다면 그건 복수라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강호 무인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합니다. 옳은 방법이 아닌 줄 압니다.”

“ 내가 연우강의 가족을 잡아들인 건 강호일 때문이 아니오, 용왕개. 물론 사적인 감정이 아주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것보다는 놈이 했던 발언 때문이오. 놈은 공공연하게 황족을 없애겠다고 했소. 난 그 말을 참을 수가 없소이다. 만일 구룡천문의 개파대전만 아니었다면 군을 동원해서라도 놈을 없애버렸을 거요.”

“ 그렇다면 황제 폐하의 재가를 얻어 녀석의 구족을 멸하십시오. 군주. 반역죄로 디스리란 말입니다. 그럴 게 아니라면 가족은 개입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듯한 이런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물론 그렇게 할 거요. 하지만 놈은 동창의 최고위층과 줄이 닿아 있소이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당한단 말이오. 그래서 동창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연금석 가족을 볼모로 잡은 거요. 그리고 무림에 대한 정리가 끝나면 반역죄를 들어 금릉 연씨 세가를 쓸어 버릴 참이오. 동창 놈들과 함께 없애 버린단 말이오!”

“ 좋습니다. 군주. 군주를 믿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가정도 돌보지 않고 구룡천군을 만든 이유는 황실의 안녕을 위해서였소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만든 단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동분서주하면서 뛰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만 기분 풀도록 하십시오.”

주진무는 굽힐 때와 버틸 때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고집을 부리며 버틸 때가 아니라 달래야 할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공대를 하며 용왕개를 황실의 어른으로 대우했다.

“ 알겠습니다. 군주.”

용왕개 또한 한 발 물러났다.

다른 이들 앞에서 황실 종친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 구룡천문 창설은 어느 정도까지 와 있습니까?”

주진무는 화제를 돌렸다.

주진무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화산파의 고조 자하검신 노담승이었다.

“ 구파일방은 전부 참여하기로 했고, 각 지역의 문파들도 상당수가 참여 의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소 문파들의 수만 해도 벌써 오십여 곳에 달하고 있습니다. 밀천의 개파대전과 다른 점이라면 우린 개인보다는 중소 문파의 가입이 많다는 겁니다.”

“ 그 정돕니까?”

주진무는 놀란 듯한 얼굴로 물었다.

“ 사실 드러내놓고 활동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강호 무림에서 가장 잠재력이 높은 곳은 구파일방입니다. 정도를 표방하고 있고, 무림 문파라는 느낌보다는 종교 시설이란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에 양민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가 있습니다. 당연히 많은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엄청나구려.”

주진무는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물론 지금 상황이 밀천과 대야벌의 전쟁으로 인한 반사 이익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벌써 오십 개 문파가 가입을 타진해 왔다는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 솔직히 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나뿐만 아닐 겁니다. 저들도 당혹스러울 겝니다.”

노담승은 일행을 가리켰다.

노담승의 말대로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구룡천군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현 장문인들조차도 구룡천문의 개파가 이렇듯 열렬하게 환영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만 창피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구파일방의 문도들의 수가 워낙 많아 무인들의 가입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강호 무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직 상당히 남았는데 구룡천문으로 들어오겠다고 한 무인의 수가 삼천 명이 넘는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민심은 이미 우리를 원하고 있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당파의 창천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담승의 말을 받았다.

“ 내 생각도 그렇소이다. 그래서 늘 세상을 살피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모양이외다. 아무튼 마지막 기회라는 걸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오.”

“ 알겠습니다. 군주.”

용왕개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 그만 나가보도록 하시오.”

“ 쉬십시오. 군주.”

“ 쉬십시오.”

용왕개 일행은 포권을 취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실내에는 금의위 영반 공오인과 주진무 두 사람만 남았다.

“ 연금석 가족은 어디에 숨겨 두었는가?”

“ 역천마옥으로 집어넣었습니다.”

“ 역마옥이라면, 혹시 홍무제 명령으로 만든 그 감옥을 말하는 건가?”

“ 그렇습니다.”

공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감옥이 정말로 있단 말인가?”

주진무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역천마옥.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하늘이 뒤집어지기 전에는 결코 나오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이 뒤집어진다는 것은 곧 황조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고, 명나라가 없어지기 전에는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천마옥을 만든 사람은 태조 홍무제였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개국 공신들과 군왕들이 발호할 걸 겁내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게 되는데, 그때 살아남은 자들을 가두었던 곳이 바로 역천마옥이었다.

하지만 역천마옥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존재 여부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연금석 일행을 그곳으로 집어넣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역천마옥은 만들기만 했을 뿐 수감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 수감할 자도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 버렸단 말이군.”

“ 그렇습니다.”

공오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외부에서 침입해서 그들을 구할 가능성은 없는가?”

“ 그랬더라면 역천마옥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겠지요.”

“ 금의위는 빼낼 수는 있지만 안에서 나올 수 없다는 뜻이군.”

“ 그렇습니다.”

“ 괜찮군. 아무튼 이대진을 오라고 하게. 그런 큰공을 세웠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연우강도 부르게.”

“ 알겠습니다.”

공오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나. 연우강.”

주진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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