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시작하면 반드시 목숨을 건다.
조현의 사망 소식이 금의위에 알려진 것은 그날 점심 무렵이었다. 소식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은 반포사 사주 조천신과 척살사 사주 육양이었다.
두 사람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현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논의했다. 금의위 삼사의 사주가 죽었다는 건 큰 사건이다. 그런데 조현은 죽은 게 아니고 살해를 당했다. 그건 북경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보통은 그런 경우엔 상부에 보고하여 공론화시킨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상의한 것도 바로 누가 조현을 죽였는지가 아니고 공론하를 할 건지 하는 것이었다.
“ 공론화를 하게 되면 조현 사주의 살해 사건이 동창이 관련돼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동창이 관련돼 있다는 증거를 내밀어야 하고, 금의위가 이곳에서 무슨 작전을 펼치고 있는지 그걸 설명해야 하네.”
조천신을 바라보는 육양의 얼굴은 심각했다.
정석대로라면 조현의 죽음은 공론화 해야 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일부는 공개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경우에 금의위에서 해명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무슨 작전을 펼치는지 그것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있었던 살인 사건들까지, 자칫 잘못하면 하남성에 나가 있는 영반을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두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 당분간 비밀로 하자는 말인가?”
조천신은 물었다.
“ 내 생각일 뿐이네. 혹시 다른 의견 있는가?”
육양은 되물었다.
“ 나도 그게 나을 것 같네. 일단은 놈을 없애든지 잡든지 하고 나서 동창을 엮어 넣는 게 낫겠네.”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끝낸 두 사람은 장의사를 나와 시체들이 쌓여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근처에이르자 벌써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천막 안에는 작전에 투입됐던 우포 금철과 광통 정대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 알아낸 건 있느냐?”
육양은 정대해를 보며 물었다.
“ 조현 사주는 물론이고 대부분이 반항한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 암습을 당했다는 말이구나.”
“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 백 명이 넘는 무인을 암습할 자가 있다고 보느냐?”
“ 그건....”
정대해는 할 말이 없었다.
강호 무림이라면 모를까 북경에는 결단코 없다. 아니 강호 무림인이라고 해도 금의위 위사 백여 명을 소리 없이 없앨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것이다.
“ 혹시 시체에서 독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느냐?”
육양은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독을 먼저 사용한 게 아니고 독이 내포된 지풍이었습니다.”
“ 독이 내포된 지풍이라고?”
“ 이 시체를 보십시오.”
정대해가 가리킨 시체는 율사의 단주인 관천일수 유백석이었다.
“ 유백석이구나.”
“ 그렇습니다.”
“ 그가 어쨌단 말이냐?”
“ 여길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대해는 유백석의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뒷목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다.
“ 독이구나.”
육양은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 그렇습니다.”
“ 그런 식으로 당한 자가 몇 명이냐?”
“ 오십 명가량입니다.”
“ 그들의 시체는 잘 보관하도록 해라. 반드시 얼려야 한다.”
“ 알겠습니다. 사주. 그런데...”
“ 독이 내포된 지풍을 쏘는 자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말이냐?”
“ 그렇습니다.”
“ 독이 내포된 지풍을 일컬어 혈루라고 부른다.”
“ 자밀원 원주 혈루향이군요.”
정대해는 고개를 갸웃했다.
북경에서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조직은 동창 말고는 없다. 하지만 동창에서는 나설 입장이 절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북경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배후로 지목될 수도 있는데, 유설연이 바보가 아니라면 나설 이유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 아무튼 이들은 훌륭한 증거니까 잘 보관하도록 해. 조현 사주는 어딨지?”
“ 저 안쪽 단 위에 있습니다.”
육양과 조천신은 정대해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 총 오십 군데를 찔렸습니다.”
조현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자는 우포 금철이었다.
“ 어떤 무기였느냐?”
조천신이 물었다.
“ 크지는 않은 비수였습니다. 가장 먼저 단전을 찌른 것 같고 그 다음에 찌른 부분은 주로 관절 부분이었습니다.”
“ 관절이란 말이냐?”
“ 치명적인 위치는 피하고 찌른 것 같습니다.”
“ 왜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 아마.....”
