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주화입마엔 주화입마로.
연우강은 군무옥 일행을 보았다.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만큼 단목승울이 뿜어내는 힘이 강했다.
연우강은 단전을 완전하게 열어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주화입마에 걸리게 되면 일각에서 이각 동안 지난 모든 힘을 쏟아내게 되는데 그때 쏟아내는 힘은 원래 가진 힘의 두 배 내지는 세 배가 된다.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다.
‘ 문제는 단목승울이 죽기 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데......’
연우강은 빠르게 날아오는 혈루를 보며 사망마비를 내던졌다.
단목승울이 뼛속까지 무인이란 사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보통 주화입마에 들게 되면 완전하게 이성을 잃고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단목승울은 여전히 혈루를 만들어 공격하고 있다.
물론 혈루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처럼 붉었는데 지금은 죽은 피처럼 검붉은 색이다. 더불어 속도 또한 두 배나 빨라졌다.
그리고 혈루와 함께 단목승울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 최소한 사갑자란 말이네.’
연우강은 놀란 눈으로 단목승울을 보았다.
그동안 기연만으로도 팔 갑자의 공력을 얻었다. 아니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다. 북망산 지하 무덤에서 먹은 영약은 계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화입마를 통해 얻은 공력도 이갑자 가량 된다.
그렇다면 최소한 십 갑자의 공력이 된다.
그런데 그 공력을 전부 끌어올리고도 단목승울에게 밀리고 있다. 그건 곧 단목승울의 공력이 최소 사갑자에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
“ 하지만.......”
연우강은 단목승울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사망마비를 날렸다. 주화입마에 들게 되면, 설사 약간의 정신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몸과 마음은 잔뜩 흥분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움직임이 적은 정적인 대결은 견디지 못한다. 그는 금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다.
그때가 바로 그를 없앨 기회가 될 터였다.
[ 기다려!]
연우강은 군무옥 일행헤게 혜광심어를 보냈다.
[ 견디고 있는 거야?]
유설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직은!]
“ 크아아아!”
바로 그때 단목승울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앙!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단목승울이 바닥을 강하게 구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푸아악!
단목승울이 자리를 뜨자 역장에 구멍이 뚫리면서, 지금껏 역장을 형성하고 있던 힘이 그 구멍을 통해 단목승울을 쫓아 나갔다.
연우강은 그 힘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뚫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 크악!”
그 순간 위쪽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이십여 장 높이가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단목승울은 역장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 지옥탄!”
단목승울의 비명에 이어 차가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연우강 또한 단목승울을 좇아가면서 곧바로 공격을 가했다. 그의 전신에서 사망정주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갔다.
“ 크아아!”
단목승울은 연우강이 쏘아낸 사망정주를 향해 왼손과 오른손 주먹을 연거푸 내질렀다. 순간 검은색 강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주먹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사망정주를 향해 쏘아져갔다.
콰앙! 쾅쾅1
사망정주와 검은 주먹이 부딪치자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 크윽!”
이번엔 연우강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연우강의 신형은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 크아아!”
단목승울은 괴성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쏘아져 갔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기다렸다는 듯 군무옥 일행이 단목승울을 향해 몸을 날리며 각자의 무공을 펼쳤다.
“ 크아아아!”
단목승울은 괴성을 내지르며 군무옥 일행을 향해 양손을 밀어냈다. 이번에 펼치는 무공 역시 조금 전 펼쳤던 마운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마운과는 완전히 달랐다 조금 전에 펼쳤던 마운은 반장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검붉은 구름 더엉리의 크기가 거의 삼 장에 달했다.
그 정도 크기면 군무옥 일행을 완전히 감싸고도 남았다.
콰앙! 쾅쾅쾅! 쾅쾅! 쾅쾅!
“ 크억!”
“ 커억!”
“ 크윽!”
“ 아악!”
처절한 비명이 줄을 이었다.
허공을 향해 날아가던 군무옥 일행은 나아가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겨졌다.
