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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01화 (102/137)

101화

정호기와 당혜미가 살수의 시신을 가지고 일행에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정훈도 돌아왔는데, 그가 가져온 정보로 인해 살수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근방의 모든 살수 조직이란 말입니까?”

“그러네. 하지만 파악된 것만 그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살수들이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네.”

냉백은 정호기를 쫓는 수고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살수 조직에 정호기를 의뢰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허! 그런 방법을 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요.”

당평이 고개를 가로저을 때 어둠을 타고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그 방향이 당평이 장난을 쳐 놨다고 한 서쪽 능선이었다.

“아악!”

첫 비명을 시작으로 여섯 번의 비명이 더 들린 후에야 적막이 찾아왔다.

“이런… 놈들이 후방으로도 온 모양입니다. 제가 준비한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청운의 물음에 당평이 현정훈을 바라보았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보지요. 아무래도 발각된 모양이니.”

“알겠습니다. 응? 영 소협이 안 보이는데 어디 가셨는가?”

당평의 물음에 정호기가 대답했다.

“주변을 살피러 갔습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으니, 곧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같이 움직여야 할 것인데…….”

“영 제와 저만 알고 있는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 그것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호기의 말에 당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냉백 이놈, 치졸한 수를 쓰는구나. 하지만 넌 헛수고를 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초린의 존재와 그가 가진 능력을 몰라서 이런 방법을 썼을 것이다.

그가 바로 밤의 제왕이라는 것을.

***

만산 여기저기에 횃불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었다.

“정호기 이놈, 어디 있느냐! 하하하하, 이 만수지왕 강굉 님이 오셨으니 어서 모가지를 내밀어라!”

멀리서 메아리를 남기며 강굉의 외침이 만산 전체를 휘감았다.

“저놈은 뭡니까?”

정호기의 질문에 현정훈이 기가 찬다는 듯 대꾸했다.

“섬서에서 마적질을 하던 놈이다. 감히 이 몸이 점찍어 두었던 황구들을 싹쓸이해 간 놈이기도 하지. 그동안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는데도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보는구나.”

“만수지왕요?”

“어디서 주웠는지 몰라도 고양이 새끼 두 마리 데리고 다니며 혼자 지랄하는 거지. 아무래도 흑룡문이 살수만 동원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끌어 보마. 저 만수지왕인지 금수새낀지 하고도 볼일이 있으니까.”

“조심하십시오.”

“흥!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잘난 체하는 꼴이, 예전의 현정훈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그럼 다녀오마.”

현정훈이 달려가는 곳에서 고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앙!

“현 대협은 걱정이 없을 테니, 우리는 일단 현 대협이 간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움직이도록 하자.”

얼마나 들어갔을까?

갑자기 앞쪽에서 많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뭔가 보이십니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 당평에게 진청운이 묻자, 그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놈들이 들고 있는 특이한 도를 봤을 때, 수라파천대가 아니면 나찰지옥도객들 같습니다. 그런데 곧장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모양입니다.”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 둘 다 냉가의 직속 부대답게 모두들 냉가 특유의 낭아도를 사용했다.

도가 주 무기인 냉가의 냉백이 추풍검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의아한 일이라 하겠으나, 그것은 다분히 검을 사용하는 홍가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지은 별호였다.

추풍검.

추풍낙엽처럼 검을 쓸어버린다는 의미인데, 홍가와 냉가가 얼마나 사이가 나쁜 것인지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진청운이 나서려 하자 나상진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제가 놈들을 유인하겠습니다.”

그런 나상진의 뒤를 당평이 따랐다.

“나 소협 혼자로는 무리일 테니, 내가 같이 가겠네. 혜미를 부탁하네.”

“숙부님!”

같이 몸을 날리려는 당혜미를 정호기가 붙들었다.

“당 소저, 당 대협의 짐이 되고 싶습니까?”

그 말에 당혜미가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능히 저들의 손길은 벗어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그분을 돕는 길입니다.”

그 말에 당혜미가 당평이 사라진 곳을 한 번 바라보더니 정호기의 손에 이끌려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우리를 포위하려는 모양이구나.”

진청운의 말마따나 적들의 움직임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는 일행이 적과 교전 중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이번엔 내가 놈들을 따돌리마.”

진청운의 말에 정호기가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은 당 소저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제가 놈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안 될 말이다!”

“놈들의 목적은 어차피 저입니다. 제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다른 분들도 그만큼 수월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니, 일단 그분들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내가 놈들의 시선을 돌리고 일행이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주었어야 했어.’

처음부터 흩어지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꾀를 부리려다 오히려 위험을 자초한 형국이었다.

‘그리고 진청운이 놈들 손에 떨어진다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것은 당연한 일. 진청운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벗어나게 해야 해.’

놈들이 노리는 목표는 자신 혼자라고 판단했기에, 또 갈라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번엔 스스로가 미끼 역할을 하기로 했다.

