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11화 (211/232)

제 5장 그가 북경으로 간 이유는.

살도 악기는 계곡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어두워 검은 옷을 걸쳤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철립을 쓰고 궤짝을 메고 있는 걸 보면 수없이 들어왔던 연우강이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개를 갸웃한 것은 일출곡 입구를 지키던 부하들이 아무런 연락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이백 오십 명이 오 장 간격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연우강이 일출곡 안으로 들어왔는데 아무도 연락을 해주지 않은 것이다.

“ 전부 당했단..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악기는 고개를 저었다.

이백오십 명이 당했다면 비명이 들려왔어야 한다. 비록 비가 오고 있다지만 일출곡 입구에서 이곳까지는 삼십 장도 되지 않는다. 비명도 지를 새도 없이 이백오십 명이 전부 당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확인해 보면 알겠지.”

[ 정토!]

악기는 입구 쪽에 있는 부하를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곧 대답이 들려왔다.

[ 비사단을 투입해라.]

[ 알겠습니다.]

대답이 들려오자 악기는 눈에 내력을 모았다.

그러자 시야가 조금 밝아지며 연우강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서 연우강을 향해 다가가는 자들이 보였다. 칠십 명으로 이루어진 비사단 대원들이었다.

척!

연우강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낫과 손고애이를 꺼내 들었다.

스악!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건지, 선공을 취하지 않으면 공격할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연우강 앞에 있던 자가 검과 하나가 돼 몸을 날렸다.

양손으로 쥔 검 끝에서 뿌연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검기 수준을 넘어섰지만 검강 수준에는 오르지 못한 자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광이었다.

그 사내가 시작하자, 사내 바로 뒤쪽과 왼편 그리고 오른편에서 세 명이 같은 자세를 취하며 몸을 날렸다.

맨 먼저 시작한 자를 뺀 나머지 세 명은 동일한 시간에 움직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의 시간 차, 아니 정확하게는 위치에 차이가 있다.

먼저 공격한 자 뒤에 있는 자가 일 장가량 떨어져 있다면 오른편에 있는 자는 일 장 두자, 왼편에 있는 자는 일 장 석 자가량 떨어져 있다. 즉 같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각자가 가진 능력에 따라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공격을 해오는 자들을 상대할 때는 물러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걸 연우강은 잘 알고 있었다.

파앗!

그가 서 있던 뒤쪽으로 물에 젖은 흙더미가 날렸다. 연우강의 신형은 한순간에 공간을 단축하며 전방에서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나아갔다.

“ 이야압!”

사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검 끝에 어린 광채가 약간 커졌다. 불처럼 환하게 밝혀주진 못했지만 검 주변을 밝힐 정도는 됐다.

철컥! 철컥!

바로 그때 사내의 귓전으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시선을 들어 소리를 낸 물체를 찾았다. 검 끝에 어린 검광이 아니었다면 그 물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물체는 연우강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조였다.

“ 놈!”

사내는 차갑게 소리치며 손을 쭉 내밀었다.

사내가 속한 비사단의 공격 방식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을 쭉 뻗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팔 할 정도만 내 뻗고 이할가량은 오므린 상태였다. 그렇게 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오므렸던 이 할을 쭉 펴서 상대를 공격한다. 암습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 공격은 열 번을 시도하면 일곱에서 여덟 번 정도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훌륭한 수법이었다.

사내는 이번 또한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다.

설사 패한다고 해도 바로 뒤와 좌우측에 동료들이 있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고 여겼다.

‘ 성공이네....’

미소를 머금던 사내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심장으로 파고들어 갈 것처럼 나아가던 검이 흐르던 물이 바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연우강의 가슴을 지나쳐 가더니 겨드랑이 쪽으로 빠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사내는 시선을 돌려 연우강의 얼굴을 보았다.

푸욱! 푸욱!

사망낭조 다섯 개가 사내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 크아악!”

연우강은 사내의 얼굴에서 사망낭조를 꽂은 채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푸욱!

비사단 위사 또한 만만치 않은 자였다. 뒤에서 달려들던 자는 동료의 등에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그와 동시에 힘차게 밀고 나갔다. 그가 검을 찔러 넣은 상태로 밀고 나간 것은 밀고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추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 멈춰야만 좌우측에서 몸을 날려오는 동료들의 검이 허공을 가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연우강이 미;ㄹ고 들어올 거라는 계산하에 취한 행동이었다.

