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카압!”
이런 거수(巨獸)를 상대로 잔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힘을 모아 강하게 휘두를 뿐.
우둔한 땅이 터뜨린 기합에 자연기의 잔향이 섞이고, 포화 상태의 자연기가 거세게 터져나갔다.
뻐어엉!
일순간 지면에서 발이 들린 전상이 좌측으로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전사와 짐승의 규격을 넘어선 맹수가 고대 신화 속 한 장면을 메마른 대지 위에 가쁘게 그려냈다.
꽈아아앙!
“헉, 허억…!”
전상의 머리에 뒤꿈치를 내리꽂은 우둔한 땅이 멀찍이 내려섰다.
“뿌오오!”
전상은 애가 타서 미칠 것만 같았다.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은 게 한참 전이다.
앞을 가로막은 인간들은 강했고, 이대로 간다면 구출은커녕 이쪽이 모두 쓰러질지도 모른다.
동족들을 도와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인간 하나 쓰러뜨리기가 벅찼다.
자신이 자의식을 갖추게 된 계기.
동족들을 지키고 싶다는 강렬한 염원 덕분이었다.
그 각성의 순간 이래, 무리를 위협하는 포식자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식구들을 건사해왔건만.
죽어가는 새끼를 향한 조바심과 안타까움에 속이 미어지는 듯했다.
다시 충돌하려는 둘을 멈춰 세운 건, 저 멀리서 달려온 한 명의 인간이었다.
“부 족장!”
왜 이제야 오는가.
보낸 지가 언제인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바위 곰 전사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피?’
전사의 옷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품에는 숨을 헐떡이는 새끼 코끼리가 안겨 있었다.
투벅, 투벅―
‘긴 코!’
우둔한 땅의 반려수인 긴 코도 전사와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마을에 대기하라고 했는데?’
코끼리 무리와 맞붙기 전.
아창족 마을에서 숨진 새끼 코끼리를 발견했을 때.
긴 코는 처연히 울며 그 주변을 맴돌았다.
긴 코 또한 야생곡 출신이다.
오래전 성년식을 맞이한 우둔한 땅은 야생곡으로 달려왔고, 당시 코끼리 무리의 대장이었던 긴 코를 2년이 넘는 싸움 끝에 길들였다.
지금의 코끼리 무리는 긴 코에게 있어 후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동족을 끔찍이 아끼는 코끼리의 특성상 싸움을 맡기기도 미안했고,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마을에 남겨두고 왔다.
한데 어쩐 일인지 긴 코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뿌우우―!”
“빠오!”
긴 코를 본 전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긴 코가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걸 알고 있다.
이 인간과 연을 맺었다는 것도.
그전까지 무리를 훌륭하게 이끌었다는 것도.
어미에게 들은 전대 우두머리는 존경해 마땅한 웃어른이었다.
“부 족장! 한족 놈들입니다! 긴 코와 제가 보았습니다! 새끼를 괴롭혀서 소리 지르게 하고, 코끼리들을 마을로 유인하려는 것을요! 놈들은 새끼를 끊임없이 상처 입히고 괴롭혔습니다! 분노한 긴 코가 놈들을 날려버리고 구해왔어요!”
“너, 긴 코. 둘 다 잘했다. 새끼, 상처 입었지만 살았다. 다들 그만 싸워도 된다. 오해, 풀렸다.”
긴 코가 전상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어구구, 진짜 죽을 뻔했네!”
전투를 멈춘 전사들이 땅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우둔한 땅도 지친 건 마찬가지다.
전상은 몇 년 전에 쓰러뜨리고 이빨을 획득한 흉웅(凶熊)보다도 강했다.
녀석의 박치기를 받아냈던 왼편은 갈비뼈 몇 개가 부러진 것 같았다.
‘후우… 전사들, 더 다치기 전에 끝나서 다행이다. 긴 코 덕분이다. 한족 놈들, 이런 짓을……· 응?’
휘아악―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다수의 예기(銳氣).
우둔한 땅의 고개가 뒤편으로 홱 돌아갔다.
“이런…! 다들 일어선다! 적습이다!”
푸화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속에서 검들이 치솟았다.
“컥!”
“아아악!”
등줄기를 쑤시는 검에 바위 곰 전사들이 맥없이 무너졌다.
‘양공! 당했다!’
