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싸움도 자주 하면 는다.
낭떠러지 위에 자리하여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뒤편과 좌우측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자리하여 바람을 차단해 주는 이곳은 조천신이 지휘본부로 삼은 낙안곡이었다.
조천신은 조현이나 육양처럼 당하지 않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계곡 주변에는 반포사 최정예인 포밀영 대원 오십 여 명을 배치했고, 그 외곽에는 이백 명의 자위영 대원들을 세워 철통같은 경비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천막을 세우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 젠장!”
첩지를 읽어보던 조천신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묘봉산 전역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금의위가 승리했다는 내용은 없고, 대부분이 도망쳤다는 소식뿐이다. 이러다가 정말로 전멸을 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안감이 밀려왔다.
“ 접니다. 사주.”
바로 그때 전철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와!”
잠시 후 천막 문이 열리고 전철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 어떻게 됐어?”
조천신은 찻잔을 전철군 앞으로 밀며 물었다.
전철군은 오늘 하루 동안의 전투에 대해 보고를 하려 들어온 것이었다.
“ 전부 다섯 건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 중 세 건은 승리했고, 한 건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며 한 건은 패했습니다.”
“ 우리 측 병력은 어느 정도지?”
모처럼 승리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조천신의 얼굴이 활짝 폈다.
“ 현재 남은 인원은 이천 명가량입니다.”
“ 많이 죽었군.”
“하지만 오군도독부나 동창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만 희생이 있는 건 아닙니다.”
동창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말은 보고를 위해 지어낸 말이었다. 지금껏 파악한 동창 무인은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자들은 어떤 족속이냐?”
“ 동창 특수부대로 보이는 자들 오십여 명입니다. 놈들은 금의위나 오군도독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하게 살상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죽어나간 자가 벌써 천여 명입니다.”
“ 오늘 패한 한 건도 상대가 그놈들이었더냐?”
“ 그렇습니다.”
“ 그놈들의 동향은 파악하고 있느냐?”
“ 금밀사 대원들이 은밀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 현재 위치는?”
“ 창학곡 근처에 있습니다.”
전철군의 말에 조천신은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설프게나마 묘봉산 전역을 표시한 지도가 걸려 있었다. 창학곡은 묘봉산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 후속 병력이 오늘 도착한다고 했느냐?”
“ 천여 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 말하거라.”
“ 영반께 연락이 왔습니다.”
“ 으음!”
조천신은 신음을 내뱉었다.
계속 숨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연락이 빨리 온 것 같았다.
“ 네 생각을 말해보거라.”
“ 일이 너무 커졌습니다.”
“ 보고를 해야 한단 말이냐?”
“ 그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사주.”
“ 보고를 해야 한단 말이지.”
조천신은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전철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우강과 금의위만의 일이라면 사후 보고를 해도 되지만 지금은 오군도독부 전 전력과 동창의 유설연까지 들어와 있는 상태다. 보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좋다. 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해라.”
“ 우선은 모든 내용을 총망라하겠습니다.”
“ 그렇게 해라.”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보고서를 받아본 다음에 넣을 것과 뺄 것을 결정해야 할 터였다.
“ 아무래도 놈들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주.”
“ 동창의 특수부대라는 자들 말이냐?”
“ 그놈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 지금 창학곡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느냐?”
“ 그렇습니다.”
“ 절반을 창학곡 주변으로 매복시키도록 해라.”
“ 알겠습니다. 사주.”
“ 그리고 사악곡 상황에 대해서는 들어온 거 있느냐?”
“ 그곳은.....”
전철군은 말끝을 흐렸다.
사악곡에도 많은 위사들이 감시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죽임을 당하여 어떤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사악곡 상황은 거의 백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 들어온 소식이 없단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사주.”
“ 그쪽은 구림세가 전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게다. 지금은 동창 특수부대라는 놈들에게 집중하도록 해라.”
“ 알겠습니다. 사주.”
전철군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묘봉산 남쪽에 위치해 있는 창학곡은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장소 중의 한 곳이었다.
