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그놈들
묵연도노 유자응은 만양평을 내려다보았다.
대야벌을 떠날 때만 해도 간단하게 끝날 걸로 생각했다. 저곳에 모인 자들은 밀천의 최정예가 아니라 개파대전을 통해 모은 자들이다.
개파대전을 통해 훌륭한 고수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들어온 자들의 대부분은 이류나 삼류 무인들이다.
총단이 두 곳으로 분류돼 있는 밀천 입장에서는 고수들은 동정호로 보내고 이곳에는 이류나 삼류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류와 삼류는 무인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전투를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보름이 지났는데, 묵야련 무인들은 여전히 만양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끄응! 젠장 구파일방의 발호가 시작됐다는데 여기서 뭐하는 건지?”
유자웅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남에서 들려온 구룡천문 개파 소식에 마음이 급해졌다. 비록 대야벌이 정리가 됐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도 수많은 변후가 존재하고, 맹주와 부맹주의 직책도 언제 어떻게 변할 지 아무도 모른다.
“ 빨리 끝내고 가야 하는데.”
그는 몸을 돌려 처소로 향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격변의 시기에는 대야벌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에 대처할 수 있을 터인데,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유자웅이 처소로 사용하는 천막 안에는 네 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무적철검대 대주 철검패와 소무생, 철혈전마대 대주 대력패천 홍남, 마극파천대 대주 마영군 수자양, 무형혈인대 대주 무은객 종도였다.
“ 끄응!”
그들을 바라보던 유자웅은 얼굴을 찌푸렸다.
철검패왕 소무생. 철검 한 자루만 있으면 천하에 두려울 게 없다는 친구고 실제로 무공은 초특급이다. 그리고 대력패천 홍남 또한 다르지 않다. 그의 대력붕권은 천하에 적수가 없을 정도다. 마영군 수자양과 무은객 종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초절정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 대주들이 이끌고 있는 무인의 수는 칠백여 명이다.
적재적소에 병력을 배치하고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빠르게 대처를 해야 하는데, 저들에게는 그런 머리가 없다.
적진에 진식이 펼쳐져 있지 않다면 우직함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진식이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는 우직함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었다.
사실 지금 상황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남을 믿지 않는 유자웅은 잔머리를 굴리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들도 우직하고 단순한 자들 위주로 뽑았다. 그 결과가 바로 소무생 일행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부맹주님.”
소무생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누군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리는가.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까 기다리는 거지.”
“ 어차피 저 안에는 삼류만 잔뜩 있을 겁니다. 밀고 들어가면 삼십육개 줄행랑을 놓을 텐데 왜 이러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부맹주님.”
“ 저도 소 대주 의견과 같습니다. 부맹주님. 불화살을 쏘면서 쳐들어갑시다.”
대력패천 홍남이 맞장구를 쳤다.
“ 불화살은 먹히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유자웅은 홍남을 보며 말했다.
“ 전 처음 듣습니다. 부맹주님.”
“ 휴우!”
유자웅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화살이 먹히지 않는다고 보고를 한 사람이 바로 홍남이다. 비록 십여 일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새 그 사실을 잊어먹고 불화살을 쏘자고 하고 있다.
저 머리로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지 불가사의다.
“ 접니다. 부맹주님.”
바로 그때 천막 밖에서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냐?”
“ 적군의 첩자로 보이는 자를 생포했는데, 이자가 부맹님을 잘 안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 들어와라.”
곧이어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하가 데려온 자는 유생건을 두른 청년이었다.
아마도 다른 때 같았으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자웅이 청년을 보려고 했던 이유는 적의 첩자로 보인다는 말 때문이었다.
“ 날 안다고 했느냐?”
유자웅은 청년을 찬찬히 살폈다.
무공을 익힌 흔적도 없고, 특별히 기억할 만한 특징도 없다. 설사 만났다고 해도 기억하는 건 쉽지가 않은 밋밋한 얼굴이었다.
“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소생 제갈생입니다.”
“ 제갈생?”
유자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자웅이 제갈생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건, 머리 하나로 천하를 넘봤던 제갈공명을 가장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제갈공명과 같은 성씨를 쓰고 있는 제갈생이란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 천안신유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름을 떠올리자 별호도 생각났다.
