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06화 (206/232)

제 10장 생지옥

턱!

다가온 연우강의 왼손이 아래쪽을 장악했다.

" 젠장!"

봉연은 욕설을 뱉으며 은신술을 풀었다.

아래쪽으로 손을 내민 연우강은 엄지손가락으로 중극혈을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더듬은 것이었다.

은신술이 완전하게 풀리자 봉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 누구?"

연우강은 여전히 봉연의 가슴과 아래쪽을 더듬으며 물었다.

" 이제 이건 좀 놔주는 게......."

봉연은 가슴을 가리켰다.

" 도무지 손이 떨어질 생각을 안해. 아무래도 네 몸에는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나 봐. 그리고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연우강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 이러다가 제가 자자고 하면 어쩔 건데요?"

"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해봐야지."

" 그럴 가치가 있어요?"

"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거잖아."

" 풋!"

봉연은 피식 웃었다.

묘하게 상대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 난 봉......"

하지만 봉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느닷없이 입이 마비된 것처럼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 왜?'

봉연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네가 정체를 밝혀 버리면 난 이 즐거움을 잃게 되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 이제 그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봉연이에요. 동창의 자밀원 원주고 소제독을 모시고 있어요. ]

봉연은 싱긋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 이럴 땐 분위기를 맞춰 주는 여자가 좋은데."

연우강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뗐다.

" 그런데 자밀원이면 유 공공 직속 아냐?"

" 지금은 유 공공보다 소제독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됐거든요."

" 그럼 설연 그놈이 권력을 쬐끔 더 쥐었다는 거네?"

연우강은 관을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 조금 정도가 아니에요. 연 공자. 소제독의 위치는 이미 유 공공을 넘어섰어요."

" 내가 보기엔 쬐끔이야. 권력을 쥐었다는 말을 하려면 황제 낭심을 쥐고 흔들 정도는 돼야 하는 거야. 더구나 엉덩이까지 내줬잖아."

" 금의위와 오군도독부가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해요."

" 머잖아 가능하게 될 거야."

" 그건 연 공자의 바람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지금 뭐 하는 거죠?"

" 저것들을 배달할 상자를 만들려고."

연우강은 밀사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 한꺼번에 다 담을 거예요?"

" 응!"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럴 거면 관을 부술 필요는 없잖아요."

" 좋은 방법 있어?"

" 우마차 위에 관을 차곡차곡 쌓은 다음 가운데를 몽땅 잘라서 들어내 버리면 되잖아요."

" 그거 좋은 방법이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우마차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마차 위에 있던 통나물들이 일제히 들어올려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짐을 전부 내린 다음 이번에는 벽면의 관으로 시선을 주었다.

둥실!

관들은 일제히 떠올라 우마차 위쪽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 무슨 힘이죠?"

봉연은 놀란 눈으로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지금 연우강이 발휘하는 저 힘은 조금 전 밀사들을 끌어당겼던 그 힘이다. 무공과는 다르게 보이는 힘의 정체가 궁금했다.

" 일단 작업부터 하자."

이번에는 조금 전 분리해 놓은 판자로 시선을 주었다. 판자 역시 둥실 떠오르더니 쌓아놓은 관 측면으로 나아가 붙었다.

" 못 박아!"

" 제가요?"

" 그럼 네가 잡고 있을 거야?"

" 지금 연 공자는 잡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 잡고 있는 거 맞아. 할 거야, 말 거야?"

" 아, 알았어요."

봉연은 탁자 옆에 있는 못 상자를 가지고 왔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건 전부 나무못이었다.

" 들어올려 줘?"

연우강은 봉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 그래 주면 좋죠."

봉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집어 들었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을 분산하여 봉연을 들어올렸다.

판자 맨 위쪽에 당도하자 봉연은 나무못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 엉덩이는 가슴보다 더 멋져."

연우강은 싱긋 웃었다.

" 흥!"

봉연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무못을 밀어 넣느라 엉덩이를 쭉 내민 자세는 민망한 자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봉연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엉덩이를 더욱 내밀어 연우강을 자극했다. 연우강을 제압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던 유설연과의 내기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면에 두 개의 판자를 대자 겹쳐 쌓은 관은 튼튼하게 고정됐다. 그런 다음 연우강은 그녀를 더 높이 들어올렸다.

" 자르라고요?"

" 이왕 시작했는데 마무리까지 해야지."

" 알았어요."

봉연은 허리를 감고 있던 요대를 가볍게 당겼다. 그러자 하늘거리는 연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기를 주입하자 빳빳하게 서더니 곧 반 장 길이의 검강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모서리에 검을 푹 찔러 넣었다.

" 아래로 이동시켜 줘요."

" 알았어."

연우강은 그녀를 천천히 뒤로 이동시켰다.

" 어딜 만지는 거예요?"

