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08화 (208/232)

제 2장 살아가다 보면

묘봉산이 올려다보이는 북쪽 산기슭.

야행복을 걸친 검은 복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극고한 은신술을 펼치고 있는 그들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모두가 여자로 이루어진 듯 가슴이 봉긋 튀어나와 있었다.

한 여인의 품에는 칠현금이 안겨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사향의 향주 여몽이었다.

“ 전부 도착했어?”

여몽은 주변으로 모여든 네 명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각 조장인 무향, 천향, 지향, 인향이었다.

제 오 조 조자인 야향은 루주인 두심향의 행적을 찾기 위해 조천신의 주변을 탐문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여몽을 비롯한 사향 사백 명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조천신의 심복인 우포 금철을 포획하기 위해서였다.

“ 다 도착했어요.”

막내인 인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상황은?”

여몽의 시선이 오른편에 서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다른 이들에 비해 가슴이 빈약하고 마른 체형의 그녀가 조장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무향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본 조가 그녀가 조장으로 있는 일 조였던 것이다.

“ 연우강이 먼저 시작한 모양입니다.”

연우강에 대한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연우강의 이름을 말하는 무향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 그가 먼저 시작했다는 건 무슨 소리지?”

“ 북쪽을 맡은 자는 금밀사 제사당주인 우철곤인데 부하들을 독려해서 산 위로 치고 올라가는 중이에요.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로는 상주 휘하 이백여 명이 연우강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네요.”

“ 금의위가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는 상태라고 했어?”

여몽은 묘봉산을 올려다보았다.

산 전체를 진득한 살기가 감싸 돌고 있었다. 아마도 저 살기의 근원지가 바로 금의위 위사들일 것이다.

“ 삼천여 명가량이 묘봉산 전역에 퍼져 있어요.”

“ 그럼 그는 저기 어디쯤 있겠네?”

여몽은 산자락을 가리켰다.

“ 그럴 거예요.”

무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 혼자야?”

“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죽은 자들의 모습으로 봤을 때 최소한 두 명이에요.”

“ 죽은 자들 혹시 독에 중독돼 있지 않았어?”

“ 어떻게 아셨어요?”

무향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시체들은 겉보기에는 지풍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피면 독에도 중독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무공을 펼친 사람은 한 명이었다. 그녀가 동일인이라고 단정짓는 이유는 지풍이 파고든 지점에서부터 독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 그런 사람을 알아, 또 다른 건?”

그녀는 조장들을 보았다.

“ 우리 말고도 다른 자들이 와 있어요.”

이번에 입을 연 사람은 이 조 조장인 천향이었다.

천향은 적당하게 살이 붙어 전체적으로 풍만하게 보이는 체형이었다.

“ 누가 와 있다는 거지?”

“ 좌군도독부의 도독 제승기와 무장 오백 명이 남족에 모여 있고, 후군도독부의 청학장군 조천성이 도독부 무장 천여 명과 함께 서쪽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왜.......”

여몽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사건의 이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후군도독부는 철저하게 방관자로 일관해 왔다. 이곳으로 올 이유가 없는 자들이었다.

“ 사건이 커지는 걸 막으려고 오지 않았을까요?”

천향이 되물었다.

“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무향 넌 동쪽으로 가서 조현 그자를 살피고 천향 넌 북쪽, 지향 넌 남쪽, 그리고 인향 너는 우포 금철을 찾아봐. 그리고 두 시진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해.”

“ 알았어요.”

각 조 조장들은 조원들이 은신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 갔다. 잠시 후 사향들까지 은신술을 펼치며 각자가 맡은 구역으로 몸을 날려 갔다.

일행을 전부 떠나보낸 여몽은 묘봉산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신형이 어둠을 뚫고 묘봉산 중턱을 향해 쏘아져 갔다.

“ 어떻게 됐느냐?”

조현은 막 안으로 들어온 이여천을 보며 물었다.

“ 제사당주 소속 위사 이백여 명이 놈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 이백 명이나 당했단 말이냐?”