아는 관리가 추천했던 자인데 무공은 형편없었지만 머리는 상당히 뛰어났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머리 좋은 자를 싫어했던 유자웅이 제갈생을 가까운 곳에 두고 쓸 리가 없었다. 천거해 준 사람의 얼굴오 있고 하여 처음엔 가까이 두다가 점차 한직으로 밀어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떠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 그렇습니다. 련주님. 일 년 가량 일하다가 떠났지요.”
“ 그런데 밀천엔 어쩐 일이냐?”
“ 개파대전을 할 때 밀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밀천에서도 제가 할 일이 별로 없더군요. 날이면 날마다 안개를 보는 것도 지겹고 같은 길로만 다녀야 하는 것도......”
“ 가만, 지금 안개라고 했느냐?”
유자웅은 제갈생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 진식 때문에 생성된 안개를 말합니다. 련주님.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 혹시 진식에 대해서 잘 아느냐?”
“ 잘은 모르지만 저곳에 펼쳐진 진식이 현기환사죽영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 혀, 현기환사죽영진이라고?”
유자웅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적진에 펼쳐진 진식의 이름을 처음 알아낸 것이었다.
“ 그렇습니다. 팔괘를 바탕으로 구궁과 음양, 그리고 오행을 바탕으로 구축된 진식입니다.”
유자웅은 벌떡 일어나 제갈생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크게 웃었다.
“ 하하하, 반갑다. 제갈생!”
“ 이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 무슨 소리냐. 넌 당분간 내 곁에서 날 도와줘야겠다.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하마.”
“ 전 과거시험을 보러가야 합니다. 련주님. 이번에 보지 못하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 그것까지 보상해 준다니까 그러네. 일단 이 정도면 어떤가?”
유자웅은 품속에서 전표를 꺼냈다.
유자웅은 애가 닳았다.
적진에 펼쳐진 진식에 대해 알고 있는 자를 만났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금액을 확인하지도 않고 제갈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 배, 백만 냥짜리 전표?”
제갈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식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치고는 대가가 너무 엄청난 탓이었다.
‘ 젠장!’
유자웅은 내심 욕설을 뱉었다. 십만 냥짜리 전표를 꺼낸다고 꺼낸게 백만 냥짜리가 잘못 나온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었다.
“ 난 그 정도로 자네를 필요로 하고 있네.”
물론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여러 가지다. 죽인다고 협박을 하는 수도 있고, 손톱을 뽑는다든가 사지를 절단하는 등의 고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문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가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제갈생이 독한 마음을 먹고 잘못 가르쳐주게 되면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아군으로 만드어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할 터였다.
“ 끄응! 이거 어쩔 수가 없군요. 다음에 과거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엔 련주님을 도와드려야겠네요.”
제갈생은 싱긋 웃으며 전표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 그쪽으로 앉게.”
제갈생이 주변을 둘러보자 유자웅이 빈자리를 가리켰다.
“ 감사합니다. 련주님.”
제갈생이 앉자 홍남이 찻잔을 가져와 제갈생 앞에 놓았다.
“ 고맙습니다. 홍 대주님.”
“ 날 아는가?”
“ 묵야련 근무 경력이 일 년입니다. 대주님. 모를 리가 없지요.”
“ 하하하! 아무튼 반갑네. 그럼 이 친구들도 알고 있겠군.”
“ 그렇습니다. 저분은 무적철검대 대주 소 대주님이고, 저분은 마극파천대 대주 수 대협, 그리고 저분은 무형혈인대 대주 종 대협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정확하구먼. 자네 말처럼 난 소무생이네. 반갑네. 제갈 소협, 잘 부탁하네.”
제갈생을 바라보고 있던 소무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난 수자양이네. 잘 부탁하네.”
“ 난 종도네. 잘 부탁하네.”
“ 오히려 제가 부탁드려야지요.”
“ 자, 이제 진식에 대해 말해 보게.”
인사가 끝나자 유자웅이 입을 열었다.
“ 먼저 진식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련주님.”
“ 저 진식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 현기환사죽영진은 구궁을 바탕으로 팔괘와 음양오행설을....”
