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세록 남천제-58화 (58/463)

58화

오늘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규를 떠올린 봉검이 또다시 노여움으로 물들었다.

“이 망할 애송이 녀석들이! 애비가 큰일을 위해 중원으로 떠나는 통에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란 녀석을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음… 무슨 일이 있는 겝니까?”

“예전에 갑갑하여 조용히 산을 돌아본 적이 있소. 연무장을 지나는데…… 이대 제자 녀석들이 대련을 빙자하여 규를 가혹하게 구타하고 있더이다.”

“구타? 대련이 아니고요?”

운검의 눈썹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그렇소. 말로는 대련이라 하지만, 그건 구타였소. 짐작건대 장문인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장문인의 휘에 대한 감정이 어린 것들에게까지 전염된 모양이오. 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유도한 것일 수도 있겠고.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알겠소이까?”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군요. 어찌 정파의 제자란 녀석들이…….”

“그나마 다행인 건 유립이, 그 녀석이 규를 챙겨주는 것 같더이다. 열불이 터져서 싹 다 뒤집어엎으려는 순간에 유립이가 나서서 구타를 중지시켰소.”

“유립……. 허허, 그 녀석도 아픔이 많은 녀석인데.”

“유환, 그 건방진 망나니 녀석보다 훨씬 낫지. 제 아비와 형에게 온갖 멸시와 수모를 당하면서도 바르게 큰 걸 보면 참으로 대견하더이다.”

두 장로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온 공유립을 떠올렸다.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르지만, 무재도 상당하고 성정 또한 올바르다.

다만 문내의 분위기가 문제였다.

서출이란 출신 성분 때문에 제 아비에게조차 천대 받는다.

장문인의 아들이라 대놓고 무시하진 못하지만, 젊은 제자들 또한 그런 실정을 알고 있으니 뒤에서는 욕하며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문내의 모든 일이 장문인의 호불호와 의중에 따라 굴러간다.

봉검 장로는 큼직한 무언가가 가슴 속에 콱 얹힌 것만 같았다.

“문제가 심각하오. 위부터 아래까지. 믿어야지, 하면서도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회의가 치미는 것이오. 외부에서의 일처리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봉검 장로는 몇 년째 은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편히 잠든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평생을 바친 사문의 불길한 삐걱거림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어찌 됐든 장문인은 점창에서 나고 자란 뿌리 깊은 정파인이 아닙니까. 잠시 엇나가긴 했지만 분명히 길을 찾을 겁니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오. 일단 규는 내가 반대를 무릅쓰고 산외로 내보냈소. 산내에서는 많이 힘들 것 같더군.”

“산외라……. 문파의 울타리 밖인데 수련하는 모습이 노출되지 않겠습니까?”

“누가 감히 점창의 영역에 들어온단 말이오. 그리고 그 녀석, 휘가 전수한 독특한 무공을 수련하는 것 같더이다.”

“아, 사일검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소. 아직 미완의 무공이지만 잘만 하면 엄청난 게 나올 것 같더군.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데다 열네 살짜리 꼬맹이가 혼자 수련했으니 진전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었겠소. 점창의 정식 무공도 아니니 유출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음……. 휘는 황실에 몸담았으니 앞으로도 한참을 돌아오지 못할 터인데. 그 녀석이 그렇게 힘들다면… 우리가 가르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요?”

수제자로 들이자는 운검의 말.

처음으로 봉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미 제의를 했소. 단칼에 거절하더군.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버지의 무학이 아닌 것을 배울 생각은 없습니다.’라던가. 허헛, 제 아비를 닮아 심지가 아주 단단하더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녀석은 반드시 무언가를 해내는 법이지. 그 녀석을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있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수년을 보낸 두 장로.

봉검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는 알 수 없었다.

오래전 점창파와 충돌했고, 지금 다시 원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부족에서 한 명의 소년이 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을.

그 꼬마는 점창파가 어떤 집단인지, 자신들과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 채 이미 점창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심지어 오랜만에 그에게 웃음을 안겨준 휘의 아들과 만났다는 사실마저.

봉검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삐이이익― 펑!

“……?!”

어둑해진 밤하늘 아래, 불길한 비명을 지르는 효시가 보랏빛 연무를 피워 올렸다.

* * *

“장문인. 유환이를 그냥 두어도 되겠습니까?”

지석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장문인에게 뺨을 맞고 나갈 때부터 유립이에게 갈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이런 사고를 칠 줄이야.’

지석인은 공유환이 검을 처음 잡았을 때부터 그의 곁을 지켰다.

20년 전, 우수한 성적으로 응목대 최종 선발시험을 통과한 지석인은 공지량의 눈에 들었고, 공유환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건 각종 파견 임무와 더불어 10년 넘게 이어진 그의 책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 공유환에 대해 잘 알았다.

아니, 잘 안다고 생각했다.