“ 아마?”
“ 고문을 한 것 같습니다.”
“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많이 찌를 리가 없겠지.”
조천신은 고개를 돌려 육양을 보았다.
“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시선이 마주치자 육양이 물었다.
부사주인 이여철이 살아 있다면 지휘를 그에게 맡겼을 터인데 그마저 당하고 말았다. 지금 금밀사는 선장이 없는 배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 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네.”
조천신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조천신이 말한 급한 일이란 다름 아닌 두심향이었다. 그녀를 숨겨두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 오늘 해야 할 일인가?”
“ 오늘뿐만이 아니라 며칠 걸릴 것 같네.”
“ 이번 작전을 나보고 지휘하란 것 같은데 맞는가?”
“ 해줄 수 있겠는가?”
“ 이번 작전은 금밀사 작전이었네. 조 사주. 우리 척살사완 아무런 관계가 없네.”
육양은 슬쩍 발을 뺐다.
작전을 지휘하게 되면 척살사 대원 전원을 투입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일은 희생자가 많아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크게 생색도 나지 않는다. 조현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서서는 안 될 임무였다.
“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 하겠네.”
“ 지원은 필요없네. 대신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게.”
“ 어떤 부탁인가?”
“ 그건 이번 일이 끝나고 난 다음 말하도록 하겠네.”
“ 곤란한 부탁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조천신은 육양을 가만히 보았다.
문득 그가 하려는 부탁이 두심향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긴 그거 아니면 부탁할 거리가 없지.’
조천신은 내심 중얼거렸다.
“ 자넬 곤란하게 하진 않을 걸세.”
“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기억하겠네. 조 사주. 광통!”
육양은 정대해를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사주.”
“ 척살사 전 대원을 집합시켜라!”
“ 전원말입니까?”
“ 하루라도 작전을 빨리 끝내는 게 낫다.”
“ 알겠습니다.”
정대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우포!”
이번엔 금철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사주!”
금철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증거를 남기는 건 자네가 해주어야겠네.”
“ 당장 빙공을 익힌 자를 불러서 시체를 얼리도록 하겠습니다.”
“ 수고해 주게.”
명령을 내린 육양은 밖으로 나갔다.
“ 그럼 수고하게, 육 사주.”
밖으로 나온 조천신은 인사를 하고 쇄구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자네도.”
육양은 멀어지는 조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돌려 묘봉산을 보았다.
“ 네놈이라는 걸 알고 있다. 연우강. 하지만 난 조현과는 다르다. 조현은 이곳에서 당했지만 난 널 잡으러 산으로 갈 것이다.
묘보봉산을 노려보며 육양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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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가 다수와 싸울 때는 철저하게 주변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 그 환경 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어둠이다. 어둠은 수많은 은신처를 제공할 뿐 아니라 돌발적인 상황에 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연우강이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파두었던 구덩이들은 휴식을 제공해 주는 훌륭한 은신처였다.
산으로 들어간 연우강은 곧바로 서쪽으로 이옹하여 파두었떤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물론 그가 선택한 휴식은 잠이었다. 연우강은 사망궤 안에서 야명주를 꺼내 머리맡에 놓은 다음 잠을 청했다.
“ 안 일어나요?”
먼저 일어난 사람은 봉연이었다.
그녀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연우강의 품에 꼭 안긴 채였다.
“ 나랑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싫은 모양이지?”
“ 싫은 게 아니라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그래요.”
“ 큰 거야, 작은 거야?”
“ 작은 거요.”
“ 작은 거면 삼매진화로 태워.”
“ 사, 삼매진화로 태우라고요?”
봉연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 안 돼?”
“ 정말 그게 가능해요?”
“ 생각해 본 적도 없어?”
“ 네.”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매진화로 옷을 말리고 머리를 말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방광 속에 들어 있는 소변을 말린다는 건 꿈에도 생가개 보지 않았다.
“ 가능하니까 해봐.”
“ 가능하다고요?”
“ 몸 안에 있는 불순물도 태우고, 독도 몰아내곤 하잖아. 방광이 들어찬 물 정도는 당연히 없앨 수 있어야지.”
“ 될까?”
