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26화 (226/232)

제 3장 아! 사망마비여

구양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설연을 비롯한 연우강의 친구들이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었다. 단목승울과 싸울 때 내상을 당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저들을 이용하면 연우강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좋아. 구양을.”

구양을의 내심을 알아차린 연우강은 고개를 저었다.

“ 넌 나를 막을 수 없다. 연우강 왜냐면......”

휙!

구양을 옆에 서 있던 광겁살존 육치남이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구양을은 유설연을 향해 쏘아져 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설연만은 반드시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탓이었다.

“ 그래서 너희들을 쥐새끼라고 하는 거야.”

스윽!

연우강은 육치남을 향해 마주 나아갔다.

“ 차앗!”

육치남은 일장을 후려갈겼다. 검붉은 광채를 흘리며 쏘아져 가는 장력은 육치남의 독문 무공인 광장이었다.

무공 이름처럼 광장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광장을 바라보던 육치남은 물러설 준비를 했다. 그가 무공을 펼친 것은 연우강의 발을 묶기 위한 허초에 불과했을 뿐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스윽!

허초를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그 수법에 속아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상대방이 허초에 속지 않게 되면 오히려 공격한 자가 당하고 만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연우강은 육치남의 광장을 방어하지 않고, 광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 억!”

육치남은 질겁했다.

마음으로만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 몸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그런데 연우강이 눈앞으로 불쑥 다가온 것이었다. 그리고 검붉은 기운이 넘실대는 손이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육치남은 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빠악!

툭!

손목이 꺾이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커억!”

육치남은 손목의 상태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왼손을 내뻗어 연우강의 공격을 방어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무공으로 주화입마 상태에 든 연우강을 막아내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 커억!”

몇 합 나누기도 전에 육치남은 연우강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연우강은 육치남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 멈춰라! 연우강.”

그때 구양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강은 구양을을 보았다. 구양을은 유설연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 크크크! 이놈은 어떻게 할 건데?”

연우강은 얼굴을 틀어쥔 육치남을 가리켰다.

“ 먼저 그 친구를 놔줘라. 연우강.”

“ 바랄 걸 바래라, 자식아.”

“ 야! 자식아. 이 새끼가 날 죽이려고 하잖아. 그 새끼 놔줘!”

유설연은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 그 자식은 널 살려 줄 마음이 없어. 설연. 그러니까 그놈 항문에 대고 있는 개작두로 알아서 살아남아.”

“ 항문에 개작두를 대고 있다고?”

구양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유설연이 약자라면 상관없지만, 그는 구림세가의 림주를 없앨 정도의 초극 고수. 아무리 내상을 당한 유설연의 머리에 손을 댄 상황이라고 해도 결코 고개를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유설연은 왼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고는 구양을의 낭심을 사정없이 틀어쥐었다.

“ 커억!”

구양을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형님!”

구양을이 비명을 내지르자 현의사존 운보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연우강이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양을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은 유설연이 내상을 당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운보는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였고, 연우강에게 잡혀 있는 육치남보다는 구양을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쇄액!

운보가 몸을 날리는 순간 연우강의 허리춤에서 푸른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사망혈삭 끝에 연결된 뇌섬이었다.

“ 커억!”

오 장여를 날아갔던 운보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는 시선을 내렸다. 단전을 뚫고 작은 물체가 튀어나와 있었다. 꼬리뼈 바로 위에서 뚫고 들어와 단전을 관통해 앞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그 작은 물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감아 돌고 있었다.

운보는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우두둑!

그 순간 광겁살존 육치남의 목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크아악!”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 넌.....”

운보는 손을 들어 연우강을 가리켰다.

스악!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단전에서 섬뜩한 느낌이 왔다.

운보는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아래쪽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땅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쿠웅!

단전 부분이 깔끔하게 잘려나간 운보의 시체가 땅으로 처박혔다.

육치남과 운보를 없앤 연우강은 이세연을 보았다.

구양을을 비롯한 세 사람이 죽어 가는 순간에도 이세연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 포기하신 거요?”

연우강은 물었다.

“ 주화입마 상태가 아니었더냐?”

“ 내가 먼저 물었소.”

“ 난 시작한 적도 없다.”

“ 주화입마 맞소.”

“ 주화입마 상태에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단 말이냐?”

“ 그럼 여긴 왜 온 거요?”

“ 내가 먼저 물었다.”

“ 내가 단목 가주와 이야기한 걸 듣지 못한 게요?”

“ 정말로 네가 흑천의 천주더냐?”

“ 난 영감이 여기로 온 이유를 물었소.”

“ 호기심 때문이다.”

“ 증손자인 이연 그 양반과는 상관없단 말이오?”

“ 조금 전까지는 상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간없다.”

이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 갑자가 상관이 없어진 이유가 있소?”

“ 내가 스스로 금산으로 걸어들어 갔던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 가족을 살리기 위해 들어갔다는 거요?”

