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세록 남천제-20화 (20/463)

20화

숲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서며, 겨울 달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자신 있게 다가갔지만, 마음까지 떨리지 않았을 리 없다.

결과는 여지없는 거절.

태연한 척 돌아 나왔지만, 무척이나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다들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인데!’

빼어난 미모는 아버지 하늘이 준 축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녀에게 친절했다.

하나를 원하면 알아서 둘, 셋을 안겨줄 정도로.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이기에, 마음에 입은 상처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오, 달아! 어디 가?”

“사냥한 멧돼지 구울 건데 저녁 같이 먹을래?”

지나치는 곳마다 호의 어린 관심이 쏟아졌다.

살짝 깨문 입술과 찡그린 미간마저도 뭇 사내들에게는 매력적으로만 보였다.

어설프게 엮어 만든 장신구들이 몸 여기저기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그믐을 통해 어렵게 구한, 반짝이는 금속들과 운남 곳곳에 숨어 있는 영롱한 광석들.

특히 한 달 전 영묘에 들어갔을 때 몰래 떼어온 노란색 광석은 실로 눈부셨다.

부족 사람들 중 이런 멋을 내는 건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래, 괜찮아. 걸음이는 아직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강해지는 데에만 몰두했으니까.’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 그녀가 주변의 사내들을 둘러봤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자신이 그들에게 흥미가 없을 뿐.

‘나와 어울리는 건 족장이 될 사내뿐이야. 하지만 산이는 안 돼. 덩치 크고 힘만 센 건 아름답지 못하니까. 잘 생기고 품위가 있어야 해.’

성년식에서 돌아온 날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눈은 안개 걸음만을 좇았다.

하지만… 거절당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산도 못난 얼굴은 아닌 것 같다.

곰 같고 투박하기만 했던 녀석이 3년 사이 제법 남자답게 늠름해져 있었다.

‘걸음이가 반드시 족장이 되리란 보장은 없지. 잠시 산이나 보러 갈까.’

“저기… 달아?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멧돼지 구워 먹….”

“아, 미안. 산이랑 먼저 저녁 먹기로 했거든. 혹시 어디 있는지 알아?”

미안하다며 쌩긋 웃는 겨울 달은 예뻤다.

* * *

“이건 이렇게 해서…… 아냐! 거기서 발차기가 들어와야지!”

마을을 빙 두른 청죽림.

산은 안개 걸음이 단련을 하던 숲의 반대편에 있었다.

‘누구지? 여울이?’

‘맑은 여울’.

한 살 어린 부족의 동생이다.

그녀가 제법 매서운 기세로 손발을 뻗으며 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저 숙맥에 약해빠진 애가 산이와 대련을?’

“얍!”

“아니라고, 멍충아! 발차기이이~ 이 자식아.”

산에게 이마를 콩 맞은 여인이 쓰러졌다.

아직 여인이라기보다는 성장 중인 소녀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겠다.

커다란 눈이 선해 보이지만, 단지 그뿐.

여자로서의 매력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아이였다.

겨울 달이 보기에는 그랬다.

“너, 싸움에는 진짜 재능이 없구나? 성년식 기간 중에 용케도 살아남았네.”

“오빠가 지나치게 센 거예요. 물론 제가 약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사냥이나 어지간한 맹수 정도는…… 아, 물론 저는 오감이 발달한 편이라 센 놈들은 미리 다 피해 다녔지만…….”

‘한심해.’

우물쭈물하는 저 태도라니!

드러내진 않지만 그녀가 가장 딱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자신감 없고, 힘도 약하며, 머리까지 별론데 착하기만 한 멍청이.

‘그런데 저 바보가 왜?’

산을 바라보는 여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무르익은 홍시처럼 발갛게 물든 볼.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오호라, 그래서?’

여울은 순수 전투능력으로만 따진다면 또래의 전사들 중 가장 약한 축에 속한다.