그녀는 여전히 못 미더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곳에서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면 엄청 추워. 어쩌면 거기가 얼어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이곳에서 사흘은 죽치고 있어야 하니까 배워두는 게 좋아.”
“ 이 상태로 사흘이나 있는다고요?”
“ 나랑 함께 있는 게 싫어?”
“ 아니라는 거 알면서 자꾸 그럴 거예요?”
봉연은 연우강을 흘겼다.
“ 우리가 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 칠 일 됐잖아요.”
“ 그럼 놈들은?”
“ 오늘까지 합치면 나흘이요.”
“ 사흘이 더 지나면?”
“ 칠일이에요. ”
“ 그동안 녀석들이 잠을 잤을까, 자지 않았을까?”
“ 천라지망을 구축하고, 묘봉산에 살기를 채웠을 테니까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을 거예요.”
“ 그럼 앞으로 사흘 동안 잠을 잘까 안 잘까?”
“ 절대 잘 수가 없죠.”
봉연은 놀란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가 조현을 없애기 위해 산을 내려갈 때만 해도 적장을 없애는 쪽이 승리한다는 전투 수칙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대상에는 조현의 머리는 물론이고 산 안에 들어와 있는 금의위 위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나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채 묘봉산에 살기를 채우는 작업을 했다. 아마 원래 계획대로라면 살기를 채운 다음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하고 비로소 연우강 체포 작전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휴식을 취하려는 순간에 조현을 비롯한 지휘본부에 있던 자들이 전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니 연우강이 그 휴식 시간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사주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으니 비상은 당연하고 그들은 전보다 더 혹독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 살기를 쏟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숨어 있는 자를 찾아내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거 맞지?”
“ 네, 맞아요.”
“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살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장소에서.”
“ 돌아 버릴 지경이 되겠군요.”
“ 맞아. 그들은 천라지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살기를 계속 쏟아내야 하는데 천라지망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어. 그 구멍을 통해 퍼져나간 살기는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날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 그들은 보통 때보다 수배 이상의 집중력을 사용하고 있어. 힘도 그렇지만 집중력 또한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해.”
“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단 말인가요?”
“ 집중력이 떨어지면 눈을 뜬 채로 조는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그 상태로는 절대 숨어 있는 자를 찾지 못해.”
“ 더구나 잠까지 자지 못했으니까.....”
“ 수천 명 아니라 수만 명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 그렇겠네요.”
“ 내가 여기서 삼일을 쉬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야.”
“ 그럼 삼매진화로 소변을 태워봐야겠네요. 가능할까 몰라.”
그녀는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내공을 방광으로 이동시켰다. 그런 다음 삼매진화를 펼칠 때처럼 뜨거운 기운을 방광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되는 것 같아?”
“ 말 시키지 마세요.”
봉연은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삼매진화를 펼쳤다.
잠시 후 어디선가 소변 냄새가 풍겨 나왔다.
“ 차라리 나갔다 와라.”
연우강은 마라천력을 끌어올려 뚜껑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사이로 냄새가 빠져나갔다.
“ 냄새까진 어쩔 수 없잖아요.”
무공으로 생리현상까지 극복해 내자 봉연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정말로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다.
“ 아무튼 냄새가 너무 지독해.”
“ 흐흐흐! 난 아주 좋은데.”
봉연은 연우강의 허벅지 위로 다리를 올리면서 배시시 웃었다.
“ 시간 있을 때 푹 자둬.”
“ 잠이 안 오는데 어떡하라고요.”
“ 억지로라도 자려고 해봐. 수혈 눌러줘?”
“ 미쳤어요?”
봉연은 깜짝 놀라며 연우강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쥐었다.
“ 난 맨 정신으로 현재를 즐기고 싶다고요.”
“ 즐겨?”
“ 여자는 자신의 마지막 남자와 즐길 권리가 있어요.”
“ 내가 마지막 남자라는 거야?”
“ 네.”
“ 기뻐해야 하는 거야?”
“ 여자가 마지막 남자라고 하면 당연히 기뻐해야 하잖아요.”
“ 하지만 넌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잖아.”
“ 어쨌든 당신은 내 마지막 남자가 맞잖아요.”