퍽! 퍽퍽퍽! 퍽퍽퍽!
거칠게 처박힌 그들의 신형은 절반 가까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 완전 괴물이네.”
유설연은 질린 얼굴로 단목승울을 보았다.
방금 단목승울을 공격한 열 세명은 한 문파의 문주 수준이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무공 또한 얼마나 화려한가. 구유잔백일천도, 우주일만검결, 광풍파랑십삼절, 백무탈혼유마검, 일천독행신, 그리고 범천조화신공.
모두가 전설급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익힌 자들의 합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목승울은 십여 장 물러나는 데에 그친 듯하다.
단목승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유설연의 시선이 연우강에게로 향했다.
그는 단목승울을 향해 천천히 떠오르는 중이었다.
“ 괜찮아?”
시선이 마주치자 연우강은 물었다.
“ 우엑!”
“ 우엑!”
“ 우욱!”
굳이 대답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일행은 피를 토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완전히 괴물이 됐군.”
연우강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단목승울이 강할 거란 예상은 했다. 하지만 저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주화입마에 들면 두 배 내지 세 배 강해진다고 하지만 일반 무인은 두 배 정도, 선천지기를 익힌 무인들에 한해서만 세 배 정도 강해진다. 그런데 단목승울의 지금 내공은 십 갑자를 상회하고 있다. 그건 곧 단목승울이 익힌 내공이 선천지기에 가깝다는 의미다.
“ 연우가아앙!”
단목승울은 이번에는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은 급하게 사망혈궁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화살처럼 쏘아져 오는 단목승울의 머리를 겨냥했다.
시위가 당겨짐과 동시에 풍뢰가 생겨났다. 검은색 풍뢰는 섬뜩한 살기를 뿌렸다.
거리가 십 장으로 좁혀지자 시위를 놓았다.
콰콰콰콰!
고막을 파열시키고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드는 음공이 먼저 단목승울을 향해 쏘아져 갔다.
“ 크아!”
단목승울은 고함을 내지르며 오른손을 강하게 내질렀다. 단목승울의 주먹에서 쏘아진 검붉은 강기와 연우강이 쏜 풍뢰가 허공에서 부딪치면서 광포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콰앙!
“ 빌어먹을!”
슈악!
연우강은 욕설을 뱉어 내고 허리춤의 뇌섬을 날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단목승울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콰앙!
또다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뇌섬을 막아내면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 순간 연우강은 이미 단목승울의 일 장 앞에 가 있었다.
그는 곧바로 오른손과 왼손을 내질렀다. 검은색도 붉은색도 그렇다고 백색도 아닌, 삼색이 교묘하게 섞인 듯한 그 기운은 천마삼경 상의 세 무공을 합친 흑마백옥혈잔이었다.
피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냥 둔 건지 천마 제석강이 창안하고 혈마 수연의 무공이 됐던 흑마백옥혈잔은 단목승울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퍼억!
단목승울의 옆구리 살이 움푹 뜯겨나갔다.
콰앙!
바로 그 순간 단목승울이 쏘아낸 검붉은 강기 주먹이 연우강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놀랍게도 이성을 잃었을 거라고 여겼던 단목승울은 동귀어진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 커억!”
연우강은 피 화살을 뿜어내며 뒤편으로 날려갔다.
콰앙!
그는 곧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지면을 뚫고 들어갔다. 그가 파고들어간 곳은 유설연 바로 옆이었다.
파앗!
“ 도와줘?”
유설연은 연우강을 빤히 보며 물었다.
“ 잘못하다간 죽어, 인마.”
“ 씨팔! 나 북경의 개작두야, 자식아!”
“ 저 영감은 요괴야, 인마.”
“ 주화입마 상태인데도 이성을 잃지 않았거든.”
“ 그럼 문파가 있었다고?”
“ 응!”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어떤 문판데? 혹시.”
“ 맞아, 흑천이란 문파야.”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목승울을 보았다
주화입마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무공. 그런 무공은 흑천밖에 없다. 결국 단목승울의 마림은 흑천에서 갈라져 나온 문파일 가능성이 높았다.