“ 맞다. 그런데 증손자란 녀석은 내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가족을, 아니 제 딸을 팔아서 권력을 샀더구나. 물론 네가 한 말이지만 말이다.”

“ 내가 멋진 시 한 수를 알고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 시?”

이세연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일단 들어보시오.”

연우강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 꿈을 꾸어봅니다.

그 꿈에서 전

언제나 바람이었습니다.

날개가 없어도, 훨후러 날아다니는

그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 저는

바람에 소식을 실어 보내고, 내리는 빗물로 목마름을 달래는 호수가 됩니다.

늘 그랬습니다.

꿈에서는 바람이, 깨어서는 호수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꿈일 겁니다.

꿈이 아니라면 바람이 될 리가 없을 테니까요.

꿈에서는 원하는 모든 게 가능합니다.

미친 사랑을 해도,

광란에 몸부림을 쳐도

기쁨의 신음을 내질러도

누구도 욕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호수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꿈이 좋습니다.

바람처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꿈이.

그 시는 이지약이 선물이라며 사준 속옷 속에 함께 들어 있었다.

“ 으음!”

시를 듣고 난 이세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느닷없이 시를 읊는다기에 웬일인가 했다. 그런데 연우강이 읊은 시를 듣자 그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 시는 다름아닌 얼굴도 보지 못한 고손녀가 지은 시였던 것이다.

“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겠는가?”

“ 살려달란 말이오?”

“ 그렇네.”

“ 알았소.”

연우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왜냐고 묻지 않는가?”

“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데, 아닙니까?”

비로소 연우강의 말투가 공대로 바뀌었다.

“ 굳이 구림세가엔 들릴 필요가 없네.”

“ 알겠습니다. 묘아가 궁금해할 겁니다.”

“ 묘아?”

“ 이 소저의 애칭입니다.”

“ 그렇군. 그 아이가 날 궁금해하거든 금산으로 찾아오라고 하게.”

“ 금산 경치는 어떻습니까?”

“ 백 년 동안 가꾼 곳이네. 중원에서 거기보다 아름다운 장소는 없을 거네. 그건 내가 장담하네.”

장담한다고 말하는 이세연의 얼굴엔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 그녀에게 반드시 말하겠습니다.”

“ 고맙네.”

이세연은 연우강을 가만히 보다가 몸을 날렸다.

“ 구림세가의 단전을 없애 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연우강은 멀어지는 이세연을 보며 말했다.

“ 자넨 나와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구먼. 그런데 그 아이는......”

“ 전보다는 훨씬 낫답니다!”

“ 아직 행복하단 말은 듣지 못했는가?”

“ 가문과 관습과 신분이라는 엄청난 멍에가 어깨에 걸려 있으니까요.”

“ 그렇군. 아무튼 살려 줘서 고맙네.”

이세연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잠겨들어 갔다.

연우강은 멀어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괜찮은 거야?”

유설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오는 유설연은 약식 행공을 한 듯 얼굴색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뒤를 이어 유덕을 비롯한 팔신장과 군무옥 일행이 다가왔다. 그들 또한 조금 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 내 몸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영감을 살려 보내 준 걸 말하는 거야?”

“ 둘 다.”

“ 먼저 내 몸에 대한 건 거의 죽음 직전이고, 그 영감은 네가 들은 그대로야.”

“ 그 영감이 자기 증손자의 단전을 없앨 거라고?”

“ 손자뿐만 아니라 구림세가에 있는 모든 무인들의 단전을 박살낼 거야.”

“ 그러니까 그걸 믿어도 되냐고 묻는 거야.”

“ 그 영감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한다는 걸 알 테니까 할 수밖에 없어.”

“ 하긴 나도 있으니까.”

유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봉연이 허공에서 불쑥 얼굴을 드러냈다.

“ 왜?”

유설연은 봉연을 보았다.

“ 방금 연 공자가 죽음 직전이라고 했잖아요.”

“ 치료하고 싶어?”

“ 하고 싶은 게 아니고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요.”

“ 운우지정공으로?”

유설연은 봉연을 빤히 보았다.

그가 운우지정공을 알고 있는 것은 연우강이 주화입마에 들기 전 봉연과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운우지정공이란 명칭에서 벌써 어떻게 치료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오해하지 마세요. 소제독. 운우지정공은 내상을 다스리는 요상대법이라고요.”

봉연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 요상대밥이 아니라 요상하게 해대는 대법이겠지.”

“ 물론 그렇긴 하지만 결국엔 내상을 치료하는.......”

“ 넌 우강이 저 지경인에도 하고 싶어?”

공연히 골려주고 싶은 그는 봉연을 빤히 보았다.

“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할 수밖에 없다고요. 알면서 왜 그러세요?”

“ 얼마나 해야 되는데?”