“ 그래, 맞다고 치자.”
연우강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런데 그들이 연 공자 찾는 걸 포기하면 어떡하죠?”
“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 왜요?”
“ 묘봉산에는 우리 말고도 들어온 자들이 있으니까.”
“ 누가 들어왔다는 거죠?”
“ 죽음의 사자가 들어와 있어. 이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전부 없애줄 저승사자가.”
연우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 아악!”
바로 그때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저들인가요?”
봉연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벌써 산으로 들어오진 않았을 텐데..... 네가 불렀어?” 훤히 드러내놓고 치마는 엉덩이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자밀원 대원을 부를 수 없다는 건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 아무래도 누군지 알아봐야겠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구덩이 뚜껑을 들어 올린 다음 밖으로 나갔다.
“ 쉬기로 하지 않았어요?”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들이치자 봉연은 연우강의 목을 끌어안았다.
“ 강한 전력을 가진 다수와 전쟁을 치를 땐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불려 돌아가야 해. 아주 작은 거 하나라도 틀어지게 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거든.”
“ 그래서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 누가 금의위를 공격하는지 알아야지.”
연우강은 누운 상태 그대로 솟아올랐다.
이어 사망궤 뚜껑이 열리고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야명주와 깔고 덮었던 천이 둘둘 말려 안으로 들어갔다.
연우강은 몸을 바로 하면서 사망궤를 보았다. 그러자 열려 있던 뚜껑이 닫히며 그의 등을오 날아갔다.
양팔을 펼쳐 사망궤에 달린 줄을 어깨에 들쳐 멘 그는 어둠을 뚫고 몸을 날렸다. 곧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 그건 무슨 무공이죠?”
봉연은 은신술을 펼치며 물었다.
그녀는 손으로 사망궤에 맨 어깨 줄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 만화은신사영.”
정확하게는 만화은신사영이 아니라 혁미월이 남긴 천수장해에 나온 은신술이었다.
“ 만화은신사영이면 동영 무공 아닌가요?”
“ 맞아.”
“ 만화은신사영을 익힌 사람은 동영 은밀막부 막주라고 알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배운 거예요?”
“ 몽요를 알아?”
“ 몽요라고 불러요?”
“ 그녀는 동료야.”
“ 동료라면 잤다는 말이에요?”
“ 신경 쓰여?”
“ 그럴 리가요?”
“ 동영 여잔 어때요?”
“ 뭐가?”
“ 잠자리, 평소 생활 등등 여러 가지 다요.”
“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다르면 얼마나 다르려고.”
“ 그래도 중원 여자완 다른 점이 있을 게 아니에요.”
“ 상대를 아주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 어떻게 편하게 해주는 데요?”
“ 정확하게 뭐가 궁금한 건데?”
“ 제가 궁금한 건 그분이에요.”
“ 몽요가 궁금하다고?”
“ 네.”
“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에게 갖는 그런 관심 같은 거야?”
“ 연 공자 같은 완벽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라면 한 번 사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 몽요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해. 그러니까 꿈깨.”
“ 그거야 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죠. 아무튼 언제 시간 나면 소개나 시켜줘요.”
“ 내가 미쳤냐? 널 소개시켜 주게.”
“ 그럼 어디 있는지 그것만 가르쳐줘요.”
“ 북경에 있어.”
“ 북경이라고요?”
봉연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 얼마 전에 금의위에서 우리 부모님이라고 잡아온 사람들 있잖아.”
“ 아, 알고 있었어요?”
봉연은 찔끔한 얼굴을 했다.
사실 그동안 연우강에게 그걸 말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그의 부모님이 갇힌 곳을 알아내면 그때 말하자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연우강이 먼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 그들은 부모님이 아냐.”
“ 아니라고요?”
“ 나와 친한 사람들이 부모님으로 꾸민 거야.”
“ 정말이에요?”
“ 부모님이 잡혀 있다면 어떻게 한가하게 놀 수 있겠어?”
“ 전 모르고 있는 줄 알았죠.”
“ 하오밀문의 문주는 내 동업자야. 강호 무림 정도는 아니지만 북경 돌아가는 상황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 그러니까 몽요 그분이 연 공자 가족처럼 꾸미고 있다는 거예요?”
