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21화 (221/232)

제 7장 올 수밖에 없는 이유

“ 시작했습니다.”

얼음벽 위쪽에서 금의위 진영을 살피던 전관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 준비하라!”

수여설은 전 내공을 끌어올려 얼음벽에 주입하며 소리쳤다.

“ 우-우!”

통나무 위에 서 있던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일제히 기합을 토해내면서 자세를 한껏 낮췄다.

휙! 휙휙! 휙!

바로 그때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더불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금의위 위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금의 위사들은 허공에 멈추자마자 얼음벽을 향해 일제히 벽력탄과 광천뢰를 내던졌다.

“ 하!”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마지막 기합을 내지르며 바닥을 차고 올랐다. 얼음벽을 잡고 있는 열 명을 제외한 사십여 명은 동시에 솟구쳐 올라 금의위 진영을 향해 얼음 창을 내던졌다.

쐐액! 슈욱! 휘이익!

수십 개의 얼음 창과 수십 개의 화탄이 상대방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먼저 터진 것은 벽력탄과 광천뢰였다.

쾅! 콰콰쾅! 쾅쾅쾅!

스아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얼음벽이 쩍쩍 갈라지고 커다란 파도가 쳤다.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렸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얼음 창이 화살처럼 쏟아진 금의위 진영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비명에 이어 수여설의 입에서도 우렁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 이야압!”

수여설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쩍쩍 갈라진 얼음벽은 새하얀 광채를 토해냈다. 하지만 서른 개의 화탄이 터지면서 발생한 압력은 빙허의 경지에 이른 그녀의 무공으로도 역부족이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와르르!

결국 거대한 얼음벽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다.

푹! 푹푹푹! 푹푹! 푹푹!

바로 그때 뭔가가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조금 전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두 번째로 던진 얼음창이 금의위 위사들의 몸속으로 파고들어가면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 으악!”

“ 아악!”

“ 크아악!”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 계속 던져라!”

얼음벽이 무너지면서 앞이 환하게 열리자 장사덕은 쥐고 있던 얼음창을 사정없이 내던졌다. 그에 이어 다른 이들도 얼음 창을 내던졌고, 광랑수호단의 손을 떠난 얼음 창들은 무서운 속도로 적진을 향해 쏘아져갔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투투!

바로 그때였다.

마치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더니 광랑수호단 대원들 전면이 새카맣게 변했다. 그것은 일와봉전이 토해 낸 화살 일천 발이었다.

“ 젠장!”

장사덕은 욕설을 뱉어 내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 커억!”

“ 크윽!”

“ 으윽!”

미처 피하지 못한 대원들은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물로 빠졌다.

“ 뭐 하고 있어요?”

수여설은 호숫가에 있는 우성연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 알았어요. 호호홍!”

우성연이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시선이 학정인에게로 향했다.

“ 헉!”

갑자기 털이란 털은 곤두ㅅ는 듯한 느낌이 들자 학정인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 신쟁대는 저 계집놈을 겨냥하라!”

학정인은 우성연을 가리키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신쟁대 대원 십여 명이 신쟁의 끝을 우성연을 향해 돌렸다.

“ 썅노무 새끼!”

우성연은 학정인을 향해 가지고 있던 벽련탄과 광천뢰를 몽땅 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벽력탄과 광천뢰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갔다.

“ 헉!”

학정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물체에서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육감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학정인은 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자리를 뜨는 순간 부하들이 검은 물체에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렇듯 망설이는 건 결코 부하들의 목숨이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학정인은 부하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은 금밀사 사주 자리 때문이었다. 조현 사주가 죽은 후 금밀사는 특별히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자는 물론이고 두각을 나타내는 자도 없었다. 가장 앞서 가는 사람은 학정인이었다.

학정인 또한 오점이 될 만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주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점으로 남을 만한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암기가 날아오는데 부하들을 구하지 않고 몸을 피하게 되면,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버린 지휘관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사주 자리는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 젠장!”