“ 그 바람에 다른 곳에 비해 북쪽이 약간 앞서 가는 진형이 됐습니다.”

“ 천라지망이 왜곡되겠구나.”

“ 이미 왜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쪽에 형성됐던 살기가 급격하게 묘봉산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 우철곤에게는 연락했느냐?”

“ 맨 외곽 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벌써 중턱까지 올라가 버린 것 같습니다.”

“ 연락이 안 된단 말인구나.”

“ 그렇습니다.”

“ 멍청한!”

조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천라지망을 펼칠 생각을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었다. 천라지망을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위치에서 살기를 쏟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위치가 틀어지거나 잘못 되면 쏟아낸 살기가 역류하여 오히려 아군에게 영향을 미치고 만다. 천라지망 또한 많은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진식이기도 했다.

금밀사나 반포사, 척살사 대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천라지망에 대해서는 훈련을 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천라지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자들도 거의 없었다.

천라지망을 일일이 설명해 줄 수도 없고 하여 자리만 지정해 주었다. 아울러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두 시진 동안 살기만 쏟아내라고 하였다.

그런데 반 시진을 남겨둔 시점에서 북쪽을 맡고 있는 우철곤이 명령을 어기고 움직이고 만 것이다.

“ 어떻게 할까요?”

“ 이미 늦었다.”

이여천의 물음에 조현은 묘봉산을 쏘아보았다.

초반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인원을 투입해서 바로 잡으면 된다. 하지만 천라지망은 팔 할 이상이 진행 중이고, 인원을 추가한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상태로 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그럼 그대로 두는 겁니까?”

“ 그럴 순 없지. 지금 당장 연락을 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해라.”

“ 알겠습니다. 사주.”

이여천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지휘본부 천막으로부터 전령 네 명이 나와 묘봉산을 향하여 몸을 날려갔다.

이여천은 멀어지는 전령들을 바라보다가 조현의 처소로 향했다.

사주인 조현의 처소는 마을 외곽에 있는 장의사였다.

오봉일 일행이 죽은 곳이라 께름칙했지만 쇄구촌에 이만한 집도 없었다.

안쪽을 치우고 가재도구를 들이자 제법 분위기가 났다.

“ 어서 오십시오.”

그가 장의사 근처로 들어가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들이 나와 고개를 숙였다.

오십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율사라고 불리는 자들로 금밀사 사주 호위였다. 방금 인사를 한 자는 호위대 대주 관천일수 유백석이었다.

“ 추운데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게.”

“ 알겠습니다. 부사주.”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유백석은 장의사 벽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사람도 참!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여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듯 임무를 열심히 하기에 자신이 편하게 쉬지만 때로는 너무한다 싶을 때가 많다.

[ 내 생각도 그래.]

이여천은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을 알기 위해 굳이 얼굴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 넌?”

“ 그게 말이야. 그 여자가 기필코 나랑 자야겠대. 그런데 거기서 잠을 자기엔 너무 좁고 춥더라고. 그래서 전에 며칠 살았던 여기로 온 거야. 여긴 그녀를 처음 만나 곳이라 뜻깊은 곳이기도 하고.”

“ 연우강!”

“ 내가 유명인이 되긴 됐나 봐. 얼굴도 모르는 자가 날 아는 걸 보면.”

“ 어떻게......”

이여천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단 한 번도, 어느 누구도 연우강이 이곳으로 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주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 크윽!”

“ 으윽!”

“ 윽!”

나직한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 나와 자고 싶어하는 여잔데 지금 무지 급한가 봐.”

“ 금의위 수장은 공오인 영반이 아니라 남경왕 주진무 전하시다.”

“ 하지만 그 양반은 개봉에 있잖아. 개봉에서는 아무리 빨리 달려온다고 해도 널 구할 수는 없어.”

“ 정말로 금의위와 싸울 셈이냐?”

“ 이미 시작했는데 새삼스럽게....”

홱!

