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래, 맞다.”
운남 땅 북쪽 너머, 드넓은 한족의 영토에서 내려온 자들은 언제부턴가 창산에 터를 잡고 산의 주인으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대리국의 백족마저 그들에게 합류했다고 했다.
“할아범이 과거에 부딪혔던 자들이겠군요.”
“맞아. 그놈들이다.”
“또 뭔가 시작한 겁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놈들이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욕심이라니.”
그믐의 주름이 깊어졌다.
채광. 채굴. 벌목. 사냥.
반짝이는 광석을 캐내기 위해 멀쩡한 바위산을 부수고, 굴을 파 내려가며, 나무를 쓰러뜨리고, 먹지도 않을 짐승들을 끝도 없이 사냥한다.
처음에는 그저 삶의 한 형태이겠거니 했다.
자신들의 터전을 위해서겠지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창산 부근의 맹수들을 토벌하여 소수부족들의 안전에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다.
굳이 부딪힐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욕심은 물을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았다.
대리 부근 숲이 통째로 사라지고, 산이 깎여 내버려졌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끝도 없이 지형을 파헤치기만 했다.
그래도 싸울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더불어 살고 지켜야 할 이웃이지 다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만두겠지, 라는 믿음도 있었다.
“대리 주변에서 수백 년간 살아온 하니족(哈尼族)이 결국 쫓겨난 모양이다. 그때도 그랬지. 서남부 고산협곡 지역에 있는 아창족(阿昌族)의 터전을 침범했었어.”
후우 내뿜는 연기가 30년 전의 일을 허공에 그렸다.
“우리야 무기 따위는 사용하지 않지만, 아창족은 무기를 직접 만들어 쓴다. 운남에서 아창도(阿昌刀)는 가장 뛰어난 무기야. 아창족은 하나하나가 숙련된 철장(鐵匠)들이지. 당연하게도 그들은 철광 주변에 모여 살아왔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할아범. 아창족 최고의 전사라는 자가 대련을 요청해서 싸운 적도 있는걸요.”
“호오, 그런 적이 있었군. 어쨌든 터전을 침범한 한족과 아창족의 전투가 벌어졌었지. 아창족은 우리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부족이다. 호전적인 면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더하지. 결과는 아창족 마을의 몰살이었어.”
“처음 듣습니다. 그래서 할아범과 전사들이 나섰던 거로군요.”
“그래. 그놈들은 이미 선을 넘어버렸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믐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피를 묻힌 나날이었다.
적들은 강했고, 결국 승리했지만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하니족이 대대로 가꾸어 온 보이차(普洱茶) 밭. 한족들이 선호하는 명차다. 비싼 값에 팔려나가지. 짐작건대 하니족을 몰아내고 그 밭을 차지할 속셈인 게야.”
“으음…….”
“하니족은 무력이 전무하다. 그들은 온순한 이들이야. 억울하지만 힘에 밀려서 떠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니족이 도움을 요청해 온 겁니까?”
“그건 아니다. 하니족의 대규모 이동을 의아하게 여긴 검은 수리 전사가 파악해 온 내용이야.”
그믐이 답답한 듯 고개를 들었다.
“하니족도 알고 있겠지. 우리가 개입하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피를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기 애매한 것도 사실이야. 부족이 힘을 얻은 이래 맹수로부터 소수부족들을 지켜왔지만, 이건 사람들 간의 문제다. 참으로 딱하고 난감한 상황이야.”
“토벌을 다녀온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너른 하늘이 생각에 잠겼다.
“곧 영묘에 도착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모를 마치고 하도록 하죠. 한데… 그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군요. 한족에 백족까지 섞였다니. 그럼 그자들, 정확히 어떤 부족인 겁니까?”
“부족 같은 게 아니다.”
그믐이 중원에 나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끼리 끊임없이 다투어 온 모양이더라. 사람이 워낙 많고 땅이 넓다 보니 국가와 파벌이 갈라져서 싸우고, 또 싸워온 모양이야. 창산에 자리 잡은 자들은 그중에서도 독특하기 짝이 없는 집단이다.”
의문을 담은 너른 하늘의 눈이 그믐을 향했다.
“힘. 오직 힘을 갈구하는 자들이 모여 만든 집단. 전투의 방식을 체계화해 전승하는 무리라고 하더군. 때로는 품은 생각과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까지도. 그들은 그걸 문파(門派)라고 부른다고 했다.”
숨을 고른 그믐의 입에서 중원의 유수한 무력단체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창산을 달리 점창산(點蒼山)이라고도 부르는 건 알지?”
“예, 압니다.”
“‘점창산에 자리한 힘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단’이라 하여 점창파(點蒼派). 그게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 * *
《무공(武功).
대인 전투 기술을 체계화한, 적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의 총합.
무기술(武器術), 체술(體術), 운신술(運身法)은 물론이거니와 기공(氣功)과 심법(心法)에 이르기까지.
크게 초식(招式)과 내공(內功)으로 구분 짓는 자들도 있으나 그런 식의 분류를 놓고 다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란 측면에 집중한다면, 무공이란 결국 ‘효율적으로 적을 격살하기 위한 기예’라는 정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 (중략) ……
이렇듯 자질 여부에 따라 경지는 달라질지언정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입문 정도는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공은 ‘후천적’인 성격이 짙다 하겠다.