“ 최소한 이틀은 해야 할 걸요?”

“ 이틀씩이나 그 짓을 해댔단 말이야?”

“ 다 치료를 위해서......”

“ 치료한다는 년이 숨은 왜 거칠어지는데?”

“ 무, 무슨 소리에요. 제가 언제 숨이 거칠어졌다고 그러세요. 전 절대로 치료하는 광경을 상상하지 않았다고요. 진짜로.......”

“ 지금은 얼굴도 붉어졌잖아.”

“ 그건 소제독께서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런 거잖아요.”

“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네년이 딱 그 꼴이다. 잘못하다간 그 짓다가 죽어, 이것아.”

“ 전 어디까지나 연 공자의 몸을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요. 절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 그런 년이 몸까지 부르르 떠냐?”

“ 치료는 잠시 미뤄야겠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자른 사람은 연우강이었다. 그는 남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많은 무인들이 이편으로 달려오는 기척이 감지됐다. 실력 또한 상당한 자들인 듯 바닥을 찰 때도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 누굴까요?”

봉연 또한 기척을 감지한 듯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만일 적이라면 연우강의 치료를 늦춰야 하는데 연우강의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 몸은 어때?”

연우강은 유설연을 보며 물었다.

“ 육 할까지는 회복했다.”

“ 육 할로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봉연!”

연우강은 봉연을 불렀다.

“ 말씀하세요.”

“ 사망궤 안에 봉지 있었지?”  달린 방패를 끼우고 손에는 손괭이를   어, 그 상태에서 왼 “ 네.”

“ 그거 꺼내.”

연우강 앞으로 다가온 봉연은 사망궤 뚜껑을 열고 안쪽에서 봉지를 꺼냈다.

“ 봉지 안쪽에 작은 봉지가 들어 있을 거야. 하나씩 나눠줘.”

“ 네!”

봉연은 봉지를 뜯고 안쪽에서 작은 봉지를 꺼내 일행들에게 나눠 주었다.

“ 뭐냐?”

손바닥 절반 크기의 봉지를 받아 든 유설연이 물었다.

“ 앵속이오.”

대답은 군무옥의 입에서 나왔다.

“ 앵속?”

유설연은 손에 들린 봉지를 가져다 코에 대며 냄새를 맡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복용해 본 적 있어?”

연우강은 유설연을 보며 물었다.

“ 맨 정신으로 사내새끼들하고 자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나 더 줘.”

유설연은 봉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봉연은 작은 봉지 하나를 더 꺼내 유설연의 손에 올려주었다.

“ 그렇긴 하겠다. 아무튼 후유증은 크겠지만 주화입마보다는 나을 거야.”

“ 오는 놈들이 그렇게 강해?”

그게 아니라면 앵속을 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내가 이성을 잃을 때를 대비해서 주는 거야.”

“ 정말로 이성을 잃어?”

“ 아직 그런 적이 없긴 한데, 그래도 모르잖아.”

“ 만일에 대비해서 주는 거라고?”

“ 내가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옆에서 알짱대지 말고 무조건 튀어.”

“ 그럼 넌?”

“ 힘을 다 소진하고 나면 난 쓰러질 거야. 그럼 봉연이 치료를 하면 돼.”

“ 알았어.”

유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앵속을 갈무리했다.

“ 우리도 하나씩 더 주시오.”

군무옥은 봉연을 보았다.

“ 전부 중독자들이네.”

봉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작은 봉지를 꺼내 군무옥 일행에게 건넸다.

휙! 휙휙! 휙휙!

바로 그때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백여 명이 연우강 일행 근처로 날아내렸다. 그들은 자세를 잡자마자 연우강 일행을 포위했다.

“ 반가운 얼굴들이네.”

연우강은 선두에 선 자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공오인을 비롯한 구룡천군 무인들이었다.

웃는 사람은 연우강 뿐만이 아니었다.

구룡천군 무인들을 데려왔던 공오인 또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공오인이 이곳에 온 목적은 연우강이 아니라 유설연이었다. 그런데 연우강 옆에 유설연이 서 있는 것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자들을 동시에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 나도 마찬가지다. 연우강. 정말 반갑다.”

공오인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 나도 반겨주는 거야?”

유설연이 공오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 난 연우강보다 계집놈 네가 더 보고 싶었다.”

“ 호호호! 나도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 공오인. 안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와 주었구나. 저승 입구까지 와줘서 고마워.”

유설연은 활짝 웃었다.

“ 날 기다렸다고?”

공오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 오군도독부 도독들이 이곳까지 왜 왔을 거라고 생각해?”

“ 그러니까 네가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가 오군도독부 도독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란 말이냐?”

“ 거기에 너도 포함돼. 그리고 이건 참고삼아 말해 주는 건데, 오군도독부에서는 제승기만 남았어.”

“ 너와 제승기만 없애면 북경은 내 차지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 저들을 믿고 나대는 모양이지?”

