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매서운 눈도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엔 위대한 족장에게서 어찌 이런 팔푼이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 그런 거야? 그래서 푸른 눈은 여전히 무식하게 센 거구나. 헤헤, 난 몰랐지 뭐야.”
회의장 여기저기서 한숨들이 새어 나왔다.
역시나, 하는 눈치였다.
뒷머리를 긁으며 무안해하는 마른 비를 다른 부족원들과 달리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연초 한 모금 쭉 빨아들인 그믐이 허공에 연기를 흩뜨리며 웃었다.
“괜찮다,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 노을이도 너무 무안 주지 말거라. 비아야, 성년식을 출발하면 너희도 부족의 어른들처럼 반려수를 택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건 알아요. 할아범.”
“택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틀렸다. 점지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그리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비슷한 특성, 유사한 성향을 가진 녀석과 맺어지는 것이지. 보는 순간 알게 될 게다. ‘아, 이 녀석이 내 짝이 될 놈이구나.’ 하고 말이야.”
제 짝을 만나는 순간을 상상한 걸까?
멋쩍어하던 소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렇구나! 얼른 만났으면 좋겠어요!”
“허허, 그래. 노을이의 말처럼 인연을 맺은 둘은 함께 성장한단다. 족장의 반려수인 푸른 눈과 야생에서 홀로 큰 푸른 눈의 새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
언제부터일까.
천장 위 네모난 창에 짙은 그늘이 졌다.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회의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녀석을 그믐이 애정 어린 눈길로 올려다봤다.
짐승임에도 그 맑은 눈망울을 마주하면 영리하다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반백 년을 함께한 그의 반려수, ‘어둔 날개’였다.
사십여 년 전, 운남 사모(思茅) 일대의 밤을 지배했던 잿빛의 올빼미.
날개를 활짝 펴면 안쪽에 숨겨진 검은 깃털이 드러나며 밤의 장막이 열린다.
올빼미 주제에 표범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을 주식으로 삼는 괴물을 제압하기 위해, 젊은 날의 그믐은 성년식 내내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고 했다.
어둔 날개를 길들이고 성년식을 통과한 순간.
그의 강력한 요청으로 ‘성난 그믐’의 이름을 가진 남자는 그믐올빼미라 불리게 되었다.
“20여 년을 군림한 푸른 눈의 새끼가 나이를 먹고 산군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 순리라 여길 수 있겠지. 하지만 녀석은 달라. 웬만한 짐승이라면 쇠약해지고도 남을 세월이지만, 녀석은 야생에서 홀로 컸음에도 자연기(自然氣)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녀석이었어.”
“야생의 녀석이 자연기를…!”
노을의 불신 어린 표정은 아이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자연기가 뭐냐고 물으면 또 한소리 듣겠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마른 비뿐이었다.
“뭘 그리 놀라나. 충분히 가능하다. 이해 부근 늪지대의 악몽이라는 거악(巨鰐)과 매리설산의 하얀 깃, 이무 일대의 밀림을 쥐고 있는 대망(大蟒)도 그런 놈들이 아니더냐. 석림의 붉은 발톱이나 구향동굴의 사람거미는 또 어떻고.”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스스로 자연기의 활용을 깨달아 강대한 힘을 얻은 맹수들은 야생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반려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할 경우 훨씬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사람과 짐승, 모두 다 그렇지. 허나 명심해라. 결코 야생의 짐승들을 얕봐선 안 된다는 것을.”
그믐이 엄격한 어조로 당부했다.
쥐꼬리만 한 힘을 얻었다고 자만하지 말라.
아버지 하늘이 인간에게 허락한 작은 능력일 따름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어머니 땅이 베푼 은혜로 살아갈 터전과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음이니.
하루하루 야생과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이지만,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것 또한 자연의 품 안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야수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애뢰산의 산군이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에게 목숨을 잃었다? 실로 흔치 않은 일이기에 내가 놀랐던 거다.”
매서운 눈이 이제 이해가 됐냐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봤다.
“후우… 녀석이 당했다면 그 새끼들도 아마……. 푸른 눈에게는 손자가 되는 녀석들인데. 쯧쯧, 고약한 운명이로고……. ‘검은 수리’들을 애뢰산에 파견해 놓았다. 고요한 이동과 기척을 지우는 데 특화된 전사들이니만큼 충돌 없이 정확한 상황을 전해올 게야.”
