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내가 북경에 온 이유는?
" 공격하라!"
" 공격하라!"
뾰족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야행복을 걸친 사향들이 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향들이 달려가는 곳은 저택의 동쪽이었다. 담 앞에 선 사향들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갔다.
" 적이다!"
" 쳐라!"
담 위에 있던 자들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고 뽑아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의 무기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와 아래로 쏘아져 갔다.
사향들 또한 무기를 휘둘러 검기와 검풍을 쏘아댔다. 그러고는 담으로 바짝 다가갔다.
파앙! 팡! 팡팡팡! 팡!
가죽 북 터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을 이용해서 사향들은 담벼락에 튀어나온 돌이나 담쟁이넝쿨을 잡아채면서 재차 위쪽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차앙! 창창! 창창창!
먼저 올라간 사향들과 기다리고 있었던 반포사 대원들 사이에 접전이 시작되고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비명을 지르는 자들 대부분은 반포사 대원들이었다. 삼사 중 척살사에 이어 두 번째 강한 무력을 가진 반포사라고 하지만, 그들은 황제의 어명을 수행하는 자들.
무공보다는 어명에 더 의존하는 편이라 무공을 등한시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 사향들과는 실력 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몇 합을 겨루기도 전에 담 위에 있던 반포사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하지만 반포사 대원들만 당하는 건 아니었다. 빈도가 극히 낮았지만 사향들도 아래로 떨어지곤 했다.
사향마금에서 흘러나온 구천신마조화곡이 건물 전체를 둘러싼 가운데 곳곳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둥실!
정좌한 채로 사향마금을 연주하던 여몽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순식간에 오 장 높이까지 떠오른 여몽은 전면을 바라보며 열 손가락에 진력을 실었다.
띠리링!
곧 사향마금은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엄청난 광경이 일어났다. 그녀의 손가락이 현을 튕길 때마다 새하얀 광채가 화살처럼 전면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담 위에 있던 자들은 일제히 새하얀 광채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로 소리를 막아낸다는 건 무리였다.
" 으악!"
" 크악!"
" 아악!"
담 위에 있던 자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콰콰쾅!
그리고 그들이 있던 대문 위 망루가 무너져 내렸다.
여몽은 구천신마조화곡을 연주하면서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담으로부터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 쏴라!"
오 장쯤 나아갔을까.
어둠 속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수십 대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휘리릭!
띠리링!
열 개의 손가락이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고 그녀 주변으로 둥근 막이 생겨났다. 일부 소리는 새하얀 광채를 변해 주변으로 쏘아져 갔다.
" 아악!"
" 으악!"
" 크아악!"
여몽이 만든 막에 화살이 부딪치는 순간 좌우측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화살이 막히자마자 여몽이 만든 막도 걷히고 다시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연사를 하는 것처럼 사향마금은 새하얀 광채를 사방으로 쏘아냈다.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여몽의 신형은 빠르게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건물 최상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자는 조천신이었다. 조천신은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보았다. 아래쪽 정원에는 전부 이십 대의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 금철!"
조천신은 맨 앞에 있는 마차를 보며 소리쳤다.
" 준비 끝났습니다. 사주."
포밀영 수좌 금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고함을 내질렀다.
" 시작하라!"
" 출발하라!"
" 마차는 출발하라!"
" 이럇!"
" 이럇!"
" 타하!"
" 타앗!"
히히힝! 히히힝!
우렁찬 외침과 함께 이십 대의 마차가 정문이 있는 동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 대원들은 마차를 엄호하라!"
금철의 입에서 또다시 고함이 터져 나오고 주변에 있던 반포사 대원들이 마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이럇!"
" 타앗!"
" 마차를 막아라!"
" 마차를 공격하라!"
여몽은 다급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마차가 있는 곳까지는 사십여 장. 마차는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 쏴라!"
" 쏴라!"
틱! 틱틱틱! 틱틱틱!