“ 조금 전에는 팔괘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 그게 동쪽을 팔괘를 바탕으로 하고 서쪽은 구궁을 바탕으로 설치돼 있습니다. 즉 팔괘와 구궁이 현기환사죽영진의 근간이라는 거지요.”
“ 그렇군. 그럼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하는가?”
“ 련주님께서 어떤 결과를 원하는 냐에 달렸습니다.”
“ 어떤 결과라니 그건 무슨 소린가?”
“ 아군의 피해와는 상관없이 적을 완전하게 부수는 방법이 있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승리만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 전자를 선택하면 피해는 어느 정도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는가?”
“ 육 할 정도입니다.”
“ 그럼 후자는?”
“ 사 할 정도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고 기간은 육개월을 잡아야 합니다.”
“ 밀천 무인은 몇 명이나 있느냐?”
“ 일만 명가량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럼 난 일천팔백 명을 잃고 적 일만 명을 없애는 셈이 되는구먼.”
“ 그렇습니다.”
“ 그렇단 말이지.....”
유자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온 무인의 수는 삼천 명이다. 그들 중 이천 명은 과거 묵야련 소속이고 일천 명은 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벌에서 지원받은 일천 명을 선봉에 세우면 묵야련 소속 무인의 희생은 팔백이면 된다. 후자를 택하면 아군 묵야련 소속 무인의 희생은 이백 명이면 족하지만 이곳에 육 개월을 머무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강호 무림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는데 이곳에서 육개월이나 허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 전자로 하지.”
“ 육 할의 희생을 최소한이라는 건 명심하셔야 합니다. 련주님.”
“ 더 날 수도 있단 말인가?”
“ 진식 안에서는 장담은 금물이라는 건 잘 아시잖습니까?”
“ 승리는 확신하는가?”
유자웅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 제 전 재산을 걸어도 좋습니다. 련주님.”
제갈생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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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동 총단이 개파를 하면서 밀천은 내천과 외천으로 나뉘었다. 내천은 동정호 군산에 있는 총단을 말하고 외천은 규동의 총단을 의미한다. 외천인 규동 총단을 맡고 있는 자는 천주인 나천후의 숙부로 독존자라는 별호로 불리는 나진관이었다.
환수대 제강이 끝났으니까 가급적이면 시간을 끌도록 하시오. 오 일만 기다리면 될 거요.
“ 드디어!”
나진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천오백 년 전부터 밀천에 내려왔던 비장의 무기.
환수대, 수마대, 풍마대, 그리고 불사마령혼은 밀천이 지닌 최강의 힘이다.
환수대, 수마대, 풍마대는 내공심법을 통해 강시와 같은 상태가 되는 걸 말하고, 불사마령혼은 그야말로 강시 대법이다. 불사마령대법을 익힌 상태에서 죽게 되면 스치기만 해도 상대를 독물로 녹여 버리는 독강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환수대 제강이 끝났다는 건 다른 것들의 제강이 끝났다는 뜻이다.
첩지를 보내는 날 오 일이라고 했으니까 이틀만 있으면 도착할 터였다.
“ 접니다. 외천주님.”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진관은 삼매진화를 일으켜 첩지를 태웠다.
“ 다 모였느냐?”
그는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
“ 다섯 분은 오셨고, 네 분은 순찰을 돌고 곧바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 알았다.”
계단을 내려간 나진관은 작전 회의실로 들어갔다.
작전 회의실에는 네 명이 앉아 있었다.
네 명을 바라보는 나진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탈백신도 모철, 신산자 허유, 천면살수객 긴일강, 천기수사 사마종.
저들 네 명과 순찰을 돌고 있는 네 명을 포함한 여덟 명은 개파대전을 통해 발굴한 무인들로 웬만한 문파의 장로들보다 더 강하다. 기인이사가 모래알보다 더 많다고 하였던 말을 저들로 인해 실감하게 됐다.
“ 어서 오십시오.”
나진관이 들어가자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갑자기 무슨 순찰인가?”
나진관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네 명이 동시에 순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탈백신도 모철이 대답했다.
“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건 무슨 소린가?”
“ 조금 전부터 만양평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둥! 둥! 둥! 둥! 둥! 둥!
