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05화 (205/232)

제 9장 장의사에서 생긴 일

쉼 없이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북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살인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된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머리가 잘리고, 두 팔과 두 다리가 잘려나간 시체들은 온 집안에 흩어져 있었다고 하였다.

하룻밤 만에 죽임을 당한 자들도 엄청났다.

적게는 이십 명부터 시작해서 많은 날은 백여 명에 육박한 날도 있었다. 도살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살인 사건이 매일 밤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던 홍등강에는 술꾼들이 자취를 감췄고, 술꾼을 맞이하기 위해 켜두었던 불이 꺼지고, 풍악이 사라졌다.

죽음의 도시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부터, 물러갔던 원나라 잔당들이 다시 북경으로 들어왔다는 말까지. 흉흉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죽일 놈!"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서류를 노려보는 조현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연우강이 북경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은 것은 보름 전이고, 놈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십삼일 전이다. 그런데 놈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금밀사 제일당주 소속 밀사 육백 명과 그들의 가족이 몰살을 당하고 만 것이다.

북경은 유령의 도시로 변했고, 육부를 비롯한 오군도독부 도독들은 범인을 잡아내라며 연일 질책을 해대고 있다.

" 조 대인과 육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그때 밖에서 부사주 이여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모셔라!"

조현은 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 후 조천신과 육양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 또 살인인가?"

" 살인 사건이야 우리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 그런데 얼굴들이 왜 그 모양인가?"

" 도망자 때문이네."

조천신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으며 말했다.

" 도망자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조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척살사 대원들 중 일부가 말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네."

" 급한 사정이 생긴 게 아닌가?"

" 아무리 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해도 가족이 전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 가족이 전부 없어졌단 말인가?"

" 그렇네."

육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네도 마찬가진가?"

조현은 조천신을 보았다.

" 그렇네."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 놈 때문이라고 보는가?"

" 위사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네. 도망치기 전 날까지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네."

" 그럼 연우강의 살수를 피해 도망쳤다고 봐야겠군."

조현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연우강이 금밀사 밀사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참혹하게 살해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놈은 지금 상황을 노리고 그들을 없앤 것이었다.

" 놈을 서둘로 잡아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우린......"

" 접니다. 사주."

그때 부사주 이여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그러느냐?"

조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이여천의 목소리가 잔뜩 얼어있다는 느낌이 든 탓이었다.

" 간밤에 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 어디냐?"

" 동쪽입니다."

" 희생자는?"

" 그게......"

이여천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제삼당주 소속 밀사 백여 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오십 명은 집에서 쉬다가 가족과 함께 당했고, 나머지 오십 명은 근무지에서 당했습니다."

" 가족도 전부?"

" 그렇습니다."

이여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안내하라!"

" 마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이여천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 함께 가겠는가?"

조현은 조천신과 육양을 보며 물었다.

" 그렇게 하세."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네."

육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알았네. 그럼 조 사주와 나마 가도록 하겠네."

세 사람은 집무실을 나섰다. 밖에는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 내일 보세."

조현은 마차에 오르며 말했다.

조현에 이어 조천신이 오르자 마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던 육양은 한편에 대기하고 있는 가마에 올랐다.

가마는 곧바로 출발했다.

가마를 둘러멘 자들은 여덟 명이었다.

발을 맞춰 천천히 걸어가던 가마꾼들의 움직임이 금밀사 건물을 나서면서 점점 빨라졌다.

" 알아봤느냐?"

의자에 등을 기댄 육양은 앞쪽을 향해 물었다.

[ 관무평이란 자를 기억하십니까?]

대답은 전음으로 들려왔다.

' 응?'

육양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가 방금 질문을 한 자는 가마를 메고 있는 여덟 명 중 맨 앞에 있는 자였다. 정대해란 자로 광통이란 별호로 불리고 있는데 육양의 장자방이었다.

