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03화 (203/232)

제 7장 권력자들이 도박을 하는 경우는

누구나 어떤 장소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 처음 며칠은 열심히 한다. 매시간 움직임을 파악하고, 들락거리는 사람까지 기록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처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정신이 느슨하게 풀어진다. 그리고 그 상태를 넘어서게 되면 하루에 한 번 정도, 이웃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 지 확인할 때처럼 대충 둘러보게 된다.

조장인 독군 당백호를 비롯한 금의위 위사들이 대부분 그랬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만 해도 대단한 임무를 맡은 걸로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군도독부의 이인자가 살해된 사건이 아닌가?

어쩌면 승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웬걸?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양성일의 집에서는 어떤 조짐도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기록할 게 없었다.

간혹 동창 무인들이 들락거리는 게 다였다.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주시하던 자들은 열흘이 지나면서 점차 무뎌졌고, 급기야 공연히 나왔다고 말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간혹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누구도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양성일의 집에 불길이 오른 것이다.

“ 어떻게 됐느냐?”

당백호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반시진 전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계속 부하들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양성일의 집을 살피러 간 부하들 중 돌아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 빌어먹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결국 당백호는 처소를 나섰다. 그를 비롯한 일백 명의 금의위 위사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소천산 남쪽의 작은 계곡에 있는 저택이었다. 원래 원나라 고관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훈련 기간에는 훈련 교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훈련이 없을 때는 안가로도 사용하곤 한다.

건물은 남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 한 채씩 세워져 있고, 북쪽 건물의 맨 위층에서는 천년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조장 당백호가 머물렀던 곳도 바로 북쪽 건물의 맨 위층이었다.

당백호가 나오자 위사들이 모여들었다.

양성일 집으로 보낸 자들을 제외한 팔십 명이었다.

“ 전부....”

“ 너희들이 전부야?”

부하들을 향해 막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데 대문 위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백호를 비롯한 금의위 위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 넌?”

당백호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검은 옷, 검은 철립, 검은 궤짝.

대문 위쪽에 서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는 자는 말로만 수없이 들었던 연우강의 복장이었던 것이다.

“ 너희들이 기다리던 연우강이야.”

연우강은 아래로 뛰어내렸다.

“ 쿡쿡쿡!”

당백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맺혔다.

비로소 이번 임무를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의위를 곤란하게 했던 놈.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경왕 주진무도 연우강에게 모욕을 당햇다고 하였다. 만일 연우강을 잡는다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건 당연하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이곳에 있는 대원의 수가 팔십 명이라는 사실이다. 당백호는 승리를 자신했다.

“ 잡아라!”

당백호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위사들 또한 당백호와 비슷한 생각을 히고 있었다. 금의위 최고의 골칫거리인 연우강. 놈을 잡는 위사는 그날로 영웅이 될 테고, 출세는 보장된다. 그런 그들에게 약간의 부사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차앗!”

“ 타앗!”

“ 이얍!”

위사들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누가 됐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놈 한  명만 살려줄 거야.”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달려오는 위사들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그의 양손에는 손괭이와 낫이 들려 있었는데, 두 무기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당백호의 명령으로 양성일 장군 가옥의 상황을 알아보러 갔던 이십 명을 없앤 흔적이었다.

차앙! 스악!

난투박투가 펼쳐졌다.

무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난투박투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손괭이와 낫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시체가 생겨났다. 생겨난 시체들은 하나같이 몸통과 머리가 분리돼 있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우강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고, 좌측으로 가고, 우측으로 간다. 낫질에 피가 튀고, 손괭이질에 살이 튀었다.

연우강 주변으로 머리 없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 놈!”

벌써 이십여 명이 죽임을 당했지만, 당백호는 태연했다. 그는 부하들을 믿었다. 아니 부하들을 믿는다기보다는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을 믿었다.

한 번에 공격할 인원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달려든다고 해도 네 명 또는 다섯 명이 달려드는 것과 같다는 말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지어낸 말일 뿐이다. 무인의 싸움에서 생사를 결정짓는 건 한순간이고, 그 한순간을 잘 막아내는 자를 고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금의위 위사들의 수는 팔십 명.

즉 한순간을 팔십 번이나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팍십 번에 달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 순간을 피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

차앙!