봉연은 연우강을 홱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뭔가가 엉덩이를 잡아끄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연우강은 어깨를 으쓱했다.

" 힘을 특정 부위에 집중하지 말란 말이에요. 꼭 만지는 것 같잖아요."

" 알았어."

연우강은 다시 봉연을 당겼다. 하지만 그의 마라천력은 여전히 특정 부위에 집중돼 있었다.

" 하여튼!"

봉연은 연우강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검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관 가장자리를 따라 칼집을 내고 안쪽을 들어내자 커다란 상자가 만들어졌다.

연우강은 그 안에 시체를 집어넣었다.

" 그거 혹시 마라천력이에요?"

이제야 생각난 듯 봉연은 물었다.

" 가자!"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봉연을 들어올려 마차에 태웠다. 마부석에는 하햔 천으로 싼 궤짝이 놓여 있었다. 봉연의 자리는 사망궤 위쪽, 즉 마부석이었다.

" 저, 저보고 몰라고요?"

" 날 도와주기 위해 온 것 아니었어?"

연우강은 봉연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그렇긴 하지만, 옷이 이래서...."

봉연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얇은 옷을 걸친 바람에 몸매는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다.

" 번영로에 도착하면 어차피 밤이 될 거야."

" 버, 번영로로 가요?"

봉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번영로는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연우강의 살인 행각 때문에 북경이 유령 도시로 변하고, 밤에는 대부분 거리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 없지만 번영로만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 응!"

" 정말?"

" 내 무릎에 앉아서 몰고 갈래?"

" 아, 알았어요."

봉연은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가 천천히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소가 대문 앞에 다가서자 문이 활짝 열렸다. 연우강이 마라천력으로 문을 연 것이다.

대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의사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궁금함을 참지 못해 찾아온 마을 사람들이었다.

" 대인!"

그 중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마을의 촌장인 양 노인이었다.

" 내가 가져가는 관 값입니다."

연우강은 오봉일이 준 주머니를 양 노인에게 던졌다.

" 저 안에는....."

" 바닥에 피가 많이 떨어져 있을 겁니다. 그것도 좀 치워주시고요. 그리고 관리들이 나와서 날 찾으면 다실대로 말하세요."

" 알겠습니다. 대인."

" 수고하세요."

연우강은 봉연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 학!"

봉연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 무슨 소리냐?"

연우강은 묘한 눈빛으로 봉연을 보았다.

" 뭐가요?"

봉연은 채찍을 휘두르며 물었다.

" 내가 옆구리를 찌르니까, 콧소리를 냈잖아."

" 언제 콧소리를 냈다고 그러세요?"

" 다시 한 번 찔러볼까?"

" 한 번만 더 하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봉연은 눈을 크게 뜨고 잡아먹을 것처럼 연우강을 노려보았다.

" 흥분하기는...... 그건 그렇고, 설연은 요즘 어떻게 지낸데? 저번에 만났을 때는 곧 황제의 낭심을 쥐고 흔들 것처럼 말하더니."

연우강은 화제를 돌렸다.

" 그것도 알아요?"

봉연은 깜짝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유설연이 황제와 자는 건 정보를 다루는 자들 중에서도 최고위층이나 아는 극비사항이었다.

그런데 그걸 연우강이 알고 있었다.

" 신음을 어떻게 내질러야 황제가 뻑 가는지 가르쳐 준 사람이 나야."

" 그랬어요?"

" 잘하고 있는 모양이지?"

" 그걸 넘어서 지금은 가죽 채찍으로 두들겨 패고 있대요."

" 그거 좋지 않네."

" 왜요?"

" 엉덩이로 만족하지 못하고 맞는 걸로 나아갔다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소리잖아."

" 발전하는 건 좋은 거 아닌가요?"

" 그러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 그럼 어떻게 되는 데요?"

" 새로운 자극을 찾게 돼. 새로운 자극을 찾으면 설연은 버림받게 되고."

" 버림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 반쯤 죽여놔야 해."

" 어떻게 반쯤 죽여놓는다는 거죠?"

" 지금 때리고 있다면서?"

" 그러니까 채찍으로 반쯤 죽여놔야 한다는 거예요?"

" 봉연!"

연우강은 봉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봉연은 움찔 떨며 연우강을 보았다.

" 추워 보여서 안아주는 거니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 흥! 누가 기대한다고 그래요?"

" 아무튼..... 내가 군에서 오 년 동안 생활했다고 말했던가?"

"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신이 흑랑기 기주였다는 건 알고 있어요."

" 군에는 사내 녀석들만 있잖아."

" 그렇죠."

" 그리고 군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놈들이 많아."

" 이를 테면?"

" 여자가 없으면 여자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야."

" 동성애가 횡행했다는 건가요?"

