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금향
원래 금의위의 임무는 황성과 북경 호위였다.
그랬던 임무가 황제의 의장, 궁정 수호, 북경 안팎 순찰, 죄인의 체포 및 심문으로 바뀌면서 힘이 실리게 되자 금의위는 점점 강력한 기관이 돼 갔다.
영반으로 불리는 총지휘 한 명, 진무사로 불리는 부지휘 두 명, 그리고 다섯 명의 천호로 시작했고, 임무 지역 또한 북경으로 한정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덩치가 커지더니 어느 순간에는 황제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괴물로 변해 버렸다.
그들이 지닌 군력의 정도를 ' 모든 권력은 금의위에서 나온다'는 말로 표현할 정도였다.
동창을 설립한 이유가 바로 권력의 정점이 돼 버린 금의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동창을 설립한 의도는 먹혀 들어갔다.
물론 동창이라는 새로운 권력 기구가 탄생하긴 했지만, 금의위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면서 권력은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동창의 등장은 금의위의 조직을 세분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금의위는 진무사 두 명이 영반의 지시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런 조직으로는 동창과 경쟁할 수 없었다.
빠른 일 처리를 위해 조직의 세분화가 일어났는데 가장 먼저 정보를 다루는 금밀사가 생겨났고, 그 다음에는 역모에 관련된 자를 색출하여 포박하는 반포사,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척살 임무를 맡은 척살사가 생겨났다.
특히 세 조직 중 척살사는 금의위 위사들 중 가장 강한 자들로 구성돼 웬만한 무림문파는 하룻밤 만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세인들은 북경 최고 권력 기관이 된 동창과 금의위를 일컬어 밤을 지배하는, 밤의 황제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의 임무가 그만큼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은밀함은 곧 밤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 제가 장담하건대 북경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금의위와 동창이 아니라 금향입니다.”
하오밀문 하북지부장 신통만통 허유가 해준 말이었다.
연우강은 고개를 들어 대문 위쪽을 보았다.
보통 기루는 저곳에 현판이 걸려 있어야 하는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문 위쪽을 올려다보며 연우강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 이거 봐라?’
연우강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삼 성의 내공으로 펼친 천리지청술이었는데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은 것이었다. 오 성까지 끌어올렸다. 그제야 비로소 기루 특유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 금향이 어떤 곳이지?”
“ 금향은.....”
금향은 다른 기루와는 달랐다.
우선은 금향이 위치한 곳은 다른 기루들이 몰려 있는 안락림이 아니었다.
고관대작의 저택이 몰려 있는 곳을 정치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모여 있다고 하여 정림촌이라고 하는데, 금향은 그 정림촌 외곽에 우뚝 서 있다.
건물의 형태는 고관대작들의 집과 비슷하고 규모는 몇 배 이상 컸다.
“ 금향의 첫 주인은 원나라 공주였습니다.”
“ 공주가 기루를 운영한 거야?”
“ 그렇습니다.”
“ 지금은?”
“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정계에서 축출당한 부마도위가 운영한다고 하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 그곳에 출입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지?”
“ 북경에서 목에 힘깨나 주는 자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고, 회원을 충원할 때도 기존 회원이 소개한 사람 중에 심사를 통해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 심사를 한단 말이지?”
“ 그렇습니다.”
“ 그거 괜찮은 방법이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심사를 하려면 그자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하잖아.”
“ 그렇군요.”
“ 회원은 어떤 방법으로 증명하지?”
“ 금향에서 지급하는 금향패가 있습니다.”
“ 여기에도 있어?”
“ 우연히 얻은 패가 있기는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 왜?”
“ 금향패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없도록 신분과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 그런데?”
“ 관직은 알아냈는데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패를 믿을 수도 없고요.”
“ 패를 못 믿는다는 건 무슨 뜻이지?”
“ 금향에 출입하기에는 관직이 낮습니다.”
“ 어떤 관직인데?”
“ 비서랑의 관직을 가진 자였습니다.”
“ 비서랑이면 궁중의 도서나 문서를 담당하는 자리를 말하잖아.”
“ 그렇습니다. 보통 명문 자제들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관리로 첫출발하는 초급자들입니다. 금향은 초급 관리들에게는 금향패를 지급하지 않습니다.”
“ 그 패는 어떻게 얻었지?”
“ 열 명이 동시에 몰살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체들이 흩어져 있던 곳에서약간 떨어진 곳에서 주웠습니다.”