목소리가 멀어지는 듯하자, 이여천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망낭조를 낀 연우강의 손이 이여천의 얼굴을 잡더니 사정없이 돌려버렸다.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여천은 다시 연우강을 돌아보는 형태가 됐다. 머리가 완전하게 한 바퀴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이여천의 눈에서는 이미 생기가 빠져나간 후였다.

털썩!

얼굴을 놓아주자 이여천의 신형이 풀썩 쓰러졌다.

이여천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마음에 드네.”

전에 이곳엔 갖가지 종류의 관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부를 음침하게 만들던 관은 사라지고 몇 가지 가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가운데 놓인 난로였다. 무쇠로 만들어진 난로는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며 실내를 후끈하게 달궜다.

저런 난로가 있으면 엄동설한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난로 오른편에는 탁자와 의자, 책장이 놓였고, 그 앞에는 차 종류와 술 등을 집어넣는 수납장이 세워져 있었다.

왼편은 침실로 구성된 듯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침대를 놓았는데, 침대는 서너 명이 자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그 침대 위에는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배를 드러내놓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연우강은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조현은 세상모르고 잠이 든 채였다.

걸음을 옮기던 연우강은 탁자 앞에 있는 의자로 시선을 주었다.

둥실!

그러자 의자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침대 앞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 그만 일어나지.”

연우강은 의자에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움찔!

조현은 그 소리가 꿈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아니 환청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꿈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얼음으로 가득 찬 물속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퍼뜩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일어날 수도, 잠을 깬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조현은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 양성일 장군은 절대 건들지 말았어야 했어. 그 양반은 옆을 돌아볼 줄도, 뒤를 돌아볼 줄도 몰라. 단지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그 한가지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너희들은 그런 분을 해친 거야.”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사망마비 하나를 꺼냈다.

연우강이 비수를 꺼냈지만 조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허점을 보이면 곧바로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사실 그분은 내가 이러는 거 바라지도 않을 거야. 아마 내가 너희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을 알게 되면 그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내게 치도곤을 내렸을 거야. 문제는 날 말려줄 그분이 이젠 없다는 거지.”

연우강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손에 사망마비가 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당연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는 조현도 연우강이 비수를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그분을 해친 놈이 척살사의 사주인 육양이란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어.”

연우강은 들어 올렸던 손을 가볍게 찍었다.

푸욱!

사망마비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조현의 단전으로 파고들어 갔다.

“ 커억!”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자 조현은 비명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비명은 고통 때문에 지르는 비명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내지른 신음이었다.

아무리 오욕칠정에서 벗어난 살수라고 해도 무기로 상대방을 찌르는 순간만큼은 살기를 흘린다. 그런데 방금 연우강은 처음부터 끝가지 단 한 번도 살기를 흘리지 않았다. 마치 바람 맞으며 걸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단전에 비수를 박아 넣은 것이었다.

“ 반가워.”

연우강은 살짝 미소를 흘리고는 허리춤에서 사망마비 하나를 더 뽑았다.

“ 좀 아플 거야.”

그렇게 말하며 뽑은 사망마비를 어깨 관절로 찔러 넣었다.

“ 크윽!”

조현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 아파?”

“ ......”

조현은 말없이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내가 지닌 암기가 백육십 한 개나 되는데 벌써 아프면 어떻게 견디려고 그래.”

“ 그, 그걸 다 찔러 넣겠단 말이냐?”

조현은 공포에 전 얼구롤 물었다.

“ 이런 경우엔 찔러 넣는다는 표현보다는 고문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 고, 고문이라고?”

“ 뭔가를 알아내고 싶을 때, 상대를 괴롭히는 걸 고문이라고 하지 않아?”

연우강은 또 사망마비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조현의 왼편 어깨 관절을 지그시 보았다.

그는 진맥을 하는 것처럼 조현의 어깨를 잡더니 뼈와 뼈 사이로 사망마비를 밀어 넣었다.

“ 크아악!”

조현의 입이 쩍 벌어지고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 나 같으면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먼저 털어놓겠어. 그럼 좀더 빨리 죽여줄지도 모르잖아.”

“ 지독한.....”