당백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우강의 등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연우강이 비틀거렸다.

“ 놈의 힘이 빠졌다. 몰아쳐라!”

당백호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당백호의 외침과, 짙은 어둠은 착각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동료들의 비명 때문에 위축돼 있던 위사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연우강의 행동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손괭이로 막고 낫으로 자르고, 낫으로 막고 손괭이로 찍었다. 피가 튀고 살이 튀며 비명이 남는다.

푸욱!

“ 크윽!”

“ 놈을 찔렀다. 놈의 가슴을 찔..... 아악!”

위사 중 한 명이 고함을 내지르다가 낫에 목이 잘렸다.

겉으로 보기엔 연우강은 영락없이 검에 찔린 것처럼 보였다. 약간 비틀거리고, 사망묵의는 온통 선혈로 낭자했다. 누가 보아도 연우강은 검에 당한 것처럼 보였다. 위사들은 더욱 힘을 내서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백호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부하들의 수가 열 명가량 남았을 때였다.

“ 빌어먹을!”

당백호는 욕설을 내뱉었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당했다. 지금껏 연우강은 몇 번에 걸쳐 부하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때만 해도 공격에 성공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속임수였다. 놈은 금의위 위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비틀거렸던 것이다.

“ 으악!”

“ 크악!”

“ 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들려오며 잘려나간 머리가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 처, 철수하라!”

당백호는 고함을 내지르며 산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아남은 다섯 명도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 한 명만 보내줄 거라고 했잖아.”

슈아악!

나직한 목소리가 연우강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사망마립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뇌섬이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거리를 단축한 뇌섬은 당백호의 목을 감아 돌고, 날아가던 사망마립은 여덟 개로 분리돼 도망치는 위사들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 크악!”

“ 아악!”

다섯 번의 비명을 끝으로 살아남은 자는 당백호가 유일했다. 당백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사, 살려주시오!”

“ 걱정 마, 한 명은 살려줄 생각이었으니까.”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마라천력으로 십여 구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우두둑! 찌익! 우두둑! 찌익!

“ 우욱!”

목에 날카로운 실이 감겨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당백호는 토악질을 해댔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목 없는 시체의 팔 다리가 뜯겨 나가는 것이었다.

“ 똑바로 쳐다봐! 그리고 왼손잡이에 도를 쓰는 놈에게 지금 본 그대로 전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연우강은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이십여 구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 아, 알았습니다.”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들었지만 당백호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공포에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이른 아침 조천성은 후군도독부 건물로 들어섰다.

밤을 꼬박 세운 탓에 그의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후군도독부 도독 집무실 앞에 선 그는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

“ 들어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조천성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중년인이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오군도독부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후군도독부의 도독 금자훈이었다.

“ 안녕하셨습니까?”

조천성은 고개를 숙였다.

“ 앉아라.”

금자훈은 탁자 건너편 자리를 가리켰다.

조천성이 자리에 앉자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시비가 다가와 차를 따라주고 물러갔다.

“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게냐?”

시비가 물러가자 금자훈은 입을 열었다.

“ 연우강이 나타났습니다.”

“ 연우강?”

“ 그렇습니다.”

조천성은 간밤에 양성일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 양성일의 시체마저도 전부 태워버렸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잿더미만 남았을 뿐입니다.”

“ 그럼 증거가 사라진 셈이구나.”

“ 그렇긴 합니다만......”

조천성은 말끝을 흐렸다.

“ 왜 그러느냐?”

“ 연우강은 전쟁을 시작할 기세였습니다.”

“ 전쟁을 시작해?”

“ 네.”

“ 누구와 전쟁을 한단 말이냐?”

“ 금의위와 전쟁을 할 모양입니다.”

“ 정말이냐?”

황당했다. 다른 조직도 아니고 동창, 오군도독부와 더불어 북경 삼대 권력 기구 중의 한 곳이 금의위다. 북경에서 활동하는 위사들의 수만 해도 수천 명이라 숨을 곳도 없다. 그런데 전쟁을 하겠다니, 미친 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확고해 보였습니다.”

“ 대화를 나눠봤다는 말이냐?”

“ 네.”

“ 우리 후군도독부 입장은 설명해 줬느냐?”

“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 그런데도 전쟁을 하겠다고 하더란 말이냐?”