“ 그 열명은 어떻게 죽었는데?”
“ 난자됐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 범인은 잡았어?”
“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는 결론만 내렸습니다.”
“ 그 외 특별한 사항은?”
“ 그 사건 이후 금향이 금의위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금의위 끄나풀이 된 거야?”
“ 지금은 그렇습니다.”
“ 잘됐네. 그 패 줘.”
“ 금향패 말입니까?”
“ 응!”
“ 자칫 잘못하면 범인으로 오해받아 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 그건 내가 바라는 바야, 일단 줘 봐.”
“ 알겠습니다.”
“ 북경에서 활약하는 금의위 위사들 중 중요한 위치에 있는 놈, 하위 직급인데도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놈을 전부 뽑아 놔. 사흘 안에전부 끝내야 해.”
“ 알겠습니다.”
연우강은 주머니 안에서 손바닥 절반 크기의 옥패를 꺼냈다.
“ 이곳에서 열흘을 머무르면 집 한 채가 날아간단 말이지.”
연우강은 미소를 지으며 대문 옆에 나와 있는 작은 구멍으로 금향패를 밀어 넣었다.
철컥!
기관 장치가 돼 있는 듯, 뭔가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금향패가 모습을 감췄다.
연우강은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그러자 대문 건너편에서 금향패를 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이젠 기다려야겠네.’
연우강은 사망궤를 내려놓고 그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죽었던 자의 금향패가 돌아왔으니 곧바로 수뇌에게 보고가 될 테고,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금향패를 가져온 자를 안으로 들여 전후사정을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어쩌면 허유의 말처럼 범인으로 단정하고 잡아들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 그건 내가 바라는 거지.”
연우강은 서늘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육포 조각을 꺼내 잘게 찢어서는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육즙이 완전하게 빠져나올 때까지 천천히 씹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그곳은 대문 안쪽의 커다란 나무 위였다.
연우강의 모습을 꼼꼼히 살피던 눈동자의 주인은 조용히 나무를 빠져나갔다.
눈동자의 주인은 소녀였다.
소녀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다람쥐처럼 소리 없이 내달리더니 정원 건너편의 첫 번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오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녀는 곧바로 화실이라 쓰인 작은 현판이 걸려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그림을 그릴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탁자 앞으로 걸어간 소녀는 곧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큰붓과 작은 붓이 빠르게 움직이고 종이 위에 사람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아 인물상이 완성됐다.
놀랍게도 소녀가 그린 그림은 연우강이었다.
“ 남자답게 생겼네.”
소녀는 그림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짓더니 따뜻하게 달궈진 돌 위로 종이를 놓았다. 그림이 마르는 동안 그녀는 기다란 대나무 통을 준비하여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돌 위에 놓았던 연우강의 인물화를 둘둘 말아 대나무 통 안으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탁!
오른편에 튀어나와 있는 물체를 가볍게 치자 탁자 중앙에 구멍이 나타났다. 소녀는 그 안으로 대나무 통을 집어넣고 왔던 길을 되돌아 원래 있던 자리로 갔다.
[ 뭐라고 보고했지?]
막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전음이 들려왔다.
“ 헥!”
소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낸 자를 찾았다.
[ 어렵게 찾을 필요 없어 나니까.]
또다시 전음이 들려오자 소녀는 고개를 숙였다.
기루에 오면서 궤짝을 매고 온 특이한 사람이 보낸 전음이었다.
[ 이름이 뭐지?]
[ 소진.]
소녀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 나이는?]
[ 열 네 살.]
[ 기녀가 아니고 무인으로 길러지는 모양이지?]
[ 그건.....]
[ 열 네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음을 구사할 정도면 대단한 거야. 그런 재원을 기녀로 키울 수는 없는거야.]
[ 아니에요. 아저씨. 전 새끼 기녀예요.]
[ 정말?]
[ 그래요, 금향에서는 기녀 시험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되는 게 무녀에요.]
[ 그러니까 기녀가 무녀보다 더 높다고?]
[ 금향을 유지시키는 힘이 바로 기녀잖아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죠.]
[ 그거 말 되네. 그런데 난 들여보낼 줄까?]
[ 가능할지도 몰라요.]
[ 왜?]
[ 궤짝을 메고 왔잖아요.]
[ 궤짝을 메고 온 사람은 그냥 들여보내 주는 거야?]