" 그들 중 특이한 쌍이 있었는데, 한 놈은 때리는 걸 좋아하고 한 녀석은 맞는 걸 좋아했어. 그런데 맞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칠 척에 달하는 거구였고, 때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너보다 키가 작았어."

" 둘 중 누, 누가 남자였죠?"

봉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깨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 그런 것도 알아?"

연우강은 놀랍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 다, 당연히 알죠. 소제독이 때, 때리고 있잖아요."

" 그랬구나. 그런데 뭘 물었지?"

연우강은 의미심장한 얼굴을 했다.

" 둘 중 남자가 누구였나고요."

" 덩치 큰 녀석이 여자 역할을 했어."

" 그들 관계가 유지됐어요?"

" 나도 궁금했거든. 그래서 그 덩치 녀석에게 물어봤어."

" 키도 작고 볼품없는 사내와 왜 사귀느냐고 물어본 거예요?"

" 응!"

" 그랬더니요?"

" 그 녀석보다 채찍질을 잘하는 사내가 없대."

" 그러니까 채찍질 때문에?"

" 맞아. 설연도 그래야 해. 채찍질로 황제를 완전하게 죽여 놔야 해. 쉽게 말하면 채찍질을 할 때만큼은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 놔야 한다는 거야."

" 가능할까요?"

"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해서 왛제가 죽기 전까지 가게 해야 해."

"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소제독밖에 없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 보통 연인 사이는 버림받게 되면 술로 풀면 되지만 황제에게 버림받으면 바로 죽음이거든."

" 그렇군요."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소제독이 사내가 아니고 여자라면 설사 버림을 받는다고 해도 한자리는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제독은 사내. 황제는 자신이 사내를 탐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소제독을 없애려고 할 게 분명하다. 버림받으면 죽음이란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 하지만 잘만 하면 황제가 죽기 전까지는 최고 권력을 누리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마."

" 그래야지요."

봉연은 채찍을 휘둘러 속도를 냈다.

하지만 우마차라 속도를 낸다고 해도 말이 끄는 마차에 비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마차는 삼경 무렵이 돼서야 번영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삼경이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통행금지가 없는 번영로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건물 구석에 쓰러져 토하는 자들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 빨리 몰아."

연우강은 몸을 날려 마차 위로 올라갔다. 곧이어 마차 뒤편으로 시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햇다. 몸통이 떨어지고 머리가 떨어지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 뭐, 뭐야?"

건물 모퉁이에서 고개를 처박고 토를 하던 사내가 고개를 홱 돌며 소리쳤다.

하지만 우마차는 빠르게 멀어졌다.

" 저 자식이 누구냐니까... 딸국! 야, 자식아!"

사내는 멀어지는 우마차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 그런데 뭘 버리고 간 거여?"

사내는 어기적거리며 길 가운데로 걸어갔다.

" 킁! 킁킁!"

비릿한 냄새가 나는 듯하자 사내는 코를 벌름거렸다.

" 고기를 버리고 간 건가?"

사내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그런데 고기가 어째 사람처럼......"

부르르!

갑자기 사내는 온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멀어진 우마차를 보았다. 우마차가 간 방향에는 바로 앞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덩어리들이 줄줄이 떨어져 있었다.

" 으, 아아아!"

밤하늘을 뚫고 사내의 비명이 퍼져 나갔다.

" 아아악!"

사내는 계속해서 비명을 내질렀다.

" 어떤 미친 놈이야!"

" 야! 이 미친 새끼야, 잠 좀 자자."

각 기루 창문이 열리고 욕설이 날아왔다.

" 시시시, 시체다! 시체가 길바닥에 깔렸다!"

사내는 전면을 가리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덜컹!

" 야! 이 미친 새끼....."

욕설을 멈추고 기루에서 자던 손님들과 기루 주인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주춤주춤 길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 아아악!"

" 으아악!"

" 시시시, 시체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번영로에서 백여 구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그날 밤 바로 금의위로 전해졌다. 소식을 접한 조현은 곧바로 번영로로 달려갔다.

번영로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금밀사 사주 조현이었다. 번영로에는 금의위 위사들이 횃불을 밝힌 채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 으음!"

조현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생지옥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곳을 현세에 옮긴다면 지금 번영로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했다.

" 관을 구하러 갔던 오봉일 일행입니다. 사주."

먼저 도착해서 시체를 살피던 이여천이 조현 앞으로 걸어가 보고했다.

" 관을 구하러 어디로 갔지?"

" 서쪽에 있는 쇄구촌입니다."

" 그럼 그곳에서 살인을 저지리고, 시체를 이곳까지 가지고 와서 버렸다는 거구나."

" 그렇습니다. 사주."

" 운송 수단은 뭐였지?"

"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마차에서 시체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 시간은 얼마나 지났느냐?"

" 두 시진 지났습니다."

" 우마차가 간 곳은?"

" 서쪽입니다."