바로 그때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진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가 보세.”
그는 급하게 밖으로 나와 정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이 달리는 사이에 순찰을 나갔던 네 명과 천독 묘인청도 정문을 향해 내달렸다. 천독 묘인청은 과거 대야벌 소속이었던 만독림의 림주였다.
정문 앞에 도착한 그들은 몸을 날려 정문 위쪽 정자 형태의 공간으로 올라갔다.
벌판 너머에는 온통 시뻘건 불길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둥! 둥! 둥!
그르르! 그르르! 그르르! 그르르!
북소리에 이어 뭔가 구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저건?”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판 너머에서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이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진관은 고개를 돌려 천기수사 사마종을 보았다.
“ 기름을 채운 불공 같습니다.”
“ 불공이라면?”
나진관은 뒤편 건물을 보았다.
현기환사죽영진의 모체는 바로 전 건물들이다. 물론 모든 건물이 진의 모태는 아니고 일부 건물이 탄다고 해서 진이 파훼되는 건 아니지만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적을 보자 공연히 걱정스러웠다.
“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 물을 준비하란 말인가?”
“ 일부는 물을 준비하고, 일부는 공격을 시작해야 합니다.”
“ 알았네.”
고개를 끄덕인 나진관은 대주들을 보았다.
“ 모 대주는 전면, 허 대주는 왼편, 진 대주는 오른편을 치게. 묘 림주는 지원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나머지는 진식을 발진하도록 하게.”
“ 존명!”
일행은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그로부터 일각 후, 밀천 정문이 활짝 열리고 무인 사천여 명이 밀물처럼 밀려나갔다.
“ 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두에서 불공을 밀고 가던 철검패왕 소무생이 뒤편을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 작전대로 하게.”
“ 알겠습니다. 부맹주님.”
우렁찬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좌측에 있는 불공들이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불공을 밀어내는 힘은 무인들의 내기였다. 이십여 명씩 조를 짠 묵야련 무인들은 힘을 한데 모야 내기를 이용해서 불공을 굴리고 있었던 거였다.
“ 일 대는 저들을 막아라!”
선두에서 달려가던 탈백신도 모철은 앞으로 치고 나오는 불공을 향ㄷ해 내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초상비 경공을 펼치며 나아간 그는 불공과 삼 장 떨어진 곳에서 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 차앗!”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에 터져 나오고 백색 도강이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쓰쓰 스!
스산한 소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강은 빠르게 다가오는 불공에 틀어박혔다.
콰콰쾅! 콰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불공이 터져 나갔다.
“ 헉!”
모철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불공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불꽃이 사방으로 튄 것이다. 놀랍게도 불공 안에는 기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모철은 급하게 내기를 끌어올려 몸 주변으로 방어막을 쳤다.
그의 몸 주변으로 둥글게 강기의 막이 형성되고 불꽃을 머금은 기름은 튕겨 나갔다.
“ 아악!”
“ 으악!”
“ 아악!”
하지만 강기막을 펼쳐 기름을 피할 수 있는 무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모철 주변에 있던 밀천 무인들은 물론이고 내기로 불공을 밀어대던 묵야련 무인들 또한 불타고 있는 기름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과 함께 기름을 뒤집어 쓴 무인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 놈들과 같은 조건이다! 공격하라!”
모철은 주변에 있는 다른 불공을 향해 도강을 쏘아댔다. 비슷한 수준의 피해를 입는다면 인원수가 많은 아군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다니며 불공을 파괴했다.
“ 지금입니다. 련주님.”
일 장 높이의 교자 위에서 전황을 주시하고 있던 제갈생이 유자웅을 보며 말했다.
“ 뭐가 지금이란 말인가?”
“ 불공이 대부분 중앙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만양평 측면은 훨씬 어둡게 보입니다. 지금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보내서 정문 아을 막게 되면 밖으로 나온 자들을 포위할 수 있을 겁니다.”
“ 적이 나올 경우는 생각지 않는 건가?”
“ 아군이 한 명 죽을 때 적은 최소한 다섯 명이 죽습니다. 우리에겐 충분히 남는 장삽니다.”