조현은 공포에 전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는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원하는 뭔가를 털어놓으면 빨리 죽여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고통스럽게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 없이 빨리 죽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 알고 싶은 게 뭐냐?”

연우강이 또다시 비수 하나를 뽑아 들자 조현은 급하게 물었다.

“ 글쎄.....”

연우강이 피식 웃으며 조현의 무릎을 향해 비수를 슬쩍 내던졌다.

“ 크윽! 나, 난 조현이오. 나이는 쉰 두 살이고, 부인과 세명의 자식이 있소. 자식은..... 그리고 부모님은 ... 크아악!”

“ 조금만 더 서둘러 줬으면 좋겠어.”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조현의 눈앞에 대고 사망마비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조현의 오른손 손목을 향해 천천히 밀어 넣었다.

“ 스물 세 살 때.....”

조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생각나는 대로 아니 머릿속에 있는 모든 걸 쥐어짜서는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것들 중에는 일급으로 분류되는 비밀도 있고, 무덤으로 가져가야 할 비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비밀을 밝히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암기가 몸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더 이상 정보가 나오지 않자, 연우강은 조현의 머리에 다섯 개의 사망낭조를 박아 넣었다.

조현의 시체를 들어올려 장의사 밖으로 내다 버린 그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피에 젖은 요와 이불을 난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사망궤 안에서 천을 꺼내 침대 위에 깔았다.

“ 어디 보자....”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어 의자를 가져왔던 탁자 앞으로 갔다. 탁자 위에는 차와 찻잔 그리고 찻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가져와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은 다음 찻주전자를 데워 차를 탔다.

뿌연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을 끝낸 봉연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 아이고, 추워라!”

봉연은 호들갑을 떨며 난로 옆으로 몸을 날려왔다. 달려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자!”

그녀가 다가오자 연우강은 데운 찻잔을 건넸다.

“ 고마워요.”

“ 밖은?”

“ 전부 정리했어요.”

“ 시체들은?”

“ 그대로 뒀는데, 치우고 올까요?”

“ 아냐, 그건 내가 할게. 넌 몸이나 녹여.”

“ 아니에요. 제가 하고 올게요.”

“ 머리도 안 말랐는데 어딜 나간다는 거야.”

연우강은 그녀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장의사 주변에는 많은 시체들의 뒹굴고 있었다.

마라천력으로 시체들을 들어올리자 오십여 구에 달했다. 그것들을 든 채로 한편에 세워진 천막 안으로 집어넣었다.

천막 안 또한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다. 천막 안에 있는 자들을 없앤 사람은 봉연이었다.

시체를 한데 모으고 천막 입구를 닫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발을 멈춘 곳은 마을 북쪽이었다. 그곳에는 적당한 크기의 연못이 자리해 있었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다.

물속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조현이 죽었으니 이곳으로 나올 자는 육양과 조천신 둘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 천천히 목을 조여가면 다 기어 나오겠지.”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머리를 담갔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머리를 내밀었다.

몸을 씻고 난 그는 대충 물기를 털고 삼매진화로 말린 다음 옷을 입고 장의사로 향했다.

봉연은 난롯가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 여기요.”

연우강이 들어오자 봉연은 옆에 두었던 찻잔을 내밀었다. 내미는 순간 삼매진화를 펼친 듯, 찻잔에서 뿌연 김이 피어올랐다.

“ 무슨 차지?”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물었다.

“ 제가 그런 걸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몰라?”

연우강은 찻잔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 연 공자는 알아요?”

“ 항주 벽라춘이네.”

“ 어떻게 그런 걸 알죠?”

봉연은 신기한 듯 물었다.

식사 전후, 또는 심심할 때 수시로 차를 마시지만 단 한 번도 차 이름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 다만 눈앞에 차가 있으니, 또는 입 안 가득 들어찬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마셨을 뿐이다.

“ 그런 것까지 알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

“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 머리 감은 거야?”

연우강은 봉연의 머리를 보며 물었다. 물방울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직 덜 마른 듯했다.

“ 네.”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왜 감은 거지?”