[ 특별한 사람은 들여보내 주는 경우가 있어요.]
[ 내가 특별해?]
[ 아저씨처럼 하고 온 사람은 처음이니까요.]
[ 내가 어때서?]
[ 옷은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싸구련데 얼굴에서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구천허환술을 익히고, 몸을 숨기고 있는 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낼 정도로 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잖아요.]
[ 내게서 돈 냄새도 나?]
[ 금향의 기녀는 시서화금에 능통해야 할 뿐 아니라 후각도 예민해야 해요. 특히 돈 냄새를 귀신처럼 알아낼 수 있는 후각을 지녀야 해요.]
[ 하하하! 그거 말 되는구나. 바로 봤다. 소진. 이 아저씨는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다.]
[ 중원에 돈 밖에 없는 부호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돈데, 아저씨도 그 중에 끼어요?]
[ 내 이름을 알고 싶은 모양이구나?]
[ 그냥 궁금해서요.]
[ 하하하! 소진 넌 분명 최고의 기녀가 될 거야.]
[ 왜요?]
[ 난 지금 내 이름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거든.]
놀라운 소녀였다.
열네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의 정체를 캐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 피이! 들키고 말았네요.]
[ 그럼 난 들어갈 준비를 할게.]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망궤를 짊어졌다.
[아직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아저씨. 저 같으면 아저씨를 들여보내 주겠다는 거지, 루주님들의 결정은 다를 수가 있다고요.]
[ 루주가 한 명이 아닌가 보지?]
[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 방금 네가 ‘루주들’이라고 했잖아. ‘들’이란 말은 복수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고.]
[ 피이! 자기는 하나도 안 가르쳐 주면서.]
“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녀석아. 그리고 궤짝을 둘러맸다고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냐, 소진.”
멀리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혜광심어가 아닌 본래의 목소리로 말했다.
[ 갑자기 왜 큰소리를 내고 그래요?]
소진은 깜짝 놀랐다.
“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나오고 있는 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런 거야.”
[ 알려줘요?]
“ 기루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우가 훨씬 좋아지는 법이거든. 예를 들면 같은 술이라고 해도 좀더 좋은 술을 내오게 되고, 기녀를 보내 줄 때도 마음씩 착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예쁜 기녀를 보내주거든.”
[ 킥! 제가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 우린 벌써 상당히 오랜 시간을 대화를 나눴어. 나는 네 이름을 알고 넌 내 얼굴을 아니까 우린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르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 거봐라, 소진. 쪽문이 아니고 큰문이 열렸다는 건 날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한다는 뜻 아니냐.”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찌르르!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전방과 좌우 측면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휙!
그리고 작은 동체의 소녀가 연우강 앞으로 날아내렸다.
“ 소진?”
“ 네.”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열 네 살이라고 했어?”
“ 네.”
“ 열 네 살이 아닌 것 같은데?”
“ 왜요?”
소진은 연우강을 빤히 보았다.
“ 내 시선이 네 가슴으로 먼저 갔거든.”
“ 그럼 열네 살이 아닌 거예요?”
“ 상대방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 소녀와 처녀를 구분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
“ 그런 걸 구분하는 방법도 있어요?”
“응.”
“ 뭔데요?”
“ 눈이 얼굴로 먼저 가면 소녀, 가슴으로 가면 처녀야.”
“ 킥!”
소진은 픽 웃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활짝 핀 장미처럼 화사하게 변했다.
“ 소진. 넌 가급적이면 사내들 앞에서는 웃지 않는게 낫겠다. 특히 권력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노인네들 앞에서는 절대 웃지 마.”
“ 왜요?”
“ 그 노인네들 중에는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변태들이 있거든. 특히 나이가 어리면서 몸은 성숙할 대로 성숙하여 건들면 터질 것 같고, 얼굴이 천하절색인 여자아이는 눈에 띄면 바로 채가거든.”
“ 제가 보기에는 아저씨도 그 변태들 중 한 명인 것 같은데요.”
“ 남자는 다 변패야.”
“ 풋!”
“ 이제 안내해 줄래?”
“ 알았어요. 아저씨.”
소진은 몸을 돌려 안으로 향했다.
“ 아무튼 요즘 애들은 너무 발육이 좋은 게 탈이야.”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진을 따라나섰다.
“ 소녀와 처녀를 구분하는 기준에 엉덩이도 해당하는 거예요?”
“ 물론이지.”
“ 피이!”