공유환은 어린 시절부터 배다른 동생인 공유립을 직간접적으로 괴롭혀 왔고, 철들 무렵이 되자 그건 폭력이란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이 정파의 대제자란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지석인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그 정도의 삐뚤어짐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장문인의 피를 이어받은 걸 증명하듯 공유환은 문무를 아우르는 출중함을 드러냈고, 거대 집단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출중한 실력과 막강한 배경이라고 여기는 지석인이었기에 그 정도의 흠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장문인은 유환을 차기 장문에 올릴 생각이었고, 그가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미래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문파의 대소사를 처리해온 요인인 동시에 10년 넘게 자신을 호위해준 사람을 내칠 리는 없으니까.

공유환이 차기 장문인이 되는 건 지석인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인성이 다소 비뚤어졌어도 상관없다.

잘 숨기기만 하면 된다.

최소한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파의 대제자라는 가면을 쓰는 걸 잊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유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심각했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뜻이며, 뭇사람들의 인망을 잃고도 남을 행동이란 자각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으며,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비뚤어진 오만의 소산이다.

만약 알면서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거라면 그건 더 심각하다.

자제력과 인내심은 어디까지나 능력의 범주에 속하는, 수장될 자의 필수 요건이니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정신적 미숙함과, 만인의 지탄을 받을 행동, 누가 봐도 비정상적으로 보일 법한 광기까지.

공유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석인은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동요했고, 그의 수장으로서의 자질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못난 놈.”

하지만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던 공지량은 짧은 소감으로 아들의 기행을 일축해버렸다.

그리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딱딱하게 굳은 지석인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일 처리 방식이 너무나 미흡하구나. 한번 제대로 붙잡고 가르쳐야겠어.”

“하오면 그 말씀은…….”

“어차피 유립이를 정리하려면 한 번쯤 겪었어야 할 일이네. 미련한 방식이지만 이미 벌린 일 아닌가. 호되게 혼이 났으니 제 딴에도 풀 곳이 필요했겠지. 방법이 문제야. 아직 멀었어.”

“…….”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저 방식이 서툴렀다 지적할 뿐.

그 말은 장문인도 공유환의 사고와 행동에는 심정적으로 동조한다는 뜻이다.

인망을 잃고도 남을 막무가내적인 행동과 피에 대한 기이한 집착.

그 근저에는 충동적인 폭력성과 오만을 넘어서는 과시적 자기애가 도사리고 있다.

한데 괜찮다?

그저 그것을 표출하는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 성정은… 물려받은 것이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장문인은 가면을 쓰는데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20년을 보았음에도 지석인은 공지량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공지량은 할 말을 잃고 망연히 서 있는 지석인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슬슬 봉검과 운검, 두 장로에게 내용을 전달할 때가 되었어.”

“……봉검대와 운검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항상 최상의 전투 상태를 유지하는 무인들답게 전쟁이 발발할 것을 모르고 있음에도 만전의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당연하지. 누가 뭐래도 점창 최강의 무력 집단인 것을. 봉검과 운검 장로에게 넌지시 알리도록 해. 곧 전쟁이….”

삐이익―! 펑!

“……?!”

창밖 저 멀리 요란하게 날아오른 효시가 공지량의 말을 끊어놓았다.

도주

“뛰라고? 왜?”

전투는 끝났지 않나.

다급해하는 여규에게 마른 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효시! 그리고 보라색 연무! 저건, 저건… 적을 발견했을 때 알리는 신호야! 누군가 비아 너를 적으로 간주하고 본산에 증원을 요청한 게 틀림없어!”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여규의 얼굴은 점점 울상에 가깝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본산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거야! 당장 가야 해!”

“아니, 잠깐만. 싸운 건 맞지만 그건 저 사람들이 잘못한 거잖아. 여규 너를….”

“소협.”

망설임을 끊어낸 듯 원승의 어조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했다.

“여 사형의 말씀이 맞소. 누가 봐도 잘못은 여기 쓰러진 네 명에게 있지만, 상황이 그렇지가 않소이다. 점창은 소협을 적으로 간주했고, 곧 들이닥쳐 앞뒤 정황도 따지지 않고 일단 제압할 것이오.”

“그런 이상한 경우가….”

“이상한 게 맞소. 아니,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 하지만 때때로 세상일이란 그릇된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경우도 있는 법이라오.”

“난 저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말하고, 여규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와족. 소협은 와족 출신이 아니오?”

저 연배에 저런 출중한 무위.

운남의 소수부족 중 떠오르는 건 와족밖에 없었다.

원승의 곧은 눈빛이 마른 비를 향했다.

“응. 맞아, 아저씨. 그런데 그게 왜?”

“점창과 와족. 전쟁이 시작됐소이다.”

마른 비와 여규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이럴 줄 알았다.

모르고 있었으니 이런 엄중한 시기에 마음 편히 시장 구경이나 하고 있었겠지.

짧게 한숨을 쉰 원승이 빠르게 말했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소이다. 이미 한바탕 싸움이 붙었고, 아마도 근 시일 내에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오. 신중히 생각하시오, 소협. 만약 소협이 여기서 붙잡힌다면 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전쟁을 앞둔 점창의 제자가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원승은 아무것도 모르고 여규의 손님으로 온 소년이 인질로 잡히는 걸 원치 않았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에 뛰어든 의로운 아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은 청목을 비롯한 네 명의 제자에게 있었다.