“ 목욕한 지도 오래됐고,.. 몸에서 냄새나면 함께 자는 사람에게 실례잖아요.”

“ 그게 전부야?”

“ 또 있을 거라고 보세요?”

“ 나도 목욕을 했거든.”

“ 그랬어요?”

봉연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으쓱했다.

“ 몰랐어?”

“ 알았어요.”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 내가 목욕을 하고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지?”

“ 기뻤어요.”

“ 왜?”

“ 당신도 나와 자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 그럼 삼매진화로 머리카락을 말릴 수도 있었는데,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는 뭐지?”

“ 그건....”

봉연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일부러 머리카락을 말리지 않고 들어온 것은, 잘 준비를 하고 왔다는 걸 연우강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나는 당신과 자기를 원해요 라는 말의 다르 표현이잖아. 그렇지?”

“ 너무 노골적이에요. 연 공자.”

봉연의 얼굴이 붉은 노을처럼 변했다.

“ 차도 마찬가지야.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차 이름을 말하는 건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이 되는 거야.”

“ 친해진다는 건 친구를 만든다는 뜻인가요?”

“ 어쩌면.”

“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친구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 친구가 필요해서 그들 사이로 들어가려고 하려는 거 같아?”

“ 아닌가요?”

“ 이쪽으로 와.”

연우강은 봉연을 가까이 불렀다.

봉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우강 앞으로 다가갔다.   끌어올려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해낸  " 앉아봐."

연우강은 의자 뒤쪽으로 엉덩이를 바싹 붙여 자리를 만들었다.

" 앉아도 돼요?"

" 머리 말려주려고 그런 거니까 다른 기대는 금물이야."

" 그런데 너무 좁을 것 같은데요?"

봉연은 연우강이 만든 자리로 엉덩이를 들이밀며 말했다.

" 엉덩이가 그렇게 컸어? 전에 봤을 땐 그렇게 큰 것.....보기보다 훨씬 크네?"

벌린 가랑이 사이를 꽉 채우자 연우강은 놀란 시늉을 했다.

" 피이!"

봉연은 피식 웃으며 연우강 가랑이 사이로 엉덩이를 집어 넣었다.

그녀가 앉자 연우강은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혈잔수와 덥ㄹ어 마라천류의 삼류이 풍천류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따뜻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 연 공자는 재주가 많네요."

봉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과 머리카락 사이로 스미는 따뜻한 바람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말았다.

" 친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야."

연우강은 봉연의 머리를 가볍게 지압해 나갔다.

" 공부 많이 했어요?"

" 공부는 왜?"

" 말이 너무 어렵잖아요."

" 뭐가 어려운데?"

" 친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난다는 말 말이에요."

" 그 말이 어려워?"

" 네."

" 그냥 정기적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야."

" 정기적으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어요?"

"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들이 영원히 다가오지 않거든."

" 개들이 왜 다가오지 않는데요?"

" 그런 경험 없어?"

" 제가 개를 무지 싫어해요."

" 그래서 개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는 거야?"

" 네, 그런데 개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건 무슨 소리죠?"

" 산이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지?"

머리가 거의 다 마른 듯하자 이번에는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 작은 짐승들은 대부분 도망가겠죠?"

" 왜 도망가는데?"

" 그거야 두려움... 호랑이가 흘리는 살기 때문에 도망친다는 건가요?"

" 응!"

" 그럼 개들도?"

" 난 어렸을 때 개를 무척 좋아했거든. 실제로 키우기도 했고, 그런데 녀석이 날 보더니 꼬리를 말고 도망을 쳐버리더라고."

" 몸에 밴 살기 때문이라는 거군요."

" 맞아. 그 살기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거야. 그런데 그 어울려 산다는 게 쉽지가 않아. 보통 사람들은 정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로 발전하기 쉽거든."

" 정을 주고받으면 안 되는 거예요?"

" 나쁠 건 없겠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떠난다는 거군요."

" 바로 떠나진 않아. 처음엔 전과 다른 어색한 감정이 생겨나고 그러다 보면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기억에서 지워지게 되지."