“ 자네...... 잔인하구먼.”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련주님. 안타깝지만 그 방법 외엔 없습니다.”
“ 그렇겠지.”
유자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름을 채운 불공에 대한 것도 제갈생의 머리에서 나왔다. 불공은 적진을 태우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다만 커다랗게 만들어 기름을 바르고 불을 붙인 것은 시각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적이 뛰쳐나오기를 바라며 펼친 작전인데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유자웅은 뒤편을 바라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 시작하라!”
“ 존명!”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은 고개를 숙이고는 좌우측을 향해 내달렸다. 좌측과 우측으로 가는 자들은 총 사백 명이었다.
“ 사백 명의 희생으로 이천 명을 없앨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전쟁입니다.”
“ 놈들을 포위했다. 무적철검대는 돌격하라!”
“ 철현전마대는 돌진하라!”
“ 마극파천대는 공격하라!”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이 장소를 확보하자마자 소무생을 비롯한 대주들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 와아!”
“ 우와아!”
“ 와아!”
묵야련 무인들은 불공을 내버려둔 채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적진을 향해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차앙! 창! 창창창! 창창!
“ 크악!”
“ 으악!”
“ 아악!”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류와 삼류로 이루어진 밀천 무인들은 묵야련 정예의 상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선두가 무너지고 밀리기 시작했다.
“ 놈들이 도망친다! 죽여라!”
“ 한 놈도 살려주지 마라!”
“ 전부 죽여라!”
소무생, 홍남, 수자양은 광포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 아악!”
“ 크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견디가 못한 밀천 무인들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 묘 림주, 저놈들을 없애시오.”
전황을 지켜보던 나진관은 담 아래쪽에 대기하고 있는 묘인청을 향해 소리쳤다.
“ 만독림 무인들은 공격하라!”
묘인청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터져 나오고, 담 아래쪽에 대기하고 있던 만독림 무인들이 독이 발린 암기와 무기를 들고 담을 넘었다.
“ 우와!”
“ 와아아!”
“ 죽여라!”
칠십여 장을 달려간 만독림 무인들은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을 향해 암기를 뿌렸다.
“ 적이다! 암기다! 방패를 들어라!”
검은 옷을 걸친 자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만독림 무인들을 맞았다. 하지만 그들이 막기에는 만독림 무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앞으로 나아갔던 밀천 무인들이 도망쳐 오면서 이번에는 검은 옷을 걸친 묵야련 무인들이 포위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밀천 무인들은 무차별하게 공격을 가했다.
“ 크악!”
“ 아악!”
“ 크아악!”
“ 궁수는 준비하라!”
전면을 지켜보던 나진관은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 존명!”
우렁찬 외침과 함께 활을 든 자 수백 명이 성벽 위로 몸을 날려갔다.
“ 놈들의 후미가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 쏴라!”
“ 쏴라!”
틱틱틱! 틱틱틱! 틱틱틱! 틱틱틱!
슉슉슉! 슉슉슉! 슉슉슉! 슈슉슉!
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수백 대의 화살이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묵야련 무인드릉ㄹ 향해 날아갔다.
“ 화살이다!”
“ 화살이다!”
푹푹푹! 푹푹푹! 푹푹푹!
“ 크악!”
“ 으윽!”
“ 크윽!”
사바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 젠장!”
수자양은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저 멀리 교자 위에 제갈생이 보였다.
“ 불이 있어 잘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방패를 준비하는 게 나을 겁니다.”
“ 하하하! 무공을 모르는 제ㅐ갈 소협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무인은 화살 정도는 우습게 쳐내다네.”
간밤에 나눴던 대화였다.
“ 방패를 준비했더라면......”
슈우우! 슈우우 슈우우!
또다시 수백 대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 시체를 들어라! 시체를 들어 화살을 막아라!”
수자양은 옆에 있는 시체를 들어 머리 위로 올린 채 적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푹! 푹푹푹!
화살 꽂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빠르게 몸을 날린 그는 적 후미에 발을 디뎠다. 곧이어 그의 검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 크악!”
“ 으악!”
“ 아악!”
수자양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목이 잘리고 몸통이 잘려 나간 시체들이 생겨났다.