“ 그, 그럼 너도 가능해?”
“ 아마도.”
“ 만일 네가 주화입마에 들면 얼마나 강해지는 거지?”
“ 글쎄, 그건 잠시 후에 알게 될 거야.”
“ 설마 주화입마에 들겠다는 거야?”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자를 없앨 수 없어.”
“ 주화입마에 들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되는데?”
“ 날 없애고 싶으면 그때를 노리면 될 거야.”
“ 미친 새끼, 지랄하고 있네. 내가 널 왜 죽여, 새꺄!”
유설연은 고함을 내질렀다.
“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리고 지금부터 미친 듯이 싸워야 하니까, 물러나 있어.”
연우강의 신형이 서서히 부상해 올라갔다.
“ 그 궤짝은 놓고가!”
여전히 궤짝을 둘러메고 있는 연우강을 보며 소리쳤다.
“ 이 궤짝은 벗을 수 있는 게 아냐.”
연우강은 고개를 저었다.
“ 왜?”
“ 내 짐이기 때문에........”
“ 짐이라고?”
“ 그런 게 있어.”
어느새 허공으로 솟구친 연우강은 단목승울과 오 장 거리를 두고 허공에 멈춰 섰다.
“ 아무튼 영감은 더럽게 운이 없는 게 맞아. 나와도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
“ 난 너만 없애면 된다. 연우강. 너만 죽이면 편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다. 크아아!”
단목승울은 괴성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게 바로 맹목적인 증오야, 영감. 그걸 버리지 못하면 영감은 죽어서도 좋은 곳으로 절대 못 가.”
연우강은 달려오는 단목승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금세 마주쳤다.
무려 십 갑자의 내공을 머금은 두 주먹이 서로를 향해 쏘아져 갔다.
콰앙! 콰앙!
두 사람의 가슴에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커억!”
“ 캬아우!”
충격은 연우강이 더 많이 받은 듯, 그는 피를 토하며 뒤편으로 훨훨 날아갔다.
“ 이제 시작이다!”
파앗!
뒤편으로 밀려나던 단목승울은 허공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그는 이미 마음이 가면 몸이 가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순식간에 연우강 앞에 선 그는 강하게 오른발을 차올렸다.
“ 기다리고 있었어, 영감!”
연우강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막는 것 대신 공격을 택했다.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면서도 오른발을 차올렸다.
콰앙! 쾅!
두 사람의 발은 상대방의 배로 박혀들어 갔다.
“ 커억!”
“ 크윽!”
두 사람의 신형이 뒤편으로 밀려났다.
여전히 손해를 본 쪽은 연우강이었다. 단 두 번의 공격으로 그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창백하게 변했고, 입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망묵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캬우우!”
승리에 고무된 탓에 그런 건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강해진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단목승울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연우강의 타격으로 인해 반장가량 물러났던 그는 다시 엄청난 속도로 다가들었고, 연우강의 심장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연우강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단목승울의 주먹을 빤히 바라보면서 단목승울의 심장에 오른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콰앙!
“ 커억!”
“ 크윽!”
둔탁한 소성에 이어 고통에 겨운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이미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두 사람이라 타격을 당한 부위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다만 몸 내부가 조금씩 붕괴돼 가고 있었다.
“ 내가 갈게요, 연 공자!”
보다 못한 봉연이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안 돼, 봉연.”
콰앙! 콰앙!
“ 커억!”
연우강의 신형이 오 장여를 날아갔다.
같은 공격이 이어지면서 점점 연우강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 왜요?”
“ 전에 내가 불러준 구결 기억나?”
콰앙!
“ 크아악!”
“ 연 공자.”
실 끊어진 연처럼 훨훨 날아가는 연우강을 쫓아 봉연은 몸을 날렸다.
“ 운우지정공이라고 했던 그 구결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 그래야 날 구할 수 있어.”
“ 그, 그건....”