“ 너보다 더 나이가 많을 걸?”
“ 딱 제 취향이네요.”
“ 무슨 취향?”
“ 전 연하보다는 연상을 좋아하거든요.”
“ 이건 완전히 변태들 천국이네.”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동창이잖아요.”
봉연은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 어때?]
연우강의 목소리가 갑자기 혜광심어로 변했다. 주변에 싸늘한 기운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 온몸에 털이 곤두섰어요.]
봉연은 긴장한 얼굴로 좌우로 살폈다.
살기로 채워진 공간이란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마치 날카롭게 벼려진 무기 수천 점을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 털뿐만 아니라 근육도 잔뜩 긴장할 거야. 최대한 긴장을 풀어야 해.]
[ 알았어요.]
봉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강을 따랐다.
연우강이 가는 곳은 북쪽이었다. 살기로 들어찬 공간을 뚫고 나아가기를 반 시진. 두 사람은 피비린내로 가득한 장소에 도착했다.
접전이 벌어진 듯 상당히 많은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시체를 살피러 간 사람은 봉연이었다.
[ 전부 금의위에요.]
[ 어떤 상태야?]
[ 맹수에게 당한 것처럼 찢겨 죽은 자들이 많아요.]
[ 금의위에 원한이 많은 자인 모양이다.]
[ 그런 것 같아요.]
띵띵띵! 띠리링! 띠링!
갑자기 칠현금 소리가 들려왔다.
“ 으아악!”
“ 크아악!”
“ 아아악!”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연우강은 봉연의 손을 잡고 몸을 날렸다.
[ 여몽이에요.]
[ 사향금?]
[ 네.]
[ 그녀가 왜 여기로 온 거지?]
[ 저도 궁금해요.]
두심향이 납치된 사실을 알지 못한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 그녀가 보내진 않았을 건데......’
연우강은 내심 중얼거렸다. 두심향과 잠을 자긴 했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잠을 잤다는 사시을 밝히지 못한다. 부하들을 이곳에 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 만나보면 알겠지.’
연우강은 봉연의 손을 잡고 마라천력을 끌어올렸다. 어둠을 뚫고 빠르게 나아간 두 사람은 곧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에 당도했다.
띠리링! 띠링! 띠리링!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칠현금 소리에 이어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 가요.]
이번엔 봉연이 연우강을 이끌고 나아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여몽이 있는 곳에 발을 디뎠다.
그녀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칠현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 여몽.]
봉연은 전음으로 여몽을 불렀다.
봉연의 전음에 여몽은 연주하던 칠현금을 멈췄다. 그러자 어둠 속으로부터 싸늘한 기운이 다가들었다. 그들은 여몽을 포위하고 있던 금의위 위사들이었다. 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를 ‘ 끄응!’
연우강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여몽 근처로 몸을 날려갔다.
파악!
여몽 근처에 몸을 내린 그가 허공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어둠을 향해 몸을 날려 가는 그의 양손에는 손괭이와 낫이 들려 있었다.
푸욱!
퍼억!
“ 으악!”
“ 크악!”
두 마디의 비명에 이어 피가 튀었다. 그리고 나무 위쪽으로부터 시체 두 구가 아래로 추락했다.
스악!
퍼억!
“ 아악!”
“ 으악!”
이번엔 왼편이었다. 뭔가가 잘려나가는 소리와 찍히는 듯한 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지더니 시체 두 구가 추락했다. 순식간에 네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을 없앤 연우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어쩐 일이야?”
봉연은 여몽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 연우강!”
여몽은 시체로 변한 금의위 위사들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 응!”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봉연 네가 연우강 곁엔 왜 있는 거지?”
“ 소제독께서 저분을 도와주라고 했거든.”
“ 저 분?”
“ 저분이라고 해서 이상해?”
“ 그건 아니고.....”
여몽은 봉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왜?”
“ 잤어?”
여자의 직감은 무서웠다. 여몽은 봉연의 온몸에 흐르는 기운만으로 그녀가 연우강과 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아무튼 냄새 맡는 덴......”