창학곡의 백미는 계곡 중앙에 위치한 초승달 모양의 커다란 호수였다. 신월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호수는 남북으로 누워 있는데, 길이는 사십 장가량이고 폭은 좁은 쪽은 십여 장, 넓은 쪽은 이십 장 정도 되었다.
그 신월호를 바라보는 수백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매복을 하기 위해 창학곡으로 들어온 금의위 위사들이었다.
휙! 휙! 휙!
나직한 파공성과 함께 세 명이 호수 남쪽으로 몸을 날려왔다. 그들은 금밀사의 제이당주 소호 학정인, 반포사 현위영의 수좌 현무 차낙선, 척살사의 학살대 대주 승천도 파일기였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조천신이 전철군과 함께 서 있었다.
“ 끝났습니다. 사주.”
가장 먼저 조천신에게 고개를 숙인 자는 금밀사 제이당주 소호 학정인이었다. 그가 동원한 위사의 수는 제이당주 휘하 육백 명이었다.
“ 자넨.”
조천신은 고개를 돌려 승천도 파일기를 보았다. 승천도 파일기가 지휘하는 학살대는 총 사백 명이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
“ 저희도 배치 끝났습니다.”
“ 넌.”
조천신의 시선이 마지막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 사내는 반포사 현위영 수좌 현무 차낙선이었다.
“ 완벽하게 은신한 상태입니다.”
“ 무기는?”
조천신은 고개를 돌려 전철군을 보았다.
“ 신쟁 이백 정과 일와봉전 오십 문, 벽력탄과 광천뢰를 각각 오십 발씩 준비했습니다.”
신쟁은 납탄을 집어넣고 화약을 이용하여 쏘는 개인 화기의 일종으로 신기영이라는 부대에서 사용하는 무기고, 일와봉전 역시 화약을 사용하는 데 한 번에 히십 발가량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신무기였다.
“ 신쟁과 일와봉전을 꺼내 왔다는 것도 보고서에 넣도록 해.”
신쟁이나 일와봉전 같은 신무기는 황실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품목으로 함부로 꺼내 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 알겠습니다. 사주!”
“ 배치는 어떻게 했는가?”
조천신은 고개를 돌려 학정인을 보았다.
그가 학정인에게 묻는 이유는 세 명 중 가장 연장자이면서 현재 금밀사를 총괄하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 남쪽에는 일와봉전 오십 문과 현위영 위사들이 매복했고, 신쟁 이백 정과 금밀사 위사들이, 그리고 동쪽에는 벽력탄과 광천뢰를 소지한 학살대 대원들이 매복했습니다.”
“ 놈들을 끌어들이는 게 관건이겠구먼.”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쟁, 일와봉전, 벽력탄, 광천뢰, 그 정도 전력이면 놈들을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포위망 안으로 끌어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 지난 며칠간 놈들은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 있던 전철군이 확신 어린 얼굴로 말했다.
“ 그렇게 생각하느냐?”
“ 그렇습니다. 사주.”
전철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 놈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
조천신은 학정인에게 말을 건네고는 몸을 돌렸다.
“ 돌아가시겠습니까?”
학정인은 걸음을 옮기는 조천신을 보며 물었다.
“ 아니네. 저 위에 있을 거네.”
조천신은 북쪽에 솟아 있는 절벽을 가리켰다.
“ 끝나고 뵙겠습니다.”
학정인은 멀어지는 조천신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로 몸을 날려 갔다.
“ 비워라!”
자리로 돌아온 학정인은 주변을 향해 나직하게 소리쳤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창학곡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던 위사들이 일제히 좌우로 몸을 날렸다.
“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마라.”
학정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입구에서 백여 장 떨어진 벌판 근처였다.
“ 오느냐?”
학정인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멀리에서 이편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한동안 그들을 노려보던 학정인은 왔던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가 떠나고 일각 후 수여설을 필두로 한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벌판에 나타났다.