" 그럼 어떤 사람을 만난다는 거죠?"

" 적당히 이기적이면서, 약간은 잘난 척하는 그런 친구를 사귀는 거야. 그런 친구들의 특징은 만날 때는 즐겁지만, 헤어져도 아쉽지 않다는 거지."

" 그럼 친구는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건가요?"

"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

" 소제독은 어때요?"

" 그 녀석은 친구와 동료 사이야."

" 친구와 동료 사이는 뭐죠?"

"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자는 친구도, 동료는 욕실에서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하거든."

" 그럼 연 공자에게 동료가 더 가까운 사이네요?"

" 내 기준은 그래."

" 그러니까 소제독에게는 등을 밀어달라고 할 수 없다는 건가요?"

" 그 녀석과 나는 순수한 만남이 아니잖아."

" 두 분 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났다는 거예요?"

" 난 황실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필요했고, 그 녀석은 사람 죽이는 재주가 뛰어난 희자수가 필요했거든."

" 아직까지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거군요."

" 일로 필요한 존재뿐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필요하게 되면, 비로서 등을 밀어다랄고 할 수 있겠지. 문제는 그 녀석의 가슴이 튀어나왔다는 거야."

" 킥!"

봉연은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 그 웃음의 의미는 뭐지?"

" 얼마 전에 소제독과 함께 목욕을 했거든요."

" 그런데?"

" 가슴이 소녀 가슴처럼 아주 예뻤어요."

" 그래서 그 녀석과는 동료가 될 수 없다는 거야."

연우강은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내렸다.

" 고마워요."

봉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연우강의 어깨를 잡고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 허벅지 빌려달라고?"

"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강은 벌렸던 다리를 약간 오므렸다. 그러자 봉연은 그 위에 걸터앉았다.

탄탄한 허벅지가 마음에 든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린 그녀는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우린 어떤 사이죠?"

" 우리?"

" 네."

"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동료가 되지 않을까?"

" 동료면 욕실에서 등을 밀어줄 수 있는 사이?"

" 아니면 다시 친구로 돌아가도 상관없고."

" 원래 성격이 그래요?"

" 어떤 성격?"

" 여자와 잠을 자고 나도 무덤덤하냐고요?"

" 사막생활 때문에 그런 걸 거야."

"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 자밀원 대원들도 그렇지 않아?"

" 하긴....."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다. 자밀원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작전이 시작되면, 작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자들도 있고, 치명적이 부상을 당해 불구가 되는 자들도 있다.

그래서 자밀원 대원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시간, 현재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현재에 몰두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바보들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자밀원 대원들에게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그녀는 다시 연우강을 올려다보았다.

" 맞아요. 연 공자. 우린 내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이 순간이 중요해요."

봉연은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연우가의 입에 입을 맞췄다. 이번에도 역시 혀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입술이 닿자마자 곧바로 그의 입 안을 점령했다.

그녀의 두 손도 놀지 않았다.

혀로는 열심히 점령지를 훑고 다니면서 양손으로는 연우강의 옷을 벗겼다.

요대를 풀고 겉옷을 벗겼다.

벗겨낸 장포를 내려놓고 이번에는 장포 안쪽에 입고 있던 옷들을 벗겼다. 그녀의 동작이 점점 빨라지고 연우강은 금세 알몸이 됐다.

" 멋져요."

봉연은 연우강의 몸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약간은 왜소해 보이는 겉못ㅂ과는 달리 가슴은 우람하게 발달해 있고, 배에는 왕 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연우강의 허벅지에서 벗어난 봉연은 그 자리에서 선 채 단추를 풀었다.

야행복을 벗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전에서 꼬리뼈까지 이어진 단추와 허리선을 따라 나 있는 단추만 풀면 상하로 분리된다.

단추를 푼 봉연은 연우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숨결이 거칠어지는 듯하자 공연히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연우강의 눈에 시선을 맞추면서 상의를 벗었다. 곧 새하얀 상체가 드러났다. 상의를 벗은 봉연은 자랑이라도 하듯 가슴을 내민 채 가만히 서 있었다.