학정인은 욕설을 뱉어내며 검은 물체를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콰앙! 쾅쾅쾅! 쾅쾅!

“ 크아악!”

“ 으아악!”

“ 아아악!”  벽력탄 다섯 개와 네 개의 광천뢰가 터지자 금의위 진영은 지옥으로 변했다. 반경 십여 장이 초토화되면서 신쟁대와 봉전대 대원 그리고 심지에 불을 붙여 주던 자들까지 몰살을 당하고 만 것이다.

머리를 광천뢰에 가격당했던 학정인은 시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갈가기 찢겨 나갔고, 학정인 근처에 있던 자들도 걸레처럼 찢겼다.

“ 호호홍! 이 개호로자식들아. 감히 이 우성연을 보고 뭐가 어쩌고 어째?”

우성연은 등에 꽂아 두었던 여의신창을 뽑아 들고 금의위 진영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 막아라!”

벽력탄과 광천뢰의 폭발 속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화일기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금의위 위사들 중 우성연을 상대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위사들은 주춤주춤 물러날 뿐 감히 덤빌 생각을 못했다.

“ 죽어라! 이 썅노무 새끼들아!”

우성연은 발광한 개처럼 여의신창을 휘둘러 댔다. 무식하게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범천조화신공의 초식이었다. 당연 그 위력은 가공할 수밖에 없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우성연 주변으로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우성연은 여의신창에 강기를 실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그렇게 하면 단면이 둥근 창이라도 검기처럼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성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기를 싣지 않은 채 오직 빠르게 휘둘러서 금의위 위사들을 없애고 있었다. 우성연은 개를 때려잡을 때처럼 패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 훗!”

수여설은 어이없는 얼굴로 우성연을 보았다.

사실 그를 보고 있으면 남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행동거지는 여자인 자시니나 남궁운화보다 더 조신하다.

그런데 화가 났을 때는 완전히 미친 개가 된다.

그는 극과 극을 오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 언니!”

옆에 있던 남궁운화가 수여설을 불렀다. 남궁운화는 부상자를 돌아보고 온 뒤였다.

“ 그들은 어때요?”

“ 치명적인 상태는 아니에요.”

“ 좋아요. 시작하도록 해요.”

고개를 끄덕인 수여설은 훌쩍 몸을 날려 통나무 위로 올라갔다.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 흑랑은 공격하라!”

츄악! 촤악! 츄악!

물속에 들어가 있던 광랑수호단 대원들이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통나무를 밟으며 전방으로 내달렸다.

“ 우!”

또다시 그들의 입에서는 특유의 기합이 흘러나왔다.

“ 진영을 유지하라! 먼저 나서지 마라!”

가장 먼저 도착한 장사덕은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 우~!”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여전히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장사덕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쿵쿵! 쿵쿵! 쿵쿵!

순식간에 전열을 정비한 대원들은 발을 구르며 일백마혼참살진을 펼쳤다. 진식이 구축되자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진득한 살기가 요동쳤다.

“ 일 진, 살!”

장사덕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진형 가장 외곽에 있던 대원들이 몸을 날렸다.

“ 하아!”

참았던 숨을 토해 내듯 함성을 내지르며 광랑수호단은 그들의 무기와 방패를 휘둘렀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이 진, 확살!”

“ 하아!”

일 진에 이어 이 진에 있던 이들이 몸을 날리며 조금 전 일진에서 공격했던 자들의 몸에 방패 날을 꽂아 넣었다. 이 진에 속한 대원들이 몸을 날리는 사이에 일 진에 속해 있던 대원들은 가장 안쪽으로 자리했다.

“ 삼 진 살!”

“ 하아!”

휙! 휙! 휙! 휙휙!

“ 사 진 확살!”

장사덕의 입에서 쉬지 않고 ‘살’과 ‘확살’이란 말이 터져 나왔다. 그 결과는 늘 시체로 나타났다.

“ 젠장!”