원승은 뒤에 어떤 처분이 떨어지든, 이 소년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게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

전쟁.

전쟁이라니!

상상조차 못한 일이기에 마른 비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야생에서 지낸 수개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입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랐지만, 마른 비의 판단은 짧고 빨랐다.

“아저씨와 여규의 말이 맞아. 전쟁이라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신이 없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붙잡혀서 짐이 되선 안 될 거야. 아저씨 말대로 하겠어. 규를 부탁해.”

외로움에 지친 어린 사형에게 친구가 되어준 소년.

그리고 벗을 위해 불리한 싸움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의인.

협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시대에, 정도를 자처하는 문명인들보다 훨씬 의로운 모습을 보여준 야만인 소년에게 원승은 정중한 예를 담은 포권을 올렸다.

“원공의 아들, 원승이오.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출신. 어긋난 도리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뒤는 맡기시오, 소협. 부디 무사히 빠져나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겠소이다.”

아까부터 계속 입에 담는 소협이라는 말.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호의가 담긴 표현이라는 건 맥락으로 알겠다.

그리고 예를 갖춘 정중한 인사.

아무리 급하다 해도 응함이 마땅하다.

위아래 손끝으로 맞잡은 두 손이 가슴 앞에 머물고, 전력으로 끌어올린 자연기가 황혼이 머무는 하늘 아래 존재감을 발산했다.

“운남성 청죽림, 와족 출신이야. 족장 너른 하늘의 아들, 마른 비. 아까는 아저씨 덕분에 위험한 순간을 넘겼어. 고마워, 아저씨. 아까도, 그리고 지금도. 은혜는 잊지 않아. 여규와 아저씨 모두 무사해줘. 꼭 다시 볼 거야.”

나이는 중요치 않다.

인간 대 인간, 남자 대 남자로서 그 존재를 가감 없이 마주할 뿐이다.

마른 비와 여규, 원승의 눈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머금고 교차했다.

“금방 들이닥칠 거야. 우리가 시간을 끌어 볼게. 서둘러, 비아야.”

“고마워, 규야. 먼저 갈게. 절대 무리하지 마.”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비아와 함께 갈 순 없다.

체력도 고갈된 상태고, 미우나 고우나 사문이니 전쟁이 벌어졌다면 들어가 봐야 한다.

비아가 속한 와족과의 다툼이라니 마음이 심란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남아서 친구가 빠져 나갈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주는 게 맞다.

여규의 눈이 창산을 향한 순간.

삐이익―! 펑!

“또 효시를?!”

날카로운 소리가 어두워진 하늘을 또 한번 가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붉은 연무가 어스름을 등지고 대리의 하늘 위로 번져 올랐다.

‘뭐라고? 와족 족장의 아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벌떡 일어설 뻔했다.

은신한 채 마른 비와 원승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준일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처음 산을 나올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공유환에게 모욕을 당한 청목이 제 동기들과 함께 여규를 찾아 나섰고, 살기등등한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여규는 오늘 곤욕을 치를 게 틀림없었다.

준일은 원에 투신한 여 장로의 결정을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곧은 성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따돌림 받는 그의 아들에게 안쓰러움을 느낄 정도의 측은지심은 가지고 있었다.

은밀히 지켜보라는 명령 때문에 청목을 뒤따르면서도 내내 착잡한 심정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대리 한복판에서 청목이 검을 빼드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명을 어기더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규가 처음 보는 검술로 청목을 제압했고, 같이 왔던 세 명이 검을 빼든 순간부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끼어들어 교방과 웅보를 눕힌 야만족 소년.

그리고 완기를 제압한 삼대 제자 원승.

여규와 원승도 골치 아프지만, 진짜 큰 문제는 정체불명의 야만족 소년이었다.

저 어린 나이에 이대 제자 둘을 때려눕힌 신위.

이 땅의 소수부족 중에서 저 정도 체술을 구사하는 건 와족밖에 없다.

더군다나 어깨로 들이받는 독특한 형태는 이미 보고된 와족의 전투 기술이 분명했다.

와족의 소년이 이 첨예한 시기에 왜 대리에 와 있고, 여규가 왜 그 녀석과 어울리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와족이란 심증이 굳어지는 순간 지체 없이 효시를 쏘아 올렸다.

그러자 여규와 원승은 소년을 도피시키려 했다.

청목과 이대 제자들의 잘못이 크다지만, 그건 분명 대죄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한데 헤어지며 나눈 인사에서 소년이 한 말은, 앞서의 어지럽던 상황들을 죄다 사소한 일로 돌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족장의 아들이라고?!’

잡아야 한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임을 알리는 붉은 연무를 피웠으나 그것만으론 자세한 정황을 전달할 수 없다.

준일은 2인 1조로 같이 나왔던 대원을 장문인에게 급파하는 동시에 검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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