봉연은 안타까운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비로소 연우강이 그 해괴망측한 구결을 불러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연웅강은 이미 지금 상태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망가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 운우지정공을 전수해 준 것이었다.
콰앙! 콰앙!
“ 크악!”
“ 커억!”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봉연은 연우강을 보았다. 여전히 상황은 같았다.
단목승울과 연우강은 서로를 향해 주먹과 발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쪽은 연우강이었다. 아니 연우강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망철립이 벗겨진 그의 얼굴을 향해 단목승울의 주먹이 무차별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콰앙!
“ 커억!”
연우강의 공격이 작렬한 듯, 단목승울은 비명과 함께 주르르 물러났다.
파앗!
하지만 그의 신형은 물러선 것보다 두 배는 빠르게 튀어나갔다.
퍼억!
“ 크윽!”
그리고 이번엔 연우강의 입에서 피 화살이 뿜어져 나왔다. 뒤편으로 훨훨 날아가는 그는 장미덩굴 속으로 처박혔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엔 잠잠했다.
“ 제발....”
봉연은 연우강이 무사하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 캬우우!”
늑대울음 같은 외침을 토해내며 단목승울은 연우강이 떨어진 장미덩굴로 몸을 날렸다.
“ 씨팔!”
싸움을 지켜보던 유설연이 개작두 날을 들고 몸을 날렸다. 연우강이 기다리라고 했지만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죽는 건 나중 일이고 우선은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 조또!”
유설연이 몸을 날라지 군무옥 일행도 욕설을 뱉으며 몸을 날렸다.
“ 넌 안 돼.”
봉연이 그들을 따라 몸을 날리려고 하자 유설연의 목소리가 그녀를 막았다.
“ 소제독.”
“ 우강이 말대로 해. 우강이 죽고 내가 죽으면 그땐 봉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아, 알았어요.”
봉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 멈췄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빌었다. 하늘의 별을 보며 간절하게 비는 사람은 그녀 말고 또 있었다.
급하게 몸을 날리는 이들은 이세연을 비롯한 독림과 요림 무인들이었다.
“ 서둘러라!”
맨 선두에서 몸을 날리는 이세연은 무인들을 독려했다.
그의 얼굴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쉬지 않고 들려오는 괴성.
그 괴성을 내지르는 자가 마림의 가주 단목승울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문제는 그 괴성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내지르는 기합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캬우우우!”
또다시 그 괴성이 들려왔다.
이세연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잔뜩 억눌려 있는 듯한 상태에서 토하듯 뱉어내는 저 괴성은 이성을 잃은 상태, 즉 주화입마 상황에서 내지르는 외침 같았다. 평소 단목승울의 성격으로 봐서 정상적인 상태라면 저렇듯 괴성을 지를 리가 없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악!”
이어 수십 마디의 비명이 들려왔다.
“ 젠장!”
이세연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이번 비명은 단목승울을 공격하던 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 같다. 주화입마 상태라면 저렇듯 많은 무인들의 공격에 배겨나질 못해야 맞다. 도대체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서둘러라!”
이세연은 재차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화악곡을 햐애 몸을 날리는 자들은 이세연 일행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승, 도, 속인으로 이루어진 백여 명의 무인들도 빠른 속도로 화악곡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금의위 영반 공오인, 소림의 요료대사, 무당의 창천진인, 화산파의 자하검신, 개방의 용왕개가 서 있었다.
그들을 화악곡으로 안내하는 자는 조천신과 그의 심복 전철군이었다.
“ 얼마나 남았느냐?”
공오인은 조천신을 보며 물었다.
“ 반 시진만 더 가면 됩니다. 영반.”
공오인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전철군이었다.
“ 지름길은 없느냐?”
“ 공오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를 비롯한 구룡천군 무인들은 곧바로 화악곡으로 향하게 된 건 느닷없이 들려온 괴성 때문이었다.