우둔한 땅의 어깨가 꿈틀댔다.
살기를 발산하며 지면 위로 치닫는 적들은 주공(主攻)이자 미끼다.
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땅속에 숨어있던 적들이 기습을 감행했다.
‘수리의 눈 전사의 ’두더지 굴‘ 같은 건가!’
다종다양한 반려수.
전사들 중에는 두더지와 연을 맺은 이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오랜 세월에 걸친 모방 끝에, 그들은 땅속을 헤집으며 이동하는 특이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중원에서는 지둔술(地遁術)이라 일컬어지는 기예다.
전사들이 코끼리 무리와 싸우는 틈을 타, 땅 밑으로 다가온 적들은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2인 1조! 한 명 발밑, 다른 한 명 정면에서 다가오는 적들 본다!”
푸화악!
날카로운 검들이 지면을 뒤집으며 솟구쳐 올라 급소를 노린다.
상처 입은 바위 곰 전사들의 반응은 더뎠다.
“큭!”
“아악!”
발바닥이 꿰뚫리고, 발목의 힘줄이 잘린 전사들이 다리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정신 차린다! 정면! 온다!”
발아래서 치솟는 검에 정신이 팔린 사이, 거리를 좁힌 점창 검사들이 바위 곰 전사들을 덮쳤다.
“이 더러운 놈들이!”
쾅!
지면을 구른 왼발이 몸을 지탱한다.
이어지는 바위 부수기가 적을 날려버리려는 찰나.
피슉!
“큭!”
축이 되는 왼발이 검에 꿰뚫렸다.
바위 곰 전사의 자세가 무너졌다.
‘위험하다!’
전사들이 너무 지쳐있다.
부상도 가볍지 않다.
게다가 지면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가해진 급습.
다급함과 혼란은 심리적인 위축마저 불러왔다.
‘땅 밑의 공격만 차단할 수 있다면…!’
잠시 고민하던 우둔한 땅이 고함을 질렀다.
“전원! ‘뿌리 내리기’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밀리지 않고 버티기 위해.
거센 급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을 대지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와족의 기예가 수십 명 거한들의 몸에서 펼쳐졌다.
후우욱―!
정수리부터 밀어 내린 자연기가 발끝으로 치닫는다.
자연기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전신의 체중도 아래로 쏠렸다.
밀어 내린 자연기와 체중이 발끝에 다다른 순간, 발가락을 쫙 펴며 힘을 해방시켰다.
꽈아아아앙!
“컥…!”
“크악!”
일점에 모인 체중이 지면을 짓누르고, 응축된 자연기가 땅속으로 퍼져나간다.
흙 속에 전사들의 두 발이 박혀 들고, 다리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기의 여파가 지반을 둥그렇게 침강시켰다.
지면을 때린 강렬한 충격에 땅속에 뚫린 좁은 굴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 살려…!”
흙에 압사된 암습자들이 억눌린 신음을 토해냈다.
답답한 비명이 숨 쉬듯 분출되고, 지하수가 배어나듯 흙 위로 피들이 번져 올랐다.
“지금이다! 반격해!”
산 채로 매장당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한동안은 섣불리 달려들지 못할 거다.
그 사이 눈에 보이는 놈들을 정리한다.
발밑의 적들 때문에 우왕좌왕하던 바위 곰 전사들이 자세를 가다듬고 역공에 나섰다.
푸카앙!
‘막아?!’
거친 모래가 눈을 부릅떴다.
두 놈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깨로 들이받은 산 허물기가 교차하여 덧댄 검에 가로막혔다.
힘을 합쳐서 공격을 막아낸 점창 검사 두 명이 각자의 방향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촤아악!
철골까지 끊지는 못했지만, 강피를 찢고 부상을 입히기엔 충분한 힘이다.
거친 모래의 어깨에서 피가 뭉클뭉클 샘솟았다.
‘이놈들, 만만치 않다…….’
찢어진 어깨 근육을 조이고 자연기를 둘러쳐 출혈을 줄인다.
적들을 노려보는 거친 모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길. 반려수들만 있었다면!’
각지에서 벌어진 맹수들의 습격을 막아낼 인원이 너무나 모자랐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에 전사들이 집중됐고, 상대적으로 제압하기 수월한 곳들은 소수의 전사가 다수의 반려수를 인솔하여 막으러 나섰다.