“ 헉!”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려 버린 것이었다.

그건 밀고 나오던 연우강이 갑자기 힘을 빼버려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내는 급하게 왼편을 보았다. 검 하나가 옆구리를 향해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 빌어 ......커억!”

화끈한 기운이 옆구리로 파고들어 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동료의 이마가 박살나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동료의 이마에서 뇌수를 뽑아낸 무기는 다름 아닌 작은 괭이였다.

“ 크악!”

처절한 비명이 뒤편에서 들려왔다. 사내는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왼편에서 공격을 하던 오도 녀석마저도 당한 모양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오도 녀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기는 연우강의 무기가 아니라 맨 먼저 공격을 시도했던 장가 녀석의 검이다.

검강을 원했는데 검광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대면서도 명검이 아니었다면 검광은 꿈꾸지 못했을 거라고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그 검이 가장 친한 친구의 심장으로 박혀 들어간 것이다.

사내는 멀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연우강을 보았다.

장가의 얼굴에 다섯 개의 조를 박아 넣은 연우강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 전부 죽일 거니까 너무 아숴워하지 않아도 돼.”

연우강은 나직하게 말하며 오른손을 뽑아냈다.

“ 연우강!”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 줄을 놓았다.

털썩! 털썩! 털썩! 털썩!

네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 타앗!”

“ 차앗!”

“ 이얍!”

“ 죽엇!”

“이래서 황제가 주는 녹을 먹는 놈들이 좋아.”

연우강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군인들, 군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자들.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편한 자들이다. 일반 양민이나 무인들은 자신들이 불리하다 싶으면 줄행랑을 놓아버리지만, 공직에 있는 자들은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도망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지금껏 쌓아왔던 모든 공적은 재로 변하고, 그 화가 가족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장님 문고리 잡기로 성공을 하게 되면 출세가 보장된다. 그래서 공직에 있는 자들은 죽음을 택할지언정 함부로 도망을 치지 못한다.

“ 난 너희들을 사랑한다, 이놈들아!”

스악!

차앙! 스악!

스악! 푸욱!

먼저 낫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손괭이가 검을 막고 위사 한 명의 목을 잘라낸 낫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 크악!”

“ 아악!”

연속적으로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엔 낫이 먼저 허공을 갈랐다.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는 가운데 낫과 손괭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니 그것은 떠오른 게 아니라 사망낭조를 사용하기 위해 연우강이 던져 올린 것이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살기를 뿌려대는 사망낭조가 위사 두 명의 얼굴을 파고들어 갔다.

“ 아악!”

“ 으아악!”

츄아악!

위사들의 얼굴로 파고든 사망낭조를 뽑아내자 사망낭조를 따라나온 피가 거미줄처럼 길게 늘어났다.

척! 척!

던져 올렸던 낫과 손괭이를 받아 든 연우강은 낫을 오른편으로 휘둘렀다.

차앙!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악!

퍼억!

그 소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손괭이가 허공을 날아 사내의 이마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 아악!”

이마에서 빠져나온 손괭이가 왼편으로 향하면서 검을 쳐내고, 낫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낫의 궤적을 따라 검붉은 액체가 따랐다. 사내의 목을 잘라내면서 흘러나온 피였다.

차앙!

검을 쳐낸 손괭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언뜻 부딪친 검에 어린 힘 때문에 손괭이를 놓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허공으로 떠오른 검은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연우강 머리 위쪽 두 자 높이까지 솟구쳐 오르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크악!”

바로 그때 처절한 비명이 연우강 왼편에서 들려왔다. 네 개의 사망낭조가 사내의 얼굴로 박혀든 것이었다.

차앙!

사내의 얼굴에 사망낭조를 꽂아 넣은 채 오른손에 든 낫으로 전면에서 다가오는 자의 검을 막았다. 그러고는 위로 밀치며 왼쪽 사내의 얼굴에 꽂아 넣었던 왼손을 뽑아 중앙 사내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

스아악!

사내의 얼굴에 다섯 줄의 선이 생겨나고 그곳으로부터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척!

연우강은 아래로 떨어지는 손괭이를 받아 들었다.

“ 죽여라!”

“ 타앗!”

“ 이야압!”

“ 차아아!”

떨어지는 사기를 올리기 위한 기합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지르는 외침인지 알 수 없는 기합과 외침이 금의위 위사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수십 명의 위사들이 다시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큭!”