그 괴성을 듣자마자 요료대사 일행은 괴성을 내지른 자가 연우강과 싸우고 있는 구림세가 무인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 위치파악이 되지 않은 동창의 특수부대보다는 연우강을 먼저 처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고는 몸을 날려가는 중이었다.
“ 지금 가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 크아아아!”
“ 아미타불!”
멀리서 괴성이 들려오자 요료대사는 저도 모르게 불호를 읊조렸다. 요료대사 또한 이세연처럼 괴성에 내포된 감정을 읽어냈다.
그가 느낀 괴성은 이성적인 사람의 기함이 아니라 광인이 내지르는 분노에 찬 외침이었던 것이다.
“ 주화입마에 든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앞에 있던 창천진인이 물었다.
“ 그런 것 같네.”
요료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누구일 것 같은가?”
창천진인이 다시 물었다.
“ 연우강 아니면 구림세가 무인이겠지.”
요료대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그런 대답은 나도 할 수 있네. 그럼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창천진인은 고개를 돌려 용왕개를 보았다.
“ 날 비웃고 싶은 겐가?”
용왕개는 창천진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들이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구룡천문이란 현판을 올리고 난 다음이었다.
몽산에 있을 때 저들은 세속의 일에는 초연했다. 그랬던 저들의 눈동자가 욕심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구룡천문이란 현판 때문이다.
물론 대야벌이 종이호랑이로 변한 강호 정세가 더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분명 저들은 단순한 바람과 같은 그런 꿈이 아니라, 강호 정복이라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구룡천군을 결성한 목적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저들의 꿈을 알기에 막을 수가 없었다.
“ 잊어버리라고 하는 말이네. 해천의 말처럼 우린 정의를 버리고 신념을 택했네. 우리가 버린 정의 안에는 가족도 포함돼 있네. 자네가 다기 가족을 택하는 순간 우린 자넬 배신자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네.”
“ 배신자라.....”
용왕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구룡천군을 결성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과 다른 의견을 가진 조직원을 배신자로 몰아 버리는 상황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조직원의 의견을 듣지 않는 조직은 폐쇄적으로 변하고 결국엔 내부로부터 무너지기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룡천군이 그렇게 돼가고 있는 중이었다. 쪽의 작은 계곡 안이었다.
“ 구룡천문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규율 또한 변할 수밖에 없네.”
“ 자네 생각도 그런가?”
용왕개는 고개를 돌려 요료대사를 보았다.
“ 아미타불! 우리가 선택한 길일세.”
요료대사는 용왕개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불호를 읊었다.
“ 구룡천문을 세우고 나니까 강호 정복에 대한 욕심이 생겼나 보구먼.”
용왕개는 창천진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 부정하지 않겠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강호 무림은 또다시 천 년 동안 대야벌의 발 아래에서 신음해야 하네. 난 그 상황을 막고 싶을 뿐이네.”
“ 알았네.”
용왕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구룡천군의 결성을 위해 가족마저 버린 자네네. 난 앞으로도 계속 자네를 존경하면서 살고 싶네. 그리고 자네 무덤의 비석에서 대의를 위해 가족마저도 버린 사람이란 명문을 새겨줄 참이네.”
“ 허허허! 내 비석까지 챙겨줄 생각을 하고... 고맙구먼.”
“ 누군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창천진인은 용왕개를 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 쿠아아아!”
“ 응?”
“ 헉!”
“ 억!”
일행의 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괴성을 듣자마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며 맹수 앞에 발가벗고 선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만큼 괴성에 내포된 힘이 강했다.
그들은 서로를 보았다.
“ 비정상적인 외침이네.”
창천진인은 단언하듯 말했다.
그가 이렇듯 확신하듯 말하는 것은 만일 정상적인 무인이 내지른 외침이라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상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하다는 요료대사도 결코 그 정도는 아니었다.
“ 바금 외침 또한 주화입마란 말인가?”
요료대사가 물었다.
“ 그렇네. 요료. 아니 그래야 하네.”
“ 아미타불! 분명 그럴 거네.”
요료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가세!”