-사부님, 사부님이 놈들 손에 떨어지면 천추산에 계신 분들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디 제 말씀을 따라 주십시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정호기의 전음을 들은 진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우선 이 부근에 숨어 계십시오. 제가 최대한 적들을 유인할 것이니, 안전하다 생각되면 당 소저와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당혜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쏜 살 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

“크악!”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공중에서 떨어지며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놈이었다.

십여 명의 수하와 같이 움직이던 그를 수직으로 벤 정호기가, 호아를 수평으로 하고는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컥!”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다섯이 더 쓰러졌고, 뒤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곧 목숨을 잃었다.

“사, 사람 살려! 정호기다! 정호기가 나타… 컥!”

도망치려던 사내의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횃불이 일제히 정호기가 있는 곳을 향했고, 어둠 속에서 은밀한 움직임도 정호기를 목표로 밀려들었다.

‘전체적인 큰 흐름은 나에게로 향했다.’

띄엄띄엄 들리는 비명 소리는 일행이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나, 정호기가 여기 있다! 내 목을 노리는 자들은 덤벼라!”

커다란 외침이 만산 곳곳으로 퍼졌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고함을 지르자마자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린 정호기가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내 의도를 알아채고 서둘러 이곳을 벗어났으면 좋겠는데…….’

아니라고 해도 이제부터 일행을 찾아 나설 것이니 그들에게 알려 주면 그만이었다.

우선적으로 정호기가 목표를 정한 곳은, 가장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나상진과 당평이 있는 곳이었다.

챙! 챙!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살기가 충천했지만,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죽는 사람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검이 가슴을 파고들어도 어떻게 해서든 그 검을 든 팔을 붙잡으려 애쓰는 이들.

바로 수라파천대였다.

-나 소협!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겠네.

나상진도 정호기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형이 미끼가 되려 하시는구나.’

그렇다면 그의 짐을 덜어 줄 방법은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따돌리는 길이었다.

‘당 대협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이, 아무래도 당 소저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힘들다.’

-당 대협, 평정심을 찾으십시오. 대형이 미끼 역할을 자처하셨다는 것은 당 소저를 안전하게 보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맞는 소리였지만 그만큼 상황이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당평의 손발이 흐트러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만, 일단은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당평의 순간적인 동요로 인해 한번 기울어진 전세는 쉽게 뒤바꿀 수 없었다.

‘으음…….’

등을 길게 할퀴고 간 도로 인해서 화끈거렸지만, 아픔보다 등을 공격당했다는 것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지금까지 그의 등을 당평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 대협!”

나상진의 고함에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며 거리를 벌리던 당평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그 와중에 자신을 공격하는 도를 손가락으로 튕긴 후에 장력으로 상대를 격살시키고는, 빼앗은 도를 앞으로 향한 채 내력을 불어넣었다.

“피해라!”

누군가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평의 손에 들린 도가 산산이 부서지며 앞으로 쏘아졌는데,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잘게 쪼개진 처참한 시체였다.

지금까지 당평과 나상진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한 수 때문이었는데, 당평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이 아무래도 힘이 드는 것 같았다.

-나 소협, 다음번 유성우를 쓸 때를 노려 길을 뚫으시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좀체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으니, 수라파천대원들이 나상진에게는 파상공세를 이어 가는 반면 당평은 가끔 위협에 불과한 공격으로 견제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와야 도를 뺐든 말든 할 것인데, 그저 위협만 하고 뒤로 빠지니 지쳐 갈 뿐이었다.

-이래서야 답이 나오질 않겠네. 내가 뛰어나감과 동시에 뒤를 따르게.

-예.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당평이 앞으로 쏘아지며 손을 떨쳤는데, 시커먼 독장이 뿜어져 나가자 그 일대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큭!”

독장에 피해를 본 이들은 없었는데, 수라파천대원들이 미리 독장을 보고 피했기 때문이었다.

신음을 흘린 것은 나상진의 공격으로 인해 심장을 찔렸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허… 내가 나 소협의 발목을 잡고 있었구나.’

당평이 감탄할 정도로 나상진의 움직임은 매끄러웠다.

마치 연기라도 되는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는데, 그때마다 시체가 한구 한구 쌓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막혀 버렸는데, 나상진이 길을 열기 위해 무리를 해서 보법을 펼쳤기에 내공이 급속히 소진되어 더 이상 보법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상진을 향해 도가 날아올 때, 이번에는 당평이 다시 앞을 향해 독장을 뿜었다.

‘암기를 넉넉히 준비해 올 것을…….’

이미 품속에 있던 암기는 벌써 바닥이 난 상태였다.

독장은 수라파천대원들을 뒤로 물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허허, 이렇게 가는가?’

왠지 우스웠다.

내력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이대로라면 끝이 머지않을 것 같았다.

‘나 소협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게 해야겠구나.’

둥글게 포위된 상황에서 한쪽을 뚫을라치면 그곳의 거리를 벌리며 타원을 이룬 상태에서 대응을 하였기에, 포위망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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