파일기는 북쪽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적은 단 오십여 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이백 명에 달하는 아군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다. 특히 창을 쥔 우성연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에게 죽은 위사들의 수가 어느새 오십여 명이 넘어가는 중이다. 위사들은 이미 사기를 잃었고, 더 이상의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 나요, 화대협.]

바로 그때 귓전으로 전철군의 전음이 들려왔다.

화일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전철군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 철수하라는 명령이오.]

“ 알았소이다.”

화일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의위 위사들을 보았다. 신월호 남쪽은 금의위 위사들 천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수 앞에 선 양떼들처럼 이리저리 밀리고 있다.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수적 우세가 아니라 사기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뱉으며 뒤편으로 물러났다.

곧 화일기의 입에서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위사들은 철수하라, 물러나라!”

“ 철수하라!”

“ 물러나라는 명령이다!”

금의위 위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창학곡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 호호호! 이 개자식들아! 어딜 도망가느냐?”

우성연은 도망치는 금의위 위사들을 향해 여의신창을 내리찍었다.

퍼억! 퍽퍽퍽! 퍽퍽!

“ 크악!”

“ 아악!”

“ 으아악!”

“ 흑랑은 멈춰라!”

우성연을 쫓아 금의위를 향해 몸을 날리려는 대원들을 수여설이 말렸다. 전투를 하는 목적은 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창 무인들이 아직 묘봉산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래야 진식이 완성될 때까지 금의위와 오군도독부 무인들을 이곳에 잡아 둘수가 있다.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그 자리에 멈췄다.

“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어야 하니까 부상자를 돌보고 주변을 정리하도록 해요.”

“ 알았습니다.”

대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수여설은 고개를 들어 북쪽 절벽 위를 보았다.

조금 전 싸울 때 그곳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던 탓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벽 위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수여설뿐만이 아니었다. 남궁운화 또한 누군가가 이편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누굴까요?”

남궁운화는 수여설을 보며 물었다.

“ 조천신일 거예요.”

수여설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 이 정도로 묘봉산에서 철수하진 않겠죠?”

남궁운화는 주변을 가리켰다.

“ 권력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면 모를까 철수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수여설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어디 가세요?”

“ 이 상태로 잠을 잘 수는 없잖아요. 이왕 젖었는데 몸이나 씻으려고요.”

“ 그럴 거면 함께 가요.”

남궁운화는 다시 절벽 위를 바라보고는 수여설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 제기랄!”

아래를 내려다보던 조천신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벽력탄, 광천뢰에 이어 신쟁, 일와봉전이라는 신무기까지 동원한 전투다. 그런데도 적 오십 명을 없애지 못한 것이다. 짜증이 확 일었다.

“ 네 생각은 어떠냐?”

조천신은 위로 올라온 전철군을 향해 물었다.

“ 금의위 위사들 실력으로 저들을 없앨 수 있는지 그걸 물은 겁니까?”

“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조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가능할 거라고 봤습니다.”

“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구나.”

“ 금의위 위사들로는 저들을 잡을 수 없습니다.”

“ 그렇단 말이지...”

조천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래를 바라보던 그는 다시 전철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보고서는 어느 정도까지 작성됐느냐?”

“ 마무리 작업 중에 있습니다.”

“ 저자들에 대한 내용도 집어넣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보낼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 알겠습니다. 사주.”

전철군은 고개를 숙였다.

“ 가자!”

조천신은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곧 조천신과 전철군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뜬 그 시각, 정리를 마친 광랑수호단 대원들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음식뿐이었다.

불과 식기는 전부 현장에서 구했다. 잘라 온 나무를 잘게 쪼개 삼매진화로 말려 불을 피우고, 그릇은 돌을 주워다가 강기를 이용해서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 수 언니는 어디 갔죠?”

우성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장사덕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돌을 파서 커다란 솥을 만드는 중이었다.

“ 어디까지 다녀오신 겁니까?”

장사덕은 우성연의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성연의 옷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벌판까지.”

“ 멀리도 다녀오셨네요. 저 위에 계십니다.”

장사덕은 호수 위쪽을 가리켰다.

“ 고마워.”

우성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 저기 그분들은.....”