유설연은 공오인 옆에 서 있는 요료대사 일행을 턱으로 가리켰다.

“ 너희들을 저승으로 보내줄 분들이다.”

공오인은 조소를 머금은 채 뒤로 물러났다.

“ 남경왕을 따르더니 살림살이가 좀 나아진 모양이네.”

연우강은 용왕개를 빤히 바라보았다.

“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건 무슨 소리냐?”

용왕개의 눈은 연우강의 얼굴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 얼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른다는 뜻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선택을 잘못했어. 내가 지금까지 남경왕 그 양반을 살려줬던 것은 아주 친했던 친구 아버지였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 그런ㄷ 그 양반이 내 부모님을 없애라고 시도를 한 거야. 이젠.....”

“ 황족을 없애면 어떻게 된다는 걸 모르느냐?”

용왕개가 물었다.

“ 이 산에 들어온 놈들은 전부 죽을 거야.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북경 전역에 뿌려지게 될 테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시체수는 만 구 이상일거야. 그럼 자금성에 있는 그 양반이 어떻게 나올까. 나를 비롯한 금릉 연씨 세가 가솔들을 잡아들이라고 할까. 아니면 나를 은밀하게 불러서 벼슬을 내릴까?”

“ 벼슬을 내릴 거란 말이냐?”

“ 너희 거지새끼들 목을 칠 수 있는 벼슬을 내린다는 쪽에 내 전 재산을 걸겠어.”

“ 으음!”

용왕개는 할 말을 잃었다.

연우강의 말이 틀리지 않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수천 수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경왕 주진무를 없애고, 금의위 영반을 비롯한 위사 수천 명과 오군도독부 다섯 도독을 비롯한 무장 수천 명을 없애 버린 자를 누가 잡아들일 것인가.

연우강을 잡아들이고 그 일을 맡길 신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결국 황제는 협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금 발상을 전환하면 연우강은 황족을 없앤 역적이 아니라 황제의 최대 정적인 남경왕을 없앤 충신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그 상황에서 연우강이 대야벌을 없애는 걸로 벌을 대신하겠다고 하면 황제는 수락할 수밖에 없다. 금의위와 오군도독부를 전부 없앤자가 신하 되기를 자처하는데 거절할 군주는 결코 없을 것이다.

결국 연우강의 말처럼 벼슬을 내리게 될 것이다.

“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이곳에서 살아나가야 가능하다. 연우강.”

용왕개 옆에 있던 창천진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건 당연한 거야. 영감. 난 여기서 살아남을 거고, 너희들은 전부 죽게 될 거야.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 허허허! 하룻강아지......”

번쩍!

쐐액!

하룻강아지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우강의 허리춤에서 푸른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가공할 속도로 창천진인을 향해 쏘아져 가는 그것은 뇌섬이었다.

“ 헉!”

창천진인은 질겁했다.

검을 뽑아 막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급하게 몸을 틀었다.

스악!

몸을 트는 순간 도포 자락을 자르며 푸른 광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 커억!”

그리고 뒤편에서 억눌린 비명이 들려왔다.

“ 아뿔사!”

창천진인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뒤쪽에 문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뒤를 바라보았던 창천진인의 얼굴에 슬쩍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푸른 광채에 당한 자는 무당파 문도들이 아니라 금의위 영반 공오인이었던 것이다.

“ 사, 살려주시오.”

공오인은 겁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느닷없이 배를 관통해 들어간 물체가 몸을 칭칭 감아 돌더니, 연우강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배 속을 뚫고 들어간 줄이 당겨지기 때문에 딸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차앗!”

우렁찬 외침과 함께 푸른색 광채가 사망혈삭을 후려쳤다. 검을 뽑아 휘두른 자는 화산파 자하검신 노담승이었다.

카앙!

날카로운 쇳고리가 흘러나왔다.

“ 억!”

노담승은 깜짝 놀랐다.

부지불식간이라고 하지만 검에 검강을 실었다. 그런데 검강이 실린 검이 붉은 줄을 잘라내지 못한 것이다.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망혈삭을 잘라내지 못하고 아래로 내리누르게 되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오인이 받았다.

“ 크아악!”

공오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우강은 사망혈삭을 당기는 중이고 그런 상황에서 노담승의 검이 사망혈삭을 아래로 누르자 몸을 감아 돌았던 사망혈삭이 당겨지면서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가 버린 것이었다.

“ 죽인다!”

구룡천군 무인 중 한 명이 연우강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는 화산파 전대 장로들 중 한 명으로 신수검객 삼중이어삳. 삼중이 나섰던 것은 조금 전 노담승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십여 장을 날아간 그는 검과 하나가 돼 몸을 날렸다.

슉!

일 장여를 남겨두었을 때 연우강의 옆구리에서 검은 광채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사망마비 중 한 자루였다.