반면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그릇이 아니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영역도 존재한다.
전적으로 ‘선천적’인 자질에 의존하는 초월적인 능력.
초능(超能)과 술법(術法)이 그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경험과 인식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다.
초능은 …… (중략) …….
반면 술법은 다른 대상에 적용하거나 매개를 통하는 식의 변칙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저 유명한 남만 야수족의 ‘야수 제어’나 ‘전투화장’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영살(影殺)이 나타나기 전까지 마교 유일 살수였던 음살(陰殺).
그의 살법 또한 술법에 일부 기대어 있다고 전해져온다.》
혼세록 무림총람(武林總覽)
「무공, 초능, 그리고 술법」
영묘
“왜 이리 늦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뜨렸다.
뒤로 묶어 내린 긴 머리는 밤하늘이 스민 듯 새카맣고, 몸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양각색의 장신구들은 달빛을 반사하며 은은하게 빛났다.
부족의 복식과는 다른, 길게 늘어뜨린 연녹색 옷자락이 이채롭다.
와족의 영묘라 짐작되는 동굴 앞에 홀로 선 여인은 그와 같았다.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냐! 토벌 나간 아이들 도착이 늦은 거란 말이다! 망할 할망구야!”
그믐과 반말을 주고받는 걸로 봐선 육십이 넘는 연배일 텐데, 겉으로 드러나는 나이는 기껏해야 사십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인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죽장(竹杖)을 그믐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당신이 인솔자 아니야? 쓰잘데기 없는 변명일랑 집어치우고 냉큼 튀어오지 못해?!”
“염병할. 할망구 성깔하고는.”
그믐이 눈썹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하지만 나오는 말과 달리 그믐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여인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흠흠. 거, 잘 지냈는가?”
“2년 동안 한 번도 안 찾아온 누구 덕분에 잘 지냈지.”
“어흠! 중요한 일로 마을을 좀 떠나 있느라…….”
“어련하시겠소. 공사가 다망하신 수리의 눈 수장이신데.”
여인이 그믐에게 슬쩍 눈을 흘겼다.
오뚝한 콧날과 맑은 눈빛, 살짝 휘어져 올라간 초승달 같은 눈썹.
지금은 세월의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 있지만, 젊었을 적엔 대단한 미모를 뽐냈으리라.
그녀가 그믐의 늙수그레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새 더 늙으셨구려. 많이 바빴던 겝니까.”
기묘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부족의 누구도 그리 느끼는 이는 없었다.
여인이 어머니 대지의 부름을 받아 부족 유일의 주술사 자리를 계승하기 전부터, 그녀와 그믐은 부부였으니까.
“미안하이. 홀로 영묘를 지키느라 고생이 많소. 우리가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까. 나라도 좀 더 자주 찾아왔어야 하는데…….”
그믐이 말끝을 흐리자,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리 봤으니 됐소. 건강해 뵈니 그걸로 충분하고.”
그믐과의 재회를 마친 그녀가 부족원들 앞에 선 너른 하늘을 돌아봤다.
“토벌을 다녀오셨다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족장.”
“할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새 더 젊어지신 것 같군요.”
“나이에 맞게 겉껍데기도 따라가야 하는데 늙은이가 주책이지요. 술력(術力)이 오를수록 노화가 더뎌지는군요. 족장께서는 그새 또 성취가 있으셨나 봅니다.”
“역시…! 바로 알아채시는군요. 1년 전에 매리설산의 하얀 깃과 싸우다가 자연기의 운용을 조금 깨달았습니다. 그나저나 말씀 좀 편히 해주세요, 할멈. 버겁습니다.”
“그러는 게 아닙니다. 족장은 부족의 큰 어른이에요. 모두를 책임지는 자, 나이와 상관없이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이이도…….”
너른 하늘과 대화를 나누던 여인이 무언가를 알아챈 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믐을 쏘아봤다.
“또 족장께 말 놓으신 겝니까?”
“아, 뭐, 그게……. 계속 놓으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철딱서니 없는 양반을!”
여인이 그믐의 귀를 비틀었다.
부족의 큰 어른은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 질렀다.
“아! 아파! 살살…! 살살 좀! 아, 애들도 많은데 쪽팔리게…!”
“창피한 걸 아는 인간이 그럽니까? 나잇값 좀 하라고 내 몇 번을…!”
훈계하던 그녀가 멈칫하더니 부족원들 쪽을 돌아봤다.
“고르지 않은 숨소리가 두 개 있군요. 누군가 다치신 겝니까?”
“아, 새로 온 녀석들이 다투다가 몸이 좀 상했네. 안 그래도 부탁을 하려 했어. 밤이랑 큰 발이. 이리 나오너라.”
그믐이 빨개진 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의 부름에 뚜벅뚜벅 걸어 나온 두 짐승은 얼핏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내란 족속들은 참……. 서열을 다툰 게로구나.”