육양의 눈에 이채가 서린 건 정대해의 전음 때문이었다. 전음을 보냈다는 건 옆에 있는 이들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대해가 입에 담은 관무평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 들어본 적 없다.]

육양은 전음을 보냈다.

[ 십 년 전 금의위에서 금향에 들여보냈던 잡니다.]

[ 왜 들여보낸 거지?]

[ 두심향이 거뒀던 기녀들 중 상당수가 원나라 공신들의 후손이었습니다.]

[ 두심향의 정체를 캐기 위해서였습니다. ]

[ 미남계를 사용한 거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관무평은 얼굴이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최고 실력을 갖춘 인재였습니다. 만일 그 일이 성공했더라면 지금 조현 사주 대신 관무평이 금밀사를 거느리고 있었을 겁니다.]

[ 죽임을 당한 게냐?]

[ 서류상으로는 실종으로 처리돼 있었습니다.]

[ 두심향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구나.]

[ 십중팔구는 그럴 겁니다.]

[ 그 관무평이란 자와 조천신이 두심향을 납치한 사건과 관련이 있느냐?]

[ 조천신 사주와 관무평은 훈련소 동기였고, 아주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 그럼 친구의 복수를 위해 두심향을 납치했다는 말이냐?]

[ 그렇지 않다는 건 사주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쿡!"

육양은 피식 웃었다.

정대해의 말이 맞다. 권력을 탐하는 자는 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경우는 있어도 친구를 대신해 죽는 경우는 절대 없다. 더구나 관무평은 십 년 전에 실종, 아니 살해됐다. 그런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한다는 건 아주 멍청한 짓이다.

[ 게다가 두심향은 육부의 수장들인 상서는 물론이고 오군도독부 도독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팔을 부러뜨리고 부하를 희생시키는 꼼수를 썼다고 해도, 두심향을 체포하는 건 그동안 쌓았던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큰 모험입니다.]

[ 그렇지.]

[ 더 재미있는 사실은 체포한 두심향을 금의위 금옥으로 집어넣지 않고 숨겨두었다는 겁니다.]

[ 그 이유를 알아냈느냐?]

[ 그래서 그동안 두심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팠습니다. 물론 금밀사에서 조사하다가 묻어버린 내용을 중점적으로 판 거였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었습니다.]

[ 어떤 추론이냐?]

[ 두심향이 원래 성이 패아지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 원나라 황제의 성이란 말이냐?]

[ 원나라 황제의 성이 아니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조천신이 그 사시을 알고 두심향을 나비해 갔단 말이냐?]

[ 조천신 사주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십 년 전에 실종된 관무평이었을 겁니다.]

[ 원나라 황제의 후손을 체포하면 경력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 물론 두심향이 원나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술안줏거리가 될지언저 북경 정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금향 같은 좋은 기루를 없앴다면서 욕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심향에게 전국옥새가 있다면 달라집니다.]

[ 전국옥새라면 진시황이 화씨벽으로 만들었다는 그 옥새를 말하는 거냐?]

육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전국옥새라면 모험을 걸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성공하면 분명 앞으로 삶이 달라질 것이다.

[ 그렇습니다. 사주. 그리고 전국옥새라면 모험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 그렇겠지.]

정대해 또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자 육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양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 혼자 다 먹으려고 했단 말이지?"

육양의 눈에서 차가운 광채가 흘러나왔다.

비록 친한 친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 년 동안 거의 매일 만났고, 일에 대해 상의를 했다. 갑자기 배신감이 미려오며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 놈이 두심향을 숨겨 놓은 장소를 찾아라, 광통.]

[ 알겠습니다. 사주. 모든 인력을 전부 동원해서......]

[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갈 참이냐?]

[ 그래도 상관없겠습니까?]

정대해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쉬운 길이라는 말은 조천신 최측근에게 직접 물어보는 걸 말한다. 하지만 상관의 비밀을 쉽게 밝힐 부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자들로부터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고문은 필수다. 게다가 고문 후에는 살인멸구를 해야 한다.