사망마비는 너무 빨라 육안으로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다만 뭔가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삼중은 검은 광채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강기를 머금은 상태라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사망마비는 손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 억!”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순간 사망마비는 삼중의 목 안으로 사라졌다.

“ 커억!”

삼중의 입에서 피화살이 뿜어져 나왔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 그는 자신이 구하려고 했던 공오인이 질질 끌려가는 광경을 보았다.

털썩!

턱!

숨이 끊어진 삼중이 바닥에 떨어진 그 순간 끌려가던 공오인은 연우강에게 목을 잡혔다.

“ 나, 난 금의위 영반이다. 연우강. 날 죽이면......”

“ 날 공격한 거나, 모함한 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어. 하지만 내 가족들은 절대 건들지 말았어야 했어. 그래서 넌 죽는 거야. 그리고 네가 죽고 난 다음에 네놈 가족도 전부 업앨 거야.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저승에서 기다리면 네 가족들이 올 거야.”

“ 사, 살려다오. 연우강. 제발.......”

“ 늦었어.”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공오인의 목을 틀어쥔 손으로 시선을 주었다.

철컥! 철컥! 철컥!

오므려져 있던 사망낭조가 일제히 펴지며 공오인의 목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 크아악!”

공오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망낭조가 살을 뚫고 들어가면서 동맥을 건드린 듯 공오인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그 피는 연우강의 얼굴과 철립으로 쏘아져 갔다.

하지만 연우강은 그 피를 피하지 않았다. 그 피를 고스란히 받으며 아직 헐떡이고 있는 공오인을 바라보았다.

철컥!

나직한 소리와 함께 사망낭조가 오므려졌다.

연우강은 잡고 있던 공오인의 목을 놓았다. 그러자 숨이 끊어진 공오인의 시체가 풀썩 넘어지고, 그의 몸을 친친 감고 돌았던 사망혈삭은 허리를 잘라내며 연우강의 허리춤으로 들어갔다.

“ 지옥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거지새끼들!”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구룡천군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몸을 날려가는 연우강의 몸에서 검은 운무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그 운무는 금세 연우강의 전신을 덮었다.

그리고.

“ 크아아악!”

잔뜩 억눌린 듯한 뭔가를 토해 내는 괴성이 연우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 쳐, 쳐라!”

창천진인은 검을 뽑아 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명령을 내리는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소림, 무당, 화산의 전대 무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금의위 영반인 공오인과 화산파 전대 장로인 삼중이 어이없게 죽임을 당하고 지금은 연우강이 달려오고 있다. 그것도 혼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차앗!”

“ 타앗!”

“ 하아!”

죽은 삼중의 복수를 하려는 듯 화산파 무인들이 가장 먼저 몸을 날렸다.

창천진인은 전방을 주시했다.

퍼억!

“ 크아악!”

찌익!

“ 아악!”

우두둑!

“ 커억!”

“ 억!”

창천진인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실은 연우강이 조금 전처럼 암기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적수공권으로 화산파 무인들을 없애고 있다.

주먹으로 얼굴을 부수고, 몸통을 찢어발기고, 허리를 꺾어 부러뜨리고 있다.

“ 화산파 무인들의 검은 어떻게 피할거냐.”

먼저 간 자들은 대처를 제대로 못하여 당했지만 나중에 간 자들은 다를 터였다. 화산파 무인들의 검을 바라보는 창천진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거의 무방비 상태인 연우강의 전신으로 검이 무차별하게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차앙! 창! 창창! 창!

콰앙! 퍼억! 푹! 우둑!

“ 아악!”

“ 으악!”

“ 크아악!”

“ 설마.....”

창천진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우강의 전신을 두들겼던 검들이 쇠를 두들긴 것처럼 튕겨져 나오고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금강불괴지신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두둑! 퍼억! 콰앙! 찌익!

“ 아악!”

“ 으아아악!”

“ 크아아악!”

부러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찢겨나갔다.

연우강에게 당한 자들은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친 맹수에게 당한 것처럼 갈가리 찢겨 나갔다. 뜯겨 나간 머리와 팔다리가, 허공에 떠다니고 몸에서 빠져나온 장기들이 사방에 흩어진다.

이미 연우강의 전신은 화산파 무인들의 피로 범벅이었다.

“ 이노-옴!”

문도들의 죽음에 분노한 노담승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안 되네, 검신!”

창천진인은 고함을 내질렀다.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리는 노담승은 수비를 염두에 둔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죽이지 못하면 죽겠다는 동귀어진 수법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거였다.

“ 무당파 무인들은 공격하라!”

창천진인은 급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 소림사 제자들은 공격하라!”

창천진인에 이어 소림의 전대 방장 해천대사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륜에 백옥수의 기운 콰앙!

바로 그 순간이었다.

먼저 공격을 했던 노담승과 연우강이 한데 엉기면서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 제발!”