사향들을 향해 수백 대의 화살이 쏘아져 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화살이 아닌, 직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이었다. 삼십 장 떨어진 곳에서 직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낼 수 있는 사향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아악!"
" 악!"
" 으악!"
화살을 쳐내기에는 쏘는 거리가 너무 가깝고 주변도 너무 어두웠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향들은 풀썩풀썩 쓰러졌다.
" 빌어먹을!"
여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성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가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는 듯했다.
" 후퇴하라! 원래 자리로 가서 적을 쫓아라!"
그녀는 결국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사향들은 들어왔던 동쪽을 향해 내달렸다. 잠시 후 그녀들은 빠르게 담을 넘었다.
" 천향, 지향은 서쪽을 맡고, 인향, 야향은 남쪽, 무향은 나와 함께 북쪽으로 간다!"
" 알았어요, 언니."
" 이 조는 나를 따르라!"
" 삼 조는 나를 따르라!"
" 사 조는......."
" 오 조는......."
사향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네 명의 대주가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자 여몽 또한 무향과 함께 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사향들이 떠나고 일각 후.
검은 옷을 걸친 노인 한 명이 담 위로 날아 내렸다. 그는 동각이었다.
" 바보 같은 녀석!"
동각은 안타까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싸움을 하게 되면 설사 강하다고 해도 사향들의 희생은 피할 수가 없다. 문제는 희생된 사향들이다. 죽어 입을 열 수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부상을 입은 채 살아 있다면 잡혀서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금의위 반포사를 공격한 이들이 금향의 호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조천신에게 완전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 죽일 놈!"
동각은 건물을 노려보며 살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소진 있느냐?"
동각은 아래쪽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 네 여기 있어요."
담 아래쪽에서 소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는 지금 당장 여몽을 쫓아가서, 금향으로 돌아오지 말고 은신해 있으라고 해라."
" 알았어요. 할아버지. 그런데..... 연 공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 정 안 되면 도움을 청해야겠지만 그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
"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연 공자라면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잖아요."
" 그가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괜찮은 사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여몽에게 전하고 시간이 남으면 그를 찾아보도록 해라."
" 알았어요, 할아버지."
소진은 싱긋 웃으며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갔다.
소진이 떠나자 동각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동안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부분 헤쳐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자해를 하면서까지 금향을 엮어 넣으려고 하고 있다. 조천신이 왜 그러는지 차차 알아내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빠져나가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으니까."
동각은 한동안 건물을 노려보다가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동각의 신형이 곧 어둠 속으로 묻혔다.
빠르게 몸을 날려가는 동각은 건물 안에 두심향과 조천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조천신은 승자의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편 구석에는 머리만 내놓은 두심향이 앉아 있었다.
" 어떻게 생각하느냐?"
조천신은 술잔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 금향은 금의위와 친구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사주."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넌 바보다. 두심향."
" 아닌가요?"
" 우리 금의위는, 아니 동창도 마찬가지일 게다. 우린 실컷 부려먹다가 버리는 녀석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 금향을 버리기로 했단 말인가요?"
" 물론 영반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 그럼 순전히 사주 생각이란 말이군요."
"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 요소만 충족된다면 우린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친구 관계가 오래 지속될 거다."
두심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조천신이 말한 '한가지 요건.', 아마도 그것 때문에 조천신이 이번 일을 벌인 것 같았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한 가지 요건은 뭘 말하는 거죠?"
" 내가 얻고 싶은 건 토곤 테무르가 도망치면서 가지고 갔던 전국옥새다."
조천신은 두심향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뇌물도 받아본 놈이 받는다.
양성일의 집을 보고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도독동지면 종일품의 품계를 지닌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리다. 그런데 그의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집 안을 가리는 높은 담도 없고, 인공 연못도 없고, 기암괴석도 없고, 정원수도 없고, 마당엔 돌도 깔려 있지 않았다.
고관대작의 저택에 가면 하나씩 있는 식량 창고도 없고, 주방 건물도 따로 없고, 하인들이 머무는 숙소도 없다. 집은 안채와 바깥채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마도 하나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주고 양성일과 부인은 안채에서 산 듯했다.