“ 만일 방해하면 저도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 정신 나간 놈이구나.”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창의 일인자가 된 유설연이 돕는다면 그도 상당한 전력을 가진 셈이 됩니다.”

“ 동창이 나설 수 있으 거라고 보는 게냐?”

“ 도울 수 없단 말입니까?”

“ 다른 지역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북경에서는 불가능하다. 금의위와 동창이 전쟁을 하게 디면 양쪽이 다 다친다. 하지만 금의위 영반은 하남에 가 있고, 유설연은 북경에 있다. 누가 손해일 거라고 보느냐?”

“ 유설연이 손해란 말이군요.”

“ 맞다. 유설연 또한 함부로 나설 입장이 아니다.”

“ 접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오너라.”

곧 오십대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 무슨 일인가?”

금자훈은 장익을 보며 물었다.

“ 소천산에서 금의위 위사 시체 백여 구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 정말인가?”

금자훈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체들의 상태가 양성일 도독 동지와 비슷했답니다.”

“ 비슷해?”

“ 목은 예리한 무기로 잘려나갔고, 팔다리는 통째로 뜯겨 나간 상태라고 합니다.”

“ 빌어먹을 놈!”

금자훈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양성일 또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발견됐다. 그런데 금의위 위사들의 시체들 또한 양성일이 당한 것과 흡사한 모습으로 발견됐단다.

그건 곧 양성일을 죽인 범인으로, 일개인이 아닌 금의위 전체를 범인으로 지목했음을 뜻한다. 방금 녀석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녀석은 벌써 전쟁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 천성, 넌 각 도독들에게 내가 점심 때 보잔다고 전해.”

“ 장소는 어디로 잡을까요?”

“ 비가로 오라고 해. 그리고 각 장군들에게는 지금 당장 후부로 집결하라고 하고.”

비가는 오군도독부 도독들이 비밀회의를 할때 자주 사용하는 비밀 가옥이었다.

“ 알겠습니다. 장군.”

조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 다음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 지금 북경에 있는 금의위 수뇌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자는 누군가?”

금자훈은 장익을 보며 물었다.

“ 삼사 수뇌들이 가장 높은 직급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공오인이 돌아온다는 말이 없었는가?”

“ 그렇습니다.”

“ 그들과 약속을 잡아. 날짜는 내일로 하고, 그리고 유설연에게도 연락을 해서 가급적이면 같이 만날 수 있도록 해봐.”

“ 알겠습니다.”

장익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장익이 나가자 금자훈은 내려놓았던 찻잔을 들어올렸다.

“ 바빠지겠구먼.”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두 시진 후, 평복을 챙겨 입은 금자훈은 아무런 표식도 없는 가마를 타고 비가로 향했다. 비가는 후군도독부 건물인 후부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금자훈은 가마에 탄 채 비가로 들어갔다.

비가 안에는 네 명의 도독이 먼저 도착하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금자훈이 안으로 들어가자 네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 바쁠 텐데 갑작스럽게 보자고 해서 미안하게 됐소.”

“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대감께서 찾으시는데 만사를 제쳐두고 와야지요. 그런데 북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오른편에 있는 중년 사내가 웃으며 물었다.

귀밑머리만 하얗게 센 특이한 머리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좌군도독부 도독 영락장군 제승기였다.

“ 사실은 그 일 때문에 불렀소.”

“ 전쟁이라도 난 겁니까?”

이번에 질문을 한 사람은 우군도독부 도독 남천장군 명사군이었다. 명사군이 전쟁 운운한 것은 제승기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집이 가장 먼 곳에 있는 그는 한 시진에 걸쳐 이곳까지 걸어와야 했는데, 북경 전역에 삼엄한 기운이 깔려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금의위 건물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을 지나올 때는 식은땀까지 흘려야 했다.

마치 전쟁 직전의 북경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 전쟁에 준하는 사태가 일어났소.”

“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면?”

도독들이 의아한 얼굴로 금자훈을 보았다.

“ 연우강이 북경에 나타났소.”

금자훈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연우강이라면......‘금의위의 치통’ 인 금릉 연씨 세가의 장자를 말하는 겁니까?”