창천진인은 멈춰 서 있는 공오인을 보며 말했다.
“ 알았소이다.”
공오인은 조천신을 보았다.
“ 모시겠습니다.”
조천신은 길을 잡았다.
일행은 곧 빠르게 몸을 날렸다.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단언했던 창천진인의 말은 맞았다. 구룡천군 무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던 괴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연우강이었다.
유설연 일행은 멍한 얼굴로 장미덩굴에서 솟아오르는 연우강을 보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히ㅤㅁㅡㅇㄹ 견디지 못한 장미덩굴이 갈가리 찢겨나가, 초가을 낙엽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 어, 어떻게 된거야?”
유설연은 연우강을 보며 소리쳤다.
“ 일단 저자부터.......”
아무리 주화입마를 통해 내공을 증진시켜 왔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화입마 상태는 통제하기 힘들었다.
지금 미친 듯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흑풍은 최소한 이십 갑자가량 되는 공력을 머금고 있다.
어니 어쩌면 삼십 갑자에 달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 공력을 가지고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한순간에 몸은 갈가리 찢겨나가고 말 터였다.
“ 크아아아!”
단목승울은 괴성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기가 이성마저 갉아먹고 있는지 연우강이 변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 이젠 안 돼, 영감.”
연우강은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두 사람이 뻗어낸 힘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콰아앙!
푹! 푹푹!
휘이익!
엄청난 광경이었다. 권경이 부딪친 아래쪽에는 반장 깊이의 구덩이가 생겨나고, 반발력은 바람이 돼 주변으로 몰아쳐갔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 커억!”
쿵쿵쿵! 쿵쿵쿵!
단목승울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 왜냐면.......”
스윽!
연우강의 신형이 번개처럼 단목승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조그마한 파공성조차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단목승울은 연우강이 내민 오른손을 방어했다.
콰앙!
“ 커억!”
전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단목승울은 이 장여를 날려갔다.
쿠웅!
그는 겨우 중심을 잡고 날아 내렸다.
“ 크아아아!”
마음먹을 대로 되지 않자, 화가 치민 듯 단목승울은 괴성을 내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가 몸을 날려 가는 자세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웬만한 무인들이 펼치는 신법보다는 몇 배 빨랐지만 일관성은 없었다. 즉 신법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주화입마를 일으킨 내기가 단목승울의 머릿속을 완벽하게 장악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콰앙!
또다시 그의 가슴에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커억!”
단목승울은 피 화살을 뿜어내며 뒤편으로 훨훨 날아갔다.
그런 단목승울을 검은 그림자 하나가 가공할 속도로 따라 붙었다.
“ 악연은 일찍 끝내는 게 좋은 거야, 영감.”
순식간에 단목승울 앞을 가로막은 연우강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단목승울의 단전을 향해 사정없이 후려쳤다.
“ 멈춰라!”
바로 그때 남족에서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현장에 당도한 이세연이 내지르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연우강의 오른손은 단목승울의 단전을 뚫고 들어갔다. 금강불괴지신에 달한 몸이었지만, 연우강의 손을 막지 못했다.
연우강의 손이 단전에 박혀드는 순간, 단목승울은 연우강의 목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 당신은 누구요?”
정신이 돌아온 듯 단목승울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흑천의 천주!”
연우강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 흑풍을 길들인 겁니까?”
“ 내가 아니라 천오백 년 전에 이미 길들인 분이 계셨소. 흑천 소속이오?”
“ 우리 가문은 이백 년 전에 떠났소이다.”
“ 그랬구려. 좀 더 좋은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구려.”
“ 인연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흑풍을 제압한 분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 나도 그렇소.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소.”
“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소이다. 들어주시겠소?”
“ 알았소.”
연우강은 혈잔수를 끌어올렸다.
뜨거운 기운이 확 끼치더니 단목승울의 시체가 가루로 흩어졌다.
“ 네 이노옴!”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이세연을 비롯한 독림과 요림 무인들이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은 몸을 돌렸다.