“ 뇌물을 받지 못하겠으면 내가 준 돈으로 집이나 한 채 장만할 것이지.”
집을 둘러본 연우강은 혀를 찼다.
“ 오셨습니까?”
늙은 노인 한명이 연우강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연우강을 향해 고개를 숙인 자는 동창 팔신장의 다섯 째인 빙마신장 냉가위였다.
그가 연우강에게 공대를 한 것은 유설연의 명령 때문이었다. 유설연은 연우강을 만나게 되면 그를 본 것처럼 대하라고 했던 것이다.
“ 어디 있소?”
연우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처음 발견한 상태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 빙공으로 얼려두었구려.”
“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냉가위는 연우강을 안내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냉가위를 따라 응접실로 들어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시체의 상태만으로도 살인이 일어났던 그날 상황이 짐작이 갔다. 세 구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연우강은 내실로 걸음을 옮겼다.
내실은 응접실보다 더 처참했다.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목이 잘린 양성일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연우강은 말없이 양성일의 얼굴을 보았다.
“ 다음에는 무사안일에 젖은 도독동지 말고 첨목장군 양성일 장군님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되는군요.”
연우강은 지고 있던 사망궤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양성일의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가장 먼저 몸통을 잡고 혈잔수를 끌어올렸다. 빙공으로 얼려놓았던 몸이 녹으며 물이 주르르 흘렀다. 몸이 부드럽게 풀어지자 그 자리에 앉았다.
“ 불을 켜주게, 빙마.”
연우강은 양성일의 머리를 잡아 혈잔수로 녹이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냉가위는 고개를 숙이고는 방 안에 촛불을 켰다.
“ 아주 환하게 켜주게.”
“ 알겠습니다.”
냉가위는 밖으로 나가서는 횃불을 가져와 방 곳곳에 꽂고 불을 밝혔다. 곧 방 안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그때 연우강은 양성일의 머리를 잘려나간 부위에 맞춰 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잘린 부위가 사선이라 쉽게 고정되지 않았다.
연우강은 잘려나간 부위에 손바닥을 대고 백옥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녹았던 부분이 한 치가량 얼었다.
“ 조금 아플겁니다. 장군.”
연우강은 사망마비 한 자루를 뽑차 방금 얼려놓은 부분에 거꾸로 꽂았다. 즉 손잡이 부분이 목 안쪽으로 들어가고 날 부분은 위로 솟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머리의 위치를 제대로 맞춰 천천히 눌렀다.
머리를 맞춘 뒤 이번에는 얼어 있는 팔을 녹여, 머리를 맞출 때처럼 단면만 얼려서 사망마비를 꽂아 고정해싿. 팔과 다리를 고정하고 나자 양성일은 정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됐다.
“ 이제 술 한잔해야지요.”
사망궤를 열어 술병과 술잔 그리고 안주를 꺼내 앞으로 내려놓았다.
“ 그거 기억나십니까?”
연우강은 두 개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이 가득 채워진 술잔 하나가 양성일 앞으로 가더니 그의 손 앞에서 멈췄다.
“ 저와 장군님이 처음 만났을 때 말입니다. 고참 열다섯 명을 살해한 제게 장군님은 ‘죽고 싶을 정도로 세상이 미운 게냐?’ 라고 물었죠?”
연우강은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다시 술잔을 채웠다.
“ 그래서 전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장군께서는 그럼 아예 미쳐버리는 건 어떠냐고 하셨죠.”
-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면 미쳐라.
일에 미치고, 삶에 미치고, 죽음에 미치고, 자살에 미치고, 살인에 미쳐라, 모든 것이 미쳐보아라.
그럼 길이 보일 것이다.
양성일 장군의 말을 전적으로 따랐던 건 아니지만 많은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분명했다.