소진은 손을 뒤로 돌려 슬쩍 엉덩이를 가렸다.
“ 그런데 여긴 엄청나게 넓구나.”
연우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밀막부에서 운영했던 백설도 작은 규모가 아니었는데 이곳에 비하면 작은 주점이라고 불러야 할 듯했다.
대문 앞에서 첫 번째 건물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만 해도 백 장 가량이다.
정원에는 소나무, 잣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바닥에서 일 장까지 높이는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고, 각 나무의 가지에는 봉황 모습을 한 등이 걸려 있었다.
“ 원래 세 채의 건물이 있었던 곳인데 두 채를 헐었다고 해요.”
“ 원나라 때?”
“ 그걸 어떻게 아세요?”
소진은 걸음을 멈추고 연우강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넌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구나.”
연우강은 신기한 듯 소진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전에는 성숙미가 물씬 풍기더니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금은 딱 열 살 소녀 같다.
“ 조금 그렇다는 말을 듣기는 해요.”
“ 교육에 의한 게 아니고 타고난 표정이란 거야?”
“ 그렇다네요. 그런데 여기사 원나라 때 세워졌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 나름 준비를 좀 했어.”
“ 그거 말고 또 준비한 거 있어요?”
“ 워낙 비밀이 많아서 그것 말고는 준비를 못 했어.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까 여긴 단순한 기루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왜요?”
“ 지금 당장 우리 둘을 따르는 여자들이 백 명이나 있고, 저기 보이는 건물 근처에도 최소한 이백 명 이상의 여자들이 숨어서 여길 보고 있잖아.”
“ 우리를 보는 게 아니고 아저씨를 보는 거예요.”
“ 너랑 함께 있으니까 우리를 보는 거야.”
“ 피이, 그렇다 치고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사람이 전부 여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죠?”
“사람에게는 특유한 냄새가 있다는 거 알아?”
“ 그런 것도 있어요?”
“ 홀아비 방에 들어가 본 적 있어?”
“ 파산부 아저씨 방에 들어간 적은 있어요.”
“ 냄새 같은 거 나지 않던?”
“ 홀아비 냄새라고 부르는 그 냄새?”
“ 남자들은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대부분 그 냄새가 나거든. 그런데 우리를 따르는 자들에게서는 그 냄새를 풍기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저 앞에도.”
“ 그래서 전부 여자라고 한 거예요?”
“ 냄새는 남자만 나는 게 아냐.”
“ 그, 그럼 여자도 나나요?”
소진은 제 겨드랑이 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는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연우강을 따르던 이들은 물론이고 건물 주변에 은신해 있는 이들까지 전부 코를 겨드랑이에 대고 킁킁 댔다.
“ 사람은 전부 냄새가 난다고 했잖아.”
“ 난 안 나는데....”
“ 그런데 우릴 따르고 있는 저들은 누구지?”
“ 사향 오 조요.”
“ 사향은 뭐지?”
“ 질문은 대답한 사람만 할 수 있어요.”
“ 하나를 질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는 거야?”
“ 그래야 공평하잖아요.”
“ 좋아.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해.”
“ 우선 아저씨 나이부터 알고 싶어요.”
“ 스물일곱 살쯤 된 것 같아.”
“ 그것밖에 안됐어요?”
소진은 연우강을 빤히 보았다.
“ 내가 그렇게 겉늙었어?”
“ 말투가 노인네 같아서 그렇죠.”
“ 말투가 할머니 같은 사람은 너야, 인마.”
“ 좋아요. 그럼 피장파장이네요. 질문하세요.”
“ 사향은 몇 명으로 구성돼 있지?”
“ 와! 그건 너무 직접적이다.”
“ 대답하기 곤란한 거야?”
“ 그게.....”
[ 괜찮다. 소진. 말해 줘라.]
소진이 어쩌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나직한 향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사향의 향주인 사향금 여몽이었다.
“ 오백 명이에요.”
[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는지 물어봐라.]
“ 익힌 무공이 어떤 거죠?”
“ 무공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정확하게 어떤 걸 알고 싶지?”
“ 아저씨 사문을 알 수 있는 무공을 가르쳐 줘야죠.”
“ 그럼 사문을 물어보면 간단하잖아!”
“ 가르쳐 줄 거예요?”
“ 원래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걸로 가정하고 하는 거 아냐?”
“ 조, 좋아요. 그럼 다시 질문할게요.”