봉연은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금향에서 살아온 여몽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목욕을 하고, 사향을 뿌리고 나타나도 그녀는 귀신처럼 알아냈다. 아니 알아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로 솟아오르 “ 완전 맛이 갔구나?”
“ 풋!”
그랬다.
여몽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간밤에 어땠는지 알아차린다.
“ 사내보다 여자가 좋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 저분은 특별해.”
“ 사낸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특별해, 이년아.”
“ 아무튼 특별해. 다음에 또 자자고 해도 거절하지 않을거야.”
“ 미친년!”
“ 저 남잔 여자를 미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건 자보기 전엔 절대 몰라. 넌 여긴 웬일이야?”
문득 생각난 듯 봉연은 여몽을 보며 물었다.
이곳은 연우강이 택한 전쟁터다. 금향의 호위인 그녀가 올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금의위에서 요구했다면 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랬다면 이곳에서 금의위를 상대로 살겁을 펼칠 이유가 없다.
“ 총루주님이 납치됐어.”
“ 두심향이 납치됐다고?”
“ 크악!”
“ 아악!”
“ 으아악!”
느닷없이 전방에서 비명이 줄을 이었다.
두 사람은 전방을 보았다.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었다. 쓰러지는 나무들 사이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 가자, 봉연.]
[ 알았어요.]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봉연은 여몽의 손을 잡고 은신술을 펼쳤다. 곧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 놈이 도망친다! 쫓아라!”
갑자기 공격이 뚝 그치자 연우강이 도망친 걸로 생각한 금의위 위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이 연우강이 있던 자리로 왔을 땐 연우강 일행은 이미 자리를 뜬 후였다.
싸우던 장소를 벗어난 연우강과 봉연은 빠르게 남쪽으로 내달렸다.
[ 혼자 온 거야?]
봉연은 여몽을 보며 물었다.
[ 나머지 사향은 북쪽 산기슭에 대기하고 있어.]
[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야?]
[ 총루주님을 납치한 자가 조천신이거든.]
[ 조천신이 이곳으로 왔어?]
[ 아니 그는 오지 않고 그의 심복인 우포 금철이 포밀영을 이끌고 왔어.]
[ 총루주를 탈출시키려면 금옥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 조천신 그자가 금옥으로 집어넣지 않았으니까 이곳으로 왔지.]
[ 그럼 금철을 잡아서 총루주를 가둔 곳을 알아내려는 거야?]
[ 금철 그놈을 인질로 잡아 교환하자고 하면 들을까?]
여몽은 되물었다.
[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것아. 조천신은 금의위 삼사 사주야. 사주가 어떤 자리인지 알아?]
[ 진무사 다음으로 높은 자리잖아.]
[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일단 자리를 잡고 차분하게 상의해 보자.]
봉연은 연우강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금 전 여몽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 여기 기억해?]
이야기를 듣고 난 연우강은 전면을 가리켰다.
그가 턱으로 가르킨 곳에는 높이가 십여 장 정도 되는 절벽이 서 있었다.
[ 연 공자 몸에 나 잇는 점의 개수는 정확하게 기억해요. 엉덩이에는 새끼손톱 크기의 반점이 있고, 그 반대편에도 검은 점이 있어요.]
[ 필요한 것만 기억하다는 거야? ]
[ 누구나 그러지 않아요?]
[ 누구나 너처럼 머리가 나쁘지는 않아.]
연우강은 양손으로 봉연과 여몽의 허리를 감더니 곧바로 절벽 위쪽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절벽 중간에 위치한 동굴 안에 몸을 들였다.
깊이는 일장이고 폭은 반 장인 그 동굴은 은신처가 아니라 금의위의 동정을 살필 때 써먹기 위해 파악해 둔 장소였다.
두 사람을 내려놓은 연우강은 사방으로 감각을 풀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특이한 기운들이 잡혀들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은 살기였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물렸다.
제대로 된 천라지망이라면 살기가 묘봉산 전역에 고루 분포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묘봉산에 펼쳐진 살기는 폭풍이 치는 바닥처럼 불안하다. 저런 상태면 금의위 위사들 또한 살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조금 전 치른 접전으로 인해 뿌려대는 살기도 더욱 많아진 듯하다.