창천진인은 노담승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 커억!”

그러나 하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노담승이 누운 채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위로 올라가는 노담승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 크아아아!”

그리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과 함께 연우강의 신형이 노담승을 쫓아 날았다.

턱!

하늘로 솟구친 연우강은 두 손으로 노담승의 목과 다리를 잡았다.

“ 검신을 구하라! 거, 검신을.....”

창천진인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외침을 들은 무당파와 소림사 무인들이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우강은 두 손으로 잡은 노담승의 동체를 힘껏 내리면서 무릎을 사정없이 차올렸다.

우둑!

“ 크아악!”

노담승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목뼈와 무릎 그리고 허리가 동시에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 아~!”

용왕개는 탄식했다.

화산파 제일고수라고 불린 노담승이 그렇듯 허무하게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그곳에 있으면 당신도 죽어요.]

바로 그때 전음이 들려왔다.

용왕개는 고개를 돌렸다.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유설연이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저 녀석도 사람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다.”

[ 지금 우강은 주화입마 상태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아요.]

“ 주화입마 상태라고?”

[ 그래요. 그리고 주화입마에 들기 전 우강의 내공은 십갑자였어요.]

“ 시, 십갑자였다고?”

[ 아무튼 그곳에 있으면 어르신은 죽어요. 그것도 증손자에게.]

[ 즈, 증손자라고?]

용왕개는 저도 모르게 전음으로 물었다.

[ 그래요. 우강의 아버지는 대야벌 전대 묵사였던 주선엽이고 할아버지는 안정군왕이라고 불렸던 주인문이었어요.]

[ 저, 정말이냐?]

[ 우강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마세요.]

용왕개는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이 마라천력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이곳까지 왔다.

가족보다는 나라가 우선이고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황실이 안정돼야 한다며 내팽개쳤던 인문의 후손이란다.

용왕개는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용왕개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 주변에는 피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연우강은 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손으로 찢어 죽이고, 부러뜨리고 뜯어내고 있다.

“ 개자-식!”

“ 악마로고!”

창천진인과 요료대사가 몸을 날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남은 구룡천군들이 몸을 날려가고 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는 이 세상을 짓이겨 버릴 정도로 잔혹하다.

“ 난.... 누구의 승리를 빌어야 하는가.....”

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약간은 쉰듯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 아! 사망마비여,

나는 너를 저주하노라!

그리고 연우강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아니 검은 물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덟 개로 분리되는 사망마립으로 펼치는 폭풍비가, 네 개로 분리되는 사망혈반으로 펼치는 월광잔이, 아홉 개의 사망낭조로 펼치는 광랑풍이, 검은색 해골이 달린 사망지환으로 펼치는 일지소가, 연검인 사망묵환으로 펼치는 환환난이, 백팔 개의 사망정주로 펼치는 지옥탄이, 아홉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사망사화로 펼치는 사우화가, 사망마비 열여덟 개로 펼치는 혼령무가, 허리춤에 걸린 뇌섬으로 펼치는 뇌력섬이, 사망혈궁으로 펼치는 절혼망이 주변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백육십 한 개에 달하는 모든 암기로 펼쳐지는 사망마비.

흑풍마라천력의 마지막 초식이 드디어 현세한 것이었다.

어둠이 숨을 죽이고 대기가 흐름을 멈췄다.

아니 시간마저 정지해 버린 듯했다.

“ 저건.......”

용왕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의 눈에는 공간이 사라지는 광경이 분명하게 보였다. 검은 공간이 사라지면서 연우강 근처에 있던 자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가루로 흩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갈가리 찢겨나가며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맨 앞에 있던 자들에 이어 이 선과 삼 전에 있는 자들도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턱!

휙!

누군가 손을 잡아채 암기의 사정권 밖으로 몸을 날려가고 있었지만 용왕개는 연우강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크아악!”

“ 으아악!”

“ 아악!”

마치 이명처럼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내리는 피비는 점점 많아지고, 구룡천문 무인들의 수는 점점 줄었다.

“ 커억!”

“ 창천.....”

용왕개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지는 자는 다름 아닌 창천진인이었다.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내공 때문에 피비로 변하는 것은 면한 듯했다. 하지만 창천진인의 상태는 회복 불가능해 보였다.

“ 으윽! 아미타불!”

쿠웅!

요료대사 또한 다르지 않았다.

바닥으로 내려선 그는 수십 개의 암기에 관통당해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쏴아아!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뚝!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명이 사라졌다.

팔십여 명에 달했던 구룡천군 무인들 중 서 있는 사람은 요료대사와 창천진인 두 명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피비로 변해 흩어져버린 것이었다.

“ 크크크!”

연우강은 나직하게 괴소를 흘리며 창천진인과 요료대사 곁으로 걸어갔다.

“ 악마가 됐구나.”

아직 살아 있는 듯 요료대사는 연우강을 보며 말했다.