연우강의 입에서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놈들은 도무지 사람을 쉬게 해주질 않는다. 수십 명이 거의 동시에 죽어나가면 두려움 대문에라도 주춤할 법도 한데 도무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전진하고 돌진이다.

‘ 나도 그랬으니까.’

군대 문화에 젖은 자들의 특징이다. 돌아가는 법도 모르고 요령에도 익숙하지 않다. 무조건 직진이고, 죽이지못하면 내가 죽는다.

“ 죽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라! 그게 바로 군대 철칙이지.”

연우강의 움직임은 한결같았다.

낫과 손괭이 그리고 사망낭조를 이용해서 달려드는 금의위 위사들을 잔인하고 완벽하게 끝장을 내고 있다.

“ 병신들!”

악기는 욕설을 내뱉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가 보기에는 연우강의 무공은 별게 아니었다. 눈을 멀게 하는 광채도 뿜어내지 않고, 몸을 움츠러 들게 하는 살기도 없다.

단지 조금 빠를 뿐이었다.

그런데도 연우강을 없애지 못하자 짜증이 일었다.

“ 대인!”

그는 큰 소리로 비월단 단주를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어둠 속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비사단을 도와라!”

“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칠십여 명의 대원들이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우강 근처에서는 쉬지 않고 비명이 흘러나왔다. 바로 앞까지 다가들었던 자들은 검을 또는 도를 내민 자세 그대로 멈췄다가 풀썩풀썩 쓰러지곤 했다.

차앙! 차앙! 차앙!

푸욱! 스악! 푸욱!

무기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무기가 살을 파고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살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온다.

“ ....!”

짜증나고 답답할 때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기는 대원들과 연우강이 싸우는 곳으로 걸어갔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싸우는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악기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십여 장가량 남은 지점에서는 찢어질 것 같았다.

“ 저럴 수가!”

악기는 경악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무인을 겪었고, 그들이 펼치는 무공을 보았다. 하지만 연우강처럼 저런 모습은 단연코 처음이다. 결코 참살대 대원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참살대 대원들의 검은 한순간 서너 개씩 연우강의 몸통을 노리고 나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찌르기를 시도하는 검도 있고, 휘두르는 검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무기들이 녀석의 무기에 철저하게 가로막히고 있다. 놈이 들고 있는 건 무기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낫과 손괭이다. 그런데 그 볼품 없는 무기가 무슨무슨 검이나, 무슨무슨 도라는 이름이 붙은 무기를 막고 부러뜨리고, 그 무기 주인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 크악!”

“아악!”

“ 으아악!”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비명이 들려온다.

쓰러지는 자들은 두 부류다.

목이 잘린 자들과 머리가 완전하게 부서진 자들.

연우강은 부상조차 용납하지 않고 금의위 위사들을 없애고 있었다.

“ 성운!”

악기는 재차 고함을 질렀다. 이젠 사주인 육양이 비밀리에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떠오르지 않았다.

“ 말씀하십시오!”

“ 죽여라!”

“ 놈을 죽여라!”

명령을 받은 성운은 비응단 대원들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비응단은 계곡 안쪽에 은신해 있는 마지막 대원들이었다.

성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여 명이 동시에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움지임은 비사단이나 비월단과는 또 달랐다.

연우강에게 당한 동료가 백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 무서운 속도로 연우강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비응단 대원들이 연우강과 십여 장 거리를 남겨두었을 때였다.

“ 비켜라!”

“ 물러나라!”

그들은 연우강 주변에 몰려 있는 비월단 대원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비월단 대원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뒤편으로 물러났다.

“ 지옥의 입구가 활짝 문을 열었다!”

바로 그때 연우강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속삭이는 듯했지만 연우강의 목소리는 계곡 안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들을 수 있었다.

부르르!

그 소리를 들은 악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연우강의 목소리는 지극히 건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저절로 떨렸다.

꿀꺽!

그는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키며 상황을 주시했다.

“ 지옥탄!”

푸아악! 슈아악!

“ 저, 저기....”

악기는 손을 들어올렸다.

연우강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광채들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광채는 너무 빨랐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처럼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소멸된 게 아니었다. 검은 광채가 모습을 감춘 곳은 다름 아닌 참살대 대원들의 몸속이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커억!”

엄청난 광경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던 비응단 대원들은 물론이고 물러났던 비월단 대원들마저도 뒤편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폭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날아가고 있는 그들의 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 폭풍은 날아오르고.”