“ 왜?”

우성연은 걸음을 멈추고 장사덕을 보았다.

“ 아, 아닙니다.”

장사덕은 고개를 저었다.

수여설과 남궁운화는 호수 북쪽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그 사실을 말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 자식, 싱겁기는.”

우성연은 피식 웃으며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호수 북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 언니 저예요.”

그는 수여설이 놀랄까봐 미리 말을 건넸다.

수여설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남궁운화를 보았다. 그녀와 남궁운화는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는 중이었다. 이 상황을 우성연에게 보여 줘도 괜찮은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 그를 여자로 인정해줘야 해요, 언니.]

남궁운화는 전음을 보냈다.

[ 그에게 가슴과 아래를 전부 보여주겠다는 거야?]

[ 가리는 건 더 이상하잖아요.]

[ 그렇긴 한데....]

수여설은 말끝을 흐렸다.

“ 어디 있어요?”

또다시 우성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에요.”

수여설은 어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우성연이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치를 묻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가도 괜찮겠냐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가슴도 튀어나왔고,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우성연이 나타났다.

“ 목욕하는 중이네요?”

“ 알고 왔으면서 뭘 물어요. 들어와요.”

그를 여자로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수여설은 흔연하게 대했다.

“ 알았어요.”

우성연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수여설과 남궁운화가 보는 앞에서 옷을 훌훌 벗고 물 안으로 들어갔다.

“ 몸매가 예쁘네요.”

수여설은 우성연의 몸을 보며 말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우성연의 몸매는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은 탄탄해 보이고, 가느다란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선은 완벽에 가까웠다. 저런 몸매를 가진 사람이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정말요?”

우성연은 활짝 웃어 보였다.

“ 나보다 훨신 나아요.”

“ 그건 아니잖아요, 언니.”

우성연은 수여설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남궁 가주에게 물어보면 알잖아요.”

“ 정말이야?”

우성연은 얼른 남궁운화를 보았다.

“ 수 언니가 완벽한 풍만함이라면 우 언니는 더하거나 뺄게 없는 완벽한 아담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넌 풍만하면서 아담한 완벽이고?”

“ 전 완벽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 흥! 그러면서 가슴엔 왜 힘을 주는데?”

“ 제가 언제 힘을 줬다고 그래요?”

“ 조금 전에 불쑥 내밀었잖아.”

“ 그건 씻으려고 그런 거잖아요. 쓸모없이 크기만 한 가슴이 자랑할 게 뭐 있다고 내밀겠어요?”

“ 쓸모없이 크기만 해?”

“ 네.”

“ 쓸모없이 크다는 말도 자랑이야, 이년아.”

“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 아무튼 넌 복을 타고난 년 맞아.”

“ 어렸을 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요. 늘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요리만 하고 살았는데.”

“ 네가 요리할 땐 난 나무껍질을 벗겼어, 이것아. 그것도 없어서 못 먹었어.”

“ 저, 정말 그랬어요?”

“ 잔말 말고 등이나 돌려.”

우성연은 남궁운화의 몸을 홱 돌렸다.

“ 미안해요, 언니.”

남궁운화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 내가 그렇게 살았는데 네가 왜 미안해?”

“ 전 그것도 모르고...”

“ 지금은 그 세월을 웃으며 말할 수 있으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그리고 난 철이 들 때가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 배는 고팠지만 서럽지는 않았어. 그런데 너 피부가 왜 이모양이야?”

우성연은 화제를 돌렸다.

“ 제 피부가 어때서요?”

우성연이 과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남궁운화는 얼른 우성연의 말을 받았다.

“ 가슴하고 엉덩이만 풍만하면 뭘해? 완전히 나무껍질인데.”

“ 나, 나무 껍질이라고요?”

“ 만져 봐.”

우성연은 남궁운화의 손을 자기 배로 잡아당겼다.

“ 와!”

우성연의 피부를 만져보던 남궁운화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우성연의 피부는 아기 피부처럼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웠다.

“ 수 언니도 만져 보세요.”