“ 누가 날 악마로 만들었을까?”

연우강은 손을 뻗어 요료대사의 머리를 잡았다.

“ 아미타불!”

요료대사는 불호를 읊으며 눈을 감았다.

‘ 누가 그를 악마로 만들었을까?’

그 대답은 알고 있다. 그를 악마로 만든 이들은 남경와 주진무고, 공오인이고, 구룡천군이고, 권력이다.

아니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마음이지 그가 아니다.

그를 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푹!

연우강의 다섯 손가락이 요료대사의 머리로 파고들어 갔다.

“ 아미타......”

요료대사는 끝내 불호를 다 읊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요료대사를 없앤 연우강은 걸음을 옮겨 창천진인 앞에 섰다.

“ 난 후회하지 않는다. 연우강.”

창천진인은 짓씹듯 말했다.

“ 맞아, 영감. 이런 일은 후회하는 게 아냐.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죽으면 되는 거야.”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천진인의 심장을 향해 오른손을 찔러 넣었다.

푸욱!

그의 오른손은 단숨에 창천진인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 커억!”

창천진인의 입이 쩍 열리고 피가 튀어나왔다. 그 피는 고스란히 연우강의 얼굴로 향했다.

“ 당신 피의 맛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창천진인. 넌 무공이 약간 강하다는 걸 빼면 잘난 게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놈이야.”

“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연우강.”

“ 맞아. 나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너와 나는 달라. 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넌 모른다는 거지. 넌 네 스스로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잖아. 안 그래?”

“ 죽여라!”

“ 물론 그럴 거야. 난 내가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살려둔 적이 없으니까.”

연우강은 오른손을 그러쥐었다.

퍽!

창천진인의 가슴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우강은 오른손을 천천히 뽑았다.

털썩 !

그가 손을 뽑아내자 창천진인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창천진인의 시체를 바라보던 연우강은 몸을 돌려 용왕개를 보았다.

“ 나도 죽일 참이냐?”

용왕개는 연우강을 보았다.

휘리릭!

바로 그때 주변에 떨어져 있던 암기들이 날아오더니 사망묵의 각 부분에 장착되었다. 그리고 떨어져 나갔던 철립이 머리에 씌워졌다.

“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건 지켰소?”

“ 지켯다. 명나라는 이제 반석이 앉았다. 앞으로 수천 년 동안 명 황조는 이어질 거다.”

“ 만족하시오?”

“ 만족한다!”

“ 그렇구려....”

연우강은 용왕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 다음에 다시 내 얼굴을 보게 되면 그땐.... 죽일거요. 거지.”

그는 차갑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 살려 주는 거냐?”

“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오.”

“ 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단 말이냐?”

“ 당신이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그것을 부술지, 그대로 둘지 결정을 못했단 말이외다.”

“ 황제 폐하를 시해하겠단 말이냐?”

“ 난 이미 막장으로 가는 마차에 올랐소. 당신에겐 그가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겐 주씨 성을 가진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오. 내가 죽인 수만 명 중에 주씨가 한 명 더 포함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소.”

“ 그럼 안 된다!”

“ 혹시 그거 아시오? 당신이 가족을 버리자 황실도 그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오. 안정군왕 주인문은 황족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종친 직위를 박탈당했다는 사실 말이오.”

“ ......”

용왕개는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인 인문이 종친 직위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이미 아내와 인문이 떠난 다음이라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 그런데도 그분의 아들은 아주 훌륭하게 성장했소. 무인이 돼서 대야벌 벌주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묵사가 됐소. 아마 주변에서 누군가가 받쳐주고 약간의 도움만 주었더라면 대야벌의 벌주가 되었을 거요.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그 일을 더 쉽게 편하게 할 뻔했단 말이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성의 이인자였던 담대천호가 배신을 하고 말았소. 근본도 없는 제대로 된 배경이 없는 자가 대야벌의 벌주가 되는 꼴을 봐주지 못한 거요. 우습지 않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을 타고났다는 황족이 근본도 배경도 없는 자로 전락하고 부하였던 놈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게 말이오.”

“ 으음!”

용왕개는 신음을 내뱉었다.

주선엽을 만난 건 북경 금루에서였고, 그 후루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 우리 마라천력인들의 장점이 뭔지 아시오? 두 다리와 두 팔이 잘려도 내공의 도움이 없이도 몸을 날릴 수 있다는 거요. 이렇게 말이오.”

연우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 그, 그 아이가 두 팔과 다리를 잃었더냐?”

용왕개는 물었다.