나직한 읊조림은 계속 됐다.

연우강의 머리에서 철립이 날아올랐다.

“ 폭풍비!”

스아악!

사망마립은 나선형을 그리며 무서운 속도로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달빛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철컹!

허리춤에서 요대가 풀려 나와 둥실 떠올랐다.

“ 월광잔!”

슈아악!

이번에 사망월반이 네 개로 분리되며 허공을 갈랐다.

“ 미친 늑대는 바람처럼 내달리고!”

연우강은 양손에 쥐고 있던 낫과 손괭이를 슬쩍 던져 올렸다. 그러고는 물기를 털어내듯 양손을 가볍게 털었다.

“광랑풍!”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오고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사망낭조 아홉 개가 전면 어둠속으로 날아갔다.

“ 열여덟 유령은 미친 듯이 춤을 추네.”

아래로 떨어지는 낫과 손괭이를 받아 드는 순간 그의 몸 곳곳에서 검은 광채가 쏘아져 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열여덟 개의 사망마비로 펼치는 혼령무였다.

“ 으악!”

“ 아악!”

“ 크아악!”

비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사망정주에 당하여 쓰러지는 자의 몸을 사망마립이 날아와 자르고, 마지막으로는 사망낭조가 목에 커다란 구멍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암기들은 다시 다른 자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모든 암기는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 빌어먹을!”

악기는 안쪽과 계곡 입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원들이 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계곡 안쪽에는 팔사가 있고 사주가 있지만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팔사와 사주가 있는 그곳에서는 가장 낮은 직급이 되니까, 팔사와 사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그 후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연우강의 암기에 당해 지금 죽어가는 저들처럼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할 것이다.

푸욱! 퍼억! 파악!

스악! 슈아악!

" 크악!"

" 아악!"

" 아아악!"

" 으악!"

" 그럴 순 없어."

그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 상황을 보고하라, 악기."

바로 그때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안족에서 들려왔다. 그는 팔사의 우두머리인 나염무였다.

악기는 계곡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입구에서 안쪽의 절벽까지는 배여 장쯤 되었다.

빠르게 몸을 날린 그는 팔사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 멈춰라!]

나염무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전음으로 들려왔다.

악기는 그 자리에 멈췄다.

[ 무슨 일이냐?]

[ 연우가이 계곡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 그렇습니다. 하지만 놈도 상당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 제압할 수 있겠느냐?]

[ 놈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습니다. 어르신. 밖에서 경계를 서더 대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조만간 잡힐 걸로 봅니다.]

악기는 조금만 생각하면 들통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 가보아라. 그리고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보고하도록 해라.]

[ 알겠습니다. 어르신.]

고개를 숙인 악기는 뒤편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 잘됐어. 어차피.......'

악기는 절벽 아래쪽으로 바짝 붙었다. 그런 다음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죽어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사는 게 나아. 손바닥 지문이 없어지도록 비볐던 이유가 뭔데?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였어. 잘 죽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그는 도망치듯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면서 몸을 날렸다. 전음으로 보고를 해도 되는 데 굳이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를 했던 것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 절벽이 가장 좋은데."

그는 바로 옆을 보았다.

단숨에 십여 장을 날아오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탈출로가 바로 절벽이다. 하지만 한 번에 십여 장을 오를 수 있는 내공이 없다. 결국 입구를 통해 나갈 수밖에 없다. 멀리 이구가 보이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응?”

입구를 향해 걸어가던 악기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희멀건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희멀건 그것이 여자의 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찌르르!

여자의 등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여체를 향해 걸어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여체는 더욱 선명해졌다.

여자는 완전하게 엎드린 상태가 아니었다. 발가벗은 엉덩이는 땅에 대고 오른편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약각 들어올린 채였는데, 겨드랑이 사이로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 헉!”

의자와는 상관없이 시선이 여자의 온모을 훑고 다녔다. 악기는 급속하게 피가 쏠리는 걸 느꼈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체는 늪처럼 그의 정신을 빨아들였다.

어느새 눈동자가 풀린 악기는 강시처럼 봉연을 향해 걸어갔다.

“ 호호호!”

봉연은 나직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허억!”

봉연이 몸을 돌리자, 악기의 입이 벌어졌다.

흑!

그리고 벌어진 그의 입 안으로 투명한 물체가 쏘아져 들어갔다. 그것은 봉연의 입에서 나온 암기였다.