' 그래도 상관없습니까?' 라는 말은 반포사 대원들을 잡아서 고문을 해도 상관없냐는 뜻이다.

[ 며칠 내로 조현은 조천신과 나에게 강한 무공을 지닌 대원을 지원해 달라고 할 게다. 하지만 조천신이나 나는 직접 나설 수는 없다. 조현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니까 무인을 지원해주는 선에서 끝낼 수밖에 없어. 그때 우리 척살사 책임자는 광통 네가 될 게야.]

[ 그럼 반포사에서는 포밀영의 수장인 우포 금철이 나올 가능성이 높겠군요.]

[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니라 그놈이 올 게야. ]

[ 고문을 한 후 연우강의 짓인 것처럼 꾸미면 완벽하겠군요.]

[ 머리 좋은 녀석을 부하로 거느리면 이래서 좋아. ]

육양은 싱긋 웃으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 본가로 가시겠습니까?"

" 아냐, 별장으로 가자."

" 알겠습니다. 사주."

정대해는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곧 가마를 멘 자들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가마가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시각.

조현과 조천신을 태운 마차는 동쪽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마차 주변에는 조현과 조천신을 호위하는 자들이 경공을 펼치며 따르는 중이었다.

조현은 마차 창을 통해 드러난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얼마나 짙게 덮여 있는지 하늘도 보이지 않고 금세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 으음!"

조현은 신음을 내뱉고는 창문을 닫았다. 그 소리에 조천신이 고개를 돌렸다.

" 왜 그러는가?"

" 답답해서 그러네."

" 연우강을 잡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건가?"

" 자네와 육사주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몰라도 도와준다면 잡게 되겠지."

" 도와달라는 말보다 더 무섭군."

조천신은 조현을 빤히 보았다.

" 우리 금밀사는 놈의 부모를 납치하는 데도 관여하지 않았고, 양성일을 없애는 데도 관여하지 않았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우리 금밀사를 먼저 공격하고 있네. 왜 그러는지 아는가?"

" 금의위 전체가 목표란 말인가?"

" 바로 그거네. 놈은 금의위 전부를 노리고 있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금의위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금밀사를 먼저 없애는 중이네."

" 금밀사를 없애고 나면 다음은 우리란 말이군."

" 자네들은 날 도와줄 수밖에 없네."  " 우리가 힘을 합치면 놈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 없애지 못하면 우리가 당하는 수밖에 없겠지."

" 그렇군."

" 문제는 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없애고 난 다음이네. 지금까지 죽은 밀사의 수가 칠백 명이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네."

" 연우강을 잡지 못하면 우리 셋 다 위험하다는 결론이군."

" 맞네. 연우강을 없애고 나서 놈의 배후로 동창을 지목하지 않으면 우린 이거네."

" 잘만 하면 눈엣가시 같은 유설연 그 계집놈을 없앨 수 있겠구먼."

" 우리 미래를 걸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네."

" 워어!"

히히힝!

현장에 도착한 듯 마차가 멈췄다. 마차가 멈춘 곳은 금밀사 제삼당주에서 사용하는 안가 중의 한 곳이었다.

문이 열리자 조현과 조천신은 마차에서 내렸다.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지독한 비린내와 화장실에서나 맡을 수 있는 악취였다. 눅눅한 대기와 바람 한 점 없는 날시 때문인 듯 냄새는 더욱 지독했다.

" 어서 오십시오, 사주!"

조현이 내리자 제삼당주 노거성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어디냐?"

" 후문 쪽입니다."

노거성은 조현과 조천신을 살인 현장으로 안내했다. 살겁의 현장은 후문 바로 앞이었다.

" 욱!"