“ 저 안쪽에 묘봉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인 신월호가 있어요.”
수여설 옆에 있는 우성연은 창학곡을 가리키며 말했다.
“ 묘봉산을 잘 알아요?”
“ 연 공자가 이곳을 작전 구역으로 택했다는 말을 듣고 공부좀 했어요.”
“ 와보지도 않고 공부만 한 걸로 산의 각 지역을 알 수 있어요?”
수여설은 깜짝 놀랐다.
그녀를 비롯한 광랑수호단은 우성연의 안내로 움직였다. 그녀는 묘봉산에 수차례 와본 사람처럼 행동했다. 처음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 또한 이곳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 수 소저는 몰라요?”
“ 모르는 게 정상 아닌가요?”
수여설은 되물었다.
“ 지도를 보면 지형이 바로 그려지지 않나? 난 잘 되는데. 이상하네.”
우성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 툴린 적은 없어요?”
수여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 백에 구십구는 맞고, 한 번 정도는 틀려요.”
“ 엄청난 능력이네요.”
“ 별로 써먹을 데도 없는 쓸모없는 능력이에요.”
우성연은 생긋 웃으며 창학곡으로 길을 잡았다.
일행이 창학곡에 도착한 것은 한식경 후였다.
“ 풋!”
선두에서 일행을 안내하던 우성연의 입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상당히 많은 자들이 호수 주변에서 감지됐다.
“ 멋진 곳이네요.”
수여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나가는 투로 말을 건네면서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 제가 그랬잖아요. 묘봉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우성연은 전음을 보냈다.
[ 최소 천 이상이에요.]
[그게 금세 나와요?]
이번엔 우성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는 상당수가 은신해 있다는 사실만 알아차렸을 뿐 대략 몇 명 정도인지는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 연 공자를 따라다니다기 배운 것들이에요.]
[ 전투를 많이 치러서 알게 됐다는 거예요?]
[ 그런 것 같아요. 숫자가 저절로 떠올라요.]
[ 풋!].
우성연은 피식 웃었다.
[ 그나저나 날을 잡은 것 같네요.]
수여설은 수면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 그런 것 같아요.]
[ 무기만 가지고 있을까요?]
[ 무슨 소리죠?]
[ 놈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계속 당하기만 했어요. 인원을 늘린다고 잡을 수 없다는 건 알았을 거라고요.]
[ 황실에서 관리하는 무기를 가지고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 그런 무기가 있어요?]
[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무기가 몇 가지 있어요.]
[ 예를 들면?]
[ 납탄을 쏘는 신쟁, 화전, 일와봉전 등이 있는데 보유하기 편하면서 강한 위력을 지난 건 신쟁과 일와봉전이에요. 그리고 벽력탄이나 광천뢰는 무림에서도 많이 쓰이니까 수 소저도 잘 알거예요.]
[ 신쟁이나 일와봉전을 쉽게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 강기막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예요.]
[ 강기막을 사용할 수는 없어요.]
[ 왜요?]
우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수여설을 보았다. 금의위에서 신쟁이나 일와봉전을 사용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광랑수호단 무공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강기막을 생성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어, 따로 방패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수여설은 강기막을 펼치는 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 우린 적당하게 강하게 보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 금의위가 철수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 철수해도 쫓아가서 없애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복잡해지잖아요.]
[ 그럼 어떻게 하죠?]
[ 일단 나무 방패를 구해 와야겠어요.]
수여설은 장사덕에게 전음을 보냈다.
잠시 후 장사덕은 사십여 명을 데리고 계곡 밖으로 몸을 날려갔다.
‘ 응?’
광랑수호단을 지켜보고 있던 학정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하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을 회복했다. 남은 십여 명은 호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용히 호수를 주시했다.
밖으로 나갔던 자들이 돌아온 건 한 식경 후였다.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통나무들이 들려 있었다.
“ 땔감을........”
피식 웃던 학정인이 벌떡 일어났다.