뒷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악기는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 진짜 편하네.”

봉연은 싱긋 웃으며 내렸던 바지와 올렸던 상의를 맞추어 단추를 채웠다. 그런 다음 악기의 시체를 구석으로 내던졌다.

악기의 시체를 던진 그곳에는 십여 구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녀가 섭혼요마신공으로 없앤 자들이었다.

“ 조금만 더 연마하면 미소만으로도 홀릴 수 있을 거야.”

섭혼요마신공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처음 펼쳤을 때는 바로 옆에 올 때까지도 사내들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일 장가량 떨어진 곳에서 이미 제정신이 나니 상태가 된다.

‘ 써먹어 봐야지.’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와락 틀어쥐었다.

“ 그럼 좋아?”

바로 그때 앞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연은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다. 연우강이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이거요?”

봉연은 틀어쥔 가슴을 가리켰다.

“ 응!”

“ 당신은 싫어요?”

“ 아까도 말했지만 전투상황만 아니라면 널 덮쳤을 정도로 대단해.”

“ 그럼 나도 좋아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연우강 옆으로 걸어갔다.

그가 이곳으로 왔다는 건 더 이상 입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 색공이 처음이야?”

연우강은 봉연의 얼굴을 가만히 보며 물었다.

아직 섭혼요마신공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그녀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 어떻게 알았어요?” 하얀 광채가 쏘아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들  “ 설연 그놈에 비하면 조금 어설퍼 보여서 그래.”

“ 맞아요. 십여 년 전에 익히긴 했지만 펼친 건 처음이에요.”

“ 색공을 사용하기 싫었던 거야?”

연우강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색공을 사용해야 할 정도의 상황도 없었지만, 그걸 펼치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어요.”

“ 몸매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 연 공자가 봐도 나쁘지 않잖아요.”

“ 그건 맞는 것 같다. 넌 몸 자체가 색공이야. 그런데.......”

“ 다 늦게 왜 색공을 펼치냐고요?”

“ 응!”

“ 문득 제가 서른다섯 살이나 됐다는 사실을 깨달었거든요.”

“ 색공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나이라는 거야?”

“ 아닌가요?”

“ 내가 전에 황금백수 생활할 때에 대해 말했던가?”

“ 어느 정도는.”

“ 이 년 동안 혼자 잤던 적이 거의 없었거든?”

“ 전부 여자랑 잤어요?”

“ 그것도 얼굴이 다른 여자들이야.”

“ 완전 걸레, 아니 한량이었네요.”

“ 기녀들이었어. 인마. 정당한 거래였고.”

“ 그냥 그렇다고 하고요.”

“ 난 기녀들 이름을 절대 묻지 않았어. 물론 내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 그래서 화야불이란 별명으로 불렸죠.”

“ 알아?”

“ 약간 조사를 했거든요.”

“ 다 그런 건 아니었어.”

“ 뭐가요?”

“ 개중에는 이름을 알고 싶었던 기녀들도 있었다는 뜻이야.”

“ 그런데요?”

“ 봉연 너도 그랬다는 말이야.”

“ 그러니까 나이는 잊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건가요?”

“ 너무 뻔한 말인가?”

“ 네.”

봉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기분은?”

“ 당신 참 멋진 사내에요.”

“ 왜?”

“ 어떤 말을 하면 여자가 기분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잖아요.”

“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거 아닌가?”

“ 알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아무 때나 말한다고 여자들이 다 좋아하진 않고요. 자칫 잘못하면 여자를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다고요.”

“ 이를테면?”

“ 추워서 퍼렇게 얼어 있는데 ‘당신은 너무 예뻐!’ 라든가 ‘입술이 매력적이야.’라고 말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거든요.”

“ 아무 때나 예쁘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당신은 여자가 그 말을 듣고 싶은 순간을 포착해서 말을 하는 능력을 지녔어요.”

“ 칭찬?”

“ 바람둥이라는 뜻이에요.”

“ 칭찬 맞네. 그런데 어때?”

“ 뭐가요?”

“ 색공 말이야.”

“ 색공이 어때서요?”

“ 모든 무공이 그렇듯 색공도 본인이 어느 정도 빠져들어야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거 아냐?”

“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색공이란 놈도 앵속 같은 게 아닐까 해서 하는 말이야.”

“ 앵속 같다는 건 무슨 말이죠?”

“ 중독!”

“ 그러니까 연 공자 말은 색공도 앵속처럼 중독된다는 거예요?”