명사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금의위 속을 썩인다고 해서 오군도독부에서는 연우강을 금의위의 치통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 웃을 일이 아니외다. 어젯밤 양성일 동지 집을 감시하던 금의위 위사 백여 명이 몰살을 당했다고 하오.”

“ 모, 몰살을 당했다고요?”

네 사람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동창에 밀리고, 오군도독부에 밀리는 상황이지만 금의위가 북경 최고 권력 기관 중의 한 곳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북경으로 돌아온 주진무 편에 서는 것으로 점점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주진무에게 버림만 받지 않는다면 머잖아 북경 최고 권력 기관은 금의위가 될 게 확실하다.

그런데 그런 금의위 위사 백여 명을 몰살시켰다니.

백여 명을 몰살시킨 무공도 놀랍지만, 금의위 위사를 살해한 배짱은 더 놀라웠다.

“ 혹시 연우강 그자가 전쟁을 시작한 겁니까?”

중군도독부 도독 청승장군 여절령이 물었다.

“ 만나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그런 것 같소이다.”

“ 허!”

여절령은 멍한 얼굴로 금자훈을 보았다.

북경에 있는 금의위 위사의 수는 아무리 저게 잡아도 오천 명이 넘고, 그들은 북경 전역에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연우강은 한 명이다.

아무리 연우강에 점수를 후하게 줘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군도독부 도독 차령장군 소정방도 마찬가지였다.

“ 미친놈 아닙니까?”

소정방은 금자훈을 보며 말했다.

“ 설사 미쳤다고 해도 금의위 위사 백 명을 없앤 잡니다. 차령장군.”

“ 그렇긴 합니다만, 상대는 다른 자들도 아니고 금의위 아닙니까. 금의위가 마음을 먹는다면 북경에서는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요. 그보다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보자고 했습니다.”

“ 어떤 의견 말입니까?”

영락장군 제승기가 물었다.

“ 연우강이 북경으로 들어온 이유는 양성일 도독 동지의 살인 사건 때문이오.”

“ 그럼 그가 양성일 장군의 복수를 위해 금의위와 전쟁을 시작한 거란 말입니까?”

제승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 몰랐소?”

“ 나는 녀석이 제 부모 때문에 북경으로 온 줄 알았습니다.”

제승기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연우강의 부모들이 금의위 남진무사 이대진에게 생포돼 북경 모처에 감금됐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 제 부모 때문이라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야 하지 않겠소. 전쟁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소이다.”

“ 그랬군요.”

제승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양성일과 연우강이 얼마나 친한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은 양성일을 절친한 친구로 여겼다. 그런데 그가 살해를 당했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했다.

공연히 부끄러웠다.

“ 그 사건을 묻으실 참입니까?”

제승기는 금자훈을 보며 물었다.

“ 단순하게 금의위만 관련이 됐다면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내 물고를 냈을 거요.”

“ 하면?”

“ 양 동지의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 자는 공오인이 아니었소.”

“ 그럼 남경왕이란 말입니까?”

제승기의 물음에 금자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말을 하려고 우릴 부르신 겁니까?”

제승기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남경왕이 연관됐다는 것은 곧 그가 양성일의 머리를 원했다는 말이 된다. 금자훈으로서는 황제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쥔 자를 향해 검을 뽑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 그렇소. 제 도독이 양동지와 친분이 깊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양 동지는 우리 후군도독부 소속이었고, 내 직속 부하였소. 그가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관연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만나자고 하였소이다.”

“ 쉽게 말해서 어떤 경우에도 연우강을 도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군요.”

“ 그렇소이다. 제 도독.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여러분들 중 누군가가 연우강을 돕게 되고, 그로 인해 금의위가 피해를 입게 되면, 많은 이들이 우리 후군도독부가 연우강을 도와주었다고 여기게 될 거요. 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걸 원치 않소이다.”

“ 알아소이다. 금 도독 그렇게 하겠소이다.”

제승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 말이 기분 나쁘시오?”

금자훈은 제승기를 지그시 보았다.

갑자기 제승기의 말투가 냉랭해지는 느낌을 받은 탓이었다.

“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씁쓸해서 그렇소이다.”

“ 뭐가 씁쓸하단 말이오?”

“ 아니외다. 난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소이다.”

제승기는 일행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제승기는 하늘을 보았다.