남궁운화는 수여설의 손을 잡아당겨 우성연의 배 위에 대주었다.

“ 정말이네?”

수여설 또한 남궁운화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감탄한 얼굴로 우성연을 보았다.

“ 아무리 타고났다고 해도 피부는 가꿔야 하는 거라고요.”

우성연은 목에 힘을 잔뜩 준 채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 어떻게 관리를 한 거죠?”

수여설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먼저 제 궁금증을 풀어 주면 나무껍질을 아기 피부처럼 만드는 비법을 알려드릴게요.”

“ 궁금한 게 뭔데요?”

“ 언니를 비롯한 광랑수호단이 어정쩡하게 싸우는 이유요.”

“ 그건 금의위나 오군도독부 무인들을 잡아두기 위해서라고 말했잖아요.”

“ 그게 다라고요?”

우성연은 수여설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수여설로부터 그 말을 들었고, 처음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의위나 오군도독부 무인들을 이곳에 잡아두기 위해서라면 적당한 선에서 치고 빠지면 되는데 어떨 때는 전력을 다해 적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의 사상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치열하게 싸운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광랑수호단은 금의위가 다시는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밟아 버렸다. 인원수는 이십 배 이상 많았고, 화약 무기까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패했는데 다시 덤빌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적을 몰살시키지 않으면서도 다시는 덤빌 생각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성연이 알고 싶어하는 건 그 숨어 있는 의도였다.

“ 네.”

수여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 흥! 그럼 평생 그런 나무껍질 같은 피부를 연 공자의 입에 대주고 사세요.”

“ 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수여설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 제게 뭐라고 했나요? 전 다만 나무껍질을 좋다고 쪽쪽 빨고 있을 연 공자가 불쌍해서 그런 것뿐이라고요.”

“ 쪼, 쪽쪽 빨아요?”

“ 아닌가요?”

우성연은 수여설의 가슴을 빤히 보았다.

“ 끄응!”

수여설은 얼굴을 찌푸렸다.

“ 연 공자 입이 쩍쩍 달라붙게 해줄 테니까 말해 주세요.”

“ 공오인이에요.”

수여설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 금의위 영반을 노리고 있다는 거예요?”

우성연은 깜짝 놀랐다.

설마 숨겨진 의도가 금의위 영반 공오인이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이곳 묘봉산에는 오군도독부, 금의위, 동창이 전부 들어와 있어요. 오군도독부 각 수장들은 좌군도독부 도독 제승기만 빼고 전부 죽었고요.”

“ 무, 무슨 소리에요?”

우성연은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유설연과 우성연은 오군도독부 무장들보다 빨리 들어온 바람에 그들이 죽임을 당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뭘 그렇게 놀라요.”

“ 어, 언니. 그들이 죽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라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고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우성연은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수여설이나 남궁운화와는 달리 공직에 몸을 담그고 있는 우성연은 오군도독부 수장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군도독부 도독의 죽음은 북경이 발칵 뒤집힐 정도의 엄청난 일이었던 것이다.

“ 진짜 몰랐어요?”

수여설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유설연과 우성연이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우성연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 전혀.”

우성연은 고개를 저었다.

“ 연 공자가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그들을 전부 없애 버렸어요.”

“ 맙소사.”

우성연은 입이 쩍 벌어졌다.

문득 출발할 때 유설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연우강이 천지개벽할 일을 벌일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천지개벽할 일이라는 게 바로 오군도독부 수장들의 죽음이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유설연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 이제 권력자라고 하는 자들 중 남은 자는 좌군도독부 수장인 제승기와 금의위 영반 공오인이에요.”

“ 그러니까 언니를 비롯한 광랑수호단이 묘봉산을 헤집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공오인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라는 거군요.”