“ 색녀나 색마로 낙인이 찍힌 자들을 보면 대부분 처음엔 그렇지 않았거든.”

“ 색공을 펼치면서 점점 변해갔다는 건가요?”

“ 정확한 건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 그러니까 색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거죠?”

“ 또 뻔한 말인가?”

“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멋진 사내에요.”

“ 그것도 뻔한 말이네.”

“ 뻔한 말이라고 해도 진심이 담기면 상대방을 크게 즐겁게 하잖아요.”

“ 즐거워?”

“ 연 공자는 어때요?”

“ 난 아주 즐거워.”

“ 저도 그래요. 그런데 저들이 마지막인가 보죠?”

봉연은 절벽 아래쪽에 반원을 그리며 앉아 있는 자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 누구지?”

“ 척살사 최강자라고 알려진 팔사일 거예요.”

“ 실력은?”

“ 팔신장보다는 한 단계 아래로 판단하고 있어요.”

봉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방에서 살기를 동반한 암경이 밀려왔다.

“ 저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연우강은 가볍게 손을 저어 팔사가 쏘아낸 암경을 해소하며 말했다.

“ 누구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존심은 있잖아요. 저들도 그럴 거예요.”

“ 밀사신장 유덕하고는 저번에 겨뤄봤으니까 이번엔 저들과 겨뤄보면 되겠네.”

“ 밀사신장과 겨뤄봤어요?”

“ 못 들었어?”

“ 네.”

“ 동정호에서 겨뤘어.”

“ 어떻게 됐는데요?”

“ 기절했지.”

“ 누가.... 밀사신장이?”

“ 그 양반은 늙었잖아!”

“ 킥!”

봉연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멈췄다.

“ 도망치는 놈만 잡아.”

연우강은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알았어요. 저기......”

봉연이 연우강을 불렀다.

“ 왜?”

“ 이번 일 끝나면 섭혼요마신공을 펼칠 참인데, 이번엔 넘어갈 줄 거예요?”

“ 여기서?”

“ 장소도, 날씨도...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니죠?”

“ 시체를 껴안고 잠도 잤는데, 이 정도야 뭐.”

“ 괜찮다는 거예요?”

“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잖아.”

연우강은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 그렇군요.”

봉연은 활짝 웃으며 연우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네가 연우강이더냐?”

연우강을 바라보는 나염무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감이 어렸다.

일출곡 외부와 내부에 있던 참살대 대원의 수는 오백 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한 사람은 단 두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 두명이 오백 명을 없애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 응! 영감은?”

“ 난 일사 나염무다!”

“ 그 날 그 자리에 있어어?”

“ 그날 그 자리라는 건 무슨 말이냐?”

“ 양성일 장군께서 돌아가시던 그 날을 말하는 거야!”

“ 알고 있었느냐?”

나염무가 그 사건을 순순히 시인한 것은 연우강을 격동시키기 위해서다. 하수든 고수든 흥분을 하게 되면 동작이 커지고 그럼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 왼손에 도를 사용하는 놈은 육양 그놈밖에 없잖아.”

“ 눈매가 날카롭구나. 그런데 그거 아느냐?”

“ 뭘 말이지?”

“ 양성일의 죽음에 대해서는 후군도독부에서도 묻고 싶어한다는 사실 말이다.”

“ 대충 짐작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전부 죽이고 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물론이고 가장 이익을 얻을 놈도 금자훈이란 것도.”

“ 그런데도 금자훈을 위해 싸우겠다는 거냐?”

“ 금자훈을 위해 싸우는 게 아냐.”

“ 넌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온다.”

“ 아냐. 결과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오지 않아.”

“ 그건 네 생각일 뿐이다. 연우강.”

“ 내가 남경왕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지?”

“ 뭐라고 했느냐?”

“ 내가 북경에서 전쟁을 시작하면 북경은 썩은 시체로 넘쳐나는 지옥으로 변할 거라고 했어.”

“ 금의위로만 끝나지 않는단 말이냐?”

“ 금자훈 그자가 먼저 시작했더라면 아니 날 막지만 않았더라면 너희 금의로만 끝났을 거야.”

“ 그럼?”

“ 그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양성일 장군의 죽음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어내려 하고 있었어. 그건 아주 비열한 짓이잖아. 안 그래?”

“ 그, 그래서 금의위는 물론이고 후군도독부와도 전쟁을 하겠다는 거냐?”