씁쓸한 게 아니라 쓸개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것처럼 썼다. 사실 양성일이 영전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후군도독부는 오군도독부 중 가장 약하고 형편없는 조직이었다.

양성일이 후군도독부로 발령이 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중앙에 있는 자들은 영전해 오는 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영전해 오는 자에게 권력을 나눠줘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운 공이 있기에 괄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권력은 없고, 직위는 높은 그런 자리에 앉히곤 한다. 양성일을 후군도독부로 보낸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런데 그가 들어가고, 수시로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게 되자, 후군도독부는 다른 도독부를 제치고 오군도독부 최고 권력기구로 앞서 나갔다. 그러다가 급기야 금의위와 동창마저도 넘어서고 만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양성일 장군 덕분이었다.

그렇게 권력의 실체가 된 금자훈은 양성일 장군이 살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건을 묻으려 하고 있다.

“ 젠장!”

제승기는 욕설을 뱉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정원을 걷고 있는데 무복을 걸친 자가 다가왔다. 상당한 내공을 가진 자인 듯 제승기 곁으로 다가오는 데 발걸음 소리는 물론이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날카로운 광채가 흘러나오는 이 사람은 좌군도독부 무장 단체인 비단의 단주 철담연환수 연운찬이었다.

“ 돌아가시겠습니까?”

연운찬은 제승기를 보며 물었다.

“ 그래야겠네.”

“ 모시겠습니다.”

연운찬은 방금 자신이 나왔던 곳을 보며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그곳에서 커다란 가마가 나왔다.

바로 앞에 내려서자 제승기는 가마에 올랐다.

“ 가자!”

연운찬이 나직하게 말했다.

“ 운찬, 이곳에 오래 있으면 토할 것 같네.”

“ 알겠습니다. 도독.”

가마가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곧 비가를 나섰다. 비가를 벗어나자 가마가 나아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빠른 속도로 내달린 가마는 대로가 나오자 비로소 속도를 늦췄다.

제승기는 가마 뒤편에 있는 상자에서 술 한 병을 꺼내 들었다.

“ 연우강이 북경으로 들어온 모양이네.”

그는 술병 뚜껑을 따며 말했다.

“ 양성일 장군의 저택을 감시하던 금의위 위사 일백 명을 살해했다는 말은 저도 들었습니다.”

“ 그런데 말도 하지 않은 겐가?”

“ 도독께서 알고 싶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 그래, 어떻게 됐는가?”

“ 머리는 깔끔하게 자르고, 팔, 다리는 힘으로 뜯어내서 양성일 장군이 죽은 모습과 같게 만들어두었답니다.”

“ 양성일 장군의 복수를 하러 온 거구먼.”

“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 또 있는가?”

“ 그들을 없애기 전에 금향을 먼저 쳤습니다.”

“ 금향까지?”

제승기는 깜짝 놀랐다.

금향과 금의위가 밀월 관계에 있다는 건 공공여난 비밀이었다. 아니 북경에서도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금향과 금의위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연우강이 북경에 오자마자 첫 번째 대상으로 금향을 택했다는 건 준비를 하고 왔다는 의미가 된다.

“ 쿡!”

제승기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수만 명의 위사를 거느린 금의위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한 남자, 마치 경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 며칠이나 버틸 걸로 보는가?”

제승기는 가마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 뭘 말입니까?”

“ 연우강이 금의위의 눈을 피하는 기간 말이네.”

“ 전 열흘이 한계라고 봅니다.”

“ 열흘이라 .. 짜군.”

“ 짠 게 아니라 후하게 준 겁니다.”

“ 후하게 준 거라고?”

“ 정보를 수집하는 금밀사 대원이 이천 명이고, 그들이 부리는 자들까지 합치면 정확한 인원수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간밤에 일백 명이 살해됐다면 본연의 임무는 중단하고 연우강을 찾는 데 모든 힘을 쏟게 될 겁니다. 연우강이 갈견되는 건 시간문젭니다.”

“ 연우강이 그걸 모르고 왔을 것 같은가?”

제승기는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 그도 그 정도는 파악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 전쟁터에서 오 년을 굴러먹었고, 병사로 들어가서 정천호가지 올랐던 자네. 그가 정천호를 맡았던 동안에는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네. 심지어는 흑랑기가 전멸했던 그 전투마저도 승리로 이끈 사람이었네.”