" 나머지는 내가?"

" 그래 주면 좋죠."

그녀는 생긋 웃었다.

연우강은 손을 돌려 단추가 달린 부분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이라 바로 내리지 못하고 둘둘 말아서 벗겨야 했다.

봉연은 연우강의 어깨에 양손을 올린 채 얼굴을 내밀어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 다리를 들어 올려 연우강이 옷을 쉽게 벗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의가 바닥에 떨어지고 두 사람의 몸에서 앞에 있는 난로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연우강보다 봉연이 더 거칠었다.

그녀는 거의 광적으로 연우강을 탐했다.

손과 발과 입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수없이 위아래로 오가며 연우강 몸 곳곳에 화인을 남겼고, 연우강에게도 갖가지 요구를 했다.

" 어쩌면 당신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남자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봉연은 연우강의 귓전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일하게 자는 남자 아냐?"

" 제 입장에서는 자는 남자가 바로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 그거 말 되네."

" 지금부터는 제게 집중해 주세요. 연공자."

" 나도 그렇게 하고 싶네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두 손으로 봉연의 허리를 손에 힘을 주어 쓸었다.

" 다, 당신 나빠요."

봉연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모든 열정을 불살랐다. 모든 걸 잊고 오직 상대의 육체만을 탐했다. 그리고 깊고 깊은 신음과 함께 두 사람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봉연은 연우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여운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그녀는 연우강의 어깨를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우는 거야?"

느닷없이 어깨가 축축해지자 연우강이 물었다.

" 그거 아세요?"

" 뭘?"

" 우리가 사랑을 나누기 전에 수백 명을 죽이고 왔다는 거요."

" 그랬지."

"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우리처럼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요?"

" 절대 불가능할 거야. 아마 미쳤다고 하겠지."

" 그런데 오린, 아니 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어요. 밀려오는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고요. 아니 죽는 줄 알앗어요. 제가 미친건가요?"

" 나도 그랬는데 뭘."

" 우리가 미친 걸까요?"

" 어쩌면....."

연우강은 봉연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았다.

" 그러고 보니 난 당신의 나이도 모르네요."

"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나이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 그렇죠?"

" 응! 십 년 뒤에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팽팽하고 젊잖ㅇ. 그거롤 된거야."

" 저도 그래요. 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 뭐가?"

" 당신 나이."

" 나도 정확하게 몇 살인지 모르겠어."

" 그럼 대충."

" 열아홉 살에 제대를 했고, 이 년 동안 황금백수 짓을 했고, 대야벌에서 삼 년 동안 교육을 받았고, 그런 다음 다시 이 년째 접어들고 있으니까....."

" 대략 스물 여섯이나 일곱 정도  보면 되겠네요."

" 그럴 거야. 그런데 왜?"

" 전 서른다섯 살이에요."

" 다른 건 몰라도 나이 정도는 알자고?"

" 나이 말고는 특별히 말할 게 없거든요."

" 나이보다는 몸을 기억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연우강의 손이 다시 그녀의 허리로 향했다.

연우강의 손이 다가오자 그녀는 잔뜩 긴장한 듯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 그게 훨씬 낳을 것 같아요. 그, 그래야......."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연우강의 손길이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옆구리로 파고든 것이었다. 또다시 신음이 비어져 나오랴고 하자 그녀는 급하게 이을 맞추고는 연우강의 입 안에 그 신음을 부려놓았다.

늘 목이 마릅니다.

그런데.

물을 마셔도, 술을 마셔도 소용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안달이 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사람에게 풍덩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 사랑 또한 다른 갈증의 시작이라는 걸

머잖아 깨닫게 될 겁니다.

늘 목마라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마도

그게 내 인생인가 봅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산다는 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이 사람 또한 머잖아 떠날 겁니다.

그가 가지 않으면 제가 떠날 겁니다.

그가 가지 않으면 제가 떠나게 될 겁니다.

떠날 때 후회가 남지 않응려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미련이 남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만났을 때 활짝 웃을 수 있답니다.