야생곡 출신이라 도움이 될 것 같아 데려온 긴 코를 제외하면, 이 전장에는 반려수가 없는 것이다.
‘부 족장은 괜찮은가?’
그의 눈이 전장 한편에 외따로 고립된 우둔한 땅을 향했다.
“이놈들!”
우둔한 땅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습격대 중에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 열다섯이 그를 둘러싸고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허억, 헉······.”
바닥난 체력과 직전에 입은 부상.
전사들이 하나둘 허물어질 때마다 우둔한 땅은 가슴이 찢기는 것만 같았다.
“제기랄! 몸만 정상이었다면 이깟 놈들쯤은!”
간신히 공격을 흘린 바위 곰 전사가 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코끼리 무리의 돌진을 정면에서 받아냈던 그는 오른쪽 팔꿈치가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러게 누가 미련한 짓을 하라던?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얼굴 여기저기에 상흔이 새겨진 사내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점창의 무복을 입고 있지만, 얼굴과 분위기는 창산의 고고함과는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몸이 정상이었다면 달라졌을 거 같나? 착각하지 마라. 짐승 가죽이나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되다만 놈들 주제에. 야만 원숭이 부족의 여자들은 어떨까. 네놈들을 죽이고 내 직접 찾아내 주마.”
이죽거리며 입술을 핥는 도발에 전사들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나란히 서 있는 점창 제자들조차 얼굴을 찌푸리는 자들이 속출했다.
“이 개자식이…!”
부족의 여인들을 언급한 저열한 도발은 듣고 그냥 흘릴 수 없는 종류의 언사였다.
맹수들과의 싸움이 주였던 와족은 이런 원색적인 도발에 취약했다.
달려들게 하려는 수작이다?
모를 것 같나.
알지만 들어간다.
저런 개소릴 듣고도 참는다면 사내가 아니다.
분개한 바위 곰 전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땅을 박찼다.
싸아악!
쇠붙이와 살 거죽의 불쾌한 마찰음.
거칠게 베어낸 일검에 또 하나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핏물의 양이 증가할수록 눈이 급격히 흐려졌다.
쿵!
또 한 명의 바위 곰 전사가 눈을 감았다.
전장의 형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와족 전사들에게 불리해져 갔다.
체력의 고갈, 코끼리 무리와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 병력의 열세, 지상과 지하에서 휘몰아치는 협공…….
무엇보다 우둔한 땅이 전사들에게 합류하지 못하는 게 치명적이었다.
체력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포위 공격을 받은 그가 이만큼이나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었다.
“후후.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보오. 부 족장.”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자, 얼마나 될 것인가.
등줄기를 쑤신 검을 포함하여 서너 개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거친 모래는 웃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아버지 하늘이 내려준 생명을 소진하고 어머니 땅의 품으로 돌아갈 뿐인데 무엇이 두려우랴.
비열한 놈들을 응징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게 분할 따름이다.
간악한 책략에 빠진 소수부족들과 남은 형제자매들이 걱정될 뿐이었다.
‘뒤를 부탁하오. 족장.’
날아드는 검은 시리게도 빛났다.
몸을 움직일 한 줌의 기력도 남지 않은 그가 담담히 웃으며 검 끝을 응시했다.
바로 그때.
“뿌오오오오!”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과 함께 기적 같은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두두두두두―
탈진한 전사들 사이로 육중한 거수들이 내달린다.
방금 전까지 힘을 겨루며 전사들을 힘겹게 했던 야생곡의 주인들이 성난 노도처럼 암습자들을 휩쓸었다.
들이받고, 짓밟으며, 꿰뚫고, 휘감아 으스러뜨린다.
전상과 긴 코가 이끄는 코끼리 무리는 뒤늦게 알게 된 진정한 적들에게 그간 쌓였던 울분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크아악!”
“아악! 허리, 허리가 부러졌…!”
“살려… 커억!”
“왜, 왜 갑자기 우리를?!”
바위 곰 전사들을 포위하기 위해 둥글게 밀집해있던 점창 검사들이다.
비탈을 휩쓸어 내리는 산사태 같은 거수들의 장벽이 미력한 인간들의 포진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점창의 제자들은 머리가 하얘져서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전장을 총괄하는 지휘자조차 입을 떡 벌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찬 비질에 쓸려나가는 낙엽처럼, 공들여 키운 무인들이 손 한번 쓰지 못한 채 도륙당하고 있었다.