조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사주가 되면서 시체와 멀어지긴 했지만 과거에는 수시로 접했던 게 시체였다. 하지만 대문앞에 쌓인 시체는 그도 난생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잘려나간 머리는 대문 왼편에 흩어져 있고, 팔과 다리는 오른편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몸통은 대문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배설을 했는지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도살장의 전경을 보는 듯했다.

급기야 조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치미는 구토를 참지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뛰어가 고개를 숙였다.

" 우엑!"

입이 쩍 벌어지면 아침에 먹은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역류돼 나왔다.

" 사주!"

부사주 이여천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현을 불렀다.

" 체한 것뿐이야. 괜찮아."

자리에서 일어난 조현은 천을 꺼내 입 주위를 닦았다. 그러고는 노거성을 보았다.

" 마을 사람들이 발견했습니다."

노거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밀사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주변을 폐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니 이곳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가옥마저도 폐쇄하지 못했다.

" 벌써 소문이 퍼졌을 거란 말이냐?"

" 살인 사건에 대한 소문을 낸 자가 연우강이었습니다."

" 밀사들은 동요하지 않느냐?"

조현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은 목숨보다 권력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권력을 쥐어본 적이 없는 말단들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더구나 가족까지 몰살을 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면 반포사나 척살사 대원들처럼 두려움에 도망치고 말 것이다.

" 그건 아직......"

노거성은 고개를 저었다.

" 아직 조사를 해보지 않았단 말이냐?"

"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 조용히 조사를 해 보거라."

" 알겠습니다. 사주. 그런데 시체는....."

" 일단 관을 준비해서 시체를 담도록 해."

" 머리와 몸통은 어떻게 할까요?"

" 가능하면 맞춰봐. 정 안되면 그냥 담도록 하고."

" 알겠습니다."

노거성은 고개를 숙이고는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 봉일, 가서 관을 사 와야겠다."

노거성이 지시를 내린 자는 상주 중 한 명인 오봉일이었다.

" 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봉일은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장의사는 서쪽으로 이십 리가량 떨어져 있는 쇄구촌에 있다. 북경 서쪽을 도맡다시피 하는, 상당한 규모의 장의사지만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간밤에 죽어간 자들이 너무 많다.

" 늦더라도 관을 만들어 오도록 해."

" 알겠습니다. 당주."

오봉일은 부하들을 불러들였다. 잠시 후 제삼당주 소속 백여 명이 안가를 나섰다. 대문을 나선 백여 명은 경공을 펼쳐 서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들이 묘봉산 아래쪽에 위치한 쇄구촌에 도착한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쇄구촌은 오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 좌우측으로는 밭이 늘어서 있다. 가옥은 그 밭들 사이사잉 자리해 있었다.

오봉일은 시선을 들어 장의사를 찾았다.

" 저깁니다."

장의사를 알고 있는 두 부하 중 한 명이 산기슭에 있는 커다란 장원을 가리켰다. 아니 장원이라고 하기보다는 거대한 성 같았다.

" 원나라 때 대부호의 성이었습니다. 저 성을 세우고 수시로 묘봉산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 묘봉산에 뭐 볼 게 있다고."

오봉일은 피식 웃었다.

" 묘봉산에는 도교 사원이 꽤 됩니다. 사월에는 장미가 피어서 온 산이 붉게 변하고요."

" 아름답다고?"

"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 그런 것들에 열정을 쏟으니까 나라가 멸망하지. 가자."

오봉일은 장의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오봉일 일행은 장의사에 도착했다.

장의사는 성처럼 생긴 게 아니라 정말로 성이었다. 돌로 쌓아올린 담은 삼 장에 달했고, 좌측 끝에서 우측 끝까지 거리는 이십 장에 달했다. 담의 중앙에는 커다란 문이 달려 있고, 그 위에는 장의라는 글이 쓰인 현판이 달려 있었다.

현판을 바라보던 오봉일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체온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든 탓이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흐흡!"

심호흡으로 사념을 몰아낸 오봉일은 부하를 보았다.