“ 전 속물이고 이기적이라 장군님의 삶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부패한 자가 득세하고, 비리를 저지른 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장군님 같은 사람이 한 분 정도는 계셔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아무튼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연우강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 저 사람?’
뒤편에서 연우강을 지켜보던 냉가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겪었다. 그들 중에는 보통 사람도 있고, 유설연처럼 특이한 사람도 있다.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많은 이들이 유일하게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때가 있는데 바로 친인이 죽었을 때다.
친인이 살해당했을 때는 미친 듯이 분노하고, 병사나 자연사했을 때는 슬퍼한다. 그런데 연우강의 모습에서는, 분노나, 슬픔 등 어떤 감정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저 모습이 더 두렵다.
며칠 동안 이어진 장마로 물이 끝까지 차오르고, 제방은 쩍쩍 갈라져 물이 스며 나오고 있는, 터지기 직전의 거대한 저수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냉가위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그 저수지 제방이 터져 물이 쏟아지면 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완전한 무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 그림을 그려놓았소?”
“ 네? 네, 공자.”
연우강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냉가위는 얼른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지금껏 그가 생활했던 바깥채에 화필신장 남덕무가 그린 그림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가지고 안채로 갈 때까지도 연우강은 그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소?”
냉가위가 안으로 들어오자 연우강이 물었다.
“ 금의위의 척살사 짓이라는 심증만 있을 뿐 증거는 없습니다.”
“ 척살사라면?”
“ 잔심인호 육양이란 자가 사주로 있는 조직인데 북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은 이천여 명입니다.”
“ 그렇군. 먼저 해줘야 할 일이 있소.”
“ 말씀하십시오.”
“ 설연에게 말해서 금밀사의 안가를 전부 파악해 달라고 해주시오.”
“ 그것만 하면 됩니까?”
“ 지금은 그렇소.”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성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언젠가 우린 모래가 돼 다시 만날 겁니다. 장군님.”
연우강의 손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양성일의 몸이 가루로 흩어졌다.
휙! 휙! 휙!
양성일의 몸 안에 꽂혔던 사망마비가 날아올라 제자리로 찾아들었다.
몸을 돌린 연우강은 사망궤를 걸머졌다. 그러고는 주변에 세워진 횃불로 시선을 주었다. 다섯 개의 횃불은 천장으로 날아올라가고, 다섯 개는 벽으로 날아갔다.
화르르!
곧 방 안이 불길에 휩싸였다.
방을 나선 그는 응접실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도 혈잔수를 펼쳐 가루로 만들었다.
“ 여길 감시하는 자들은 얼마나 되오?”
“ 북쪽에 소천산이라고 불리는 작은 야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백여 명 정도가 은신해 있습니다.”
“ 그들이 전부요?”
“ 천년호 남쪽에는 후군도독부 안가가 있습니다.”
“ 후군도도구는 아직 이 사건을 조사중인 모양이군.”
“ 그런 것 같습니다.”
“ 지금쯤은 그들도 내가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구려.”
“ 그럴 겁니다. 그런데 북경으로는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냉가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연우강은 움직임은 금의위는 물론이고 동창과 후군도독부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검은 옷을 입고 궤짝을 걸친 특이한 복장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 걸어 들어왔지.”
“ 성문을 통과해서 들어왔단 말입니까?”
“ 응!”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내실에서 시작된 불길은 이제 응접실로까지 번지고 있었다.
“ 거참!”
냉가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 금의위 놈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떻게 들키지 않고 이곳까지 왔냐는 거야?”
“ 금의위뿐만 아니라 동창에서도 연 공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 검은색만 찾으니까 그렇지.”
“ 그럼?”
“ 검은색 옷과 궤짝은 연우강이란 인물의 특징이잖아. 날 찾으려고 하는 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검은색으로 집중하게 되고, 낮보다는 저녁 무렵에 더 신경을 쓰게 되지. 그런 자들을 속이는 건 아무것도 아냐.”
“ 한낮에 평복을 입고 들어왔다는 거군요.”