뿌우! 뿌우! 뿌우!
미친 듯이 적을 도륙하고 있는데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세 번의 나팔 소리, 그것은 후퇴 명령이었다.
“ 마극파천대는 물러나라!”
“ 철혈전마대는 물러나라!”
“ 무적철검대는 물러나라!”
묵야련 무인들은 썰물처럼 빠르게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이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화살은 쉬지 않고 떨어지고 수십 명이 죽임을 당했다.
진영으로 돌아온 대주들은 곧바로 인원 점검을 했다.
희생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나 많은 팔백 명가량이었다.
“ 오늘 잡은 적은 이천 이상입니다. 련주님. 아군의 희생이 예상보다 많기는 하지만 크게 염려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게 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놈들이 성문을 걸어 닫고 나오지 않으면 그땐 어떻게 할 텐가?”
“ 그럼 우리가 들어가야지요.”
“ 어떻게 들어간단 말인가?”
“ 일단은 화살의 사정거리 밖까지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 알았네.”
유자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묵야련 무인들은 천천히 이동하여 밀천의 정문과 백이십여 장 거리를 두고 진영을 구축했다.
배이십 장은 무인들이 쏠 수 있는 화살의 사정거리 바로 바깥쪽이었다.
“ 이제 적장을 한번 만나 볼까요?”
“ 적장을 만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 전투를 치르지 않고 승리를 얻어내는 게 최고의 장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적장이 항복을 할 거라고 보는가?”
“ 손해날 건 없잖습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이곳에 땅굴을 파야 합니다.”
“ 땅굴?”
“ 현기환사죽영진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땅속까지는 미치지 않을 거 아닙니까?”
“ 그러니까 땅굴을 파서 저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인가?”
“ 지금 당장은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갈생은 교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창을 하나 구해 달라고 하더니 그 끝에 백색 천을 묶었다.
“ 가시겠습니까?”
“ 나, 나도 가자는 말인가?”
유자웅은 흘끔 적진을 바라보았다. 적은 성문 바로 위 정자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제대로 된 대화를 하려면 대장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보다는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멋진 장면을 연출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련주님은 나갔는데, 적장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적장은 겁쟁이가 된다는 말이군.”
“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을 대단할 걸로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하들의 사기도 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자넨 전쟁을 많이 겪어본 사람 같군.”
유자웅은 제갈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변에는 수백 구의 시체가 널려있고 피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흐르고 있다. 이 정도면 질릴 만도 한데, 제갈생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하다. 마치 이런 경우를 많이 겪어본 사람 같았다.
“ 전 그걸 믿기 때문입니다. 련주님.”
“ 뭘 말인가?”
“ 죽은 시체보다는 산 사람이 훨씬 무섭다는 사실을 믿는단 말입니다.”
“ 시체는 자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단 말인가?”
“ 이미 죽은 시체가 제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옆에서 잔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다가 일어났을 때 모르는 사람이 누워 있을 경우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죽은 시체가 있을 때 기절을 하기도 하지요. 오히려 산 사람이 더 위험한데도 말입니다.”
“ 뭔가 오묘한 의미가 있는 것 같구먼.”
유자웅은 피식 웃으며 교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제갈생 옆에 섰다.
“ 가시겠습니까?”
“ 가지 않을 수 없게 한 사람은 자네 아닌가?”
“ 하하하!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고 말았군요. 그럼 가시죠.”
제갈생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저도 가겠습니다. 부맹주님.”
철검패와 소무생이 따라나섰다.
“ 소 대협은 지금부터 부하들을 동원해서 저기 정문까지 굴을 뚫어야 합니다.”
“ 지하로 공격해 들어가겠단 말인가?”
“ 반드시 굴을 이용해서 공격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적은 당황하게 될 테고, 우리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 일단 파고 보란 말이군.”
“ 바로 그겁니다. 소 대협.”
제갈생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앞으로 내밀고는 걸음을 옮겼다.
“ 바로 시작하게.”
유자웅은 대주들에게 말하고는 제갈생을 따라 나갔다.
“ 응?”
적진을 살피고 있던 나진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적진에서 두 명이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는데, 한 명의 손에 커다란 창이 들려 잇고, 창 끝에는 백색 천이 휘날렸다.