그녀는 전투 자체를 기피하고 꺼린다.

투쟁심이 없으니 강해질 리 없었다.

혹독한 야생에서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대련 자체를 즐기는 듯 활력이 넘쳤다.

‘하하, 호호……. 아주 신이 났네.’

괜히 부아가 치민다.

산과 여울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지만, 웃고 있는 그들을 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겨울 달.

육체는 성인의 그것에 도달한 지 오래다.

성년식을 거치며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것은 야생에서 홀로 보낸 시간이었다.

사람과 어울리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배려와 존중을 습득한 건 3년 전이 마지막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주변의 과도한 떠받듦으로 인해 원래부터 그런 부분이 모자랐으니…….

성숙한 외모와 달리 겨울 달은 아직 감정을 추스를 줄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녀가 웃고 떠드는 남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 달이 언니! 안녕하세요!”

“응. 안녕, 여울아. 대련하고 있었어?”

겨울 달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가 유력한 족장 후보인 산이를? 주제를 알아야지.’

가까이서 보니 더욱 못마땅하다.

그녀가 은근슬쩍 산에게 요염한 미소를 흘렸다.

“산이, 안녕? 잘 지냈지? 오랜만이야.”

“오, 달이구나. 반갑다! 수련한다고 바빠서 이제야 보네. 성년식 고생 많았다.”

“추모 끝나자마자 숲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구. 너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우리 같이 저녁이나 먹자.”

“저녁? 음… 고마운데 밥은 나중에 먹자. 여울이랑 먼저 먹기로 했거든.”

둘을 번갈아 보던 여울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두 분이서 드세요. 저는 나중에 다시…….”

“그래 줄래? 고마워, 여울아.”

‘눈치는 있네.’

언뜻 보기엔 정말 따스한 웃음이었다.

“뭐가 고마워? 이쪽 약속이 먼저라니까? 대련해줘서 고맙다고 여울이가 토끼 잡아 왔어. 나중에 먹자.”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해. 아, 같이 먹으면 되겠네. 먹으면서 말해라. 괜찮지, 여울아?”

“네? 네네! 그럼요.”

겨울 달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됐어! 너희끼리 먹어.”

휙 돌아선 겨울 달은 찬바람만 풀풀 날리며 멀어져갔다.

“……뭐야, 대체? 쟤 여기 왜 온 거야?”

“글쎄요…….”

산과 여울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휑하니 사라지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누나 좀 이상해.”

산과 여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

대련을 마친 후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던 마른 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특이하지.”

곁에 앉은 노을이 피식 웃었다.

산이 오빠, 여울 언니, 그리고 비아.

누구도 달이 언니가 왜 저러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의 심리가 한눈에 보였다.

‘근본이 나쁜 언니는 아닌데…… 유치해. 약은 데다 마음도 좁고. 음… 그럼 나쁜 건가?’

아직 철이 없는 거라고 치자.

부족의 언니를 안 좋게 생각하긴 싫으니까.

성향이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자신과 비아는 말할 것도 없고, 산이나 걸음이 오빠와도 다른 부분이 많았다.

‘그것 때문에 그런가?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는데도 참 친해지기 힘든 언니야.’

이제 막 자연기를 다루기 시작한 노을로서는 알 수 없었다.

존재의 특질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자연기의 공능이 본능적인 거리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란 것을.

‘원래는 걸음이 오빠한테 관심 있지 않았나? 얼굴을 엄청 따지는 사람이 왜 갑자기 산이 오빠를?’

산이 뜬금없이 1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땀 다 식었다! 한 번 더 붙자, 노을아!”

벌떡 일어난 마른 비가 어깨를 풀며 외쳤다.

노을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마른 비를 올려다봤다.

“어휴, 하루 종일 싸우고도 안 지쳐? 체력 진짜 좋네.”

“시간이 없잖아. 내일모레가 출발인걸.”