인체가 통으로 찌부러지고, 으깨지며, 터져나가는 광경은 이성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후우……. 아무리 불러도 대꾸 없더니. 전상, 설득했나? 덕분에 살았다. 긴 코.”
긴긴 수세에서 벗어나 겨우 폐부 깊숙이 공기를 채운 우둔한 땅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상황, 역전이다. 각오 됐나?”
별다른 감정의 기복도 내비치지 않고 차분히 말을 건네는 우둔한 땅의 모습에 점창의 지휘자가 실소했다.
“푸흐, 흐흐흐……. 다 죽어가던 놈이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체념인지, 분노인지, 또는 허탈인지.
그 웃음의 의미는 도무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죽음을 직시하며 내보인 거친 모래의 웃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완벽한 상황. 압도적인 우위. 하지만 결과는 전멸에 가까운 패배.’
이 순간에도 점창의 제자들은 코끼리 떼에게 휩쓸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빠진다. 어차피 야만인 놈들은 움직일 힘이 없고, 코끼리들은 우릴 따라오지 못해.”
지휘자가 전장을 돌아보며 퇴각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어딜 가나.”
피로가 묻어나지만, 여전히 묵직한 힘을 간직한 음성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너희, 못 간다.”
“뿌오오오오!”
생존자들이 도주를 위해 땅을 힘주어 밟는 순간, 긴 코의 앞발이 지면을 때렸다.
쿠콰콰콰쾅―!
천지가 붕괴하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대지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반경 7장에 이르는 지반이 움푹 파이며 매끄럽던 표면에 거친 균열을 그었다.
“큭! 무슨 짓을?!”
“젠장! 중심이…!”
쿠르르릉―!
충돌지점을 중심으로 넓게 퍼뜨린 자연기가 지면의 균열을 타고 방사형으로 번진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미친 듯이 날뛰는 대지가 적들의 중심을 흔들어 발을 묶어 놓고 있었다.
“빌어먹을! 중심을 중심을 잡을 수가…!”
“사, 사형! 저놈!”
끊임없는 대련의 나날.
사방팔방 날뛰는 매서운 눈과 그의 반려수를 잡기 위해 만들어 낸 둘만의 합격기다.
“너희, 못 간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휘돈 거인의 등이 적들을 향했다.
산 허물기? 아니다.
훨씬 넓은 면적으로 들이받는 광범위 타격기.
있는 대로 끌어모은 자연기가 널따란 등판에 두텁게 집중되고, 전신으로 끊어치는 타격이 대기와 충돌했다.
점창의 제자들은 거대한 장벽이 거침없이 밀려오는 환상을 보았다.
“천둥 바위.”
바위의 강건함을 담은 일격이 천둥의 위엄을 두른 채 적들을 덮쳤다.
쿠아아아앙!
화탄이 터진 듯 귀를 찢는 폭음이 사위를 휩쓸었다.
우둔한 땅을 핍박했던 적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산산조각 난 인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육편과 사방으로 번지는 피 안개는 일순간 사고가 마비될 만큼 현실감 없는 풍경이었다.
“뭐, 뭐냐 저게?! 저런 것도 무공이란 말이냐?”
경이적인 위력이다.
넓은 면적에 둘러친 자연기를 대기에 충돌시켜, 그 충격력으로 적들을 일시에 섬멸하는 기예.
우둔한 땅의 천둥바위는 얼마 남지 않은 점창 검사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부 족장이 승리했다! 남은 놈들을 쓸어버려라!”
보라!
적들의 기가 질린 표정을.
느껴라!
등 뒤에서 타오르는 전사들의 투혼을.
지금이다.
지금 휘몰아쳐야 한다.
거친 모래의 입에서 우렁찬 돌격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으, 으… 으아아아아! 죽어! 이 야만인 놈들아!”
전장의 광기는 그 안에 몸담은 자들을 집어삼킨다.
정도를 되새기고, 점창의 현실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자들도 모든 걸 잊었다.
남은 건 오직 살고자 하는 본능뿐이었다.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거친 대지 위에 펼쳐졌다.
이 모든 상황을 의도한 자.
드높은 창산의 장문전에서 구름의 한가로운 연무(演舞)를 내려다보는 공지량만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