‘ 서서히 미쳐가는 거야.’
감각을 거둬들인 그는 봉연과 여몽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 너희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지?”
“ 동기였어요.”
연우강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봉연이었다.
“ 동창 동기?”
“ 훈련이 끝나고 헤어졌는데, 다시 만난 곳이 이곳 북경이었어요.”
“ 그럼 동창을 그만두고 금향에 들어간 거야?”
이번에는 여몽을 보며 물었다.
“ 네.”
여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 금향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닌 걸로 아는데?”
“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됐어요.”
“ 거짓말은 지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여몽.”
“ 정말이에요. 어쩌다 보니 그곳으로 들어갔어요.”
“ 좋아. 그 말을 믿어줄게. 그럼 한 가지만 대답해.”
“ 말씀하세요.”
“ 선조 중에 원나라 중신이었던 사람이 있어, 없어?”
“ 설마 총루주가......”
연우강을 바라보는 여몽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두심향이 연우강과 잤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향의 최대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까지 말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넘겨짚지 마. 난 여몽 네가 동창을 떠나 금향으로 들어갔다는 사실로 짐작한 것뿐이니까. 그리고 그녀의 성이 패아지근이라고 말해 준 사람은 동각 영감이야.”
“ 그분이 말을 했다고요?”
“ 그 영감이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두심향은 너와 함께 저승으로 가 있을 거야.”
“ 저, 정말 우릴 전부 죽일 셈이었어요?”
“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사람 죽이는 거야.”
“ 으음!”
여몽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 아직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어.”
“ 마, 맞아요. 증조부께서 원나라 때 고관을 지내셨어요.”
여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럼 다시 물을게. 조천신 그놈이 총루주를 잡아간 게 패아지근이란 성관 관계가 있어?”
“ 네.”
여몽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 조천신 그놈 혼자 꾸민 일이야, 아니면.....”
“ 그자 혼나 꾸민 일 같아요.”
“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 총루주님을 따로 감금하고 있어요.”
“ 금의위에서 운영하는 금옥으로 데려가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에 수감했단 말이지?”
“ 좋아. 그러면 조현의 뒤를 이어 금의위를 지휘하는 자는 누구지?”
“ 현재 이곳에 들어와 있는 자를 말하는 거예요?”
“ 응!”
“ 육양이 척살사 대원들을 데리고 들어왔어요.”
“ 묘봉산에는 얼마나 들어와 있는 거지?”
“ 금의위 삼사 중 금밀사, 척살사는 전부 들어왔고, 반포사는 칠백 명이 들어와 있어요.”
“ 외부에는 반포사만 일부 남은 거야?”
“ 삼백 명가량 남았어요.”
“ 그랬단 말이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어?”
“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다면 금의위를 향해 살수를 펼치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 그렇겠지.”
연우강은 몸을 돌려 밖을 보았다.
“ 가게요?”
봉연의 동굴 입구 쪽으로 나오며 물었다.
“ 천라지망이 펼쳐진 곳에서는 한 곳에 일다경 이상 머물러서는 안 돼. 무조건 그 전에 자리를 떠야 해. 묘봉산에서 나가는 길은 기억해?”
“ 습곡요?”
습곡은 남쪽으로 이어진 계곡으로 물이 흐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습도가 높아 상당히 많은 이끼가 끼어 있는 장소를 말한다.
연우강은 그곳을 가리키면서 묘봉산 전역에 천라지망이 펼쳐진다고 해도 그곳만큼은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며 반드시 기억하라고 했다.
“ 거긴 기억하네?”
“ 연 공자와 헤어지게 되면 유일한 탈출구인데 잊을 수가 없죠.”
봉연은 배시시 웃었다.
“ 여몽과 함께 나가.”
“ 저도 나가라고요?”
“ 전에 나와 함께 갔던 번영로로 가면 성안루라는 객잔이 있어, 성안루 주인에게 내가 보내서 왔다고 해. 그럼 교랑이라는 잘 생긴 사내를 소개시켜 줄 거야. 그에게 조천신이 묘봉산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디리라고 전하면 돼.”
“ 그 심부름을 꼭 제가 해야 해요?”
“ 원래 봉연 널 데리고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어.”