" 쫓고 있느냐?"

" 제삼당주 소속 밀사들을 총동원해서 서쪽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 척살사와 반포사 사주께서...."

부하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조천신과 육양이 조현 곁으로 다가갔다.

" 이게 다 뭔가?"

조천신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피비린내와 악취로 인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 관을 만드는 곳에 있다가 공격한 모양이네."

조현은 전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혼자서 백 명을 전부 없앴단 말인가?"

" 그런 것 같네."

" 이상하구먼."

조천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조현은 물었다.

" 연우강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밀사들은 백 명이나 됐네."

" 그들 중 도망친 자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단 말인가?"

" 처음엔 수적인 우세를 믿고 공격을 했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힘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게 사람 아닌가. 연우강이 손이 수십 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명도 도망치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단 말이네. 더구나 죽임을 당한 방식도 거의 비슷한 것 같고."

조천신은 두 조각으로 잘려나간 시체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 단순히 무공 실력 때문만은 아니란 말인가?"

조현은 시체를 보았다.

사실 그 부분은 그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연우강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밀사들은 백 명이나 됐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그런 경과가 나올 수가 없을 터였다.

" 밀사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뭔가가 있을 거란 말이네."

" 그러니까 자네 말은 우리가 연우강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뜻이구먼."

" 내 생각은 그렇네."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네 생각은 어떤가?"

조현은 고개를 돌려 육양을 보았다.

" 나도 조 사주와 같은 생각이네. 순수하게 무공만으로는 백 명이나 되는 무인을 같은 수법으로 살해할 수가 없네."

육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놈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관건이구먼."

조현은 서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이편을 향해 달려오는 자들이 눈에 띄었다. 조현은 눈을 가늘게 모으고 내공을 집중했다.

' 놈을 찾은 건가.......'

조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그는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의 예상대로 번영로를 향해 달려오던 자들은 밀사들이었다. 그들이 도착하고 잠시 후 이여천이 급하게 다가왔다.

" 놈을 발견했답니다. 사주."

" 어디 있느냐?"

" 우마차를 쇄구촌에 가져다준 다음 묘봉산으로 들어갔답니다."

" 묘봉산?"

" 그렇습니다."

이여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 계속 그곳에 있단 말이냐?"

" 아직 나오진 않은 모양입니다."

" 제 이 당주와 사당주에게 당장 연락을 취해 서쪽으로 오라고 해라."

" 알겠습니다. 사주."

이여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전령 두 명이 동쪽과 북쪽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 부탁이 있네."

조현은 육양과 조천신을 보았다.

" 지원 말인가?"

조천신이 말을 받았다.

" 우리 힘으로는 놈을 잡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네."

조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금밀사 밀사들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제일 당주 소속 육백여 명이 당하고, 제삼당주 소속 대원들마저 죽임을 당하고 나자 금밀사 대원의 힘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난 오백 명을 지원하겠네. 그리고 난 현장에 가지 않겠네."

먼저 수락한 사람은 조천신이었다.

" 난 척살사 대원 일천 명을 보내겠네. 물론 나도 가지 않을 생각이네."

이어 육양이 대답했다.

" 현장에 오지 않겠다는 건......."

조현은 두 사람을 보았다.

" 내가 따라가면 부하들은 자네 명령이 아니라 내 명령을 기다릴 것이네. 작전을 펼치는 데 명령체계가 이원화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내가 가지 않겠다는 건 내 부하들의 목숨을 자네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겠다는 뜻이네."

" 조 사주 말이 맞네."

조천신의 말에 육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맙네."

조현은 진심으로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결과를 기다리겠네."

조천신은 조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 걱정 말게. 이삼일 후면 놈의 머리를 보게 될 거네."

조현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금밀사 밀사를 미롯한 척살사와 반포사 대원들이 묘봉산 기슭으로 모여든 것은 다음 날 저녁 무렵이었다.

조현이 총지휘 본부로 택한 곳은 오봉일 일행이 죽임을 당했던 쇄구촌이었다.

" 놈은 어디에 있느냐?"

조현은 안으로 들어오는 이여천을 보며 물었다.

" 묘봉산에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 아군의 진형은?"

" 북쪽에는 제사당주 소속 육백 명이 진형을 구축하는 중이고, 서쪽에는 세삼당주 소속 사백 명이, 동쪽에는 제이당주 소속 오백 명이, 남쪽에는 반포사와 척살사로 구성된 대원 천오백 명이 포진해 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천라지망이 발동될 겁니다."

" 좋다. 시작해라."

" 알겠습니다. 사주."

이여천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지휘본부로 사용하는 천막이었다.

" 효시를 쏴라!"

이여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이 화살을 쏘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세 대의 효시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산기슭에서 시작된 살기가 안개처럼 느리게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 황금백수 21권 끝>

황금 백수 22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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