“알았어. 정말 마지막이야. 난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이번엔 땅을 밟지 않는 공중전 어때?”

“대나무 타면서? 좋아! 땅에 먼저 떨어지는 쪽이 지는 거다?”

“진 사람이 저녁거리 구해오기!”

“좋아, 덤벼!”

훌쩍 날아오른 소년 소녀가 허공에서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 * *

흐르는 시간은 유수와 같았다.

성년식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과 곧 출발할 사람들.

회포를 풀고 추억을 남길 수 있게끔 주어진 한 달이었다.

대부분은 편안히 휴식을 취했지만, 힘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고, 마침내 그날이 밝았다.

* * *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게야?”

카랑카랑한 음성이 따지듯 날아든다.

세월을 품은 허연 눈썹이 삐죽 솟았다.

이름 없는 깊은 산중, 망태기를 짊어진 노인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물어볼 곳이 없더군요. 아시다시피 운남의 실정을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습니까. 이 시대에 노사(老師)만큼 천하 구석구석을 두루 살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익숙하다.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는 것.

사실에 기초하여 은근한 칭찬을 더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열곤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겨우 그따위 걸 물으려고 사천(四川) 끝까지 쫓아온 거냐?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구먼. 바빠 죽겠으니까 당장 꺼져.”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시대를 초월한 의술로 화타(華佗)의 재림이라 일컬어지는 자.

그러나 하늘이 내린 천재성과는 별개로 거친 입담과 괴팍한 성미, 종잡을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중원 7대 기인으로 분류된 자.

특이한 자들이 넘치는 정사지간(正邪之間)의 인물 중에서도 별나기로 유명한 괴의(怪醫) 화통달과의 만남은 푸짐한 욕설로 시작됐다.

“자, 잠깐만요. 노사!”

“노사는 얼어 죽을. 언제 봤다고 입발린 소리나 늘어놓고 지랄이야, 지랄이? 속 느글거리게. 그리고 네가 왜 내 후배냐? 너, 의원이야?”

“아, 아뇨. 의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무림에 몸담은 이상 당연히 후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염병하네. 난 칼 들고 설치는 살인마들을 후배로 둔 적 없다. 정파건 사파건 마교건 간에 네놈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해충 같은 놈들이야. 니들만 없으면 날 찾아오는 환자들이 십 분지 일로 줄어들 거다.”

“…….”

괴의가 무림인을 싫어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이유와 소속을 불문하고 환자가 찾아오면 일단 팔부터 걷어붙이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치료가 끝나는 순간, 폭풍처럼 쏟아지는 욕설을 견뎌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면상이랑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이제 막 발 들인 모양인데, 칼 놓고 착하게 살아라. 남을 해치면 언젠간 반드시 그 업보가 돌아오는 법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쯧쯧. 그리고 운남에 대한 이야기를 왜 나한테 물어? 정보 상인들에게 찾아가 봐. 난 약초를 캐야 하니 당장 사라져.”

괴의가 등을 돌리며 멀어져갔다.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

어떻게 찾아온 것인데.

마음이 다급해지니 곧장 핵심 용건이 튀어나왔다.

“건우(亁雨)!”

“……?”

효과가 있었나?

발을 옮기던 괴의가 주춤하며 멈춰 섰다.

“아니, 남만 야수족의 언어로 마른 비라고 하던가요? 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그 시건방진 꼬맹이는 왜?”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이십 대 후반의 사내를 꼬맹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지만, 괴의의 평소 말투를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하다.

사십에 가까운 정도맹(正道盟) 청천대주(靑天隊主)에게도 ‘앞뒤 꽉 막힌 핏덩이’라고 막말을 퍼붓는 사람이니까.

“노사와 그가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친하긴 개뿔. 그냥 몇 번 본 거지. 아무튼 그놈은 왜?”

이쪽을 외면했던 고개가 반쯤 되돌려졌다.

저 반응.

퉁명스런 말과 달리 그와 친분이 있는 게 분명했다.