“ 대화를 하자는 뜻입니다. 외천주님.”
나진관과 마찬가지로 묵야련 측을 살피고 있던 사마종이 말했다.
“ 항복을 권유할 거란 말인가?”
“ 무인의 수는 우리가 많기는 하지만 저들은 고수가 많은니까요.”
“ 하지만 우리에겐 현기환사죽영진이 있네. 그리고....... 자네들도 있고.”
나진관은 환수대가 있다는 말을 하려다가 꿀꺽 삼켜 버렸다. 환수대는 적의 배후를 치기 위한 전력이다. 아무리 믿는 자라고 해도 함부로 밝힐 수는 없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대단한 작전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 즉 부하들의 사기로 결정되는 일이 더 흔합니다. 외천주님.”
“ 내가 나가지 않으면 부하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 부하들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 하면?”
“ 부하들이 외천주님을 겁쟁이로 여길 겁니다,”
“ 그게 그 말 아닌가?”
“ 완전히 다릅니다. 외천주님. 떨어진 사기는, 동료들의 장렬한 전사나 기타 분노를 일으키는 방법을 이용하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지휘관을 겁쟁이라 여기게 되면 전투 자체를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겁쟁이 지휘관 밑에 있는 자들은 도망칠 궁리만 하게 됩니다.”
“ 자넨 전쟁을 아는 사람 같군.”
“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때 사막에서 보낸 적이 있으니까요.”
“ 사막이라면.......”
“ 군인이었다는 뜻입니다.”
“ 어쩐지 전쟁을 잘 안다 했네. 그런데 자네도 갈 텐가?”
“ 저쪽과 수를 맞춰야지요.”
사마종은 싱긋 웃으며 성벽 아래로 날아내렸다.
“ 대기하라!”
부하들에게 나직이 소리친 나진관은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사마종과 나진관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 사람은 양측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오 장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멈춰 선 네 사람은 서로를 쏘아보았다.
“ 이분은 대야벌 묵야련의 련주 묵연노도 유자웅이외다. 그리고 난 묵야련의 군사인 천안신유 제갈생이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제갈생이었다.
“ 이분은 외밀천의 천주이신 독존자 나진관 대협이시고 난 천기수사 사마종이오. 그건 항복 깃발이오?”
나진관과 자신을 소개한 사마종은 제갈생이 들고 있는 깃발을 가리켰다.
“ 귀하들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나왔소.”
제갈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우리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는 걸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구려.”
사마종은 비아냥대듯 말했다.
“ 하지만 그쪽은 이류와 삼류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이잖소. 반면에 우린 묵야련 최정예고, 결국 우리가 승리하게 돼 있소 사마 소협. ”
“ 하하하! 착각하고 있구려. 제갈 소협. 수성보다는 공성이 더 어렵다는 건 상식이오. 우린 성 안에 박혀 있으면 되는데 왜 항복한단 말이오?”
“ 성 안에는 당신네들 가족도 있는 걸로 알고 있소. 난 그들이 걱정돼서 하는 소리요. 아무튼 앞으로도 시간이 있으니까 잘 생까해 보기 바라오. 항복할 의사가 있으면 이걸 뽑아서 가져오면 되오.”
제갈생은 들고 있던 창을 땅속 깊숙이 꽂아 넣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구려. 나도 그렇소. 제갈 소협. 항복할 의향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하시오. 무공은 장담할 수 없지만 목숨은 보장하겠소.”
사망종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 무인에게서 무공을 빼앗는다는 건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잔인한 짓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구려.”
“ 그건 말 만들기 좋아하는 자식들이 하는 소리 아니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오. 그만 가지시오. 외천주님.”
“ 알았네.”
나진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은데 이놈이 말을 하지 않고 있소.]
사마종은 걸음을 옮기면서 전음을 보냈다.
그가 전음을 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자웅 곁에 있는 제갈생이었다.
[ 방수가 있다는 말이냐?]
[ 그런 것 같소.]
[ 지금부터 땅굴을 팔 참이다.]
[ 이놈에게도 그렇게 말하겠소.]
[ 수고해라, 적랑.]
[ 광랑도 수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