땔감이라고 하기엔 가져온 통나무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 공격 명령을 내려라!”
학정인은 뒤편에 있는 부하에게 소리쳤다.
“ 공격하라!”
휙휙휙!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쟁을 소지한 자들이 오십 명씩 네 줄로 늘어섰다.
“ 일 열은 준비하라!”
학정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맨 앞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신쟁을 어깨에 올렸다.
“ 발사하라!”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자 이 열에 있던 자들이 조금 튀어나온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매캐한 연기와 함께 도화선이 타들어갔다.
“ 통나무를 세워!”
장사덕은 들고 왔던 통나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그가 내려놓자 다른 대원들도 일제히 통나무를 내려놓았고, 일부 대원들은 뾰족한 나무를 못처럼 박아 넣어 쓰러지지 않게 고정시켰다.
탕! 탕탕탕! 탕탕탕! 탕탕!
반 장 남짓 쌓았을 때였다. 느닷없이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싸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 숙여!”
장사덕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퍽! 퍽퍽퍼! 퍽퍽! 퍽!
작은 납탄들이 쌓아 놓은 나무에 박혔다.
“ 뭡니까?”
장사덕은 수여설을 보며 소리쳐 물었다.
“ 납으로 만든 콩알이야.”
장사덕의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은 우성연이었다.
“ 납으로 만든 콩알이라면?”
“ 독을 바른 거니까 혹여 맞을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 호수 건너편에도 적입니다.”
반대편을 감시하고 있던 마응신조 전관수가 소리쳤다.
휙! 휙! 휙휙휙! 휙휙!
허공을 가르며 새카만 물체가 날아왔다.
“ 달려!”
우성연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통나무를 수면 위로 내던지며 몸을 날렸다.
“ 통나무를 물로 던져라!”
이어 수여설과 남궁운화가 통나무를 던지면서 호수로 뛰어들었고, 다른 이들도 통나무를 던져 넣고 몸을 날렸다.
콰앙! 쾅쾅쾅! 쾅쾅! 콰콰쾅!
조금 전까지 광랑수호단이 있던 자리로 수십 개의 벽력탄이 떨어지며 주변이 초토화됐다.
“와!”
남궁운화의 입이 쩍 벌어졌다. 벽력탄이 떨어진 자리는 얼마나 깊은 웅덩이가 파였는지 안쪽이 보이지도 않았다. 화약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중앙으로 이동해.”
수여설의 말이 들려오자 남궁운화는 호수 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그들이 호수 중앙으로 가자 좌우측에 있던 금의위 위사들이 무기를 앞세우며 걸어갔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수여설은 우성연을 보며 물었다.
일행을 물속으로 유도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 이왕 들어온 거 목욕이나 하죠 뭐.”
“ 목욕을 하려면 넓은 곳으로 가아겠죠?”
“ 그래야 할 것 같아요.”
“ 잡랑, 위로 올라가요.”
“ 알겠습니다.”
장사덕은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은 발을 놀려 위쪽으로 올라갔다.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멈춘 곳은 폭이 이십여 장 되는, 가장 넓은 지점이었다.
그때 수여설은 물속에서 양손을 옆으로 늘이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성연이 물었다.
“ 뭐 하세요?”
“ 저들에게 투석 무기가 있는데 우린 없잖아요.”
“ 무슨 수로 투석 무기를 만든 ....”
우성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여설이 양손을 좌우로 펼 때마다, 끝이 뾰족한 새하얀 얼음 창이 생겨나고 있었다. 만들어진 얼음 창들은 주변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일인당 세 개씩 갈무리하고 있었다.
우성연이 고개를 돌려 호수 주변을 보았다.
호수 근처로 다가온 금의위 위사들은 잔뜩 경곟ㄴ 채로 이편을 바라고 있었다.
호수 동편에는 백여 명 이상이 신쟁을 겨냥하고 있고, 서쪽에는 벽력탄과 광천뢰를 든 자들이 이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 그나마 낫네.’