“ 늦었어. 소진. 방금 네가 한 질문은 한 번이야. 내가 익힌 무공은 흑풍마라천력이야.”
“ 흑풍마라천력?”
“ 그건 다음 질문으로 할게. 지금은 내가 질문할 차례야, 루주가 누구지?”
“ 그건 진짜 비밀인데.”
“ 내가 흑풍마라천력을 익혔다는 걸 외부인에게 말한 건 소진 네가 처음인데?”
“ 아저씨는 아저씨 본인에 대한 거니까 쉽게 말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제가 대답해야 하는 건 다른 사람의 신상이라고요.”
“ 불공평하다고?”
“ 제가 말하는 걸 루주님이 싫어할지도 모르잖아요.”
“ 싫어하지 않을 거야.”
“ 왜요?” “ 루주의 이름을 알아서 내가 얻을 게 없잖아.”
“ 얻을 게 없어요?”
“ 난 황제의 이름도 알아.”
“ 네?”
느닷없이 황제 이름이 튀어나오자 소진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황제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말이야.”
“ 그러니까 루주님의 이름을 알아 봐야 아저씨가 얻을 게 없다는 말?”
“ 그렇다고 생각 안해?”
“ 그런 것 같기는 한데....”
[ 알려줘도 된다. 소진.]
또다시 향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두심향이란 분이세요.”
둥실!
말이 끝나는 순간 소진의 동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 왜 이러세요, 아저씨!”
소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느닷없는 연우강의 행동에 주변에 있는 이들이 일제히 살기를 쏟아냈다.
“ 흑풍마라천력에 대한 질문을 했잖아. 이게 그 대답이야.”
“ 대답이라고요?”
“ 내가 마라천력인이란 말이야.”
“ 그럼 저를 들어올린 이 힘이 마라천력이라는 거예요?”
“ 그것도 질문?”
“ 에이, 그런 법이 어딨어요!”
“ 그러니까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지. 사향 말고 다른 조직도 있어?”
연우강은 소진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 남자들로 이루어진 염향이 있어요.”
[ 이름을 물어봐.]
막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사향 향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 이름이 뭐죠?”
“ 이름은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서 추론해 내야 하는 거 아냐?”
“ 아저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잖아요.”
“ 소진이란 이름이나 두심향이란 이름은 알려진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내 이름은 아주 큰 반향을 일으킬 수가 있거든.”
“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 아까 대문 앞에서 내가 뭐라고 했지?”
“ 가진 건 돈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 바로 그것 때문이야.”
“ 아저씨가 누군데요?”
“ 정원을 다 지나왔어.”
연우강은 바닥을 가리켰다.
어느새 두 사람은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앞쪽에 도착해 있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안에는 봉황등이 띄워져 있었는데, 봉황등 아래쪽에서는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 정원을 지나왔으니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소진은 불퉁대는 얼굴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우리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놀이를 한 건 정원을 지나기 전까지라도 암묵적인 동의를 했어. 그럼 정원이 끝나는 곳에서는 놀이도 끝내야 하는 거잖아.”
“ 전 많은 걸 가르쳐 줬는데 아저씬 흑풍마라천력 한 가지 밖에 가르쳐주지 않았잖아요.”
“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흑풍마라천력인데?”
“ 하지만 전 흑풍마라천력이란 무공은 처음 듣는단 말이에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소진. 난 사향이란 단체도 처음 듣고 두심향이란 이름도 오늘 처음 들었어.”
“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어요.”
“ 나중에 또 하면 되잖아. 그건 그렇고 이젠 날 방으로 안내해 줘야지?”
“ 가진 건 돈밖에 없다고 했죠?”
“ 무공도 좀 있다는 것도 알잖아.”
“ 무공은 저도 좀 있다고요.”
소진은 혀를 쑥 내밀었다.
“ 좋아, 돈만 있다고 하자.”
“ 화실, 수실, 목실, 금실, 토실이 있는데 어디로 할래요?”
“ 거긴 얼마나 하는데?”
“ 금액을 말하는 거예요?”
“ 응!”
“ 그런 걸 묻는 사람이 어딨어요? 혹시 돈밖에 없다는 거 거짓말 아니에요?”
“ 물어본 사람이 없었어?”
“ 몇 명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 가격을 물어본 그 몇 명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엄청난 부자였지?”
“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소진은 깜짝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돌아보았다.