“ 하지만 북경은 금의위 텃밭입니다.”

“ 사막 또한 사막부족의 텃밭이었네, 운찬.”

“ 그가 승리할 거라고 보십니까?”

“ 가장 위쪽에 남경왕이 서 있다고 했으니까 연우강이 이길 수는 없겠지. 하지만 쉽게 패하진 않을 거네.”

“ 장담하시는군요.”

“ 내 전 재산을....”

제승기는 다시 가마 창 밖으로 드러난 하느에 눈을 맞췄다.

양성일 장군은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이 전 재산을 걸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도 그에게 전염이 된 듯 전 재산을 걸겠다고 하고 있었다.

“ 내가 모르는 다른 소식은 없는가?”

제승기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 연우강이 금향을 치고 난 다음에 이번에는 반포사 사주 조천신이 금향의 총루주 두심향을 체포해 갔다고 합니다”.

“ 죄목이 뭐라고 하던가?”

“ 두심향의 공격으로 조천신의 팔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 함정이군.”

제승기는 단정하듯 말했다.

“ 그런데 두심향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 조천신이 금옥으로 데려가지 않았단 말인가?”

“ 그런 것 같습니다.”

“ 지금부터 비단은 두 가지 일만 하게. 첫째는 두심향의 행방을 찾는 거고, 둘째는 금의위를 주시하는 거네.”

“ 연우강은....”

“ 연우강의 행방은 금의위를 주시하고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될 거네.”

“ 알겠습니다.”

갑자기 주변에서 싸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제승기는 마차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싸늘한 기운이 밀려오는 곳은 길가 쪽이었다.

제승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가마는 금의위 삼사 건물이 늘어선 곳을 지나고 있었다.

[ 금의위 놈들에게 한마디 해주게, 운찬.]

제승기는 연운찬에게 전음을 보냈다.

[ 알겠습니다. 장군.]

“ 좌군도독부 영락장군님이시다!”

연운찬의 입에서 진득한 살기가 실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가마로 향하던 싼르한 기운이 눈 녹듯 스러졌다. 가마는 빠른 속도로 대로를 따라 멀어졌다.

그런 가마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그는 부사주 이여천이었다.

가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여천은 건물 안으로 몸을 날려갔다.

“ 제기랄!”

안으로 들어선 이여천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정원 구석에 늘어서 있는 백여 개의 거적들.

그 거적 아래쪽에는 소천산에서 수거해 온 시체들이 놓여 있다. 그 시체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구토가 치민다.

소천산에 나가 있던 위사들의 시체는 두 장소에 흩어져 있었다. 천년호 부근에 이십여 구가 있었고, 나머지 팔십여 구는 안가 정원에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목은 잘려나가 있고, 팔과 다리는 엄청난 힘으로 잡아 뽑은 것처럼 뜯겨 나가 있었다. 뜯겨 나간 팔다리는 누구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었고, 머리는 발로 밟아 버린 것처럼 깨져 있었다.

태어나 그렇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구석으로 뛰어가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그런데 그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소천산 안가와 비슷한 정원을 보거나, 어두운 밤에 혼자 있게 되면 어김없이 그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 빌어먹을!"

정원을 가로지른 그는 사주 조현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렸다.

" 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보고해라."

안에서 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방금 영락장군 제승기의 가마가 돌아가는 걸 보았습니다. 사주."

"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부터는 긴한 이야기를 나눌 참이다."

조현은 밖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 주변을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주."

이여천이 물러가자 조현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조현이 받은 보고는 세 가지였다. 양성일의 집이 불태워진 것과, 소천산에 있던 금의위 백 명의 살인 사건, 그리고 금향의 루주 두심향의 체포가 그것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자가 가장 짜증이 나는 경우는 어떤 일이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경우다.

지금도 그랬다.

연우강이 금향에 나타났다가 한바탕 휘젓고 떠났다는 보고를 접한 후 그의 다음 행로를 예측해 보았다.

먼저 연우강이 만날 사람은 유설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북경에서 금의위 눈을 피하는 방법은 동창과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양성일의 시체와 집을 태운 다음 소천산에 있던 금의위 일백 명을 잔인하게 도륙해 버렸다.