그러자 부하 한 명이 앞으로 나와서는 문을 두들겼다.

쿵쿵쿵! 쿵쿵쿵!

" 주인장 있느냐?"

사내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사내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의사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아무도 없느냐?"

이번에는 더 크게 불렀다.

" 누구시오?"

대답은 장의사 안쪽이 아니라 묘봉산 쪽에서 들려왔다. 묘봉산 쪽에서 커다란 우마차 한 대가 나무를 가득 실은 채 이편을 향해 오고 있었다.

' 검은 옷?'

오봉일은 움찔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검은 옷을 보자마자 연우강이 떠올랐던 것이다. 게다가 목소리로 보아 상당히 젊은 자였다.

" 그럴 리가 없지."

오봉이른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장의사니까 당연히 검은 옷을 입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따. 오봉일은 검은 옷을 걸친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 네가 장의사냐?"

" 그렇습니다."

검은 옷을 걸친 사내는 마차를 끌고 장의사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달라지긴 했지만 검은 옷을 걸친 자는 처음 오봉일이 예측한 것처럼 연우강이었다.

" 관을 맞추러 왔다."

"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 당장 오십 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염을 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 오늘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이 죽었는지 모르겠군요. 아침에 주문 받은 관이 삼백 개나 되는데......"

" 삼백 개나 만들어야 한단 말이냐?"

오봉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예약이 삼백 개나 밀려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삼백 개의 관 주인들 또한 금밀사 밀사들과 그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 그렇습니다."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문의 두께는 무려 석 자에 달했다.

오봉일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관 도둑이 많아서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문을 활짝 열고는 우마차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오봉일 일행이 따랐다.

" 으스스하네."

주변을 둘러보던 오봉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는데 내부의 각 벽에는 수십 개의 관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마치 볕조차 뜨지 않는 밤에 공동묘지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빈 관일뿐입니다. 나리."

연우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우마차를 세워놓고 문을 닫았다.

" 문은 왜 닫는 거냐?"

갑자기 내부가 어두워지자 오봉일은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 관은 망자들의 집입니다. 그들은 햇빛 아래로 나올 수 없지요. 그래서 관도 가급적이면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 그런데 관을 가져가려면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

" 삼백 개를 만들고 난 다음에 내가 주문한 걸 만들 수 있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 저 관들은 뭐냐?"

오봉일은 벽면에 세워져 있는 관들을 가리켰다.

" 저것들은 적송과 향나무로 만든 관입니다."

" 고급 관이란 말이냐?"

" 고급 정도가 아니라 최고급이지요. 개당 이백 냥씩 나갑니다. 물론 그 이백 냥에는 비단으로 만든 수의가 포함돼 있습니다."

" 이백 냥이라고?"

" 그렇습니다. 나리."

" 좀 싸게 할 수는 없느냐? 수의는 굳이 비단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 그렇다고 해도 염할 비용까지 합치면 여전히 이백 냥입니다."

"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면 금액이 할인되는 걸로 알고 있다."

" 좋습니다. 그럼 딱 잘라서 백 냥으로 하지요."

" 지금 이천 냥을 지불하고, 나머지 삼천 냥은 내일 인편으로 보내도록 하마."

오봉일은 품속에서 전표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 오천 냥이면 개당 오십 냥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리."

" 무슨 소리냐? 난 관 백 개가 아니고 오십 개를 달라고 했잖느냐?"

" 그건 네 생각이고, 난 백 개를 팔아야겠는데, 어떡하지?"

" 뭐라고?"

오봉일은 얼굴이 흠칫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의사는 잔뜩 겁먹은 듯한 얼굴로 쩔쩔맸다. 그런데 느닷없이 말투가 반말로 바뀌더니, 이제는 전신에서 서늘한 기운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놈은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오봉일이 알고 있는 자들 중, 검은 옷을 입고 젊은데다 무공을 익힌 무인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 설마 연우강?"