우성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벽력탄과 광천뢰만 조심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신쟁은 심지가 있기 때문에 겨냥하고 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습 공격을 감행하고 사라지는 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남쪽에도 있기는 한데......”
그의 시선이 남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적이 숨어 있는 건 분명한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 던져라!”
바로 그때 호수 서쪽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검은 물체 대여섯 개가 통나무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 잠수.”
일행은 일제히 숨을 들이켜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우성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수여설로부터 얼음 창 세 개를 받아 들고 동편으로 헤엄쳐 갔다.
콰앙! 쾅쾅! 쾅쾅쾅!
수면에 떠 있는 나무를 겨냥한 듯 폭음이 터져나오며 물이 출렁거렸다 하지만 물속으로 잠수한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 젠장!”
호수를 노려보던 학정인은 욕설을 내뱉었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었다. 놈들이 호수로 뛰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고, 다른 이들과 의논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만 늦은 밤이면 얼음이 어는 차가운 물속에서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말만 오갔을 뿐이었다.
“ 너무 조용한데...”
학정인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호수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놈들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긴장을.....”
츄악!
학정인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수에서 수십 줄기의 물기둥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 노, 놈들입니다.”
호수를 바라보던 위사 한 명이 고함을 내질렀다.
“ 심지에 불을 붙여라.”
학정인의 명령보다 위사들의 동작이 더 빨라삳. 위사들은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자마자 곧바로 신쟁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익!
신쟁의 심지가 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타앗!”
“ 차앗!”
“ 이얍!”
바로 그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던 물기둥 속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은빛 광채가 금의위 위사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 피, 피하라!”
학정인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위사들의 실력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얼음창을 피한다는 건 무리였다.
푹! 푹푹푹! 푹푹!
“ 크악!”
“ 아악!”
“ 으아악!”
“ 크아악!”
첫 번째 던진 얼음 창은 신쟁을 쏘기 위해 앉아 있는 자들의 몸으로 틀어박혔다.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고, 신쟁을 어깨에 메고 있던 자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졌다고 해도 신쟁의 심지에 붙은 불은 그대로였다.
탕! 탕탕탕! 탕탕!
곧이어 바닥에 내팽개쳐진 신쟁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아악!”
“ 으악!”
“ 크아악!”
이번에는 신쟁에서 소아진 납탄에 당한 위사들이 얼굴을 또는 다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 차앗!”
“ 타앗!”
“ 이야압!”
또다시 호수에서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은빛 광채가 노리는 자들 또한 신쟁을 든 자들이었다.
푹! 푹푹푹! 푹푹!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줄을 이었다.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던지는 얼음 창은 단 한주로도 빗나기지 않고 금의위 위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 이건......!”
부하의 심장을 관통한 은빛 물체를 바라보던 학정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놀랍게도 얼음으로 만들어진 창이었던 것이다.
“ 남쪽으로 이동하라! 남쪽으로 피해라!”
학정인은 고함을 내지르며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학정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사들은 남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한 사정은 서쪽도 다르지 않았다. 광천뢰와 벽력탄은 모여 있는 자들을 공격할 때나 필요하지 흩어져 있는 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은 얼음 창에 꼬치 꿰듯 꿰이면서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척!
금의위 위사들이 떠나고 난 자리로 내려선 수여설은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쓰러져 있는 한 사람 곁으로 가서는 주먹 크기의 검은 덩어리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것은 금의위 위사가 흘린 광천뢰였다.
“ 좋은 게 만네요. 언니.”
우성연은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벽력탄과 광천뢰를 주웠다.
“ 몇 개나 되죠?”
그녀는 광천뢰를 우성연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 제가 주운건 두 개에요.”
“ 저도 하나 주었어요.”
“ 저도요.”
서쪽을 맡았던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주운 것들은 벽력탄 다섯 개와 광천뢰 네 개였다.
“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언니.”
우성연은 벽력탄과 광천뢰들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 흑랑은 들어와라!”