“ 그럼 번영로에 데리고 간 것도?”
봉연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 그날 마차가 멈췄던 곳에서 오른편으로 보면 골목이 있어. 성안루는 그 골목 안쪽에 있을 거야. 간판이 워낙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니까 신경 써야 해.”
“ 그건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되죠?”
“ 이 전쟁은 내 전쟁이야. 넌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해도 돼.”
“ 전 그렇게 의리없는 년이 아니에요. 공자.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 정말?”
“ 그렇다니까요.”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혹시 나와 자는 게 좋아서 돌아오겠다는 거 아냐?”
“ 아마 그럴 거예요.”
대답은 듣고 있던 여몽이 말했다.
“ 이 미친 것아, 내가 아무리 걸신들렸다고 해도 전쟁터에서 그 짓은 안해.”
“ 전쟁터에서 그 짓을 하면 더 짜릿하고 흥분된다고 한 년이 누군데?”
“ 그건 젊었을 때 이야기고 이년아. 아무튼 연 공자가 한 말 기억했지?”
“ 성안루에 가서 교랑이란 사내를 찾아 조천신이 묘봉산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잖아.”
“ 맞아. 꼭 전해야 해.”
“ 알았어. 그런데.....”
여몽은 궁금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왜?”
“ 무슨 수로 조천신을 묘봉산으로 끌어들일 거죠?”
“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봉연. 넌 설연에게 연락해서 금밀사와 척살사 건물을 뒤져서, 북경에서 암약하고 잇는 정보원들의 신상을 전부 파악해 놓으라고 해.”
“ 전부?”
“ 한 놈도 남김없이 몽땅.”
“ 아,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봉연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한 놈도 남깅없이 몽땅’이라는 말에 진득한 살기가 깔려 있었다. 중이다.
연우강은 그들마저도 전부 없앨 생각이었다.
“ 우린 한 번 시작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지 않으면 시작도 안 해, 봉연.”
연우강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부르르!
여몽과 봉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방금 연우강이 파악하라고 한 자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천 명이 넘는다. 그런데 그들 전부를 죽인다고 말하면서 그는 활짝 웃는다. 대하면 대할수록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아무튼 꼭 전해.”
연우강은 여몽을 보며 말했다.
“ 알았어요.”
여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 다녀올게요.”
봉연은 여몽의 손을 잡고 아래로 몸을 날렸다.
[ 어디 있을 거죠?]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선 봉연은 전음을 보냈다.
[ 아까 숨어 있던 곳에서 기다려.]
[ 먹고 싶은 거 있어요?]
[ 가져오려고?]
[ 이왕 나간 김에 야식이나 좀 챙겨오려고요.]
[ 소고기 볶음은 안 되겠지?]
[ 구해보기는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여긴 소고기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니까요.]
[ 알았어. 수고해.]
[ 얼른 다녀올게요.]
잠시 후 봉연과 여몽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지금부터 사냥감 놀이를 해볼까?’
연우강은 만화은신사영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동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휙! 휙! 휙휙! 휙!
연우강이 떠나고 잠시 후, 금의위 위사 수십 명이 절벽 아래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빠르게 주변을 살피던 위사들은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을 발견한 위사가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고는 동굴 안쪽에 대고 코를 킁킁댔다.
“ 일각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계집 둘에 사내 한 명입니다.”
사내는 동굴을 나와 아래로 내려갔다.
절벽 아래쪽에는 검은 옷을 걸친 위사 십여 명이 코를 킁킁 대고 있었다.
이들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체취만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지어는 연령 대까지 알아맞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로 척살사 대원들은 이들을 견비라고 부른다.
견비까지 동원햇다는 것은 척살사 소속 모든 무인이 전부 나섰다는 것을 뜻했다.
“ 저쪽입니다.”
견비 중 한 명이 동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신호를 보내라!”
“ 존명!”
우렁찬 외침과 함께 화살을 들고 있던 사내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휘이익!
효시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동쪽 하늘에서 두 대의 불화살이 올랐다. 그것은 신호를 받았다는 대답이었다.
“ 가자!”
사내를 비롯한 견비들은 동쪽으로 몸을 날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