피는 멎었지만 목덜미가 살점째 뜯긴 큰 발과 내부가 진탕된 검은 밤은 한눈에 보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두 짐승을 꼼꼼히 살펴본 여인이 상처 부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 대지께 바라오니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어 주소서.”
한여름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의 날갯짓처럼, 잘게 뭉쳐 날아든 연녹색 자연의 기가 짐승들의 상처 부위에 스며들었다.
“회복력을 높이는 대지의 기운이란다. 통증을 가라앉히고 허한 기력을 채워 줄게야. 한 번에 상처가 낫진 않지만 빠르게 좋아질 거다.”
푸른색 대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한 세대에 한 명만 허락된 부족 유일의 주술사 ‘잎의 노래’가 모두를 돌아봤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들어가시죠.”
동굴은 깊지 않았다.
여우, 토끼, 호랑이, 뱀, 독수리…….
각양각색의 동물들을 정교하게 조각한 후 염료로 색을 입힌 목조 조각상들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입구에 늘어선 조각상들을 지나 동굴에 들어서자 벽면과 천장 가득 그려진 벽화들이 부족원들을 맞이했다.
와족이란 이름으로 명확한 정체성을 확립한 지 천여 년.
하지만 벽화의 역사는 최소 수천 년을 헤아린다.
이 벽화를 남긴 자들은 와족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고, 지금은 다른 부족으로 갈라선 자들의 조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득히 오래전 이곳에 살았고, 동굴에 벽화를 남겼으며, 일부는 이곳에 안치되었다.
와족의 뿌리는 분명 이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특정 동식물과 인간, 주요 사건들의 특징을 잡아 과장되게 그려놓은 벽화는 곧 기나긴 인간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장구한 세월, 자체적인 문자가 없는 부족의 특성상 그림과 구전을 통해 내려온 선조들의 이야기였다.
“사냥하는 그림이 많네요. 아버지.”
마른 비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사냥보다는 투쟁이란 표현이 적절할 거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으니까.”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아비가 답했다.
“투쟁요?”
“그래. 부족이 힘을 얻기 전엔 야생에서 살아남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조들은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평생을 싸워야만 했지. 더욱이 과거의 야수들은 지금보다 훨씬 크고 강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동물들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네요?”
마른 비가 벽화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입구 초입에 그려진 짐승들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림의 크기가 사실이라면 얼추 인간의 몇 곱절은 되리라.
한눈에 보기에도 선조들은 무척이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단다.”
너른 하늘이 가볍게 웃었다.
“가끔 발견되는 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고대 종들은 크기는 물론이고 생김새도 지금의 녀석들과는 많이 달랐을 거다. 골격의 형태가 다른 부분이 많거든. 이 운남에서 인간이 살아남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았을 거야.”
“왜 작아진 거예요, 아버지?”
“글쎄……. 내 추측이지만 자연기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자연기요?”
“그래. 인간이 번성하면 번성할수록 자연은 쇠퇴하지. 숲을 태우고, 산을 깎으며, 바위를 부순다. 운남의 부족들은 그나마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운남 너머의 인간들은 이미 자연을 지배하는 삶을 이어온 지 오래란다.”
“자연을…… 지배해요?”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자연에서 탈취하지. 그럴수록 자연은 스러져가고, 대기에 가득했던 자연기는 옅어지는 거다.”
마른 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동물들이 작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연기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짐승들. 예컨대 수식어가 붙거나 이름을 가진 놈들은 예외 없이 크고 강력하지. 아마 자연이 만개했던 과거에는 충만한 자연기로 인해 동식물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컸을 거야.”
정말 그럴까?
그럼 푸른 눈이 그때 살았으면 얼마나 컸을까?
마른 비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듣기만 했다.
“인간이 자연을 망가뜨릴수록 자연기는 옅어지고, 동식물의 생명력은 약해지며, 크기 또한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한다. 살아남기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작아진 면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기 때문일 거야.”
앞서 걸으며 둘의 대화를 듣던 잎의 노래가 뒤를 돌아봤다.
“맞습니다. 저도 족장께서 하신 추측에 동의해요. 불과 50년 사이에 대기에 떠도는 자연기가 줄어든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니까요. 자연기를 다루는 능력은 그때와 비교 할 수 없이 발전했지만, 실제로 발휘되는 효과는 조금 나아진 정도예요. 힘의 근원인 자연기의 양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겠죠.”
“머리 쓰는 데는 영 자신이 없는 편인데…… 다행히 제 추측이 틀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봤냐, 아들아? 하핫!”
“이제 겨우 인간이 자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해졌는데, 그 원천이 사라지고 있어요. 어쩌면…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지금 우리가 발휘하는 이 놀라운 능력들도 사라질지 모르죠. 후세의 아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그저 허황된 망상으로 치부할지도…….”
힘과 술법.
각 분야의 정상을 밟고 올라 아득한 어딘가를 바라보는 자들의 대화다.
과거와 미래, 동식물의 생장과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기운에 대한 고찰.
마른 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소년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하, 몰라도 된다. 나중에 자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해지면 그때 다시 일러주마.”
머리를 쓰다듬는 아비의 손길을 느끼던 와중에 마른 비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