무인 이십 여 명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이편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 크크크!”
연우강의 입에서 듣기 거북한 괴소가 흘러나왔다.
휙!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돼 갔다.
“ 마, 막아라!”
연우강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이세연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연우강의 신형은 독림 무인들 앞에 가 섰다.
“ 차앗!”
“ 타앗!”
독림 무인들이 강자라는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연우강이 한순간에 공간을 건너뛰어 불쑥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독림 무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쌍장을 뻗어냈다. 그들이 쏘아낸 장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독림 무인들이 장력에 섞어 보낸 독은 암황천독이라는 독이었다.
퍽! 퍽퍽퍽!
독림 무인들이 쏘아낸 독공이 연우강의 몸을 강타했다.
퍼억!
“ 크악!”
우두둑!
“ 아악!”
스악!
“ 커억!”
콰앙!
“ 으아악!”
가공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광경이었다. 오른손을 후려치면 목뼈가 부러지고, 왼손을 후려치면 머리가 박살났다. 검은 광채가 스치고 지나가면 목이 잘려나가고 몸통째 부딪챘면 온몸의 뼈가 잘게 부서졌다.
단 한 번 지나가면서 다섯 명을 없앤 연우강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 독을 살포하라! 있는 독을 다 사용하라!”
독광야 척발승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려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빠르게 몸을 날려 가는 그의 양손은 먹물에 담갔다가 빼낸 것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단 한 방울로도 황소를 독물로 만등러 버린다는 마염신무액을 운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 차앗!”
“ 타앗!”
“ 이얍!”
척발승의 명령을 받은 독림 무인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독을 살포했다. 연우강 주변은 독이 뿜어내는 온갖 향기로 가득했다.
“ 크아아!”
연우강은 괴성을 내지르며 양손을 휘둘렀다.
퍼억!
“ 커억!”
그의 행동 또한 조금 전 단목승울이 그랬던 것처럼 정형화 되지도 않았고, 형식도 없었다. 하지만 단목승울이 뻗어내는 손과 발과는 완전히 달랐다. 막무가내로 뻗어낸 것 같은 그의 손은 정확하게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 갔고, 한 방에 끝을 냈다.
히자만 겉보기에는 어설푸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커억!”
지금처럼 간혹 비명을 지르면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 요림 무인들은 공격하라!”
연우강과 독림 무인들 간의 싸움을 지켜보던 시나울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연우강이 독에 중독됐다고 여긴 탓이었다.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요림 무인들은 일제히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 연우강 근처로 몸을 날려갔다.
“ 악!”
하지만 그들은 연우강 근처로 접근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날아온 검은 물방울이 뒷목에 구멍을 뚫어 버린 것이었다.
“ 허공에 적이 숨어 있다. 조심하라!”
콰앙!
“ 아악!”
우두둑!
“ 으악!”
그 사이에 연우강은 독림 무인들을 없애 나갔다. 오른손으로 적의 머리를 치고, 왼손으로는 가슴을 부수고, 다시 오른손으로 목을 잡아 부러뜨리는 세 가지 동작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맨손이었지만 그가 펼치는 무공은 다름아닌 난투박투였다.
“ 크아아!”
퍽! 퍼퍽! 푹! 푹푹!
“ 아악!”
“ 악!”
“ 으악!”
“ 크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번에 죽임을 당한 자들은 요림 무인들이었다.
‘ 놈!’
요림 무인들이 죽어 가는 사이에 척발승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두 개가 구부려졌다. 이제 펴기만 하면 마염신무액이 놈의 뒷목으로 쏘아져 갈 터였다.
탁!
휙!
두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 헉!”
척발승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편을 향해 날아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요림의 림주 시나울이었던 것이다.
시나울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려가면서 가솔들과 함께 공격을 했다. 장력을 연우강의 몸에 작렬시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갑작스럽게 미지의 힘이 몸을 떠받치더니 뒤편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잔뜩 경계를 했지만 이내 마음을 풀었다. 연우강 뒤편에는 척발승이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척발승이 서 있는 곳보다 반장 높은 곳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또다시 미지의 힘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그 미지의 힘에 대항할 사이도 없이 척발승의 앞을 막아 버리게 된 것이다.