“ 그렇소. 그분은 부하들에게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은 채 대야벌에서 도망을 쳤소. 왜 싸우지 않고 도망친 줄 아시오? 바로 당신은 팽개쳤던 그 가족 때문이었소. 만삭이었던 아내가 낳았을 자식을 위해 배냇저고리와 작은 모자와 앙증맞은 신발을 품속에 넣고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상태로 대야벌에서 도망을 친 거요. 하지만 그분은 만삭의 부인에게 가지 못했소. 어쩌면 뒤쫓는 자들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오. 그분은 아내가 있는 집을 지척에 두고 화산의 검애에서 숨을 거뒀소. 자식을 사랑하는 그분의 바람이 통했는지, 그분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아들은 우연히 그분이 임종한 장소에 들러 유해를 수습했소. 배넷저고리와, 작은 모자와 앙증맞은 신발이 이십육 년만에 주인에게 돌아간 거요.”

“ 다행이구나.”

“ 아주 다행이었소. 만일 그 아들이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죽었을 테니까. 당신이 숨을 쉬는 이유는 씨를 뿌렸다는 그 한가지 때문이오. 하지만 기회는 이번 한 번 뿐이오. 다음에 만나면 이유를 불문하고 당신을 죽일거요. 그리고 당신이 가족을 버려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황실도 무너뜨릴 거요.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절대.”

연우강은 차갑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 봉연!”

걸음을 옮기던 그는 봉연을 불렀다.

“ 말씀하세요.”

“ 나 곧 죽을지도 몰라.”

“ 그러게 대충 끝내지,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해요.”

불쑥 모습을 드러낸 봉연은 연우강을 부축했다.

“ 대충 끝낸 게 그 정도야, 인마.”

“ 그런데 진짜 황족이세요?”

“ 무슨 소리야?”

“ 저기 용왕개 저분이 황족이거든요.”

“ 저 거지가 황족인 것과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 방금 연 공자가 한 말을 종합하면 용왕개 주선풍의 증손자가 되는 셈이잖아요.”

“ 내 할아버진 연 운 자 상 자 되시는 분이고, 아버진 연 금 자 석 자 되시는 분이야. 난 연우강이고.”

“ 정말요?”

“ 나랑 하기 싫어?”

“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나보다 더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 그럼 서둘러 인마. 더 방치하면 내장이 넘어올지도 몰라.”

“ 아무 곳이나 대충 자리를 잡을 게요.”

봉연은 연우강을 안고 몸을 날렸다.

용왕개는 멍한 얼굴로 멀어지는 연우강을 보았다.

아들인 인문과 손자 그리고 증손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툭!

무릎 앞으로 자루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낫처럼 생긴 특이한 무기를 든 자가 이편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 보름 동안 먹을 음식이오. 그 음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묘봉산을 벗어나지 마시오. 지금 묘봉산 외곽엔 진식이 펼쳐져 있소. 그 진식에 걸려들면 다시 우리를 봐야 하오. 그럼 당신은 대장 손에 죽게 될 거요. 우리 대장이 살려 줄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소.”

용왕개를 빤히 바라보던 군무옥은 몸을 돌렸다.

그들은 곧 용왕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어헝!”

용왕개는 그 자리에 엎드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명나라를 반석에 앉히는 게 세상을 구하는 지름길이라고 여겼고, 그 길을 갔다. 그런데....

“ 나, 난 ......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었어. 잘 살아 줄 줄 알았어. 내가 없어도 잘 살 줄 알았다고, 내가 없어도........”

용왕개는 통곡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평생을 지켜왔던 가치관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렇게 쉬지 않고 울음을 토해 내던 용왕개는 거짓말처럼 뚝 울음을 그치더니 반듯하게 앉았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

아니 땅에 발을 붙이고 태양을 보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허공섭물로 커다란 돌 하나를 당겨 바로 앞에 놓았다.

[ 성급한 결정이세요.]

돌을 향해 머리를 찧으려고 하는데 전음이 들려왔다. 전음은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용왕개는 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네.”

[ 만약 자결을 하시면 우강은 정말로 자금성을 없애 버릴 지도 몰라요. 지금 우강은 터지기 직전의 광천뢰와 같아요. 증조부님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조부와 친부 이야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 날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그 말을 했단 말인가?”

[ 일종의 투정이라고 보시면 돼요.]

“ 어떻게 하란 말인가?”

[ 힘들겠지만 사셔야 해요.]

“ 난 갈 곳이 없네.”

[ 금산으로 가세요. 기약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우강이 그곳으로 찾아갈 거예요.]

[ 금산?]

[ 그곳에 가면 친구가 생길지도 몰라요. ]

“ 자넨 누군가?”

[ 그럴 걱정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에요.]

“ 뭐라고 부르면 되는가?”

[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 만나게 되면 묘아라고 불러주세요.]

“ 알았네. 그렇게 하겠네.”

[ 그리고 보름 있다가 나오시는 거 잊지마세요. 그 전에 나오면 정말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어요.]

“ 진식 때문인가?”

[ 그래요, 어르신,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인사말과 함께 인기척이 사라졌다.

“ 고맙네.”

용왕개는 어둠 속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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