오봉일은 경악했다.

설마 연우강이 이곳에서 기다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늘 그렇듯 실력의 고하를 떠나 인원수가 많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오봉일의 입에서 연우강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밀사 밀사들은 무기를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밀사들의 움직임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하지만 그들이 채 연우강 앞에 서기도 전에 섬뜩한 소성이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촤르르!

그것은 연우강의 오른손에 있는 사망묵환이었다.

수십 개의 환영이 나타나고 그 환영들은 이내 밀사들의 목으로 모습을 감췄다.

" 으악!"

" 아악!"

" 크아악!"

둥실!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잘려나간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 쉴 새 없이 몰아쳐라!"

오봉일 또한 연우강과 싸웠던 대부분의 무인들이 저지른 실수를 저질렀다. 지금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도망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격을 명했다. 아니 그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동료를 잃은 밀사들은 이미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만일 내공이 어느 정도 소모됐거나, 극한의 두려움을 느꼈다면 밀사들은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단전에는 내공이 꽉 차 있었고, 동료 다섯 명의 죽음은 두려움을 야기하기엔 너무 약했다.

" 마음에 드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위사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철컥! 철컥! 철컥!

양손 손가락에서 사망낭조가 모습을 드러내고, 허리춤에 있는 손괭이의 낫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고 찌르고, 자르고 찍었다.

사마묵환이 환영을 남길 때마다 머리가 떠오르고, 낫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목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손괭이가 허공을 찍을 때마다 뇌수가 튀어오르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일방적인 도살은 일각 이상 이어졌다.

그리고 잔뜩 겁을 먹은 밀사들은 문을 향해 주춤주춤 물러났다.

" 너희들은 절대 도망가지 못해. 왜냐면 내게로 와야 하니까."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마라천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 어?"

" 어!"

" 아, 안 돼."

밀사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우강을 향해 움직여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 내공을 끌어올려 미지의 힘에 대항했다.

하지만 그 힘은 점점 강해지고 밀사들이 끌려가는 속도는 빨라졌다.

휙!

그러다가 밀사 한 명이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연우강을 향해 날아갔다.

" 아, 안 돼!"

밀사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 너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연우강은 상체를 약간 숙이면서 낫을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 크아악!"

밀사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밀사의 몸은 머리부터 시작해서 사타구니까지 한 번에 잘려나갔다. 두 조각으로 분리된 사내의 몸은 연우강의 마라천력으로 끌어오던 여력을 받아 뒤편으로 날아갔다.

철벅!

휙!

밀사의 몸통이 뒤편에 세워진 관에 부딪치는 사이에 또 다른 자가 연우강을 향해 날아왔다. 그 밀사 역시 본인의 의지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힘에 의해 끌려가는 중이었다.

연우강의 손에 들린 낫이 허공을 갈랐다.

" 아악!"

철벅!

밀사들이 날아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연우강은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낫을 휘둘렀다. 그런 연우강을 질린 얼굴로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그는 밀사들을 이끌고 온 오봉일이었다.

" 이건....."

오봉일은 주변을 보았다. 마치 뒤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밀사들은 연우강을 향해 밀려가고 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휙!

" 으아악!"

휙! 휙!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내부를 가득 채웠다.

" 노, 놈은 혼자다. 물러나지 말고 공격하라!"

오봉일은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오봉일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도망칠 준비를 하면서 부하들에게 적극적인 공격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밀사들은 조금이라도 연우강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마에 힘줄이 뿔뚝 불거지고 땀까지 흘리는 자도 있었다.

휙! 휙!

그러한 와중에도 밀사들은 계속 연우강을 향해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밀사들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버텼다.

그러자 끌려가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헉!"

" 허억!"

밀사들의 몸이 뒤편으로 날아갔다. 온몸을 끌어당기던 힘이 이번에는 반대로 작용한 것이었다. 전력을 다해 끌어당기는 힘에 대항하여 버티고 있는데 갑자기 그 힘이 풀어지면 뒤로 물러나기 마련이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끌어당겼던 마라천력이 밀사들을 밀어붙였다.