“ 죄지은 것도 없는데 숨어 들어올 필요 없잖아. 북쪽이면 저쪽?”
연우강은 오른편을 가리켰다.
“ 그렇습니다. 저기 보이는 호수 건너편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습니다.”
“ 그만 철수해.”
연우강은 문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막 대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자들이 있었다. 선두에서 다려오고 있는 자는 청학장군 조천성이었다.
연우강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렇듯 빨리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안가에 들렀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가려는데, 연우강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휙! 휙! 휙휙!
조천성을 비롯한 후군도독부 무장들은 연우강 앞으로 날아 내렸다.
“ 네가 연우강이냐?”
조천성은 내려서자마자 다그치듯 물었다.
“ 그렇소. 댁은........?”
연우강은 조천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 장군님을 모셨던 조천성이다. 그런데 불은 네가 질렀느냐?”
조천성은 불길이 오르고 있는 양성일의 집을 가리켰다.
“ 그렇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천성의 왼편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 멈춰라!”
연우강이 움직이자 조천성 뒤편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막아섰다.
“ 난 지금 기분 더러워. 친구들. 사고 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야. 모난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 있잖아. 좋게 말할 때 비켜.”
연우강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후군도독부 무장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기분 나쁜 얼굴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비록 연우강이 양성일 장군과 친분이 있다고 하지만 평민이다. 평민이 관인을 향해, 그것도 후군도독부 무장을 향해 반말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마도 조천성이 옆에 없었더라면 곧바로 무기를 뽑아 공격을 했을 것이다.
무장들은 조천성의 눈치를 살폈다.
조천성의 표정으 미묘했다.
그는 지금 살짝 갈등 중이었다. 얼굴은 처음 보지만 양성일 장군으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자가 연우강이다. 물론 평소에는 연우강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술만 한 잔 들어가면 그는 연우강이란 이름을 달고 살았다.
도대체 어떤 자인지 내내 궁금했고, 드디어 지금 만났다. 과연 양성일 장군의 말처럼 그렇게 뛰어난 자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조천성은 슬쩍 부하의 시선을 외면했다.
“ 건방진 놈! 감히 평민 주제에 오군도독부 무장들을 향해 반말을 한다는 말이냐?”
무장 중 한 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무기를 뽑았다.
“ 남을 시험하는 거, 그거 좋지 않은 습관이야. 남을 시험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그럼 몸이 편해질 거야.”
“ 건방진 자식!”
결국 무장들은 견디지 못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우강 바로 앞에 있던 자가 검을 쭉 내밀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찌르기였다. 게다가 검면에 흐르는 뿌연 광채를 보건데 상당한 수련을 쌓은 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연우강.
연우강은 검을 피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다가들었다. 순식간에 검 앞으로 다가간 연우강의 신형이 오른편으로 반걸음 이동했다. 그러고는 왼팔 옆구리를 살짝 열었다.
“ 헉!”
무장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검 끝이 연우강의 옆구리로 쑥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그는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잡아당기면서 횡으로 쓸어버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 장군의 부하였으니까 목숨을 살려주겠다. 하지만.....”
연우강의 오른손 주먹이 사내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콰앙!
“ 으아악!”
무장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뒤편으로 훨훨 날아갔다. 뒤편으로 날아가는 무장의 오른손에는 검이 들려있지 않았다. 일 장을 날아간 거칠게 떨어졌다.
“ 죽일 놈!”
“ 차앗!”
“ 타앗!”
동료가 당하자 무장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 멈춰라!”
보고 있던 조천성이 버럭 소리쳤다.
더 이상은 연우강을 시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조천성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장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 이제 가도 되는 거요?”
연우강은 옆구리에 끼워져 있던 검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 그는 이미 죽었소. 그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봐야 다시 살아나지 않소.”
“ 나는 그분을 살해한 자가 왜 네 이름을 남겨뒀는지 그걸 알고 싶을 뿐이다.”
“ 원래 성격이 그렇게 느긋한 거요?”