“ 그런 걸 일컬어 가진 자의 여유라는 거야.”
“ 가진 자의 여유요?”
“ 수중에 가진 돈이 많은 사람은 거지 차림에 맨발로 시장을 돌아다녀도 전혀 부끄럽지 않거든. 심지어 남이 손가락질을 해도 허허 웃어넘기곤 해. 이런 고급 기루에 와서도 당당하게 술값을 물어볼 수가 있어. 왜냐면 하룻밤 술값이 아무리 비싸도 이런 거 하나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연우강은 주머니에서 손톱 크기의 작은 보석을 꺼내 소진에게 보여주었다.
“ 금강석이네요?”
“ 맞아. 이거 하나면 하룻밤이 아니라 한 달을 머무를 수 있잖아. 굳이 기죽을 이유가 없어. 반면에 수중에 돈이 부족한 자는 고급 술집이나 기루로 갔을 때 술값 때문에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해. 그러면서도 술값은 절대 묻지를 못해. 술 값을 물어보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아저씬 술값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봤으니까 돈이 많다는 거죠?”
“ 당연하지. 난 목욕을 하고 싶어.”
“ 수실로 안내해 달라고요?”
[ 암향으로 안내해라, 소진.]
움찔!
귓전으로 들려오는 전음에 소진은 슬쩍 몸을 떨었다.
암향은 금향으로 침입해 들어온 침입자들 중 사향이나 염향의 힘으로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에 열리는 곳으로, 사향과 암향에서 은퇴한 고수들이 머무는 전각을 말한다.
소진의 사부 또한 암향 인물이었다.
사부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암향의 힘은 구파일방의 은퇴 고수들의 집단인 구룡천군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곳으로 손님을 안내하라고 하자 저도 모르게 움찔 떤 것이었다.
소진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암향은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도 다른 건물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은퇴한 무인들이 머무는 곳이라 가재도구들은 더욱 고풍스럽다.
덜컹!
두 사람이 건물 앞에 서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 멋진 음악이구나.”
연우강은 빙그레 웃엇다.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여 있는데도 절묘하게 화음을 이루어 머릿속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좋은 음악이란 말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 귀는 호강을 했으니까 이젠 목을 호강시켜야겠구나. 물 한잔 부탁할까?”
연우강은 소진을 보며 말했다.
“ 아, 아저씨.”
연우강을 바라보는 소진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난 샘에서 바로 뜬 물을 좋아해.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아, 알았어요. 아저씨.”
소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소진이 나가자 연우강은 응접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는 골동품으로 보이는 탁자 위에 사망궤를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 여기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위쪽에 잡동사니를 집어넣는 상자를 밖으로 꺼내 내려놓고 사망묵의를 펼쳐 몸에 걸쳤다.
“ 주진무 그 양반과 공오인이 오줌을 지리게 하는 방법이 뭘까? 어떻게 해야 그 두 사람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낑낑댈까? 그 방법을 생각해 내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어.”
연우강은 암기들을 장착해 나갔다.
사망월반을 채우고, 사망지환과 사망낭조를 끼우고, 사망묵환을 오른손 손목에 찼다.
그 다음에는 사망정주를 목에 걸고, 사망사화를 왼쪽 가슴에 꽂고, 각 부분에 사망마비를 장착했다.
사망혈삭이 들어 있는 기구를 왼편 허리춤에 채우고 오른 편에는 사망혈궁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망마립을 눌러썼다.
손을 들어 올려 사망마리의 위치를 제대로 자고는 꺼내놓았던 상자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 읏차!”
그는 사망궤를 걸머지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 가장 좋은 방법은 관직명 앞에 금자를 달고 있는 놈들, 예를 들면 ‘금의위 영반 공오인’ 이라고 할 때의 금자를 말하는 거야. 그 금 자를 쓰는 놈들과 그들과 친한 것들은 전부 죽이는 거야. 그것들을 전부 죽이고 나면 남겨왕과 공오인이 오줌을 반드시 지릴 거야. 그들으 어른이라 오줌을 지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그럼 지릴 때까지 죽이면 돼. 난 다른 건 몰라도 죽이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사람이거든.”
철컥! 철컥! 철컥!
그의 손가락에서 사망낭조가 튀어나오며 새파란 광채를 쏟아냈다. 사망낭조가 쏟아내는 광채를 바라보며 연우강은 시리게 웃었다. < 제 20권 끝>
황금 백수 21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