휙! 휙! 휙! 휙!

밀사들은 마라천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뒤편으로 날려갔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

" 윽!"

" 억!"

" 악!"

뒤쪽 벽에 부딪친 밀사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가 깨진 자들부터 시작해서 뼈가 부러진 자들까지, 밀사 대부부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몸이 끌려갔다.

이젠 버틸 여력도 없었다. 밀사들은 빠른 속도로 연우강을 향해 날아갔다. 연우강을 향해 끌려가는 밀사들의 모습은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 아악!"

" 으악!"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두 조각으로 잘려나간 시체들이 뒤편으로 쌓였다. 그 시체들 속에는 상주 오봉일도 포함돼 있었다.

철벅!

마지막 남은 자의 시체가 두 조각으로 잘려나가고 내부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연우강은 낫과 손괭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사망월반 사이 고리에 끼워넣었다.

그런 다음 관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관 좌우측에 댄 판자를 뜯어냈다.

" 언제까지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있을 거야?"

주변에 누가 있는 것일까.

연우강은 관을 바닥으로 내려놓고는 좌우측에 있는 판자를 뜯어내며 말을 뱉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 숨어서 사내를 지켜보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다시 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그것도 다 큰 처녀가."

연우강의 손이 세워져 있는 관 오른쪽으로 쑥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손을 뻗어내는 관 바로 옆은 어둠만 있을 뿐 숨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 헉!"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깜짝 놀란 듯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연우강의 손이 들어간 곳은 여전히 어둠뿐이었다.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봉연이었다. 봉연이 연우강을 발견한 것은 아침 무렵이었다. 서쪽에서 도살이 났다는 보고를 받고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러다가 우마차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는 연우강을 발견했다.

얼굴을 바꾸었지만 유설연과 우성연으로부터 수없이 들었다. 몸 주변에 흐르는 기운만으르도 그가 연우강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 안에 숨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혼자 오지 않고 금의위 밀사 백여 명과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유설연이 왜 연우강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는 피도 눈물도 인정도 자비도 없는 냉혹한 도살자였다.

동창과 금의위 위사들을 보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연우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 내가 아주 멋진 걸 잡은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연우강은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 끄응!'

봉연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유설연과의 내기 때문이었다.

황제조차도 우습게보는 유설연이 인정한 유일한 사내.

내기도 내기지만 연우강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우강이 손을 뻗어오자 곧바로 가슴을 들이믹었다. 보통 사내들은 의도하지 않는 순간에 여자 가슴을 틀어쥐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되고, 그 놀라는 순간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은신술을 펼치는 무인을 위해 개발한 옷으로 몸에 찰싹 달라붙을 뿐 아니라 만지면 맨살을 만지는 것처럼 얇다.

그런데 연우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슴을 그러쥠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유근혈을 누르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유근혈의 위치는 유두에서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다. 연우강은 유근혈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채 가슴을 더듬는 중이었다.

' 사내인 이상 허점을 보일 수밖에 없을 거야.'

봉연은 호흡을 멈춘 채 연우강의 엄지손가락이 유근혈에서 떠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연우강의 엄지손가락은 그곳에서 떠나지 않았다. 약간 떨어졌다 싶다가도 금세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 계속 해보겠다는 말 같은데."

연우강의 입가에서 맺힌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는 오른편으로 조금 이동해서는 왼손을 내밀었다.

' 저걸......'

봉연은 연우강의 왼손을 노려보았다.

연우강의 왼손이 다가오는 곳은 아래쪽 은밀한 부위다. 곤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은신술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봉연은 은신술을 풀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손에 내공을 잔뜩 모은 채 기다렸다. 연우강이 움찔하는 순간 곧바로 내공을 쏟아낼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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