그런 다음 당백호에게, 왼손잡이에 도를 쓰는 자에게 그 광경을 그대로 전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왼손잡이에 도를 쓰는 자.

그는 다름아닌 양성일을 살해한 육양이다.

연우강은 양성일의 시체를 보자마자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것과 사용하는 무기가 도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뛰어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현은 시선을 돌려 육양을 보았다.

" 놈은 지금 어디 있나?"

시선이 마주치자 육양이 물었다.

조현이 고개를 저었다.

" 금밀사 전 대원이 놈을 찾고 있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

" 맞네. 어제부터 눈에 불을 켜고 놈을 찾고 있네."

" 그런데?"

" 사라졌네."

조현은 양손을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 동창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는데, 사라졌단 말인가?"

" 유설연을 감시하는 밀사의 수가 백 명이네."

" 그쪽으로는 오지 않았다는 말이군."

" 북경을 떠나지 않는 이상 놈을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네. 지금은 연우강 그놈보다는....."

조현은 조천신을 보았다.

금향에 대한 자료를 달라고 해서 간밤에 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 길로 금향으로 가서 두심향을 체포한 것이다.

" 금의위 사주를 이렇게 만든 계집이네. 그리고 반포사 대원 이십 명이 죽임을 당했네."

조천신은 부러진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 그 일로 인해 우리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네."

" 그럼 금의위 사주와 대원을 공격하여 해를 입힌 계집을 그대로 두란 말인가?"

" 그대로 두라는 게 아니네. 문제가 있으면 체포해야지, 문제는 그녀를 금옥으로 투옥하지 않고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네. 그건 다른 자들이 우릴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네."

" 사적으로 조사할 일이 있을 뿐이네."

" 우리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

" 그렇네."

조천신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현과 육양이 섭섭하게 생각하겠지만 전국옥새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어쩌면 우린 시체에 가까운 두심향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먼."

조현은 조천신을 가만히 보았다.

두심향을 숨겨두었다는 건, 조천신이 알고 싶어하는 어떤 사실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 된다.

만일 두심향의 머릿속에서 그 비밀을 끄집어내게 되면 조천신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비밀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인멸구다. 하지만 두심향은 죽여 없애기에는 너무 거물이다. 결국 그녀를 살려둬야 하는데, 그녀를 살려주면서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뇌호혈을 파괴하여 바보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시체에 가까운 두심향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겠네. 지금은 그냥 넘어가주게."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튼 서둘러주게. 오군도독부나 동창에서 알게 되면 당장 윗사람들을 동원할 거네. 그럼 우리만 곤란해진다는 걸 명심하게."

" 알았네. 그럼 난 가보겠네."

조천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조천신이 나가자 조현과 육양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한참동안 차를 마시던 육양은 조현을 보았다.

" 자네도 숨길 텐가?"

" 조 사주가 자해를 하면서까지 두심향을 체포한 이유 말인가?"

조현과 육양 두 사람은 조천신이 두심향을 체포하기 위해 자해를 감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그렇네."

육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십 년 전에 금향으로 집어넣었던 관무평이란 자와 관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자세한 건 알지 못하네."

" 관무평?"

" 두심향의 정체를 캐기 위해 미남계를 썼는데, 그때 동원된 자네. 그가 실종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네 앞에는 내가 아니라 관무평이라는 자가 앉아 있을 거네."

" 대단한 자였나 보군."

" 조천신 사주와는 절친한 친구로 알고 있네."

" 그럼 그의 복수를 위해 두심향을 납치했다는 말인가?"

" 그랬다면 좋겠네만....."

" 아니란 말인가?"

" 자네 같으면 십 년 전에 죽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사주자리를 걸 수 있겠는가?"

" 절대 그럴 수 없지."

" 맞네. 육 사주. 우리처럼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족속들은 친구나 가족 또는 대의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지 않네. 우리가 우리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경우는,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를, 더 많은 권력을, 원할 때뿐이네."

" 그럼 조 사주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뭔가가 두심향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말이구먼."

" 조 사주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비밀이라면 우리도 인도해 줄 거네."

" 조 사주가 두심향을 숨겨둔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가?"

" 밀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참이네."

" 우리 둘은 함께 가는 건가?"

육양은 조현을 보며 물었다.

"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조현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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