“ 아악!”
시나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 되려고 그랬는지, 척발승이 쏜 마염신무액이 그녀의 단전을 뚫고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 아니오, 시 가주, 나, 난!”
“ 조, 조심하게, 척.......”
“ 커억!”
이세연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검은 손 하나가 척발승의 얼굴을 잡았다.
철컥! 철컥! 철컥!
“ 크아악! 아아악!”
척발승의 얼굴을 쥔 손가락 끝에서 뭔가가 펴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척발승의 얼굴은 곧 피범벅으로 변했다. 아니 순식간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털썩!
얼굴을 잡았던 손을 떼어내자마자 척발승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 이건 꿈이야.”
이세연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독림의 가주 척발승과 요림의 가주 시나울을 포함한 스물 한 명이 죽어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차를 한 잔 마시는 시간에 해당하는 일 다경 남짓이다.
그들은 금산을 나서면 천하에 적수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랬던 그들이 일다경 만에 단 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어이가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 크크크!”
연우강은 이세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세연 옆에는 전에 구림세가에서 보았던 구양을과 처음보는 자들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구림세가의 수신위 중 얼굴을 보지 못했던 광겁살존 육치남과 현의사존 운보일 터였다.
“ 말할 정신은 있느냐?”
이세연은 연우강을 보며 물었다.
“ 이자승이란 분을 아시오?”
연우강은 되물었다.
“ 내 손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얼굴을 본 적이 없다.”
“ 그럼 이연은?”
“ 나를 찾아왔더구나.”
“ 그럼 이지약은?”
“ 고손녀고 남경왕부의 며느리라고 알고 있다.”
“ 하지만 남편은 없소. 자식도 없고, 아니 정확학데 말하면 정혼 상태에서 남편이 전쟁터서 죽었소. 그런데 영감의 증손자인 이연은 파혼을 하지 않고 딸을 남경왕부로 보냈소. 영감이 그 나이가 돼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 권력을 위해서 말이오.”
“ 딸을 희생시켜서 권력을 탐하고 있단 말이냐?”
“ 남경으로 쫓겨났던 남경왕이 누구 덕분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시오?”
“ 내 증손자 때문이란 말이구나.”
“ 그렇소.”
“ 맞는가?”
이세연은 고개를 돌려 대천무존 구양을을 보았다.
“ 공주께서 원하신 일입니다.”
“ 그 아이가 남경왕부로 시집을 가겠다고 했단 말인가?”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구양을은 고개를 끄덕였다.
“ 으음!”
이세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금산에 갇혔던 이들 대부분이 대가 끊겼기 때문에 후손들에 대해 차마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남경왕부로 시집을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런데 죽은 남편에게 시집을 갔단다. 귀신에게.
그는 고개를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남의 가정사를 연우강이 어떠헥 그리 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 난 영감의 고손녀인 이지약 소저와도 친하고, 손자인 이자승 영감과도 아주 친하오.”
“ 그럼 나와 싸우는 지금 상황이 아주 껄끄럽겠구나.”
“ 아니오. 난 이 자리에서 당신은 물론이고 그 옆에 서 있는 쥐새끼 세 마리를 없앨 거요.”
연우강은 이세연 일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날 죽이고도 손자와 고손녀를 볼 자신이 있느냐?”
“ 계속 봤으면 좋겠지만 설사 보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소. 당신을 살려준 다음 찜짐함을 안고 사느니 이 자리에서 없애고 나서 편하게 사는 게 낫소.”
“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난 애초에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 게다. 난 구림세가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그들을 만나도 된다. 물론 내 손에서 살아남으면 말이다!”
이세연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는 편하게 늘어뜨렸다.
“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내 선택이 아니오, 영감.”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손괭이와 낫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