수여설은 다시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곧 그녀의 양손에서 빙하빙백수가 펼쳐지고 얼음 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좌우로 펼쳐질 때마다 새하얀 얼음 창이 물 위로 떠올랐다.
장사덕 일행은 물 위로 떠오른 얼음 창을 대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일인당 세 자루식 갖추고 나자 수여설은 강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얼음을 얼렸다.
쩌엉!
순식간에 세로 이 장, 가로 사 장, 높이 한 자의 얼음판이 생겨났다.
“ 잡랑, 이걸 통나무 위에 세워!”
“ 알겠습니다. 군장.”
몇 명은 통나무를 붙여 바닥을 만들고 몇 명은 얼음을 들어 올려 그 위에 세웠다.
“ 하!”
우성연은 멍한 얼굴로 광랑수호단 일행을 보았다. 빙공으로 창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거늘, 이젠 거대한 방패까지 만들고 있다.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전투를 자주 하다 보면 잔머리가 늘어요.”
수여설은 싱긋 웃으며 얼음벽에 양손을 밀착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얼음벽을 보고 놀란 사람은 우성연뿐만이 아니었다.
학정인을 비롯한 금의위 위사들 또한 황당한 얼굴로 다가오는 얼음벽을 바라보았다.
“ 두 분은 준비를 해 주시오.”
학정인은 차낙선과 화일기를 보았다.
얼음벽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는 벽력탄과 광천뢰 그리고 일와봉전밖에 없었다.
“ 알았소이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두로 나갔다.
“ 봉전대는 앞으로 나서라!”
차낙선은 커다란 통을 들고 있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길이가 반 자가량이고, 폭은 한 자 두치, 단면은 육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는 그 물체가 바로 한 번에 스무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신무기인 일와봉전이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게 무게도 상당하여 바로 들지 못하고 줄을 매달아 어깨에 걸친다.
“ 조준하라!”
봉전대가 일렬로 늘어서자 차낙선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봉전대 대원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일와봉전의 뒤쪽은 땅에 고정하고 입구로는 전면의 얼음벽을 겨냥했다. 봉전대가 쏠 준비를 마치자 불씨를 든 조수들이 일와봉전 바로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 벽력탄을 든 자와 광천뢰를 든 자들은 앞으로 나와라!”
일와봉전의 준비가 끝나자 화일의 명령이 떨어지고 신쟁을 든 위사들이 봉전대 뒤편으로 정렬했다.
정렬을 마친 위사들은 신월호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얼음벽이 천천히 이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얼음벽을 바라보는 금의위 위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대한 얼음벽이 그만큼 위압적이었던 것이다.
“ 어떻게 보시오?”
학정인은 차낙선을 보며 물었다.
“ 저 얼음벽을 만든 자는 팔신장의 여섯째인 빙마신장 냉가위일 거요. 그가 빙공의 고수이긴 하지만 그가 만든 얼음벽으로 벽력탄이나 광천뢰를 막아낼 수는 없소이다.”
차낙선은 확신하듯 말했다.
차낙선이 이렇듯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그도 한때 빙공에 심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양의 기운을 타고난 남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빙공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냉가위 또한 다르지 않다. 비록 양물을 잘라 사내도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됐지만 근본이 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음공을 대성할 수는 없다.
그런 자가 만든 얼음벽이 벽력탄과 광천뢰가 터지면서 나오는 압력을 막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절대 불가능하오.”
차낙선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얼음 창과 벽을 만든 사람이 빙허의 경지에 이른 수여설이란 사실을 알 리 없는 차낙선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 내 생각도 그렇소이다.”
학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 말고 준비나 해주시오.”
학정인은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나간 차낙선은 얼음벽과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남은 거리는 십오 장가량, 지금 심지에 불을 붙여야 십 장 거리에 들어왔을 때 발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 신쟁대는 불을 붙여라!”
차낙선에 이어 학정인의 입에서도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 던져라!”
그리고 일와봉전과 신쟁의 심지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 순간, 승천도 화일기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터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