봉연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연우강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아낌없이 서로를 탐했던 두 사람이 눈을 뜬 건 뒷날 늦은 아침이었다.

" 우리가 언제 침대로 온 거지?"

연우강은 봉연을 보며 말했다.

" 글쎄요."

봉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건 첫 번째 파도를 넘었을 때까지였다. 그 다음부터는 마구 덮쳐오는 파도를 넘은 기억밖에 없다.

" 그 말 진짜야?"

" 뭐가요?"

" 날 사랑한다고 한 말 말이야."

" 제가 그랬어요?"

" 잠들 전 까지 수십 번도 더 했어."

" 습관이에요."

" 습관?"

" 상대방의 노고에 대한 성의 표시라고 보면 돼요."

" 성의 표시?"

연우강은 황당한 얼굴로 봉연을 보았다.

" 그렇다고 자주 말하는 건 아니에요."

" 그럼 언제 하는데?"

" 제가 아주 만족했을 때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곤 해요."

" 사랑한다는 말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다고?"

" 습관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 좋지 않았어요?"

" 좋을 정도는 아니고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

" 그럼 최고의 대접이잖아요."

봉연은 싱긋 웃었다.

" 그러니까 접대용이란 말이네?"

" 네."

봉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 왜?"

"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데....."

" 오늘은 배가 고파다고?"

" 연 공자도 그래요?"

" 우리 어제 저녁 굶었어."

" 맞다. 밥더 안 먹고....."

공연히 멋쩍은 듯 봉연은 배시시 웃었다.

" 그럼 배를 좀 채워볼까?"

연우강은 봉연을 안은 다음 마라천력을 끌어올려 천으로 몸을 감싸삳. 그러고는 난로 옆으로 날아갔다.

난로는 아직도 뜨거운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다.

" 밤에 장작을 넣은 거예요?"

봉연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잠을 잤더라면 아직 불이 타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겨울이잖아."

" 아무튼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봉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많은 사내를 만나보진 못했다. 하지만 임무 때문에 만나 사내는 상당히 많다. 비록 거짓 사랑아리고 해도 많은 사내들과 사랑을 했는데 그들 중 연우강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는 늪 같은 사람이었다.

" 저건 뭐죠?"

그녀는 불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무쇠 솥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 육포와 과일 말린 걸 함께 넣고 물을 부어 끌인거야."

" 그렇게 하면 맛있어요?"

" 저 안에 사막에서 사는 전갈과 뱀을 잡아 넣으면 최고의 보양식이 만들어지는데."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솥을 끌어당겼다.

물은 적당히 줄어들어 걸쭉하게 돼 있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탁자 위에 있는 그릇과 숟가락이 날아왔다. 그릇과 숟가락이 솥 앞에 서자 이번에는 솥 안으로 시선을 주었다.

" 도대체 연 공가자 못하는 건 뭐죠?"

음식 한 덩이락 솟아올라 그릇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봉연은 물었다.

" 먹어봐."

연우강은 숟가락을 그녀 손에 쥐어주었다.

" 감사히 먹겠습니다."

봉연은 숟가락으로 음식을 조금 떠서 입 안으로 가져갔다.

"와아!"

한 입 머금은 그녀는 활짝 웃었다. 고기와 과일이 섞여 이상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깔끔한 맛이 있어 딱 맞았던 것이다.

" 괜찮아?"

" 죽여줘요."

그녀는 웃으며 숟가락을 놀렸다.

솥 안에 있던 음식을 전부 비우고 난 두 사람은 옷을 걸쳤다ㅏ.

" 아쉽네."

봉연은 침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문득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뭐든 아쉬운 게 좋은 거야."

" 그렇겠죠?"

" 응! 그만 가자."

" 알았어요."

봉연은 내기를 끌어올려 은신술을 펼쳤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하게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자 연우강 또한 내기를 끌어올려 은신술을 펼쳤다.

그가 펼치는 무공은 몽요의 만화은신사영이었다. 허공으로 완전하게 녹아들어 간 두 사람은 곧 장의사를 나서 묘봉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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