나염무는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육십이 넘었으니까 많은 세월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금의위나 오군도독부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겠다고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그런 꿈을 꾼 사람조차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연우강은 금의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뿐 아니라 오군도독부마저도 없앨 생각을 하고 있다.

사고방식 자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자였다.

“ 내가 북경으로 온 이유는 너희 같은 잔챙이가 아니라 북경의 권력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온 거야.”

“ 궈, 권력이라고?”

나염무는 할 말을 잃었다.

“ 너희들은 그 시작일 뿐이야. 나염무.”

척!

연우강은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그 자리에 섰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 와라!”

그는 손을 까딱였다.

“ 건방진 놈!”

맨 끝에 있던 여덟째 기륭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려가는 기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기륭은 몸을 날려 가면서 전 내공을 끌어올려 양손에 집중했다.

기륭의 양손이 새카맣게 변했다. 그의 독문 무공인 마인수였다.

마인수는 양손이 강철보다 단단하고 검보다 더 날카롭게 변하는 수공이었다.

“ 건방진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말한 거야, 영감.”

연우강은 양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의 손 역시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짜악!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서 부디쳤다.

나염무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륭과 연우강의 싸움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는 탐색전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아주 중요했다. 기륭은 허공에 엎드린 상태로 양손을 내민 채고 연우강은 선 자세로 양손을 내민 채였다.

‘ 들어갔다!’

나염무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일반적으로 싸움 당사자들의 실력은 충돌이 일어난 직후의 두 사람의 상태로 평가한다.

내공이나 무공이 약한 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만 강한 자는 공격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연우강은 발복까지 땅속에 박혀 들어간 반면, 기륭은 그대로였다.

내부는 어쩔지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는 기륭이 약간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나염무는 고개를 돌려 이사 범지상을 보았다.

“ 참살대 오백 명과 싸우고 온 잡니다. 대형.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

“ 크아악!”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범지상의 말을 끊고 처절한 비명이 기륭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연우강과 소능ㄹ 붙이고 있던 기륭의 신형이 폭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뒤편으로 날렸다.

휙!

팔사의 여섯째 태곤이 몸을 날려 날아오는 기륭을 받아 안았다.

“ 이럴 수가......”

태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륭은 연체동물처럼 변해 있었다. 단 한 번의 부딪침이었을 뿐인데 뼈란 뼈는 모두 잘게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륭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나염무는 얼른 기륭의 맥을 짚었다.

“ 설마 이 무공은?”

그는 경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온몸의 뼈란 뼈는 조각조각 부러뜨리는 걸로도 부족해서 모든 심맥을 끊어내는 수법. 그가 아는 한 강호상에 그런 잔인한 무공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천마삼경 중 흑경에 수록된 흑마수였다.

“ 흐, 흑마수란 말이냐?”

“ 맞아. 방금 내가 펼친 무공은 흑마수야.”

“ 넌 천라지망이 뿜어내는 살기에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구나.”

“ 너희들은 큰 실수를 했어, 나염무.”

“ 우리가 무슨 큰 실수를 했단 말이냐?”

“ 천라지망 같은 걸로 날 잡아보겠다고 한 발상 자체가 실수라는 거야.”

“ 천라지망으로는 널 못잡는단 말이냐?”

“ 난 흑랑기 출신이야. 흑랑기는 실전이 곧 훈련이야. 적을 죽이는 것도 훈련이고, 전투도 훈련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아냐. 그 단계를 지나면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새기게 되고, 죽음을 연구하게 돼. 그러다가 병사들끼리 자살놀이를 하면서 내기도 하고, 흑랑기에서 그 과정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 딱 육 개월이야.”

“ 으음!”

나염무는 신음을 내뱉었다.

“ 이제야 연우강을 너무 우습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금의위에서는 그를 무인으로만 생각하고 대처했을 뿐 흑랑기 출신이었다는 경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모든 방식은 다름 아닌 흑랑기에서 배운 것들이었다.

“ 하지만.......”

나염무는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완벽한 사람은 없다. 연우강. 사람은 누가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일곱째와 여섯 째 그리고 다섯째를 보았다.

“ 알았습니다. 대형.”

세 명은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앞으로 나섰다.

맨 왼편에 있는 다섯째 장호곤은 검을 들었고, 중간에 있는 여섯 째 서장출은 구절편을, 오른편에 있는 장기웅의 무기는 도였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세 사람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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