“워낙 유명한 인물이지 않습니까. 결코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에 대해 듣고 싶어서…….”

“너 삭월인가 뭔가 하는 그 정신 나간 집단 소속이라며? 그 꼬마를 너희 일에 끌어들일 생각이라면 그만둬라. 너무 위험해. 반말 찍찍 내뱉는 것만 빼면 마음에 드는 꼬맹이니까.”

‘마음에 든다.’

괴의에게 저런 평을 들을 수 있는 무림인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남자가 스스로를 무림인이라고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진솔한 답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네, 솔직히 그가 손을 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순수하게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변방 중의 변방인 운남에서 튀어나온 기린아.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 아닙니까.”

진위를 가늠하는 걸까?

착 가라앉은 눈빛이 날카롭게 쏘아져 왔다.

한동안 내 눈을 들여다보던 괴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헛소리 같지는 않군. 네놈들의 의도는 알겠다. 그 꼬맹이를 궁금해하는 이유와, 왜 끌어들이려 하는지도. 달걀로 바위치기 같지만, 니들이 하려는 일에 공감하기도 해. 월주(月主)에게 전해라. 그 배짱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다고. 말해봤자 들어먹지도 않겠지만.”

“하하, 맞습니다. 월주께선 그런 분이시죠. 염려에 감사드립니다. 노사.”

웃고 있는 나에게 괴의가 말했다.

“앉아라. 아는 만큼은 들려주지. 와족, 아니, 비아의 무엇이 궁금한 거냐.”

“무엇이든 좋습니다만…… 음, 우선 젊은 나이에 그토록 강한 힘을 지니게 된 비결이 있을 텐데요. 남만 야수족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겁니까?”

“비결은 얼어 죽을. 그냥 그놈이 유별난 거지. 아…! 생각해보니 노을이도, 산이도, 걸음이도. 와족 꼬맹이들이 유독 세긴 하구만.”

“설마… 다른 전사들과도 친분이 있으신 겁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다.

중원을 발칵 뒤집어놓은 남만 야수족의 전투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금 나온 이름들.

그들 고유의 언어라 알아듣긴 어려웠지만, 현재 야수족의 주축을 이루는 전사들의 이름이 틀림없으리라.

그들과 친분이 있는 중원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먼 사천 끝자락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흠… 어쩌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와족의 소년 소녀들이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 거친다는 통과의례. 반려수야 워낙 유명하니 이미 알 테고. 그 반려수를 길들이고 힘을 키우기 위해 와족의 아이들은 3년간 야생에서 홀로 생존하는 시기를 거친다더군.”

“운남의 야생에서 말입니까? 거긴 괴수나 다름없는 맹수들이 우글거린다고…….”

“그래. 겁 없이 운남에 기어 들어갔던 중원의 무력집단들이 증명한 바 있지. 희귀한 약초가 널려 있어서 나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살벌한 곳이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직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시기에 강대한 야수들 틈에서 홀로 생존을 일구는 것.

남만 야수족의 의식은 강호의 후기지수들이 거치는 중원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단 의미였다.

그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엿본 것만 같았다.

“성년식. 그들은 그걸 성년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볼 땐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의식이지. 매번 사망자가 나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어. 하지만 그들은 그걸 축제 비슷하게 여기는 눈치더군. 아이들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건 확실한데, 그 부분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군요. 성년식이라니……. 그들만의 전통 같은 것이군요. 그런데 노사께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마치… 그들과 함께 생활해보신 것 같은 느낌이…….”

조심스레 건넨 질문에 괴의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랬다. 그랬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에겐 마음의 빚이 있거든.”

욕설로 점철됐던 첫 만남.

괴팍한 인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노인의 눈에는 나로선 짐작할 길이 없는 사연과 아련한 세월의 부침이 담겨 있었다.》

혼세록 대담 편

「괴의 화통달」

삭월 월목대원 태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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