부족의 가장 큰 행사가 며칠 남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꺼림칙한 변화라니.
그믐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새겨졌다.
“자, 어차피 너희들이 맞닥뜨릴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아두면 돼. 2년 만에 보는데 무거운 이야기나 하고 있었구먼.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들 이 늙은이가 곤명(昆明)에서 무얼 가져왔는지 한번 볼 테냐?”
부족 아이들이 그믐의 귀환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
그는 운남의 소식을 다루는 직책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역마살이 끼었는지 항상 여기저기 싸돌아다닌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와 신기한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이다.
“와아아아!”
비로소 아이들이 나이에 맞는 미소를 피워 냈다.
부모의 제지에도 앞으로 달려 나가 그믐을 둘러싸는 아이들의 모습에 회의장 곳곳에서 정겨운 웃음이 번졌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토벌대가 늦어지는군. 아이들이 귀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뭐, 별일은 없겠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댄 매서운 눈의 시선은 북동쪽을 향해 있었다.
재능
“어떠냐?”
두려움이 없었다.
잘못 물리면 손쓸 틈도 없이 거꾸러질 치명적인 독사건만.
어려움도 없었다.
저 나이 때 저리 손쉽게 잡을 만큼 만만한 사냥감이 아니거늘.
“이걸 보자고 부른 거요?”
그럼에도 매서운 눈의 얼굴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눔 새끼가? 알만한 놈이 그런다?”
그믐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매서운 눈의 심드렁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잖소. 열다섯이 되도록 청죽사 한번 못 잡아본 놈이 어디 있다고.”
“하! 고놈 참. 옛날엔 귀엽던 놈이 어쩌다가 이리 삐딱하게 컸을꼬……. 야, 이눔 시키야! 저 영악하고 잽싼 놈을 손짓 한 번에 턱턱 잡아 올리는 게 열다섯 꼬맹이한테 쉽다고? 너는 그랬냐? 그랬으면 네가 족장을 하고 있지! 안 그래?!”
“영감탱이, 과장은. 족장님은 저 나이 때 이미 늑대무리와 싸워서 이겼다고 하지 않았소. 청죽사가 위험하긴 해도 어찌 늑대무리에 비할까.”
“놀고 있네, 놀고 있어. 진짜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이놈의 새끼야! 네놈 말대로 사십이나 처먹고 그렇게 떽떽대면 좋냐, 좋아? 다 큰 놈이 배배 꼬여서는, 쯧쯧.”
모를 리 없다.
마을을 둘러싼 푸른 대나무 숲의 청죽사는 부족 사람들의 주된 먹거리다.
열다섯 살이 되도록 청죽사를 잡지 못하는 부족의 아이는 없다.
하지만 맨손으로 저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아이 또한 없다.
간혹 서툰 실력으로 덤볐다가 목숨을 잃는 아이도 있는 것을.
“저거 봐라! 청죽사가 회피하려는 공간을 먼저 점유하고 낚아챈다. 따라가는 게 아니야. 청죽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한발 먼저 행동한다는 뜻 아니냐. 저 나이에 저런 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지? 아니, 있긴 했나?”
부족에는 육체의 활용이란 측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저 나이에 저런 감각적인 사냥이 가능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흥, 그까짓 것.”
나오는 말과 달리 매서운 눈은 미간을 좁히며 마른 비의 동작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폈다.
전사로서의 안목이 일천하다면 모를까.
매서운 눈은 부족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사다.
상대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안력만큼은 족장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그 눈썰미가 소년의 손놀림을 찰나로 쪼갰고……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 제법이긴 한데, 그뿐이오.”
“이런 오지게 새침한 새끼. 그렇게 비아를 인정하기 싫으냐?”
그 말이 맞다.
매서운 눈은 인정하기 싫었다.
마른 비의 재능을 눈치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존경해 마지않는 족장의 아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저놈은 글러먹었어.’
걸출한 재능과 타고난 육체, 족장의 아들이라는 특수성.
하지만 주변을 아우르기는커녕 기본적인 것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마른 비의 게으름과 무책임함이 싫었다.