“ 연 공자는 오군도독부 수장들을 죽이고 시체를 치우지 않았어요. 그들의 죽음은 금의위에 알려질 테고, 공오인도 알게 될 거예요. 그럼 이곳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테고, 묘봉산에 들어와 있는 자가 유설연 소제독과 제승기가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공오인 입장에서 보면 제승기와 유설연 소제독만 없애면 북경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없는 지금 각 사주를 중심으로 한 금의위 위사들이 그 일을 해주는 건데, 위사들로서는 감히 손도 쓰지 못할 강자들이 묘봉산에 있다는 거죠.”

“ 구룡천문 무인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 최소한 우리를 없앨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데리고 올 거예요.”

“ 상당한 강자들이 올 거라는 말이네요.”

우성연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요. 이번 작전이 끝나면 구룡천문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거예요. 물론 북경의 주인은 유설연 소제독이 될 거고요.”

수여설은 우성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그럼 앞으로는 발 뻗고 자도 되는 건가요?”

“ 제대로 잔 적 없어요?”

“ 설연 언니는 단 한 번도 아침까지 푹 자본 적이 없어요. 늘 한밤중에 일어나서는 주변을 살피고 아무 일 없으면 다시 잠들곤 해요.”

“ 그랬군요. 아무튼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자다가 깨어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수여설은 측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자들에게도 그런 고충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 그렇겠죠. 하지만 거덜난 항문은.....”

우성연은 말을 멈췄다. 정상적인 몸을 가진 저들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초라해질 뿐이다. 아무 소리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듯했다.

“ 무슨 말이죠?”

“ 사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등 밀어드릴게요.”

우성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수여설의 팔을 잡았다.

“ 내가 먼저 밀어줄게요.”

수여설은 우성연 뒤로 자리를 옮겨 등을 밀었다.

“ 손바닥도 나무껍찔이잖아요. 등에 상처 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세게 밀어요.”

우성연은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등을 움직여 자리를 이동하거나 하진 않았다.

“ 무인의 손이 이 정도면 양호한 거라고요.”

“ 언제까지 무인으로 살 건 아니잖아요.”

“ 그래도 당분간은 무인으로 살아야 해요. 그런데 손바닥도 부드럽게 할 수 있어요?”

“ 당연하죠.”

“ 그것도 배워야겠네.”

“ 걱정마세요.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드릴게요. 남궁 동생은 뭐해.”

“ 알았어요.”

남궁운화는 우성연 앞으로 등을 들이밀었다. 세 사람은 같은 방향을 보며 등을 밀어주었다.

몸을 씻고 난 세 사람은 벗어 둔 옷을 삼매진화로 말린 다음 걸쳤다. 그러고는 광랑수호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 식사하십시오.”

그들이 돌아오자 장사덕이 돌로 만든 그릇을 내밀었다. 돌그릇 안에는 육포를 끓인 음식이 들어 있었다.

“ 식사는 했어요?”

수여설은 그릇을 받아 들며 물었다.

“ 네, 전부 먹었습니다.

“ 부상자들은 어때요?”

“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나면 움직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 불행 중 다행이네요. 오늘은 이곳에서 마물거니까 푹 쉬도록 하세요.”

“ 알겠습니다.”

장사덕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앉아 식사를 했다.

“ 그런데 그가 올 거라고 보세요?”

식사를 하던 우성연이 수여설을 향해 물었다. 공오인에 대한 질문이었다.

“ 오군도독부 수장들이 죽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왜냐면?”

“ 힘이 있기 때문에?”

“ 맞아요. 힘이란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잖아요.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하는데 이곳 묘봉산이 그렇거든요. 그는 반드시 이곳에 올 거예요.”

“ 하긴 저라도 이곳으로 오겠어요.”

우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오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 공오인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이곳 묘봉산은 북경의 권력 전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잡으면 인생이 완전하게 바뀌는, 평생 한 번 올까말까 하는 그런 엄청난 기회.

바보가 아닌 이상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럴 거예요.”

수여설은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곳에 와서도 연우강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을 전해 준 사람은 한창 진식을 설치하고 있는 이상철이었다. 그로부터 듣고 그로부터 작전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일이 끝나면 볼 수 있겠지요.’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차 한 잔씩을 마신 뒤 불 옆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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