연우강은 조천성을 빤히 보았다.
“ 무슨 소리냐?”
“ 그걸 알고 싶으면 범인을 잡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잖소.”
“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면 진작 잡았겠지.”
“ 이상하구려. 금의위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고, 저 뒤편에 있는 빙마도 그렇게 말하는데.”
“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
“ 물증, 좋은 말이지.”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난 가라고 한 적 없다. 연우강.”
“ 난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고 한 적 없소.”
연우강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 금의위를 공격할 참이냐?”
“ 그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소. 하지만 이 더러운 기분을 해소시키려면.....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소.”
“ 그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사실 조천성이 급하게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 공격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요?”
“ 양성일 장군이 살해당한 후 후군도독부와 금의위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후군도독부 도독께서는 양성일 도독 동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셔서 간신히 봉합된 상태다. 네가 다시 들쑤시고 다니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장례도 끝났으니 북경을 떠나라.”
“ 저게 장례식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연우강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의 어투도 조금 전과 달라졌다.
“ 우리 후군도독부에서 양 장군의 시신을 지금껏 방치했던 것은 시신을 지키는 동창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의미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널 상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거야?”
“ .......!”
조천성은 연우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투가 공대에서 반공대로 바뀌더니 이젠 반말까지 왔다. 아울러 연우강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 그렇다. 네가 오면 장례를 치르고 끝낼 셈이었다.”
“ 범인은 잡을 생각이 없나 보지?”
“ 조금 전에 네가 말한 것처럼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양 장군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다.”
“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살라고?”
“ 양 장군께서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그분은 지고히도 싸우는 걸 싫어하셨다. 우린 그분의 유지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 내가 금의위와 싸우려고 하는 이유가 양 장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럼 아니란 말이냐?”
“ 아냐. 내가 금의위와 싸우려고 하는 이유는 나 때문이야.”
“ 너 때문이라고?”
“ 나는 물론이고 복수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래.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네 어쩌네 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내 마음속에 있는 찜짐함을 몰아내고자 복수를 하는 거야. 나도 다르지 않아. 내가 금의위 전부를 죽인다고 해서 양 장군이 알 리도 없거니와, 설사 안다고 해도 그분 성격상 좋아할 리도 없어. 하지만 난 할 수밖에 없어. 왜냐면 내가 편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당신네들은 당신네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까.”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사건을 키우지 않기 위해 널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럼 넌 금의위와 오군도독부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몰라.”
“ 난 북경에 휴가 나온 게 아냐. 조천성. 내가 북경에 온 이유는.....”
연우강은 몸을 돌려 조천성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죽이기 위해서야. 누군가를 죽이기로 했다면 죽이고자 한 자들이 어떤 사정 때문에 적이 됐는지, 어떤 신분인지,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인지, 힘이 없는 노인인지, 집에서 기르는 가축인지 하는 것들은 따지지 않아. 나를 공격하는 자들과 그들과 관련된 자들은 전부 적으로 간주해. 일단 적으로 간주하면 무조건 죽이고 봐.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 우리도 공격하겠다는 말이냐?”
“ 공격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죽이겠다는 거야. 가급적이면 날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날 만나면 두 팔과 다리와 머리가 잘릴 테니까.”
연우강은 차갑게 웃으며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 상대는 금위다. 연우강. 전국에 퍼져 있는 위사들의 수만 해도 수만 명이고, 금릉 연씨 세가 정도는 하루아침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과 권력을 지녔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조천성. 난 하루아침에 초토화시키지는 못해.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 금의위는 내 손에 멸망해. 그건 내 전재산을 걸고 내기를 해도 좋아. 가급적이면 근처에 오지 않는 게 좋아.”
연우강은 손을 휘저으며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 끄응!”
조천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말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성일 장군이 아니라 연우강 자신을 위해 금의위와 전쟁을 한다는데 그런 자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결국 그를 말리는 방법은 무력밖에 없을 듯했다.
“ 도독께서 화를 낼 텐데......”
조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