부족 아이들의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산으로 들로 놀러만 다니며 열심히 하려는 아이들의 의지까지 꺾는 무신경함이 싫었다.
책임감과 성실함, 부족을 두루 살피는 세심함.
날카로운 외모, 차가워 보이는 태도와 달리 매서운 눈은 그런 남자다.
그의 눈에 비친 마른 비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하는 철부지 꼬마일 뿐이었다.
매서운 눈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지자, 그믐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무슨 생각하는지 내 알겠다만……. 저 녀석,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조금 더 너그럽게 지켜봐 주거라. 성년식을 다녀오면 확 달라져 있을 게야.”
숙성된 연륜에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항상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매서운 눈은 그믐의 안목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말이 틀렸던 적은 거의 없다.
매서운 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할아범. 그리하리다.”
“그래, 이 녀석아. 무리의 수장이 되었으면 좀……. 응? 쟤는 뭐 하는 거냐?”
그믐이 묘한 것을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른 비의 우측.
중간을 뚝 분질러 길이를 줄이고, 날카롭게 끝을 다듬은 대나무가 흔들거린다.
그 끝에 무언가를 꽂아 청죽사 앞으로 가져가는 소녀가 그믐의 눈길을 끌었다.
“꿩… 인가?”
도톰하게 잘라낸 부위는 꿩의 허벅지살이다.
핏기를 머금은 선홍빛 육질이 먹음직스러웠다.
대나무 줄기에 달라붙어 가지인 척 의태한 독사들이 홀리듯 이끌렸다.
“유인?”
“그런 것 같소.”
노을이 제자리에 서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대나무 끝에 매달린 꿩고기가 청죽사들의 코앞을 놀리듯 스쳐 지나갔다.
갓 도축한 고기와 신선한 피 냄새.
미끼에 이끌린 푸른 뱀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툭.
서 있던 곳에 꿩고기를 내려놓고 몸을 빼내자마자,
“샤아악!”
십여 마리에 이르는 독사들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쒜엑- 퍽! 쒜엑- 퍼퍽!
날다시피 달려드는 뱀들을 대나무로 내려친다.
손짓 한 번에 한 마리씩.
머리를 얻어맞은 놈들이 어김없이 기절해 축 늘어졌다.
“허…! 허! 허허허.”
그믐의 얼굴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매서운 눈의 번쩍이는 눈빛에 담긴 것 역시 다를 바 없다.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정확히 기절만 시키는 적절한 힘의 배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급소만을 공략하는 정밀한 타격.
이 역시 또 다른 재능이었다.
“놀랍구먼. 2년 전만 해도 무등 태워달라고 보채던 꼬맹이들이 언제 이렇게…!”
“이번에 돌아올 산이와 걸음이. 곧 나가게 될 비아와 노을이. 이번 세대는 뛰어난 아이들이 많네, 할아범.”
“많네, 는 반말이고. 이 시키야.”
사냥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성향, 특질, 타고난 재능의 방향.
청죽림은 부족의 식량원이자 생존의 기초를 배우는 사냥터이며,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진단하는 평가의 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유독 뛰어난 아이들이 많은 세대야. 타고난 감각의 비아와 영리하고 날카롭게 맹점을 찌르는 노을이, 민첩하면서도 은밀한 걸음이, 그리고 산이는…….”
“아우아아아아~ 배고프다아아~~ 먹을래애애~~!”
웬일로 얌전히 웅크리고 있나 했다.
우수수 잎사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수풀을 뚫고 장대한 몸체가 섰다.
쭉 뻗어 나간 손이 대나무를 감싸 쥐더니 위에서부터 아래로 쫘악 훑어 내렸다.
우지끈!
청죽사 네 마리를 한 손에 움켜쥔 우둔한 땅이다.
손아귀에 힘을 주자 대나무가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산이는…….”
으적, 우적.
성인 팔뚝 길이의 뱀 네 마리가 거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발버둥 쳤다.
“……힘이 세지. 이놈처럼.”
아이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좀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글렀다.
소란스러움에 이쪽을 돌아본 마른 비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할아버엄~! 아저씨드을~! 거기서 뭐 해요?”
그믐이 몸을 감췄던 수풀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